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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라이카 클럽 전시회 옆지기 출품작 둘.

창고에 많고 많은 사진 중 고심하여 고르고 골랐을 것이다.  

(내 책에 싣고 싶은 사진을 말하면 언제든 무료 창고개방이라 든든하다ㅎㅎ) 

올해는 20주년 기념전이기도 하다. 인사동에서 열렸고 내년 4월에 뉴욕에서도 열린다.

첫 전시회 때 6살이었던 작은딸 데리고 인사동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부산 수정동 Leica III 28mm summaron 5.6 fomapen200




 

창녕 남지 Leica III 28mm summaron 5.6 fomapen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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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12-26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Los Angeles Leica Gallery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West Hollywood 에 있는 Leica Gallery 는 가 본 적이 있는데
내년 4월에 뉴욕에서 열린다는 전시회는
Leica Store New York Soho 의 초대전 같은 것인가요?

프레이야 2021-12-26 14:24   좋아요 1 | URL
네. 그렇다고 하네요. 서울 전시 그대로요. ^^

새파랑 2021-12-26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정말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사진에 대해 모르지만 좋아요 열개를 누르고 싶습니다~!! 20주년 기념전 이 잘되길 바라겠습니다 ^^

프레이야 2021-12-26 14:25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말씀 전해 주면 좋아할 것 같아요^^

초란공 2021-12-2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사진 멋져요!!

프레이야 2021-12-26 19: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란공 님 ^^

튜울립 2021-12-2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축하합니다!

프레이야 2021-12-26 20:40   좋아요 0 | URL
튜울립 님 고맙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1-12-2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주년이면 정말 긴 시간!!
대단한 시간입니다.
암튼 축하드리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1-12-26 22:08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책읽는나무 님~^^

희선 2021-12-27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축하합니다 사진 멋지네요 다음은 뉴욕에서 하는군요 뉴욕에서도 전시회 잘 되면 좋겠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2-27 08:25   좋아요 0 | URL
전해줄게요 고맙습니다 희선 님~^^

mini74 2021-12-27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빨간딱지! 꿈의 카메라 ㅎㅎ 프레이야님 옆지기님 축하드려요. 이렇게 멋진 사진들이 무료개방이라니 ㅎㅎ 짝꿍 찬스가 좋은거군요. 저희는 음. 뭐가 있을까요 찬스라. 음.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1-12-27 14:29   좋아요 1 | URL
히히 찬스치곤 괜춘하지요.
미니 님도 언능 뒤져봐요. 있을 거에요 한둘은 ㅎㅎ
고맙습니다, 미니 님.
 

1.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이용한 글/사진



이용한 시인은 길냥이들의 사진을 따스하고 재치있게 담는다. 시도 따스하지만 시인이 길냥이들과 함께한 15년 세월과 그 시선이 참으로 도탑다. 오래 전 다큐멘터리 <고양이 춤>으로 먼저 알게 된 이후 팬이다. 이 책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는 며칠전 서울 혜화동 가서 작은딸이 3년간 열공하며 지낼 방을 새로 구하고 연남동으로 이동하여 책방 '아침달'에서 구매한 책들 중 하나다. 본문의 글과 사진 편집이 보기 좋고 색감이 사랑스럽다. 책등도 제본을 노출시켜 특이하고 책장을 넘기면 뻣대지 않고 양쪽으로 순하게 활짝 펼쳐진다. 냥이들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몽글몽글 녹아내린다.


"세상은 이리도 춥고 눈까지 내리는데, 고양이는 어쩌자고 이리도 어여쁜 것인가."

"길고양이들아, 이제껏 그래왔듯이 죽을 때까지는 죽지 말아라."

"인간이 망가뜨린 이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운 건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지."


사실 고양이를 기록하는 일은 용기보다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기술보다 애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좋은 고양이 사진은 고양이에 대한 소통과 교감에서 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고양이의 허락 없이는 고양이 사진도 찍을 수 없으므로 무엇보다 고양이의 이해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무턱대고 사진을 찍는 것보다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고양이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서로가 신뢰하는 관계라면 고양이의 행동과 표정에서도 자연스러움과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법. 나머지는 그냥 운에 맡기자.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 5-6쪽)


가지고 있는 이용한 고양이.















아침달 책방 내부 (2021. 12. 23)


아침달, 시크릿북



2.

부산 금정구에 있는 '카페 소록'에 우연히 갔다. 주변 카페를 찾다가 이름이 친구 눈에 먼저 들었다. 나도 오케이. 식물원 옆 2층 단독주택의 1층, 대문을 들어서자 초록 나무들이 울타리 삼아 선 안쪽으로 동그란 마당이 적당한 크기로 보였다. 통유리창 앞 구석에 스티로폼과 나무상자로 만든 고양이 집이 보였다. 잔디 위로 햇살이 한가득, 마당냥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다섯 길냥이가 카페 마당에서 햇살도 쬐고 서로 장난 치며 뒹굴고, 유독 한 녀석은 어찌나 붙임성이 좋아 카페 안에 들어와 제 집처럼 살았다. 소파에도 올라오고 햇살 따스한 통창 앞에서 세상 편안하게 졸고. 귀여운 냥이 젤리 발바닥 모양 수면양말 두 켤레를 샀다. 길냥이들 돕는 데 쓴단다. 커피도 원두 퀄러티가 좋아 마음에 들었다. 아메리카노는 잘 안 마시는데 이곳은 원두가 좋아 괜찮았다. 이번에 일행과 점심 식사를 하고 가서 그랬지만 다음에 가면 쑥떡쑥떡라떼를 야심차게 마셔야지ㅎㅎ

금정구 숨은 골목 나들이 관광명소로도 선정된 카페 소록, 좋아요. 


카페 소록냥 (2021. 12. 21 아이폰12 배혜경)



3.











수필가 배혜경이 영화와 함께한 금쪽같은 시간.

_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책에서 언급하려다 뺀 주제가 3가지 있다.


첫째, 아동폭력 _ 아무도 모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자비에 르그랑)

둘째, 홀로코스트 _ 사울의 아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카운터페이터(슈테판 루조비츠키)

셋째, 고양이 _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고양이 춤.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


페크 님이 얼마전 페이퍼로 정보를 주셔서 국제신문 시민기자에 반려동물 부문으로 지원했는데 통과. 28일날 있을 사진찍기와 기사쓰기, 두 시간 교육시간을 안내받았다. 새로운 글쓰기가 될 것이다. 합격자 명단에 아는 이름이 두 사람 보였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여전할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세월이 6년 정도 흘렀다. 내년에는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될 길냥이와 우리집 착한 고양이 모꾸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인연은 뜻밖일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예감되기도 하고 서로 나누는 관심으로부터 이어진다. 좀더 살갑게 눈길 주고 자세히 담고 느껴야겠다. 고양이 눈이 얼마나 매혹적인지는 고양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에겐 안비밀.^^ 우리는 서로 깊이 나긋하게 바라볼 것이다.


12월 2일 부산일보 '이주의새책' 소개.  
12월 24일 아침 KNN 모닝통통통 '오늘의책' 소개.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 ^^ 감사드린다. 

여러 곳에서 메시지와 블로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셔서 이런저런 귀한 마음과 마주한다.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다. 내년엔 더욱 겸손하게 또 심지 굳게, 자연스럽게 나아가야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책의 목차에 총75편의 영화가 적혀 있다. 모두 내겐 어떠한 의미로 좋은 영화이지만 아래 6편은 그중 꼭 권하고 싶은, 내가 고르는 최고!!!(내 취향일 수도)


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1.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2. 바베트의 만찬

3. 미안해요 리키

4. 아무르

5. 실락원


특히 요즘 <아무르>를 만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냉엄한 성찰을 자꾸 떠올린다. 미하엘 하네케 최고!

누워 계신 아빠 걱정을 늘 하면서도 매일은 못 가보고 그 와중에 좋은일도 겹쳐 생기고 해야할 일과 만나야 될 사람과 자리도 띄엄띄엄 있으니 사는 일이 그런 것인가 보다. 생의 비의는 담담히 안고 소소한 기쁨으로 흘러가는 안온한 일상. 오늘 오후에 엄마 드실 반찬 조금 만들어 가봐야지. 



연남동 열정타코 옆 요거트카페 'YOU NEED MY YOGURT' (2021.12. 23. 라이카)

가족이라는, 대체로 슴슴한 것 같지만 짠내 나는 이름. 딸들, 많이 컸고 잘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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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2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에 있는 고양이 편안해 보입니다 따듯한 볕 쬐고 자는군요 분위기 좋은 카페군요 맨 앞에 책은 알라딘에서 나온 거 봤습니다 저는 어쩌다 한번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지만 함께 사는 사람은 고양이가 가진 좋은 걸 많이 알겠습니다 프레이야 님도 그러시군요

프레이야 님 축하합니다 국제신문 시민기자 반려동물 부문에 붙다니... 앞으로 함께 사는 모꾸를 더 잘 보시겠습니다 모꾸뿐 아니라 다른 아이도 만날지 모르겠군요


희선

프레이야 2021-12-27 08:30   좋아요 0 | URL
카페 소록에 같이 간 친구 중 하나는 집에 냥이 둘이랑 동거해요. 저보다 오래되었구요. 그 둘이랑 동거하게 된 이유도 제가 알고 있는데 이야기가 많답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냥이랑 인연을 맺게 되더군요. 요즘 날이 추우니 길냥이들 너무 추워 보여요 ㅠㅠ 카페소록냥이 는 편안해 보였어요. 고양이들도 저마다의 운명을 타고 나는 듯요. 이용한 시인의 고양이책들 모두 사진과 함께 참 좋아해요. 모꾸는 그냥 🧡 고맙습니다 희선 님. 연말 따스하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1-12-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프레이야 님, 국제신문 시민기자 되셨군요, 이런 사실은 제게 비댓으로라도 알려 주셔야죠. 히힛...
저도 일간지 시민기자도 해 보고, 오마이뉴스의 기자도 해 봤답니다. 그냥 거기서 문자나 이메일 올 때
기자, 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는 늙어서도 주부라는 존재 이외에, 사회에 다리를 하나 걸치고 사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살고 싶어용.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2-29 00:51   좋아요 1 | URL
페크 님 정보 주신 덕에 덜커덕 됐네요. 오늘 저녁 다녀왔어요. 틀에 박히지 않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봅니다 또.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 같아요. 우리 양다리 걸치고 사는 기분으로다가. 고맙습니다 페크 님.

가필드 2022-02-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1,3봤는데 빈폴과 2,4만 보면 되겠네요 프레이야님 책과 함께 영화 고르는 안목이 상당하십니다

프레이야 2022-02-13 16:27   좋아요 1 | URL
가필드 님 반갑습니다^^
실락원도 보셨나요? 파격적이지만 전 상당히 좋았어요. 오래전에 볼 때보다 나이가 좀 들어서 보게 되니 와닿는 지점이 좀 달랐다고 할까요. 마지막 장면도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가필드 2022-02-13 16:31   좋아요 1 | URL
실낙원 괜찮을것 같아요 워낙 제목이 유명해서 나이가 들어 보면 좋을것 같은데 제 나이도 적지 않은 나이라 한번 봐야겠네요 보고 깊이감이 덜 오면 10년 후에 다시 보는 걸로 ^^ 추천감사합니다
 

E-Book












도시고속도로로 올라가는 길목을 앗차하는 순간에 놓쳤다. 차는 30분 동안 시내를 뱅뱅 돌았다. 우리는 뜬금없이 시내투어를 하고 겨우 고속도로로 올랐다. 길을 벗어난 눈 앞에 툭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싶은 순간부터 마음이 새파란 하늘에 둥둥 뜬 구름처럼 가벼워졌다. 겨울 햇살이 유난히 따스해 봄날 같았다. 운전을 터프하게 하는 내가 기사를 자처했으니 일행은 한배를 탄 몸이 되었다. 


유호리 들어가는 길목의 추어탕집에서 우리는 대장님과 만났다. 오누이문학공원 맞은편으로 한낮의 온기가 퍼지는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했다. 이호우, 이영도 남매의 생가 맞은편, 오래된 정미소가 있는 그 골목은 여전했다. 정미소 옆에는 낡은 의자가 뎅그러니 놓였다. 누가 앉았을까, 누구더러 앉았다 가라는 걸까. 방앗간에서 꼬순내가 진동했다. 남매의 생가는 이제 청도군에 속한다. 2017년 4월, 생가 옆에서 마지막으로 집을 지키고 있던 고령의 조카며느님을 뵈었고 그분의 집 안마당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참 고왔던 그분은 이제 세상에 안 계신다. 


참기름을 한 병씩 사고 예정된 곳으로 앞 차를 따라 달렸다. 거의 다 와 간다 싶은 나들목에서부터 길가에 하얀색 꽃을 매단 나무가 보였다. 겨울나무 특유의 단단함이 느껴지는데 키가 그리 크지는 않고 나뭇가지 끝마다 하얀 방울을 달고 섰다. 저게 뭐지? 누구는 목련꽃 봉우리인가, 또 누구는 벚꽃인가, 또 다른 누구는 설마 이팝꽃 그런 건 아니겠지, 했다. 마지막 대사는 바로 나.ㅎㅎ 뭐지?  우리 나이의 여자들은 길을 떠나 만나게 되는 꽃들에 관심이 많다. 생김새에 감탄하고 색깔에 환호하고 가까이 닿는 거리에선 어김없이 코를 갖다댄다. 이름을 알지 못하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 꽃들은 철이 없어서... 이 맛없는 대사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우리가 아는 꽃은 다 떠올려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름. 당신은 누구인가요? ㅎㅎ 우리는 가닿을 수 없는 그 겨울 꽃송이를 아쉬운 듯 뒤돌아보며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시외로 나오니까 길 잘 찾네요. 호홋~ 옆자리 앉았던 분의 따순 말.


묻지 말라고 해서 아무런 정보없이 끌려 갔다. 우리 어디 산속으로 납치당하는 거야, 틈을 잘 보고 탈출하자는 둥 별별 우스갯소리를 나누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농담마저 유쾌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로 접어들어 마을회관 맞은편, 말로만 듣던 전원주택의 큰 대문이 열렸다. 아주 너른 잔디마당을 낮은 산과 감나무들이 둘러쌌다. 시래기가 몸을 축 늘어뜨리고 풍욕하며 우리를 맞았다. 집은 만듦새가 참하고 정갈했다. 햇살을 잘 받는 방향으로 앉아 통유리 밖으로 하늘이 안겨들었다. 


마당의 햇살이 사라지기 전에 대장님을 따라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준비했다. 가져온 꽃을 화병에 꽂고 데크가 무대로 멋지게 변신하는 데 완벽한 역할을 한 길고 하얀 천 위에 간격을 두고 놓았다. 유키 쿠라모트의 두 시간 짜리 피아노 곡이 흐르고 우리는 작은 문학제를 시작했다. 각자의 수필을 낭독하고 골라온 겨울 시를 읽고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 첫 수필집을 출간한 다른 분과 함께 마련해 주신 작은 출판기념회. 이렇게 호사를 받을 줄 몰랐던 나는 그만 눈물이 터져 제대로 글을 읽지 못할 정도였다. 


저녁이 되자 하늘엔 하얀 반달이 두둥~ 아이폰12 실내 촬영.



16년, 그동안의 시간이 파노라마로 흐르며 진심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오며 때론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혼자가 아니었구나 느꼈다. 나는 누구에게도 글을 먼저 보여 수정하거나 도움을 받지 않고 내맘대로 써왔다. 물론 아주 초기 습작 때는 아카데미 교실에서 강평작을 내게 되어 있으니 그랬지만. 후에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만함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1년 지나 등단 후 나는 소위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자기 글을 발표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고민하며 수정하고 퇴고까지 해야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해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남들에겐 자만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래서 부족함이 있겠으나 그것마저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밉게 보지 않고 단단함을 묵묵히 지지해 주시는 대장님의 마음이 읽혀서 더 감동했다. 이 은혜를 어찌 해야하나. 빚이 늘어난다.


우리는 대장님이 준비해 오신 회로 맛난 저녁을 먹고 와인과 고량주와 샴페인과 복순도가까지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허심탄회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술도 안주도 내가 제일 많이 먹었는데 취하지 않았다. 내 기분을 읽었는지 대장님이 날 콕 찝어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 책을 낼 때마다 기분이 어땠느냐고 질문하셨다. 말수가 적은 나에게 속풀이할 기회를 주신 걸 알아챘다. 내 이야기를 진솔하고 차분히 할 수 있는 자리인데 누군가에 의해 자꾸 끊기고 어째 한두 고비 참고 넘기면 또 끊으려고 해서 할말이 두서없고 또 끊길까 봐 마음 급하고... ㅎㅎ 그분은 누구의 말이든 어떤 내용이든 모두 자르고 자기말로 마침표를 찍는데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여러 해 동안 겪으니 울분이 차 숨이 막히네. 내 맘도 좀 알아 주오.ㅎㅎ 잘릴까봐 경기가 드려고 합니다요. 말 잘리면 돈 잘리는 것보다 더 원통한 법인데...  이러니 저러니 하며  밤을 새울 수도 있었는데 그만 자야겠다고 ... 아이고. 좋은 사람들 같으니라구.^^  


다음날 아침 새소리 닭소리에 깬 우리는 모닝커피를 드립해 마시며 겨울시를 낭송했다. 8시가 되자, 약속대로 가까운 저수지로 나갔다. 물안개를 보여주고 싶어하신 대장님의 계획이 있었는데 물안개는 전혀 피어오르지 않았다.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잔잔한 물결과 물웅덩이 반영과 가벼이 날아가는 한 무리의 새를 바라보며 고요히 마음에 담는 지금 이 순간이 또 빛나는 추억의 한 장이 될 거라고 예감했다. 


요고저수지 아침 8시경, 배혜경 아이폰12 촬영.



재첩국에 정구지 잔뜩 넣어 아침을 먹고 소태리 소재 오층석탑을 보러 나갔다. 고려시대 석탑이 귀퉁이가 조금씩 날아간 채 하늘을 찌를 듯 절 앞에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기단의 연꽃 문양이 풍화에도 남아 있었다. 흔히 아는 풍경의 다른 말인 풍탁과 풍탁 안의 물고기를 빗댄 탁설에 대한 생각의 씨앗을 얻었다. '설'은 '혀'다. 혀!!!

49재를 올리는 목탁과 불경소리가 울리는 절을 내려오다가 전날에 보았던 그 하얀 꽃과 같아 보이는 꽃을 다시 만났다. 바짝 마른 겨울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그 꽃을 다시 보아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매화인가? 말 자르기 잘하시는 그분이 말했다. 계절적으로는 매화일 가능성이 제일 크겠다고 내 혀가 공감 버튼을 눌렀다. 어딘가에는 벌써 철쭉이 피었다고 하니... 손이 가까이 닿을 수 있으면 꽃이름 찾기 앱을 실행해 보겠는데 거리가 멀다. 그분은 또 카메라로 줌인하여 들여다 보았지만 고개만 갸우뚱. 우리는 왜 이 꽃의 이름을 알려고 하지? 당신의 이름은 모르나 겨울 찬바람에 내민 새초롬 얼굴과 떨린 마음을 흠모하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의 본문에는 6개의 흑백사진이 자리한다. 영화의 내용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았다. 표지사진처럼 옆지기의 작품이고 창고를 통째 열어주어서 많은 사진 중 신중히 뒤져 골랐다. 갯수가 너무 많아도 별로이니 6개로 적절히 간격을 두어 배치했다. 그 사진을 여기에 정리해 둔다. 각 영화가 시작하는 바로 앞 쪽에 자리한다. 



1. 디 아워스 The Hours / 스티븐 달드리





2. 밀양 / 이창동





3. 토베 얀손 Tove / 자이다 베르그로트





4. 도쿄 소나타 / 구로사와 기요시





5. 데몰리션Demolition / 장 마크 발레





6. 에필로그





문학단체 연말행사도 마쳤고 이제 올해 남은 일은 우편 발송할 것들 마저 하고, 전시회 두 군데 가서 인사할 것(한 분은 사진, 한 분은 그림), 친구모임과 글벗모임 하나 더 그리고 추석을 앞두고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유골함을 안치한 추모의 공원에 가서 책 한 권 올리는 것이다. 아버님과 좋지 못한 어떤 일이 있어 그동안 책 한 권도 보여드리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에필로그에서도 진심을 드러냈지만, 이렇든 저렇든 한 세상을 애면글면 살다가는 일이란 존경과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 겨울, 우리의 계절이 그렇게 말한다. 



겨울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사랑이 온다.



- 이튿날 아침 커피 타임에 내가 낭송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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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3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 잘리면 돈 잘리는 것보다 더 원통한 법에 ㅎㅎ 웃음이 났어요. 어떤 분위기인지 눈에 그러져서요 ㅎㅎㅎ 안그래도 흑백사진들 넘 좋았어요. 밀양 속 거울 사진은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넘 어울렸구요 ~ 프래이야님 축하받으신거 축하드려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1-12-13 18:13   좋아요 1 | URL
그죠. 올매나 원통한데요.ㅎㅎ막 숨이 차요 안 짤릴라구. 그 분위기 어쩔 ㅋ
그래도 좋은 사람들 덕에 이 겨울이 안 춥겠죵.
옆지기 흑백사진은 저도 좋아해요. ㅎㅎ 사진 저작권료도 안 주고 막 써요.
밀양의 신애가 쳐다보던 저 거울과 흙마당은 영화 속 장면과 거의 같지요.^^
고맙습니다 미니 님. ㅎㅎ

scott 2021-12-13 1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나는 프레이야님 책 ✌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행복하돵~~^ㅅ^

프레이야 2021-12-13 17:33   좋아요 1 | URL
어젠가 예전의 북플 글이 뜨면서 앵두를 찾아라 발간 인사 페이퍼에서 스캇님 축하 댓글을 봤지 뭐예용.
어찌나 반갑던지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 있죠. 이노무 기억이란 게... 흐흑...
오랜 인연, 감사해요 스캇님.^^
떨리는 겨울사랑 합시닷~

2021-12-13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3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12-13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순정한 프야님! 고운 눈물 흘리셨군요!! 다시 축하드립니다!!! 저는 지금 찔끔찔끔 읽고 있어요. 15일이 학기말 시험이라.ㅠㅠ 시험 끝나면 열심히 열중해서 읽을게요!!! 프야님의 책이 아주 좋아요!!!^^

프레이야 2021-12-13 18:00   좋아요 2 | URL
씩씩하고 똑똑한 라로님 열공 중 화이팅!!
무조건 집중하고 학기말 시험 일등하기요~^^

페넬로페 2021-12-13 2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촐한 출판기념회 좋아요~~
저는 영화 1,2는 봤는데 나머지 영화를 못 봐서 사진의 이미지가 이해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영화부터 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21-12-13 21:31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 님 고맙습니다^^
이미지는 저만의 느낌일 수도 있어요.
회전목마는 ‘데몰리션‘의 풍경 중 인상적이었어요.
놀이공원 가면 다른 건 무서워서 회전목마만 타는데
저는 이 회전목마라는 게 빙빙 돌아가면서 아래위로 움직이고 천천히 가다가 점점 빨라지고
그러다 점점 느려지고... 그러는 호흡이 좋아요. 주인공이 회상하는 나른하고 평화로운 풍경.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생각나는 님. 호호~

페넬로페 2021-12-13 22:05   좋아요 2 | URL
전에 어떤 서재 친구분께서 저의 이름이 페넬로페 크루즈에서 가져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ㅎㅎ
그녀에게서 가져오지 않았는데 저 역시 페넬로페 크루즈의 팬입니다.
영화 ‘내일의 안녕‘ 을 넘 감동깊게 봤어요^^

프레이야 2021-12-13 22:12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가 스페인 이름으론 흔한 거 같아요. 내일의안녕은 안 봤네요. 전 빨간 구두, 귀향, 글로리 앤 패인 등등. 특히 전 귀향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참 좋았어요. ^^

프레이야 2021-12-13 22:55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 님이 감명 깊게 보신
내일의 안녕, 찾아서 봐야겠어요.
봐야 할 것 많아서 햄볶는 나날^^

새파랑 2021-12-13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의 시 낭송 왠지 감성적이고 낭만적이네요 ^^ 뭔가 영화같은 하루를 보내셨네요~!! 출판기념회 축하드려요 🎉

프레이야 2021-12-13 21:35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새파랑님.^^
생각지도 못했는데 완벽하게 준비하여 영화같은 힐링 시간을 주셨어요.
모든 게 때가 있듯, 이것도 너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니
이때 꼭 베풀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몸도 마음도 살이 포동해졌네요.
공간이동이 필요하죠 때론. 공간을 바꾸면 다른 시간이 주어지더군요.
어느새 꿈인듯^^

stella.K 2021-12-13 2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이러니 그 새벽에 깨어서 프레이야님을 생각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이 페이퍼를 보려고 그랬나 봅니다.
프님의 글도 좋지만 옆지기님 사진 정말 예술이네요.
나중에 전시회 한 번 하시죠. 진심입니다.ㅎ
글구 대장님도 멋진 분 같습니다. 그런 분 곁에 계시면 든든하죠.
프님은 복이 많으신 분 같습니다.
저도 축하합니다. 출판기념회!^^

프레이야 2021-12-13 22:07   좋아요 3 | URL
오홍 스텔라 님 고맙습니다.^^
새벽을 깨운 제가 영광이에요.ㅎㅎ
예전에 제 서재 카테고리 중 ‘옆지기사진이 물고 온 짧은 생각‘
기억하시나요? 그걸 언젠가부터 비공개로 두었어요.
개인전시회는 아직인데 단체전은 매년 12월에 하고 있어요.
라이카클럽 전시회. 지금 인사동에서 하고 있구요.
코로나로 그냥 상경 안 하고 작품만 보내더군요 이번엔.
언젠가 꼭 하면 좋겠는데 아직은 무춤하니 그러네요. 너무 진중해요 ㅠㅠ
대장님은 열정이 말도 못하게 많은 분입니다. 오래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책읽는나무 2021-12-13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운전을 못해서인지..운전 잘하는 여자들 부럽고 멋있어요...특히 터프하게 운전하면 더 멋져요ㅋㅋㅋ
저런 출판 기념회 파티도 괜찮네요,?
풍경들이 예쁩니다^^

프레이야 2021-12-13 23:34   좋아요 3 | URL
운전은 소심하게 해야 잘하는 건데요 ㅎㅎ 어느 남성분 포함 세 명을 태운 적이 있었는데 남성분 왈 여성이 운전하는 차 같지 않다구 ㅎㅎ 늘 조심해야 해요.
오붓하게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님*^^*

희선 2021-12-15 0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책은 전자책도 바로 나왔군요 겨울에 핀 흰 꽃은 무슨 꽃이었을지... 요즘은 철과 다르게 꽃이 피기도 하죠 때에 맞춰 꽃을 피우고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를 보면 대단하다 싶어요 출판기념회를 열어주시다니 프레이야 님 기쁘셨겠네요 아침에는 시도 낭송하다니 그 시간도 좋았겠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2-15 08:59   좋아요 3 | URL
재작년에는 에세이토크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분과 작은 행사를 하여 같이 축하했는데 대장님이 적극 응원해 주셔서 그때도 감사했어요. 이번엔 더 감동이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에게 빚이 늘어나요. 희선 님 날이 추워지네요. 건강히 지내세요 ^^ 목관리 잘해야겠어요.

2021-12-16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6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12-16 01: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출판기념회 자리를 쓰신 이 글 자체가 예술의 전당, 전시회 공간 한 칸의 전시처럼 사진과 술(^^:;;은 안 어울리긴 하네요. 전시장과는)과 프레이야님의 책과 예술적 정서가 물씬 물씬...

글만 봐도 감동적인데 프레이야님 정말 시야가 흐려지실만 하네요^^

저는 프레이야님의 신혼시절 하얀 스커트 하얀 블라우스 차림의 어느 순간이 눈에 막 그려지면서, 혼자 프레이야님의 첫 신혼집 골목을 상상했지요...^ ^

프레이야 2021-12-16 09:23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지하철 내려서 그 집으로 가는 골목은 골목이라기엔 좀 넓은 주택가 골목길인데 늘 조용했어요. 쉬폰스커트 나풀거리며 천지도 모르고 ^^ 살면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좋아서 ㅎㅎ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설정이지만 아마 기억을 잃게 되어 한 가지만 기억에 남는다면 전 그 장면이 될 거 같아요. 누구나에게 그런 한 가지 장면이 있을 것 같아요 얄라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늘도.

그레이스 2021-12-16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노해 시
가끔 주변을 살피고 마음을 정돈하고 다잡게 해요~

프레이야 2021-12-16 16:02   좋아요 1 | URL
한결같은 마음이 참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겨울을 사랑해야겠어요 ^^

건수하 2021-12-16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서재의 달인이 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

프레이야 2021-12-16 17:48   좋아요 1 | URL
옴마야 이런 영광이요.
수하 님 아니었으면 몰랐을거에요. ㅎㅎ
고맙습니다

psyche 2021-12-23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운 출판 기념회에요!

프레이야 2021-12-25 22:37   좋아요 0 | URL
프시케 님, 뜨개옷 입은 강쥐 ^^
고맙습니다. 따스해요.
 

알라딘 마을의 여울 님은 시인화가다. 계간 <부산수필문예> 편집 책임을 맡은 후 표지그림을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그림을 내어 주셨다. 모두 8점이다. 특히 2021년에는 여울 님의 판화를 모셨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고 특히 테마가 '책 읽는 사람들'이라 더 당겼다. 판화 두 점만 소개하고 싶다. 


2021 겨울호


2021 여름호



여울 님은 꾸준히 전시회를 연다.  아래 엽서는 여울 님의 네 번째 개인전 그림이다. 



포항 달팽이책방 2021.12.3. ~ 12.31.

경계를 살핀다. 떨린다. 흔들린다.

봄여름가을겨울이란 그릇의 테두리를 딛고 그 경계를 살다.

손길 맘길에 걸린 것들이 스스로 들어와 살아진다. - 전시의 변, 중



네모 칸 안에 있는 물고기가 궁금해 물어 보았더니 개복치라고 하신다.

개복치는 처음 들어본 물고기라 신기하기도 하고 더 캐물었더니 녀석은 놀라기만 해도 죽는다고, 조심조심하라고, 쉬 ㅁ 안에 물고기 잘 키우시라고 전한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하셨지 감탄하며 역시 시인,이구나 싶었다.


개복치는 흔히 유리멘탈의 대명사로 불린다. 가장 덩치가 큰 물고기로 복어과에 속하지만 부레는 없다. 한 번에 3~4억의 알을 낳는 물고기이지만 멸종 위기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나지만 특히 포항에서는 집안 대소사에 개복치로 별미를 만들어 먹어 왔다고. 포항을 검색해 보니, 개복치 요리를 하는 식당이 좀 있다. 맛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먹어 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주변에 먹어본 사람이 없다. 식용으로 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몸에 40여 종의 기생충이 내외에 살지만 스스로 떨어내는 방법들을 쓴다고 한다. 몸에 오히려 항생물질이 있어서 다른 물고기들이 개복치의 몸에 와 살을 부빈다고 한다. 


개복치가 유리멘탈의 대명사로 불리는 건 어쩐지 예민함이 과장되었거나 일부분만 봐서 붙여진 것 같다. 예민하지만 강인한 멘탈이라고 보는 쪽이 더 많은 듯. 해파리를 먹어치우는데 덩치가 크니 이거저거 먹는 양이 많다고. 사람의 경우에도 덩치 커도 겁 많고 상처도 잘 받는 사람이라는 건 똑같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이미지로 볼 뿐. 그리 건강하고 탄탄하던 아빠도 지금 병실에서 염증치료 중인데 잘 이겨내고 돌아오시길 기도한다. 맛난 거 좀 더 드시고 좋은 경치도 좀 더 보시고 그래야 하는데.... 미음만 겨우 드시고 있다. 토요일에는 흰밥 새로 하고 반찬 좀 만들고 과일이랑 모찌랑 허리복대랑 비타민 씨랑 챙겨서 상주보호자로 있는 엄마에게 전해드렸다. 아빠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장기전으로 갈 것 같다고 엄마가 책을 챙겨오라고 하셔서 시집이랑 수필집 한 권이랑 내 책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를 이제야 전해 드렸다. 아빠에게 글씨 좀 써 달라고 했는데 기운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카데미 교실에 가서 2차 책나눔을 하고 도와준 글벗이랑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은 관계가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 스승은 도처에 있다. 내일은 3차 책나눔. ^^ 집에 돌아오니 그새 피드백 주신 오래 봐온 글벗이 두 분. 피드백 주신 서재지기 님들과 더불어 힘이 되는 사람들. 감사합니다. 


다시 개복치로 돌아가자. 여울 님의 깊은 뜻이 담긴 전시회 이름과 엽서를 받고 마음이 평안하다. 쉬 ㅁ 안에 물고기 잘 키우시라니!  우리 집 수족관에는 물고기들이 노닌다. 좁은 공간에서도 그 세상이 다인 듯 생기발랄하게 산다. 수족관 청소를 얼마전부터 남편이 보름 간격으로 하는데 수초가 깨끗해지지 않아 좀 마음에 덜 들지만 물고기들은 별탈없이 잘 산다. 내 마음의 수족관에는 개복치 한 마리 다독다독 잘 키우고 돌보고 그래야겠다. 몸도 마음도 의식적으로 '쉼' 할 필요가 있다는 건 진리. 어떤 일에도 너무 놀라지 말고 담담하게 조심조심!  


그래서라기보다 며칠 전 순창에 갔다. 병실에 계신 두 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이 순간의 날들을 미룰 수도 없는 일. 그렇게 합리화하며 길을 나섰다. 먼저 칠보식당(일명, 아무거나안주)에 들러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 조용필의 '상처'를 부르던 여주인 이모의 음식을 먹었다. 전국에서 고사리조기매운탕을 먹으러 오는 바람에 고사리는 동이 나고 없었다. 대신 갈치감자탕. 맛났다. 허영만 님이 적어놓기를, 여주인의 조기매운탕은 외로운 여자의 분풀이라고. ㅎㅎ 한풀이 아니고 분풀이. 부산 초량에서 태어났다는 주인 얼굴에 생의 여러 무늬가 느껴졌다. 고추장마을로 가서 김점례할머니 고추장이랑 된장이랑 장아찌들 세 가지 사고, 금산여관에 들러 사진을 좀 찍었다. 동네 골목에 있는 80년 정도 된 옛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민 금산여관. 주인은 안 보였다. 그냥 투박하고 자연스럽게 각 방문과 구석마다 세계 여러 곳의 느낌을 가져다 꾸며 놓았다. 입구에 모멘트립,이라는 작은 커피집이 또 분위기 있었다. 허름한 듯 이국적이면서 편안한.... 


2021. 12. 2.  배혜경, 아이폰12 촬영


2021. 12. 2.  배혜경, 아이폰12 촬영



강천산군립공원은 입장료 3천원. 입구에서 1.7km 강천사까지 가는 산길에 초겨울나무와 병풍폭포와 잔설이 보이고 계곡물 소리가 명랑하게 들렸다. 물이 어쩜 그리 맑은지 수면 아래가 다 보였다. 꼭대기까지 가지 못하고 강천사에서 돌아내려왔다. 페크 님의 뒷모습에 이어 나의 최근 뒷모습. 그 옛날의 날렵한 뒷모습과 다른 느낌이다. 패딩이 넘 두툼했다. ㅎㅎ



강천산군립공원 내려가는 길. 옆지기 라이카 촬영



덧) 개.복.치 삼행시 심심풀이로 해 볼까나. 심심하시면 댓글로 주세요.^^ 

개. 개성 있고

복. 복 있고

치. 치명적인 매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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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2-06 2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행시 저리 지으시고 감당이 되시던가요?ㅋㅋㅋㅋ
와, 근데 판화 정말 예술이네요.
마지막 사진도 멋지고.
프레이야님은 삶 자체가 예술에 둘러 쌓인 것 같습니다.ㅎㅎ

프레이야 2021-12-06 21:30   좋아요 3 | URL
헉, 저랑 삼행시 연관지으시면 아니 되옵니다.ㅎㅎ
그냥 나오는대로 쉽게요...
스텔라님도 한 수 지어주고 가시어요.ㅋ
여울 님 판화, 사진은 옆지기 작. ㅎㅎ

stella.K 2021-12-06 21:45   좋아요 1 | URL
아, 못 적었는데 마음이 좀 무거우시겠어요.
힘내십시오. 아버님은 잘 이기시고 곧 건강해지실 겁니다.
어머님도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저는 시를 배우다 말았죠. 3행시 배울 때 졸았답니다.ㅠ

프레이야 2021-12-06 21:5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스텔라 님.
담담하게 조심조심^^

책읽는나무 2021-12-06 2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님들 중 예술가들이 많아요.
그 중 여울님의 그림도 멋지시던데 판화도 제작하셨군요? ‘책 읽는 사람들‘이란 테마는 문득 우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넘겨 짚어 보게 되구요ㅋㅋㅋ 판화를 들여다 보니 문득 수암님도 떠오르네요~^^
예술가들을 알아보는 프레야님의 시선도 따뜻합니다.
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드리겠습니다.

프레이야 2021-12-06 21:36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잘 나으시겠지요.
‘할아버지의 서재‘ 서재지기 수암님 민화 판화전 2년 전인가 북촌에서 하셨는데
저 갔더랬어요. 정말이지 놀란 게, 오래도록 노트를 하셨더군요. 목판화랑 그 세심함과
꾸준함에 존경심이 마구마구. 여전히 그 멋진 중절모 쓰시고 젠틀하시고 건강해 보였는데
지금 또 건강이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연세가 있으셔서요ㅜㅜ
진석이도 고등학생이라고 들었어요.
여울 님 전시 포항이니 가 보셔도 좋을 듯요. 나들이삼아 옆지기님이랑.

책읽는나무 2021-12-06 23:44   좋아요 0 | URL
진석이~♡
대학생이 되었는 줄 알았더니 아직 고등학생이군요?울 큰애랑 한 두 살 위였는지?아래였는지?기억이 가물합니다^^
판화전 다녀오셨었어요?
오~멋지십니다^^ 저는 예전에 우편으로 도록을 받기만 했었어요.도록을 보면서도 깜짝 놀랐습니다.
맞아요~수암님은 멋쟁이 신사로 기억됩니다^^
여울님도 포항에 계시군요?
나중에 기회 되면 둘러보고 싶네요~^^
일단 시계를 보니 12시 되기 직전이군요?
12시 전에 삼행시 도전!!!
개..개연성 있는 걸루
복..복구해 주십시오.
치..치사하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썰렁하네요...잠이 오려나 봅니다!!ㅋㅋㅋ

프레이야 2021-12-07 00:04   좋아요 1 | URL
ㅋㅋ 뜬금없는 개.복. 치. 웃음 주네요.
진석인 할아버지의 세심한 사랑을 듬뿍 받아 잘자란 청년이 되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대학생 입학했으려나 아니면 내년에 하려나 그쯤 될 것 같아요.
세월 빠르지요^^

scott 2021-12-06 21: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빨간 모자 쓰신 프레이야님 한 폭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 멋집니다 !!

프레이야 2021-12-06 21:34   좋아요 2 | URL
뒷모습 사진도 이제 늙네요.ㅎㅎ
초겨울 풍경이 다하지요. 눈이 왔었는지 여기저기 잔설이 보였어요.
좋았습니다 스캇님.

새파랑 2021-12-06 21: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는 정말 능력자분들이 엄청 많네요 ^^

(프레이야님 답글보고 수정)

개 개는 사랑입니다.
복 복을 주는 강아지에게
치 치킨을 (뼈채로) 주면 안됩니다

프레이야 2021-12-06 21:38   좋아요 3 | URL
호호~ 강아지에게 치킨 주면 안 되지요.
학생 때 우리 집에 개를 길렀는데 그때 아빠가 그러더군요.
살만 발라 주는 건 될까요 새파랑 님.ㅋ

프레이야 2021-12-06 21:45   좋아요 3 | URL
네. 뼈째로 주면 안 되지요. ^^
젊었던 아빠는 통닭 두 마리를 드시면 뼈가 안 남았어요. 뼈째 와작와작 ㅎㅎ

미미 2021-12-06 2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판화 구경 잘 했습니다~♡♡
사진 속 하늘도 참 산뜻하네요!ㅎㅎ

뒷모습 릴레이가 북플에 쭉 이어지면 좋겠어요. 뒷모습 우아하세요!😉

프레이야 2021-12-06 21:49   좋아요 3 | URL
미미 님도 뒷모습 릴레이 합시닷.ㅎㅎ
여울 님 판화 멋지지요. 테마도 좋고 어쩜 저리 색감도 좋고.
그날 순창 하늘이 맑고 산뜻했어요.
출발할 땐 좀 흐린 듯하더니 도착하니 날씨가 좋아졌어요.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좋지요^^

mini74 2021-12-06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복치 농담이 한 때 유행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판화의 질감 등 넘 좋아요 *^^*

프레이야 2021-12-06 22:49   좋아요 1 | URL
이런 개복치 같은 놈. 이렇게 좀 부정적으로 쓰인다죠 ㅎㅎ 재미나요. 조금만 놀라도 죽어버린다니. 외유내강 아니라 내유외강인가 봅니다 개복치. 왠지 이름이 정겨워요.
여울님 판화 넘 좋지요. 이번 전시회 작품도 기대되어요.

독서괭 2021-12-06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여름호 표지 넘 좋네요!프레이야님 뒷모습 사진도 작품같고요.

프레이야 2021-12-07 00:05   좋아요 2 | URL
여름호 풀색이 시원하지요.
저 해먹에 누워 살랑바람 맞으며 독서
상상만 해도 넘흐 좋지요 독서괭 님.
고맙습니다.^^

희선 2021-12-07 0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댓글을 보고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알겠습니다 프레이야 님 뒷모습도 멋지시네요 개복치가 놀라면 죽는군요 사람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크게 놀라기보다 천천히 그 일을 잘 보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해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건강 좋아지시기를 바랍니다

개살구는
복숭아가 되고 싶어서
치성을 드렸습니다

삼행시 생각해 봤는데 이거밖에... 프레이야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1-12-07 01:08   좋아요 1 | URL
우와 희선 님 삼행시 감동이네요.
삼행시의 장인으로!!
따스한 염려 고맙습니다.
저도 뭔가 치성을 드리는 마음으로 개살구처럼~^^ 좋은 잠 주무세요.

여울 2021-12-07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뭘 꾸미시나 했더니 이렇게 뒤집어 놓으실 줄 몰랐네요. 숨이 가쁘네요. 꼴깍~^ 이렇게 알라디너분들 뵙게되서 반가워요. 딴짓?하는라 자주 흔적을 남기진 못했어요. 전시 작품 가운데 <올해의 책들> 베스트가 있어요. 알라딘이 곁에 있어 늘 든든하고 편하게 작업한답니다. 감사^^

프레이야 2021-12-07 09:10   좋아요 1 | URL
오호 궁금 플러스 기대되어요.
올해의책들 베스트는 16일부터 전시죠?
연말까지 올해 안에 가서 보겠습니다!!

여울 2021-12-07 09:24   좋아요 1 | URL
지금 전시중이랍니다 ㅎㅎ

라로 2021-12-07 09:33   좋아요 2 | URL
여울님! 제가 알라딘에 매일 와도 저와 시간이 안 맞으면 글도 안 읽고 모르게 되어 오래된 인연(!)인데도 북플에서 친구가 아니었네요. 혹시 저 기억 하시는지? ^^;;; 예전 나비였고 낙네임 자주 바꾸던.. ㅠㅠ 늦었지만 친구 신청합니다. 전시회 축하드려요!^^

여울 2021-12-07 10:40   좋아요 1 | URL
아, 나비님 당근 기억하죠.감사요^^

프레이야 2021-12-07 10:44   좋아요 1 | URL
책베스트 전시 16일부터는 안 하나요?

여울 2021-12-07 10:45   좋아요 1 | URL
계속합니다^^

북극곰 2021-12-07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음, 하면서 읽고 보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우와... 했네요. 빨간 모자도 너무 마음에 들어요.

요즘 같은 시국에는 아프신 분이 있어도 마음대로 병원 출입도 못하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요.

저는 요즘 너무 종종거리며 사는 것 같은데, 프레이야 님 새 책 보면서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볼까 합니다.
고생 많으셨겠어요 + 축하 드려요. ^^
(왠지 오늘이 처음 댓글인 것 같은...)

프레이야 2021-12-07 17:38   좋아요 1 | URL
우와 제 누추한 방에 북극곰이 떴어요.
북극곰 님 따스한 댓글 넘나 고맙습니다. ^^
저 모자 오래되었는데 겨울이면 애용해욤.
마음 몽글몽글 무름무름 조심조심 그러면서도
탄력있게 암튼 좋은 건 모두 북극곰 님에게 가길 바랍니다. 우리 건강하자구요^^

Jeremy 2021-12-07 14: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번에는 제대로 된 방에 들어와
Literary Critic 에 빙의해서
생애 두 번째 ˝삼행시˝ 를 달아봅니다.

개: 개연성은 물론
복: 복선의 절묘한 배치와 안배로
치: 치정극 특유의 진부함을 극복했다.

프레이야 2021-12-07 14:13   좋아요 2 | URL
와우 정교한 문학비평가답게 빙의를요ㅎㅎ. 삼행시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완전 좋아요^^

페크pek0501 2021-12-07 18: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울 님과 판화. 멋지네요. 알라딘은 예술인들의 마을인가요.

개- 개나리가 있고
복- 복숭아꽃이 있어도
치- 치마 입은 아가씨에게로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네...

프야 님의 서재 이미지를 책으로 바꾸니 신선하네요. ^^

프레이야 2021-12-07 19:14   좋아요 1 | URL
페크 님의 사진도 못지않게 예술적이어요. 삼행시 달인 한 분 또 추가요.
고맙습니다 ^^

2021-12-08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08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마전 이벤트 '당신 곁의 28쪽'으로 28쪽의 글귀와 함께 좋은 책 소개를 많이 받았다.

왜 하필 28쪽이었냐, 궁금하셨을 텐데 다양한 유추를 깨고 다락방님이 알아 본 그 영화에 나오는 28쪽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올해 본 단연 최고의 영화였다. DVD가 아니라 우연히 왓챠를 통해 보았고 흥분을 누를 수 없었다.

평범한 섬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여성들의 아카펠라로 고조되는 한밤 축제와 비발디의 '사계'와 함께 북받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특히나 심장이 나대서 미칠 것 같았다.  


아래에 한 꼭지 옮겨 둔다.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절묘한 힌트를 얻었다. 나와 영화, 나와 사람, 나와 세상 사이의 시선이기도 하여 표제를 고심하다 단번에 이 문장을 떠올렸고 자꾸 설레었다. 영화읽기 에세이로는 2017년 <고마워 영화> 이후 두 번째로 기억의 서랍을 비웠다. 2년간 코로나 바이러스로 적지 않은 게 달라졌고 또 여전하지만 오랜 시간 영화를 보고 느끼며 함께했던 순간들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무리 오래된 영화라도 영화는 항상 현재에 산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억은 재생하여야 하고 잊지 않아야 하기에 이야기가 너무 많아 퇴고 과정에서 줄이고 또 줄이고 한 호흡으로 써내려간 탓에 호흡이 좀 빠른 듯 느껴질 수 있다. 개인적인 기억이지만 누군가에게 비슷한 기억을 소환하고 함께 생각하며 공감할 수 있는 한 줄이 있을 거라 여기며 또 용감하게 나를 내보인다.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길 바라며.


부단히 쓰는 게 내가 사는 방법이고 방식이라는 걸 나는 3년 전에 수채화를 배우며 확실히 느꼈다. 중학생 땐 미술반에도 들었고 그렇게나 해 보고 싶었던 수채화인데 글보다 매력적이지 않았다. 나중에 또 어떻게 변심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래서 한 달만에 접고 화구도 다 치워 버렸다. 2013년 구월엔 작은아이가 내 문서를 몽땅 날려버리고 낙담했는데 그게 운명이었을 거라 여기고는 조금만 기다려라, 미친듯이 쓸 것이다,라고 대담한 속말도 어디다 메모해 놨는데 그걸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보고 혼자 웃었다.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는 챕터를 나누지 않고 긴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내 마음에 걸린 영화의 어떤 코드를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흐름으로 쓰고 엮었다. 궁극적으론 이 영화 난 괜찮던데요 같이 볼래요?, 하는 마음을 담았다. 표지와 본문 속 6장의 사진은 영화의 내용과 연관되는 이미지로 골랐고 <고마워 영화>에서처럼 모두 라이카클럽 사진작가 박유영의 작품이다. 라이카 필름카메라 작품.


그때와 지금의 표지사진이 같은 공간에서 찍은 거라 우연치고는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하면, 부산 기장군 일광면 소재 '마레'라는 레스토랑 안이다. <고마워 영화> 표지 속의 여자는 바로 저입니다.^^ 그리고 이번 책의 표지사진은 친정부모님과 우리부부 넷이서 '마레'에 가서 오랜만에 식사를 하는 중에 벌떡 일어나더니 남편이 찍은 사진이다. 햇살이 비치는 그 순간을 포착하려고...  2020년 마지막 날이었고 오후 두 시경의 겨울이었지만 그런대로 포근했던 날이다. 사진의 양쪽에 보이는 두 개의 창, 수평선이 가르는 창밖 파란 풍경은 절반은 하늘, 절반은 기장바다로 나는 마레의 이 시원한 바다 풍경을 좋아한다. 바깥으로 나가 데크로 가면 약간 지중해 풍을 느낄 수 있다. 엄마는 팔순을 넘고 아빠는 구순이고 건강이 좋지 않지만 곁에 계셔서 감사하다.


당신의 모든 시간을 응원하며 부족한 나를 키우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0년 12월 31일 오후 2시 30분 배혜경 아이폰12 촬영, 기장 마레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_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on Fire(셀린 시아마 2019)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한 특별한 해답을 보여준 영화로 뒤늦게 내게 온 보물이다. 개봉 때 놓친 좋은 영화를 다른 경로로 보는 혜택을 누리는 세상이 되었다. 비디오테이프와 DVD라는 구체적 물상으로 소유되었던 한 편의 영화는 이제 무형의 아카이브에 저장되어 언제 어디서나 스트리밍할 수 있는 네트워크적 소유물이 되었다. 좋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측면이 있지만 꽤 고마운 극장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두 여인의 꿰뚫어 볼 듯한 눈빛이 모든 걸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영화다.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에 옮겨붙은 모닥불의 선연한 불꽃보다 마리안느와 주고받는 시선 사이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더 선연하기 때문일까. 모든 장면의 구도와 색감이 예술적인 미장센으로 마음의 캔버스에 남고 그들의 타오르는 감정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뚫어질 듯한 시선마저 애틋하다. 이 영화는 그렇게 감독 셀린 시아마를 포함해 주체적으로 살고자 한 여성들의 연대와 폭넓은 애정 그리고 예술을 향한 촘촘한 열정을 뜨겁고도 서늘하게 그려낸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압델라티프 케시시2013), <캐롤>(토드 헤인즈 2015), <아가씨>(박찬욱 2016) 이후 여러모로 훨씬 그윽하고 지극한 영화로 마음에 들어왔다.


남성 감독의 시선으로 그린 여성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여러 가지로 포착된다. 셀린 시아마는 실제 자신의 경험과 역사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드러내 놓지 못한 여성 삶의 소소하나 소소한 게 아닌 사안을 이야기에 깨알같이 녹여 놓았다. 가령 여성 드레스에 주머니에 무얼 담지 못하도록 19세기 이후 사라진 주머니를 달아주고, 조명받지 못한 여성 몸의 수난사로서 낙태 광경을 그림으로 남겨주고, 결혼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여성의 손에 책을 쥐어 주며 28쪽에 영감을 주고받은 상대의 얼굴을 삽화처럼 그려준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여성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그림을 그려서 전시하게 해준다. 미시사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남겨서 기억하게 하며, 역사에서 사라진 이름 없는 여성들에 헌정하는 영리한 방식이다.

 

사랑이라 불리는 감정이 어떻게 발아하고 고조되어 폭발하는가는 예술적 영감이 어떻게 점화하고 고양되어 완성되는가에 버금가는 물음이다. 이 영화는 그런 물음에 강렬한 미학적 답변을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를 살려 세심하게 제시한다. 특히 파도의 격랑, 스케치하는 연필의 사각거림,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청각을 예민하게 자극한다. 여백의 미를 살린 그림처럼 절제된 행동과 대사를 통해 다하지 않는 게 나을 말을 삼키며 대신 깊이 응시하고 정확히 살피는 시선을 통해 감동을 전달한다. 그렇기에 더욱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 몰입도가 높고 그 대사를 통해 주요 레퍼런스를 명확하게 파악하게 한다. 남성이 배제된 이 영화는 어느 순간도 모호하지 않다는 점에서 여성이 내는 그 목소리가 자신감에 차 있다.


그리스 신화 속, 하데스를 찾아가 아내를 이승으로 데려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두 여인의 촉발된 감정을 지지하고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 뼈대가 되는 레퍼런스다. 강요된 결혼이 싫고, 수영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고, 도서관이 있어 수도원이 차라리 좋다고 말하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 혼담을 나누기 전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화구를 싣고 배를 타고 외딴 섬에 들어간 화가 마리안느.


여성 화가가 걸작을 그리는 걸 싫어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당차고 예민해 보이는 마리안느가 저택에 도착한다. 벽난로의 활활 타오르는 불꽃 앞에 나신으로 앉아 담배를 피우며 물에 빠진 화구를 건지다 젖은 몸을 말린다. 이 장면에서 영화에서 두 번째로 보이는 불꽃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현재 시점에서 마리안느가 그린 그림의 제목을 묻는 제자 여학생에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대답해 주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다. 그러면서도 그림을 내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인습에 눌린 18세기 여성을 비추는 한 대목이다. 여학생이 꺼내놓은 그 그림이 기억을 소환하고 마리안느는 뒤돌아보아추억을 간직하며 작별을 선택한 엘로이즈와의 애틋한 감정을 회상한다.

 

외딴 섬의 저택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엘로이즈와 백작부인, 마리안느와 가정부 소피까지 여성 넷이 기거한다. 이 모두를 지켜보고 담아내는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와 나까지 여섯 명이 되겠다. 처음 그린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백작부인이 딸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다시 그릴 닷새를 주고 밀라노에 가 있는 동안 엘로이즈, 마리안느, 소피 세 사람은 신분 따위 아무렇지 않게 자매처럼 친구처럼 지낸다. 함께 요리하고 와인을 마시고 카드게임을 하고 책을 읽는다. 소피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낙태도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힘을 합해 돕고 마리안느로 하여금 소피가 시술받는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게 해 여성 몸의 선택권을 지켜주려는 태도를 취한다.


엘로이즈는 억눌려 있지만 여러 면에서 주체적 여성이다. 화가 마리안느가 이성으로 누르고 사는 욕망을 풀어주는 견인차다. 바다를 향해 달음질치며 달리기를 오래 꿈꾸어 왔다고 말하는 엘로이즈는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선택도 다르게 해석한다.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우선으로 오르페우스는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뒤돌아보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마리안느를 향해 엘로이즈는 다른 의견을 낸다.


- 여자가 말했을 수도 있죠. “뒤돌아봐요!!!


나중에 이 말이 두 사람의 이별에 재현되고 암전과 함께 현재로 장면이 급전환되는데, 정말이지 정신이 번쩍 드는 강렬한 플래시이다.

 

마리안느가 포즈를 취하기 싫어하는 엘로이즈를 몰래 관찰하며 처음에 그린 초상화는 엘로이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시에 마리안느의 마음에도 차지 않았다. “당신이 본 내가 이랬나요?”라고 따져 묻는 엘로이즈에게 마리안느는 그림에는 규칙과 관습과 이념이 있다고 배운 대로 항변해 본다. 진심일 리 없는 말이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눈에 불꽃을 튀기며 치열하게 나누는 대화는 영화가 하고 싶은 말로 집중해서 듣게 된다. 엘로이즈는 존재감이란 그저 진실되지 않은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마리안느의 말을 망설임 없이 반박하며 어떤 감정은 아주 깊다고, 이 초상화는 나를 닮지도 않았고 더구나 당신을 닮지도 않아 슬프다고 말한다.


우리는 같은 위치, 아주 동등한 위치에 있어요.”

 

젠더정체성 문제를 꾸준히 다룬 셀린 시아마 감독은 학예의 여신으로 불리는 뮤즈는 거짓 개념이라는 데서 이 영화를 출발했다고 말하며 뮤즈란 그들이 공동 창작자라는 걸 숨기기 위해 정형화되고 말을 잃은 여성으로 단순화한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발표했다. 기존의 뮤즈는 남성 예술가의 시각으로 탄생했고 역사 속 수많은 사례가 이를 말해주지 않는가.

다시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는 자진하여 포즈를 취하고 시종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안느를 옆으로 오게 해 눈을 응시한다.


당신이 나를 보는 동안 나는 누구를 보나요.”


자화상이 거울 속 자신의 눈을 응시하며 그리는 얼굴이듯 초상화를 그리는 주체와 객체는 하나가 되어 대상이 허물어지고 새로이 선다. 초상사진을 찍을 때도 다르지 않다. 초상화에 두 사람이 그려져 있듯 사진에도 두 사람이 찍혀 있는 것이다. 나를 보는 너와 너를 보는 나.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밤축제와 엔딩의 음악회 장면은 특히 청각으로 압도한다. 전자에서는 여성들의 아카펠라 합창이 후자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여름이 감정을 극점으로 고조시키며 꽉 조인 여성 삶의 코르셋을 벗고 삶과 예술의 정념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을 들려준다. 클로즈업된 엘로이즈의 솟구치는 눈물 뒤 서서히 차오르는 희열과 그 모든 걸 안 보이는 곳에서 바라보는 마리안느의 시선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영화는 누구나의 심장에 생물처럼 살아 있을 뜨겁고도 서늘한 여름을 불러준다. 한 폭의 유화처럼 영원한 신화처럼 깊은 음영과 우아함을 갖춘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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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10 06:47   좋아요 1 | URL
행복책 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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