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어유희자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글 읽는 것도 좋아하고_ 그래서 이토록 말싸움도 자주 하는건가봐, 라고 딸아이가 아침밥을 먹다 말고 그랬다. 문득 책을 읽다말고 여성의 혀_라는 말에 꽂혀서 여성의 혀라...... 홀로 중얼거리며 설거지 완료. 이번에 시댁 내려가서 안 읽을 줄 알고 교수님께 선물받았던 책 책장에 꽂힌 거 발견하고 가져왔다. 그때 선생님이 이 책 선물해주시면서 했던 말씀이, 철학을 공부하면 인생의 지평이 달라져요, 수연씨_ 였다. 교수님들 세미나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래도 이혼한다 난리 피울때 책 정리 싹 할때 버리지 않았던 걸 보면 그 책이 내 심장 한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던듯. 물론 읽지는 못했지만. 보통 남성의 혀가 하는 말을 들으며 성장하고 살아왔지, 그게 진리인 줄 알고.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네? 라고 깨닫게 된 건 머리가 크고난 후에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이고. 아는 언니에게 곧 나올 신간 추천받고난 후 자기 전에 페이퍼. 서양철학사 책은 뭘 읽으면 좋을까 하고 둘러보다가 발견했다. 러셀과 군나르 시르베크 많이 추천하네. 일단 담아놓고 침대로 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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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2-05-09 02: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학부 때 철학 전공하면서 교재로 처음 읽은 서양철학사 책이 힐쉬베르거인데, 정말 오랜만에 저 디자인을 다시 보니 반갑네요 ㅋ 그런데 스텀프의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와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가 빠져 있군요 ㅎㅎ

vita 2022-05-09 09:06   좋아요 3 | URL
라파엘님도 학부 철학이셨구나....... 멋져요. 말씀하신 책도 참고해서 보도록 할게요. 글 잘 썼네요. 추천해주세요, 라고 제목 달까 하다 말았는데 이렇게 알아서 답변해주시니 좋아요.

라파엘 2022-05-09 09:47   좋아요 6 | URL
미국에서 학위를 받으신 분들을 중심으로 대학에서 교재로 많이 사용된 책이 힐쉬베르거의 책과 렘프레히트의 <서양 철학사>입니다. 러셀도 유명하지만 러셀은 자신의 관점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서술되었고, 앞의 두 책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이 잘 되어있거든요. 스텀프의 책은 교과서처럼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필요한 인물별로 찾아서 읽고 기본을 이해하기에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슈퇴리히의 책은 독일에서 학위를 받으신 분들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추천되는 책이고요. 그리고 나이절 워버턴은 내용이 상세하지는 않지만 철학함을 배우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에게 추천하기에 좋은 쉬운 입문서입니다 ㅎㅎ

vita 2022-05-09 10:55   좋아요 3 | URL
그럼 저도 신입생 마인드로 철학의 역사를 먼저 읽을래요 라파엘님 ㅋㅋ 그리고 힐쉬베르거와 렘프레히트 가면 될까요? 추천하신 책 중에 스텀프 원서로 검색해보니 30만원 넘더라구요 ㅋㅋㅋ 그래서 스텀프는 번역서로 읽어보려구요. 향연 읽으면서 철학의 역사 읽으면 더 잼날 거 같아요. 독일어는 괜히 때려치웠네, 그냥 계속 할걸, 철학 관련서 읽다보니 그 생각이 새삼 간절해지더라구요. 전 일단 철학의 역사 먼저 펼치고 신입생 마인드로 :)

라파엘 2022-05-09 11:46   좋아요 3 | URL
비타님께서 평소에 읽으시는 책들을 고려해볼 때, <철학의 역사>는 쉽고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힐쉬베르거와 렘프레히트의 책은 상세하고 좋은 책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정말 전공 공부로 읽는 게 아니라면 읽다가 중단하고 책장에 보관할 확률이 높은 책이고요. <철학의 역사> 이후에 보다 상세하고 전문적인 공부를 원하시면, 비전공자에게는 힐쉬베르거와 렘프레히트보다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가 더 읽기 좋게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어 원서를 구하시는 것 관련해서는 비댓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2022-05-09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09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05-09 1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만약 철학을 읽고 싶다면 이런 순서로 읽어야겠군요. 물론 저는 밑의 책 <비철학자들을 위한 철학 입문> 세 장 읽고 포기한 사람이어서 제게는 먼 일이지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철학에 관심있는 여러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이런 댓글이라니.... 이 서재 너무 고급진거 아니에요? 철학 입문서를 권하는 세계라니요!!

라파엘 2022-05-09 12:25   좋아요 2 | URL
비타님이 고급진 분이시니 비타님의 서재도 자연스럽게 고급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고급진 서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지니신 단발님도 정말 고급진 분!!! 😃

vita 2022-05-09 12:48   좋아요 2 | URL
그게 알튀세르라서 그런데 그러니까 저와 함께 가장 쉬운 책부터 같이 하실까요? 단발님🥰

yamoo 2022-05-09 13: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휠스베르거, 렘브레히트, 슈퇴르니히 등의 철학사 책들은 가장 유명한 철학사에 대한 책이죠. 저는 여기에 쿠르트 프리틀라인의 서양철학사도 추가로 추천하곤 해요. 뼈대만 있기에 빨리 읽을 수 있고, 심지어 각 장 뒤에 연습문제도 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번역이 거지같습니다~

vita 2022-05-09 13:37   좋아요 4 | URL
야무님이시닷!!!! 😊 말씀 감사해요! 참고하겠습니다!
 

오늘은 딴짓_ 굵은 포인트는 옮기기 힘들어서 패스

지금으로서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 필연성을 우리가 탐지할 수 있다. 이 신화들과 이 철학들은 홀로 사유하고 쓰는 고립된개별 인간들의 작업이 아니고 도리어 인민대중이 이해하고 추종하게끔 글을 쓰는 역사적 개인들의 작업이었다고. 종교라는 단어가 "연결"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고 말한바 있다. 이처럼 종교는 모든 인간을 단일 인민으로 엮어내는 것을 지향하는 교리이다. 그래서 종교적 신화들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그 신화들이 전승되는 남성들과 여성들로 하여금 동일한 믿음에 의해 스스로를 서로 연결해 "하나의 단일한 인민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
자연상태에 대한 철학적 신화들도 사정은 동일하다. 그 신화들이부상하는 부르주아가 형성되던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 그 신화들은이 부르주아의 열망들을 표현하고 그들의 문제들을 번역하고 그 해법들을 제안했다는 것, 그 신화들은 바로 이 부르주아의 통일성을 공고히 하는 것과 부르주아의 사회정치적 승리에 이해관계가 걸린 모든 사람을 부르주아 주위에 결집하는 것을 지향했다는 것, 이런 - P148

것들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종교적 또는 철학적 신화 안에서 인간대중에게 말을 걸 때, 그것이 이해되길 원한다면, 이 대중의 실존도 그들의 실천적 경험도 그들의 조건의 현실도 이러한 신화 자체의 언술 안에서 규명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종교적 신화 안에서는 철학적 신화 안에서든, 어느 부분에서는, 이 대중의 삶의 조건들과 그들의 경험과 그들의 요청의 현실이 형상화되어야만 한다. 그들을 확실히 확보해야만 한다라고 내가 말할 때, 이를 매우 강한 의미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그들의 저항을 사전에 무장해제 해야만 하고, 그들의 반대를 예방해야만 한다는 것. 무엇에 대한 그들의 반대? 바로, 그들에게 제시되지만 그들의이해관계가 아니라 사제 신분 또는 교회 또는 권력을 쥔 사회계급 등의 모든 여타 인간 집단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세계관에 대한 반대.
바로 이 지점이 철학에 관한 조금 더 풍부한 관념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시작하는 곳이니, 철학이 여전히 종교 아래 피신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철학은 실존하는 존재 또는 단지 가능한 그러니까 실전하지 않는 존재 전체에 관한 명제들(즉 "테제들)을 확언하는 데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 명제들을 이 존재들에 대한 인식보다는이 존재들을 놓고 벌어질 수 있는 갈등들에 더 관련된 방식으로 확언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모든 철학이(거기까지 가자) 자신의 반대물에 사로잡히고, 관념론은 유물론에 사로잡히며, 유물론 역시 관념론에 사로잡히는데, 사실 각각의 철학이 어떤 면에서는 갈등을자신의 내부에서 재생산하며, 그 갈등 안에서 철학은 자기 외부에 - P149

관여된다.
그럼으로써 발견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철학에서 관찰할 수있었던 아주 특별한 이 추상의 의미이다. 이것은 실제로 정말 기이한 추상인데, 왜냐면 추상이 목표로 하는 것이 과학에서 하듯 세계안에 실존하는 사물들에 대한 인식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모든 것과 이뿐 아니라 실존하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 존재들의 자리와 의미와 기능에 관해언제나 현존하는 선행 갈등을 내포하는 방식으로, 외부로부터 철학을 지휘하는 갈등, 철학이 철학으로 실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내부로 끌어와야만 하는 갈등. 그러니 능동적 추상, 이렇게 말해도좋다면 자기분열적인 논쟁적 추상. 이 추상은 자신의 "대상들이라주장한 것들이 실존할 수도 실존하지 아니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대상들과 관련될 뿐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입장들 즉 자신의 고유한 "테제들"과도 관련되는 것인데, 이 테제들은 역설적 조건에서만 확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테제들에 의해서 부인되면서도, 확실히 이 철학의 끄트머리에 처박혀 있으면서도 그래도 현존한다는 역설, 그렇게 철학적 추상의 이 전혀 예기치 못한 특성이야말로 분명하게 이 추상을 과학적 인식의 추상과 그리고 그런 만큼 실천적 기술적 인식의 추상과 구별해준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가 보았듯, 바로 이 특성이야말로 철학적 추상을 기이하게도 이데올로기적 추상에 근접시킨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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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계속_ 혁신적이고 파격적이고 급진적인지라 소리내어 읽으니 곁에 있는 남자 완전 똥 씹은 표정 ㅋㅋ 볼 만하다

‘개발도상국’에서 젠더와 인종에 따라 선택적 실업이 발생하는 전 세계적 패턴, 매우 분산된 지역에 걸쳐 벌어지는 노동 통제의 증가, 노동과 빈곤의 ‘여성화, 식량 생산 및 군사화 강화와 관련한 차별적 젠더 압력과 노동 이주 패턴, ‘공적 생활의 소멸과 비디오게임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CI에 대한 환상적이고 젠더화된 상상력의 증가, 남성 지배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사회생물학적 기원 이야기의 호소, 모든 종류의 신체에 무언가를기입하고 관찰하고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첨단 의학, 복지국가의 지속적 쇠퇴는 해러웨이가 이러한 "(주)신세계 질서"를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체적 사례 중 일부이다. 그는 가정, 시장, 직장, 국가, 학교, 병원, 교회의 네트워크 속에서 나타날 수도있는 이러한 변화의 이미지를 여럿 제시하면서, "지배의 정보과학이 갖는 특징을 서술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있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데 종종 실패하여 불안정성과 문화적 빈곤이 크게 강화된다는 점을 지적하는방법"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Ibid.: 90), 그리고 그는 과학과 기술의 정치학에 대해 논할 때,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그들의 삶과 미래가 가장 극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 대부분이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덧붙인다. 이는 근시안적으로라도 ‘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이라 할 수 없다.
해러웨이는 독자들에게, 효과적인 저항 및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사이보그 기술과학으로인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위에서 서술한 대가 및 그와 유사한 여 - P127

러 대가를 살펴보고, 우리가 그것과 맺는 연관성까지 봐야 한다고 요구한다. "우리는 모두 […] 사이보그" 라고 그는 우리에게말해왔다. 일부 독자에게는 ‘이 역사 및 이와 유사한 어려운 이야기들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리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만 한층 효과적인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와 진보 정치가 형성될 수있다는 그의 확신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히 그가 가능하다고 제안한 바다. 해러웨이의 글은 절대희망을 잃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현실(분명 또 하나의 오염된 범주’)과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이보그를 이야기할 때나 개-인간을 이야기할 때나 그는 상당히 진지하고 언제나 희망차며, 종종 유머러스하고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 비판적, 급진적 분석에 통상적으로 쓰이는 틀은 자본주의, 이성애 가족 및 가부장제(특히 자본과 얽혀 있는)가 작동해온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해왔지만, 해러웨이는 이 모두가 자신이 총체성이라고 부른 사고 및 관찰 방식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고 주장하며 이 분석에 기여한다. 이때 총체성이란 그것이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순과 부분성, 그리고 실로 그 자신이 제국주의이자 헤게모니가 된 사고 체계는 생산적으로 다루지 않는 사고 및 분석의 총체적 체계이다. 이러한 기존틀에 담긴 구성 요소의 의의를 인정하고 그것에 의지하면서도,
그는 부분성을 포용하는 것은 물론 지역적이고 우발적이며 항상 취약하지만 ‘강력하게 객관적이고 ‘진실한 삶의 방식 및 보 - P128

는 방식을 포용하며, 실제로 ‘페미니즘 과학‘을 인식할 수 있는페미니즘적 방법을 찾고자 했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및 기계와의 융합을 통해 서구 로고스의 체현인 (남성) 인간이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Haraway, 1985: 92). 자연과 문화, 자아와 타자, 신체와 정신, 남성과 여성, 실제와 외양, 만드는 사람과 만들어지는 대상, 능동과 수동, 옳고 그름, 진실과 환상, 신과 인간의 구분(Ibid.: 96)을 포함하여, 서구적 자아개념이 구축되어온 관습적 구분의 붕괴를 재앙의 조짐으로 보기보다, 해러웨이는 그 붕괴들이, 특히 그 동시성 속에서, 사이보그 현실을 긍정적이고 새롭게 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이해한다.
그는 글쓰기 방식들이야말로 그러한 정치적으로 희망적인가능성과 파편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우 결정적인 장소라고지적하면서 자신의 유명한 에세이를 마친다 (Olson and Hirsch, 1995 참조). 그는 오드리 로드와 체리 모라가와 같은 유색인 여성’이 쓴 글과 새뮤얼 딜레이니, 본다 매킨타이어, 옥타비아 버틀러, 조애나 러스 등이 쓴 몇 편의 페미니즘 과학소설 등에서 입증된사이보그 글쓰기를 제안한다. 그는 글쓰기 및 문해력에 초점을맞추면서, 오염된 범주를 신중하게 사용할 때 생겨나는 정치적잠재력에 대한 주장을 한층 분명히 드러낸다. 일부 페미니스트는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말이다. 글쓰기는 언제나 권력 및 지배 구조와 연관을 맺고 있었기에, 무언가를 명명하는 서구의 능력의 중심에 있었다. 따라서 글쓰기는 다음을 의미한다. - P129

글쓰기의 의미가 걸린 씨름은 현대 정치 투쟁의 주요 형식 중 하나다. 글쓰기 놀이의 해방은 더없이 진지한 문제다. 미국 유색인 여성의 시와 이야기들은 글쓰기, 곧 의미화의 권력을 쟁취하는 문제와 반복적으로 관련되지만 이때의 권력은 남근적이거나 순수해서는 안 된다. 사이보그 글쓰기는 에덴으로부터의 추방, 곧 언어 이전, 글쓰기 이전, (남성)인간의 등장 이전, 옛날 옛적의 총체성을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사이보그 글쓰기는 본원적 순수함이라는 기반 없이, 그들을 타자로 낙인찍은 세계에 낙인을 찍는 도구를 움켜쥠으로써 획득하는 생존의 힘과 결부된다. (Ibid: 93~94)

여기서 해러웨이가 주장하는 사이보그 페미니즘 글쓰기의 유형은 "서구 문화의 핵심적 기원 신화들"을 다시 - 쓰기 및다시 - 주조하기이다. 그러한 글쓰기는 ‘세계를 진짜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순수하고 자연적이며 보편적인 언어를 꿈꾸는 일이 아니며, 차이를 완벽하게 번역하여 그것을 통해서 그리고 그안에서 ‘우리’가 다시 ‘전체‘가 되기를 기대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피해자 정체성이 제공하는 "이데올로기적 자원"을 전부동원하여 어떤 자아를 피해자로 서술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Ibid.: 96). 그리고 이 글쓰기는 단순히 중심부에 있는 특권적 학계와 상류층의 여성 및 남성에게 한정된 문학적 해체가 아니다.
해러웨이는 ‘글쓰기’의 의미를 기입으로서, ‘지면 위에서‘뿐 아니라 육체 안에서도 의미를 만드는 일로서, 체현으로서,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활용한다. - P130

그는 "우리는 모두 깊은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부활이 아닌 재생을 요구하며, 우리를 재구성하는 가능성에는 젠더 없는 괴물 같은 세계를 바라는 유토피아적 꿈이 포함된다"고 말한다(Ibid.: 100). 대상을 총체화하는이론은 "현실 전반"을 놓치기 때문에 멀리하고, 페미니즘 비평은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를 악마화하고 기각하기보다는 그것에 관여하고 그것을 형성하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해러웨이는 "타자와 부분적으로 연결되고 우리를 이루는 부분 모두와 소통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과 자아를 만들기 위한 새롭고 효과적인 기술을 찾는다 (Ibid. : 101). - P131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 P132

해러웨이는 기술과학, "자연에서 남성의 자리", 그리고 과학과 사회의 얽힘에 대한 글을 쓸 때 영의 연구에서 많은 통찰을 얻었다고인정한다. 그러나 다윈의 지적 유산을 읽어나가면서, 그가 (그리고 마르크스가) "(남성) 인간"과 "인간의 실천"을 "모든 것의 척도"로서 논의를 이끄는 주요 형상으로 삼는 것에는 저항한다. (Haraway, 1992a: 83). 해러웨이가 보기에 이런 관점은 자신의 이전 연구의 중심 주제이기도 했던, 인간과 더불어 살고 있는 온갖 종류의 너무 많은 ‘타자‘를 한꺼번에 무시한다. - P136

"중요한 것은 환원불가능한 차이를 넘어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는 ‘관심 기울이기‘라 부를 수 있는 것, 또 관계 속에 누구와 무엇이 나타나는지를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것으로 귀결되곤 한다. 사람 - 동물 관계에서 인간중심주의를비판하긴 하지만(개는 "털복숭이 아이가 아니다)(또한 Haraway, 1997: 284, n. 23 참조), 해러웨이(2003a: 50)는 그러한 투사를 통해 "인간이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물들 안에 누군가가 있다 at home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헌의 관찰을 높게 평가한다. 해러웨이는 계속 말한다.

대체 누가 있는가 who is at home는 영원한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핵심은 타자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지만 관계 안에서 누구와무엇이 출현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종과 관계없이 진정한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사랑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이 헌신 덕분에 우리는 관계 맺기에서 윤리의 정수를 볼 수 있게 된다고 해러웨이는 말한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며, 함께 살아감으로써 존재한다"(Verran, 2001 참조).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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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블래퍼 허디

페미니즘으로서 영장류학의 마지막 예로 세라 블래퍼 허디 Sarah Blaffer Hrdy의 연구를 들면서, 해러웨이는 자신이 "영장류학의 - P95

역사에 대한 최초의 페미니즘적 지적"이라고 부른 루스 허시버거Ruth Herschberger의 《아담의 갈비뼈Adam‘s Ritb>(1948)에서 발췌한 명구로 논의를 시작한다 (19892: 256), 그 글은 조시라는 암컷 침팬지의 입장에서 남성 과학자들이 비인간 암컷 영장류의성적 본성 및 행동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경험적 관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왜 나를 성적으로 수용적이라고 보나요? 그것은 온통 어떤 의견으로 뒤덮인 인간의 표현 중 하나입니다. 꼭 표현해야 한다면 내가 성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 사자가 먹이를 기다리는 것과비슷하게 수용적이기 때문입니다! (Herschberger and Haraway1989a: 349에서 재인용)

영장류과학 안팎에서 벌어진 1970년대 페미니즘 논쟁의 특정 입장과 상통하는 맥락 속에서, 이 글의 암컷 원숭이는 진화 게임에 참여하며 자신의 유전적 투자를 극대화하기 위해 성적 만남을 선택하는 초전략적 추론자로 등장한다. 이 논의를 두고 해러웨이는 ‘진화하는 포트폴리오를 위한 영장류 암컷의 투자 전략‘이라는 예리한 부제를 붙이고, 허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대중적인 극적 국면(그의 박사논문은 수컷의 영아 살해에대한 연구로 시작한다]인 원초적인 성적 비대칭과 대립, 그리 - P96

고 경쟁(특히 암컷들 사이에서 벌어지는)에 담긴 근본적 중요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과학적 서사와 영장류학 페미니즘 이론을 구축했다. (1989a: 350)

여기서 암컷/여성은 자신의 자율성과 이성reason이 오르가슴을 통해 최대한의 성적 쾌락에 도달하는 데 자리하고 있는 존재이다. 암컷 원숭이의 오르가슴에 대한 허디의 연구는 먼저 남성 오르가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가부장적 서구 자유주의의 이야기는 물론, 당시에 활발했던 소위 클리토리스 오르가슴과 질 오르가슴의 차이 및 의미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을반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연구는, 이 물질-기호적 대상인 오르가슴을 한편으로는 신체를 초월하는 엑스터시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적 속박으로 보는 모순적 환상 속에서, 온전히 인식할 능력이 있는 암컷 개인의 전성기를 이 암컷 자신의 성적 쾌락의 실현과 연결시킨다. 허디의 연구를 논의할 때 필요한 하나의맥락으로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용하는자리에 대한 압축적이고 강력한 역사를 살핀 후, 해러웨이는 약간의 회의를 담아 "이것은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1989a: 356).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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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하지만 나 역시 내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같은 일을 당하리라는 걸 알고 있네. 나는 내가 제공한 어떤 즐거움들도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을 거네. 그들이 이로운 행위로 생각하고 이익으로 여기는 즐거움들 말이네. 왜냐하면 나는 그런 것을 제공하는 자들도 제공받은 자들도 부러워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리고 누군가가 내가 젊은이들을 당혹스럽게 하여 망쳐 놓는다거나, 나이 든 사람들에게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가시 돋친 말로 비난한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내가 말하고 행하는 그 모든 것은 정당합니다. '재판관 여러분들이여' - 당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라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을 것이며, 달리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네. 그러니 아마도 나는 무슨 일을 만나든 그대로 당하게 될 거네.

칼리클레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자기 나라에서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자신을 도울 수 없는 사람이 좋은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소크라테스 물론이지, 적어도 저 한 가지 조건만 그가 갖추고 있다면, 칼리클레스, 자네가 여러 차례 동의했던 것으로, 인간들에 대해서나 신들에 대해서나 부정의한 것을 말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음으로써 자신을 돕는다는 조건 말일세. 이것이 자신을 돕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는 데 우리가 여러 차례 동의했으니가.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나를 논박하여 이것으로는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는 걸 보여 준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든 몇몇 사람들 앞에서든 일대일로든 나는 논박당하는 걸 부끄러워할 거네. 그리고 이 무능함으로 인해 죽게 된다면 나는 원통하겠지. 그러나 아첨하는 연설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면, 내가 확신하거니와 자네는 내가 그 죽음을 쉽게 감내하는 걸 보게 될 거네. 사실, 완전히 무분별하고 비겁한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죽는 것 자체는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네. 혼이 여러 부정의한 행위들로 가득 차서 하데스에 이르는 것은 모든 나쁜 것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것이니까. 원한다면 이것이 어째서 그런지 자네에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하네. (204-206)

칼리클레스, 이것이 내가 듣고 참이라고 확신하는 이야기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일이 뒤따를 것이라고 추정하네. 내가 생각하기에 죽음이란 혼과 몸, 두 가지 것이 서로로부터 풀려나는 것에 지나지 않네. 그러므로 그 둘이 서로로부터 풀려났을 때, 둘 각각은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유지했던 자신의 상태를 그때 못지않게 많이 유지하네. 몸은 자신의 본성과 보살핌의 결과들과 겪은 내용들을 모두 뚜렷하게 유지하네. 이를테면 누군가의 몸이 살아 있을 때 본래부터 컸거나 양육에 의해 컸거나 두 가지 모두에 의해서 컸다면 죽은 후에도 그의 시신은 크네. 그리고 뚱뚱했다면 죽어서도 뚱뚱하고, 그 밖의 경우들도 마찬가지네. 그리고 또 그가 머리털을 늘 길게 길렀다면 그의 시신도 머리털이 기네. 또 누군가가 살아 있을 때 불량배여서 매를 맞거나 다른 부상으로 인해 가격당한 흔적을 몸에 흉터로 갖고 있었다면, 삶을 마감한 후에도 그의 몸이 그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네. 또는 누군가의 사지가 살아 있을 때 부러졌거나 뒤틀렸다면 죽어서도 그것이 같은 상태로 뚜렷하게 유지되네. 한마디로 말해, 살아 있을 때 갖추고 있는 몸의 상태는 삶을 마감한 후에도 일정 시간 동안 모두 또는 대부분 뚜렷하게 유지된다는 것이지. 따라서 칼리클레스, 나는 이것이 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네. 혼 안의 모든 것은 혼이 몸을 벗은 후에 뚜렷이 드러난다네. (209)

















209페이지 소크라테스가 한 말, 오늘 화두. 외할아버지는 오래도록 앓고 후에 돌아가셨다.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가셨다고 무당이 말하는 소리를 어린 시절 들으면서 다행이다 라고 한숨을 내쉬었는데 너무 오래 아파서 두꺼운 겨울요를 사계절 내내 펼치고 그 위에 사계절 내내 누워계시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말씀도 거의 못하셨고 눈빛만 형형하게 빛나서 외할아버지를 바라볼 때면 항상 쭈뼛거렸다. 저 구절들을 읽고 있노라니 오래 앓고 오래 이부자리 위에 누워계시던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 떠올랐다. 나의 알코홀릭 삼촌은 오래도록 술을 마셔서 나중에 배가 부풀어오를대로 부풀어올라 이른 나이 돌아가셨다. 그게 참 끔찍하다고 느낀 건 한참 시간이 흐른 후지만.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지 못한 채로 그 몸의 흔적들이 마치 내 온 생애를 드러내는 것처럼 한 증표가 된다는 사실이 좀 소름끼쳤다. 고해를 하고 하고 해도 평생 고해를 해도 끝없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죄를 짓는 사람 마냥. 소크라테스는 이야기한다. 이것이 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그리고 혼 안의 모든 것은 혼이 몸을 벗은 후에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요즘 느끼는 것들과도 맞닿아서 더 각인된듯. 혼 안의 모든 것이 몸을 벗은 후에 뚜렷이 모조리 드러난다면, 그러하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문득 갑자기 눈뜬 장님이 된 것마냥 혼란스럽기만 하다. 더 끝없이 사랑을 하는 것이 가능도 할 거 같은데, 절룩거리는 엄마의 팔을 잡아주다말고 문득. 여행지에서 읽을 책 두 권 일단 가방 안에 담고 더 담을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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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07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여행지에서 저런 책들응 읽는다고요? 여행이 혹시 학술연구회 이런건거요? ㅠㅠ

그레이스 2022-05-07 07:54   좋아요 1 | URL
ㅋㅋ

vita 2022-05-07 09:47   좋아요 1 | URL
편견이십니다, 재밌어서 가져가는 건데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