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짐승이 아니야, 라고 맏언니 치비는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다가 며칠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떠올랐다.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긁히는지, 그 긁히는 부분에 자신의 본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러니까 선한 사람은 악한 걸 보면 거기에서 긁히고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진실에서 긁힌다고. 그런데 반대로 봐도 긁히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또 헷갈릴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움에 긁힐까? 아니면 추함에 긁힐까? 인간이 뭐 그렇게 단순한 존재는 아니니까. 걸음을 옮기면서 조지 오웰의 소설을 라디오극으로 만든 방송을 듣다가 또 소설 내용이 가물거려서 읽긴 읽어야겠네 싶었다. 치비와 마그다와 리비가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 자유인이 된 걸 만끽하며 서로 와인잔을 부딪치는 곳까지. 어린 독일인 병사가 소녀들의 탈출을 저지하며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쏴버릴 테야, 라고 말하니 너는 하나고 우리는 여럿, 네가 나를 쏘게 되면 내 동생들과 친구들이 네게 달려들어 네 눈알을 뽑아버릴 거야, 자비를 베풀 테니 얼른 꺼져, 라고 치비가 말하니 어린 소년은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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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2-22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니 뜨끔하네요 ㅠ. 저도 최근 많이 긁히고 있는데요 조신하지 못한 탓입니다. 반성하고있고요 조신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ㅠ

수이 2026-02-22 15:06   좋아요 1 | URL
아니 왜 뜨끔하신가요;;; 그리고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긁히는 부분들은 뭐 최소한 서너 군데는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 자유인들도 아니고 자유롭게 하고싶은대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조신하시라고 드린 이야기 아니니 쾌활하게 써주세요. 가곡도 꼭 올려주시구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차트랑 2026-02-22 15:10   좋아요 0 | URL
조신하라고 하신 말씀 아닌거 아는데요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그런거입니다. ㅠ

말씀 고맙습니다 수이님,
저는 이만 조신하게 물러가옵니다~
 
상속자들 - 학생과 문화
피에르 부르디외.장클로드 파스롱 지음, 이상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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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무엇을 상속할 것인지 택하고 결정하는 건 상속자들의 몫이 아니다. 그들은 물려받은 그 유무형의 것들로 사슬보다는 날개로써, 하지만 명명하는 건 마치 사슬인 것마냥 우쭐대며 부끄러워하며 겉멋을 부리기 마련이다. 시대가 바뀌고 장소가 바뀐다고 해도 변한 건 없다. 욕망이 그러할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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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라는 걸 어디에 둘 수 있느냐, 이런 건 없다고 보지만 살아가다보면 그걸 명확하게 체감할 수 있는 계기들이 생긴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와 사느냐, 누구와 이야기를 하느냐, 어느 곳에서 일을 하느냐, 무엇을 읽느냐, 어느 지점에 분노하느냐 등등. 그러니까 다와다 요코가 말한대로 '우리는 바다를 항해하게 되는데' 바다를 항해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함께 하는 이들과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를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을 하는지 아니면 내가 착각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존중을 받는 위치에 있다보면 누구나 남녀노소 차별하지 않고 마주하는 이들 모두를 존중할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배웠지만 그게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노망과 야망의 차이가 단지 한 글자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젠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그저 젠더' 따위에 신경을 쓰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거 아니냐고 나보다 정확히 열 살 많은 선배들이 이야기를 하던데 너희들에게는 '그저 젠더'잖아. 나한테는 '그저 젠더' 따위가 아니고.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따질 수는 없었지만.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갱년기에 다다른 더 이상 젊지 않은 유색인 여성으로서 다시 정체성의 개념에 다다른 오늘 오후. 커피가 어느때보다 더 달고 더 쓰더라. 









사실은 언어뿐만 아니라, 뭔가 다른 것, 명명되지 않은 것, 어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타락했음‘이 점점 분명해지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이 언어 바깥에는 다른 언어가 존재하지 않아요. 따라서 더 깨끗한 언어의 존재를 믿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더 나은 언어를 발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는 이 단 하나의 ‘타락한‘ 언어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에요. 그러한 언어를 미화하지 않고서 말이죠. 그래서 이러한 언어 자체를 말하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시위가 됩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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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2-10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업으로 어떤 사람을 묶어두는 게 옛날 방식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그게 유효한 세상이구요. ‘당신이 어디 사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는 기막힌 아파트 광고인데 실제로 사람들은 그걸 실천하고 살고요. 저 역시 완벽하게 자유롭다... 그렇게 말할 수 없을테고요.
젠더는 워낙 두텁게 우리 삶을 에워싸고 있으니깐. 알아차리기 쉽지 않죠.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은 그렇게 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6-02-11 15:13   좋아요 1 | URL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하기에 더 많이 더 자주 말씀하시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경계와 무관하게 언제나 성실하게 탐구하는 단발님 모습을 보면 경탄스럽기 그지 없어요. 넌 많은 것들을 하염없이 누리면서도 언제나 불평불만이구나, 라고 말한 엑스가 떠오르네요. 뜬금없어 엄청 웃기만 했어요.

그나저나 좋은 집에서 살고 싶군요. 🥰
 





흥미로운 구절들, 오랜만에 읽는 다와다 요코. 언제나 읽어도 즐겁다. 

안네 듀든 메모. 고양이가 혀를 날림거리면서 손바닥을 핥는다. 

더할나위 없이 취약성이 묻어나는 여린 몸짓들. 

그 와중에 선과 악이 동시에 피어난다. 


가야 할 방향을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계속 그 길을 가던 이는 한밤중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방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쪽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걸어온 길이 너무 멀고 깊어 다른 길로 방향을 틀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겨우 반백을 살아왔으면서 누가 누구의 삶을 재단하고 평할 수 있을까.

어떤 방향성도 무관하다 여기면서 실은 어떤 방향만을 옳다고 여기는 아집이고.

꼭 당해야 아냐? 라는 말을 나에게 조언으로 해준 사람에게 하고픈 말은 

응, 난 당하고난 후에야 아는 사람, 그러니 어리석게 언제나 뒤늦게 알고 

그걸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왜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 같은 줄 알까? 


다와다 요코 문장들 읽다가 웃음 계속 나오니까 아이 왈, 그리 잼나나? 

다가와 책제목 보고 기겁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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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2-09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벌써 읽으셨다니 역시! 😍

수이 2026-02-10 09:16   좋아요 1 | URL
읽고 있습니다 ☺️ 일본 여행 잼나게 다녀오세요 건수하님

건수하 2026-02-10 09:40   좋아요 1 | URL
넵!

단발머리 2026-02-10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코는 안 읽어봤는데 올려주신 그림이.... 너무 흥미로운데요. 새이고, 말이고, 사자이고 그런거네요? ㅎㅎ

수이 2026-02-10 09:17   좋아요 1 | URL
표지 마음에 들어요. 내용은 더 좋구요. 오늘도 춥습니다 🥺
 






따지고 들자면 무언가를 상속받았을까 궁금해지기도. 또 병이 도졌구나, 라고 동생이 말했다. 푸훕,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늘의 끌리는 책을 집어들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쭉쭉 읽혀서 즐겁다. 결국 계급성의 차이인 건데 어느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지 그래서 정확히 어딘가에 있는지 헤아리는 수고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런 걸 매번 따지는 건 피곤한 일. 읽다가 눈길이 오래 가는 구절들 찍어 올린다. 아이는 내 무언가를 상속받게 될까? 교수인 사촌이 아이 교육을 위해서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고 이모에게서 들었다. 굳이? 물었더니 이렇게나 자식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야, 라고 이모는 혀를 쯧쯧 찼다. 이럴 때는 내가 이모보다 더 옛날 사람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의 하루 스케줄은 빡빡하기 그지 없다. 안식년을 맞이해서 사촌은 바로 미국으로 갔고 조카는 꽤 수준 높은 사립학교에서 천국과 같은 생활을 누리고 귀국했다고 한다. 있는 자들이나 없는 자들이나 모두 자식 교육에 혈안이다. 나도 분발해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긴 먹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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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2-06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두 자식 교육에 혈안인거 이해하고, 그리고 그럴 수 있다 생각하는데, 왜 이부진 아들이 공부 잘 하냐며!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소리쳐 외쳤습니다.

빨간책, 저도 있어요^^

수이 2026-02-06 16:53   좋아요 1 | URL
아몬드 먹으면서 입시 지옥에서 탈피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부진 아들은 휴대폰을 3년 동안 안 쓰고 게임을 3년 동안 끊었다고 하더군요. 스마트폰을 없애십시오 단발님 하하하. 저도 진지하게 고려해보았으나 스마트폰 없이 어떻게 살지, 길찾기 제일 잘 이용하는데 싶어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안 읽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단발머리 2026-02-06 17:0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제 말이요 ㅋㅋㅋㅋㅋ 제가 핸드폰 반납한 사람들 여럿 알고 있고요. 또 그게 효과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요. 그런 결심을 어떻게 이부진 아들이 했냐 하는 겁니다. 저는 ‘결핍‘이, 혹은 ‘결핍‘이야말로 변화의 가장 큰 동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결핍이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무슨.... 없는 경우입니까.

너무나 궁금한 것 말입니다. 진짜 궁금해요, 완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6-02-06 17:15   좋아요 1 | URL
결핍은 음 글쎄요. 이게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핍보다는 동기부여인 거 같은데요. 이부진 아들이 한 이야기로는 3년 동안 그렇게 도파민을 끊고 이런 결과를 얻고난 후의 도파민도 꽤 가치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걸 어린 나이에 알다니 역시, 하고 감탄했습니다. 결핍 말고 동기 부여로 가보시지요.

단발머리 2026-02-06 17:18   좋아요 0 | URL
전…. 결핍으로 봅니다 ㅋㅋㅋ 아, 뭔가 밑줄 가져오고 싶은데 생각나는 책이 없네요ㅋㅋㅋㅋ메롱! 🤪☺️😎

수이 2026-02-06 17:37   좋아요 1 | URL
밑줄을 기다리겠습니다. 근데 결핍, 중년이 생각하기엔 좀 고달퍼요. 아니면 귀찮든가 아 이게 더 솔직한 거 같은.

2026-02-06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06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