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서유기』를 읽은 독자라면, 『마하바라따』를 읽으면서 적잖이 당황 혹은 흥미로운 지점을 여럿 발견했을 것이다. 『마하바라따』에 『서유기』의 흔적들이 꽤 많이 보인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데,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이 『마하바라따』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마 (전체는 아니더라도) 『마하바라따』의 여러 흥미로운 단편들이 중국에까지 소개가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읽으면서 생각나는대로 정리한 부분을 옮겨 본다.
『마하바라따』 1-139~144 (2권 「히딤바」 p.621~635)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락샤사 히딤바와 무적의 비마에게 연정을 느끼는 그의 누이 히딤바아에 대한 이야기는 『서유기』의 기본 플롯을 담고 있다. 숲으로 도망친 꾼띠와 빤다와들을 잡아먹으려는 히딤바를 묘사한 장면은 『서유기』에서 요괴들이 당삼장의 ‘고기’를 원하는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비마에게 사랑에 빠져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히딤바아의 모습은 삼장의 ‘원양(元陽)’을 얻기 위해 구애하는 (여성) 마귀들의 모습이다. 비마와 히딤바가 싸울 때, 옆에서 아르주나가 약을 올리는 행동은 손오공과 요괴가 싸울 때 옆에서 저팔계가 깐족거리는 것과 흡사하다.
심지어 1-145~152 (2권 「바까를 죽이다」 p.641~660)에 걸친 이야기는 『서유기』 47회의 이야기와 같다. 바까라는 락샤사에게 재물과 자식을 바쳐야 하는 브라만 가족의 애절한 이야기는 영감대왕(靈感大王)에게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진(陳)씨 노인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비마와 아르주나의 활약은 손오공과 저팔계로 대체했다.
이 두 이야기에서만 본다면, 빤다와들의 어머니 꾼띠에게서 삼장법사를, 첫째 유디슈티라에게서 사오정을, 둘째 비마에게서 손오공을, 셋째 아르주나에게서 저팔계를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서유기』의 흔적은 더 많이 있다. 『마하바라따』 3-146~150에 걸쳐서 비마는 늙은 원숭이 하누만을 만나는데, 그는 비마의 형이다. 비마는 바람의 신 와수에게서 태어났는데, 하누만 역시 그렇다. 손오공은 『라마야나』의 하누만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라마야나』를 (완전하게) 읽지는 못했으니 그의 탄생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다. 대신 그의 동생 비마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우리는 안다. 비마의 탄생과 손오공의 탄생을 비교해보자.
『마하바라따』 1-114
‘크샤뜨리야란 자고로 힘이 최고라 하오. 이제 가장 힘센 아들을 가집시다.’
빤두의 말에 꾼띠는 바람의 신 와유를 불렀다. 그에게서 꾼띠는 완력 좋은 괴력의 비마를 얻었다. 힘이 넘치는 비마가 태어나자 하늘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는 모든 장사 중에 가장 뛰어난 장사가 될 것이다.’
우르꼬다라(=비마)가 태어나자마자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 품에서 미끄러진 아이가 몸으로 바위를 부숴버린 것이다. 꾼띠가 호랑이에 놀라 품 안에 아들이 자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벌떡 일어섰는데, 금강처럼 단단한 아이의 몸이 산의 바위 위에 떨어져 바위를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다. 바위가 그렇게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본 빤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유기』 1회
蓋自開闢以來,每受天真地秀,日精月華,感之既久,遂有靈通之意。內育仙胞,一日迸裂,產一石卵,似圓毬樣大。因見風,化作一個石猴,五官俱備,四肢皆全。便就學爬學走,拜了四方。目運兩道金光,射沖斗府。
그 바윗돌은 천지가 개벽한 이래 하늘과 땅의 정수(精髓)와 일월의 정화(精華)를 끊임없이 받으며 오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차츰 영기(靈氣)가 서리더니, 마침내 그 속에 태기(胎氣)가 생겼다. 그리고 어느 날 바윗돌이 쪼개지고 갈라지면서 둥근 공처럼 생긴 돌알을 한 개 낳았다. 바위에서 튀어나온 돌알은 바람을 쐬더니 그 즉시 돌 원숭이로 변했는데 두 눈, 두 귀와 입, 코의 오관(五官)을 다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팔다리까지 멀쩡하게 생겨 그 자리에서 기어다니고 걸어다닐 줄 알고, 사방을 두루 돌아보며 절을 하는데 두 눈망울에서 금빛 광채가 쏘아져 나와 하늘나라에까지 뻗쳐 올라갔다.
손오공이 돌'알'에서 나온 것도 의미심장한데, 힌두 신화에서의 창조주 브라흐마 역시 돌알에서 태어났다. (창조주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다니 신기한 일이다.) 『마하바라따』에 적힌 것을 그대로 옮겨 본다.
『마하바라따』 1-1
천지에 빛이라고는 없이 온 사방이 컴컴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을 때 커다란 알이 하나 있었다. 멸하지 않는 생명의 씨였다. 사람들은 이를 세상이 시작되는 신비로운 근원이라 일컬었다.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은 참다운 빛이요 영원불변의 브라흐마라 했다.
샨따누 왕이 인간으로 태어나 강가 여신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이야기 또한 그렇다. 『마하바라따』 1-91 (1권 p.443)을 보면, 마하비샤라는 왕이 희생제를 통해 천상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강가 여신의 맨몸을 보게 됐다. 브라흐마가 이것을 보고 꾸짖으며 ‘다시 죽음이 있는 세상으로’ 보내어, 쁘라띠빠의 아들로 태어나게 됐는데 그가 바로 샨따누다. 후에 강가는 그와 부부의 연을 맺으며 8명의 자식들을 낳고 7명을 익사시킨다. 마하비샤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사오정과 저팔계의 경우(『서유기』 8회)와 흡사하며, 마하비샤의 현신인 샨따누와 강가의 러브 스토리는 황포 노괴(黃袍老怪)와 보상국(寶象國) 셋째 공주 백화수(白花羞)의 이야기(『서유기』 28~31회)와 같다. (아이들의 비극적인 죽음 역시, 그 의미는 다르지만, 같다.)
62~63회의 구두부마(九頭駙馬)는 가루다를 차용했음에 틀림없다. 원래는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머리 아홉 달린 새 구두충(九頭蟲)과 장자의 대붕(大鵬)을 적절히 변형시킨 것으로 여기지만, 『서유기』에서 보이는 그 거대한 위용과 엄청난 위압감은 온전히 가루다의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히 비교해보고 싶지만, 아직 『마하바라따』가 완간이 다 된 것도 아니고, 중국 문학이나 싼스끄리뜨 문학 그 어느 것에도 해당사항이 없는 내가 해보기에는 시간도, 능력도 없으니, 보다 자세한 관련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