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조건을 먼저 서술하고난 후에 상황을 제시하는 것과 상황을 먼저 알려준 후 조건을 서술할 때, 그 어마무시한 괴리감이 놀라웠다.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앎에도 불구하고 그 소소한 조건들에 사로잡혀 테마를 잃을 때 감탄도 나오긴 하지만. 단골 서점에 들려서 신간이 뭐가 들어왔나 체크하고 대형서점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책들을 훑고 다음에 사고픈 책도 찜해놓고. 100미터마다 한집 꼴로 떡볶이를 파는 곳이 세 군데 있는데 손님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은 중간에 있는 집. 저기가 맛집이로군, 서서 떡볶이와 어묵과 순대를 입에 넣으면서 만족스러워하는 이들의 표정과 주인장의 표정까지 캐치하고난 후 다음을 기약했다. 카프카와 생떽쥐베리와 크리스타 볼프를 읽는 와중에 예니 에르펜베크를 시작했다. 겹쳐지는 것들이 은근 있어서 읽는 일이 더 흥미로워지고 있다. 어제 알라디너와 댓글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속으로 대꾸했다. 저는 바다와 같이 거대한 애정을 주고받는 일에 그다지 능한 인간이 아닌걸요, 악.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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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3-1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볶이집에 즐겨찾기 해주세요~~ 다음에 방문하리!!!

수이 2026-03-10 19:46   좋아요 1 | URL
떡볶이순대어묵 다 먹으려면 3키로 말고 5키로~~
 







감 놔라 배 놔라 왜 사람들은 자신의 식탁도 아닌데 위한답시고 원하지도 않는 조언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정말 위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자신의 뜻을 가스라이팅하는 걸까? 너는 내가 특별히 아끼는 사람이니까. 물론 그런 경계도 정하지 않고 말을 하는 거지만. 너는 왜 그렇게 살아? 이렇게 살아가는 게 훨씬 더 안전하고 편한데. 너만 그렇게 살아.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게 너무 답답하고 한심해보여. 네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그렇게 왜 살아? 라고 한 번도 나는 묻지 않았어. 부모자식, 형제자매, 그러니까 피가 뒤섞인 관계에서조차 그런 말을 하는 건 정말 조심해야 하는 일인데 말야. 자신의 시간이 아닌데 자신의 영역이 아닌데 자신의 사랑이 그저 최고인 줄 착각들을 하면서. 뭘 해라 뭘 하지 마, 이런 걸 왜 정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음. 독립적인 존재들끼리 마주해서 함께 하는데. 


정말 생을 가볍게 만드는,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 그런 걸 드디어 내가 실천할 수 있게 됐을 때. 나를 불편하게 만들면 그걸로 끝인데 그걸 몰랐어. 그냥 내가 잘못 보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거잖아. 하지만 기회를 주면 그걸로 아주 심장을 시퍼렇게 멍들게 할뿐이라는 걸. 


심장이 내내 뛸 거라고 여기지. 하지만 우리의 심장은 언젠가 멈출 수밖에 없어. 검버섯과 기미와 주름으로 그득 덮인 얼굴로 맨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하며 심장의 마지막 북소리를 들을지는 오직 스스로만이 정할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남의 인생에 함부로 감을 놓고 배를 놓아라 하면 너무 멍청한 일. 너는 왜 그렇게 멍청한 생각들만 그득 하고 살아? 라고 묻는 건 매일밤 같이 몸을 섞는다고 해도 해서는 안될 말. 설령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해도. 


나는 천재야. 이 말을 하지 않는 유일한 이. 천재가 나는 천재야, 라고 하는 거 나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라고 함.


미친듯이 속사포처럼 말을 퍼붓고. 


봄이 아닌 줄 알면서도 봄이라고 착각을 하고 둘 다 옷을 얇게 입고 나가 바들바들 떨었다. 미신일 줄 알면서도 그 미신을 잘 지키면 바운더리 안에서 내내 안전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태도는 어리석지 않다. 선선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용서하기로 했어. 저주만 내내 하니까 지쳐서. 그래서 고백록을 쓰기로 했어. 하지만 당분간은 더 방탕하게 살아보고 싶어. 나는 그걸 자유라고 믿으니까. 여기에도 흰 머리, 저기에도 흰 머리. 황정은 소설가 이야기를 했고 김지승의 리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층적인 규정들로 인간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그 태도가 너무 오만해서 나는 그쪽으로는 읽고 싶지 않아. 인간은 그렇게 심플하지 않잖아.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세상을 향해서 오만한 시선을 보내고 싶지 않아. 그런 건 나를 더 시니컬하게 만들어. 


사진을 얼마나 못 찍던지, 보이는 그대로 카메라를 들이밀면 그 시선대로 모든 게 다 들어올 줄 아는데 번번이 그게 아니라는 걸 또 알게 되고. 광화문과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을 바라보면서 봄이 곧 너머에서 올 것임을. 올린 사진들은 모두 그녀가 찍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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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3-09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화문과 김치찌개는 쉽게 이해되는 조합이고, 고닉과 치즈 케이크는 환상적인 조합이네요 ㅎㅎ

수이 2026-03-09 22:28   좋아요 0 | URL
읽어보겠습니다 :)
 

유디트 헤르만 시작, 쌀로 만든 식빵에 치즈 한 장 올려놓고 딸기잼 살짝 올려 사과랑 커피랑. 여기저기 빵집을 다녀보아도 역시 여기 식빵이 제일 훌륭하다는 사실. 값이 사악해서 그렇지. 조카 결혼하는데 뭘 입고 가야 하나, 살찔 때 옷을 다 버렸다. 다시 살찔 때를 대비해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어야 했거늘. 언어가 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하는 톤이 확실히 뒤라스와는 다르다.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오는듯.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가 들리고 마치 머나먼 나라에 와있는 것만 같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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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2-25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멋진 책을 많이 읽나요?ㅋㅋㅋㅋ

중년…나이 들어갈수록 여러 가지 버전의 옷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두요.
살 빠졌을 때 입을 옷.
살 쪘을 때 입을 옷.
이것저것 갖추기 싫음 한 언니는 다 가려주는 원피스가 가장 편하다곤 하던데…ㅋㅋㅋ

수이 2026-02-26 10:38   좋아요 1 | URL
멋진 책인 줄은 모르겠지만 읽다보니 오 좋은걸, 하고 있습니다 ^^

살은 한번 빠지면 다시는 찌지 않으리, 싶었는데 역시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지더라구요.
다 가려주는 원피스는 저도 여름에는 즐겨 입는데 이렇게 간절기는 애매한 거 같아요.
따뜻한 날 즐겁게 보내요 책나무님 :)
 























오늘의 밑줄. 방학인데 내내 놀기만 한다고 동생이 조카에게 소리 지르는 걸 들으면서 우리도 방학 동안 내내 놀기만 했잖아, 라고 하니까 우린 놀기만 하지 않았어! 책도 읽었다고! 라고 대꾸하는 걸 들으면서 빙그레. 아저씨 셋이 들어와 영화와 연기와 배우들 이야기를 주식 이야기 틈바구니 사이로 하는 걸 엿듣고 있다. 모두 다 평론가처럼 말하네! 미모가 대단하다는 이십대 여성 살인자 이야기도. 시끄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불편하지도 않은 걸 보니 무의미한 배경음악과 다를 바 없는. 내가 왜 너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거니? 라고 물어본 적은 없지만. 딸아이가 라이프라는 건 C, B와 D 사이에 있는. 이라고 해서 초이스, 벌스, 그리고 데쓰.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어떤 선택들과 선택들이 하나씩 겹쳐지고 쌓이다가 순간 또 확 허물어져버리는. 내가 너를 선택한 건가? 네가 나를 선택한 건가? 어쩔 수 없는 선택들도 온전하게 책임을 지려고 한다면 그것도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지?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채찍을 들고 바닥을 날카롭게 치고픈 충동이야 있지만 그래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니 하고 심호흡을 한다.

세 사람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 한 액자 속에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알아버림. 힌트를 발견했다. 한 뿌리를 지니고 있되 가지마다 뻗어 자라는 꽃송이는 모두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세 꽃송이에만 방점을 두고 있다가 한 뿌리라는 걸 알았고 거기에 포인트를 두면 다른 장면들이 쏟아져 나온다. 심리적인 면모에만 초점을 두어도 괜찮겠다. 동일한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제각각 다른 생각들을 하면서 끝없이 풍경들이 펼쳐지고. 우연히 동일한 시간, 다른 공간 안에서 각자 동일한 행위들을 하면서 펼쳐지는 다른 생각들도.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나이든 여성 노숙자가 짐으로 가득 들어찬 이마트 장바구니 두 개를 낑낑거리면서 든 채로 환한 빛이 쏟아지는 음식점 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풍경과 마주했다. 아이리스 머독 이름이 보여서 어떤 책일지 궁금해서 충동적으로 구입.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으나 현재 쓰고 있다는 논문의 개요는 좀 관심이 간다. 사장님이 드립을 새로 내려 서비스로 주시면서 곧 봄이 오겠네요, 하셨다. 건조하고 메마른 손이 두 발목을 쥐는 손간 봄이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라는 문장이 찰나 머릿속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추하고 고통스럽고 천한 걸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며 두 팔 벌려 반길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추하고 고통스럽고 천한 짓을 극히 자연스럽게 하는 이들조차 그러하지 않을까. 동생과 대화 나누던 중. 그러니까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쓰고 있으니까. 인간의 탈을 쓰고서 해야할 짓과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있다는 것 정도는 굳이 부모가 아니어도 학교라는 제도권 안에서 어떤 가르침들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 스스로 얼굴을 붉히는 짓을 하고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는 있어도. 카프카의 글을 읽는데 이십대 초반에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경험의 폭이 시간과 더불어 넓어진 거야 당연한 거지만 그때는 또 그때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심장의 형태가 단 하나뿐일 거라고 여겼던 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이들과 어떤 사랑을 주고받느냐에 따라서 그 심장의 형태와 빛의 세기와 컬러가 모두 다 달라진다는 걸_


  




  





1. 나는 나중에 (21장) 내적 심연이라는 이미지가 우리가 결코 완전히 소모할 수 없을 만큼 무진장한 영역을 나타내는 자아 탐구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음을 논하고 싶다. 이 용어는 낭만주의 시대 이전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미지가 몽테뉴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세밀함에 대해 예리한 감각을 지닌 몽테뉴는 때때로 헤르더와 훔볼트의 동시대인인 것처럼 보인다. [몽테뉴 수상록], 제2권, 6, P. 399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정신같이 잘 헤매는 움직임을 좇으며 우리 내심의 주름살의 불투명함 속에 침투해서 그 요동하는 수많은 세밀한 모습을 하나씩 포착해보려는 기도는 생각보다는 훨씬 힘든 가시밭길이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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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2-24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흥보전을 창으로 들을 때마다 의문이었지요.
같은 부모밑에서 태어난 형제인데
한 놈은 놀보이고
다른 한 분은 흥보시라니.... 했답니다.

그나저나 베토벤 피협에 라두 루푸라니요~!!
어제는 어느 분의 서재에서 읽으시는 책의 두께에 압도되었는데
오늘은 라두 루푸를 보고 껌뻑 죽습니다~

신선한 충격을 연일 받습니다.

좋은 저녁되십시요 수이님~!

수이 2026-02-25 09:38   좋아요 1 | URL
인성은 바탕인지라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다들 부지런히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사는 거겠죠. 다 흥부처럼 태어날 때부터 착할 수는 없으니까요 ^^;;

제 음반이 아니라 카페 안 풍경인지라 전 차트랑님이 알려주셔서 다시 봤어요. 신선한 충격을 연일 받으시면 뇌가 좋아한다고 하던데요.

봄날 감기 조심!
 




우린 짐승이 아니야, 라고 맏언니 치비는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다가 며칠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떠올랐다.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긁히는지, 그 긁히는 부분에 자신의 본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러니까 선한 사람은 악한 걸 보면 거기에서 긁히고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진실에서 긁힌다고. 그런데 반대로 봐도 긁히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또 헷갈릴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움에 긁힐까? 아니면 추함에 긁힐까? 인간이 뭐 그렇게 단순한 존재는 아니니까. 걸음을 옮기면서 조지 오웰의 소설을 라디오극으로 만든 방송을 듣다가 또 소설 내용이 가물거려서 읽긴 읽어야겠네 싶었다. 치비와 마그다와 리비가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 자유인이 된 걸 만끽하며 서로 와인잔을 부딪치는 곳까지. 어린 독일인 병사가 소녀들의 탈출을 저지하며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쏴버릴 테야, 라고 말하니 너는 하나고 우리는 여럿, 네가 나를 쏘게 되면 내 동생들과 친구들이 네게 달려들어 네 눈알을 뽑아버릴 거야, 자비를 베풀 테니 얼른 꺼져, 라고 치비가 말하니 어린 소년은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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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2-22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니 뜨끔하네요 ㅠ. 저도 최근 많이 긁히고 있는데요 조신하지 못한 탓입니다. 반성하고있고요 조신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ㅠ

수이 2026-02-22 15:06   좋아요 1 | URL
아니 왜 뜨끔하신가요;;; 그리고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긁히는 부분들은 뭐 최소한 서너 군데는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 자유인들도 아니고 자유롭게 하고싶은대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조신하시라고 드린 이야기 아니니 쾌활하게 써주세요. 가곡도 꼭 올려주시구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차트랑 2026-02-22 15:10   좋아요 0 | URL
조신하라고 하신 말씀 아닌거 아는데요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그런거입니다. ㅠ

말씀 고맙습니다 수이님,
저는 이만 조신하게 물러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