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 Gag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감독 이명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어떨까? 대충 소급해보자면 이럴것이다.  

   '충무로에 혜성같이 등장해 배창호감독과 『기쁜 우리 젊은날』을 만들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대박을 치고 그 후로 망하는 영화만 만들다 세기말을 앞둔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국내 흥행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다.(이영화 때문에 박중훈은 조나단 드미와 『찰리의 진실』이라는 영화를 찍고, 워쇼스키 형제는 빗속 탄광촌에서의 결투장면을『매트릭스3』에서 오마주를 바쳤다) 그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와 『형사:the Duelist』를 만들었으나 흥행에 실패하고, 절치부심하여 만든 『M』이 흥행에 실패. 현재 차기작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흥행면에서만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흥행이란 어떻게 보면 관객과의 타협이라고 볼 수 있다. 흥행이 잘 된 영화는 대중적인 영화이고, 대중적이란 말은 대중에게 친숙하거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이명세는 항상 애매한 위치에 서있었다. 그가 그려내는 미장센은 한국 영화사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을 보여주지만, 그의 이야기는 굉장히 불친절하거나,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다. 흥행을 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결혼을 한 두 남녀가 위기를 겪고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형사가 범죄자를 쫓고 결국 잡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스토리텔링에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작은 어떠했을지 매우 궁금했다. 감독 데뷔를 위해 어느정도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영화를 찍었을지, 아니면 뚝심대로 밀고 나갔을지. 이 글은 얼마전에 산 [한국영화 클래식 콜렉션]에 수록된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을 보고 쓴 글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당연히 난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이명세에 대한 내 생각도 철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엔 특별한 것이 있다.    

 

   영화는 어느 여름날 오후, 이발소에서 시작한다. 면도를 하기위해 의자에 누워있는 이종세(안성기)에게 이발사 문도석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여름철 보양음식 개고기에서 시작해서, 연예인 이주일의 세금 1억, 영화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온다. 이종세는 나이트클럽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그의 꿈은 '4천만 국민이 보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 촬영장을 어슬렁거리다 쫓겨난 이종세는 어느날 극장에서 갑자기 등장한 오선영(황신혜)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집에 초대한다. 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탈영병(손창민!!)이 선물처럼 주고 간 총을 가지고 이종세는 영화를 찍으려 한다. 거기에 오선영과 문도석이 합류, 그들은 전국을 누비며 강도짓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정체가 탄로나 도망가는 도중 도석이 실수로 시골의 정비사 청년(김세준!!)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밀항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지 20여년이 지났으니까 내용에 대해 감히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몽롱하고 권태롭고 나른한 어느 여름날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기 위해 잠깐 누워있던 이종세의 '한나절 꿈'이다. 아니 꿈이라기 보다는 '망상'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망상의 세계엔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 종세의 망상속의 인물들은 너무나 극적이고 작위적이다.  

 

 

고다르 혹은 팜므 파탈 오선영과 이종세  

 

   오선영은 종세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등장한다. 이 전 장면은 그가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영화감독으로써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예술은 어두운 밤을 뚫고 달리는 야간 열차와 같다"는 트뤼포의 말을 인용한 그는 (그의 잘못으로) 머리에 물을 맞고 정신을 차린다. 그 다음장면에서 오선영이 마치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그에게 다가온다. 오선영은 '꿈'같은 존재다. 그런 그녀가 극장에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영화는 꿈이다. 그러나 관객은 꿈꾸어서는 안된다." 트뤼포의 동료인 고다르의 말이다. 그러나 종세는 꿈을 꾸고 있다. 깨어있지 않은 그에게 그녀는 악몽이 된다.  

 

 

잭 니콜슨, 적룡, 허장강 그리고 문도석 혹은 배창호  

 

   문도석은 영화배우를 꿈꾸는 이발사이다. 문도석을 연기한 배창호는 영화 감독이다. 그는 1년 전,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안성기와 황신혜를 주연으로 『기쁜 우리 젊은날』을 찍었었다. 그 때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이명세가 배창호를 주인공 중 한명으로 끌어들인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만, 정작 감독은, 영화 구성의 핵을 차지하는 연기자를 대체하지 못한다. 음악, 미술, 촬영 등은 감독의 의도대로 이끌 수 있지만, 연기는 통제하지 못한다. 이명세는 완전작가로서의 영화를 꿈꾸었던 것일까? 그의 분신인 이종세가 채플린을 따라 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고 감독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문도석은 이종세에게 맞고 오선영에게 모욕당하기 일쑤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배우들에게 감독이 호되게 당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너무 들어간 것일까?   

 

  

찰리 채플린, 이명세 그리고 이종세   

 

   감독의 자아가 가장 많이 개입된 캐릭터 이종세는 개그맨이다. 현실에선 개그맨이면서 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꾼다. 그는 언젠가 '4천만이 볼 불후의 명작'을 만들 것이라 공언하는 모습은 이명세가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혹은 길게 돌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구경남의 다짐 "나도 다음에 2백만 관객이 보는 영화를 만들테다."이 생각난다. 이종세의 공언에 비하면 구경남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지만 그가 영화를 찍는 것은, 연기를 하는 것은, 결국 범죄가 되어버리고, 그 영화는 4천만 국민이 다 보는 TV뉴스로 전이되고 만다. 그는 영화가 결국엔 현실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것도 데뷔작에서!! 

   이종세의 공간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그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일하는 나이트클럽의 무대다. 그의 집 안엔 (덕수궁의) 벤치, (혜린 회사 앞의 빨간) 전화부스, (리버사이드 카페) 레스토랑의 탁자가 있다. 그리고 그 소품들은 『기쁜 우리 젊은날』에 등장했던 의미있는 소품이다. 그의 공간은 그 자체로 영화(세트장)이다.  

 

  

이주일의 무대에서 이주일이 낸 세금만큼 돈을 벌고 이주일의 노래를 불러 이주일이 되다. 

 

   이종세의 무대는 세 번 보여진다. 첫 번째는 그가 일상에서 밥을 버는 일터의 공간으로 보여진다. 그는 열심히 나이트클럽에 찾아온 손님들을 향해 연기를 한다. 두 번째는 선물의 공간이다. 텅빈 무대에서 갑자기 등장한 탈영병이 선물을 건네주듯 그가 탈취한 총을 주고 사라진다. 세 번째는 고백의 공간이다. 그는 그의 관객들을 향해 그가 처음으로 저지른 범죄를 고백하지만, 그 고백은 코미디로 여겨진다. 그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범죄였고, 그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동료들을 부른 후 그 무대위에서 이주일이 불러 유명해진 CCR의 「Susie Q」를 부른다. 세금 1억과 목표액 1억, 개그맨의 정점과 영화감독의 꿈. 종세의 무대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무대이다.   

 

 

 야간 열차는 멈추고 영화 예술은 죽음을 맞이한다. 한 여름 오후의 '꿈' 혹은 '망상'

 

   그의 망상이 끝나는 지점은 아침의 기차 삼등열차객실이다. 앞에 언급했던 트뤼포의 말. "영화 예술은 어두운 밤을 뚫고 달리는 야간 열차와 같다." 그들은 어두운 밤을 뚫고 달리는 야간 열차를 타고 종착역에 도착했다. 야간 열차가 도착하고 아침이 오면, 영화 예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술에 완성은 없다. 열차가 멈추고 아침이 오면, 그것은 끝나는 것이다. 더이상 달릴 수 없는 기차를 보며 이명세는 영화감독의 예술적 죽음을 생각한 것이 아닐까?  

 

   20여년전의 영화이기때문에 녹음이나 편집 등, 영화 기술적인 면에선 지금의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좀 참담한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내는 여름날 오후의 몽롱하고 권태롭고 나른한 몽상을 한번쯤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덧붙임  

1. 오선영이 등장할 때 이종세가 보던 영화는 프란시드 포드 코폴라 감독의 『커튼 클럽(The Cotten Club)』입니다. 이후의 운명 혹은 망상이 어떻게 진행되어질지를 보여주는 재밌는 장면입니다. 그 후 극장에서 나와 이종세의 집에 갔을 때 이종세가 오디오에서 트는 음악은 같은 감독의 『대부』 테마곡입니다. ^.^; 

2. 캡쳐한 이미지는 태흥영화사/아인스엠앤엠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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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밴드 - Bus
김창완밴드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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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8년 전작 『The Happiest』에서 밴드 신고식을 마친 김창완 밴드가 올해 1년이 채 안되는 시점에서 새 앨범을 발표했다. 혈연 밴드 산울림을 뒤로 하고, 산울림이란 공통점으로 만난 사람들을 주축으로 새로이 밴드를 짜서 앨범을 발표했다. '솔로' 김창완이 아닌 김창완'밴드'로서 방점이 찍힌 이 결과물은 이전의 산울림과도, 그리고 이전의 EP와도 다른 노선을 택했다. 

   전작 『The Happiest』를 기대하고 데크에 CD를 넣은 사람이라면 서정적인 기타 솔로로 시작되는 첫 곡에서 적지않게 당황했으리라 생각한다. 산울림 13집과 김창완밴드 EP앨범에서 느껴졌던 위악적이고 내지르는 에너지는 회환과 쓸쓸함을 서정으로 감싸는 것으로 대체됐다. 이것이 김창완밴드에게 있어서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아직까지 판단을 할 수 없지만, 그는 평균연령의 2/3를 훌쩍 넘긴 나이로 세상을 돌파하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가 바라본 세상을 한 번 살펴보자.  

 

   첫 번째 곡, 「내가 갖고 싶은 건」은 영롱한 기타소리로 시작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조곤한 김창완의 목소리. 그는 '멋진 자동차', '멋진 옷', '성같은 저택', '흰 돛 요트'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따뜻한 사랑'이라고 이야기 한다. 김창완은 '사랑'이란 말을 오랜 시간 피해왔었다. 산울림시절, 그가 '사랑'이란 단어를 처음 쓴 것은 산울림 8집 「내게 사랑은 너무 써」에서였다.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랑'이라는 말로 개념화시키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해왔다. 그 이후에도 그는 '사랑'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피해왔었다. 그런 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산울림 12집을 겨우 마친, 비공식적으로 산울림을 해체하고 난 후 발표한 솔로앨범 『Postscript』에서였다. 첫 곡 「추신(追伸)」에서 그는 '사랑해~~애애애애애~'라고 절규하듯이 부른다. 떠나간 사랑 앞에서 다급하게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사랑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제서야 '사랑'이 어떤 것인지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만약 그것이 그의 동생을 잃어서 알게 된 것이라면, 인생에서의 깨달음은 얼마나 잔혹한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사랑'을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두 번째 곡 「아이쿠」에서는 예의 그 김창완으로 돌아온다. 같은 사랑 노래이지만, 이 곡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상황만이 나올뿐이다. 어쩌면 이 곡이 사랑노래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그 낯설고 날선 감정. 모호하고 혼돈스런 그 감정속에서 사랑은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태초에 천지창조가 혼돈속에서 이루어졌듯,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세 번째, 네 번째 곡 「Good Morning」은 시간때문에 part 1, 2로 나뉘어진 곡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노래는 지난 2007년 산울림 30주년 콘서트에서 연주했던, 산울림 14집에 실릴 예정이었던 「도시인」이란 노래다(한 번 들었던 노래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산울림은 해체되었고, 그 곡은 고스란히 김창완밴드에 의해 연주되고 불려지게 되었다. 이 노래는 도시의 아침, '지하철에서 버려진 아침 신문'을 주워 '구직광고를 살피'는 구직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출근길 지하철, 모두들 어디론가 갈 곳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어디 갈 곳도 가야 할 곳도 없는' 나는 도시의 '이방인'같은 존재다. 이 도시는 목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Good Morning'인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차갑게 대한다. '내게도 희망은 있는'지, '내일은 내게도 기회를 줄'런지 알수 없는 기약과 자학만을 남기는 이 도시에서는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존재다. 어디 갈 곳 없는 나에게 도시는 인사하지 않는다. '도시에는 바람만 분다 / 외로움이 바람이 되어' 

   다섯 번째 곡 「29-1」에서 김창완은 예의 개구쟁이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곡 진행은 빠르고 기타는 디스토션을 잔뜩 걸고, 목소리는 일부러 찌그러뜨렸다. 사고처럼 다가온 사랑을 29-1번 버스라는 매개물로 병치시키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다. 많은 사람들이 타는 29-1번 버스는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있어선 그녀를 떠올리는 특별한 버스가 될 것이다.  

   연주곡을 건너 일곱 번째  곡 「길」은 예전에 『꾸러기들의 굴뚝여행』이라는 앨범에서 먼저 발표된 곡을 다시 불렀다. 김창완은 어렸을 때 부터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지녀왔는데, 20대에 만든 「청춘」이나 이 「길」이란 노래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후에 '그 나이에 이런 노래를 만들었던 것은 만용'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도 좌충우돌 젊음의 시절이 있었고 젊어서 지닐 수 있었던 만용을 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노래들을 부를때 드는 느낌은 그 때와는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젊음의 만용이 이제는 깨달음, 깨달음이 아니면 회환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원곡 「길」은 혼란스러움, 될대로 되라는 식의 감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50대 중반의 그가 부르는 노래는 어떤 '체념'의 정서가 물씬 베어 있다.  

 

          내게 길을 물어온다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오
          어짜피 아무도 모르는 길을

          전에 내게 애인이 있었어
          젊고 아름다운 연인
          그러나 이제는 지나간 추억 

- 「길」 중에서 -          

 

   여덟 번째 곡 「앞집에 이사온 아이」는 이 앨범을 통털어 가장 서정적이고 쓸쓸한 노래다. 도시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쓸쓸하다. 이들은 이 쓸쓸함을 몸에 새기고 이 도시를 살아나갈 것이다. 아이들은 이게 쓸쓸함인지, 지루함인지 모른다. 그게 쓸쓸하다고 느끼는 주체는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시점이다. 텅 빈 오후의 도시는 그렇게 쓸쓸함을 머금고 있다.  

 

          앞집에 이사 온 세살쯤 되보이는 어린아이
          누가 묶어줬는지 머리엔 고무줄을 질끈 묶고
          아직은 낯선지 골목을 벗어나질 않고 노네
          친구가 없는지 혼자서 하루종일 놀고 있네 

- 「앞집에 이사 온 아이」 중에서 -          

 

   아홉 번째 곡 「그땐 좋았지」는 10여년전 『도시락(圖詩樂) 특공대』라는 프로젝트 앨범에 수록한 곡을 다시 불렀다. 『도시락(圖詩樂) 특공대』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주축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추억하듯 불렀는데 이번에는 프로그레시브하고 싸이키델릭한 대곡으로 편곡해서 그런지 더욱 몽롱하게 들린다. 그도 나이가 들수록 그런 즐거운 일들은 아득한 추억이 되는 것일까? 따뜻했던 노래가 조금 차가워진 느낌이 들어서 더 먹먹했다. 

   열한 번째 곡 「결혼하자」는 제목같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노래다. 하지만 그 가사가 왠지 서글프다. '이담에 돈 많이 아주 많이 벌어 / 이담에 아이들 아주 많이 낳아 / 행복할거야' 결혼은 사랑의 약속이지만, 현재의 결혼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결혼'식'을 진행할 수 없다. 이 소꿉장난같은 노래는 결국 '돈'에도 소외되는 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김창완의 노래에서 처음으로 '계급'이라는 단어를 쓰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는 변하지 않았는데 이 사회가 점점 계층화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그저 노래를 만들고 부를 뿐이다.  

 

   쓸쓸한 도시인의 삶에서 김창완은 노래한다. 예전처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고 선동하지도 않고, '변해야 한다'고 소리지르지도 않는다. 이제 그는 세상을 감싼다. 따스하게.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기타가 세상을 위로할 수도 있다. 김창완밴드의 이번 앨범은 그것을 실제로 증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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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숭고함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김훈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는 더이상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직접적인 말이다. '고전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문체가 소설이, 역사가 아닌, 이곳 현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의 독자들의 큰 바람이었을 것이다. 현실에 대해 엄정하고 냉엄한 시선으로 가다듬은 문체로 이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비판하고,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그의 독자로써 얼마나 복될까? 하지만 그것은 독자들의 이상일 뿐이다. 김훈은 독자들의 이상이 빚은 인물이 아니다. 김훈은 김훈일 뿐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낸다. 숨기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보일법한 것들도 스스럼없이 다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진보적'인 틀에서 김훈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김훈은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지금의 이 세상을 깨뜨리기 보다는 이 세상에 맞추어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가부장제도를 존중하고 '여자'는 가부장제도하에서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여기 저기서 실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김훈이 오히려 묻는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게 도대체 뭔데?' 

   그는 '세상 잡사를 싫어하면서도 세상 잡사를 말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는 그가 보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번잡스러운 일도 그에게는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래서 그는 그 풍경을 보고, 그 너머의 것을 사유하고 글을 쓴다. 단, 이 글들은 애초에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쓰여진 글들이 아닌, 신문지면, 잡지 칼럼에서 소비되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쓴 글이다. 신문과 잡지의 분량은 정해져 있다. 한정된 분량 덕분에 그는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대신, 빠른 템포로 간결하게 넘어간다.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등의 산문집에서 끝까지 밀고나가는 그의 사유에 진절머리쳤던 독자들이라면, 그보다는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이상하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생각났다. 이스트우드는 김훈과 달리 자신의 정치색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 이고, 총기소지를 지지한다. 마이클 무어가 『화씨 911』로 인터뷰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자, 그는 언론에 이렇게 얘기했었다. "그자식이 날 인터뷰하러 온다면 총으로 쏴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정치색으로 그의 작품을 재단하지 않는다. 그는 세르지오 레오네, 돈 시겔과 함께 한 서부극과 형사물에서 이 세상을 지키는 역을 했었다. 그가 배우가 아닌 감독을 한 영화를 보면, 그 의미가 조금 더 명징해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상을 완성체로 보고 있다. 그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보면 나쁜놈들은 그냥 나쁜놈들이다. 그들은 갱생을 할 수 없는 존재고, 이스트우드 또한 그들을 갱생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몰아내야할 존재들이다.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나를 지키고 안전한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이고 때로는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는다. 그가 지키는 가족, 그리고 이 사회는 그가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있는 것이다. 

   김훈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가부장제도를 존중하고, 이 사회를 지키고 존중한다. 단지 그가 정치성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그 자신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런 편가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런지 모르겠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끼니를 떼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세상 밑바닥에서 담론의 가장 밑바닥인 '밥'과 '끼니'에 대해 쓰는 글이 정치성을 초월하는 거대담론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어쩌면 김훈 사유의 힘이 아닐런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김훈의 글을 읽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생각하다가 글이 두서 없이 되어 버렸다. 내가 원래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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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그가 앨범을 발표했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스위스 화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도 받고, 미국에 특허도 취득했다. 난 지금 공학박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사실 맞다...) 루시드 폴, 조윤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나것은 98년 SUB라는 음악잡지에서 주는 샘플CD에 담긴 「송시」라는 노래에서였다. 수많은 노래 중에서 유독 그 노래에 끌렸던 이유는 치기어린 난해한 가사보다는 어떤 실연의 처절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자포자기한 '분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음속의 울림은
               내 입속의 신음은
               항상 그대에겐 짐이었을뿐
               곳곳을 둘러 봐도
               성한 곳 하나 없고
               난 언제까지 썩어 갈건지 

     - 「송시」 중에서 -                

 

   이 노래를 듣고, 피리부는 소년을 따르는 쥐처럼 난 바로 음반가게에 가서 이 노래가 있는 앨범을 샀다. 앨범명은 『Drifting』이었고, 그룹명은 미선이였다. 그날 앨범을 듣고 오랫동안 먹먹해있었다. 사랑에 상처받고 세상에 상처받은 내 또래의 친구가 내 앞에서 한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 얘기한 「송시」가 실연을 당한 입장에서 부른 노래였다면 「시간」은 실연을 한 입장에서 부른 노래다.  

 

               내 위로 떨어져 내린 촛농 같은 시간들
               멀리서 나를 부르네 날아가야 한다고
               계절은 항상 이렇게 아픔속에 오는가
               한없이 늘어만 가네 내 나이의 상처

               이젠 헤어졌으니 나를 이해해줄까
               사랑 없이 미움 없이
               나를 좋아했다면 나를 용서하겠지
               미련 없이 의미 없이 

 - 「시간」 중에서 -                

 

   이 때 그는 '사랑'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같이 불렀었는데, 아마도 감히(!!) 비유하자면, 이런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에 얹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태춘 이후 처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진달레 피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타고
               개같은 세상에 너무 정직하게
               꽃이 피네
               꽃이 지네
               올해도 

- 「진달래 타이머」 중에서 -                 

 

   <미선이>는 단 한장의 앨범을 내고 해체했다. 이유는 구성원들의 군입대와 유학때문이었다. 홀로남은 조윤석은 새로운 프로젝트앨범을 기획하는데 그것이 바로 <루시드 폴>이다. Lucid Fall, 청명한 가을이라는 말은 얼마나 쓸쓸하고 설레는 단어인지... 

   <루시드 폴>로 이름을 바꾼 그는<미선이>에서 다 못다한 이야기가 있는 듯 쓸쓸한 노래들로 진을 뺐었다. 이른바 '풍경 3부작'이라고 불리웠던 「나의 하류를 지나」, 「너는 내 마음속에 남아」, 「풍경은 언제나」를 통해,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고, 그 아픔때문에 어둡고 차가운 골방에서 차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쓸쓸한 청춘에 대해 노래했었다. 조윤석의 목소리엔 기교가 없다. 무심한 듯, 무덤한 듯, 일상을 이야기하듯 감정을 싣지 않는다. 그래서 더 슬프고 처절하게 들린다. 

   그런 그가 유학을 떠나기 전 『버스, 정류장』이라는 OST를 만들었다. 이 앨범은 <루시드폴>보다는 <미선이>에 조금 더 가까운 앨범이었다. 어쿠스틱 보다는 일렉 기타가 더 많이 들어갔고, 솔로라기보다는 밴드같았다. 게다가 <sweet>의 이아림이 참가한 노래는 쓸쓸함이 아닌, 산뜻함이 느껴졌다. 그 앨범을 끝으로 그는 기나긴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시절 낸 2장의 앨범, 『오, 사랑』과 『국경의 밤』은 듣지 않았다. 실은 『오, 사랑』은 들었었다. 하지만 조윤석의 감성이 유희열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떤날 2집이나 동물원 4집을 들었을 때의 느낌. 어떤 어울리지 못하는 '세련됨'의 이질감을 느꼈었다. '이렇게 멀어져가는구나'하고 생각하고 한동안 그의 앨범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동안 그의 앨범을 듣지 않은 까닭은, 그에게 내가 원하는 것만 바라고 있던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너리즘을 요구하는 팬들의 가혹한 요구. 그의 시도가, 결과가 어떻게 되던간에, 최소한 지지는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달엔 그의 노래를 들어봐야겠다. 얼마나 슬픈지, 혹은 '얼마나 사랑스런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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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Lucid Fall) 정규 4집 - 레미제라블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9년 12월
14,900원 → 11,900원(20%할인) / 마일리지 120원(1% 적립)
2009년 12월 12일에 저장
절판
루시드폴 1집
루시드 폴 노래 / 드림비트 / 2001년 4월
13,000원 → 10,400원(20%할인) / 마일리지 110원(1% 적립)
2009년 12월 12일에 저장
품절
미선이 1.5집 - Drifting Again
미선이 노래 / 드림비트 / 2001년 4월
13,000원 → 10,400원(20%할인) / 마일리지 110원(1% 적립)
2009년 12월 12일에 저장
절판
버스, 정류장 O.S.T.
루시드 폴 (Lucid Fall) 작곡 / 드림비트 / 2002년 2월
12,500원 → 10,400원(17%할인) / 마일리지 110원(1% 적립)
2009년 12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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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 - 김훈 기행산문집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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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과 상처』는 김훈이 처음 출판한 책이다. 그 때는 '기자'라는 밥벌이가 있었던 시절이라, 지금과 같은 생존의 조건을 우선으로 한 글쓰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김훈과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란 '타락'의 반대말이 아닌, 밥벌이라는 노동이 제외된 어떤 '유희'의 의미를 뜻한다. 하지만 김훈이 괜히 김훈인가? 그는 유희보다는 그의 치열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일반적인 독자라면 첫 장부터 그가 풀어놓는 사유의 지난함에 기가 질릴 것이다. 그는 지금껏 그의 몸 속에 담아온 생각들을 끝을 보기라도 할 작정으로 끝까지 나아간다. 그는 그러한 과정을 자신의 내면에 새겨진 '상처'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의 풍경은 단지 경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여러 지방의 모습들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고, 그가 읽어온 시(詩)이기도 하고, 그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즉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마치 풍경을 보듯이 관찰한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모질게. 그가 바라본 풍경들은 후에 다시 꺼내는 이야기이거나, 혹은 이번에 이야기 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내용들로 마구 뒤섞여 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품어온 사유를 쏟아내고 싶은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가 써온 '기사'처럼 한정된 공간에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닌, 오래 남을 수 있는 '책'이라는 공간에. 

   올해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 김훈은 '이제 이런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그의 글에서 이런 긴 템포의 지난한 사유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독자로서는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는 매너리즘에 갇힌 작가에 대한 욕망과, 늘 새로워지고 싶어하는 작가의 욕망은 서로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나아감은 응원하고 격려할 일이기도 하나,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이제야 지난하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 겨우 그의 글의 시원에 도착했다. 시원의 김훈은 혼란스럽고 치열했다. 그의 글은 하류로 흘러갈수록 혼란함을 걷고 더욱 치열해졌다. 김훈이라는 거대한 강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 처음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풍경과 상처』가 그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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