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페이지까지 에포케 (판단중지)’ 상태로 책을 읽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몇일 동안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이 책이 픽션이었다면 판단은 좀 더 단순했을텐데. 살인자의 쌍둥이 아들 일화가 떠오른다. 쌍둥이 중 한 명은 아버지처럼 범죄자가 되어 감방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아버지를 탓했다. 다른 한명은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인터뷰어가 물었다. 쌍둥인데 왜 그렇게 다른 삶을 살게 되었냐고? 그는 말했다. “저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길모어는 <롤링스톤>의 수석 편집장이었으며, 유명한 음악평론가였고, 이 책으로 전미도서협회상, LA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할 만큼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반면 그의 형 게리 길모어는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살해한 살인범이었고, 1977년 사형당했다. 마이클의 셋째 형 게일렌은 게리처럼 술에쩔어 경미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첫째 형 프랭크 2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당잡부의 삶을 살았다.

 

형들과 마이클의 차이점이라면 유독 마이클만이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맞지 않았다. 아버지 프랭크는 아내인 뱃시를 때리고, 아들 프랭크, 게리, 게일렌을 때렸다. 뱃시는 또 프랭크, 게리, 게일렌을 때렸다. ‘본성과 양육논쟁은 오늘날도 거듭되고 있지만 나는 본성보단 양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정폭력을 당해다고해서 다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가 차후 괴물이 될 확률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더 높을 것이다.

 

가정폭력만큼이나 게리를 괴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소년원과 감옥이라는 시스템이었다. 이른바 교도소(矯導所), 바로잡을 ’, 이끌 . 마이클이 묘사한 미국의 소년원은 흡사 지옥도를 보는 것 같다. 소년들에 대한 일상화된 간수들의 강간. 구타. 상상할만한 모든 잔인무도한 일이 다 행해진다고 봐도 좋으리라. 소년들에게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밖에 남는 게 없다.

 

그러나, 분명 게리는 회생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게리는 모든 가능성들을 제쳐두고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잔인하게 죽였다. 나는 사형반대론자다. 그러나, 게리가 사형 당했다고 해서 그를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책이 제기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이런 것이다. 게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사형당하고 싶어 했다. 사형반대론자인 마이클은 게리의 사형 의지를 꺽고 싶어 한다. 만일 마이클의 의지대로 게리가 사형을 모면하고 형기를 마친 다음, 사회로 나와 또 다시 무고한 시민을 죽인다면? 감옥이 교도, 교화는 고사하고 보다 교활한 괴물들을 생산하는 현실로 미루어보건대, 게리는 출소 후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책을 덮으며 의문이 남았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 책을 써야만 했을까?’ 이미 노먼 메일러가 게리와 그의 가족을 인터뷰한 자료로 <사형집행인의 노래>라는 소설을 써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마이클은 분명 이 책을 씀으로써 다시 한번 살인자의 동생이란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을텐데, 그럼에도 왜 그는 자기 집안의 치부를 들춰내면서까지 이 책을 써야 했을까.

 

이 책은 굳이 쓰여질 이유가 없었다. 나는 저자가 글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허영심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그는 명성과 돈을 얻기 위해 가족의 비밀을 만천하에 까발긴 것이다. 만일 이러한 폭로가 오로지 마이클과 그의 가족에게만 국한되었다면 수긍할 수도 있었으리라.

 

책 말미에 저자는 그의 형 프랭크가 실은 마이클의 배다른 형인 로버트의 자식이라고 폭로한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들과 해 프랭크를 낳았으니, 프랭크는 아들인가, 손자인가? 촌수가 어떻게 되는 건가?) 그의 형이 그 내용을 실어도 좋다고 허락했다손 치자. 그렇다면 로버트와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저자인 마이클 길모어는 명성과 돈을 얻기 위해 타인의 삶(혹은 배다른 가족)을 처참히 망가뜨린 것이다. <나의 투쟁>에서 칼 오베 크라우스고르는 알코올 중독으로 집안을 똥칠하며 죽어간 아버지의 일화를 소설에 썼다. 그의 작은 아버지는 그를 고소했다. 왜들 이렇게 자기 가족의 치부마저 드러내고 싶어 안달일까.

 

소비지상주의 사회에서 자기 고백은 이제 상품이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픽션이 논픽션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제임스 프라이 자서전 <백 만개의 파편>은 오프라 북클럽에 소개된 이후, 두 달만에 200만부가 팔려나갔다. 웹사이트 <스모킹 건>이 그 작품이 거짓, 날조라고 비판하자, 제임스 프라이는 자서전이 완전한 허구임을 인정했다.

 

페이스북이 일상인 전시 사회’, 누가 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지 배틀을 벌이는 것 같다. 최근 읽은 책의 반은 장르를 불문하고 저자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임스 프라이는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마저 조작했다. 이 책에 씌여진 전부가 다 진실일까. (특히나 하우스 공포물을 연상시키는 귀신 이야기는?) 타인의 삶을 수단시하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는 나르시시스트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자기 고백 글은 작품의 수준과 별개로, 무언가 끔찍한 구석이 있다.

 

나는 마이클의 형인 게리나 게일렌 같은 이들을 현실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

또한, 마이클 같은 비열한 인간은 더더군다나 만나고 싶지 않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ora 2016-05-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기사보고 절대 못 읽겠구나 싶었는데.. 정말 그런의도 였을까요? 자신의 엄청난 가정환경이 감당이 안 되어서 계속 뭔가를 남기는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시이소오 2016-05-24 12:17   좋아요 0 | URL
사형집행이후 마이클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롤링스톤ㅇㅔ글을 썼어요ㆍ
형의 죽음이
슬펐다면 절대로 할수 없는행동이 아니었을까요?


nomadology 2016-05-2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취향은 아닐거라 생각되어 읽어볼 생각자체를 안했는데, 시소님 리뷰로 대충은 느낌을 알겠네요.

시이소오 2016-05-24 13:43   좋아요 0 | URL
호평이 더많은 작품이
에요. 다른분들 리뷰도
참고해 보세요^^

coolcat329 2016-05-24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시이소님의 리뷰로 충분하네요. 정말 제 생각보다 충격이 크네요. 자기 고백을 상품화해서 썼다는 의견에 저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5-24 13:46   좋아요 0 | URL
호평이 더 많은 작품이니 직접 읽어보시구 판단하시는 건 어떠실런지요? ^0^

마녀고양이 2016-05-2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책이 있다는 걸 몰랐는데 시이소오님 리뷰에 바로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제가 좀 무섭기도 합니다 ㅠㅠ

시이소오 2016-05-25 00:15   좋아요 0 | URL
워낙 험한세상이잖아요 ^^;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의 장점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마스다 미리의 책, 혹은 만화 책을 읽다가 독서가 간접 경험일 수 있음을 불현 듯 깨닫게 된다. 마스다 미리는 대부분의 일에 흥미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직접 체험해 본다. ‘찾고 있는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가고 싶지 않고, 귀찮아하면서도, 기어코 가 본다. 예를 들어 버섯 강좌. 예상대로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러다 찾고 있는 무언가를 만날 때도 있다.

 

화려하다고 다 독버섯은 아닙니다.”

 

귀가 번쩍 뜨인다. 쌍둥이 바람초 관찰 모임에도 가 본다. 역시나 흥미는 없다. 그러다, 또 찾고 있던 무언가를 만난다. 설레는 말을 듣는다.

 

쌍둥이 바람꽃은 5월이 되면 싹 사라집니다.”

 

밤의 산 하이킹도 가 본다. 헤드라이트를 끄고 밤길을 걸어본다. 마스다 미리는 먹물같은 까만색을 만난다. 도로 헤드 라이터를 켜고 산을 내려올 때 그녀는 깨닫는다.

찾고 있던 무언가는 내 마음이었음을.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다보면, 작가라고 해서 꼭 다독해야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마스다 미리에게 무라카미 류, 야마다 에이미,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책을 자비로 사준 편집자는 그녀에게 무언가 반짝거리는 게있다고 말한다. ‘반짝거리는 무언가는 독서가 바탕이 된 것은 아니다. 마스다 미리는 머리로 책을 쓰지 않는다. 마음으로 쓴다. 그리고 그 마음이 향기마냥 퍼져나가 독자인 우리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작가가 진심으로 쓰면, 우리도 진심으로 읽는다.

진심끼린 통하는 법이다.

여기엔 무언가 반짝 거리는 게 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ora 2016-05-2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형 인간이신가보네요 마스다미리 작가

시이소오 2016-05-22 23:14   좋아요 0 | URL
적절한 표현이시네요^^

:Dora 2016-05-24 19:48   좋아요 0 | URL
에니어그램에 세 가지 유형이 있거든요 전 머리형

시이소오 2016-05-24 20:03   좋아요 0 | URL
애니어그램도 리뷰
로다시 복습해야겠어겠어요 ^^

:Dora 2016-05-24 20:04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도 머리형이 아니실까하는 억측;;;

시이소오 2016-05-24 21:22   좋아요 0 | URL
가슴형이고싶네요 ㅋ ^^;;

:Dora 2016-05-24 22:00   좋아요 0 | URL
리뷰 몇개 더 읽고 말씀 드릴게요 ㅋㅋ

시이소오 2016-05-24 22:31   좋아요 0 | URL
ㅋ 넵^^
 
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작 중 1<로마의 일인자>만 해도 세 권이다. 워낙에 장편 소설이라 <로마의 일인자> 1권이 재미없으면 읽지 않으려고 작심했었다. 별로 기대도 안 했다. 이런 젠장...... 재밌다.

 

1권의 중심 인물은 카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마리우스, 술라, 유구르타다. 카이사르에겐 집정관이나 법무관이 될 만한 재력이 없다. 베누스 여신의 가계를 이어받은 카이사르는 첫 딸 율리아를 유복한 마리우스에게 시집을 보낸다. 한편 둘째 날 율릴라는 귀족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가난뱅이에 망나니인 술라를 사랑한다. 술라는 애인인 니코폴리스를 독버섯으로 죽이고, 의붓어머니의 조카인 스티쿠스를 독약으로 죽이고, 의붓어머니인 클리툼나 마저 죽여, 어마어마한 돈을 상속받아, 율릴라에게 청혼한다.

 

결국 소설은 카이사르와 카이사르의 두 사위인 마리우스와 술라의 권력 투쟁이 주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마리우스와 어릴 때부터 친구인 유구르타는 누미디아 왕이다. 마리우스, 집정관 루푸스, 유구르타는 어릴 적 동기로서 그들보다 어린 메텔루스를 놀리곤 했다. 그러나, 메텔루스 가문은 로마 최정상 가문이었고, 메텔루스는 사사건건 세 사람의 권력을 견제한다.

 

카르타고가 오늘날 아프리카에 속하는지 아셨는지? 역사를 돌아보면 하마터면 유럽은 아프리카 속국이 될 뻔했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북부까지 점령했었다. 오늘날 마그레브(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지역이 누미디아 왕국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을 통치한 이가 유구르타다.

 

메텔루스는 마리우스와 루푸스를 대동하고 누미디아와 전쟁을 치른다. 마리우스는 시리아 점술가 마르타의 예언을 믿고 집정관에 출마한다. 예언대로 마리우스는 집정관에 당선되고 카이사르의 부탁대로 동서 사이인 술라를 자신의 재무관에 앉힌다.

 

, 이제 2권에선 어떤 사건이 펼쳐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이바 2016-05-2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 아니죠 이 책... 몇 달 있으면 3부가 나오네요. 처음 1부 읽을 땐 언제 보나 했는데 시간 참 빨리 갑니다 ㅎㅎ

시이소오 2016-05-24 22:34   좋아요 0 | URL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
 
마크툽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팩 초프라는 <완전한 삶>에서 제 정신으로 믿기 힘든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태어나기 이미 몇 백년 전에, 어떤 이가 나디라고 하는 뭉치에 자신의 삶을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그 점성학 학교에 가서 내 나디를 뒤져보면 수도승은 이렇게 말하겠지.

 

당신은 기록되지 않았다.’ (너는 디팩 초프라가 아니잖아!)

 

마크툽Maktub’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라는 뜻이다. ‘신의 섭리를 은유한다? ‘신의 섭리 따위 내 알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이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예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읽고 현실에 적용했다가 개 작살 난 적이 있다. 주제 파악을 못 한 게 재앙의 원인이었을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다. (, 그 당시 코엘료만 읽지 않았더라면경계심을 일깨우는 문구는 남겨두고 자기만족에 빠져들게 하는 히로뽕 경구는 과감히 버리자.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져라. 세상이 너희 주변에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고,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느끼는 기쁨을 누려라.

 

물건에는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고인 물이 되어버리고, 그때부터 집은 곰팡이와 모기가 살기 좋은 곳이 된다. 물건들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발산되도록 해야 한다. 오래된 물건들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새로움이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박탈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행복은 빼앗을 수 없다. 그리고 그 행복이 그를 구원한다.

 

내가 언젠가 죽을 거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상대적이다. 꿈을 좇을 때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의 기쁨이다.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면 평범함이라는 성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그 성문을 부숴버릴 때 비로소 자유를 향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모든 길은 한곳으로 통한다. 그러나 너만의 길을 선택해라. 그 길을 끝까지 가라. 모든 길을 두루 편력하려 하지 마라.

 

다음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쓴 글이다.


나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아침마다 삶을 다시 산다. 그런 식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 80년이다. 그것은 타성에 사로잡힌 기계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 행복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 피아노 앞에 앉는다. 전주곡 두 곡과 바흐의 푸가 한 곡을 연주한다. 그 음악들이 내 집을 축복으로 가득 채운다. 그것은 삶의 신비 그리고 인간의 일부를 이루는 기적과 접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80년 동안 이 습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연주하는 음악은 결코 똑같지 않다. 음악은 항상 새롭고 환상적이고 믿을 수 없을만큼 굉장한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다


(나라면 음악의 자리에 책을 놓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너진 세상에서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만의 미스테리 작가 3인방은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할런 코벤이었다. 제프리 디버의 최근 작, <킬룸><옥토버리스트>, 할런 코벤의 최근 작 <미싱 유>를 읽고 뻘쭘해졌다.

지인들한테 추천한 작가건만 어떡한담, 이런 졸작을 쓰고 있으니.’

 

<살인자들의 섬>이나 <미스틱 리버>를 읽고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데니스 루헤인의 신작 <무너진 세상에서>를 읽고 고민에 빠졌다. 이제, 제프리 디버나 할런 코벤을 빼고 그 자리에 데니스 루헤인을 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

 

하드 보일드란 이런 것이구나! 소설은 주인공 조 커글린을 중심으로 한 템파 마피아의 영락을 다루므로 마리오 푸조의 <대부>를 연상시킨다. 조에게 살인 명령이 떨어졌다. 과연 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폭들 이야기는 결국 권력과 죄의식, 구원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옆집 저택에 개자식이 하나 살고 있어. 대출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집에서 내쫓았지. 빚을 갚지 못한 이유는 1929년 은행들이 이자 놀이를 하다 돈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야. 사람들이 저축도, 직업도 없는 이유는 고용주나 은행이 그 사람들 저축과 집을 날려버렸기 때문이고, 하지만 그런 이들을 집에서 내쫓은 자들? 그자들은 잘 먹고 잘 살아.....도둑과 은행가의 차이라면 내 눈엔 기껏 대학 학력이 전부야.”

바네사가 고개를 저었다.

은행가들은 거리에서 총을 쏘지 않아요, .”

정장을 구기고 싶지 않으니까. 바네사, 총이 아니라 펜으로 추악한 짓을 한다고 더 깨끗해지지는 않아.”

 

그렇다고 총으로 추악한 짓을 한다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다. 조 커글린은 템파 럼주 전쟁에서 스물 다섯 명을 죽였다. ‘영혼이 무구하고 삶이 자유로워조나 디온이 조폭이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죄와 슬픔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다른 유형의 삶을 살아갈 수 없을 뿐.

 

죄가 정말로 크다면 죄의식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커진다.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할 때도 있다. 이따금 불법이 불법을 낳고, 그 일이 빈번해지면, 우주의 구조를 위협하고, 결국 그 우주는 물러나고 만다.

 

마피아 세계에서는 로마 시대 원로원을 연상시키는 커미션에서 모든 결정이 이루어진다. 가진 자의 이익에 누가 된다면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어제는 그 놈이 죽었다. 오늘은 어쩌면 내 차례일지도.

 

어제 강남역 상가 화장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꽃다운 나이의 젊음이 사그라들었다. 갑질이 일반화된 사회, 갑질을 당한 을은 또 다른 병을 찾아 갑질을 부린다. 병은 또 다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에서 이런 사건들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나는 남자니까 상관없어가 아니라 , 혹은 내 가족이 죽을 수도 있었어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나쁜 페미니즘>을 읽으며,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육체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남성이어서일까.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저자 마이클 길모어의 형 게리 길모어는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살해했다. 훗날 게리 길모어는 살면서 도움을 청하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지만 8학년 담임인 라이든 선생님에게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라이든 선생님이 조금 더 게리에게 손을 내밀었더라도 게리는 살인을 저질렀을까. 억압된 것이 회귀된다는 건 진리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경멸하고, 멸시하는 사회에서 억압된 자들은 유령처럼,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을벚꽃 2016-05-19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프리 디버와 할렌 코벤에게 실망 중이네요. 데니스 루헤인의 <무너진 세상>에서는 읽으려고 진작 준비해 두었는데... 아무래도 <운명의날>과 <밤에 살다>부터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서평 잘 읽고 거요^^

시이소오 2016-05-19 22:50   좋아요 0 | URL
저도 두 작품 모두 읽고싶네요^^

비로그인 2016-05-1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이해하는 갑질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시이소오 2016-05-19 23:33   좋아요 0 | URL
기득 권을 가진자들이 조금 만 양보하면 좋을텐데요 ^^;

2016-05-21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5-21 12:1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말씀을 들으니 데니스루헤인 책을 더 읽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