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바라따 1 - 1장 태동: 신과 아수라와 인간과 영물들의 탄생 마하바라따 1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마하바라따』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서유요원전』 때문이었다.


당시 난 『서유요원전』을 읽으면서 관련된 원전을 관심있게 찾아보고 있었다. 원전인 『서유기』를 읽으면서, 손오공의 모델이 인도의 『라마야나』 에 나오는 원숭이왕 하누만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을 알게 되면서 『라마야나』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와 관련하여 『마하바라따』를 알게 되었다. 이때까지만해도 그냥 '이런 "게" 있구나'하는 정도였었다.


그러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도서관에서 굵은 볼륨의 5권의 『마하바라따』를 발견하고 바로 대출을 해왔더랬다. 1권을 읽은 지 중반부 쯤 되서야, 이 책은 (시간에 쫓기며) 빌려 읽을 게 아니라, 내 책으로 진득하게 읽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책을 덮은 후 도서관에 반납을 했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도서정가제 "덕분에" 『마하바라따』를 반값에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좀 뭣한 말이지만, 난 책을 '작정하고' 읽을 때 꽤 꼼꼼히 읽는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열국지』를 읽으면서 워낙에 큰 골탕을 먹었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거의 색인을 만들 정도로 인물과 사건을 꼼꼼하게 정리를 하는 버릇이 들었다. 『마하바라따』 역시 그런식으로 읽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난 『열국지』 도 완벽히 완독했는데, 뭐가 무섭겠는가.


그런데, 세상은 넓고 책은 많았다.


『마하바라따』는 뭐랄까... 비유를 하자면, 마르셸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열 명의 김연수가 '작정하고' 베베꼬아 내게 그 소설의 줄거리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조금만 방심을 해버리면, 이 이야기의 화자가 누구인지, 도대체 어디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인지, 왜 이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이야기의 미로 속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하바라따』1권의 절반 분량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떠돌이 가객인 우그라쉬라와스가 희생제를 치루고 있는 나이미샤 숲의 선인들에게 자나메자야왕의 희생제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한다. ② 우그라쉬라와스가 들은 이야기는 자나메자야왕의 희생제를 치룬 제사장 중 한 명인 와이샴빠야나가 자나메자야왕에게 한 이야기이다. ③ 자나메자야왕이 희생제는 뱀 희생제인데 이는 부친이 뱀에게 물려 죽었기 때문이다. ④ 자나메자야왕의 부친인 빠릭쉬뜨왕은 성자 끄르샤에게 모욕을 줬다. 그 사실을 안 성자의 아들 슈릉긴이 빠릭쉬뜨왕에게 뱀에게 물려 죽으라는 저주를 내려, 빠릭쉬뜨왕은 뱀 왕 딱샤까에게 물려 죽는다. ⑤ 이러한 뱀 희생제는 브라만 아쓰띠까의 간청으로 멈추게 되는데, 아스띠까는 고행자 자르뜨까루와 뱀 여인 자라드까루(이름이 같다) 사이에서 난 자식이다. ⑥ 뱀 왕 딱샤까에 대한 내력과 족보가 나오는데, 쁘라자빠띠의 두 딸 위나따와 까드루가 그 기원이다. 이 둘은 브라만 까샤빠와 결혼을 하는 데, 위나따는 천 명의 뱀 아들을 낳고, 까드루는 태양의 마부 아루나와 뱀 사냥군 독수리 가루다를 낳는다. (가루다와 관련해서 신들과 아수라들이 합심해 '소마'를 얻는 이야기가 나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끝이 없다.)


복잡한 것은, 이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 ①→②의 순서로 진행이 된다. 이 순서가 끝이 나서야 우린 그제야 와이샴빠야나와 자나메자야 왕의 대화로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밑밥인 것이다. 이만큼 풀어놓은 후에야, 비로소 본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1권을 다 읽은 독자들이라면, 1권 마지막에 있는 와이샴빠야나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하바라따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제껏 열심히 읽었건만, 이제 이야기를 시작한다니, 나는 대체 무엇을 읽었나?


이런 밑밥은 ①의 우그라쉬라와스와 나이미샤 숲의 선인들의 이야기에 나온다. 그 이야기들은 『마하바라따』 본편의 줄거리 요약이자, 하이라이트 부분을 요약/압축한 것이다. 패를 다 보여줘도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이야기 자체에 압도 당하고 만다. 아니, 압사당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기나긴 대서사시 중에 이제 겨우 0.5/19를 읽은 것이다. 내가 만지는 부분이 코끼리 다리인지 몸통인지, 아니 코끼리가 맞는지도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서 성급하게 평가하고 단정짓기 보다는, 서서히 깨달아 나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부디 완간만 되기를 쏜꼽아 기도할 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4-12-30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마하바라따 살까 말까 망설였던 책이죠.50% 세일이어도 워낙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결국 못샀어요ㅜ.ㅜ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봐야 될것 같아요.

Seong 2014-12-30 23:24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가에 간직할만한 책인 것 같아요. 아쉬운점이 없진 않지만...

고맙습니다. ^^

라로 2014-12-31 0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던 책이네요,,,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었어요!!

둥이들은 잘 자라고 있죠???^^

Seong 2014-12-31 07:31   좋아요 0 | URL
2022년 ˝번역완결˝ 예정이라 얼마나 기다려야햘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국어로 이런 위대한 서사시가 번역된다는 사실이 기뻐요.

둥이들은 매일 징징대서 힘이... ㅠ.ㅠ

고맙습니다.

2015-01-01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집안 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내가 내 의지로 내 지갑을 순수히 열며 처음 샀던 것들이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기억 나는 것도 있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점점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감에 따라 이런 거도 이제는 추억을 지나 망각이 될 듯. 지금 이 순간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해서 한 번 나열해본다.




   처음으로 구매한 책. 이 때가 아마 1988년? 국민학교 5학년 때 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연과 허석(지금은 의리의 김보성으로 개명했지만!)이 주연한 영화보다는 이 책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워낙에 많이 읽어서 인지, 첫 부분에 나오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상큼한 오이맛"이라는 구절이 아예 뇌리에 박힌 희한한 소설. 작가 임정진은 후에 『있잖아요 비밀이예요』라는 소설로 이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90년에 발표한 『인생이 뭐 객관식 시험인가요』이후로는 이전에 보여줬던 참신함을 넘어서지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처음 구매한 잡지가 아닐까 싶다. 1995년 5월부터 2003년 7월까지 99권을 발간한 『키노』는 내게 영화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준 유의미한 잡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그 누구도 이렇게 교조적으로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배움을 구할 때 제 때 맞추어 나타났던 스승과도 같은 잡지가 아니었나 싶다. '읽고 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모여서 그것이 역사가 되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던 『키노』편집부의 바람은, 적어도 나는 지키고 있으니, 그래도 괜찮은 한살이 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986년, 국민학교 3학년, 일요일 대지극장에서 홀로 영화를 봤다. <영환도사>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었는데, 이 영화가 <강시선생>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강시가족>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 본다면 어떤 감상일지 잘 모르겠으나, 이 때에는 아주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극장 안 매너도 굉장히 좋았었는데, '굉장한 장면' - 그러니까, 깜짝 놀래키거나, 혹은 경탄할만한 놀라움을 안겨준 장면들 - 이 나올 때는 탄성을 내고 박수를 쳤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영화가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당시에는 그런 낭만도 존재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혹은 당연히) 표는 간직하고 있지 않다.




   처음으로 샀던 비디오 테이프다. 당시 비디오 테이프는 가격이 쎄서 정품으로는 몇 편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빌려 보기 마련이다.) 메탈리카 5집의 제작 과정과 이후 투어 기록, 그리고 뮤직 비디오가 수록된 이 비디오는, 아직 케이블 TV도 개국하지 않아 뮤직 비디오를 보려면 대학로나 신촌에 있는 MTV카페를 가던가, 아니면 KBS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영하는 <지구촌 영상음악>에서 틀어주던 뮤비를 볼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비디오 테이프와 더불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VCD. 당시 VCD는 삼성과 LG가 양분했었는데, 콘텐츠의 질로는 LG의 승리였다. 삼성은 출시된 비디오를 그대로 VCD에 떠서 판매하는 양아치 짓을 했다면, LG는 원본을 그대로 담고 새 자막을 입혀 출시를 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비디오 테이프보다 더 화질이 떨어지고,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적어, 최소 두 번에서 세 번 CD를 교체해 줘야 한다는 불편함이랄까? 결국 이 자리는 DVD가 대체했지만, 그래도 비디오와 DVD를 연결해주는 VCD의 고마움을 잊지는 못한다.




   크쥐시도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삼색 시리즈>가 처음 산 DVD인 것 같다. <블루>를 워낙에 좋아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해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차세대 매체로 좋아하는 영화를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비디오 테이프와 별 다름 없는 화질과, 그 때와 똑같은 오류로 점철된 자막이 날 절망케 했지만, DVD로 인해 비로소 영화는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소장하는 것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목록을 바라보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의 기쁨이다.




   아마도 1989년? 처음 샀던 카세트 테이프다. 정말 단순히,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산 앨범이다. 이 사람이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은 얼마 전 검색으로 알았으며, 이 앨범이 그나마 히트를 쳐서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으로 안다. 지금은 테이프가 늘어져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나름 여러번 들었던 것 같다.




   처음 산 LP. 마이클 볼튼의 앨범을 처음 샀는지, 김현식 6집을 처음 샀는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다. 이 앨범은 1991년 봄에 처음 턴테이블에 올린 기억이 있고, 김현식의 앨범은 봄과 여름 사이로 기억을 해서 이 앨범으로 골랐다. LP의 사이즈야 말로 음악의 예술성을 시각화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지 않았을가 생각한다. 카세트 테이프나 CD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 거대함, 그리고 턴테이블에 판을 올려 놓고 조심스레 바늘을 내려놓는, 그 모든 음악을 듣는 행위를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었던 그런 모습들.




   그리고 1993년, 처음으로 산 CD. 80분에 가까운 열 다섯 곡을 한 장에 채워 놓는 것이 바로 CD의 미덕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음악을 '진열'할 거의 마지막 저장소가 된 CD. 아마도 음악이 '목록의 나열'이 아닌, '앨범'으로써 음악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CD는 계속 나올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4-12-08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미아리 대지극장! 저도 알아요~ㅎㅎ
작은아버지집이 그 근처에 있었어요. 저는 그 극장에서 혼자 <태양은 가득히>를 보았던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그나저나, 초등학교 3학년이 혼자 영화를 보았다니! 오우~~
마이클 볼튼의 음악도 열심히 들었던 추억이 있는데...지금은..잘 생각이 안 나네요..ㅠㅠ (이게 다 과도한 음주의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Tomek님! 추억돋는 멋진 페이퍼! 감사드립니다~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Seong 2014-12-09 11:31   좋아요 0 | URL
대지, 명화, 화양, 홍콩영화의 성지였었죠. 이후에 UIP직배영화도 간간히 상영하고... 무엇보다도 A와B 사이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그나저나 <태양은 가득히>라면 제가 가늠할 수 있는 세월이 아니네요. ^^

고맙습니다. :)

무무키 2020-05-31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빗 라임! 이라니 30년 만에 처음 그 이름을 듣는 것 같네요. 보통 추억의 팝 가수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름을 다시 되새기는 일이 있는데 데이빗 라임! 이라니요. 재미있어서 댓글 달아요.
 

   어제, 11월 26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2014년에 부모가 된 것은 벅찬 기쁨보다는 무거운 부채가 더 컸기에, 여유가 생기는 대로 바로 분향소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쌍둥이들이 태어난지 100일이 거의 되어 감에 따라 육아에 어느 정도 익숙함이 생겼기도 하거니와, 마침 장모님이 집에 오신 김에 (잘 부탁드린다며 말씀드리고) 바로 안산으로 향했다. 1시간 30분 가량 지하철을 타고 초지역에 내려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화랑유원지로 걸어갔다. 날은 맑고 포근했지만, 계절을 이기지 못한 은행잎들은 악취를 풍기며 뒹굴고 있었다. 분향소에 다가갈수록 도로를 수놓은 세월호 관련 현수막들은 각자의 아픈 사연과 이웃들의 위로가 담긴 말을 짧은 문장으로 절절히 담아내고 있었다. 조문객들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 수많은 의경들이 분향소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렇게 적막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분향소.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고통과 아픔이 어느 정도 무뎌진 후에 남은 것은 정치적 구호나 경제적 논쟁 같은 실체 없는 허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무언가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으며, 여전히 아홉 명의 실종자가 바다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지겹다"거나, 심지어 "유행에 뒤떨어진" 일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어느 정도는 이런 생각에 물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분향소에서는, 그러나, 이런 모든 논쟁들이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수많은 영정사진 밑에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 친구, 애인들의 편지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어서 돌아와 예전처럼 티격태격 놀자는 동생의 편지도 있었고, 자신이 그동안 모질게 군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눈물에 글자가 번진 누나의 편지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서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거라 생각하는 엄마의 편지도 있었고, 아직 바다에 있어 춥겠지만 기다릴테니 천천히 올라오시라는 아들의 편지도 있었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한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나? 아마도 세월호는 삶이라는 것이 아닐까? 거창한 정치구호나 치졸한 세금협박이 아닌, 그래도 여전히 삶을 견디어내는 우리 이웃들의 삶 말이다. 


   거리의 현수막 중 하나는 이렇게 외쳤다. "지겹다고 말하지 마세요. 자식 일이 지겹습니까?" 분향소에 있는 편지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언니, 사람들은 무섭게 제자리로 돌아갔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고작 한 번 분향소에 들러 조문을 했다는 이유로 이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겠다. 그저 너무도 앳된 아마도 아이들의 중학교 졸업사진에나 실렸을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올려져 있는 기막힌 현실을 직시하면서, 잊지 않고 잊지 않고 잊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 밖에는.





   그리고 저녁. 결혼을 며칠 앞둔 친구를 만났다. 하필 결혼식과 아이들 100일이 겹쳐서 부득이하게 결혼식에 참석 못하게 돼 미리 축의금을 전달하며 덕담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전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흥분했던 그의 말을 복기하자면, 내 결혼식에 왜 못오느냐. 그날이 아이들 100일이 정확하냐.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시간을 짜내 결혼식에는 와서 단 5분이라도 있는 한이 있더라도 얼굴 보고 축하한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축의금을 내는 게 예의 아니냐. 왜 이런 개인적인 자리를 만들어 축의금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럴거면 전화로 계좌번호를 물어봐서 이체하는 게 옳은 것 아니냐. 이건 예의가 아니다.


   뭐 이런 얘기였는데,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는데 갈수록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비난과 힐난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진짜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결혼식에 시간을 짜낼 수 없어서 오늘 무리하게 짜내 얼굴이라도 마주하며 미리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 게 그렇게 무례한 행동이었나.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예의를 찾을 거면 왜 본인은 결혼 일주일 전에 카톡으로 모발일 청첩장 하나 보내며 결혼식에 오라고 했는지. 이건 예의 바른 것이고 내 행동은 무례한 것인지.


   어쩌면 그날 지독한 야근과 잔업으로 지쳐있다 숨어 있던 짜증이 돌출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학사 졸업 후 근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 그동안 숨겨왔던 자부심을 드러냈을 수도 있겠지. 집에서 육아나 하는 백수 주제에 감히 바쁘고 피곤한 박사님을 따로 불러내 결혼식에 못온다는 통보를 하는 것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했을 수도 있겠고. 그도 아니면 일면식도 없는 세월호 분향소에는 시간을 짜내 가면서, 왜 자신의 결혼식에는 그정도 성의를 보이지 않느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 오래된 친구라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그를 참으로 표피적으로 만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세월들이 서로 착각속에 빠진 시간들이었다는 것이란 생각이 들자 인생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사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란 이름으로 예의를 짓이겨가며 행하는 폭력에 그동안 얼마나 진저리치며 살아왔던가. 결국 이렇게 되는 것도 인생이겠지. 김훈 선생이 말하길, 인간관계는 강과 같다고 했다. 강이 한 번 물길이 틀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인간관계 또한 그와 같다고 했다. 물길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허망한 것처럼,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번 틀어지면 그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이치다. 


   안그래도 생선회 밑에 깔리는 무보다 얇은 게 내 인간관계인데, 어제부로 또 한 명을 정리하게 됐다. 한 친구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나중에 나이들어서 친구 없으면 고생한다"며 있을 때 친구들 잘 대하라는 말을 했는데, 친구가 무슨 보험도 아닐뿐더러, 이런 무례한 녀석들을 보험이라고 믿느니 매주 로또를 긁는 게 더 확률이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뜬금없지만, 연수 형 말이 맞았다. 글은 쓰는 것 자체로 위로가 된다는 말.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4-11-28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ong 2014-11-28 08:24   좋아요 0 | URL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달걀부인님 덕분에 정말로 많이 풀렸어요.
아이들 예쁜 짓 보는 재미로 살고있어요. ^^

stella.K 2014-11-28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 김훈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틀어진 인간관계로 인해 저도 적잖이 신경 쓰였는데
김훈 선생이 그런 말을 했다니 은근 위로가 되네요.
전에 무슨 예능 프로를 보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같이 앉아서 밥만 먹어도 좋다고 했다던데 그러기엔 토멕님이나
저나 아직은 젊은가 봐요.ㅋ

쌍둥이를 두셨군요. 이제 백일이라니 막 예뻐지면서 힘들어 지시겠습니다.
힘내시고, 튼튼한 아빠 되십시오.^^

Seong 2014-11-28 15:52   좋아요 0 | URL
제가 오해했던 것도 있을테고, 그가 오해했던 것도 있었겠죠. 이젠 지난 일이니 깔끔하게 리셋해야죠. ^^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4-11-29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쌍둥이 아버지가 되셨군요~ 축하합니다!
예의를 차리지 않는 자가 예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 사람이 적반하장도 유분수군요.ㅠ
저는 그런 청첩을 보내면 결혼식에도 안 갑니다.ㅋㅋ

Seong 2014-11-29 06:50   좋아요 0 | URL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였겠죠. ^^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만 20일이 흘렀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밤마다 영아산통 때문에 1시간 가량 비명을 지르듯이 울어댈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끌어안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중얼거릴 수 밖에 없는, 염치없고 무력한 내가 아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을런지... 


   결국 인생은 스스로가 감내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 어린 아이들이 온몸으로 겪고 있는 셈인데, 그게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다. 이게 부모된 사람의 마음인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4-09-1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보니 쌍둥이신가봐요.아이들이 태어난것을 축하드려요^^

Seong 2014-09-15 11: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둥이들 때문에 하루 하루가 전쟁이예요. ㅠㅠ
 

새 가족들을 맞이할 준비가 얼추 끝나간다. 


맘에 들어할 지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4-08-1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아가들이 태어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아내분께서 뭘 저리 정성들여 만들고 계실까요? 침대도 정말 예뻐요.

Seong 2014-08-19 09:27   좋아요 0 | URL
촛점책 만들고 있어요. 침대에 죽 늘어놓으면 아가들 눈 발달에 좋다고 해서... 물론 아내님께서 만드시는 중이고 저는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얼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네요. 준비할 게...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