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CinDi) 영화제 (8.18~24)
엉클 분미 -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 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개막작인 <엉클 분미>가 상영되기 전, 감독인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겨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대로 <엉클 분미>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화자를 바꿔가며 영화 내내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분미 아저씨는 신장 질환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분미 아저씨를 따라 처제인 젠 아줌마와 통이 시골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통, 젠 아줌마 그리고 분미 아저씨는 오래전에 사별한 후아이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사라진 아들 분쏭을 만납니다. 분쏭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존재, 원숭이가 되어 있습니다. 후아이의 유령이 분미 아저씨를 돌보기 시작하고, 분미 아저씨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정글 속의 동굴에 갑니다. 분미 아저씨는 그 동굴에서 자신의 전생인 미래(!)를 봅니다.  

비유를 비유로써 허락한다면, <엉클 분미>는 데이빗 린치의 세계를 팀 버튼의 감수성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물론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이들 두 거장의 아바타란 얘기는 아닙니다.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를 껴안습니다.  

시골에 내려와 처음 맞이하는 저녁식사에서, 아피차퐁 감독은 초대받지 않은 두 존재, (후아이의) 유령과 (아들인) 원숭이 괴물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라오스 출신의 불법체류자인 자이까지 이 자리에 불러들입니다. 인간과, 유령과, 괴물(혹은 동물)까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하나의 존재로 파악하는 그의 따스한 시선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왜 우리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으면서, 그와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반성하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깜짝 놀란 것은, 이 이야기가 분미 아저씨의 기억이 아니라, 통이 꿈을 꾸며(혹은 애도하며) 돌아가신 분미 아저씨를 추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분미 아저씨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끼어 있습니다. 영화 중간에 갑자기 끼어드는 공주와 시종과 메기(혹은 물)의 이야기도 그렇고, 분미 아저씨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가 길게 진행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인간의 죽음조차도 이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아팟치퐁 감독의 따스함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물론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분미 아저씨의 죽음 이후는 아무리 서사를 만들어보려 애를 써도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제 입장을 바꾸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뒷부분은 다른 존재가 된 분미 아저씨의 시선(혹은 미래를 기억하는 죽음 이후)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어찌됐건, 우리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꾸려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비평가들은 이 영화에서 내재적인 의미를 뽑아내어 평을 할 것이고요. 저는 전에 아피차퐁 감독의 <세계의 욕망>을 예로 들면서, 이 감독이 새로운 거장인지 혹은 사기꾼인지 모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엉클 분미>를 본 이후로 제가 생각하는 아피차퐁 감독은, 거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사기꾼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세상에는 (비평가들의) 설명이 필요한 영화가 있고, (관객들 스스로가) 온전히 경험해야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엉클 분미>는 명백히 후자의 영화입니다. 사기꾼들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것만큼은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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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8-1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해 전에 열대병이라는 제목과 그 전부터 종종 들려오던 아핏차퐁- 이라는 이름에 대한 찬사에 (그리고 이름 자체의 울림에) 끌려서 본 적이 있어요. 어안이 벙쪄서 이게 도대체 뭔가, 했죠. ㅎㅎ 엉클 분미로 다시 도전해 보고 싶어요.

Seong 2010-08-19 07:50   좋아요 0 | URL
저는 전작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확실히 신비로운 영화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개봉하면 다시 보고 싶어요.

치니 2010-08-1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위터에서 정성일씨가 이 영화와 인셉션을 비교하면서 인셉션을 좀 까는 뉘앙스가 되어,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으, 근데 어디서 봐야 하나, 보고 싶은뎅.

Seong 2010-08-20 01:50   좋아요 0 | URL
토요일 14시에 압구정 CGV에서 상영합니다. 온라인분은 모두 나갔지만, 현매는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D

2010-08-19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0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2010년 8월 17일에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 <아내들의 행진>, <길소뜸>, <법창을 울린 옥이> 세 편을 봤습니다. <길소뜸>을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영화고, 세 편 모두 스크린에서 처음 보는 작품들입니다.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 감독님의 53번째 연출작이고 1974년에 제작된 영화입니다. <길소뜸>은 82번째 작품이고 1985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창을 울린 옥이>는 15번째 연출작이고 1966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 임권택 감독님의 60년대, 70년대, 80년대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스스로 자조적으로 표현하길) 영화판에 들어와 영화를 찍은 이유는, 예술가적 자의식의 실현 따위가 아닌, 밥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연좌제로 묶인 몸으로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직업을 갖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바닥’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를 어여삐 보던 제작자의 권유로 그는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표현을 따르자면, 감독으로 데뷔하기가 죽도록 싫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조감독은 영화가 실패해도 계속 돈을 벌 수 있지만, 감독은 영화가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는 <두만강아 잘 있거라>라는 항일투쟁액션활극(!)을 완성하고, 다행히 그 영화는 흥행에 성공해 직업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1960년대에는 흥행감독이었습니다. 그 스스로 모든 장르를 실험하고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나간 감독이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한국 영화계의 암흑기를 맞이하면서, 반공영화와 새마을 영화라는 국책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영화들에서 자포자기를 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처음으로 자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흥행의 부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1980년대, 그는 영화의 형식과 영화의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새로운 걸작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17일에 본 세 편의 영화는 바로 이 시기를 거쳐 간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영화입니다.   

 

  

이 세편의 영화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무언가 공통되는 하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감상이 배재된 냉정한 시선입니다.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아내들의 행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내들의 행진>은 새마을 영화로 시작해서 반공영화로 끝나는 기이한 영화입니다. 그 당시 임권택 감독이야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 영화가 이상한 것은 그럴만하지만, 이 영화에서 무언가 불균질하면서도 지금 임권택 감독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순(윤미라)과 지순의 오빠(윤양하)가 부모의 죽음을 기억하는 장면에서, 폭력적으로 끼어드는 플래시백, 그리고 아내들이 땅을 개간하는 것을 보기만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남자들을 마을의 김첨지가 "이 돼지만도 못한 놈들!"하며 호령하는 장면에서 바로 진짜 돼지들을 보여주는 몽타주를 보면서, "정말 냉정하게 보여주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마을 영화라 보일 수밖에 없는 계몽적인 태도와 화면의 구도는 종종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어쩌면 임권택 감독은 이런 계몽적인 방식을 자신의 영화에 끌어들이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영화는 놀랍게도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으며, 자포자기의 심정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의 영화를 붙들려는 감독의 악전고투가 느껴집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장인이었습니다.   

 

 

<길소뜸>은 중학교 때 비디오로 처음 빌려보고 거의 20여년(?)만에 다시 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놀랐던 점은, 참으로 고리타분할 것이란 생각과는 달리 영화가 굉장히 모던하게 다가왔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봤던 한국 영화들은 MBC에서 방영한 <테마게임>보다도 못한 수준의 것들이었습니다. 한국 영화는 꼭 '한국'이란 수식어가 앞에 붙고 또는 방화(邦畵)라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불렀었죠. 그 때 이런 세련된 영화(만들어진지 10여년이 지난 영화인데도!)를 만난 것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이후 <장군의 아들>시리즈와 <개벽>, <서편제>, <태백산맥>을 (몰래) 보아가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길소뜸>에서 임권택 감독은 여전히 차갑고 끔찍한 상황을 다루었습니다. 이산가족이라는 가슴 뜨거운 소재를 이토록 차갑고 냉정하게 그릴 수 있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김지미, 신성일, 한지일 씨 등 위대한 배우들의 열연 또한 놀랍지만, 이번에 봤을 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자료화면으로 뜬 실제 이산가족들의 만남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에 보이는 화면은 분노와 반가움이 뒤섞인 장면들이었지만, 화영(김지미)이 진짜 아들을 만나고 나서 호텔방에 흘러나오는 자료 화면은 끊임없이 자기 자식임을 물어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자식이 맞다고 하면서, "하나만 더 물어보자"고 하면서 계속 회의하는 장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가족 혹은 연인이지만, 만나고 나서 그 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피하고 싶지만, 기어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질문. 임권택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간에 대해 질문합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인간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을 했다면, 임권택 감독은 인간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결국 그럴 수밖에 없었던가?"   

이 영화에는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화영과 동진이 석철(한지일)이 자기 자식임을 확인하러 돌아다니는 도중에 실수로 개를 칩니다. 개는 피를 흘리고 있지만, 숨이 조금 붙어있습니다. 석철이 차에서 뛰어나가 피 흘리는 개를 들고 옵니다. 화영은 소리를 지르며 "그 더러운 것을 내 차에 들이지 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옆에 앉은 동진은 "그래도 살아있는데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자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석철이 말합니다. "이게 얼마나 귀한 고기인데요!" 이들은 가족이 되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왔습니다. 아마 석철이 번듯한 사람이었더라도 영화는 결국 그렇게 끝났을 것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감상을 두지 않습니다.  

 

<법창을 울린 옥이>는 신파입니다. 옥이(문희)의 가족은 부유하게 살았으나 주식 폭락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집은 빚더미에 쌓이고 맙니다. 옥이와 엄마(주증녀)는 열심히 돈을 벌지만, 빚은 쉽게 갚아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옥이는 자살을 하려 수면제를 복용하는데, 배를 곯은 어린 동생들이 먹을 것인 줄 알고 먹어버립니다. 안타깝게도 스무 알을 먹은 옥이는 살았는데 다섯 알을 먹은 동생들은 죽었습니다. 옥이는 친족살인 혐의로 법정에 섭니다. 영화는 법정에 선 옥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신파의 조건을 가진 작품입니다. 그리고 전 "이래도 안 울 테냐!"하면서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를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데 <법창을 울린 옥이>에는 그런 구질구질한 정서가 없습니다. 너무나 담백하게, 너무나 차갑게 임권택 감독은 옥이와 옥이를 둘러싼 사회를 바라봅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장면. 영화에는 옥이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세 명의 빚쟁이 아줌마들이 나옵니다(김홍준 감독 말에 따르면 "마치 『맥베스』의 세 마녀 같은!"). 이들이 몰아붙여 결국 두 동생이 죽고 옥이는 법정에 섭니다. 그런데 옥이 뒤에 이 세 여인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전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여기까지 돈을 받으러 왔구나!"하는 끔찍함을 느꼈습니다. 옥이의 두 동생이 죽었어도 빚은 해결되지 않았고, 옥이가 살인죄가 아니라 감형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옥이는 동생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그 돈을 갚을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감옥에서 출소한 옥이를 맞이한 이들 가족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 대해 GV시간에 김홍준 감독님께 여쭈어 봤었는데, 감독님 말씀으로는 아마 그 장면은 60년대의 감수성에서 용인될 화해의 제스처였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자신들이 너무 몰아붙였고, 아마 빚은 탕감해주지 않을까하는 (아직 개발이 시작되지 않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용인 혹은 바람.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옥이는 두 동생들의 죽음을 마음속에 묻고 살아가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12일 개막식에 이어 두 번째로 갔지만, 여전히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임권택 감독님은 "확 다 불 싸질러 버리고 싶은 작품들을 자꾸 틀어주니 민망"하다고 하시지만,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겪고, 현대사의 모든 사건을 겪은 한 사람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한국영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덧붙임: 

1. 2010년 8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임권택 감독 전작展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KOFA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 아래는 개막식에서 공개된 "임권택 감독 전작展" 개막식에서 공개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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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이 좋으냐 아니냐를 떠나서 명감독의 조건은
그 사람의 작품의 양과도 관련있다고 봐요.
원래 자기가 만든 작품은 다시볼 때 다 불싸지르고 싶어지죠.
하지만 남이 볼 땐 아무리 졸작이어도 좋은 장면은 있게 마련이거든요.

근데 토멕님 저리 쓰시니 대충 나이가 짐작이 되옵니다.ㅎㅎ
저는 영화 보는 건 좋아하는데 찾아다닐만큼은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안 본 영화들 밤에 불꺼놓고 보는 낙으로만 삽니다.ㅋ

Seong 2010-08-18 14:54   좋아요 0 | URL
영화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비디오가 개발되기 전의 영화는 스크린에서 보는 것을 원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꼭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욕망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무료이기 때문입니다.
ㅠㅠ

제 나이는 <리미츠 오브 컨트롤>에서 이미 밝혔... :D

stella.K 2010-08-18 15:50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왜 그걸 잊고 있었는지...ㅠ
그러면 현재 25..?ㅋㅋ

Seong 2010-08-18 23:56   좋아요 0 | URL
크아~ 그럼 정말 좋을 것 같아요. ㅠㅠ

stella.K 2010-08-1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정신적 나이는 그 정도가 딱이어요.
근데 육체적 나이가 그걸 못 받혀줘서 그렇지.
그래서 옛날보다 늙었구나 하는 거라구요. 말 되죠?ㅋㅋ

Seong 2010-08-20 01:51   좋아요 0 | URL
현답이십니다. :D

노이에자이트 2010-08-2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치산 활동하다 수감되어 전향한 남자를 다룬 '짝코'를 재밌게 보고 임권택이 전쟁 후유증에 대해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길소뜸은 EBS에서 가끔 해주던데 Tomek님 평을 들으니 정신집중해서 감상하고 싶군요.저기 한지일 씨는 나중에 '젖소부인' 시리즈 등 에로물에 나오더라구요.

Seong 2010-08-22 00:28   좋아요 0 | URL
이달 아니면 다음달에 <짝코>를 볼 예정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거든요.

고맙습니다. :D
 
악마를 보았다 - I Saw The Devi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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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영화에 대해서 길게 말할 게제가 못됩니다. 영화 중반, 정경철(최민식)이 간호사를 강간하려는 장면에서 전 가방을 들고 영화관을 나가려고 했었습니다. 만약 수현(이병헌)이 그 자리에 조금만 늦게 나타났더라면, 전 미련 없이 극장을 나갔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합니다. 물론 바꿔 말하면, (힘들지만)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영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가 느낀) <악마를 보았다>는 종교 수난극입니다. 국정원 요원인 수현의 애인은 잔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수현은 "널 이렇게 만든 놈에게 똑같이 갚아주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 신(神)이 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국정원 요원이라 얻을 수 있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함을 이용해 연쇄살인마 정경철을 찾아냅니다. 영화 초반, 그는 정경철을 처단할 수 있었지만 유예합니다. 그리고 그의 전지전능함을 이용해 정경철이 악한 짓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 자리에 나타나 정경철에게 벌을 내립니다. 그의 복수는 일반인들이 피해자가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에겐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 아닌 인간이니까요. 그는 피와 뼈와 살로 이루어진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는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럿 넘기고, 자신의 나약함에 눈물을 흘립니다.  

반면 정경철은 그 자체로 악마입니다. 그는 모든 연쇄살인범의 공식을 벗어나 있습니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성적인 이유도 아니고, 돈을 벌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냥 여자를 잡아서 죽이고 삽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가족을 만났을 때도 그는 전혀 다른 이유로 광분합니다. 그에게 인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악마 그 자체입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면 혹은 악마가 되려면, 인간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윤리와 시스템은 물론이고 인성마저 버려야합니다. 그래야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신과 악마는 우리의 능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니까요. 우리는 <악마를 보았다>에서 말 그대로 악마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일까요? 악마는 되기 쉬워도 신은 될 수 없는. 그러니까 우리들은 어쩌면 하늘에서 추락한 천사장들(Fallen Angels)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현이 통곡하는 모습은, 결국 그걸 깨달은 자의 절망의 눈물입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제목이 화면에 뜰 때, "악마를 보았다" 뒤에 쉼표(,)가 있습니다. 어쩌면 진짜 제목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상상해봅니다. <악마를 보았다, 그러나 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수많은 악마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2010년의 대한민국을 거의 절망의 시선으로 망연자실 쳐다보는 영화입니다. 자포자기의 절망. 카타르시스 없는 장르 영화. 통한의 눈물. 그러나 차마 다시 돌아볼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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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8-1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운 감독 영화 잘 만들기로 유명한데 별이 세개군요.
하긴, 생각해 보면 그 감독은 카타르시를 위한 영화는 만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영화 자체를 위한 영화를 만든다고나 할까?
왠지 걱정되는군요. 이명세처럼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Seong 2010-08-18 15:00   좋아요 0 | URL
제 별점은, 첫째 알라딘에서 별점을 입력 하지 않으면 리뷰가 등록 안 돼서 본의아니게 입력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기왕에 입력해야 한다면 영화를 봤을 때의 제 느낌을 표시하자는 생각으로 입력하고 있습니다. 전 별점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영화적 완성도로 본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정말 잘 만든 영화입니다. 다만 전 그 정서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김지운 감독의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시면 아마 확실히 느끼실 수 있으실 거예요.

굿바이 2010-08-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그저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을 감안해 영화를 짐작해 봤습니다. [종교 수난극]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습니다. 영화보고 다시 읽어볼께요. 그런데, 걱정입니다. 다들 영상이 좀 격하다고 해서요,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비위가 약해서 말입니다.^^

Seong 2010-08-19 00:01   좋아요 0 | URL
표현 수위에 대해 말씀드리면, 그렇게 '직접적인' 잔인한 장면은 생각 외로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을 회 뜰려는 장면의 분위기가 영화 내내 지속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대신 이 영화의 정서적 잔인함은 그만큼 지독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영화 안에서 끝까지 달린 경우라 할까요...

2010-08-18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9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16 (24)
        타이틀 The Condemned Woman
        각본 Tricia Brock
        감독 Lesli Linka Glatter
        방영일 1991
년 2월 16일 
 

 

 

1. 이야기  

네이딘 헐리는 마이크와 사랑에 빠졌다고 에드에게 고백하고 작별(이혼)을 구한다. 그 말을 듣고 빅 에드는 노마 제닝스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노마는 감옥에 있는 행크 제닝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트윈 픽스에 벤자민 혼의 요청으로 거부 잭 윌러가 찾아온다. 잭과 오드리는 예전에 서로 알았던 사이다. 윈덤 얼은 오드리 혼, 셜리 존슨, 다나 헤이워드에게 비밀스런 편지를 보낸다.  

알버트 로젠필드는 시애틀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데일 쿠퍼를 쏜 범인이 조시 패커드임을 밝혀낸다. 캐서린 마르텔과 앤드류 패커드는 조시를 토마스 에크하르트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 결말은 비극으로 끝난다.  

 

 

 

2. 활기  

일단 산으로 갔던 이야기를 다시 트윈 픽스로 오게 하기 위해 작가들은 지금껏 벌여 놓은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임스, 조시, 행크에 관한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시즌에서 퇴장시키며, 차후에 새로운 인물들을 투입시켜,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을 생각이었다. 빌리 제인과 헤더 그레이엄의 투입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는 성공했고, 어느 정도는 실패했다. 성공한 이유는 이 두 배우의 매력이 기존의 인물들과 버금갈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고, 실패한 이유는 <트윈 픽스>의 세계에 빠진 시청자들은 새로운 게스트를 보는 재미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벌어지는 일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정리 면에서도 약간 김이 빠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 가장 긴 미스터리였던, 그래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기 힘든 데일 쿠퍼의 저격사건의 범인과 리오 존슨의 저격 사건이 드디어 해결 되지만, 워낙 오래 전에 벌어진 일이라 놀라움보다는 심드렁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긴 했으나, 너무 늦게 벌어졌다. 한 번 궤도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다시 제자리로 원상복구하기에는 너무 많은 손이 간다.  

 

 

 

3. 이것은 배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번 회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두 인물은 조시와 행크다. 이들은 조시의 남편 앤드루 패커드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그 이유로 조시는 행크와 계약을 맺었고, 행크는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얻어내려고 했다. 상황은 잘 풀려나가는 듯 했으나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이야기는 조시의 이야기에 관한 것 같지만, 실은 앤드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앤드루 패커드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죽음을 숨겨왔다. 그는 조시를 사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긴 호흡으로 천천히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며, 동업자이자 그녀를 사랑하는 토마스 에크하르트를 그녀의 손으로 처단하도록 한다. 물론 배신은 동업자이자 친구인 토마스 에크하르트가 먼저 시작했지만, 앤드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조시-앤드루-토마스의 배신의 삼각관계는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앤드루의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조시를 사랑한 해리 보안관일 것이다.   

 

행크 제닝스는 죄는 가석방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라 가중처벌을 받게 됐다. 특히 이번에 감옥에 가게 되면, 아마도 탈옥을 하지 않는 한, 다시는 나오지 못할 정도의 죄를 저질렀다. 노마 제닝스는 행크를 찾아가 이혼을 요구한다. 빅 에드에 대한 사랑을 억눌러가면서 가능한 결혼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행크를 믿었던 노마는 더 이상의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면, 남편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부한다.  

행크: 빅 에드 때문이지? 당신을 받아줄 수 있는 그놈? 좋아. 그럼 이렇게 해. 알리바이를 입증해주면 이혼을 해줄게.
노마: 난 여기 협상을 하러 온 게 아냐. 작별인사를 하러 온 거지.
행크: 좋아, 가. 이 더러운 창녀 년아!
노마: 당신 부인으로 사느니 창녀가 되는 게 낫겠어.  

자업자득에 가까운 결말이지만, 빅 에드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그렇게 쉽게 거절을 할 수 있었을까? 행크는 남편으로선 엉망인 인물이지만, 어쨌든 노마는 행크의 존재로 치근거리는 남자들에게 맞서며 식당을 지켜왔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이 들지만, 박수를 칠만한 상황은 아닌, 무언가 아이러니를 느끼는 상황이다.  

 

빅 에드가 노마에게 프로포즈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 와서다. 그는 항상 네이딘과의 이별을 생각해왔지만, 그녀를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그래서 자신과 노마에게는 상처를 주면서)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억 상실로 과거로 돌아간 네이딘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자신에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어떤 행운이 도와주는 상황. 자신의 힘으로 행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값을 지불하기 마련이다. 빅 에드, 노마, 네이딘, 그리고 마이크와 연결되는 이 상황은 나중에 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4. 기억할만한 지나침  

잭 윌러 역을 맡은 배우는 빌리 제인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으로는 <팬텀>과 <타이타닉>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토마스 에크하르트와 잭 윌러는 <타이타닉>에서 주종관계로 만나게 된다.  

 

조시의 죽음은 시리즈 사상 가장 엉성하게 설정한 이야기이다. 작가들은 밥과 마이크를 그저 해프닝으로 여기게끔 만들었으며, 흰 오두막과 검은 오두막은 서랍의 손잡이로 오인하게끔 만들었다. 마지막 씬은 그냥 지나쳐버려야 옳다.  

 

 

 

5. 1990년 2월 15일  

시즌 2의 16번 째 에피소드가 방영되기 하루 전, ABC 방송국은 드라마 <트윈 픽스> 방영을 “무기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말이 좋아 무기한 연장이지, 이 말은 드라마를 끝낸다는 말에 다름없었다. 로라 파머의 미스터리가 모두 풀리고 난 후로, “픽스마니아”라 불리는 현상은 이미 끝난 것이었다. 그렇게 <트윈 픽스>는 끝나버리는 듯 했다.  

그러나...  

 

 

 

6.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16』 스크립트, 7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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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 - Beyond the yea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는 정말 사무침에 사로잡혀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어떤 영화도 날 이렇게 사무치게 만들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을 4년 만에 필름으로 다시 보면서 느낀 감정은, 이제야 오해에서 벗어나 그의 영화에 겨우 한 발 들어설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두들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100번 째 영화를 이청준 작가의 소설 『남도사람』의 세 번째 연작인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로 찍는다고 했을 때, 옛 영광을 다시 한 번 누리고 싶어 하는 자화자찬으로 생각했다. <천년학>은 마치, 그의 최고 흥행작이자 그 당시 한국 영화사의 관객 기록을 갱신한 <서편제>의 두 번째 이야기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100번 째 영화라는 엄청난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너무 쉽게 무시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져가는 줄 알았다.  

한 사내가 선학동의 선술집에 찾아든다. 그의 이름은 동호(조재현).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 유봉(임진택)과 누이 송화(오정해)와 함께 소리 공부를 하면서 이곳 선학동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그는 누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 피가 섞이지 않은 유사 가족들이다. 동호는 송화를 사랑하고, 아비 유봉을 의심한다. 지독한 가난을 이기지 못한 동호는 집을 나와 유랑극단에 들어가 밥을 번다. 그 안에서 배우 단심(오승은)과 결혼을 하지만, 동호의 송화에 대한 집착으로 파국을 맞는다. 동호는 이곳 선술집에서 그 옛날 송화에게 연정을 품었던 용택(류승룡)에게 송화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아버지 유봉이 이곳에 암장됐으며, 아버지의 북을 받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잘게 잘린 쇼트로 연결되어 있다. 굳이 자를 필요가 없는 부분을 임권택 감독은 기어이 잘게 잘라서 연결했다. 그럼으로써 받아들이는 감정은 왠지 영화가 매번 끊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끊어지는 느낌의 연속 속에서 송화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들어와 현실과 과거를 잇댄다. 끊어진 현실을 잇는 과거의 기억. 동호는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가 송화에게 보내는 집착은 사랑, 애틋함, 미안함 등의 감정이 오롯이 섞여 있다. 그는 송화를 찾아다니지만, 그녀를 만나도 그냥 떠나보낸다. 그에게 송화는 어떤 간직해야할 다짐과도 같은 것이다.   

이 영화를 동호-단심-송화 혹은 유봉/백사-송화-동호의 멜로로 볼 수도 있지만(어떻게 보아도 정말 가슴 시린 냉정한 이야기다), 가장 심금을 울렸던 장면은 (노인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장면이었다. 송화를 소실로 들였던 백사 노인은 친구들과 함께 송화의 노래 소리를 듣고 벚꽃이 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죽음을 준비한다. "백사는 이 절경을 놔두고 아쉬워서 어떻게 가려나?" 그리고 맞이하는, 탄성이 흘러나오는 장관의 백사의 죽음. 그리고 우리는 유봉의 죽음을 듣는다. 유봉의 죽음은 용택의 부인에게서 대화로만 전해진다. "그 어른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 묏자리를 보러 이곳에 왔었지요. 아니, 자식도 없는 분이 뭐 그리 명당자리를 고집하시냐고 물으니까 그 분 말씀이, 그 자리는 후대에 명창이 나올 자리라고 하데요." 자기 자신은 명창이 못됐으니, 자신은 이 예술의 끝을 보지 못했으니, 내가 아닌 다른 후손들에서 꼭 명창이 나오길 바라는, 저 예술가의 애절한 바람! 그 자신이 이미 소리를 하면, 선학동에 학이 날아드는 명창인데도, 그는 자만심을 느끼지 않고 언제나 예술에 대한 허기를 가지고 있다. 난 이 장면에서 임권택 감독의 모습을 본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 째 영화 <천년학>은 자신의 자화자찬이 아닌,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한 동시에 자신을 뛰어 넘는 명창(명감독!)이 되라는 감독의 애절한 유서와도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혹은 당연히!) <천년학>은 그의 유작이 되질 않았다. 100번째 영화를 만든 이후, 그는 데뷔작을 찍는 마음으로 <달빛 길어 올리기>란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그가 디지털로 작업한 첫 번째 영화다. 그는 언제나 과거에 머무는 것을 경멸하는 감독이다. 유봉의 북과 송화의 소리가 신작로로 뒤덮인 선학동을 다시 옛 모습으로 바꾸고 학을 돌아오게 했듯이, 그의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라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선경(仙境)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덧붙임: 

2010년 8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임권택 감독 전작展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KOFA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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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에 이 영화 본 기억이 납니다.
영상미도 좋고 애잔한 영화였어요.
전 몇편 보진 않았지만, 임권택 감독이 항상 좋은 영화만 만들었던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극과극을 달렸다는 말도 있고.
(아, 토멕님 앞에선 아는 체 하면 하면 안 돼요.ㅋ)
그런데 그 사람처럼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작가도 없다고 생각해요.^^

Seong 2010-08-18 08:40   좋아요 0 | URL
감독님 스스로 말씀하시길, 6, 70년대 만들었던 영화들은 명백히 습작(혹은 쓰레기)였다라고 말씀하실만큼, 당시 영화들은 80년대 이후 걸작들과는 확실히 다르긴 하더군요. 하지만, <만다라>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닌 것처럼 그 시기의 영화들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새마을 영화 <아내들의 행진>, <길소뜸>, <법창을 울린 옥이>를 보았는데, 정말 굉장하더군요. 요즘 말로 쿨하다 못해 콜드했어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2010-08-17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하는 사람들이 그런다면서요~ 다음 영화를 위한 밑천만 생기면 성공한 영화라구요^^;

Seong 2010-08-18 08:43   좋아요 0 | URL
그 밑천은 물적 토대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감독 자신이 비전을 갖느냐 못갖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가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