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요. 2006년 5월 19일 11시 20분 49초. 잊지마요."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페어러브- The Fair Love
영화

2010년 01월 24일에 저장
ReservationButton()
사랑스런 로맨스, 혹은 뒤늦은 성장담. 소소한 웃음과 뭉클함을 주는 행복한 영화.
김신일 - Fair Love O.S.T
김신일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10년 1월
14,900원 → 11,900원(20%할인) / 마일리지 120원(1% 적립)
2010년 01월 24일에 저장
품절
영화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앨범이 영화에 전격적으로 쓰이면서 OST가 되다. 독립적으로 들어도 어디 하나 꿀리지 않는 앨범이지만, 영화의 장면을 생각해서 들으면 더 위력적으로 들리는 앨범.
페어러브- 사랑스런 로맨스
신연식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1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10년 01월 24일에 저장
품절

감독의 이야기, 배우들의 이야기, 독자의 이야기. 이렇게 세 개의 시선으로 영화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소설. 에피그마 같은 영화의 대사들은 너무나 매혹적이라 오히려 소설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기쁜 우리 젊은날 (HD텔레시네)- [할인행사]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월
5,500원 → 5,500원(0%할인) / 마일리지 60원(1% 적립)
2010년 01월 24일에 저장
품절
형만의 젊은 시절은 이러지 않았을까? 한없이 사랑에 약하고, 사랑에 울고, 사랑을 잊지 못하고 간직하고 살아가는 한없이 약한 존재. 영민(안성기)이 혜린(황신혜)을 다시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형만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을 듯. 지금봐도 전혀 낡지 않은 아름다운 청춘영화의 결정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다시 시작해요."
페어러브 - 사랑스런 로맨스
신연식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근데 사실 세계의 어떤 작품이건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가 허술해 보여요. 왜냐하면 활자는 디테일을 꼼꼼히 담아낼 수 있는데, 영화는 뭉텅뭉텅 이미지로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거꾸로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면 굉장히 지루해요. 이미지를 보며 감정을 이미 느꼈는데 활자로 일일이 그걸 묘사하고 있으니까 뻔해 보이는 거죠. 장르별 특색이라고 봐야죠."   

-공지영,「송해성, 공지영의 대담」 중에서, 『씨네21』 571호 - 

 

   "참 신기해요. 영화가 편집의 예술이라는 게. 영화는 힘들게 촬영한 장면을 버려가면서 완성을 하잖아요? 그에 반해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에 계속 덧붙이기를 하는 데 말이에요."

- 트레이시 슈발리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DVD 오디오 코멘터리 중에서  -

 

   이 책을 독립적인 작품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영화의 연장선으로 봐야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공지영 작가가 지적한 대로, 이미 영화로 본 내용을, 그래서 화려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진 그 감정을 다시 빈곤한 활자로 복습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소설을 구입한 것은, 워낙 영화가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진주 귀고리 소녀』를 쓴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저 말 때문이었다. 분명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제아무리 공들이고 돈을 들여 찍은 장면이라 하더라도, 영화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려진다. 영화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 운동성이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신연식 감독의 원래 이야기가 어땠는지가.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에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소설의 특징이라면 역시 디테일에 있지 않은가. 소설은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형만과 형만의 친구들(기혁, 윤사장, 강목사) 그리고 형만과 본의 아니게 스쳐간 여인들(종희, 영희)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형만이 왜 기혁에게 큰 돈을 빌려주었는지, 남은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았던(혹은 못했던) 부분이 고스란히 서술되어 있다. 정보나 인물의 이해 면에선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남은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다. 소설 역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라,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쉽기는 하다. 

   소설에서 작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형만, 윤사장, 강목사 이들 셋의 조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형만의 조카인 재영은 시도때도 없이 자신의 사랑 문제로 삼촌을 괴롭히고, 윤사장의 부탁으로 형만의 작업실에서 일하는 조카 재형은 주는 것 없이 밉고, 강목사의 조카인 의사는 깐족대면서 형만에게 사무적으로 형만의 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굉장히 낄낄거리면 읽었었다. 영화에선 설명할 수록 지리해지고 별 의미도 없는 부분이지만(그래서 설명이 안되었겠지만), 소설에서는 이런 작은 묘사가 잔잔한 재미를 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신연식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자신의 머리속에서 나온 원형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묘사한 인물들과 영화에서 연기한 인물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영화의 인물들은 배우들이 해석을 한 결과물들이다. 영화에서는 안성기 씨를 떨어뜨려 놓고선 형만을 생각할 수 없다. 남은 또한 마찬가지로 이하나 씨를 제한다면 생각할 수 없다. 영화에서 인물들은 신연식 감독이 만들어낸 인물들을 그들 배우들의 해석이 들어간 결과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는 이들 배우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나는 나만의 <페어러브>를 만들 수 있었다. 그게 활자의 장점이 아닌가. 

   영화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50여년을 외롭게 사랑 없이, 사랑 않고 살아온, 자기만의 세계 안에 침잠해 있는 인물이 갑자기 찾아온 사랑 때문에 어쩔줄 몰라하고 좌충우돌 벌이는 작은 소동은, 정작 본인은 괴롭겠지만, 읽는이는 재미있다. 

   결국 형만은 카메라를 들었을까? 그래서 남은이의 눈과 같은 노란 노을을 찍을 수 있었을까?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어러브』영화와 소설, 그 이야기의 원형
페어러브 - 사랑스런 로맨스
신연식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1월
품절


"너, 아저씨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난 니 아버지 친구야!"
"할 말 없으면 아빠 친구라 그러고! 아빠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속마음을 들킨 건가... 당황스러웠다.
"나... 니 아버지 좋아했어!"
"거짓말!"
"얘가 진짜......"
"아저씬 아저씨 다칠까 봐 맨날 거짓말하잖아요? 내 마음도 알고 아저씨 마음도 알면서! 아저씬 아저씨 말이 다 맞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 사람이 무슨 카메라 부품 같은 줄 아세요? 관계만 알면 고칠 수 있게!"
"너, 이녀석! 아저씨 화낸다!"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나머지 한껏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질러 보니 노인네들이 왜 가끔 그런 식으로 성질을 부리는지 알 것 같았다.-134쪽

남은이가 손을 뻗어 아직도 젖어 있는 내 옆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도 나는 얌전히 받아들였다. 남은이의 손끝이 눈가의 주름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 주름을 펴보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위아래로 어루만졌다.
"난 그냥 좋아요. 아저씨가."
남은이는 내 눈가의 주름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그보다 더 천천히 말했다.
달빛이 들어와 남은이의 뺨에 맺혔다.
두부처럼 연하고 투명한 뺨이 잘못 다루면 으깨져 버릴 것 같이 움직였다. 그래서, 나도 남은이처럼 손을 내밀어 남은이의 뺨을 어루만지고 싶었지만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그런 거 잘 몰라."
"세상일을 다 알고 해야 되는 거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죠."
나는 겁이 났다, 솔직히.
"겪어 보면 다를 거야. 사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냐."-149쪽

"내가 오십 년 넘게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았거든. 근데 세상엔 진짜 나쁜 놈들 많아. 사기 치고. 돈 떼먹고. 꼭 니 아빠를 얘기하는 건 아니고."
"무슨 말씀이세요?"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싫고, 남이 나한테 그러는 것도 싫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얘기 무슨 얘긴지 알겠니?"
"그게 지금 프러포즈 하는 거예요?"
남은이의 목소리도 눈동자도 떨렸다.
"왜? 그래도 이 얘기 하려고 이십 년 만에 백 미터 이상 달린 건데?"
남은이는 환하게 웃었다. 목도리가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는데도 환하게 웃는 게 보였다. 그래서 나도 환하게 웃었다.
남은이는 환하게 웃다가 손을 뻗어 땀에 젖은 내 뺨을 어루만졌다. 수십 년을 해매 온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남은이의 손길이 닿으니 나는 그대로 이제는 조금 제자리에서 기대어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심이 됐다. 안심이 되니 다리에 힘이 빠지고 식은땀이 쏟아졌다.-155쪽

예전에 인간문화재인 목공 장인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생 나무만 보고 나무만 만지고 살아서 지혜로워지기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는 평생 나무만 보다 보니 시야는 더 좁아지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더 넓은 걸 요구한다는 거다. 그래서 자신은 나무를 보며 자기가 보지 못하는 다른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다. 나는 그 얘기에 너무 공감이 갔다. 나야말로 평생 카메라만 만지고 살았으니. 카메라 부품만 보고 살아온 나는 이제 스물다섯 먹은 여자아이 생각까지 이해해야 한다.-198쪽

며칠 잠을 못 잤어요-
어디선가 남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정신없이 밤을 새고 과제물 제출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커튼 위로 춤을 추는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오빠 버릇 있잖아요? 얼굴 비비는 거. 너무너무 피곤할 때 하는 건지 그때 알았어요. 너무 몰랐어요, 오빠를."
나는 남은이를 보고 있지 않아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말하는지 환히 보이는 것 같았다.
"오빠가 평생 안 변할 수도 있고, 내가 변할 수도 있고, 내가 무뎌질 수도 있고, 오빠가 변할 수도 있고. 어차피 어떻게 살아도 백 프로는 아니니까."
커튼 위로 노을이 붉게 타올랐다.
"매 순간 매순간 어떤 면으로는 오십 대 오십이니까. 우리 다시 시작해요."
남은이 눈동자와 같은 노란 노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23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부지
배해성 감독, 박철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아버지. 살면서 이 단어를 입 밖에 내어 발음하여 호칭으로 쓴 일이 과연 몇번이나 있었고, 또 앞으로 몇번이나 있을까요? 적어도 제겐,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말 할 게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 "아빠"를 부른 적은 많았지만, 제 유년이 끝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 호칭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래왔습니다. '아빠'와 '아버지'의 어감의 차이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그 사이를 단숨에 건너뛰기에는 불가능한 법이지요. '아빠'란 단어는 친근감이 들고 '우리 아빠'라는 개별적인 존재로 느껴지지만, '아버지'란 단어는 왠지 권위적이고 보편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전 아직도 이 나이를 먹고도 '아빠'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남세스러워 발음은 못하고 있지만요. 

   농경사회와 유교문화의 축적으로 아버지란 존재는 가부장(家父長)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의 끼니를 책임지면서, 또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 또한 가졌습니다. '아버지'에겐 가족 구성원 전체가 중요한 것이지, 구성원 개인의 특출난 재능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유독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들과 서먹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란 '아버지'들은 '내 자식만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자식 앞에서는 그들의 '아버지'들과 똑같이 행동을 하는 악순환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실 아들이 아버지의 못된 점만 배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크로노스와 제우스 신화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런 아버지들은 어떤 존재로 보여졌을까요? 1980년대, 시(詩)에서 보여진 아버지의 모습은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 해
          그해 가을, 假面 뒤의 얼굴은 假面이었다 

                                                                                         - 이성복 「그해 가을」 중에서 -

 

(…… )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깍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에요. 

                                                                          - 기형도 「위험한 가계(家係).1969」 중에서 -

 

   90년대, 대중가요에선 위로가 필요한 이해의 대상이기도 했었고요.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 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곳에도 지금 그가 앉아 쉴자리는 없다. 이제 더이상 그를 두려워 하지 않는 아내와 다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 뿐이다. 

                                                                            -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Ⅰ」 중에서 -

 

   2000년대, 소설에서는 시대와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가부장적인 권위가 많이 줄어들어서인지, 측은함의 대상이기도 했고 철딱서니이기도 했습니다.   

   미안하구나. 

   아버진 그렇게 얘기했다. 또 그 소리. 내가 일만 한다하면 늘 같은 소리였다. 처음엔 들을 만했는데, 결국 들으나마나가 돼버린 지 오래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 즉 그것이 아버지의 산수였다. 여하튼 무슨 상사(商社)에 다녔는데, 여하튼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이었다. 딱 한 번 나는 그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중학생 때의 일인데 도시락을 갖다주는 심부름이었다. 약도가 틀렸나? 엄마가 그려준 약도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근처의 골목을 서성이고 서성였다. 간신히 찾아낸 아버지의 사무실은 - 여하튼 그곳에 있기는 한, 그런 사무실이었다. 쥐들이 다닐 것 같은 어둑한 복도와, 형광등과, 칠이 벗겨진 목조의 문. 혹시 외국(外國)인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깜짝이야, 그런 단어가 머리 속에 있었다니 넉넉한 환경은 아니어도, 제법 메탈리카 같은 걸 듣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뭔가 ESP 플라잉브이(메탈리카가 사용한 기타의 모델명)와 같은 게 아닐까, 막연한 생각을 나는 했었다. 했는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꼬박꼬박 도시락만 먹어온 얼굴의 아버지가 가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중에서 - 

 

   아버지는 그날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피임약의 복용법도 자세히 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얀 재를 뒤집어쓰고 온 아버지에게 몇알씩 먹는 게 맞는지 물었고, 아버지는 "두 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머니는 그후 몇달간 피임약을 하루 두 알씩 꼬박꼬박 챙겨먹었다고 한다. 그 몇달간 하늘이 노랗고 구역질이 나는 게 어쩐지 이상했다고. 그랬던 어머니가 약사에게 물어 피임약을 한 알로 줄이고, 양동이에 언 물을 깨뜨려 달빛으로 뒷물을 하고,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며 약 먹는 걸 까먹기도 했던 어느날. 어머니는 임신을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풀어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가, 아버지가 되기 전날 집을 나가 그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김애란 「달려라, 아비」 중에서-

  

   고작 영화 한 편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야하나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부지>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우리의 머리속에, 가슴속에 묻어놓은 추억을 자극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예고편이나 지상파 3사에서 보여주는 "스포일러"프로그램 같은 데서 이 영화를 보셨더라면, 그래서 "딱 보니 <워낭소리> 시즌 2, 영화를 가장한 드라마 시티구만"이런 생각을 가져셨던 분들이라면, 그 생각은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그런 얄팍한 기획 상품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허술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타겟은 4~50대의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전라도 시골(아마도 곡성 아니면 구례)이고, 시대는 새마을 운동을 핑계로 농민들에게 부채를 씌운 70년대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이 노을이 산에 걸치고 어둠을 맞이하는 농촌의 풍경,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 개 짓는 소리 등으로 시작하는 것,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 대신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은 명백히 영화를 보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에피소드들은 꼭 특정세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윗세대가 겪은 학교생활은 우리도 비슷하게 겪은 내용들이거나, 구전으로 전해진 내용이니까요. 영화 초반부 이런 추억의 자극은 영화의 경험을 보편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딘선가 들어왔고 접해왔던 내용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이 영화는 우리의 추억을 바탕으로 한 영화니까요. 영화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정말 그때 있었을 법한, 언젠가 할머니, 아버지, 선생님께 들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예정인 국민학교 6학년인 기수(조문국)는 친구들에게 '(책)벌레'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합니다. 기수의 식구는 아버지(전무송), 어머니(전정화), 형 기동(육세진), 그리고 나이어린 여동생(전희선)입니다. 기수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박철민)과 서울에서 새로온 선생님(박탐희)이 주최하는 연극반에 들어 연극연습을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탐탁지 않습니다. 형 기동도 밤이 되면 어디론가 나가서 꿍꿍이를 꾸미는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습니다. 농업의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억지 부채를 떠넘기고 때마다 찾아오는 조합원(봉두개)또한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동이 (농가부채해결의 경각심을 위해 갑작스레) 자살을 합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묻고 소같은 울음을 내뱉습니다. 충격으로 중지됐던 연극연습은 (형을 잃은 충격을 털어낸) 기수가 돌아옴으로써 다시 시작됩니다. 선생님은 이 연극의 내용을 실제 현실을 반영하여 고칩니다. 그리고 연극날. 이 연극이 이적물이란 신고를 들은 경찰이 아이들 배후에 있는 '빨갱이'를 잡아가기 위해 읍내에 들어옵니다.   

 



 

 

   영화는 굉장히 많은 것을 다루고 있지만, 깊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시선은 6학년생 기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아무리 지옥같은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기수와 친구들에게는 즐거운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80년대를 그렇게 보냈으니까요. 문제는 영화의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기수의 형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버지의 농가 부채의 원인은 무엇인지, 아버지는 왜 그렇게 매사 불만인 것인지 도통 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짐작할 따름입니다. 배해성 감독은 관객들의 추억의 힘을 너무 믿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추억을 다루었지만, 그 보편적인 추억은 이곳 한국의 특정 세대들의 추억입니다. 호불호가 아니라, 이해와 몰이해의 영역으로 들어간 셈입니다. 어쩌면 무리하게 영화를 압축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엔딩 크레딧을 포함해 97분이니까요.   

 

 

 

   제목과 이미지만으로 칙칙한 신파가 아닐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고, 담담합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화면을 장악한 박철민 씨의 연기는 시나리온지 에드립인지 모를 정도로 '박철민'이라는 캐릭터에 딱 들러붙어 있습니다. 진짜 시골아이들을 캐스팅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 또한 생생합니다.   

 


 

 

   아버지 역을 맡은 전무송 씨는 별다른 사건이나, 대사 없이도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아버지'를 연기합니다. 전무송 씨는 이전부터 스님, 교수, 문인, 감독, 편집장, 바텐더, 의사 등 인텔리한 역을 많이 맡아, 과연 억센 시골 촌부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기우였습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를 표현합니다.   

 

 

 

   연출은 많이 아쉽습니다. 가끔씩 연기자들이 상상선을 벗어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카메라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거나, 줌인의 미숙함 등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큰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관습적으로 사용한 앵글과 줌인은 너무 안일하게 찍은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보편적인 소재를 보편적인 방법으로 찍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영화의 마지막.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이해합니다. 아들이 공연한 연극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소통한 셈입니다. 중학교 시험 당일. 한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남은 자식을 위해 또 다른 자식인 누렁이를 팔아야 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립니다. 시험 그날은 눈이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말 없이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아들을 감싸줍니다. 부자는 말이 없습니다. 말은 없지만, 아들은 압니다. 아버지의 서툰 사랑표현을. 부자사이는 대개 그렇습니다. 

 



 

DVD 소개  

   높은 연령대를 감안한 영화라 그런지 DVD를 넣으면 바로 영화가 재생됩니다. 그런 작은 생각 씀씀이에 제작사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메뉴화면은 단출합니다. 음성은 5.1ch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5.1ch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없습니다. 화면비율은 1.85:1 아나몰픽을 지원합니다. 화질은 무난한 편이고, 어두운 장면에서도 별 다른 거슬림없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자막은 한글자막과 영문자막이 제공되고, 부가영상은 예고편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예고편 영상은 비아나몰픽입니다.  

 



 

총평 

   어찌보면 참으로 낡고 진부한 소재를 영화는 매우 발랄하고 담담하게 찍었습니다. 이 영화 한 편 감상하시고 아버지께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걸었을 때는, 예의 그 무뚝뚝한 목소리로 "왠 전화질이야?" 하셨지만, 내심 반가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죠. 우리 (아버지)들은 표현에 항상 서투(시)니까요. 

 

 

* 덧붙임 

1. DVDprime DVD 포럼에 올린 글입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2.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3. 제가 이 영화가 '얄팍한 기획 상품의 하나'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영화의 원제가 <분교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명백히 <선생 김봉두>를 의식하고 만든 영화가 <워낭소리>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훨씬 커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 내러티브에서 삐끄덕 거리는 부분은 전부 '아버지'의 캐릭터를 설명하려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큰아들 기동의 죽음과 뒷부분 경찰을 제압하는 부분) 하지만, 이렇게 투덜거리긴 해도, 역시 추억의 힘은 막강합니다.


댓글(4) 먼댓글(1)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아부지
    from 사필귀정 2010-02-14 04:04 
    설 귀향 버스. 버스안에서 영화를 한편 틀어주었다. 맨 앞자리에 앉은 덕분에 그냥 보게 되었다. 잠깐 정신 판 사이에 영화 제목이 지나가 버렸는 지, 무슨 영환지 제목도 모르고 봤다. 끝까지 안나와서 결국엔 집에 와서 '박철민' 검색하고, 이 영화가 '아부지'라는 영환 걸 알았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순오기 2010-01-2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70년대 새마을세대, 우리 아버지는 농가부채를 뒤집어 쓰고 장리쌀 얻어 고향을 떠나셨지요. 그 장리쌀은 작은아버지가 갚았다던가요~~ 인천에서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지요.ㅜㅜ 기회되면 영화를 보고 싶네요~

Seong 2010-01-25 09:16   좋아요 0 | URL
너무 추억에만 함몰하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찡한 영화입니다. 기회되시면 꼭 보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novio 2010-01-28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직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참 볼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은 죄를 환기시킬 영화임이 분명하니까요. 한국에서 아버지는 너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막상 아버지 입장이 되면 이해할 수 있었는데 가족들이 등떠밀면서 매몰차게 군 것 같네요. ㅠㅠ

Seong 2010-01-28 09:40   좋아요 0 | URL
저도 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담백합니다. 신파도 아니고요. 기회 되면 한 번 보셨으면 해요. 대한민국에서 아버지 욕 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고맙습니다. ^.^
 
『페어러브 OST』가슴적시는 노래들

 

 

   두 가지 버전의 「Fallen」. 같은 듯 다른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