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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금.지]

 '지브리 스튜디오' 작업실 문에 붙어있는 팻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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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1-27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삶의 요주의 표지판으로 삼아야지. 운전할 때 표지판 잘 보지 않으면 큰일나니까.

별오잉어현지 2004-01-2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한데요, 지브리가 뭔지요?

Smila 2004-01-27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로 알고 있는데요...

프레이야 2004-01-27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mila님, 고마워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근데 미야자키 하야오란 애니메이션 작가도 전 처음이네요.

ceylontea 2004-01-28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유명한?? 작품으로는 "미래소년 코난"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텔레비젼에서 해서 정말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이었지요...
그리고 최근작으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있고요..."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붉은 돼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프레이야 2004-01-2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eylontea님, 안녕하시지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그 사람 작이었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사^^

waho 2004-01-28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메이션 나우시카, 라퓨타, 토토로, 키키, 붉은돼지등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콘도 요시후미, 모치즈키 토모미 등 이있는 에니메이션 스튜디오랍니다. 미야자키 애니는 버릴게 하나도 없답니다. 하나씩 구해서 보시면 푹 빠지실거에요. 강 력 추 천!!!

프레이야 2004-01-29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니메이션은 잘 모르는 영역이었지만, 센과 치히로는 재미있게 보았어요. 토토로, 보노보노, 고양이의 보은 정도...^^ 님이 주신 정보, 고마워요.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
 

 # 100점 안 되면 반성하세요.

난 얼마나 좋은 아버지일까? 각 항목마다 매우 그렇다 5점, 약간 그렇다 4점,

그저 그렇다 3점, 아니다 2점, 전혀 아니다 1점을 적은 뒤 합계를 내 보세요.

1. 현재 자녀의 고민을 알고 있다.

2. 자녀의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있다.

3. 최근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4.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5.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는 편이다.

6.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알고 있다.

7. 좋아하고 싫어하는 운동을 알고 있다.

8. 자녀의 습관을 잘 알고 있다.

9. 자녀의 나쁜 습관을 고쳐주려고 노력한다.

10. 컴퓨터를 작당히 하도록 적극 관심을 갖는다.

11. 친한 친구를 알고 있다.

12. 자녀의 나이에 맞는 놀이를 여러 개 알고 있다.

13. 집에서 20분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14. 왕따 원인과 대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15. 재능과 소질이 무엇인지 안다.

16. 자녀의 꿈이 변해 온 과정을 알고 있다.

17. 자녀가 관심을 갖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18. 자녀의 꿈을 키우는 동기부여 방법을 안다.

19. 자녀의 직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20. 잔소리를 적게 한다.

21. 칭찬을 잘 하는 편이다.

22. 자녀에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23. 방임형 부모와 엄한 부모의 차이점을 알고 있다.

24. 주말 스케줄은 자녀 중심으로 짜려고 한다.

25. 신문, 잡지에서 자녀 관련 정보에 관심이 많다.

26. 인격체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27. 자녀가 속상해서 울면 곧바로 해결할 수 있다.

28. 자녀의 기를 살려주는 말이 무엇인지 안다.

29. 자녀와의 가치관 차이를 극복하는 법을 알고 있다.

30. 큰 잘못을 했을 때도 이성적으로 해결한다.

 

* 120점 이상: 매우 훌륭한 아빠      * 110점 이상: 훌륭한 아빠 

* 100점 이상: 양호한 아빠               *  90점 이상: 조금 노력이 필요한 아빠

* 80점 이상: 많은 노력이 필요        *  70점 이상: 아슬아슬한 아빠

* 60점 이상: 나, 아빠 맞아?

                                                                       <자료제공 : 아빠와 추억만들기>

 

 

요즘은 좋은 아빠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이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아빠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보여 안 돼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즐긴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수밖에...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기둥이 되어주는 역할은 엄마보다 아빠의 몫이 크다고 한다. 모 일간지에서 본 '좋은 아빠 되기' 위한 '아이 사랑' 회원들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다섯 명의 아빠들이 모여 함박웃음을 머금고 대화하는 사진도 실렸는데, 연령은 만 37세에서 43세까지였고 직업도 모두 다르다고 했다.  "TV를 끄고 아이들을 보세요"라는 짙고 큰 활자가 먼저 눈에 확 들어왔다. 집에만 오면 TV에 시선 고정하고 있는 우리집 아빠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워낙 일이 많아 고단한 사람이지만 아이들이 그걸 아남?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아이들 셋을 데리고 산책을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시간을 가지는 아빠도 있고, 술 마시고 퇴근한 날도 책 3권은 꼭 읽어주고 아이를 재운다는 아빠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와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최고 매개체로, 문화체험을 아이와 함께 할 것을 권유한다. 

우리집 아빠는 이 모든 걸 거의 못 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아빠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걸 늘 가지고 있다.  정말 어쩌다 아빠랑 자전거를 함께 타고 아파트 단지를 달린 날의 큰아이 일기를 보면,  이런 거구나, 싶다. 아이가 가지는 아빠와의 추억은 무엇일까?  시나브로 품에서 벗어날 아이들...  아이와의 풋풋한 추억만들기, 당장 실천해야 되겠다는 생각 들지 않나요? 우리집 아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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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1-2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제 점수가 얼마 정도인지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족할 점수인데(이 경우는 대외용 답변을 했던 경우입니다) 문제가 어려워서 시간을 들여 심각하게 풀어본 점수는 "장고 긑에 惡手"라고 했듯이 점수가 낮게 나오는군요. 제가 피해나갈 궁색한 변명도 있답니다. "아..아이들이 커 가면서 지네 친구들과의 약속을 더 소중하게 여기나봐...." 그래서 부모가 계획한 일에 막말로 고춧가루를 뿌리는 경우도 있는데...누구 책임일까요? 그리고 20번 문항에 대한 답변은 1.관심이 없으니 아예 잔소리도 없다. 2. 자율적인 사고와 판단을 위해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라는 극단적인 이유도 있을것 같아요.....(이그...생트집이다...) 하여간...아이들은 겉으로는 표현은 않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에게 쏠리는 부모의 관심도를 측정하고 있답니다.....100점 아빠들 됩시다(저부터요...)!!!

프레이야 2004-01-2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점 엄마 되기도 힘들군요, 수수께끼님. 걸림돌 같기만 한 아이들이 사실은 나의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 잊지 말자구요. 수수께끼님,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시길...

水巖 2004-01-2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오랫만입니다. 제일 먼저 제 서재에 들려 주셔서 알라딘의 서재를 알게 해 주신것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글 우리 아이들 딸과 사위에게 보여 줄려고 퍼갑니다. 괜찮겠죠?

프레이야 2004-01-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새해에도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생활로 채워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인생의 대선배님에게 여러가지 배우고 싶습니다. 아이를 대할 때 마음은 꼭 그런게 아니었는데 맘 같지 않게 어긋날 때 제일 속상합니다. 아이를 통해 제가 오히려 더 자라고 다듬어져서,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날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
건강하세요^^
 

    家具의 힘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나오는 오래 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 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 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의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문학과 지성사)

 

  ** *       이 가난한 시인과 어머니 사이에 서글픈 '가구론'이 들어와 앉아 있는 이 시를, 안도현은 액자시라 부른다.  이 시를 읖조리면, 중얼대면서도 가난한 젊은 아들을 안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자글거리는 눈가에 매달려 있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이 보인다.

 

명절이면 으레 긴장이 되곤 한다. 이레저레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고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아래 위로 챙겨야할 것이 많은 것도 바로 우리가 주역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라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힘으로 삼고 이번 설연휴를 출발했다. 시댁식구들과 이틀, 친정엔 23일에 갔다. 

이번 설은 대한과 함께 정말 설답게 추워서 쌉싸름한 공기를 코로 들이키며 좁다란 계단을 조심해서 밟으라며 아이들을 앞세워 올라갔다. 둘다 한복을 곱게 입고선 치맛자락을 한껏 올려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참 많이도 컸다 싶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트집이 났다. 집이 냉골이었기 때문이다.  이 추위에 기름보일러 아낀다고 제대로 안 켜고 계신 것 같았다. 수도관은 얼어서 만 하룻동안 수돗물도 못 썼다고 한다. 발바닥이 얼 것 같았다. 엄마의 명요리,  만두(올해는 며느리랑 함께 빚었다)가 나왔지만 몸이 풀리지 않는다.

엄마의 아들(나의 막내 동생)은 가난하다. 엄마 눈에 보이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당신은 그 점이 못내 안스럽다. 생전 별로 그렇지 못한 성미의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먹이려는 모습이 왠지 낯설고서글펐다. 평소 닦달하곤 했던 점이 아들에게 미안해서이겠지, 하면서 엄마의 눈가에 자글자글 그어지는 주름이 난 끼어들 수 없는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내가 맘을 풀지 않고 있어서이겠지, 하면서도 이젠 정말 늙어가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화가 나는 건 또 무슨 일인지...

동생은 시인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젊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엄마 집에는 오래된 가구가 많다. 그리 비싼 가구들도 아니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라고 시인은 짐짓 위안하고 있지만, 그리 추억할 만한 생채기가 묻어있는지 잘 모르겠다. 작년 여름 이사하면서 정말 생채기가 나 있었던 가구들을 대거 처분했다. 엄마에게 준 식탁과 장식장, 동생에게 준 소파와 거실장, 동서에게 준 5단 서랍장... 11평 연립주택에서 시작한 나와 남편의 집은 결혼 14년만에 6배정도로 불어났다.

엄마는 재수 좋은 가구 한 개쯤은 남겨두라는 말을 하며 새 것을 사들이는 맏딸을 불편한 눈으로 보셨다. 이래저래 걸리는 것들이 있어 내 원하는 기준으로 구입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맘도 요새는 조금 있다. 만두국을 먹으며,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더해질 것이라는 남편의 말이, 엄마 아빠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떨 땐 고의적이다 싶게 눈치가 없다.  이제 완전히 생퉁맞게 삐죽거리며 뒤틀리기 시작한다.  너무 민감하다 싶은 내가 또 거추장스럽다.

엄마가 서실로 쓰는 방에 들어갔다. 월간 서예를 비롯해 붓글씨와 사군자에 대한 자료와 책자, 그리고 파일에 차곡차곡 정리해 둔 연습글자들을 보았다. 왜 이제야 눈에 들어왔는지, 나도 참 무심하다. 엄마가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고 계신 것인데,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작가로 데뷔도 하셨으니 다음 기회엔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격려의 웃음이 담긴 편지라도 드려야겠다. 냉방의 서실에서 움츠린 어깨로 붓을 잡고 연습하는 엄마에게 따스한 힘 한번 제대로 실어주지 못한 못난 딸이다.

엄마의 가구에는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힘이 있을 법하다. 매달리고픈 소망이기도 하다. 가구란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생각을 몰아간다. 엄마의 손때가 묻었을 낡은 책상과 문방구, 아빠가 여태껏 쓰시는 스테인레스스틸 재떨이(원래는 보온 도시락)가 올라앉아있는 이동식 원목 테이블 같은 것들이, 훗날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 입은 내 가슴을 덥혀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의 힘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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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작과비평사)

    박형진 시인은 지금도 전북 변산의 그트머리 모항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고 한다.

 

1월 6일과 7일, 아이들을 데리고 생협에서 마련한 어린이 친환경캠프를 갔다왔다. 경북 상주로 세시간 가량을 달리는 동안, 옆에 앉은 친구랑 얘기하면서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간간이 보았다. 가지만으로 버티고 섰는 나무들에서 근육질의 생명력을 보았다. 예상만큼 춥지 않아 논에 물 뿌려 얼음판 얼려 놓고 그 위에서 옛날식 썰매 만들어 놀기로 한 건 완전 물거품이 되었다. 짱뚱이 시리즈에 나온 바로 그걸 타 볼 수 있겠다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좋아했던 큰아이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상주로 들어와 어느 폐교를 고쳐 환경학교로 만들어 놓은 아담한 건물 운동장에 버스는 우릴 풀어놓았다. 입교식을 하고, 환경을 생각한 세제와 일반세제를 각각 다른 어항에 풀어넣고 금붕어를 넣었다. 어휴~ 불쌍한 금붕어. 결국 두마리 금붕어는 시간을 달리 하긴 했지만, 아가미에 피를 머금고 물에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햄버거와 청랑음료의 비밀에 대해 공부하고 청량음료의 당도를 측정해 보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 간 얼레로 연도 만들었다. 일부러 도와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혼자 힘으로 그런대로 잘 만들었다. 잘 날아 오르지 않아 속 상해 하는 아이에게 그곳 생산자 아저씬 자기가 만든 멋진 연을 선뜻 주며 날아 올리는 쾌감을 맛보게 해 주셨다.

쓱쓱 닦아 껍질째 먹는 사과를 아삭아삭 베어 먹으며,  굴렁쇠 돌리기, 재기차기, 줄다리기, 그냥 먼 산 바라보기를 하였다. 코로는 감자, 고구마 굽는 냄새가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작불에 감자와 고구마를 호일로 싸서 넣고, 또 한 쪽에선 돼지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항생제도 먹이지 않은 건강한 돼지, 농약이나 제초제를 주지 않고 키운 먹거리라 생각하니 개운했다. 곶감은 또 어떻고. 깨끗하고 적당히 달고 맛있어, 자꾸 먹고 싶어졌다. 변비 따윈 걱정 접어 두자고. 

이 곳에 와서 건강한 먹거리 재료로 만든 소박하고 깨끗한 음식을 주니(우리 엄마들이 당번 정하여 주방에서 만들었다), 아이들도 편식을 언제 했나 싶게 잘 먹었다. 그곳 그루터기 생산자들이 마련한 먹거리와 놀거리 모두, 심심한듯 무심하게 둘러 서 있는 그곳 풍경들처럼 그랬다. 수수하고 은근한 맛이랄까.

또 한 가지!  상주는 자전거 도시란다. 다음 날, 집으로 오는 길에 자건거 박물관에 들렀다. 엄복동의 사진과 희귀한 자전거들이 최초의 자전거와 함께 잘 전시되어 있었다. 아담하지만 볼거린 충분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닥불을 가운데 하고 빙 둘러 서서 어린애마냥 엉덩이를 흔들며 율동도 하고 노래도 하다가 새까만 밤하늘로 문득 시선이 갔다.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여긴 어디지, 이놈의 병이 또... 아니,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아주 기분 좋은 낯섦이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낯섦이 또 한동안 나를 설레게 할 것이다.

전 국민의 3퍼센트가 생협의 조합원이 되면 우리 농가가 살 만하다고 한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며, 우린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도, 자기 아이들과 생업까지  팽개치고 십시일반의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열성 엄마들의 진지한 눈빛을 놓칠 수 없었다.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이 분들은 기꺼이 한 포기 풀잎이 되어주는 사람들 같았다. 내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나의 자리는 한 포기 풀일까, 아니 난 누군가에게 기꺼이 풀여치가 앉을 수 있는 풀잎이 되어줄 수 있을까,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려면, 난 얼마나 '나'를 버려야 하는지 생각했다. 버려야할 '나'는 보이지 않는 그물처럼 거추장스러워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 타인에겐 이기적이고 이질적이며 소심한 속성을 드러내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무심하게 살자. 나를 잊고 나를 버리고 걸어보자. 검은 물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시골의 밤하늘 속으로 '나'를 온통 담궈버리자. 이 세상 속에서 나의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낼 때, 좋든 싫든 나를 대하는 모든 이들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 햇살, 바람이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는 풀여치에겐 풀잎이 되고, 맑은 하늘에겐 새가 되고, 물결치는 바람에겐 흐르는 물이 되고, 나를 믿고 따르며 안겨드는 아이들에겐  나도 뛰노는 아이들이 되리. 하나가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 오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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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1-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많이 놀랐어요. 엄마랑 글 보다가요. 저희 집도 생협 하거든요. 엄마께서 열심히 이 글 끝까지 보시더니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야~이 분도 글 무지 잘 쓰신다!"
예진 왈
"그럼! 이 분이 명예의 전당 분이셔!"
엄마 왈
"진짜? 어휴~대단하시네!"
참고로 예진이네 집은 예진이 알라딘 명예의 전당이 꿈입니다.^^ 아주 크고 결정적인 소망이죠. 혹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저한테만 알려주세요^-^

프레이야 2004-01-2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진님, 요즘 글쓰기 샘물이 터져 쉬지 않고 콸콸 뿜어져나오는 님의 마이페이퍼 보며 참 즐겁기도 하고 생각의 힘이 느껴져요. 자신만의 생각을 그렇게 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글까지 유려하고 논리정연하니까요. 날마다 게을리하지 않으면 더욱 빛을 발할 거에요. 다음에 생협에서 마련하는 캠프에도 가족과 함께 가 볼래요? 푸근하고 건강하고 배부르고, 좋아요.
명예의 전당엔 뭐, 굳이 오를 필요 있나요?^^ 벌써 예진님 명성이 자자한데요. ^^
 



책 읽는 여자....책이 가진 상징적 의미와 여자가 가진 상징적 이미지를 가지고 혼자 복작 복작 ....움직 움직 거리다가 낙서처럼 그린 그림...책과 여자를 그림은 처음인데 앞으로 이 두 소재를 가지고 그림을 더 그리고 싶다. 아니 이미 그려서 버려야 할만큼 머리통이 그득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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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1-16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눈은 무엇으로 저리 붉고 누렇지?
비어있는 듯 갈망하는 눈. 책과 여자, 여자와 책.
검은비님의 그득한 머리통에서 하나 퍼 와, 내 맘대로 느껴보는 재미~ Thank you.

비로그인 2004-01-1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그 운명의 형상화처럼 느껴지는 그림입니다.늘상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여성의 처지와 책을 통한 간접 경험....그러나 일탈할 수 없는 마음의 철조망이 잘 조화된 멋진 그림으로 보입니다..

프레이야 2004-01-16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반갑습니다.
님의 해석을 보니, 마치 제 맘을 들켜버린 것 같습니다. ^^
아니, 검은비님의 마음이었던가!
일탈할 수 없는 마음의 철조망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님, 올해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시간, 날마다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비로그인 2004-01-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안녕하시지요? 이 그림을 보고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내용말고 더 생각했던 내용은 눈부분입니다. 물론 테두리의 색상을 모두 붉게 통일했는데 눈부분의 붉음은 저를 슬프게 만드는군요... 그나마 위안인것은 눈동자는 또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은비님의 그림...시사하는바가 매우 크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시인의 詩作노트와 읽는이의 감상이 다를수 있다해도...그리신 검은비님의 사고와 다를 수 있다해도...느낌은 깊게 전해오는군요...그래도...그래서...그러니까....그럴수밖에 없어...책을 읽는 여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