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속눈썹이 아래위로 유난히 허옇고 풍성한 소녀의, 커다랗고 슬픈 동공에 비치는 나치스의 표시가 섬뜩하다. 지금 소녀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돌멩이문고라는 이름의 첫번째 책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옹골찬 시리즈로 보이는데 우선 독특한 플롯이 흥미롭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시점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서술된다. 청소년소설로 가져온 소재와 주제 면에서도 의미 있다.

 

이 책에서 소녀가 보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것이다. 그 눈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혜안이자 진실에 대한 인식의 눈이다. 주인공의 영적체험(전생 혹은 빙의)을 읽어가다 오래 전 읽었던 <안네의 일기>가 떠올랐다. 이 책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지만 십대 유대인 소녀 샤나와 실제인물 안네 프랑크가 연신 겹쳐왔다. 혼돈의 시기를 거쳤으며, 자의식이 강하고 따뜻한 품성을 깊이 간직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만약 안네가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수용소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지 않고 샤나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신과 운명을 이겨냈더라면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않았을까. 안네의 죽음이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안네는 죽음을 맞았지만 그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순정한 글들로 살아있다. 그와 같이 샤나는 힐러리로 부활하여 21세기에 영생의 기억으로 남았다. '기억하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책표지의 이 글귀는 우리에게 무서운 경구로 들린다. 놀라운 매력을 보여준 한 놀란이라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도 샤나와 힐러리의 기억이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세상을 바꾸는 빛이자 힘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쉽사리 잊히지 않을 이 책을 읽으며 힐러리의 증오와 분노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였다. 신나치주의 단체에 들어가 잔인한 행동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행하는 그 아이의 증오심은 개인적인, 엄마와의 불화와 심적 괴리감에 의한 불안정한 정서에 있었다. 힐러리의 악마성은 광기 어린 보복의 형태로 유대인 친구들에게 마구잡이로 자행되었고 그런 행동으로 그들 폐쇄적인 집단은 근거없는 쾌감을 맛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다니며 미친듯 광포한 괴성을 질러댄다. 힐러리의 증오는 나치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성질을 지닌다. 작가는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심을 독자에게 어떻게 전해야할까 고심하였을 것이다. 힐러리라는 신나치주의 여학생을 내세워 십대에 있을 수 있는 갈등, 특히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의 부조화를 실마리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갈등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고 이해하게 하며 폭넓은 화해로 선도하였다는 점은, 청소년들의 정신적 성장이라는 광의의 주제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시대의 증언자 프리모 레비가 유대인에 대한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를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면 힐러리의 증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그에 의하면 ‘반유대주의는 전형적인 불관용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태도는 1960년 초 신나치즘을 낳았고 백인우월주의로 이어졌으며 같은 민족끼리도 지역적인 악감정을 낳았다. 남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예만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가 거부의 특별한 예라고 단언한 해석에 그의 동의는 전적으로 쏠리지 않는다. 그는 나치즘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통제되지 않는 광적인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혹은 히틀러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아리안들의 집단 두려움에서 그 원인을 캐려는 해석에도 흡족해하지 않는다. 그가 신의하는 유일한 것은 나치즘의 증오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뿐이라 했다.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고, 인간의 밖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좀 더 인용하자면 이렇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의식이 또다시 유혹을 당해 명료한 상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까지도.’ (이것이 인간인가 ; 302쪽)  -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이라는 말이다.


유대인의 핍박을 소재로 한 청소년소설이나 고학년동화 중 내가 읽은 것에는 <별을 헤아리며>가 있다. 사춘기를 겪고 있거나 지나고 있는 소녀가 주인공인 것도 닮았다. 다윗의 별이 그 책에도 나오는데 유대인의 정신적 빛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소녀의 눈동자>처럼 게토와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과 같은 생활을 끔찍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하는 내용이 아니라 또다른 이야기(충분히 있음직한)로 인간성의 숭고함을 일깨워주는 정도로 그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흥미진진한 구도로 그리고 있어 중학생 이상의 학생에게 특별한 감동과 함께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에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힐러리의 정신으로 열여덟 살 유대인 소녀 샤나의 힘겨운 삶이 전이되면서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힐러리가 3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오면서 결정적인 깨달음을 하게 되는 감격적인 장면에서는 우리의 미래 또한 현재의 명징한 의식에 달려있음을 말하려 한다. 작가는 아우슈비츠 증언 기록자료를 숱하게 점검하였을 것이며 그 사실이 잊혀져서는 안 되며 진실을 ‘인식’하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깨어나기 전에 죽었더라면... 원제가 말하듯, 우리는 죽기 전에 '깨어나야함(awakening)'을 강조하고 있다. 힐러리가 뇌사상태로 있었던 3일은 죽음의 허허벌판에서 자신과 또 운명과의 처참한 싸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시간이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학대하였던 유대사람, 엄마를 포함하여 막연한 증오의 대상이었던 사람들과 서서히 화해하며 사랑으로 관계맺기를 소망했다. 아니 또 다른 자아(쉬베스터)를 늘 마주하며 상충하는 자아와의 조화를 이루어냈다. 이는 죽음의 언저리에 있었던 사흘이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게토에서의 생활과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 샤나와 할머니가 아우슈비츠의 짐승 같은 생활을 견뎌내는 장면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생각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수용소 생활도 실감나게 그려져있다. 특히 여자수용소의 생활과 그들의 생존다툼이 눈물 겹다. 샤나의 가족들은 제각각 미덕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힐러리와 샤나가 가장 의지하며 정신적 지주로 삼는 사람은 할머니다. 지혜롭고 덕망 깊은 이 노인은 구약을 외며 늘 기도의 말을 하고 처절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푼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을 아끼는데,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다. 알면서도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을 때에는 그 선물이 저주스럽기도 하지만 언제나 신의 선물을 믿고 담대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이 선물은 샤나에게도, 이전엔 깨닫지 못했지만, 힐러리에게도 주어진 능력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아직 포장을 뜯지 않았거나 뜯다 만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구약의 묵직한 구절들이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다. 혹독한 시련을 겪는 샤나는 신을 부정하지만 나중에는 어떤 처지에서도 신이 내리는 빛을 찾게된다. 그런 눈으로 동료들을 모아 비밀스럽게 여는 촛불예배장면이 감동적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예레미야 1장 4절에서 10절을 인용하며 맺는다. 그중 끝부분은 이렇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유대왕국을 재건설하고 팔레스타인과 분쟁을 일삼고 있는 이스라엘이 떠올라, 멈칫 놀랐다. 창세기 32장 28절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밑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그들의 선민의식이라는 게 자칫 또다른 우월주의를 나은 것은 아닌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어디를 향하여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샤나의 할머니가 한 말이 가장 마음에 닿는다.

 

- 원제 : If I Should Die Before I Wake

문장이 몇 군데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소개나 작가의 말, 번역자의 번역의도 같은 것을 수록하지 않은 점도 그렇다. 청소년들이 좀 더 찾아 읽어볼 만한 책이나 자료(사진자료 포함) 같은 것도 부록으로 실어 주었더라면 더 가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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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02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되풀이된다.
진실입니다.
보관함으로 넣습니다.
아이들에게 읽히면 좋은 책이군요.

프레이야 2007-03-0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저도 우리집 큰딸 중2에게 권하고 있어요.^^
섬사이님/ 표지, 정말 그렇더군요.^^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요. 가혹한 시련을 겪은
민족으로 유대민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서구중심, 기독교 중심의
눈이 아닐까요...

마노아 2007-03-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에 예배 드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배혜경님은 깊게 독서하시는 듯 합니다^^

바람돌이 2007-03-0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대민족의 수난보다는 나찌즘의 광기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게 더 흥미가 갑니다. 일고싶어지는 책이네요.

짱꿀라 2007-03-0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역시 글쓰는 분답게 너무 서평을 잘 써주십니다.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08-03-2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여러번 멈칫 하며 읽었어요. 이상하게 술술 읽히지 않더군요.
촛불예배장면에서 샤나의 정신적 성숙이 절정에 달했어요. 뭉클했어요^^
그래도 그 장면을 늘어지지 않게 조금은 여운이 남는 듯 묘사해주어 더 좋더군요.

바람돌이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생활이 중반 이후로 계속이에요.
그러니 수난을 다룬 것 맞는데, 나치즘의 광기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아요.
신나치주의 소녀의 개인적인 분노를 통해 그들의 집단광기를 읽고 싶었던 건 제 해석일지 몰라요.
좀 다른 점은, 여자수용소 내의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는 거에요. 주인공이 여자니까.
절멸의 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아찔했어요. 그 안에서도
계급이 있어서 특혜 받은 유대여자와 그들로 인해 더 고통받는 사람들, 그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드러나는 인간애가 눈물겨워요.

산타님/ 늘 관심에 감사드려요. 더 쓰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줄였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한밤의 작가 사전 파랑새 청소년문학 3
마뉘엘라 모르겐느 지음, 클레르 뒤부아 그림, 김주경 옮김 / 파랑새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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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는 18세기 백과전서파가 활동했던 나라입니다. 백과전서파의 주축이었던 디드로, 볼테르, 루소 등은 감정보다 이성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계몽하고, 구체제의 권위와 종교를 비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펼친 백과사전 편찬 운동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지요.(역자서문 9쪽)


역자서문에는 프랑스 백과전서파가 기여한 18세기 의식의 개혁이 간략히 서술되어있다. 21세기, 이 책은 백과사전에 대한 기존의 체계를 탈피하여 탄생되었다. 작가의 배열이 알파벳 순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백과사전의 전형적인 내용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탄생연도와 대표작 정도에 대한 코멘트도 역자가 우리나라 독자를 위해 넣은 친절이다. 논픽션에 분류되어 있는 청소년 책이지만 판타지 기법을 도입하여 읽는 재미를 주며 백과사전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날마다 독자는 쌍둥이 주인공의 한밤중 모험에 동참한다. 알파벳 26자의 이니셜로 시작하는 문학작가를 한 명씩 차례대로 골라 대표작품 속으로 이들의 모험이 펼쳐지는데, 다만 X와 Y는 묶어서 작자미상으로 처리한다. 방정식의 미지수 XY가 연상되어 독자로 하여금 해당되는 작가를 찾아보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Yeats는 시인이라 제외되었나. 이 책에서 XY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작자미상의 <천일야화>다.


책의 후반에서도 쌍둥이들이 언급했듯이 여성작가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작가이다. 여성작가를 찾아 추적해보니 가명을 쓰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당시 훌륭한 여성작가들에 대해 작가는 쌍둥이의 입을 빌어 “가명 뒤에 숨은 작가들은 이미 모험을 한 거야. 그래도 사람들은 결국 그들을 찾아내지만 말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 글쓴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국적은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하다. 부끄럽게도 내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도 있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혹은 외국문학을 읽기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귀설은외국문학작가들의 이름이 어느 정도의 호감을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행여 낯선 작가의 이름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찾아 뒤지게 되고 문학작품에 심취한다면 작가와의 내밀한 만남을 조금 일찍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쌍둥이 주인공은 밤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틈을 타 헤드라이트를 켜고 서재에 간다. 아마도 아빠의 오래된 서재일 테다. 아이들의 키로는, 고목의 수피에서처럼 책냄새가 훅 하고 콧속으로 들어오고 아빠가 동서고금의 책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숨막히는 방일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부담스러운 고전문학작품을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흥미로운 모험으로 접근하다. 가장 꼭대기의 책에서부터 아래로 차츰 내려오며 특별한 체험으로 작가를 엿보게 되고 그들이 쓴 책 속으로 빠져들며 모험을 한다.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고, 부조리하기도 한 모험들은 모두 작가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물론 이 책에서 각 장마다 판타지형식으로 나온 짧은 일화가 한 작가의 모든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다른 면모와 정신세계를 엿보는 시간으로도 흥미롭다. 쌍둥이와 함께 독자는 알려져 있지 않거나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화와 함께 작가의 내면세계로 짧지만 강렬한 여행을 하는 셈이다. 이들은 여러 작가들의 다채로운 면모를 엿보고 보통 사람이 아닌, 작가로서의 삶과 독특한 생각,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정서와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작가별로 작품탄생의 심리적, 환경적 영향도 조금 짚어볼 수 있다.


각 편마다 글의 길이가 길지 않다. 책의 두께도 얇고 손에 쥐기에 아담하다. 문장은 압축적이고 늘어지지 않는다. 한밤의 판타지이지만 눈 한 번 깜박 하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흐른 것뿐이라는 인상을 주어 신비하다. XY편을 제외한 24명의 작가를 나타내어 주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인물의 개성을 잘 담았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달리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한 그림들에는 작가의 실제생활과 작품, 정신세계를 단적으로 담아내려는 의도가 보이며 내용과 삽화가 잘 어울려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각 편마다 반복구절이 배치되어 글 전체가 하나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밤이다. 드디어 집 안의 불이 모두 꺼졌다. 뷔바르와 리코세는 서재의 책장 위로 올라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모두 일곱 개의 선반이 있었다. 두 아이는 선반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땅이 아득하게 보이는 곳, 그곳에서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라는 글귀가 각 편의 서두에 나온다. 그리고 각 편의 마지막에는 작가들에 대한 주인공들의 이해가 나름대로 서술되어있다. 예를 들면, 루이스 캐럴 편에서 “작가들은 우리가 새로운 시각으로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때로 우릴 물구나무 세우기도 하는 것 같아.” 라고 기발한 생각으로 이끈다. 그러고는 침대로 돌아와 깊고 달콤한 잠으로 빠져든다.


이 책은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에 대한 환상을 가져보았던 이들, 작가의 일화에 놀라웠던 기억이 있는 이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청소년 시리즈로 나온 만큼 문학작품 읽기에 빠지려는 이들이나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손 내밀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욤 아폴리네르로 시작해서 에밀 졸라에 이르기까지, 고전문학작가와 그 책을 통한 여행으로 밤잠을 설친 쌍둥이가 만들어 낸 독특한 작가사전이다. 하지만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상상의 세계를 기대하면 부족하게 느낄 것이고 그저 문학작가와 작품의 맛을 살짝 보고 독자가 더 깊은 맛을 찾아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데에 의미를 둘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에밀 졸라에 대한 쌍둥이들의 진지한 생각을 읽어보자.

 

- 뷔바르와 리코세는 전혀 몽상적이지 않은 이 작가, 사회 문제에 진지하게 참여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살았던 이 작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맞아, 졸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으로 우릴 데려가 주었어. 아마 그는 우리가 낮 2시에 정오의 시간을 구하는 법 없이, 그냥 우리의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 작가는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 - 156쪽


나름의 방식으로 삶과 인간, 세상을 그려내려고 한 작가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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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1-3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안내에서 보고 궁금했던 책이에요.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진달래 2007-02-0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

프레이야 2007-02-0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청소년/어린이 책 분야에 우리나라에선 이런 소재의 책은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 작가들로도 이런 식의 작가사전을 만든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의 고전 작가들 말이죠^^

카페인님/ 네, 흥미로웠어요. 파랑새출판사라 믿음도 가구요.^^

부엉이 2007-02-0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재밌는 리뷰 넘 감사드려요. 가끔 신간 보내드릴게요. 그치만 절대 리뷰의 압박을 느끼시진 말고요! 제맘 아시죠? ^^;;

짱꿀라 2007-02-0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품있는 리뷰를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향기로운 2007-02-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멋져요^^;; 저도 보관함에 담아두어요^^

프레이야 2007-02-0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좋은 책 흥미롭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당연 부엉이님 마음 알지요^^
산타님/ ^^ 고맙습니다.
향기로운님/ 초등학생이 읽기엔 재미없을 것 같지만요... ^^
에고 오늘도 우체국 갈 시간을 못 내어 버렸어요. 애들 방학도 다 끝나가는데..
 
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적 평가가 다르게 되고 있는 인물들 중 광해군을 들면 그의 실리외교를 빼놓을 수 없다. 광해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국난을 겪고 피폐한 시대에 원하지 않는 왕위에 올라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 원래 심약했으나 강경한 치세를 하여 폭군이라는 오명만을 후대에 썼던 임금이다. 1980년대 어느해부터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우리역사교과서에도 다르게 적히기 시작했다. '광해군은 개혁과 중립외교를 추진했다.' 그만큼 국제정세를 파악한 실리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했다는 말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현실이 그의 인기를 높힌다. 지금도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군의 작전 통제권 환수 문제에 관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데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꽃이라며 작전통제권을 미군으로부터 회수하려고 하고 군 장성들은 시기상조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과연 어느쪽 의견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명분만으로 생각하기에도, 실리만으로 생각하기에도 쉽지 않은 판단이다.

대의를 거스르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라도 명분을 지켜야한다는 측은 그 명분이라는 것이 어느 누가 지켜야할 명분인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명분인지에 대해 재고해야한다. 명분론자들은 그 명분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가 되는 일은 아닌지, 소수의 이익에 눈먼 명분은 아닌지, 닫혀있는 사고에서 나온 잘못된 믿음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실리를 추구하는 측은 자존감이 훼손되는 일까지 감수하는 일에 눈을 감아야하는 무모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리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영악하고 가벼운 인상을 주기 마련이지만 외교에 있어서는 실리론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것이 국익을 염두에 두고 백성의 삶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산성일기>는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에 당한 삼전도의 치욕을 생생한 필력으로 써내려간 일기형식의 책이다. 작자미상으로 알려져있지만 당시 남한산성에 왕과 함께 피신해있었던 자들 중 척화파의 가족 쯤으로 추측된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정묘호란)을 도입부로 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을 중심부로 하여 삼전도비를 세우게 되는 종결부까지 셋으로 내용을 나누어볼 수 있다. 한자체였던 것을 읽기에 쉬운 문체로 바꾸어두었고 각 장의 옆에는 알기 어려운 단어와 용어들에 대한 주석을 달아두어 이해를 돕는다. 전체 글의 맥락을 흐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건발생 시간연대상 필요한 위치에 두려고 한 것 같다. 중간중간에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옮긴이의 꼭지가 들어가 좀더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역사의 현장에 대한 사진과 필요한 지도들도 잘 실어두었다.

가장 생생한 읽을 거리는 청에 보낸 국서와 답지들이다. 청 황제 홍타이지가 보낸 편지를 보면 조목조목 인조를 꾸짖는 목소리에 공감이 간다. 안타깝고 분한 내용들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분노가 인다. 서인들이 내세운 명분이란 명나라에 충성하고 명나라만 의지하고 오랑캐들의 나라와는 화친할 수 없다는 것이니 국제정세를 파악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볼 수 없을뿐만 아니라 우둔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주나라가 세워지면서 일기 시작한  중국인들의 천명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황제가 되고 아니 됨이 네 뜻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늘이 도우면 필부도 천자가 되고, 하늘이 벌을 내리면 천자도 필부가 되나니, 너의 이 말 또한 망령되도다.' 이는 이미 명나라로 부터도 인정받은 왕임에도 조선이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거부하는 것에 대한 오만함을 말한다. 또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혼자 몸만 산성에 들어있는 비겁함을 지탄하는 글귀에 서슬이 퍼렇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으로 양측의 상반되는 태도와 행동을 유의깊에 보면 척화파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명분이란 게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흑백논리이전에 조금더 바람직한 쪽은 어느 쪽이었을까. FTA 문제나 다른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역사의 교훈은 돌고돈다.

종결부에는 삼전도비 사진이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항복의식을 기록하고 있는 비석이라는 점에서 한민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준비도 없이 명분만을 내세우고 일으킨 전쟁의 결과가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려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선조 13년 부터 효종 2년 까지의 연표를 간단히 정리하여 실어놓아 참고가 된다. 중2와 함께 읽었는데 이렇게 청의를 입고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며 이마에 피가 흘렀다는 당시 인조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국치의 뼈저림이 느껴지지만 이 책은 보다 소상하게 그 과정이 진술되어있어 안타깝고 긴박한 순간들의 현장감이 느껴진다. 척화파 쪽 사람의 일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대체로 기울지 않은 눈으로 보고 쓴 것 같다. 하지만 <산성일기>를 읽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 단면만 보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을 갖도록 다른 역사관련책을 확장하여 읽어나가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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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09-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하겠지만 명분을 지키는 것이 또한 실리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 있겠지요...
우리 역사가 너무나 대의명분에만 치우쳤다면 지금 바로 그걸 돌아보고 미래를 만들어가야하겠지요...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밝게 세우기 위한 발판으로,,그쵸?

마노아 2006-09-0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여행2편이었던가... 하여간 김훈씨가 쓴 에세이집에 이 내용에 대한 내용이 나오거든요. 산성일기 보는 것보다 몇 배의 감동과 교훈을 얻었지요. 근데 책 제목이 기억이 안 나요. 복사도 했었는데...;;;;;

프레이야 2006-09-0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자전거여행 2편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
씩씩하니님/ 참 어려운 문제죠..
 
로미오와 줄리엣 (양장) 세계의 클래식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삐쁘첸코 류다 그림, 김종환 옮김 / 가지않은길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무나 유명한 내용이라 오히려 희곡으로 읽어보려는 시도를 안 하기가 쉽다. 이 책은 중학 2학년과 읽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장정과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그림으로 먼저 눈길을 끄는 이 책은 읽어내려가기에 어렵지 않으면서 시적 감흥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여백을 많이 두어 갑갑하지 않은 편집이다.

원어의 운율을 최대한 살려 번역에 힘을 썼다는 역자의 말대로 소리내어 읽어보면 리듬감이 느껴지면서 노래하듯 읊조리는 대사에 묘미가 있다.  오늘날까지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가 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음으로써 사랑의 결실을 이루며 반목이 심한 양가의 화합을 이루어내는 희생양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당시 중세의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과 이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되는 요인 같은 것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책에 직접적으로 정치, 사회적인 면은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의 정혼에 무조건 따라야하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해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대담한 줄리엣. 성급하고 미숙한 정열의 소유자 같이 보이는 로미오. 이들을 맺어주려고 계획하지만 뜻밖의 사고로 결실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낳은 로렌스 신부. 이들 가문의 반목을 질타하며 평화로운 마을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영주. 이들 가문의 오랜 반목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지만, 장원제도를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어떨까 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전이며 동시에 영원한 사랑의 세레나데다. 곳곳에 성적인 암시가 있는 글귀가 많아 유머러스하면서도, 시적이며 낭만적인 대사 또한 많다. 캐풀릿의 권위적이며 억압적인 대사는 거부감이 인다. 딸에 대한 지나친 사랑일지 가문의 영광을 위한 욕심일지, 이야기 나누어보았더니 의외로 딸을 너무 사랑해서일거라는 대답을 하는 남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단적으로까지 보이는 사랑에 대해,  아이들은 대개 연민의 반응과 함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모해보일지라도 마음속 열정을 따라 사랑의 행동을 거침없이 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것저것 조건을 많이 따지는 오늘날의 사랑과 견주어볼 때,  너무 뜨거워서 순수한, 영원한 연인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이들이 죽고 난 후 양가의 어른들이 세우겠다고 약속한 황금동상처럼 말이다.  잘 변하지 않는 강함과 오묘하며 장중한 빛을 간직한 황금, 그 황홀한 색채로 기억될 것이다.

뒷장에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설명과 그의 작품세계를 3기로 나누어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두었다. 디 카프리오가 로미오 역을 한 영화와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 역을 한 옛날의 영화를 모두 본다면 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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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8-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책받침으로 만들어 다녔던 올리비아 핫세 ^^

음 그 시절...

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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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비아 핫세 이 때 정말 청순하고 예쁘죠!! 이 노래도 얼마나 간절한지요. 집에 있는 이 비디오 다시 봐야겠어요. 아, 저 장면..동영상이랑 노래 무지하게 고마워요^^ 와, 좋아라~~

kleinsusun 2006-08-0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인형 같네요. 너무 예뻐서 현실 같지가 않은.... ^^
그러고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을 희곡으로 읽은 적이 없네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 겠어요.

비로그인 2006-08-08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야 하는 리뷰에요..;;

프레이야 2006-08-0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감사~~ 얼마전 노래방에서 A Time For Us 불러 보았어요. 이 장면 생각하면서요^^ 또또님에게도 감사를~~ ^^

프레이야 2007-01-12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 추천 감사합니다.^^

꽁주맘 2007-03-0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습니다. 중1꽁주와 함께 읽어보고 싶어요. 저두 a time for us 가사
정말 잊지 못해요.^^

프레이야 2007-03-0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꽁주맘님, 중1꽁주가 있군요. 함께 보면 좋을 책이에요. 그림도 좋습니다.
저 노래, 참 낭만적이죠. ^^
 
흰 종이수염 한빛문고 16
하근찬 지음, 강우현 그림 / 다림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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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님의 단편이 셋 실려있는 책이다. 모두 향토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익살스러우면서도 서글픈 삶을 사는 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박한 언어 속에 그들이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이 느껴져 안타깝다. 작가는 전쟁터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헤맨 경험이 있는, 전쟁을 몸소 겪은 사람으로서 그의 작품에는 전쟁과 그것이 남긴 상처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체험이 글에 녹아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작가는 전쟁 자체를 그려내기보다는 그것이 개인에게 입힌 상흔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념적으로 전쟁의 잔인함을 그린다거나 거창하게 국가와 민족, 이념을 그리기보다는 보잘 것 없어보이는 시골 사람을 등장인물로 하여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전쟁이 할퀴간 상처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방식이다.

첫번째의 단편, <흰 종이수염>은 동길이라는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이 아이는 징용 간 아버지 때문에 사친회비도 못 내고 교실에서 쫓겨날 판이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동길이는 이런 현실에 발끈하고 욕설을 내뱉는다. 어느 날 마루에 누워자고 있는 남자는 돌아온 아버지인데 한쪽 팔이 없다. 뎅그러니 흔들리는 오른쪽 옷소매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목수일을 해야하는 아버지로선 한쪽 팔이 없으니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한다. 술에 취해 헐렁대며 들어온 아버지는 흰 종이수염을 만들고 동길은 다음날 거리에서 흰 종이수염을 단 아주 괴상스러운 사람을 보게 된다. 광대옷을 입고 몸의 앞뒤로 극장광고판을 지고 있는 그 희한한 사람의 눈과 동길의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가슴이 덜컥한다. 동길은 흰 종이수염을 건드리며 희롱하는 친구에게 주먹세례를 퍼붓고 모든 상황을 눈치챈 아버지는 그저 "야가 와 이리라노?" 라는 말로 넘기려 허둥대고 있다. 아마도 그 눈에는 눈물이 맺혔을 테다.

작가는 경북 영천이 고향이다. 그래서 여기 작품들의 대사는 모두 경상도 사투리로 나온다. 그 말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참 구수하다. 투박하지만 끈끈한 정이 묻어나는 맛이다. 작가는 묘사를 길게 하지 않는다. 설명이나 자기해석도 자제한다. 간결한 문장과 소박한 단어가 시골무지랭이들의 삶을 잘 보여주면서 그들만이 나눌 수 있는 속깊은 정을 느끼게 해준다. 경상도 말이 그렇듯이 대사 자체도 장황하지 않고 곱살스럽지도 않다. 때로는 그저 침묵(말줄임표)으로 일관하는 부분도 있고 툭툭 내뱉듯이 단어가 끊겨서 나온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속정이 코허리를 시큰하게 한다.

부자간의 속정이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수난이대>다. 태평양전쟁 때 징용 가서 한 쪽 팔을 잃은 아버지와 한국전쟁에 나가 한 쪽 다리를 잃은 아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가슴 저리다.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아들은 지팡이와 고등어를 양손에 나누어 들고 아버지의 목을 꽉 끌어안고 매달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고 잘 건너는 그들. 크레파스로 아이가 그린 것처럼 그려놓은 삽화가 기괴한 느낌을 자아낸다. 희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속에 진한 눈물이 숨어있다.

전쟁이 가져온 불행이 이들에게는 단지 불편함일 뿐이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시대를 한스러워하는 대목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는 가방끈 좀 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짧은 생각이다. 한 쪽 다리로 다니려니 영 불편하다고 말하는 아들과 그래도 살아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 나가서 하는 일은 내가 하고 집에 앉아 하는 일은 네가 하면 안 되겠나?, 이렇게, 버겁고 가여운 삶에 빨리도 적응하며 살아갈 방편에 몰두하는 아버지. 장성한 아들을 업고 한 쪽 팔로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버지의 어깨가 상상할수록 묵직하다. 작가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이들의 대사만으로 전쟁의 아픔을 전해준다.

<전차구경>은 옛날 전차운전수였던 할아버지와 지하철이 개통되는 날을 기대하며 부라보콘을 먹는 손자의 이야기이다. 박물관의 고물 같은 옛날의 전차와 오늘날의 빠르고 깨끗한 지하철을 대비하여 보여주면서 조주사가 느끼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독자를 끌고간다. 산업화로 발전이 가속화하고 인심은 각박해지는 시대에 살고있으면서 옛 맛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못하는 조주사를 통해 옛 것의 미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하루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전차의 속도와 지하철의 속도가 글 전체에서 대비됨을 느낄 수 있다. 옛 것에 매달려 있는 것은 좋지 않겠지만 수수하고 느리며 인정이 느껴지는 옛 전차의 풍경처럼 옛 것을 돌아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속도와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는 조주사의 쓸쓸함이 술기운을 빌어 건들건들 추는 춤 속에 묻어나온다. 골동품이 되어버린 전차는 마치 조주사 자신의 모습인 것 같아 더욱 애절해진다. 요즘 아이들이 이 대목에 공감하기란 어렵겠지만 뭔가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중학 1학년 아이들과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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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7-20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이군요.
제가 그맘때 읽었을 적에도 그냥 그런갑다 했으니 아이들도 그렇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