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저녁을 먹고 샤워를 다 하고 뜨끈하게 커피를 내려 에밀리 브론테 읽다가 관둔 부분부터 다시 펼쳐 5페이지 읽고, 아마 나는 나를 버리게 될 것이다. 거창하게 말할 필요 없이 나는 내 에고를 버릴 계획이다. 어쩌면 이미 내 에고의 일부는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아쉽고 불편한가 묻는다면 그러하지 않아 좀 낯설긴 하지만 에고를 일부 버린다고 해서 에고 전부가 사라지거나 버려지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하다. 작년에 이혼 준비를 하면서 서서히 의도치 않게 살이 빠지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뼈가 덜그럭거릴 정도로 살이 빠지기도 빠졌지만 그때 내가 느낀 것들, 살 20키로가 빠져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은 달라지지 않고 더 명확해지는 것들은 더 명확해진다면 그러할 경우 에고를 버리거나 에고가 바뀐다면 나는 어느 정도로 변화할 수 있을까. 지금에서야 그때 그 점쟁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됐다. 그러니까 에고를 버리고 다른 에고를 가지라는 이야기였군. 다른 인간이 되라는 말이 낯설게 들리기도 들렸고 내가 어째서 다른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걸 물었더니 다른 인생을 원하잖아요, 라는 피드백에 귀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른 에고를 가지거나 이미 갖고 있는 내 에고를 찢어버릴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캐서린의 대사 하나를 주워담다가 아 그 소리였던가 싶으면서 에고라는 게 만일 물질화된 상태라면 금이 쩌적 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살 20키로가 떨어져나가는 것보다 조금 더 고된 과정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해볼만 하겠다 라는 안일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쩐 일일까. 신들의 속삭임일지도, 라는 생각도 저절로 들었다. 평소에 해보지 않던 요가 동작을 해보겠노라고 척추 운동을 좀 과하게 했더니 어긋나있던 뼈들이 아우성을 내지르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어디 내 에고라는 게 있다면 그게 얼마나 찢기고 변형이 되는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하자 싶다. 작년에 그 점쟁이 표현대로라면 살이 찢기워지고 근육이 팽창되고 뼈가 다시 제자리를 잡으려고 온갖 난리를 칠 텐데 심장이 얼마나 꿀렁꿀렁거릴지 그건 본인 선택이라고. 타이밍이 진짜 기가 막히네. 작년에는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먹었는데.

친구는 윌리엄을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루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끔 현식이 떠오르는데 고등학교 펜팔(지금 아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뭐 그런 것들이 그 시대에는 몇 종류 있었는데) 3년 내내 하고 딱 스무살에 만났을 때 현식의 나이가 스물여덟. 현식이 등단했을 때가 대학생이었던 때로 기억하는데 스무살에 처음 만나 인사동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게 자주 떠오른다. 오빠가 방송국에 취직을 하고 더 자주 보았고. 만일 그때 첫사랑을 만나지 못했다면 현식이 내 첫사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이긴 한데 좀 애매하긴 함. 서로 화학적으로 튀기고 그런 건 없었던지라. 루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현식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현식이 재능에 대해서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때는 오빠가 한 말이 옳을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뭔가 그건 아니다, 그리고 그 말이 옳다면 그걸 오빠가 오빠 삶에서 지킬 일이지, 내 업은 아닌 거 같다, 내 업은 오빠와 같은 맥락에 있을지언정 다른 방식으로 드러낼 거다, 했던 게 떠올랐다. 현식과 병률을 그 당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종종 하지만. 현식도 벌써 예순이 가까워오는데 어딘가에서 나이들어 일상을 살아가다 가끔 내 생각을 하겠구나 나처럼.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절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현식과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구남친이 중장년 한국 남성들에 대해 쓴 칼럼을 우연히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비웃긴 했지만 난 아직도 구남친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구나 라는 걸 알았음. 시간이 맞았더라면 오랜만에 그가 하는 강연에 참석해서 깜짝 놀래키고 싶지만 그 시간에 나는 여행을 하고 있을 예정인지라 아쉽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보지 못하네. 그렇다고 여행을 째고 강연에 참석할 정도로 그가 보고싶은 것도 아닌지라. 우리의 몸은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 몸이 내 영혼의 사원임을. 거칠고 예민한 성정을 지닌 이들을 사랑하는구나 알았다. 소설을 읽다가 내 옛사람들 떠올리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