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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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어디 그럼 나도 소설 따위나 써 볼까’, 하고 마음 편히 생각했다. 하루키에 따르면, 누구나 소설 따위는 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한다, 이건 나잖아.’ 나 역시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과연 하루키처럼 35년 간 소설을 써 낼 수 있을까.

 

19784월 진구 구장, 야구트르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의 센트럴리그 개막전, 1회말 히로시마의 선발투수 다카하시가 제 1구를 던지자, 힐턴은 좌중간 2루타를 쳐냈다. 이때 하루키는 생각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에피퍼니의 순간. ‘본질의 돌연한 현현’.

 

하루키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에 반해, 나에겐 에피퍼니의 순간 따위 없었다.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하루키는 무언가를 쓰는 게 고통이었던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그리고 , 이제부터 뭘 써볼까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걱, 무언가를 쓰는 게 고통이었던 적이 없었다니! 소설의 형식은 아니지만 사실 나 역시도 무언가를 계속 써왔다. 지금이야 훈련이 되어서인지 글을 쓴다고 해서 체력이 고갈되지는 않지만, , 삼십대 시절엔 하루 종일 글만 쓰다보면 다음날은 거의 기진맥진으로 뻗어버렸다. 그럼에도 일인지라 계속 써야할 수밖에 없었다. 고역이었다. 어떤 작품에 대해 그것도 소설이냐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써내는 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분명 고된 일이다. 하루키는 수영이나 달리기를 한다. 숱한 작가들이 산책이나 운동에 시간을 들이며 건강을 챙기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다보니, 불현 듯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로서의 각오>가 떠오른다. 두 사람은 차이점만큼이나 공통점이 많다. 하루키나 겐지나 습작시절이 없었다. 하루키가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군조 신인상으로 등단했다면 겐지는 22살 때, 첫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와 상을 수상했다. 이후 문단과의 거리를 두는 점도 비슷하다. (마루야마 겐지는 이후로 문학상을 거부했다.) 또한, 두 소설가는 삼십년이 넘도록 전업 작가로 소설을 써내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하루키가 다자이 오사무 과라고 한다면 마루야마 겐지는 단연 미시마 유키오 과. 겐지는 게이나 여자에게 인기가 있으면 끝장이다라는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연히 마루야마 겐지보다는 하루키가 더 잘 팔린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어디 그럼 나도 소설 따위나 써 볼까싶다가도 <소설가의 각오>를 떠올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마루야마 겐지도 사소설 같은 건 누구라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겐지에 따르면, 그래봤자 미국의 웨하스보다 가벼운 일인칭 소설의 뒤를 쫓아가는 피에로로 전락할 뿐이다.

 

하루키의 소설이 가볍다면 겐지의 소설은 묵직하다. 그럼에도 두 작가의 조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가의 조언을 종합하자면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은 얼마만큼 고독을 견뎌낼 수 있느냐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의 자세라고 말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일이고 정신의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행위다.

 

소설가는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심연 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려내야만 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텅빈 백지 앞에서 하루키처럼 마냥 즐거움을 느끼며 글을 쓸 수 있을까. 혹은 겐지처럼 몸 전체를 예민한 레이더로 만들어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을까.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평생토록 고독을 견뎌낼 수 있는가?’

 

Yes라면 쓰시라.

 

나는 소설 따위쓰고 싶지 않다. 그저 읽고 싶다. (읽는 것만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게 문제다.)

 

소설가는 바닥까지 내려가서 쓰시라.

독자인 나 역시 바닥으로 내려가 읽겠다.

 

우물에서 만나자.   


밑줄 친 글 


p110.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p150.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 맥 화면으로 말하자면 대략 두 화면 반이지만,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200자 원고지로 계산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의 초고가 3,600매였습니다.

 

내가 경애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그런 망치질을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라고. 그 기분, 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 정도가 한계다. 이 이상 더 고치면 도리어 맛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라는 미묘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P245. 그처럼 나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좋아, 이번에는 이런 것에 도전해보자라는 구체적인 목표 대부분은 기술적인, 눈에 보이는 목표-를 한두 가지씩 설정했습니다. 나는 그런 식의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과제를 달성하고 지금까지 못 해본 것을 해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작가로서 성장한다는 구체적인 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단 한 단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것처럼. 소설가의 좋은 점은 설령 쉰 살이 되더라도, 예순 살이 되더라도, 그런 발전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P251. 그는 뭔가 얘기 끝에 고교 시절의 친한 친구 네 명에게서 거부당했던 체험을 사라에게 말합니다. 사라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즉시 나고야로 돌아가 십팔 년 전에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쓰쿠루에게 말합니다.“ (너는) 네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꼭 봐야 할 것을 봐야 해.”라고.


사실 나는 사라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 다자키 쓰쿠루가 그 네 명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즉 사라의 말 한 마디가 거의 한 순간에 이 소설의 방향과 성격과 규모와 구조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P270. 리키 넬슨이 만년에 발표한 노래 <가든파티>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이런 기분, 나도 잘 압니다.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봐도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오히려 나 자신이 별 의미도 없이 소모될 뿐입니다. 그러느니 모른 척하고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만일 평판이 좋지 않더라도, 책이 별로 팔리지 않더라고, ‘, 어때, 최소한 나 자신이라도 즐거웠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 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P283. 예전에 개인적으로 존 어빙을 만나 대화했을 때, 그는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봐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독자에게 메인라인을 히트hit하는 거예요. 말이 좀 험하기는 하지만.” 미국 속어로 메인라인을 히트한다는 것은 정맥주사를 맞는다, 즉 상대를 애틱트(마약중독자)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 정도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커넥션을 만든다......이건 알아듣기 쉬운 비유이기는 한데 이미지가 좀 반사회적이라서 나는 직통 파이프라는 온건한 표현을 썼지만 뭐,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략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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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ika 2016-05-28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얼마전에 미루야마 겐지 소개 받았는데 읽어봐야겠군요. 다자이 오사무과와 미시마 유키오과의 비교가 재밌네요 ㅎㅎ

시이소오 2016-05-28 08:02   좋아요 0 | URL
저도 마루야마 겐지 작품을 더 읽어봐야 겠어요.
`국가`는 진도가 잘 나가시는지요? ㅎㅎ

ethika 2016-05-28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1권 다 읽으면 말씀드릴게요 ㅎㅎ아직까지는! 재밌네요 ㅎㅎ

시이소오 2016-05-28 08:05   좋아요 0 | URL
재밌다니 다행이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물에서 만나자.... 줗군요.. 아. 갑자기 그 시가 생각나네요. 벼랑에서 만나자..

시이소오 2016-05-28 11:40   좋아요 0 | URL
기억이 날듯 날듯한데 모르겠ㅇㅓ서 검색했어요
조은 시인 시죠 ㅋ
조아요^^

cyrus 2016-05-2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혼자 글 쓰는 작가를 음울하다고 표현해놓고선 자신은 글 쓰는 일이 즐겁다고 말하니까 하루키는 작가 세계의 ‘먼치킨’(센 캐릭터)입니다. ^^

시이소오 2016-05-28 12:03   좋아요 0 | URL
쎄죠ㆍ단 한번도 라이터스 블럭을 경험한 적이 없다니
천부적인 소설가죠^^

깊이에의강요 2016-05-2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매일 20매정도의 원고를 쓴다는 성실성이 뭔가 너무 직장인스러운...^^;

시이소오 2016-05-28 22:35   좋아요 0 | URL
ㅋ ㅋ ㅋ 대가들은 다들 직장인ㅊㅓ럼 썼어요 ^^

깊이에의강요 2016-05-2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력없어요ㅋㅋ
영감을 받아 번개처럼 며칠밤을 새우며 썼을거라는 환상은 ...
말그대로 환상^^

시이소오 2016-05-28 22:44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앤소니 트롤롭 ㅇㅖ를들죠
직장인처럼 썼다는게 알ㄹㅕ지자 인기 확 떨어졌대요.
영감으로 쓰는건 릴케나 ㅋ

2016-05-29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9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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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재 발명되어야 하는데.....

안락한 자리만을 바라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마음은,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말지.“

 

-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강신주, 이상용의 <삼십금 쌍담의 인트로>는 랭보의 시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 <에로스의 종말>의 서문은 알랭 바디우가 썼다. 서문의 제목은 <사랑의 재 발명>이다. 알랭 바디우에 따르면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사랑을 재 발명하기 위한 투쟁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 경향을 강화한다. 자본주의는 성애의 다른 용법을 알지 못한다. 에로스는 포르노로 비속화된다.”

 

한병철은 <피로사회>, <투명사회>, <심리정치>에 이어 <에로스의 종말>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인간의 사물화 경향을 고발한다. 무엇이 에로틱한가? 감추어진 것, 베일에 싸인 것, 무언가 미지의 것,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 금기를 위반하는 것, 위험을 동반하는 것, 등이 아닐까.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질투를 미화해. 괴로움을 제거해버리지. 뭐가 미화할까 aestheticizing? 왜 마취하지 anesthetizing않을까?” 글쎄, 어쩌면 둘 다겠지. 그건 대신하는 거야.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타락한 예술 형식이야. 그것은 진짜인 체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진실을 버려. 포르노 영화에 나오는 여자를 원하지만 누가 그 여자와 씹을 하든 그 사람이 자신의 대리가 되기 때문에 질투는 일어나지 않아. 아주 놀랍지만 그게 심지어 타락한 예술의 힘이야.

 

그 사람은 대역이 되어, 그렇게 보는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거야. 그것이 가시를 제거해서 영화를 즐길 만한 것으로 바꾸는 거야. 보는 사람이 그 행위의 보이지 않는 공모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제거되는 반면 내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그대로 유지돼. 나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신물날 정도로 자신을 잔뜩 채운 사람이나 얻는 사람이 아니라, 얻지 못하는 사람, 잃는 사람, 잃어버린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니까.

 

- 필립 로스, <죽어가는 짐승>

 

반면 포르노에선 모든 것이 낱낱이 적나라하게 전시된다. 포르노에서 타자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구경거리를 단지 소비할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사회를, 인간을 포르노 화시킨다. 점점 더 나르시시트가 되어가는 성과주체는 사랑 (에로스)을 두려워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아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부정성이다. 내가 사랑하는 타인은 동일자의 지옥에 끌려오지 않는다.

  

플라톤에 따르면 에로스는 영혼을 조정한다. 에로스는 영혼의 모든 부분, 즉 충동, 용기, 이성을 전반적으로 지배한다. 영혼의 모든 부분은 각자 자기 나름의 쾌락 경험을 지니며, 아름다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한병철이 사랑을 에로스로 표현한 것은 그것이 충동이자 용기이며 이성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타자는 소비되지 않는다. 타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자아가 깨지고 무너지고 파편화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를지라도. 또한 에로스는 사유를 촉발한다. 에로스 없는 로고스는 공허할 뿐이다.

 

하이데거가 아내에게 보낸 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타자, 즉 당신에 대한 사랑과도, 그리고 다른 면에서 나의 사유와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것이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렵소. 나는 그것을 에로스라고 부르는데, 파르메니데스의 말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신인 에로스의 날개짓은 내가 사유에서 중대한 일보를 내디디며 전인미답의 지대로의 모험을 감행할 때마다 나를 건드린다오.

 

에로스는 우리로 하여금 전인미답의 지대로의 모험을 감행케하는 것이다. <옆집의 나르시시스트>에 의하면, 오늘날 나르시시트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 한병철에 따르면 그게 포르노다. 나르시시스트에게 타인은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face)가 아니라 타인의 얼굴(visage)을 바라봐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특히 에로스를 성애와 포르노그래피로 대체함으로써 사회의 전반적인 탈정치화를 초래한다. 신자유주의의 토대는 충동이다. 각자 고립되어 있는 성과주체들로 이루어진 피로사회에서는 용기도 완전히 불구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의 행위는 불가능해진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는 성립할 수 없다.

 

바디우는 정치와 사랑의 직접적 결합을 부정하지만, 정치적 이념의 기치 아래 실천과 참여로 점철된 삶과 사랑 특유의 강렬함 사이에는 신비로운 공명같은 것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마치 그 소리와 힘에서는 완전히 상이한 두 악기가 위대한 음악가에 의해 하나의 곡 속에 합쳐져서 신비로운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것같다.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세계,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에서 나오는 정치적 행위는 어떤 심층적 차원에서 에로스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에로스는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다.

 

신자유주의는 사랑을 포르노로 속화시킨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개인은 사랑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을 소진시키고 소비하고, 포르노 화 할뿐이다. 에로스를 회복할 때에야 우리는 타인과 신비로운 공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타인과 연대를 통해 시스템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고, 신자유주의의 동일자의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상처받기 싫어 사랑하지 않겠다? 자신을 포르노 화시키는 짓이다.

바타이유에 따르면, 에로티즘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죽어도 좋아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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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살롱 2016-05-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읽었어요.
늘 그랬지만
감탄과 희열을 느낍니다.
질투날 정도로 이해가고 설득됩니다.
와....

시이소오 2016-05-27 15:16   좋아요 0 | URL
한병철 교수 책을 읽다보면
저 역시 희열을 느껴요^^

우민(愚民)ngs01 2016-05-2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생각나네요

시이소오 2016-05-28 08:03   좋아요 0 | URL
아, 사랑은 머리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죠. ^^

Classicolor 2016-06-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시이소오 2016-06-08 17:31   좋아요 0 | URL
오,리뷰쓴 보람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16-09-1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가만히 읽고 보니 카치아피카스가 <한국의 민중봉기>에서 20세기 파리코뮌이라고 평가한 광주민주항쟁에서 보인 사람들의 행동을 `에로스 효과`라고 명명한 것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 아니구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시이소오 2016-09-19 12:39   좋아요 0 | URL
카치아피카스의책을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에로스 효과란 명명은 충분히 적절하다고 보여지네요 ^^

아라치 2022-05-2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어려운 책이 정리가 되네요. 읽었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책이었는데^^
 
여행자의 책
폴 서루 지음, 이용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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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일상은 책과 산책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근교의 산이나 길을 걷는다. 하루 종일 걷기도 하는데, 지하철에선 주로 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을 읽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만일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사서 가져가야지.

 

삼년 전에도 삶의 위기가 있었다. 동네 뒷산도 가 본적이 없었건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겨울 지리산 종주를 감행했다. 겨울산은 위험하다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산에 올라 죽을 운명이라면 일찌감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위기인걸까. 이 책엔 매장마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과 작가, 책들이 즐비하도록 소개되건만(필사 포기), 가장 눈에 들어온 문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었다.

 

“solvitur ambulando.”

솔비투르 암불란도.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만일 우리가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면 나는 이 문장을 믿겠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걸으면 해결된다를 읊조리며 삼악산을 올랐다. 고작 5km의 코스건만 4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다. 너무 소요하며 걸어서일까? 다음날 임금 체불한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번 내가 전화해서 재촉했었다. 전화 끊고 나서 1분 만에 체불된 임금이 입금되었다. 나처럼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갈 수 없는 형편이라면 동네뒷산이라도 오르자

걸으면 해결된다.

 


폴 서루가 이곳에 살고 싶다가 아니라 이곳에서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아홉 군데의 장소.


 

발리



태국



코스타리카



오크니 군도



이집트 - 카이로가 아닌 다른 곳.



트로브리엔드 군도



말라위



메인 주




하와이



 

폴 서루가 뽑은 장소 중, 나는 고작 발리와 태국만을 가 봤을 뿐이다. 언젠가는 다른 곳도 갈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이곳도 나쁘지 않다. 여행은 마음의 상태니까.


여행은 마음의 상태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이국적인 곳에 있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여행은 거의 전적으로 내적인 경험이다.

 

- 폴 서루, <신선한 공기의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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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5-26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아침부터 풀썩. 넘 이쁩니다.

시이소오 2016-05-26 08:17   좋아요 0 | URL
싱그리님, 싱그러운 아침되시길 바래요 ^^

지니 2016-05-2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으면 해결된다`
오늘 저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단 한마디 갔습니다.
시이소오님의 글을 읽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저기 틈나는 대로 걸어 보겠습니다.
저 사진 중 코스타리카에 있다고 상상하며 불편한 모든 생각 내려놓고 걸어봐야겠습니다.
오늘을 잘 보낼 수 있는 해결책 감사합니다~~
이래서 북플이 좋아요~!!
책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시이소님~^^*

시이소오 2016-05-26 14:15   좋아요 1 | URL
좀 걸으셨는지요? 안 좋은 일들이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계속 좋은 하루 되세요 ^^

hnine 2016-05-2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어디 저장해두어야겠습니다.
저도 현재로선 위의 장소보다 우선 제 집 뒷산이 더 중요합니다. 당장 걸을 수 있으니까요 ^^

시이소오 2016-05-26 14:16   좋아요 0 | URL
그쵸? 오늘 비가와서 아쉽네용^^;

2016-05-26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5-26 14:21   좋아요 0 | URL
죽어도 좋아, 할만한 장소들이죠. 걸으셨다니
리뷰 쓴 보람이 있네요.
제가더 감사하죠 ^^

물고기자리 2016-05-26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걷는 걸 무척 좋아해요.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하루에 12킬로 정도를 걷는데 그 시간은 책 읽는 시간과도 바꾸지 않죠.

5월엔 아카시아꽃향기 때문에 책을 못 읽었어요;; 달콤한 숲 향기와 걷기는 지상의 축복 같아요^^

시이소오 2016-05-26 14:28   좋아요 1 | URL
하루에 12키로라니 대단하십니다
저도 4월, 5월은
책 보다는 산책이 더 좋드라구요 ^^
 
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남성으로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선 위선이거나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박해와 차별을 당한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볼테르 식으로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여성을 착취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페미니스트의 적이다. 설거지도 안 하고,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는 내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변명을 하자면 가사노동을 분담하려고 해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우리 와이프가 못하게 한다. (와이프가 이 글을 안 봤으면)

 

다만 나는 성폭력이나 성희롱, 성추행을 해 본적은 없다. (성추행을 당해본 적은 있다. 남성에게. 또한 몸무게 100kg를 훌쩍 넘긴 듯한 여성에게. 맞을까봐 조용히 있었다. 이런 된장.) 고등학생 때, 여동생을 한 번 때린 적은 있다


(낮잠 자는데 피아노를 치 길래 치지 말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더 세게, ‘포르티시시모<엄청 강하게>’로 피아노를 쳤다. 그래서 나는 여동생을 쳤다.. 그래도 나는 메조포르테<조금 강하게>’정도로 쳤을 뿐이다. 남동생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이 때렸으니 피아니시시모<엄청 약하게>’에서 포르티시시모까지 모든 강도로 - 성차별은 아닌 것 같다.....성차별일까)

 

최근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남성의 무차별 살인 사건에 희생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여성 혐오냐 아니냐로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여성 혐오 범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대다수 여성들이 여성 혐오로 인식한다는 게 아닐까. 그만큼 그동안 여성들이 여성 혐오를 직접 몸으로 겪어왔다는 반증이다.

 

여성을 왜 혐오하는지 잘 모르겠다. 일자리에 대한 남성들의 위기 때문일까.

여성은 당연히 숭배해야 하거늘.

 

비록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책에 대한 독후감은 쓸 수 있지 않을는지. 프로이트는 작은 차이를 가지고 끊임없이 대립, 반목, 경멸하는 현상에 대해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다. 페미니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리버럴, 마르크시즘, 래디컬, 백인, 흑인, 근본적인, 온전한, 포괄적인 등등 여러 분파가 난립, 각자가 자기만이 옳다고 하고, 다른 페미니즘에 대해 이를 가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즘’(혹은 부족한)을 주장한다. 페미니즘을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토대로 록산 게이는 미국의 문화, 즉 영화, 소설, 드라마, 팝송 등에서 은폐되어 있는 여성의 성차별을 들추어낸다. 책의 어떤 부분들에선 저자의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가 다른 곳에선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했다. 내 관점에서 록산 게이는 전혀 배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어떤 장에선 가혹하다 할 만큼 작품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헝거 게임>이 이렇게 대단한 소설이었다니! 영 어덜트 소설이라 무시했거늘. 읽어봐야겠다.

 

여성 캐릭터는 왜 항상 호감만 연기해야 하는가하는 저자의 문제제기엔 동의할 수가 없다. 록산 게이의 말대로 나는 여성 캐릭터가 호감만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저자는 다른 글에서 남성 캐릭터가 비호감이라고 비난한다. 이건 완벽한 모순이다.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강간을 일삼는 개차반 남성 캐릭터를 비난할 근거가 없어진다. 성차별이다.

 

얼마 전에 리뷰를 썼던 주노 디아스의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도 록산 게이의 도마에 올랐다. 록산 게이는 소설의 작품성을 인정하지만 그 안에 성차별주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주노 디아스는 여성들을 착취하는 수시오’(난잡한 놈)이자 페로’()인 도미니카노(도미니카 남자들)에 대해 썼다. 록산 게이는 이 수시오들이 잘못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꺼림칙하다고 말한다. 록산 게이는 소설속의 여성들이 단지 유니오르의 성적 쾌락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만일 그렇다면 유니오르는 왜 떠나간 애인을 몇 년동안 잊지 못하는 걸까. 단지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서였다면 다른 여자로 대체하면 그만 아닌가.

 

이외에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같은 소설, 드라마 <걸스>, <헬프>, <노예 12>, <장고 : 분노의 추격자>등의 영화도 록산 게이의 도마에 오른다. 예를 들어, <헬프>같은 경우 뇌를 아파트에 놓고 영화를 보러 간다면괜찮은 영화라고.

 

록산 게이는 공인들이 커밍 아웃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게이란 단어가 여진히 비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게이 남성들이 주목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나는 공인들이 왜 커밍아웃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인이 아니라면 더 더욱. 왜 사람들은 타인의 잠자리 취향까지 알려고 하는 걸까. 사적 영역이란 개인의 은행 잔고라고 말했던 이는 누구였더라. 록산 게이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집단 강간당한 사건을 고백한다. 굳이 이 사실을 꼭 밝혀야만 했을까.

 

강간 농담, 강간 유머가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한국에도 있나? ‘합법적 강간’? 강간이 어떻게 합법적일 수 있을까? 선거철만 되면 선거 공약으로 낙태 제한권을 들고 나오는 정치가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미국 정치가들은 한국의 새누리당 정치인들만큼 제 정신이 아닌 것들이 많구나. 여성들이 그리스 희극 <리스스트라타>처럼 성 파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남자와 어느 정도 사귀고 나서 남자가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피임약 복용하니?”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아니? 그러는 너는?”하고 답할 때이다.

 

윗 문장을 읽고 남성인 나는 왜 이리 통쾌했던걸까. 나는 남성으로서의 나의 특권을 인정한다. 이게 출반선이 될 수 있을까. 록산 게이는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허무라도 욕망하라고 말했던 니체의 경구가 떠오른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앞으로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을 욕망하고 싶다.


 

린 히긴스, 브렌다 실버 <강간과 재현>

다이애나 스페츨러, <스키니>

케이틀린 모란, <진짜 여자가 되는 법>

가렛 카이저, <프라이버시>

수잔 콜린스,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 <모킹 제이>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케이트 잠브레노, <그린 걸>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조앤 디디온, <플레이 잇 애즈 잇 레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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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25 15: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성을 ‘숭배’해야 한다는 표현이 오히려 남성혐오자들의 반감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숭배라는 단어가 신 같은 종교적 대상을 우러러 보는 행위를 뜻합니다. 여성혐오자들은 남성의 존재감이 여성보다 아래에 있는 상황을 싫어합니다. 과거 남성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그리워합니다. 옛날에는 남성이 신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말에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들도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주체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남자들은 위계질서를 누리는 주인공이 여자가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자신들의 위치가 협소해질까 봐 불안감이 생기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현실을 못마땅합니다. 저는 여성혐오의 원인을 이렇게 봅니다. 이거 말고도 다른 원인이 있을 겁니다. ^^

저는 숭배보다는 여성의 말과 행동에 ‘공감’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말과 생각에 공감해야 합니다. 공감하는 행위 자체가 여성의 말을 인정한다는 의미니까요. 제가 남자 입장에서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느낀 게 남자는 여자의 사소한 말 한 마디를 귀 담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자가 올바른 소리를 해도 한 쪽 귀로 흘러 듣습니다.

:Dora 2016-05-25 17:16   좋아요 1 | URL
정신적으론 숭배찬성 태도는 공감...웬지 자존감이 급상승하는 느낌이 들어서 찬성합니다

시이소오 2016-05-25 17:36   좋아요 0 | URL
아고 답글이계속 사라져 힘드네요 ㆍ공감이더 적절한 표현이겠네요 ^^

cyrus 2016-05-26 15:57   좋아요 0 | URL
To. Theodora, 시이소오 // 처음에 ‘공경’이라는 표현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을 노인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고민한 끝에 ‘공감’으로 바꿨습니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녀 모두 평등하게 사는 삶을 만드는 방식도 차이가 있거든요. 제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입장도 있을 겁니다. ^^

시이소오 2016-05-26 16:16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

:Dora 2016-05-25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에게는 친밀함의 유전자가 없다고 누군가 쓴 걸 읽었어요. 모든 불평등과 차별에 반대하는 의미에선 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시이소오 2016-05-25 16:44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친밀한 남성들도 있지 않을까요?

:Dora 2016-05-25 16:55   좋아요 1 | URL
ㅋㅋ맞아요 흔하지는 않지만 있긴 있죠

시이소오 2016-05-25 17:06   좋아요 2 | URL
제가 그렇다는거는아니구요ㅋ

:Dora 2016-05-25 17:15   좋아요 1 | URL
확인불가 사항이라 딱히 드릴말씀이 ;;;;
 
명리 : 운명을 읽다 - 기초편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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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시절, 수통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우리 과엔 나와 똑같은 해, 똑같은 달, 똑같은 날에 태어난 군발이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원했다. ‘, 별일도 다 있다싶었는데, 돌이켜보니 그와 나의 사주팔자가 비슷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속한 는 이비인후과, 피부과와는 달리 고작 스무 명 정도의 환자가 있었다. 그 중에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명리학은 무엇인가? ‘운명(運命)’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운용한다, 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은 주어진 요소들을 가리킨다. ‘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명이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명리학은 흔히 사주팔자라고 말한다. 음양오행, 천간지지, 십이운성, 신살 등을 토대로 인간의 을 알아내는 것이다. ‘운칠기삼이라기보다는 운칠명삼이다. ‘주체의 몫이 운이라면 타고난 소명이 이다.

 

군대를 제대 후, 세일즈 아르바이트를 했다. 난 그 당시 정말 이 제품을 믿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칼을 팔았다. 지금은 주부들에게 꽤나 알려진 칼이다. CUTCO 칼이었다. 팀장까지 했었지만 당시 지점장이 내 실적을 가로채 그만두었다. 천간을 살펴보면 나는 신신(辛辛)병존이다. 신신병존은 오늘날 주로 외과 의사 같은 칼잡이들이 많다고 한다. 외과의사는 되지 못해 나는 칼을 팔았던 것일까.



 

사람의 명이 갈리는 부분은 결국 십신이 아닐까. 십신은 다섯가지로 구분된다. 비겁, 식상, 재성, 관성, 인성이 그것이다. 비겁은 비견과 겁재, 식상은 식신과 상관, 재성은 편재와 정재, 관성은 편관과 정관, 인성은 편인과 정인으로 나뉜다. 나는 상관1, 식신2, 편관 1, 정재 3이다. 정재는 선비이고 학자의 마음이라고 한다. 정재의 키워드는 정도를 걷지만, 인간적으로 쪼잔하다이다. 예전에 와이프의 부탁으로 개명을 하기 위해 철학관을 찾아갔더니, 그분은 너무나 답답하다는 듯, 내가 고지식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아마도 정재가 셋이나 있었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듯. 실제로 고지식한 편이다. 넉살이나 사기를 칠 수 있는 재능이 아예 없다. 속이 훤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나는 정재가 가진 단점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십신 이외에 또 십이운성이 있다. 십이운성은 십신과 결합되어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진다고 한다. , , , 장생, 목욕, 관대, 건록, 제왕, , , , 가 그것이다. 나는 제왕이 두 개다. 제왕은 십이운성 중 가장 센 힘이라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엔 정재와 제왕이 만나서 인지 가장 유순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나는 상관과 사가 만난다. 이런 경우 글을 쓰는 작가나 뭔가를 세공하는 장인, 수술을 주로 하는 집도의 등과 같이 정밀한 분야의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명리학으로 보건대, 나는 외과의사가 되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왜 수학을 못했을까. 이런 된장.

 

여기에 또 신살과 귀인이 있다. 대표적인 신살엔 역마, 도화, 괴강, 양인, 백호, 화개, 귀문관, 공망, 삼재등이, 귀인 가운데는 천을귀인, 천덕귀인, 월덕귀인, 문창귀인, 월공, 암록, 천의성 등이 있다.

 

삼재만 살펴보면 나는 해년생으로 들삼재, 묵삼재, 날삼재의 3년이 모두 힘들다고 한다. 작년이 날삼재였다. 무지 힘들었다. 올 초까지 힘들었다. 삼재 끝이다. 음핫핫.

 

귀인으로 나는 천을귀인, 천덕귀인, 문창귀인이 있다. 문창귀인은 인문학적인 귀인으로 종이를 가지고 하는 모든 행위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 지식욕이 있긴 하지만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외에 건강용신, 행운용신, 대운에 대한 설명은 한 두 번 본다고 이해하기엔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점쟁이는 나보고 한국 영화에 획을 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나는 한국영화에 점 하나 찍지 못했다. 대운은 이미 들어와 있고 삼재가 끝났다. ‘대로라면 올해부터 나는 바닥을 찍고 올라설 것이다. ‘역시 그러해야하지 않을까. 

 

을 안다는 것은 명대로 살기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을 거슬러 삶을 운용하기 위해서이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각자에게 부족한 점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게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이 책과 더불어 좌파 명리학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각자가 셀프로 자신의 을 확인해 보는 건 어떨지. ‘을 안다면 을 개척할 수 있으므로.


밑줄 친 문장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이 고정되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천변만화하는 우주적 속성의 한 부분으로, 인간의 근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변치 않고 말해주는 학문이다.

 

20세기 한국 명리학의 태두 중 한 사람인 도계 박재완은 인간의 길흉화복은 환혼동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환은 사람으로 태어났는가의 여부를 말하고, 혼은 조상의 환경이며, 동은 태어난 나라와 시대이고, 각은 바로 그 사람의 자유의지의 깨달음이다.

 

명리학은 무엇인가? ‘운명(運命)’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운용한다, 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은 주어진 요소들을 가리킨다. ‘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명이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연해자평>을 거쳐 청나라 시대를 지나며 <적천수><궁통보감>의 두 개의 틀을 바탕으로 명리학은 다양한 이론의 확산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19세기와 20세기를 지나며, 일본과 중국에서는 아베 다이장과 웨이첸리라는 명리학계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한국에도 20세기 들어 세 명의 위대한 명리학자가 존재했다.....첫 번째 분은 명리학의 자존심 자강 이석영 선생이고, 두 번째는 도계 박재완 선생, 마지막은 가장 영민하고 천재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 불리는 제산 박재현 선생이다.

 

판에는 이판과 사판이 있다.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어떤 현상을 인간적인 직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사판은 현실적인,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고려해서, 형이하학적인 경험론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적천수>에는 다음과 같은 음미할 만한 구절이 있다.

 

오양종기불종세 오음종세무정의

 

다섯 개의 양은 기를 따르되 세력을 쫓지 않고, 다섯 개의 음은 정과 의리 없이 세력을 쫓는다. ”

 

한마디로 양은 명분이고 음은 실리라는 이야기이며,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어할 수 있지만 굳셈은 부드러움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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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6-05-24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리학에 관해 영화를 만들어보심은 ... ^^

시이소오 2016-05-24 13:39   좋아요 2 | URL
굿 아이디어시네용 ^^

오매불망 2016-05-29 16:0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관상이라는 영화도 흥행했잖아요^^

시이소오 2016-05-29 16:08   좋아요 0 | URL
명리를 써양겠네요^^

건조기후 2016-05-24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버지와 엄청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사주팔자에 관성이 아예 없더라고요. 소름 ; 엄청 부자는 못 되어도 평생 의식주 걱정은 안 하고 산다는데 정말 돌아보니 어찌나 근근히 잘도 살아왔는지 ㅎㅎㅎㅎㅎ 다른 책도 더 보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명리학이라는 게 꼭 누구 팔자를 맞추고 안 맞추고 이런 거 보다 인간을 분석하는 틀이 얼마나 체계적인지 그게 정말 흥미롭고 매력있는 거 같아요.

시이소오 2016-05-24 14:22   좋아요 2 | URL
평생 의식주 걱정 안하시다니 부럽습니당
저자도명리학은점치는게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하시죠
건조기후님 말씀대로
명리학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학문 같아욤 ^^

인다라의구슬 2016-05-24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헌 샘 책을 읽고 나서 여러 사람 사주를 받아 풀이해봤는데 역시 책 한 권으로는 한계가 ;;; ^^ 적용해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명리에 대한 관점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

시이소오 2016-05-24 18:17   좋아요 1 | URL
저도 책 구입해서 지인들 사주 풀이로연습을 해봐야겠어요 ^^

2016-05-24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5-24 19:10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였다면 백정의 사주로군요ㅋ 침은 제동생과 아버지가 놓신답니다^^

2016-05-2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5-24 19:2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저도 금천지에요~~
^^ ㅋ

룰루라떼 2016-05-26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만에 북플 들어왔더니,
좋은 글들이 넘치네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은
왜일케나 많은지~ㅠ
그니까
명리학(사주 등)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기에 요 책이
무난할까요?

시이소오 2016-05-26 14:32   좋아요 2 | URL
넵. 저도 완전 문외한이거든요.
편집 을 꼼꼼히 잘 한듯 싶네요 ^^

룰루라떼 2016-05-26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머낫~시이소오님...
완전 전문가 이신줄 알았어요^^ㅋ
바쁘실텐데,
넘 감사합니다^^
시이소오님의 박학하심에
다시한번 놀라며...

시이소오 2016-05-26 14:38   좋아요 2 | URL
책ㅇㅔ 씌여있어 그런거지
제가 박학한건 아니죠~~

다락방 2018-01-2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명리학 공부를 해볼까 하고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이소오님.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후훗.

땡투땡투

시이소오 2018-01-29 17:20   좋아요 0 | URL
ㅋ 이책 추천이요. 저도 명리학 공부를 다시 해볼까요? 명대로라면 잘 살고 있어야하는데 어디서 어긋난것인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