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아홉 소년도 아는 것을 왜 마흔아홉 아줌마는 머리로는 알지만 심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걸까 했다가 방금 전에 심적으로도 이해가 되어 푸근해진 마음으로 간만에 일기를 쓴다. 아이가 좋아하는 유투버는 열아홉인데 소소한 일상의 도전으로 컨텐츠를 엮어나간다.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영원으로도 이어질 거 같다 싶은 인연들에 대한 기대로 말을 끝맺는 열아홉 아이가 얼마나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할지 기대가 생겼다. 3분짜리 병맛같은 유투브 하나를 보고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질 수도 있군, 싶어 또 소소한 기록.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지만 간만에 영차. 물론 푸근하지 않을 때는 잔인한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는 게 특기이긴 하지만. 특기를 살려 잔인한 말을 속사포처럼 랩으로 내뱉어 릴스로 올리면 엄마는 금방 스타가 될 거야 라고 딸아이는 이야기했다. 잔인함은 진지하고 냉철하다. 그래서 표면 위로 잔인하게 말을 만들어 가슴을 후벼파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속사포처럼 내뱉을 때는 이미 이성을 잃고난 후다. 이성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또 그건 그것대로 좋을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관계성은 제로 이하로 떨어질지도. 그래도 어디 한번? 진지하게 5초 정도 생각해보았다. 그래볼까? 라고.
브래디 미카코 언니의 책을 한 권씩 천천히 읽고 있다. 뇌가 정화되는 느낌이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어 그런지, SNS를 좀 자제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구나 이 정도. 궁금하리라 여겼으나 의외로 담담해지기도. 끊어지고 단절되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알았다. 읽는 시간은 더디 흘러갔고 그게 나쁘지 않았다. 활자들이 눈에서 사라지다 흩날리는 경험은 눈의 이상보다는 심리적인 거 같은데 라고 스스로 진단내리고 책을 좀 멀리 했다가 다시. 취미에 당당하게 읽기라고 더 이상 쓰지 못하게 생겼다. 읽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흐릿해진 경우. 운동 강도가 세졌으니 이 정도는 먹어야겠지 여겼고 그 결과 돼지가 되었다. 먹으면 먹는대로 그대로 살로 가는 몸. 안일해지는 순간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표정이고 인간의 몸이라는 걸 또 깜박하고. 오 끔찍해,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렸고 급하게 운동 강도도 보통으로 돼지처럼 먹던 단 군것질도 좀 줄이기 시작했다. 극단적으로 탄수화물을 줄이고 정제당이 들어간 식품을 끊으면 살은 급속도로 빠진다. 그렇다고 해서 식욕이 있는 마당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먹는 맛을 잃는다는 건 살 맛을 잃는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살 맛을 잃을 경우 먹는 활동은 극히 어리석어 보이니까. 하지만 먹는 활동에 탐닉되어 끝없이 먹을 거 이야기만 하는 것도 역시 비호감이다. 정제당도 줄이긴 했지만 열심히 먹는 덕분에 다시 붙은 살은 의외로 쉬이 떨어져나가지 않는다. 역시 중년이란. 다시 느끼면서. 얼굴에 오동통 살이 붙은 걸 본 이들은 좋아한다. 이제서야 건강해보이는구나, 라고.
모임이 있을 때 자주 가던 이탈리아 밥집에서 딸아이와 이른 저녁을 먹고 한 시간 동안 느긋하게 청계천을 걸었다. 여기에서 자주 모여 와인도 먹고 식사도 하고 그랬는데 말야, 그게 마치 까마득한 옛날 일로 여겨지네, 말하니 시간이 흐르고 인간들은 왔다가 다시 떠나가곤 하지. 라고 피드백을 보인 건 열일곱 소녀. 마치 인생을 깨달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마 꼬맹아, 라고 조개를 껍데기에서 까서 입 속에 넣으며 중얼거리니 그래서 아쉬워? 하고 아이는 물었다. 찰랑거리는 심연에 얼굴을 찰나 들이박고 물었다. 아쉽니? 연아,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순간은 정직하다. 아니, 전혀. 응, 그러니까 말야, 엄마, 라이프란 그런 거지, 라고 아이는 대답했다. 울고 가슴을 쥐어뜯어봤자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을 그렇게 쉬이 보면 안 되는 것, 이라는 말이 왜 자연스럽게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인간들은 다 거대한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데 자기 시나리오대로 되리라고 여기는 건 또 뇌의 가장 크나큰 고집.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상대방 탓을 하기 전에 말귀를 제대로 오픈할 수 있도록 소통하려고 애썼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역시 육아를 하는 입장이기도 해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동시에 나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반백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는 건 쉽지 않고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다. 할머니 앞에서 투정을 부렸더니 할머니는 희망과 빛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청춘이다, 아가. 그러니 두려워하지도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 무섭고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아도 네 앞에 있는 건 빛이니까.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도 키운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루한 일도 아닌지라.
브래디 미카코 에세이 안의 소년이 이렇게 말했거든 하면서 알려준 그 말을 아이는 그런 식으로 써먹었다. 라이프란 그런 거지. 각자 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살아가지만 그 시나리오대로 착착착 현상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도 불운도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 내가 현명하고 지혜로워 그러는 게 아니라 나도 사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걸 이해해보려고 내 나름대로 애를 쓰다보니 이 자리에 온 거다, 라고 미국의 어떤 심리학자는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리라고 예상했다가 덜커덕 발목을 잡혀 좀 스크래치가 나고 말겠지 하고 여겼다가 발목이 떨어져나가는 경우도 있고. 뎅강 잘려나간 발목 자리를 허하게 바라보다가 이런, 계산을 잘못 했군, 하고 쯧쯧 혀를 차기도. 하지만 잘려나간 발목 자리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한탄만 하기에는 너무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세상이다. 잠깐만 내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세상을 마주하면 속사포처럼 새로운 것들이 엄청나게 쏟아지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로 안으로 틀어박히는 시간도 나름 좋았다. 고통은 이왕지사, 라고 하지만 가급적 겪지 않는 게 좋습니다. 미친 개에게 물려봤자 끔찍한 기억들만 한가득 생기니까, 라고 또 어느 뇌과학자는 친절하게 유투브에서 말했다. 탓하지 않고 서로를 안아주는 시간은 좋다. 모두에게. 하지만 까닭없는 비난이 그저 어느 한 부분 트리거가 되어 비난의 화살을 쏘게 될 경우에 그 화살 하나는 무수한 화살들이 되어 상대방의 심장을 짓뭉개어 버린다. 이건 관계성에 관련된 이야기인지라 그 화살을 쏘는 이가 내가 될 수도 혹은 그 화살을 맞는 이가 내가 될 수도 있다. 왜 굳이 화살이어야 하는가, 그게 또 의구점이기도 하지만. 시작은 화살 하나지만 그 화살촉에는 선의가 담겨있지 않다. 악의와 분노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화살촉. 음 이건 뭘까.
변호사를 만나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커피를 마셨고, 아는 지인이 소개팅을 주선해주어 소개팅을 했다, 하지만 서로 이상형이 아닌지라 가끔 커피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곳에 있기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 아는 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웃음이 좀 비실비실 나오기도 했다. 세상은 이렇게 비좁은 거다, 한 사람 건너 또 한 사람 건너면 겹치기 일쑤. 인간은 그래서 악하게 살면 다 돌아오더라구요, 라고 그가 이야기했다. 정말 그렇다고 여겨요? 라고 아이스라떼를 한 모금 삼키고 물어보니 그는 머리를 좀 굴리는듯 하다가 답했다. 악한 말과 악한 행동이 업보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나쁜 말을 했구나, 나쁜 행동을 했구나, 라는 걸. 입술을 비죽이다가 그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꽤 있던데, 지능과 무관하게, 심보와 무관하게 라고 말하니 그런 바보들에게까지 왜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합니까, 이렇게나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시대에, 라고 답하며 그는 시니컬하게 웃었다. 오, 제법이군,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의 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더니 계산해볼까요 해서 대충 계산을 해보니 12억. 종이냅킨 위에 적힌 셈법을 헤아리다가 으흠 12억이라니, 하고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충격이 좀 크군요, 소리내어 말했지만 뭐 그러려니.
판사 언니가 왜 그렇게 나를 말렸는지 그 까닭은 좀 이해가 확실히 되었다. 그때 느낀 것들. 그런 것들을 다시 느낄 필요는 없겠지. 인간이 제 속내를 드러내보이는 건 언제나 다급하고 긴급할 때와 많은 것들을 손에 움켜쥐고 있을 때다. 이때 셈법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그걸 보면 그 인간이 보인다. 법정을 나오면서 다시는 저 자리에 앉고 싶지 않군, 했던 기억도.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불과 얼마 전이다. 바람은 전혀 불지 않지만 뜨거운 태양이 서서히 열기를 낮추는 걸 바라보면서 아이와 만나 식사를 하고 청계천을 걸으면서 12억이란 숫자를 다시 떠올리고 그 떨어져나간 발목 자리에서 피어날 것들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뎅강 잘려나간 발목에서 피어나는 게 있다면 그건 조금 더 굳센 것들이 될 테고 그 굳센 것들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고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호기심에 사로잡혀 태양과 함께 반짝거리는 은빛 달을 응시하면서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말들. 돼지가 된 마당에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지, 근육도 잘 생기지 않는 마당에, 싶어 먹고 마시는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과하게 먹고 마시는 건 욕심이고 그건 어떻게든지 드러나기 마련이다, 감추려고 해도. 근육을 허락하지 않는 몸이로군 하지만 헬스장에서 내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질체력에서 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해도 장한 것. 장하다고 하지만 조금 더 애쓰면 될 터인데 그 '조금만 더' 이게 힘들다. 바운더리의 벽이 이렇게나 강해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처럼. 나이트 죽순이로 보이는데 의외로 성실하네, 라는 말을 경상도 아줌마에게 들었다. 어깨를 탁 치면서 왜 이렇게 솔직하십니까, 웃으며 말하니 내가 나이트 죽순이로 살아봤으니까, 라는 말을 듣고 웃음이 더 터져나왔다. 요가할 때 우리만 키득키득거리다가 선생님한테 지적질 당하기 일쑤. 6월도 금방 지나갈듯. 할 일이 좀 많아졌다. 기록하려는 욕망은 한여름이 되면 다시 지글지글 끓어오를 것이다. 다 좋은데 어깨가 너무 굽었네, 라고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하시고 엎드려 가만히 힘을 빼며 에너지가 차오르는 시간이 되면 요가원 모든 선생님들이 다가와서 등을 누르고 어깨를 낑낑거리며 잡아당기는데 그럴 적마다 웃음이 차오른다 저 뱃속 깊은 곳에서. 운동 강도는 보통, 하지만 다시 차오르는 웃음은 그득. 생각은 이어지고 궁금한 것들도 이어지고.
+ 밑줄긋기는 [여자들의 테러]
16세의 후미코는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담흑의 눈동자로 차분히 읽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간의 완전한 독립이란 목숨을 걸고 구하는 것임을.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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