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시티 - Sin Cit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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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란 무엇일까?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프랭크 밀러가 공동 감독한 『씬 시티』를 보면서 이런 근원적인 생각까지 거슬러 오른 것은 괜한 지적 허영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영화는 '누더기 예술'이다. 일단 영화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매채다. 일단, (오페라와 연극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필요하고 음악과 미술이 필요하다. 영화가 예술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발명품'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는 이 '발명품'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벌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예술이 아닌, 발명품이자 구경거리고 돈벌이인 태생을 지녔다. 

   그런 영화가 예술적 지위를 얻은 것은 영화가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 내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정성일 평론가는 그런 순간을 "Cinematic Magic"이라 했다. 영화사에서 이런 마법같은 순간은 자연 현상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경우가 많았다. 즉 영화라는 매채가 아무리 누더기같이 이것 저것을 기워 붙인다 하더라도 그 누더기조각들은 진짜 배우들의 연기를 진짜 공간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씬 시티』는 대부분 그린&블루 스크린에서 촬영했다. 이 영화의 공간은 CG로 만들어진 공간이고 진짜는 배우뿐이다. 문제는 그 실제 배우들조차 각자 따로 연기를 한 것을 붙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순 연극같은 무대, 아니 텅빈 공간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상대역을 마치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한데 모은 이 영화는 어쩌면 새로운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눈속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씬 시티』는 좀 심했다. 이 영화는 누더기 조차도 가짜로 가득 차있는 셈이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난 형식적인 면에선 보수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인가 보다..)

   이것을 영화라 불러야 할지 다른 이름을 붙여야할지는 모르겠다. 카메라로 '담은' 것과 카메라에 '그린' 것은 그 질감이 다르니까. 하지만 이것도 영화가 21세기를 견디어내고 통과해 나가는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때문에 형식적인 면에서 『씬 시티』를 평가하기엔 너무 이른감이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내게 매혹적인 이유는 프랭크 밀러가 창조한 인물들을 실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밀러의 『씬 시티』연작들은 '쌈마이'적인 정서가 물씬 흐르지만 각 인물들의 고뇌하는 독백은 고혹적이다 못해 아름답기까지하다. 거의 시에 가까운 수준인데,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이 '시'들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각 파트의 주인공 롤을 맡은, 조쉬 하트넷, 미키 루크, 클라이브 오웬, 브루스 윌리스, 이들은 모두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It's a lousy room in a lousy part of a lousy town.  
   
   
  She smells like angels ought to smell.  
   
   
 

"Ask yourself if that corpse of a slut is worth dying for."

"Worth dying for. Worth killing for. Worth going to hell for. Amen."

 
   
   
  The young girl lives. The old man dies. Fair trade.  
   

   이와 같은 대사들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들었을 때 더 큰 감흥을 느낀다. 그러니 영화 『씬 시티』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영화와 그래픽 노블 두 매채를 같이 감상해야 한다. 한번은 눈으로 다른 한번은 멋진 배우들이 낭독하는 것을 귀로.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의 자막은 문학성 있는 대사를 모조리 뭉개놓았다. 이 대사를 제대로 된 번역으로 감상하려면 세미콜론에서 나온 『씬 시티』번역본을 구해야한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바벨탑을 지었던 먼 옛날의 조상들을 원망하곤 하지만... 

 

*덧붙임 

브리트니 머피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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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담론을 경멸한다는 문필가 겸 <시사저널> 편집국장 김훈의 생각   

 

이야기가 새버렸다.  

이번 쾌도난담의 방향은 그게 아니었는데, 좀 엉뚱하게 흘렀다. 색다른 게스트. 최근 여행산문집 <자전거 여행>을 펴낸 문필가 김훈(52)씨가 그 주인공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전혀 색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현재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편집인 겸 편집국장이라는 사실이다. <한겨레21>의 동종업계 종사자, 과장해서 말하면 ‘적장’을 초대하는 일이 일종의 터부로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흔쾌히 응했다.  

“한겨레를 씹어 돌려 달라.” 사실 이게 목적이었다. 그동안 쾌도난담에서 지겹게 <조선일보>를 조롱해왔는데, 한겨레의 들보도 좀 들여다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마치 ‘사상검증’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여자는 식물 같은 풍경이다  

최보은: 일요신문사에서 경영간섭이나 지면간섭은 안 하나요?  

김훈: 그러면 그 순간에 아작이 나는 거지. 난 맘에 안 들면 회사를 떠나는 데 5분 걸려. 그냥 가는 거야. 5분 이내에. (웃음)  

김훈 국장은 70∼80년대에 ‘문재’를 떨쳤던 신문기자로 유명하다.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김훈의 문학기행’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의 기사엔 독특한 향기가 있다. 89년 12월, 17년간의 <한국일보> 생활을 청산했던 그는 <시사저널>과 <국민일보>를 돌아 <한국일보> 편집위원으로 다시 얼마간 재직하다가, 몇개월 전 또다시 <시사저널>로 돌아왔다. <자전거 여행>은 그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여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김훈의 우리땅 자전거 답사’를 묶은 것이다.  

김훈: 자전거를 타고 판문점으로 해서 개성-신의주-개마고원으로 가려고 공작을 하고 있는데 잘될지 모르겠어. 위원장님이 날 오라고 하면 좀 되는데…. 여기서 세 시간이면 개성 가거든.  

최보은: 제가 감량을 할테니까 김훈 선배 자전거 뒤에 타고….  

김훈: 뚱보는 안 태워. (웃음) 남남북녀라는데 북한 여자 태우고 다녀야지, 뭐하러 남조선 여자를 거기까지 태우고 가.  

최보은: 자전거 시가가….  

김훈: 내건 젤 좋은 거야. 자동차보다 더 좋아.  

최보은: 얼만데.  

김훈: 말하면 안 되는데… 전에 쓰던 게 500만원짜리고, 그게 다 망가져서 더 좋은 걸 샀어. 로키마운틴이라는 데서 나온 건데 정말 뛰어난 자전거야(참고로 그는 승용차를 몰 줄 모른다. 아직도 컴퓨터 대신 원고지를 고집하기까지 한다. 기계엔 꽝이라는 그는 평생 카메라 셔터 한번 눌러본 적이 없고 비디오도 잘 조작할 줄 모른다).  

최보은: 여성 팬들이 많기로 사계에 소문이….  

김훈: 여자는 예쁘잖아. 근데 내가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건 산에 가서 나무나 풀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거하고 하등 차이가 없어. 풍경으로서 아름다운 거지.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믿어줘.  

최보은: 단도직입적으로 “안 선다” 이거죠. (웃음)  

김훈: 수많은 여자들한테 “아름답다.” 그래도 잠자는 건 좋아하지 않아.  

최보은: 절대 여관까지는 안 간다?  

김훈: 아니 뭐 꼭 그런… (웃음) 난 여관엔 안 가지만 여관에 가는 놈보다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걸 장려하는 것도 아니지만.  

김규항: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잠시 불륜 드라마의 윤리 논쟁 공청회에 참여했던 김훈 국장의 에피소드가 나온 뒤)  

김훈: 불륜 치정의 문제는 일부일처제가 급속히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여관에 가서 했냐 안 했냐 따지는 것은 치사한 얘기다 이거지.  

최보은: 불륜을 권장한다?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져라? 남편을 버려라? (웃음)  

김훈: 인류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일부일처제를 타도하는 거라고. 이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제도야. 이걸 타도하는 것은 마르크스 혁명보다 백배 어려운 거야.  

김규항: (한참 멍하니 있다가) 제 생각이랑 똑같군요. 백배까진 아니지만. (웃음)  

김훈: 만배 어려워. (웃음)  

 

남성은 여성보다 절대 우월하다?  

김규항: 일부일처제라는 게 실은 출발부터 일부일처제가 아니었죠. 남자한테는 외도나 매춘이라는 보조 장치가 허용돼 있었으니까.  

김훈: 요새 여자들 보니까 그렇지도 않던데.  

(일부일처제가 무너지면 주민등록 정리 등 관(官)이 할 일이 많아질 거라는 등의 이야기가 한참 오고간 뒤)  

최보은: 대학원 졸업한 딸을 두신 걸로 아는데 페미니즘 기질은 없나요?  

김훈: 우리 딸? 그런 못된 사조에 물들지 않았어요.  

최보은: 어쩌다 김훈 선배는 그런 못된 사조에 물드셨어요. 마초…. <시사저널>엔 여기자들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세요? 페미니즘 같은 것에 물들지 말라?  

김훈: 걔들은 가부장적인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것 같더라고.  

최보은: 네? (웃음) 이런 말 기사화해도 상관없으세요?  

김훈: 괜찮아. 아무 상관없어. (웃음)  

김규항: 근데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김훈: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웃음)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김규항: 최 선배 열받네.  

최보은: 지금 반어법이에요? 진심이에요?  

김훈;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최보은: 그런 이야기하면 <시사저널> 부수 떨어져요.  

김훈: 괜찮아. 이제 떨어질 것도 없어. (웃음)  

김규항: 후천적인 노력이 아닌 선천적인 요인으로 사람을 나누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얘기는 백인이 흑인보다, 독일인이 유대인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인종차별하고 다를 게 없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보는 게 근대적 사고방식의 기본 아닌가요?  

김훈: 인종 사이의 혐오감이란 어쩔 수가 없는 거지.  

김규항: 혐오는 단지 서로간에 다르다는 건데. 이건 “어떤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나치가 아리안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말하는… 근데 선생님께서 여성에 대해 말씀하는 건 그거와 결국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김훈: 난 정돈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거든.  

김규항: 선생님 말씀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더라도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는 얘기가 가능하더라도 남자보다 훨씬 더 뛰어난 여자도 있을 수 있고, 여자보다 못한 남자도 많고….  

김훈: 그건 그렇지.   

국장의 당당한 ‘편견’은 계속됐다.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고 나의 편견을 끝까지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잘 쓴 글이라는 건 자기의 많은 편견과 아집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게 김훈 국장의 생각이었다. 그의 인종론은 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로까지 적용됐다.  

김훈: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기자라는 게 절대 우수한 집단이 아니라고. 우수한 인종집단은 검찰이나 안기부나 재경원이나 정보통신부에 다 있다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해. 오래 겪어보니까 그래.  

최보은: 그건 자리가 사람을 우수하게 만든 거잖아요.  

김훈: 아니야. 종자가 우수해. 진짜야. 기자는 2류나 3류 정도겠지. 기자 새끼들 무관의 제왕이니 사회의 목탁이니 뭐니 개소리 하면서 50년 허송세월한 거야.  

최보은: 기자라는 집단은 원천적으로 어떻게 돼야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칼이 펜보다 강하다  

김훈: 이걸 알아야 돼. 칼이 펜보다 강한 거야.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기를 평생 해가지고 이 모양이 된 거지. 세상에 펜이 어떻게 칼보다 강할 수 있어. 칼 쥔 놈들은 칼이 강하다고 말 안 해. 왜냐면 본래 강하니까.  

김규항: 선생님 말씀처럼 국정원이나 국방부에 똘똘한 인재들이 많지요. 또 그럴 필요가 있고.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하셨는데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나라도 나라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나쁜 나라일 때, 나쁜 나라여서 선생님 같은 개인에게도 불합리한 구조가 사회전반에 영향을 끼칠 때, 그런 우수한 인력들이 전두환이나 김영삼 같은 권력자에게 사용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가치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일테면 펜이 칼보다 더 강해서 사회구성원에게 훨씬 더 유리한 시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시죠?  

김훈: 전두환, 노태우 때도 유능한 인재들이 다 들어갔어요. 일본도 그래요. 법무성 관리들이 엘리트지, 기자가 엘리트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야.  

최보은: 현실적으로 기자들에게 많은 권력이 주어지는데 책임의식이나 윤리가 요구되지 않을까요?  

김훈: 기자의 가장 큰 악덕은 게으른 거예요. 일 안 하고, 말 안 듣고, 데스크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런 게 비윤리적인 거지.  

최보은: 김훈 선배가 그런 기자 아니었어요? 말 안 듣는 기자?  

김훈: 나는 말을 무지 안 들었어. (웃음)  

최보은: 저는 쾌도난담을 하면서 담당기자한테 ‘언론탄압’을 많이 받아 짜증나는데 (웃음) 김훈 선배는 우리나라 언론자유가 어느 정도라고 봐요?  

김훈: 우리나라는요, 언론이 탄압을 받아서 문제가 생기는 건 절대 아니고, 그 반대야. 너무 붙어먹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언론의 자유? 말도 안 돼. 내가 엠네스티 언론인위원회 위원장이거든. 그 발족식에 가서 내가 물었어. 언론인위원회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그러니까 기자들이 보도에 관해 박해받을 때 연대해서 정권과 싸우는 게 목적 중 하나라는 거야. 너희들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어. 누가 박해를 받아. 그때 밀가루 파동 나서 박해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고. (웃음) 문제는 붙어먹어 생긴 거야.  

김규항: 그런데 왜 위원장을 하셨죠?  

김훈: 자꾸 하라 해서 했는데. (웃음)  

김규항: 무슨 부탁을 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십니까?  

김훈: 아니, 거절할 수도 있는데… 그냥 어떻게… 이제 관둘래. (웃음)  

국장은 80년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한국기자협회 <한국일보> 지회 부회장이었다. 당시 계엄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협 지도부로부터 1번 타자로 파업을 치고 나가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협 지도부 선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고 나면 동료들이 한명씩 끌려가는 판에 파업을 절대 지휘할 수 없다. 신문은 정상제작한다. 당신들은 감방으로 가시오.”  

그는 당시 신군부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자신이 모조리 작성했다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그러면서 자신이 죄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다분히 위악적으로 느껴졌다.  

 

<한겨레>의 죄악  

김훈: <한겨레>를 보면 문화면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초창기는 이념 편향적이었잖아. 그땐 정말 한심했다고. 그땐 민중주의를 전파하고 그랬잖아. <한겨레>는 민중적인 가치의 고귀함과 천민근성의 더러움을 구별 못했어. 이 대목 그대로 써줘. 모든 민중을 천민화해가는 것, 그게 얼마나 죄악인 줄 몰랐던 것 같더라고. 모든 민중을 고귀하게 만드는 게 민중주의지, 다 똑같이 수드라를 만드는 것은 민중이 아니잖아. 그런 점에서 난 민중이 아니에요. 나는 절대 민중인 적도 없었고, 나는 지식인이고 엘리트거든.  

최보은: 보수화되었다는 이야기인가요?  

김훈: 잘 보수화된 것 같아. (웃음) <한겨레> 초창기에 무슨 농촌에 있는 “미군들 물러나라” 벽보 써붙인 것, 죽창 그런 것… 그걸 민중예술이니 뭐니 해서… 그걸 예술이라고.  

최보은: 그게 문화의 발상일 수 있죠. 모든 문화는 처음엔 촌스러운 거 아닌가요. 나중에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면 그게 예술이 될 수 있는 거고. 세련되고 귀족적이고 완성된 그림만이 그림은 아니잖아요.  

김규항: 농촌의 벽화를 말씀하셨는데, 그들한테는 사실 선생님이 말하는 차원의 예술 감상 기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런 벽화를 보는 일은 중산층이 화랑에 가서 미술작품을 보는 일과 다를 게 없지요. 그게 무슨 차별이 있나요?  

김훈: 그러면 온 백성이 천민이 되는 거야. 천민…. 농촌에 사는 가난한 무지렁이들이 벽에다 고호나 세잔을 걸어놓아도 되는 거야. 거기다 죽창을 걸 필요는 없다는 거야.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죽창 그림이라는 것은 지겨워서 들여다보고 있을 수 없어. 죽창 판화를 누가 집에다 걸어놔. 구로공단 노동자들 가보라고. 걔들이 김남조나 황동규 시를 읽지, 박노해 시를 읽는 게 아냐.  

최보은: 그럼 뒤샹의 변기를 걸어놓은 것은… 그건 안 지겹나요?  

김훈: 뭐가?  

최보은: 변기를 걸어놓고 샘이라고 했을 때 그것도 천민예술인가요? 어떤 것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시대와 어떤 코드를 만들어낼 때 그것이 문화가 되는 게 아닐까요?  

김훈: 사회적 산물이지.  

최보은: 그런데 왜 먼 나라의 변기는 예술이 되고, 우리나라의 죽창은 예술이 될 수 없나요.  

김훈: 죽창을 예술화하지 못했잖아.  

최보은: 그건 누구의 판단인가요? 그걸 분명히 즐기고 사진 찍고 예술이라고 이름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시사저널> 지면에서 오늘 하신 주장을 김훈 선배가 글로서 한번도 하는 걸 못 봤어요. 예를 들어 인간은 불평등하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또는 민중예술에 대한 생각….  

김훈: 인간은 불평등한 것이 맞잖아.  

최보은: 그럼 왜 주장하지 않으세요?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분이 왜 주장을 안 하세요.  

김훈: 난 평등사회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저널리스틱한 글로서 그런 주장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그런 자기모순 속에서 사는 게 내 삶이라고 생각해.  

최보은: 언론인으로서 기본적인 철학은 반드시 필요한 거 아닌가요?  

김훈: 나는 상식적인 거야. 약한 놈의 걸 뜯어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상식이지. 언론인은 거대담론을 하면 안 돼. 나는 그런 새끼들 가장 경멸하고 증오한다고. 한겨레에도 거대담론하는 놈들 많을 거야. 거의 대부분 일거야.  

 

거대담론은 다 오류야  

최보은: 거의 대부분은 아니에요.  

김훈: 한겨레 기자들은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라. 제발.  

최보은: 일상에서 출발하라는 얘기죠?  

김훈: 거대담론, 가치판단, 선악, 정오… 이런 거 매일매일 판단하잖아. 이것도 시건방진 수작이고. 일단 ‘존재’를 판단해야 해. 이것이 옳느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전에 “이것은 무엇이냐”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고. What is this! 존재판단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가치판단을 유보해야 하고… 무엇보다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야 해.  

최보은: “거대담론을 하면 안 돼”라는 논리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해요. 거대담론을 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거대담론이란 건 커다란 철학 아니겠어요?  

김훈: 그건 다 오류야. “이 시대는 총체적으로 가고 있는가” 따위의 소리들… 이런 걸 쓰지 말라고. 

김규항: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 거대담론의 천박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인정과 세상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보는 거대담론 자체에 대한 회의는 전혀 다른 겁니다. 가령 저는 제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봅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천상 사회주의자예요. 이타적이고, 욕심도 없고, 경쟁도 싫어하고…. 근데 사회 문제에 대해선 이상하게도 보수적이죠. 저는 그런 괴리가 시스템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가질 때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될 겁니다. 인간의 내면을 얘기하는 일과 거대담론을 말하는 건 둘 다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현재 실재하는 거대담론의 가치를 따지는 일이죠.  

최보은: 그러니까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게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김규항: 저는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 현상으로 본질을 규정하는 일관된 이중성을 발견합니다. 선생님은 세상은 원래 그런 거고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세계관에 대해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일단 하나의 입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아지는 노력에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개인의 취향이나 세계관과, 그런 노력이 전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김훈: 그렇죠.  

김규항: 선생님이 거대담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치를 떠는 건 선생님의 문제지만, 중세가 근대사회가 되듯 사회 시스템이 변하는 건 역시 그런 식의 생각과 노력에 의해서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변화된 세상은 분명 이전보다 낫고 선생님 역시 그 혜택 속에 사는 건데 말입니다.  

김훈: 하여간 난 안 할거야. 동참하고 싶지 않아.  

김규항: 몇 시간의 대화로 그런 세계관의 합의를 이루거나 기대할 수는 없겠죠.  

 

통일… 재벌, 그리고 <조선일보>  

화기애애하게 출발했던 오늘의 쾌도난담은 이 대목을 고비로 약간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잦아들고 최보은과 김규항의 안색이 딱딱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김훈 국장이 거침없이 내뱉은 다음과 같은 어록 때문이다. 언쟁은 치열했지만 지면 사정상 그의 이야기만 들어보자.  

“나도 관념적으로는 통일을 바래. 하지만 피부가 아프게 몸을 상해가면서 통일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야. 통일을 바라지 않아. 못살 게 뻔한데… 이대로 사는 게 좋다고. 어느 놈이 통일을 바래. 대통령밖에 없다고. (웃음)”  

“(재벌이 아들한테 회사 물려주는 거) 그거 한심하지만 불가피한 거라고. 나도 내집 아들한테 물려줄 판인데….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선할려면 재벌이 자본을 인간화해 리더십을 보강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재벌이 무너지면 우리가 무너져. 노동자들이 무슨 연대를 해.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제일 보수주의잖아. 무슨 신기술 도입하면 저항하고 구조조정에 저항하고… 노동자들이 제일 보수적이고 재벌 리더들이 가장 진보적이라고. 지금 여러분은 반대로 생각하겠지. 저는 여러분과 반대로 생각해.”  

“나는 <조선일보>를 아주 좋아해서 평생을 보는데, 가장 우수한 신문이더만. <조선일보> 사설 같은 걸 보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소름이 쪽쪽 끼친다고. 우리 기자들보고 이것 좀 보고 배우라고 하지. 근래 들어 정권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게 <조선일보> 아니야?” (웃음)  

김규항: 오늘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됐습니다.  

최보은: 김훈 국장님의 생각은 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김규항: 김훈 국장님도….  

김훈: 김훈, 너 집에 가라. (웃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김훈 국장의 사퇴를 보며 

 

참으로 난처한 심정입니다. 지난 <한겨레21> 제327호 쾌도난담 게스트로 초청됐던 <시사저널> 김훈 편집국장이 사표를 썼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입니다. 그 글이 나간 뒤 김 국장을 향한 안팎의 비난이 들끓었고, 그는 결국 지난 7일 사직서를 내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기획이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진 데 대해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거기에다 김 국장은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도 친밀하게 지내온 사이이기에 곤혹스러운 심정은 더 합니다.  

일요일인 8일 밤 늦게 김 국장의 일산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가 넘게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일성은 “나는 전혀 괜찮아. 이번 문제로 상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위무하러 갔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은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태로 <시사저널> 내부도 매우 뒤숭숭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적장을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뜨려서 경쟁지를 혼란에 빠지게 한 술책’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쾌도난담에 김 국장을 게스트로 초청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그것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나올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경쟁지에 등장하는 것이 우리의 언론관행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그를 <한겨레21>에 등장시키는 것은 매력적인 기획이었습니다. 경쟁하는 잡지들끼리 서로 넘나드는 것 자체가 <한겨레21>이나 <시사저널>, 나아가서 최근 침체에 빠진 시사주간지 시장의 활력요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이날 밤 술자리에서 김 국장과 저는 이 세상의 모순,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 선과 악이 혼돈된 시대의 문제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글로 표현되는, 그것도 대화에서 토막토막난 말들은 진심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몇 마디 표현들이 한 인간의 사고 전체를 모두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김 국장 자신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로 나온 것을 보니까 내가 봐도 과격하더구만.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없는 발언이야.”  

그는 신군부 등장 시절 ‘용비어천가’를 쓴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은 데 대해 “나의 잘못을 제대로 질타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 부재를 이야기하려는 것”, ‘반통일 의혹’에 대해서는 “반통일적이던 사람들이 통일세력으로 바뀌는 시대 속에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과 악이 혼돈되고 전도되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나로서는 거대담론을 도저히 말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그를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쾌도난담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진심이 어렴풋이 이해가 됐지만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천적 남녀불평등론’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건 나의 어쩔 수 없는 어떤 심정적 무의식이야. 그것을 전달했을 뿐이지. 우월한 자의 도덕이라는 게 있어. 여성을 힘들게 하지 않고 고생시키지 않고…. 사실은 열등하고 싶어. 그런데 문명이 그렇게 강요해. 그러나 공인으로서 나는 잡지를 만들 때 여성문제나 페미니즘 기사 등에 대해 결코 그런 무의식을 따르지는 않았어.”  

김 국장의 여러 주장과 심경토로에는 충분히 수긍가는 대목도 있고, 때로는 저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항변은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나의 생각이 오류일 수도 있어. 동시대의 진실과 나의 오류가 충돌할지라도 개인의 진실은 보호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분명한 것은 김 국장의 솔직함만큼 저는 솔직해질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김 국장이 다시 <시사저널>에 복귀해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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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바 2010-05-1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훈을 좋아합니다. 아니, 그의 문장과 문장가로서의 능력을 존경하죠.
난담에 담긴 내용은 조금 실망이었지만 끝까지 그의 편에 서서 읽어보려고 애썼습니다.
아직도 그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를 이해하긴 힘듭니다. 제 능력으론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지만 조금 더 깊게, 우호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각의 방식>을 일깨워 주는 면도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마지막 그의 대답에서 결론은 보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확히 우리는 '우리편'으로서의 김훈을 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오류가 충돌할 지라도 개인의 진실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란 말엔 동감입니다. 적어도 그는 둘러대거나 자신의 뜻을 숨기지는 않았으니까요. 어젠가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그로부터 듣고 싶긴 하지만 당장은 그걸로 족합니다. 쾌도난담의 틀을 이해합니다. 더군다나 주제가 "한겨레를 씹어 돌려 달라"는 요구였으므로 더더욱 그러합니다.
호기심을 부풀게 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올려준 분께 감사합니다.

Seong 2010-05-16 11:05   좋아요 0 | URL
저도 김훈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치욕을 에둘러 피하지 않고 그대로 감내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남한산성』과 『공무도하』의 인물들에 더 뭉클해지지요.
 
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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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영하 작가의 『빛의 제국』이라는 제목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에서 차용했다. 이것은 뭐 굉장한 비밀이 아니다. 책 표지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실려 있으니까. 그리고 소설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면 윗부분은 환한 낮인데 아래 부분은 어두운 밤이다. 그가 그린 세계는 밤과 낮이 공존하는 기이한 세계다. 하지만 언뜻보면 그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정도로 잘 어울려 있다. 김영하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준다. 『빛의 제국』은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기이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형식적인 면에서 『빛의 제국』은 굉장히 발랄하다. 목차를 훓어보면 작가가 어떤 형식을 취했는지 감이 딱 온다. 오전 7시에 시작해서 그다음날 오전 7시에 끝난다는 설정은 리얼타임 드라마를 표방하는 『24』에서 차용했(을 것 같)다. 얼핏 지루할 수 있을법한 내용을 한시간대로 끊어 놓아 독자들의 긴장을 쉽게 풀 수 없게 만들었다. (실제로 24장으로 나뉘지는 않았다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7시 사이는 오전 3시와 5시로만 나뉘었다. 특정 시간대가 비는 것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형식적인 함정에 빠지지 않은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소설이지 드라마가 아니니까.) 그리고 커다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 등장인물들의 과거사가 나와서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방식은 역시『Lost』에서 차용한 게 아닌가 싶다.(물론 이런 플래시백은 예전부터 소설에 있어왔지만, 『24』때문인지 자꾸 각 장별로 이야기를 끊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Lost』를 언급해봤다.) 김영하는 정말 그의 말대로 모든 매체와 겨루는 소설을 쓴 것이다. 

   소설은 팔리지 않는 영화를 수입하는 '남파간첩' 기영, 그의 아내 마리, 그들의 딸 현미 그리고 기영을 쫓는 박철수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기영은 남파간첩이었으나 북에서 그의 존재를 잊어버려 근 10여년간 아무 일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북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21년간 북에서 지내왔고 21년간 남에서 살아온 기영은 당의 명령을 따라야할지 자수를 해야할지 고민한다. 그를 감시하고 있던 박철수는 기영과 그의 아내 마리를 감시한다. 마리는 젊은 애인 성욱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성욱의 친구인 '판다'와 셋이서 모텔에 들어가 난교를 벌인다. 딸 혜미는 평소 맘에 들어했던 친구 진국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진국의 집에 간다. 폭풍같은 하루가 마무리되는 밤, 기영과 마리는 서로 그들만의 비밀을 폭로하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헤어진다. 그리고... 

   소설의 큰 축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남파간첩인 김기영이지만, 작가는 마리, 현미, 박철수에게도 거의 동일하게 이야기를 배분했다. 북의 체제에 생애 절반을 살아왔고, 남의 체제에 생애 절반을 살아온 기영. 그는 그의 비밀을 숨기고 살아왔다. 열심히 살아가고 배가 나온 중년이자 평범한 아버지. 하지만 그 자신은 분열증적인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것은 기영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 마리 역시 분열증적인 삶을 살아왔다. 정숙한 엄마이자 커리어 우먼인 그녀는 불륜인 그녀의 애인 상욱과 그의 친구와 함께 난교를 벌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지금껏 결정한 선택들이 지금 자신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 기영의 고백으로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이 오늘 겪은 일을 얘기하고 남편을 버린다. 그것 또한 그녀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내일의 그녀를 만들어 갈 것이다. 

   현미 역시 자신이 은근 좋아하는 진국의 집에 가기 위해 그녀의 단짝 친구 아영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한다. 현미는 그런 짓이 딱히 죄는 아니지만, 왠지 모를 꺼림찍함을 느낀다. 상대방을 상처주지 않지만, 남모르는 비밀을 숨기고 사는 것. 그리고 그 비밀이 까발려졌을 때, 내심 모른척하며 서둘러 봉합한 채 살아가는 것. 그게 어른들의 세계다. 현미의 부모인 기영과 마리가 살아가는 세계다. 그리고 현미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다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돌아가서. 낮과 밤이 공존하는 기이한 세계. 위 하늘은 자연광이 비치지만, 아래 집에는 인공빛으로 밝히고 있다. 밤을 낮으로 만들려는 인간들의 노력은 얼마나 가상한가. 하지만 그 만들어진 빛은 자연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가. 인공의 빛으로 어둠을 밝힐 수 있을까. 왜 하늘의 빛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까지는 들어오지 못하는 걸까. 인간은 온전한 빛으로 살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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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과 세상 - 김훈의 詩이야기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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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

 
   

 

   책을 펼치면 에피그마 같은 이 문구에 멈춰버리고 만다. 이 단한마디의 '촌철'로 김훈은 독자들을 '살인'한다. 이 한마디 말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고 난감하다. 긍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딱히 반론을 내세우기도 힘들다. 김훈의 저 말은 중년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지만, 중년을 향해가는 이 챗바퀴같은 일상을 경험하는 사람들 또한 아마도 중년의 삶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내 곧 수긍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김훈은 경험하지 않고서는 '감히' 말 할 수 없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뜻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글'을 쓴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은 김훈의 글이 처음으로 '묶인' 책이다.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듯 기자 시절 '밥을 벌기 위해' 쓴 글이다. 본인 스스로 자부하는 글도 있지만, 기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본인 말에 의하면 '이 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짜내듯 쓴 글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개정판인데 원책에 있던 '시'에 관한 글만 모아서 다시 엮은 책이라 한다. 물론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다시 찍어낼지, 그대로 절판할지는 모르겠으나, '김훈'이라는 네임밸류를 쉽게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대개가 신문 '기사'로 쓰여졌기 때문에, 『풍경과 상처』나 『자전거 여행』과 같이 하나의 대상을 끝까지 파고드는 '사유의 집요함'은 없다. 대신 '친절하게' 그가 읽은 시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글의 리듬도 느릿하지 않고 적당하게 흘러간다. 다른 책들에 비해선 좀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시를 읽을 때 지역과 대상을 구분하고 그에 맞는 시를 소개하는 것은 참신했다. 해당 지역을 취재하고 그곳을 노래한 시를 소개하는 방식은 후에 그가 기행산문집을 써내려간 방식과 흡사하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광주와 무등산을 노래한 시를 소개하고, 그 시에서 역사와 고통을 이야기 하는 모습은 문학과 인간, 삶과 역사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로도 보인다. 전에 리뷰에서 『풍경과 상처』야 말로 김훈 글쓰기의 시원(始原)이라 했었는데, 그 말을 취소해야겠다. 이 책이야말로 김훈 글쓰기의 시원이다. 

   이전까지 '시'라는 것에 관심이 없던 사람을 시집을 펼치게 할 정도로 독서의 적극성을 실천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김훈의 이 책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 하루빨리 이 책의 개정판, 아니 완전판이 나오길 기대한다. 

 

 

*덧붙임 

개정판은 원래의 책에서 '시'에 관한 부분만 추려냈다고 합니다. 옆동네 책읽는 낭만푸우님의 블로그에 보니 초판에는 시뿐 아니라 소설에 관한 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 본인은 숨기고 버리고 싶은 글일지도 모르겠으나, 독자는 그가 메모장에 써갈긴 글자 하나라도 읽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완전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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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30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 Tokyo Godfather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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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1. 조금 아쉬운 제목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원제는 『동경대부(東京代父)』이다. 영어 제목도 『Tokyo Godfathers』로 원제를 충실히 따랐으나,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는 제목 선정에 상당히 고민했을 것이다. 원제인『동경대부』를 따르자니 뭔가 모를 조폭영화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란 제목은 상당히 잘 지은 제목이다. '크리스마스'와 '기적'이라는 평범한 우리들이 크리스마스에 꿈꾸는 저 두 단어를 제목에 넣은 것은, 그만큼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점은 저 제목때문에, 이 영화의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하루'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정확히 12월 24일 저녁에 시작해서 1월 1일에 오후에 끝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라는 종교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12월 말,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2. 곤 사토시 

   감독인 곤 사토시는 지금까지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파프리카』 이렇게 4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이 기가막히게 뒤섞여 있지만, 기존의 저패니메이션과는 좀 떨어진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화와 편집의 리듬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내는 가공품이 아닌, 수공품이다. 곤 사토시는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등과 같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 한 또 하나의 사례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다른 세편과는 달리 '환상'이라는 요소가 부족하지만, 그에 걸맞는 연속된 '우연'이 크리스마스에 허용되는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사연을 가진 노숙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와 편집은 그의 작품을 다른 저패니메이션과는 달리 독특한 위치에 서게 한다.   

 

3. 아기 예수의 탄생일에 시작된 기적 

   영화는 알콜중독자인 긴, 드랙퀸 하나, 가출소녀 미유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장에서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주기로 하고 아이의 부모를 찾아 나선다. 그 와중에 야쿠자, 이민자 살인 청부업자, 폭력적인 십대들과 긴, 하나, 미유키의 가족들이 서로 얽히게 된다. 12월 31일 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주지만, 실은 그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닌, 아이를 유괴하고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나타난 이 '기적'과도 같은 아이, 그리고 이 아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긴, 하나, 미유키는 각자의 인생을 복기한다. 자신들이 어째서 노숙자로 살고 있는지, 얼마나 인생을 후회하는지 조근조근 드러낸다. 후회하고 다시 돌이가고 싶지만, 자신들을 원망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미안해 그들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만난 이 '기적' 덕분에 그들은 가족을 만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4. 실현된 기적을 맞이한 새해 

   어쩌면 사람들이 겪는 불화는 아주 조그마한 것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그 상처나 섭섭함의 크기가 커서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지나고 보면 세월의 풍화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는 그 불화의 간극을 메우지 않고 지낸다.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간다면 그런 불화들은 다 봉합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처럼.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이 작은 소동은 '기적'을 낳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 너무 뻔한 결말인가? 크리스마스에는 한번쯤 용서해주자. 

 

 

 

5. 덧붙임 

- 곤 사토시 감독은 '정신나간 여자/남자'를 정말로 섬뜩하게 연출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나간 캐릭터'들은 영화에 엄청난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아이가 유괴범에게 돌려졌을 때, 유괴범인 여인이 눈이 풀어진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은 정말 섬뜩합니다. 그 섬뜩함이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를 지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영화 덕분에 이제 더이상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Clockwork Orange』의 알렉스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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