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저튼과 함께 읽는 이번 책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이다. 이 책은 한역본으로 이미 읽은 적이 있고 드라마로 대충 훑었다. 그 중에 제일 좋은 건 역시 지금 하는 경험이다. 언어는 추상에 가까운가 형상이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항상 갈등하는데 샐리 루니 읽는 동안 확실히 알았다. 손에 잡히지 않고 잡을 수 없고 추상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의 추상화 작업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와닿는 구절들 꽤 있었다. 서로를 holy하게 마주하는 접점들 좋았다. 마리안느에게 못할 짓 하고 제대로 우울증에 빠져 망가지는 코넬 모습 그려지는 것도 좋았고 코넬 엄마인 로레인이 내 아들 집에서 내쫓을까 진지하게 고려하는 중이야 라고 말하니 마리안느가 슬며시 웃는 모습도 좋았다. 이런 시엄마가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이 역시 holy한 일이다. 이 장면에도 밑줄 그으면서 느낌. 대학에서 우연히 마주하고 코넬이 마리안느에게 너 좋아 보인다 했더니 마리안느가 


"I know. It's classic me. I came to college and got pretty." (79)


하는데 이 말 한동안 써먹겠구나 알았다. 아이 노우, 잇츠 클라시크 미. 민이한테도 이 말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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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택 공사하는 거 어제 구경하고 왔다. 왜 거대한 공사장에 엄빠가 우리를 데려가 보여주면서 그렇게 뿌듯해했는지 알 거 같았다. 모임 끝나고 다 땅부자야 나만 없더라구 땅, 하니까 동생이 그래써 쫄리든? 해서 아니, 안 쫄리더라. 쫄리면 어디 백씨 여자라 할 수 있을까. 하니까 우리 아빠는 바다에 모래를 쏟아부어 땅으로 만든 사람인데 그런 거 갖고 쫄리지 않지 그러면서 둘이 깔깔 웃었다.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 오빠, 언니, 동생들이 다 말리는 결혼을 기어코 했다. 아빠가 숙이, 여기가 내가 만든 땅이오, 라고 간척지에 데려가 보여주어 그만 홀딱 반해버려서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했다. 아빠의 그 허세는 내가 제일 많이 물려받았다. 우리 남동생도 꽤 하지만. 가진 거 없는데도 잘난 척 하는 년이란 말을 고딩때 선배들에게 들었는데 가진 게 없다는 건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얼굴도 예쁘지 않고 몸매도 안 예쁘고 성격도 더럽다는. 나중에 뒤돌아보니 잘난 척 하지 않고 조신하게 잘 살았는데 할 말 안할 말 다 해서 선배들이 그렇게 미워했던 게 아닌가 싶다. 대저택 공사하는 거 구경하고 왔어, 하고 친구한테도 말하니 그래서 쫄리든? 하여 아니 안 쫄리더라, 난 네 사랑을 듬뿍 받는 몸이니 어디 땅부자들에게 비할 바인가. 둘이 그러고 키득거렸다. 책 어제 거의 읽지 못했으나 정지용 다시 읽고 가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김수영도 백석도 다시 읽는데 떨리지 않았다. 열일곱 모두 내 심장에 들어온 남자들인데 전혀 떨리지 않았다. 예전에 좋아하지 않았던 시들 다시 눈여겨보게 되어 좋았다. 백석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살갗에 달라붙은 사람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김수영은 좋긴 좋은데 예전만큼 좋지는 않네 했고 정지용 읽고 좋아 죽겠네 이 남자 했던 열일곱 기억이 그대로 소로록 살아났다. 당시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만일 이런 시 쓰는 남자가 같이 도망가자 하면 나 도망갈 수 있을듯? 하니 친구들이 미친년이라고 보름달 빵 먹으면서 후두두두 같이 웃어댔던 기억 났다. 공부는 안 하고 남자랑 도망칠 궁리를 했네 열일곱에. 새벽에는 꿈을 꾸었다. 철학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하얀 수염 잔뜩 기른 할배가 윤리학 가르쳐준다면서 질질 끌고 이 상황에서 넌 어떻게 할래? 또 질질 끌고 가서 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래? 해서 다 나름대로 선택하고 결론내리고 그랬는데 할배가 자꾸 회의심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너 그게 맞아? 진짜 윤리학적으로 네가 내린 그 선택이 옳다고 여기는 거야?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거 아니야? 네 사람들도 다 불행하게 만드는 길 아닐까? 그래서 헉헉거리며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물 한잔 마시고 양치질하고 윤리학이 사람 잡겠네 싶더라. 마사 누스바움 언니가 한 말 때문인듯. 꿈에서 깨고보니 철학자일지 신일지 알 수 없다 싶었다. 근간부터 제대로 무너지게 해보자 이거신가요? 할배! 하고보니 소크라테스였네! 소크라테스였어! 소크라테스 꿈 꿨네! 깨달았다. 아침 먹으면서 딸아이한테 소크라테스 할배 꿈 꿨어! 흥분해서 이야기했더니 적당히 해, 적당히, 요즘 너무 철학에 빠져들었어. 그래서 소크라테스 할배 꿈에까지 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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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5-27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철학에 빠지니 소크라테스가 꿈에ㅎㅎ 진정 빠지신 것이 맞는듯요 정지용 시 참 좋죠 정지용 시 사둔 거 읽고 싶게 만드셨습니다!ㅎㅎ

vita 2022-05-27 15:11   좋아요 0 | URL
할배가 꿈에 나왔는데 했더니 엄마가 산신령인가보다 하시며 로또 사라 해서 로또 샀습니다 이천원어치 거리의화가님 1등 되면 치맥 파티 하죠. 콜?

희망찬샘 2022-05-2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무척 재미납니다. ^^

vita 2022-05-27 22: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희망찬샘님 :)
 
정지용을 읽다 - 감각적 이미지로 펼치는 그림 같은 시 읽다 시리즈
전국국어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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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시인, 정지용의 시가 실려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어 교과서를 쓰다듬고 물고 겨드랑이 사이에 노상 끼고 다녔다. 내 첫사랑, 정지용. 추앙했고 추앙하고 추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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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을 읽다 -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 읽다 시리즈
전국국어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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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누룽지 내음새에 생전 처음으로 가보지도 않은 북한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 한국의 시인 백석의 삶과 대표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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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 머릿속의 스위치를 끄고 싶을 때 보는 뇌과학 이야기
홋타 슈고 지음, 윤지나 옮김 / 서사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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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달리 별로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인간이지만 독서모임 멤버들 기다리는 동안 바람 맞으며 읽으니 이 모든 삼라만상은 결국 인간 대 인간인가 인간 안, 그러한가 싶었다. 뇌과학서라고 하는 건 좀 오바 같지만 그래도 내 뇌에 도움이 되는 책인지라 가볍게 읽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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