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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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모국의 역사도 모르면서 인문학 코스프레하는 김대식씨의 신작이 나왔군요.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 기고하기 바쁘실텐데 언제 또 책까지. 부지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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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4-1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김대식 교수가 뭐 잘못한게 있나봐요.^^

시이소오 2016-04-16 09:27   좋아요 1 | URL
서경식선생님하고 비교해볼까요? 서경식 선생님 한국말 잘 못하지만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선 저희보다 많이 공부하셨죠. 우리 대식씨는 한국어도 못하면서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선 일자무식입니다. 자국의 역사와 문화도 모르는 사람이 맨날 인문학 운운하니 조금 피곤해서요 ㅋㅋ

ㅋㅋㅋ 2016-04-1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님을 보며 더 ㅋㅋㅋ 합니다. 김대식에게서는 약장수 냄새가 나는 거 같아 좀 거시기 합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모른다고 인문학 얘기를 하면 안되는건가요? 인문학이 언제부터 이렇게 편견에 관대한 학문이 됐나요??

시이소오 2016-04-16 19:27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겠네요. 인문학에 역사를 배제할수도 있군요.

cyrus 2016-04-1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반응이 시들어졌지만 한때 인문학 트렌드가 타 학문과의 융합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중에게 전달되는 인문학이라는 범주 안에 과학,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문의 기본을 숙지해야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다는 관점에 대해선 다르게 생각합니다. 지금의 인문학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여러 분야에 똑똑한 사람만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니까요.

2016-04-16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6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4-23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서를 쓰니까 역사를 모르는 건 뭐 그렇다고 쳐도 내용이 없죠. 과학 분야에서 그것도 최고 학벌을 가진 사람이 쓰는 글인데 그냥 일기장에 둬야 적당한 내용들 별 근거도 없이 주절주절 써내려간 자기 생각이라 .. 그런데 표지와 제목들은 왜 그렇게 오버하는지.. 한번 속지 두번 속지는 않는다는..

시이소오 2016-04-24 21:10   좋아요 0 | URL
제목은 과학서인데 인용은 거의 세계사가 많더라구요. 가만히보면 한국역사에 대해선 단 한번의 언급도 없어요. 한국말 못하는 거야 그렇다하더라도 한국인이면 기본적인 한국 역사는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책 팔때만 한국인거 같아서요. ㅋ

CREBBP 2016-04-24 21:40   좋아요 0 | URL
게다가 새 이슈가 나올 때마다 무슨 장사꾼처럼 재빠르게 책을 미리 써둔 것처럼 초스피드로 내는지 것도 수상쩍어요. 제목만 낛는건지 아니면 미리 이슈될 걸 예상하고 기획한 건지.. 인터스텔라 때도 영화 개봉하자마자 책내더니만 알파고 게임 끝나자마자 동시에 기계 vs 인간 이라니

시이소오 2016-04-25 08:28   좋아요 0 | URL
ㅋㅋㅋ 대식씨가 빠르네요 ^^

니페딘1T 2016-07-0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들과 100자평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100자평은 책을 읽지 않고 비난만 하는 것 같아 보기가 좀 그렇네요. 책의 내용에 대해 언급해 주시면서 비판해 주시면 더 재미있고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7-02 17:29   좋아요 1 | URL
아, 죄송합니다 ^^;

조르그 2016-10-1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제가 지금 김대식의 빅퀘스천을 읽는 중입니다 3분의1 쯤 읽었습니다 우선 문장의 비약 비논리 천지이고 궤변도 수두룩합니다 이정도 엉망인 책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독자 반응을 살피다가 시이소오님의 글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모국의역사도모르면서 등 그의 행적을 담은 정보가 있을까요?

시이소오 2016-10-13 13:02   좋아요 1 | URL
아, 댓글이 밑에 달려버렸네요. 허걱, 대식씨는 무늬만 한국인.
한국말을 몰라요 ^^

시이소오 2016-10-1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고요. 대식씨는 무늬만 한국인이죠. 미쿡,독일. 일본 등지에서 살아서 한국어도 제대로 못한다고 알고 있어요.

강상중, 서경식 쌤도 한국말 못하죠. 그렇다고 한국 역사를 모르진 않거든요. 대식씨는 한국역사에 대해선 일자무식입니다. 그러면서 인문학 운운하니 짜증이나는거죠.
한국에서 인문학이라하면 기본적으로 문,사,철이잖아요. 문사철이 다 없는데 무슨 인문학인가, 의문인거죠 ^^
 
환율의 미래 -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위기"와 "기회"의 시대가 온다
홍춘욱 지음 / 에이지21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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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사라 했다면서요. 너나 사세요.
악마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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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6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6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래된 골동품 상점
찰스 디킨스 지음, 김미란 옮김 / B612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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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소설 중 <위대한 유산>을 먼저 읽은 건 축복이자 저주였다. (어릴 적 읽은 <올리버 트위스트><크리스마스 캐럴>은 제외하자.) <데이비드 코피필드>, <두 도시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 읽은 <오래된 골동품 상점>역시 명작이긴 하지만 <위대한 유산>에 못 미친다.

 

어쩌면 디킨스의 다른 작품을 다 합쳐도 <위대한 유산>의 위대한 경지엔 이르지 못하는 걸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물었을 때, 존 어빙은 마치 망치로 무릎을 때리면 올라오는 다리마냥, 거추장스런 수사 없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위대한 유산이요.”

 

내가 전체 작품을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필사한 책은 <위대한 유산>이 유일하다. (정말 즐거웠다.) 아직 <위대한 유산>을 읽지 않은 분들이 부럽다. 축복받은 거다. <위대한 유산>을 가장 마지막에 읽어야 디킨스의 다른 소설들에 좀 더 관대할 수 있지 않을까.

 

넬이 살아 있나요?”

 

1841, 폭풍가 몰아치던 날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골동품 상점> 마지막 호를 싣고 오는 영국 배를 기다리던 숱한 인파 중에 어느 누군가가 물었다지. 얼마나 궁금했으면. 위기피디아에 따르면 이외 비견될 소동은 2007<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출간 때 뿐이라고 한다.

 

골동품 상점엔 천사와도 같은 넬과 넬의 할아버지가 살았다. 노인은 도박 중독이었다. 노인은 펭귄 맨 대니 드 비토를 연상시키는 퀼프에게 돈을 빌려 도박을 했다. 매번 허탕이었고 빚은 쌓여만 갔다. 퀼프는 노인으로부터 빚을 받아내기 위해 골동품 상점을 점거한다. 노인은 넬을 노리는 퀼프가 두려워 넬과 함께 야반도주한다. 넬은 도주하기 전 상점에서 일하던 키트에게 새장속의 새를 맡기고 이별을 고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넬의 모험이 시작된다. 넬과 할아버지는 인형극을 하는 코들린과 쇼트 일행과 동행한다. 넬의 할아버지를 신고하려는 두 사람의 음모를 눈치 챈 넬은 할아버지를 설득해 그들로부터 도망쳐 유랑한다. 유랑하면서 넬은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55년간 매일 남편의 무덤을 찾는 할머니, 병으로 죽어가는 소년, 소년을 사랑하는 교장, 밀랍 인형 쇼를 하는 잘리 부인 등등. 넬은 잘리 부인으로부터 일을 배워 전시장 안내를 맡는다. 방문하는 마을마다 넬을 보기 위해 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로 넬은 인기를 끌고 할아버지도 자기 몫의 일을 해내가면서 두 사람은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언제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 법.

 

넬과 함께 산책중이던 할아버지는 도박꾼들을 만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쏘냐. 할아버지는 가까스로 번 돈을 도박으로 다 털린다. 돈을 털린 할아버지는 넬이 자고 있을 때 넬의 방으로 들어와 돈을 훔쳐간다. 그 돈도 결국엔 사기 도박꾼들에게 다 털린다. 도박꾼들은 잘리 부인의 금고를 털라고 할아버지를 종용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넬은 할아버지가 도둑질을 할까 무서워 할 수없이 또 다시 유랑에 나선다. 친구가 되고 싶었던 에드워드 양을 남겨둔 채.

 

소설의 주요 공간 중에 한 곳은 퀼프의 변호사인 브래스의 변호사 사무실이다. 브래스는 동생 샐리(‘눈가리개를 벗고 칼과 저울은 들지 않은 정의의 여신‘)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2층은 세를 내 놓는다. 퀼프는 브래스에게 스위블러(넬의 오빠인 프레드의 친구)를 서기로 추천한다. 어느날 2층 방으로 독신 남성이 세 들어온다. 변호사 사무실 지하에는 그들 하녀가 살고 있었다. 샐리는 하녀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않고 마치 원한이 있는 사람처럼 하녀에게 정신적, 육체적인 폭행을 가한다. 스위블러는 그 장면을 몰래 훔쳐본다. 독신남성은 근처에서 인형극을 하던 코들린과 쇼트를 집으로 초청한다. 그리고 독신 남성은 그들에게 넬의 행방을 캐묻는다.

 

선량한 갈랜드 집에서 일하게 된 키트는 꽤 높은 봉급을 받게 돼 어머니 누들스 부인에게 생활비를 보태게 돼 기뻐한다. 갈랜드 댁의 까칠한 조랑말 위스커는 오로지 키트의 말에만 순종한다. 넬의 행방을 파악한 독신남성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형편이라 키트의 어머니인 누들스 부인과 동행하여 넬을 찾아 나선다.

 

또 다시 길을 나선 넬과 할아버지는 어느 선원들의 배를 타고 가 어느 마을에 다다른다. 춥고 배고프고 비는 오는데 넬과 할아버지는 돈 한 푼도 없어 막막한 처지였다. 어느 대장장이의 도움으로 넬과 할아버지는 하룻밤을 쉬어간다. 다음날 어느 마을에서 넬은 마을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다. 그러나, 석달 전에 일자리를 잃은 마을 사람들도 먹을 게 없었다. 굶주려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녹초가 될 정도로 걷던 넬은 어느 여행자를 만나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여행자는 전에 만났던 가난한 교장이었다. 넬과 할아버지는 교장이 새로 부임받은 학교를 향해 동행한다. 퀼프는 넬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독신남성의 뒤를 미행한다. 누들스 부인과 독신남성은 넬을 찾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키트는 엄마를 감시하는 퀼프에게 경고한다. 퀼프는 키트에게 앙심을 품고 변호사인 브래스와 함께 음모를 꾸민다.

 

교장의 도움으로 넬은 교회 사택에서 살게 된다. 새 마을에서 넬은 마을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다. 목사관에는 학사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마튼 선생이 살았고 넬과 할아버지에게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학사는 넬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장단점을 꿰고 있을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한다. 넬은 그곳을 사랑하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지만 이내 병으로 앓아눕는다.

 

스위블러는 브래스와 샐리의 하녀와 카드놀이를 하고, 그녀에게 먹을 것을 내어준다. 또한 이름이 없던 하녀에게 마르셔네스란 이름을 지어준다. 브래스와 샐리는 음모를 꾸며 키트를 절도범으로 모함한다. 키트는 아벨씨와 아벨의 공증인 위서든 씨 앞에 결백을 주장하지만 결국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키트를 절도범으로 만들 증인으로 스위블러를 이용해 먹은 퀼프와 브래스는 스위블러를 해고한다. 스위블러는 쓰러져 3주 동안을 앓아눕는다. 깨어난 스위블러는 도망친 마르셔네스가 자신을 간호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마르셰네스는 키트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음모를 꾸민 브래스와 샐리의 대화 내용을 스위블러에게 들려준다.

 

스위블러는 키트의 주인인 아벨씨와 공증인 위서든, 그리고 독신 남성에게 키트가 모함당했음을 알린다. 세 신사는 샐리와 협상을 벌인다. 퀼프의 사주를 증언하면 샐리의 죄를 탕감해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샐리는 이내 도주한다. 브래스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샐리의 전갈을 받은 퀼프는 도망치다 결국 강에 빠져 죽음을 맞는다.

 

키트는 사면된다. 갈랜드 씨는 넬의 행방을 알게 되어, 키트, 누들스 부인, 독신남성과 함께 넬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갈랜드씨와 오래전 헤어진 동생이 넬 마을의 학사였던 것. 또한 독신남성 역시 어릴 때 헤어진 넬 할아버지의 동생이었다.

 

여행객들이 도착했을 때 넬은 죽어있었다.

내일은 넬이 올거야라고 중얼거리던 넬의 할아버지는 어느날, 넬의 무덤 위에서 영원히 잠든다.

 

 

유년시절 구두공을 했을만큼 비천한 삶을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디킨스의 주인공들은 주로 사회 하층민인 레미제라블이다. 그들을 괴롭히는 이는 사람이지만 그들을 구원하는 이도 사람이다. 평면화된 캐릭터, 권선징악이라는 다소 뻔한 도식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디킨스는 디킨스다.

 

시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풍부한 묘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채롭고 개성 강한 캐릭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유머, 하층민에 대한 따듯하고 정감어린 시선. 인간의 선에 대한 굳건한 믿음 등은 오로지 디킨스만의 특성이다.

 

작은 새처럼 여리고 온화한 넬이 살아가기에 세상이라는 새장은 너무 견고했다. 넬은 죽었지만, 사랑스러운 넬의 미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고통과 근심이 사라진 한 조각의 꿈처럼남았다.

 

세상은 폐허와도 같은 황폐한 집이다. 도처에 악은 만연해 있다. 그러나, 선한 사람도 있다. 현실에서도 넬처럼, <위대한 유산>의 조 가저리처럼,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사람들이 있다.

 

그토록 맑은 영이라니! 담혜! 연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스친다. 돌아가신 어머니, 신영복 선생님의 얼굴도 떠오른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이 삶이 이제 그만 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 덕분에 구원받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은 살만하다.

세상을 살아가게 해 주는 건 신이 라기보다는,

사람이다.

 

만일 지금 괴롭다면,

그건 디킨스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밀줄친 문장 

 

p33. 그는 또 ‘어젯밤 태양이 내 눈을 너무 강렬하게 비춘 탓’에 오늘 자신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다며 양해를 구했는데, 술에 무척 취했었다는 사실을 이런 수식 어구를 써가며 최대한 멋스럽게 표현했다.

"하지만 가녀린 촛불 아래에서 영혼의 불꽃이 일고 우정의 날개가 털갈이를 하지 않는 한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로즈 와인으로 영혼이 성숙하고 지금이 우리 삶에서 최고의 행복이 최소인 순간이기만 하다면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스위블러가 탄식하듯 낮게 읊조렸다.

p339. 자로 코를 문지르다 그것을 손에 쥐고 손도끼처럼 휘둘러보았다. 아주 쉽고 자연스러웠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를 휘두르며 조금씩 샐리의 머리 쪽으로 다가갔다......스위블러는 이렇게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며 자를 휘두르는 횟수를 줄여나갔다. 심지어 쉬지 않고 글을 대여섯 줄까지 쓴 것은 진정 위대한 인간승리였다.

p447, "내 기분을 잘 알거든. 비웃어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저기를 봐라. 나의 친구란다. "
"불 말인가요?" 넬이 물었다.

"불은 내게 책과 같단다." 그가 말했다. "읽은 법을 배운 유일한 책. 불은 내게 많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또 그것은 음악이기도 하단다. 나는 어떤 소음 속에서도 불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어. 타오르는 불은 자신의 함성 속에 또 다른 목소리를 지녔지. 불은 자신의 초상화도 지녔단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석탄에 얼마나 많은 낯선 얼굴과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는지 너는 모를 거다. 불은 나의 추억이기고 하단다. 불은 내 인생 전체를 보여주거든

p465. 넬의 이야기를 듣고 교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깊은 애정과 정직함으로 가난과 고난에 맞서 싸우고, 온갖 불확실함과 위험을 혼자서 의연히 견뎌 내다니! 아직 세상은 영웅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구나. 가장 강인한 사람은 세상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

교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선의의 목적은 실패하지 않는단다."

p481. "이곳은 나리를 환영합니다. 5월의 꽃이나 성탄절의 석탄만큼 나리를 환영하죠."

p495. "지면광고를 작성할까요" 브래스가 펜을 들며 말했다. "그의 인상착의를 떠올린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지만. 그의 다리가.....?"
"휘었지." 지니윈 부인이 말했다.
"휘었다고요?" 브래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허리띠도 차지 않은 쭈글쭈글한 무명 바지에 다리를 쩍 벌리고 거리를 활보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아아! 눈물의 골짜기 같은 세상이여! 다리가 휘었다고 했죠?"
"그렇게 심하게는 아니고요." 퀼프의 아내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다리가 휘었음" 브래스가 글자를 소리 내어 읽으며 써내려갔다.
"큰 머리, 짧은 몸통, 휜 다리."
"완전히 휘었음이라고 하게." 지니윈 부인이 제안했다.

p534.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대부분 상대적이다. 만약 지금 넬이 이 소박한 장소의 평화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인상을 받았다면 그건 지친 발로 여행하며 겪었던 어둡고 힘들었던 과정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엄숙한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깊은 울림과도 같은 것이리라. 낮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그곳의 빛은 낡고 울적해 보였다. 엄청난 시간의 입자로 정화되어 부패를 담고 있는 듯한, 흙과 곰팡이를 떠올리게 하는 실내 공기가 아치형 복도를 통해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고, 주렁주렁 매달린 기둥은 마치 지나간 시간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오랜 세월 경건한 발걸음에 닳고 깨진 바닥은 순례자의 발자취에 지워져 이제는 부서질 것 같은 돌만 남았다. 이곳에는 희미한 빛줄기, 돔형 지붕의 침하, 조금씩 허물어지는 벽, 낮게 내려앉은 바닥, 비문의 글이 닳아 없어진 장엄한 무덤, 대리석, 돌, 철, 나무, 먼지와 같은 폐허의 공통된 상징물들이 모두 존재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소박하게 살았던 사람과 부자로 살았던 사람, 위풍당당한 사람과 볼품없는 사람 이 모든 사람이 이곳에서는 평등했다.

p535. 마침내 종탑 꼭대기에 올라섰다. 아! 쏟아지는 빛의 찬란함이여. 사방으로 뻗어 나가 맑디맑은 푸른 하늘과 만나는 들과 숲,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떼들, 푸른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은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연기, 여전히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으로 무덤가에서 노는 아이들. 이것은 마치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온 것 같았고, 천국에 한층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었다.

p544. "일흔아홉이라니까." 데이비드가 애석하다는 듯 고래를 흔들며 대답했다. "난 본대로 얘기했네."
"보았다고?" 교회지기가 말했다. "아, 참 데이비. 여자들은 항상 나이를 속이잖아."
"그건 그래." 데이비드가 순간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훨씬 많을 거야."
"분명 그럴 걸세. 아니, 외모만 봐도 그렇잖아. 그녀에 비하면 자네나 난 소년이지."
"나이가 좀 들어 보였지." 데이비드가 대답했다.
"자네 말이 맞네. 분명 나이가 들어 보였어."
"몇 살처럼 보이던가. 일흔아홉, 고작 우리 나이로 보이던가?" 교회지기가 말했다.
"적어도 다섯 살은 많아 보였지!" 데이비드가 외쳤다.
"다섯 살은 무슨!" 교회지기가 대답했다. "열 살은 많아 보였네. 여든 아홉은 충분히 됐을 거야. 그녀의 딸이 죽었을 때가 생각나는군. 그때 베키 모르간이 여든 아홉이 다 됐었고, 그게 10년 전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오! 이런."

이 유익한 주제에 대해 도덕적 소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던 데이비드는 죽은 여인이 거의 백살에 가깝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여러 증거를 제시했다. 상호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리고 교회지기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넬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로 상대방이 자신보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 단정하며 헤어진 두 사람은 베키 모르간에 대해 함께 내린 그 사소한 결론에 큰 위안을 얻었다.

p553.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러는데," 아이가 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넬이 천사가 될 거래. 새들이 다시 노래하기 전에. 하지만 넬은 천사가 되지 않을 거지? 그럴 거지? 하늘나라가 좋긴 하지만 날 두고 가지는 마, 넬. 제발 떠나지 마!"

p560. "다시는 미로처럼 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여인의 배신을 상징하는 이 모자를 쓰겠어. 다시는 여인과 장밋빛 미래를 맹세하지 않으리. 내 존재의 잔상으로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는 향유를 죽여 버리겠군." - 맥베스 문장들을 결합.

p569. 난 걸친 옷 따윈 보지 않아. 마음을 보지. 옷을 본다는 건 새장을 보는 것과 같단다. 하지만 마음은 그 새장 속의 새지. 아! 얼마나 많은 새가 새장 속에 갇혀 수없이 털갈이를 하고 새장 사이로 부리를 내밀어 인간을 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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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4-1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앱이서 친구 서재 안에서 검색 이런거 있음 좋겠네요ㅜㅜ
위대한 유산 찾다가 댓글 드려요. 아 필사~ 저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시이소오 2016-04-15 10:01   좋아요 0 | URL
초딩님도 굿모닝 입니다^^

초딩 2016-04-15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유산 어디 출판사 필사 하셨어요? :-)

시이소오 2016-04-15 09:56   좋아요 1 | URL
아, 저는 북스캔 출판사네요^^

2016-04-1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위대한 유산을 필사하시다니!! 존경할 꺼리를 하나 더 늘리셨습니다. 와우! 디킨스에 대한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위대한 유산은 진정 걸작이에요 ^^

시이소오 2016-04-15 15:26   좋아요 0 | URL
컴퓨터 자판으로 했어요 ㅋ
그쵸? ^^

북깨비 2016-04-1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책은 커녕 영화도 안 본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은 초등학교때 축약본으로 읽었고 두도시 이야기는 고등학교때 영화로만 봤어요. 저 지금 완전 축복받은 상태인데 시이소오님 리뷰 읽고 위대한 유산이 막 무지무지 읽고 싶어졌어요. 아 몰라요 저 어떡해요 ㅋㅋㅋ

시이소오 2016-04-15 22:15   좋아요 0 | URL
ㅋㅋ 축복받은 북깨비님,
꾸~~~욱 참으세요 ^^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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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단편집을 읽으면 단편들 마다 수준 차가 있기 마련 아닌가. <축복받은 집>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9편의 단편 중 단 한편도 버릴 게 없다. 완벽하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데뷔작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앨리스 먼로나 플래너리 오코너는 이류 작가로 보일 정도다.

 

나는 단편 소설에 어떤 위협이나 협박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는 약간의 협박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긴장 역시 꼭 필요하다. 무언가 절박한 상황, 처절한 행동이 곧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설 작품 속에서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가운데 하나는 가시적인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단어들을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다 털어놓지 않은 것, 그저 암시만 된 것, 사물의 평평한(때로는 망가지고 뒤집어진) 표면 아래 감춰진 풍경 등에서도 그런 긴장이 발생한다.

 

프리체트 V. S. Pritchett는 단편 소설을 눈꼬리로 힐끗 본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힐끗 본다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언가를 힐끗 본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통해 생명력이 부여되고 그 순간을 조명하는 무언가가 탄생한다. 나아가 운이 좋으면 보다 깊이 있는 결과와 의미에 도달할 수도 있다.


단편 작가의 임무는 자신의 모든 힘을 이 힐끗 보는데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혜와 문학적 기술이 무르익고(재능), 균형 감각과 사물의 합당성에 대한 감각이 길러진다.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명쾌하고 구체적인 언어,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런 숙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디테일은 구체적이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므로, 언어는 정확하고 정밀하게 구사되어야 한다. 단어는 지극히 평범하게 들릴 정도로까지 정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에는 변함이 없다. 제대로 사용된 단어는 모든 음계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캐롤 스클레니카.

 

긴장감, 사물에 관한 풍성한 세부 묘사, 정확하고 정밀한 단어, 예상을 뛰어넘는 대사<섹시>, 엄청난 반전<일시적인 문제>, 포복절도할 유머<진짜 경비원>,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감동<세번째 이자 마지막 대륙>도 있다. <축복받은 집>엔 독자가 단편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완벽히 갖춰져 있다. 줌파 라히리의 단어는 모든 음계를 아우른다. <축복받은 집>은 문학이 선사할 수 있는 종합선물셋트.

 

순수문학을 표방함에도 <축복받은 집>의 어떤 단편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신춘문예용한국단편문학과의 결정적 차이다. 화려하고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 밑으로 부글부글 용암이 끓어 넘친다. 한 페이지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축복받은 집>은 영혼의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준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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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단편집에서 <섹시>를 정말 좋아해요. 사실 이 단편집 보다는 [그저 좋은 사람]을 훨씬 더 좋아하고요. 시이소오님 혹시 [그저 좋은 사람]도 읽어 보셨나요? 그 안의 단편 <지옥-천국>은 저의 패이버릿이에요! >.<

시이소오 2016-04-14 14:20   좋아요 0 | URL
그저 좋은 사람 아직 못봤어요. 덕분에 기대감에 간질거리네요^^

2016-04-1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권유군요. 꼭 읽겠어요.

시이소오 2016-04-14 15:27   좋아요 0 | URL
축복받으세요 ㅋ ^*^

조르그 2016-04-14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겠습니다
읽을 수밖에 없군요

시이소오 2016-04-14 17:17   좋아요 0 | URL
ㅋ 즐독되시길 ^*^

samadhi(眞我) 2016-04-1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집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읽어볼래요. 줌파 라히리라는 작가가 그렇게 천재성을 지녔다고 하니 질투나서 괴로울까봐 읽기를 미루고 있는데요.

시이소오 2016-04-14 17:54   좋아요 0 | URL
ㅋㅋ 질투하실것 까지야. 장편보다 단편에 소질이 있는 작가 같습니다. 저지대는 그저 그랬거든요. ^^

samadhi(眞我) 2016-04-14 18:13   좋아요 0 | URL
김영하같은 스타일인가봐요. 김영하도 장편은 별로거든요.

시이소오 2016-04-14 18:17   좋아요 0 | URL
작가들마다 자신에게 맞는 호흡이 있나봐요. 때려죽여도 장편은 못쓰겠다는 작가들도 있는걸보면요 ^^

samadhi(眞我) 2016-04-14 18:19   좋아요 0 | URL
정말로요. 춤도 노래도 문장도 죄다 호흡의 문제네요.

시이소오 2016-04-14 18:23   좋아요 0 | URL
호흡을 다른말로 하면 리듬일까요? 자신만의 리듬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CREBBP 2016-04-14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같네요. 저도 줌파 라히리 광팬입니다.

시이소오 2016-04-14 19:50   좋아요 0 | URL
읽고나면 다들 푹 빠지나봐요. ^*^

2016-06-2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았어요. 추천 고마워요 ^^

시이소오 2016-06-22 22:52   좋아요 0 | URL
힌님이좋으셨다니 저도 좋네요^^
 
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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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중 하나는 이거예요.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아주 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내가 말하려던 바는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의 말>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말할 땐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유동하는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다.

 

오늘날 악은 누군가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말 없는 윤리적 시선을 외면하는 눈길과 무감각 속에서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탈도덕화의 구원으로 등장하는 것은 소비주의 문화다. 이제 인간은 타인을 상품처럼 대한다.

 

우리는 점차 둔감해져간다. 요제프 로트는 우리의 습관적인 둔감함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했다.

 

큰 재해가 발생하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도 발 벗고 나선다. 급성 재해들은 확실히 이런 효과를 낳는다. 사람들은 재해가 곧 지나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성 재해들은 이웃들에게도 너무 께름칙한 나머지 그들은 재해나 재해의 피해자들에게 점차 무관심해지며 심지어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기까지 한다. ...위급 사태가 질질 끌게되면 도움의 손길은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동정의 불길은 차갑게 식는다.

 

지그문트 바우만,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도덕적 불감증> p.80

 

<세월호 학살>은 국가가 국민들의 습관적인 둔감함을 인식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일까? 우리는 점점 더 시들해지고 무감각해진다. 이런 태도는 결국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다음 재난의 피해자는 누가 될까? ‘는 아닐 거라고? 과연 그럴까? 혹은 만 아니면 재난은 일어나도 되는 건가?

 

재해가 오래 지속되면 초기의 충격과 격분이 망각 속에 빠지고 피해자들을 향한 인간적 연대가 메마르고 쇠약해짐에 따라 재해 자체가 지속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미래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힘이 결합할 가능성은 서서히 약화된다.

 

지그문트 바우만,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도덕적 불감증> p 81

 

 

바우만에 따르면 오늘날 99%프레카리아트’(신자유주의 시대 불안정한 무산계급, 좀비 용어가 된 프롤레타리아를 대체하는 용어).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 프레카리아트는 해고되었거나 앞으로 해고될 것이다.

 

오늘날 99%는 공포 속에 살아갈 뿐이다. 공포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있다.

 

첫째 무지이다. 이것은 미래에 무슨 일이 닥칠지, 어떤 종류의 불행이 어디에서 닥칠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힐지 등에 대한 무지이다.

 

둘째는 무기력이다. 이것은 불행이 닥쳤을 때 그것을 피하거나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구심이다.

 

셋째는 앞의 두 이유에서 파생하는 굴욕감이다.

 

99%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국가에 헌납한다. 공항에서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알몸을 국가에 바친다. 이제 국가는 국민을 길들이기 위해 더 나은 공포를 창조한다.

 

아동 강간범은 네 이웃이다.”,

 

외국인은 연쇄살인범이다.”

 

국가가 모든 걸 감시하지 않으면 테러가 일어날 것이다.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자.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자는 빨갱이다.”

 

공포를 이겨내고 싶으면, 남들과 다르고 싶으면,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지 않는 자는 죄인이다. 소비하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자는 빨갱이다. 규제 철폐, 구조 조정, 민영화만이 살 길이다.”

 

경쟁만이 살 길이다. 네 이웃이, 외국인이 네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

 

언론, 신문, 방송, 지식인들은 서로가 앞 다투어 힘 있는 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오늘도 매일 매일 구호를 떠들어 대고 있다. 양심을 팔아먹은 것들에 힘입어 오늘날 프레카리아트는 연대가 불가능할 뿐더러 오히려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기득권들은 이승만이 국부라고 떠들어댄다. 국부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전쟁이 터져서 우리의 국부께서 도망가실 수도 있다. 선조도 그러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의 국부는 가만히 있으라고 라디오 방송 틀어놓고 왜 한강 다리는 끊고 도망가서 국민들 피난도 못 가게 하셨을까? 한강 다리 아래로 얼마나 씨벌건 강물이 흘러야 우리 1%들은 만족하실려나. 1%눈에 들기 위해 지식인들께선 또 얼마나 많은 역사와 기억을 조작해야 만족하실려나. 언젠가는 이승만이 나뭇잎을 타고 한강을 건너셨다 주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악이 도처에 만연해 있는 오늘날 어떻게 하면 우리는 도덕적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체코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진정한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하벨은 가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어떤 장비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잘 조직되고 견고한 정치 기구에 기초한 대규모 정치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풍성하게 쓸 수 있는 공금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의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군대도 미사일 발사기도 비밀경찰이나 정복경찰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고 그의 메시지를 수백만에게 전달해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따르도록 만들어줄 대중매체도 없었다.

 

사실상 하벨에게는 역사를 바꾸려는 그의 노력에 사용할 수 있는 세 가지 무기만이 있었다. 그것은 희망과 용기와 불굴의 의지였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많은 적든 가지고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 지그문트 바우만, 레오니다스 돈스카스, <도덕적 불감증>

 

머릿속에 박힐 정도로 나는 반복하고 반복할 것이다.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Dum spiro spero”

 

(전공자가 아닌 자가 번역하면 이꼴 난다. 불굴의 의지로 읽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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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3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잡했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드네요

시이소오 2016-04-13 07:34   좋아요 1 | URL
`영혼을 위한 삼계탕`을 드신 느낌이시겠네요. ^^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3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

꼬마요정 2016-04-1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려다가 번역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데요.. 읽을 수 있을까요? ㅠㅠ

시이소오 2016-04-13 08:11   좋아요 0 | URL
짜증스럽긴 합니다만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신다면 읽을 수 있습니다 ㅋ^^

초란공 2016-04-1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내용의 책인데 읽기는 짜증이 나긴합니다. 하지만 전공의 여부와는 무관한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4-13 09:3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오자, 탈자, 비문, 오문들도 많지만 용어번역도 의아스럽드라구요. 바우만의 다른책에서 사회학자 노명우 씨 번역은 자연스러웠거든요 ^^

samadhi(眞我) 2016-04-13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읽을 능력도 없으면서 번역에 무지 민감한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 한탄스럽네요.

시이소오 2016-04-13 21:2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 그런걸요. 이 기회에 저도 영어 공부나 할까봐요. 가끔 참 답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