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 한국은 없다 -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 민낯 보고서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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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경제학자란다. 신자유주의 찬양론자가 이제 와 위기를 논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역겹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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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9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09 14:38   좋아요 1 | URL
저런 사람들이 학자랍시고 떠들고 다니는걸 보면 울화통이 터저여^^
 
강희대제 9 - 얼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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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후는 강희의 남순을 준비하기 위해 강녕에서 위동정을 만난다. 위동정은 행궁이 절 근처에 지어지는 점에 대해 갈례를 의심한다. 목자후는 사감매와 함께 비로호 선산으로 잠입한다. 이 절에서는 벌써 다섯 명의 스님이 원적에 들어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목자후는 절이 양기륭의 소굴임을 간파하고 절에서 숙식한다. 목자후를 감시하기 위해 우일사가 따라다닌다. 어느날 우일사가 목자후를 공격하지만 청풍도사의 도움을 받는다. 청풍도사는 다름 아닌 넷째였다. 양기륭 수하의 각원은 죄인들을 데려다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고는 백성들에겐 원적이라 떠벌렸다. 양기륭의 수하들에게 목자후와 청풍도사가 붙잡힐 위기일발의 찰나에 위동정 부대가 당도한다.

 

목자후는 양기륭을 잡아 갈례 총독과 대면시킨다. 위동정은 갈례와 색액도가 주삼태자와 반란을 모의했음을 의심하나 사건을 양기륭 선에서 수습하기로 한다.

 

강희23, 강희는 남순에 나선다. 강희는 남가춘래라는 가게에서 구걸하는 여자아이에게 음식을 내준다. 여자아이는 불량배들에게 음식을 빼앗기자 황하에 몸을 던진다. 사람들이 구경만 할 뿐 여자아이를 구하려 하지 않자, 진황이 배를 몰아 간신히 아이를 건져낸다.

 

강희는 여자아이가 홍승주의 외손녀였기에 마을에서 천대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희는 여자이이를 명주의 아들인 성덕과 맺어준다.

 

강희는 한류씨의 아들 한춘화의 집을 방문한다. 한류씨의 집으로 유철성이 두목인 도적떼가 들이닥친다. 한류씨는 유철성을 어릴 때 헤어진 동생인 것처럼 속여 위기를 모면하고 강희는 유철성을 등용하여 비양고 밑으로 보낸다.

 

강희는 효릉을 참배하려 왔다 오차우가 입적한 절이 근처에 있음을 명주로부터 전해 듣는다. 강희가 영곡사에 기거할 때 우성룡은 명주의 죄상을 낱낱이 고해바친다. 강희는 국정의 안정을 위해 명주를 벌하지 않기로 한다. 강희는 공자의 묘에 효릉에서처럼 삼궤구고의 대례를 올린 후 북경으로 환양한다.

 

소마라고 역시 입적한다. 태황태후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황궁에 강희를 해치려는 암해와 모반이 일어났음을 실토하고 강희에게 각별히 주의를 시킨다.

 

명주의 생일날 곽수가 들어와 명주에 대한 탄핵 상주문을 읽는다. 대신들이 강희를 접견하러 가나 강희는 생일 이라는 이유로 명주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다음날 황태자들과 응사리 등이 명주의 재산을 조사하는 황명을 집행한다. 명주의 집이 수색 당하고 명주에게 뇌물을 준 대신들에게 속속 체포령이 떨어진다. 근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색액도가 러시아에서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고 북경으로 돌아온 사이 조정의 신하들은 거의 물갈이가 돼있었다. 강희는 삼군을 이끌고 갈이단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다. 러시아와 괴이심 왕 탁색도는 갈이단에게 협력하지 않는다. 강희는 오란포통 전투에서 갈이단을 격퇴한다.

 

비양고는 갈이단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대포를 옮기려 하나 색액도의 반대에 부딪혀 10문만 옮기는 것으로 합의한다. 강희는 색액도에게 군량미 조달 임무를 맡기고 직접 갈이단을 추격한다. 군량미가 떨어져 청군이 고생할 즈음 연갱요는 갈이단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강희에게 전한다. 또한 연갱요는 군량미를 제때에 보내지 않은 갈례를 죽였다고 강희에게 보고한다.

 

강희가 북경으로 돌아와 근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강희는 진황을 사면하려고 하지만 진황 역시 죽고 만다. 근보와 진황이 수 십년 동안 이룩한 치수사업은 치수사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열의만 앞선 우성룡에 의해 헛수고가 되고 만다.

 

진황이 죽자 아수는 삭발 수행을 떠난다.

천하는 안정되어 태평성세를 이루었으나

황궁 내에 황자를 중심으로 불화의 씨앗은 커져만 간다.

 

밑줄 그은 문장

 

p113. 당나라 명황(현종)은 처음에는 영명했으나 나중에는 흐리멍덩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개원의 치를 열어 번창의 길을 걸었으나 나중에 천보지란을 맞았습니다...옛말에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는 말이 있습니다.

 

p126. 충신은 나라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어. 국록을 먹는 사람으로서 얼마간의 양심만 있다면 은 별로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는 것이야. 하지만 까지 겸한 사람은 얼마 없어. 대세의 흐름에 따른 맥을 정확히 짚을 줄 알고 작은 울타리가 아닌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네. 여기에 긴 안목을 가지고 눈앞의 불이익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귀해.

 

p135. 시작이 좋은 사람은 그 끝에 신중해야 한다. 가까운 것을 얻으려면 먼 곳을 챙겨야 한다.

 

p314. 활은 부러지고 날개는 꺽였구나. 가족과 친구들은 돌아서고 병사들은 흩어졌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전투에서 진 것이 아니다. - 갈이단 절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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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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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 불능의 탐미주의자이자 강박적인 도덕주의자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지성적이라는 건, 내게는 어떤 일을 더 잘하는것 같은 게 아니다.

그건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저자는 손택이 윌리엄 워즈우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서정담시> 서문에서 워즈워스는 시인의 역할을 인간에게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것이며 이러한 과업은 우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인간의 천성적이고 벌거벗은 품위에 바치는 경의라고 정의하고, 그 원칙을 현실로 바꾸는 건 사랑의 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가볍고 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작가의 말처럼 손택에게선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이 느껴진다. 심지어 섹시하기까지.

만일 손택이 섹시하다면 어쩌면 그녀가 존경한 앤 카슨의 글이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에로스가 연인의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방식과 앎이 사상가의 정신 속에서 작용하는 방식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택은 롤랑바르트에 대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포옹이며, 포옹을 받는 것이다. 모든 사유는 손을 뻗어 내미는 사유다.”

 

 

그녀의 제자인 조너선 쿳은 그리움의 아카이브라는 손택의 서재에서의 인터뷰를 책으로 펴냈다.

 

손택을 한마디로 뭐라 불러야 할까.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 평론가, 연극 연출가, 영화감독 기타등등. 그녀는 지금 여기의 삶에 정주하려하지 않았다. 삶이란 자기 확장의 모색이며

지금과 다른, 더 나은, 더 고귀하고 더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기획이다. 삶이란 도약이고 위험이고 위협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

 

그녀가 원하는 삶이란 세계 속에 현존하는 삶이다. 세계 속에 현존한다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며, 결국은 세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허위에 맞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소명이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으로 위안 받고자 할 때 손택은 타인의 고통의 곁을 지켰다. 그녀는 포탄이 떨어지는 사라예보의 전쟁터 한 복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했었다.

 

수전 손택의 말을 읽는 다는 건

우리가 온전히 인간이 되는 길이다.


밀줄 그은 문장 

 

 

당신은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양상의 전부와 과거의 우리 모습 모두가 문학 덕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들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요. 나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책들은 또한 우리에게 자기 초월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일종의 도피로 생각할 뿐입니다. ‘현실의 일상적 세계에서 탈피해 상상의 세계, 책들의 세계로 도망가는 출구라고요. 책들은 단연 그 이상입니다. 온전히 인간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

 

저는 머릿속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유아론적인 관념에 반대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그 속에 있든 없든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정말로 있어요.

 

나는 항상 상대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책임을 지는 쪽을 선호합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게 정말 싫어요. 차라리 뭐랄까, 내가 이 사랑과 사랑에 빠지기를 선택했는데 알고보니 개새끼였어, 이렇게 말하는 게 나아요. 그건 내가 한선택이었으니까요. 더욱이 다른 사람을 탓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남을 바꾸기보다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게 훨씬 쉽거든요.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것과 늙어서 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의적이고 그다지 근거가 없습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과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누는 거나 마찬가지죠. 사람들은 늘 이런 말을 해요. “, 그런 건 난 못해. 난 예순이거든, 너무 늙었어.” 아니면 그런 건 못해. 난 스무 살이야. 너무 젊단 말이야.” 어째서죠? 누가 그렇대요?

 

저는 라이히의 사상 중에 딱 하나가 심리학과 심리 치료에 기가 막힌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바로 성격 무장이라는 개념과, 감정이 체내에서 성충동에 대한 반감과 경직으로 축적된다는 생각이에요. 그 점에 있어서는 라이히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인간 본성의 악마적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섹슈얼리티를 그저 막연히 멋진 것으로만 상정했다고 봐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성은 언제나 매우 어두운 곳이고 악마성이 공연을 하는 극장입니다.

 

....그래서 인간 역사를 통틀어 성이 그토록 많은 규제를 받아왔던 거겠죠. 제 생각에는 어째서 이런 억압의 문제가 있어왔는지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관점을 거꾸로 돌려서, 대부분의 사회가 상당 수준 성을 억압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실제로 성이 얼마나 통제 불능으로 치달아 완전히 파괴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제 말은 산다는 건 일종의 공격이에요. 세계 안에서 움직이다 보면 온갖 차원에서 공격과 연루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인이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을 점유하고 걸을 때마다 식물군, 동물군, 작은 생물들을 짓밟게 되죠. 그러니까 삶의 리듬의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공격이라는 게 있다는 거죠. 제 생각에는 현대에 고유한 형태의 공격성이 특히 고조되는 측면이 카메라의 활용으로 상징되는 것 같아요.

 

난 사진들을 사랑해요. 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보고, 사랑하고, 수집하고, 도 사진에 매료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뜨거운 애정을 품고 향유했던 관심사지요. 사진에 대해 글을 쓰는 작업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사진이 이 사회의 모든 복잡성과 모순과 모호성들을 투영하는 중심적 활동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호성이나 모순이나 복잡성은 사진의 본질이며 또한 우리가 사유하는 방식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사진을 찍고 보는 활동이 그 모든 모순을 아우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 모든 모순과 모호성들이 그렇게 깊숙이 박혀 있는 다른 활동은 생각조차 나지 않아요. 그래서 <사진에 관하여>20쎄기에 선진 산업 소비사회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한 가지 사례연구인 셈이죠.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 또는 실험주의에서 제 흥미를 끌었던 상당수가, 또는 그냥 제가 보기에 좋은 글쓰기라는 건 은유의 정화예요. 쓸데없는 걸 다 벗어던진 적나라한 특질 때문에 저는 베케트와 카프카에게 매력을 느껴요. 그리고 지금보다는 옛날에 훨씬 더 사모했던 로브그리예 같은 프랑스 소설가들의 경우에됴, 제 마음을 끌었던 건 그들의 기획, 즉 은유를 담지 않겠다는 그 발상이었어요,

 

.....은유는 사유에 핵심적이지만 쓸 때는 은유를 믿으면 안 돼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허구라는 걸 알아야 하죠. 아니, 필수적인 허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은유를 품지 않은 사유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죠. 그러나 바로 그런 사실이 그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거예요. 내 마음을 끄는 건 항상 그런 회의주의를 표현하면서 은유를 넘어 깨끗하고 투명한 무언가로 나아가는 담론이에요.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0도의 글쓰기죠.

 

누가 질병은 저주다라고 말한다면, 전 그걸 일종의 사유의 붕괴라고 봐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멈추게 만들고 소정의 태도에 가둬버리는 수단이란 말이에요. 제게 있어 지적인 기획이라면 기실 비평이에요. 심오한 의미로서의 비평이요. 사유를 하려면 은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은유 구축에 연루되잖아요. 그렇지만 적어도 물려받은 은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회의적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사유를 막는 더께들을 깨끗하게 씻고 공기를 들이고 닫힌 문들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죠.

 

전 진실을 허위의 부정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언제나 저는 뭔가 다른 게 거짓임을 알게 되면서 제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걸 발견하죠. 세계는 기본적으로 허위로 가득 차 있고, 진실은 언제나 허위를 거부할 때 빚어지는 것이죠. 진실은 어떤 면에서 몹시 공허하지만, 이미 허위를 모두 떨쳐낸 환상적인 해방이에요.

 

제가 받는 느낌은, 사유가 감정의 한 양식이며 감정이 사유의 한 양식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하는 일은 책이나 영화라는 결과물을 낳지요. 이러한 대상들은 저 자신이 아니지만 무언가를 받아쓴 사본입니다......사람들은 보통 그런 작업이 순전히 지적인 과정일 거라 상상합니다. 하지만 제 작업의 대다수는 이성만큼이나 육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어요. 사랑이 이해를 전제로 깔고 들어가지는 않아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온갖 생각과 판단에 연루되는 일이죠. 바로 그런 겁니다. 육체의 욕망, 욕정의 지적인 구조가 있단 말이에요.

 

누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봐요. “길은 반듯하다”. , 그렇다 쳐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길은 노끈처럼 똑바르다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이 두 발언 사이에는 어질어질할 정도로 큰 차이가 있어요. 저의 심오한 일부는 길은 똑바르다라는 말 이상은 필요하지도 않고 그 이상의 말은 해서도 안 된다고, 그 외에는 모두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고 느껴요. 그렇지만 갈수록 길은 노끈처럼 똑바르다라고 말하는 글쓰기에서 더 큰 쾌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정말이지 그 둘 사이에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이 문제가 날 괴롭히네요.

 

짎병에 대한 제 저서에서도 어떤 면에서 예술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진다고 봅니다. 아주 강렬한 경험의 소산이니까요. 그 두 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졌으면 하고 바라 마지않는 곳은 제 소설인데,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실린 단편들을 교정보다가 그 글들이 제게 작가가 아니라 독자로서 볼 때 공통의 테마를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어요. 자기 초월을 향한 모색, 지금과 다른, 더 나은, 더 고귀하고 더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기획이라는 주제였죠. 사람이 욕망하고 영예롭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든 예술이나 명언이나 목표 또는 이상의 자질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윤리적인 성격을 띤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얘기죠.

 

누군가 피카소에게 왜 여행을 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피카소는 절대 여행을 하거나 해외로 나가지 않았거든요. 스페인에서 파리로 갔다가 다시 남프랑스로 갔지만 절대 어디를 가는 법이 없었어요. 피카소의 답은 난 머릿속에서 여행을 다닌다라는 것이었어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봐요......단순히 좋거나 유망한 정도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방대한 작품 세계를 갖추고 진짜 성과를 얻고 위험을 감수하는 지점으로 넘어갈 때가 되면, 그때는 수년간의 작업을 해온 작가나 화가에게 그런 선택이 진짜 가능성으로 다가오게 되고, 그때는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거예요.

 

 

상상으로 나를 매혹시키는 건 인간적으로 내 마음을 끄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어요. 멍청한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런 구별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난 내 글에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거든요. 글이 내게서 나왔고 내가 그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내 삶이 글쓰기와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조직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아요. 나는 자전적으로 글을 쓰지 않고 내 판타지들을 따라가는데, 내 판타지들은 세계에 대한 판타지이지 그런 일들을 하는 나에 대한 판타지가 아니거든요.

 

<,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건 제게 여덟 가지 서로 다른 작업 방식입니다. 전 오늘날 모든 일은 도약이고 위험이고 위협이며, 그게 바로 훙분이고 짜릿함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최대한 확장하고 초월하려고 노력하는 것 말입니다. 이에 필요한 집중력을 갖기 위해서는 순진한 상태로 일해서는 안 돼요. 다른 사람들이 자기한테 바라는 행위나 모습에 자아를 너무 많이 빌려주면 희석되거나 흩어져버릴 수도 있는 어떤 강렬한 내면성의 상태로 작업을 해야 하죠.

 

: 선생님이 연출하신 영화 <내 동생 칼>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주인공은 기적적으로 벙어리 소녀의 말문이 트이게 만들죠. 그 영화 각본의 서문에서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쓰셨어요. “삶에서 유일하게 흥미로운 활동은 기적이 아니면 기적을 행하려다 실패하는 것이다. 기적은 아직까지 예술에 남아 있는 유일하게 심오한 소재다.”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기적을 믿으십니까?

 

손택 : 세상에는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런 일들이 모든 걸 바꿀 수 있으며, 행위가 의식의 현현과 등가물이 될 수 있으며, 불가사의해 보이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명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죠. 사실이 있다면 해명하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요. 그냥 우연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해도 말이죠. , 시계가 멈춰도 하루에 두 번은 맞잖아요.

 

: 파리에서 이 인터뷰를 시작한 후 4개월 뒤 뉴욕 시로 돌아오신 선생님께서 제가 전화를 드려 대화를 끌마칠 수 있을까 부탁을 드렸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제가 너무 많이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빨리 해야 해요.” 그래서 놀랐습니다.

 

손택 : 왜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요. 전 항상 변한다는 느낌이 들고, 그건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작가는 일반적으로 자기표현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자기 견해에 근거해 타인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일에 매진한다고들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 두 가지 모델이 다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제 말은, 전 부분적으로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글을 쓰거든요.

 

아까 작가의 사명은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거라고 말했지만, 저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바 작가의 소명은 온갖 종류의 허위에 맞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역시 마찬가지로, 이것이 끝없는 작업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하는 일이죠. 아무리 해도 허위나 허위의식이나 해석의 체계를 끝장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언제나 어떤 세대에든 그런 것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있어야 하고, 그래서 전 사회비판이 오로지 정부에서만 나오는 세계 대부분의 장소들을 생각하면 심히 심란해져요.

 

-2015. 8.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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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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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빨리 쓰는 게 목표라곤 하지만 어찌된 게 아무리 써도 글이 좋아지진 않는다. 리뷰를 쓰면 쓸수록 다른 사람들처럼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강렬해진다. 이 책을 들여다보니 내가 왜 여전히 허접한 글들을 쓰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1부 글은 왜 쓰는가?

 

조지오웰 ;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그러니까 어떤 사회를 지행할 것인가, 그런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 말입니다. 다시 말해,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 목적입니다. 오웰은 이 대목에서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사르트르 : 사물의 언어와 도구의 언어

 

사물의 언어라는 건 그야말로 사물 그 자체인 언어입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언어. 굳이 묵적이 있다면 자기만족입니다. 사르트르는 대표적인 사물의 언어로 시를 꼽았습니다.

 

도구의 언어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언어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의지를 담은 언어. 이 도구의 언어가 산문입니다.

 

사르트르는 그래서 시를 경멸했는데 말년에 젊은 시절의 주장을 철회했다. 시가 어떻게 단지 사물의 언어일 수 있겠는가.

 

롤랑 바르트 : 자동사적 글쓰기와 타동사적 글쓰기

 

자동사적 글쓰기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겠다는 목적이 전혀 없이 오직 기능에 충실한 글쓰기.

 

타동사적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활동입니다. 활동이라는 건 지식을 전달하거나 사람들을 설득한다거나 증언하다거나 선전한다거나 설명한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고종석은 조지 오웰, 사르트르, 롤랑 바르트가 말한 글쓰기 개념들을 소개한 이후, 자신의 강좌는 오웰이 말한 정치적 글쓰기, 사르트르가 말한 도구로서의 언어, 롤랑 바르트가 말한 타동사적 글쓰기를 익히기 위함임을 표명한다.

 

뛰어난 선동문 세 권

 

고종석은 뛰어난 선동문으로 토마스 페인의 <상식>,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를 꼽는다.

 

로만 야콥슨: 은유와 환유

 

야곱슨에 따르면 비유법엔 단 두 가지 밖에 없다.

 

은유 : 유사성에 기초한 비유

환유 : 인접성에 기초한 비유

 

직유역시 은유다.

 

2. 한국어답다는 것의 의미

 

소쉬르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개념 : 시니피에

청각영상 : 시니피앙

기호 : 시니피에 + 시니피앙

 

한국어 음성 상징의 예

 

재잘재잘, 산들산들, 보풀보풀, 졸졸, 간질간질, 반질반질, 넘실넘실, 새실새실, 꿈틀꿈틀, 보슬보슬, 흔들흔들, 한들한들, 야들야들, 매끌매끌, 빙글빙글, 생글생글, 데굴데굴, 나풀나풀, 까불까불, 너울너울.

 

스르르, 사르르, 까르르, 뱅그르르, 조르르, 함치르르, 찌르르, 번지르르, 반드르르, 야드르르, 보그르르, 와르르, 데구루루, 후루루

 

뭔가 흐른다는 느낌, 가볍다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은 어떤 흐름, 가벼움, 밝음 같은 음성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낭창낭창, 가르랑가르랑, 오동통, 둥글다, 동그랗다, 아장아장, 깡충깡충, 빙빙, 송송, 어화둥둥, 붕붕, 아롱아롱, 대롱대롱, 퐁당퐁당, 초롱초롱, 또랑또랑, 송이송이.

 

올망졸망, 살랑살랑, 살강살강, 팔랑팔랑, 찰랑찰랑, 가르랑가르랑, 종알종알, 몰캉몰캉

 

은 통통 튀는 느낌과 함께 둥긂의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통통 튀는 과 흐르는 이 섞이면 흘러가면서 튀는 느낌이 납니다.

 

사피어 워프 가설

 

세계나 생각이나 인식에 앞서 언어가 있다는 언어결정론적인 입장.

한때 주목 받긴 했으나 요즘은 언급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사피어 워프 가설이 부분적으로 어떤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를 예로 들어보자. 이 단어가 일상화된 이후로 왠지 규정할 수 없는 행동을 한 모든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란 단어 하나로 획일화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생각이나 인식에 앞서 언어가 있을 순 없겠지만 언어가 사람들의 사유를 조장하는 측면을 무시할 순 없다.

 

스티븐 핑커 : 멘털리즈 혹은 생각의 언어

 

스티븐 핑커가 사피어 워프 가설을 비판하면서 어떤 특정 국가의 언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언어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공통언어를 핑커는 멘털리즈mentalese’라고 불렀다.

 

고종석의 조언들.

 

접속부사와 쉼표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긴장감이 생기고 생기가 돈다.

 

일본식 접미사

 

‘-은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부사는 관형사를 수식할 수 없다.

 

내면적 성찰’, 좋습니다. ‘내면적인 성찰이라는 말은 쓰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앞에 매우라는 부사가 붙으면 매우 내면적인 성찰이 돼야 합니다. ‘매우 내면적 성찰은 틀린 표현입니다.

 

일본식 조사

 

는 되도록 빼는 것이 자연스럽다.

 

꼭 피해야 할 일본어투 표현

 

‘~에의’, ‘~로의같은 겹조사는 절대 쓰지 마라.

 

복수표현 을 남용하지 마라.

 

개인적으로라는 표현은 되도록 쓰지 마라.

 

를 남용하지 마라. 유럽어 정관사의 악영향.

 

우리나라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한국이라고 써야 된다.

 

보조사 /과 주격조사 /

 

/가 는 주격조사 지만 /은 주격조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목적격에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걔가 너는 사랑해할 때 의 성분은 목적어기에 은 보조사다. 뜻을 섬세하게 만들어 준다.

 

같은 조사를 연속해서 쓰지 마라.

 

‘~가운데 하나는할 때 가운데는 무조건 빼라.

 

것이다라는 말은 되도록 안 쓰는 게 좋다.

 

‘~하고 있다는 표현도 되도록 쓰지 마라.

 

아마도아마, ‘역시도역시로 고쳐라, ‘를 빼라.

 

쓸데없는 동안은 무조건 빼라

 

나는 그 일을 두 달 동안 했어보다 나는 그 일을 두 달 했어가 좋다.

 

‘~한 일이다라는 표현도 피하는 게 좋다.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일이다.’

 

보다는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가 더 깔끔하다.


대신으로 가능한 표현을 대신에로 쓰지 마라.

 

‘~에 의해란 표현도 되도록 쓰지 마라.

 

토끼가 늑대에 의해 잡아먹혔다라는 표현 대신 토끼가 늑대에게 잡아먹혔다가 더 자연스럽다.

 

‘~로서는이란 표현도 나쁜 습관이다.

 

나로서는보다는 그냥 나는이 훨씬 간결하고 깔끔하다.

 

‘~’, ‘~에 대한이란 표현도 구질구질하다. 뺄 수 있으면 빼라.

 

로서로써

 

‘-로서는 자격을 뜻하고 ‘-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뜻한다.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는 로써는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준다. 특히 용언의 제 1명사형 다음에 붙을 때 그렇다.

 

용언을 명사형으로 만드는 방법

 

1. 용언에 이나 을 붙이면 ; 1 명사형

사랑하다/사랑함’, ‘가다/’, 이것이 제 1명사형입니다.

2. 용언에 를 붙여도 : 2명사형

 

용언의 어간에 아///고를 붙이면 부사형이 됩니다.

그 순서에 따라 제 1부사형, 2부사형, 3부사형, 4부사형

 

‘~/음으로써/로 고치는 것이 좋다.

 

나는 휴전선을 지킴으로써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겠다.’ 대신

나는 휴전선을 지켜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겠다.’가 더 한국어답다.

 

명백한 오문 ‘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

 

때문이유는 서로 호응할 수 없다. ‘이유는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면 이유는 ~에 있다거나 이유는 ~ 것이다거나 이유는 ~한다는 사실이다로 고쳐야 문법에 맞다.

 

연도나 시기를 표기하는 말에 가 없어도 뜻이 통하면 빼는 게 더 좋다.

 

‘1984년에 제정된보다는 ‘1948년 제정된으로

 

되풀이라는 표현보다 거듭이 더 자연스럽다.

수동형태 표현은 되도록 피하라.

 

정당화되기정당화하기로 고치는 게 좋다.

현대화시키다현대화하다.

변화시키다는 그대로 놔둬야 한다. ‘변화하다는 타동사로 쓰일 수 없다.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 명사는 뒤로 빼라.

 

두 개의 구슬대신 구슬 두 개

 

주어/목적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한 문장 안에 똑같은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피해라.

 

정치적 올바람은 글쓰기의 미덕

 

상경하다’, ‘서울에 올라온다.’,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표현보다는

철원에서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철원으로 갔다이런 식으로 쓰는 게 좋다.

 

‘~로 하여금 ~하게 하다란 표현은 되도록 쓰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표현은 절대 쓰지 마라.

그런데도불구하고로 써라.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 자체가 좋아서 자주 쓰게 된다. 박웅현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김수영 :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

 

고종석 :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 그윽하다.

정분, 누이, 영글다, ,

 

수강생 : 사랑, 엄마, 어머니, 그리움, 그립다, 오롯하다, 노을, 담백하다, 바다, 시나브로, 햇살, 햇빛

 

다른 반 : 그윽하다, 어머니, 엄마, 설레다, 고즈넉하다, 품다, 사랑,

 

나도 한번 생각나는 대로 적어봐야겠다.

 

산들바람, 산뜻한, 신산한, 섬돌, 살랑거리는, 사랑, 그립다. 햇살, 햇빛, 품격, 발목......

 

내가 좋아하는 단어엔 왜 이 많이 들어갈까?


-2014.10.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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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대제 8 - 얼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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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 219, 황하의 물이 무섭게 불어나자 진황과 근보는 작은 물꼬를 터 몇 년간 심혈을 기울여 온 소가도의 감수 둑을 보존코자 하지만 우성룡의 반대에 부딪힌다. 근보는 천자검을 내세워 황명으로 물꼬를 트려고 하나 때를 놓쳐 소가도의 둑은 무너진다.

 

조정에서는 근보에게 과를 묻지만 강희는 근보에게 대죄입공(죄를 지어 공을 세움)할 것을 명한다. 남경에서 과거시험에 부정이 있었다는 상주문이 날라든다. 공신들은 자신의 이름이 나올까봐 겁에 질린다.

 

명주는 지기인 서건학, 여국주와 함께 고사기에게 뇌물을 주고 과거시험 부정 건을 무마해달라고 부탁한다. 고사기는 소마라고에 붓글씨를 선물하고는 결혼식에 공삼임의 연극 <도화선>을 공연한다며 넷째공주와 함께 하객으로 참석해줄 것을 청한다. 소마라고와 넷째공주 덕에 태황태후, 강희를 비롯한 황궁의 가족 모두가 고사기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고사기는 남경의 과거시험 부정 사건의 원만한 해결방안을 강희에게 제시해 설득한다.

 

자미성 동남쪽으로 혜성이 출현한다. 강희는 혜성 출현의 의미에 대해 대신들의 의견을 듣는다. 대신들은 옥신각신 자기들의 의견을 말한다. 양청표는 대만출정계획을 미루는 강희의 식언 때문에 혜성이 출몰한 것이라 주장한다.

 

요계성과 시랑은 여름에 남풍이 올 때 팽호도를 습격하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뢰탑은 대만출정시기를 늦추자고 주장한다. 시랑은 관모도 쓰지 않은 뢰탑에게 모자를 쓰라고 다그치지만 뢰탑은 쓰기 싫다며 시랑에게 대든다. 시랑은 금패영전을 모시고 대만과 내통한 죄를 물어 뢰탑을 사형에 처하려 하나 요계성의 만류로 뢰탑이 대포 10문을 만드는 것으로 죄를 대신한다.

 

강희는 위동정과 관리들을 대동하고 산해관 밖으로 순시를 떠난다. 강희 일행이 묵은 역관에서 고사기는 한류씨와 아수를 우연히 만난다. 강희는 아수를 보자 한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심양에서 강희는 주배공의 병문안을 간다. 강희는 주배공으로부터 갈이단을 평정할 방안을 경청한다. 주배공은 고사기가 손에 쥔 비단두름을 보고는 그것이 아쇄의 것임을 알고는 비단두름을 불 속에 던진다.

 

강희는 파격적인 대우로 과이심 왕인 탁색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강희는 막남과 막북의 몽고 왕들과도 서로 힘을 합쳐 갈이단에게 대응하자는 피의 맹세를 이끌어낸다.

 

삼하전에서 태감인 이덕전이 사고를 치자 곽수는 곤장을 안긴다. 강희가 곽수를 벌하려 하자 곽수는 강희를 폭군인 걸과 주와 같다며 직언을 서슴치 않는다. 대노한 강희는 곽수를 처형하려 하나 한류씨에게 설득돼 곽수를 살려줄 뿐만 아니라 승진시킨다.

 

 

강희 22, 남풍이 불어오자 시랑과 요계성은 대만 출병에 오른다. 팽호도를 함락한 시랑의 부대는 녹이문으로 돌진한다. 위기에 처한 시랑은 20년 만에 찾아온 만조 덕에 전쟁에서 승리한다. 강희 22622일은 청나라가 대만을 수복한 날로 역사에 기록된다. 이에 대만출정을 주장했던 이광지는 출세 길에 오른다. 색액도는 이광지를 설득해 명주에 대한 탄핵안을 쓰도록 조정한다. 체대가 황제가 보낸 간첩임을 알고 있던 색액도는 체대를 이중간첩으로 이용한다.

 

이광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면서도 공명에 대한 탐욕으로 고사기 앞에서 상을 당한 것을 숨긴다. 고사기는 색액도의 비리를 들추기 위한 목적으로 교형에 처해질 장백년 부자를 살리기 위해 이광지를 설득해 상주문을 작성케한다. 강희는 장백년과 직접 대면한다. 탐관오리라고 여겼던 장백년의 전 재산이 은화 다섯 냥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강희는 충격을 받는다. 강희는 장백년과의 대화를 통해 총독 갈례가 부정부패를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강희는 주배공이 천거한 비양고를 몰래 훔쳐보고는 그의 주도면밀한 일처리 방식에 탄복한다.

 

이광지의 출세 축하 잔치에 명주는 노래하는 부인과 아이들을 데려온다. 그들은 이광지의 버림받은 부인인 이수지였다. 명주는 이광지를 견제하기 위해 이수지 모자를 보살펴왔던 것. 이광지는 하는 수 없이 이수지와 아들을 받아들인다.

 

강희는 이광지가 명주나 색액도와 선을 그을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밑줄 그은 문장

 

 

p50. “‘의심가는 사람은 등용하지 말고, 등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 두 번째이옵니다. “

 

p99. 현명하고 능력있는 신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야. 그러나 충신이나 열신이 되기를 바라지는 말게. 현명한 신하가 있으면 훌륭한 군주가 있게 돼. 또 능력 있는 신하가 있으면 천하가 잘 다스려지기 마련이지. 하지만 충신이 나온다는 것은 군주가 우매하고 나라가 난리를 겪고 있다는 증거야. 돌아가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들 해보게. 나는 과연 군주와 백성, 나라를 위하는 것이 우선이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의 공명에 급급해 패거리를 만들고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여념이 없지는 않았는가를 말이야.

 

p158. 또 소인은 다른 건 몰라도 음식을 섭취하는 데는 대단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숙(익혀먹음), (뜨겁게 먹음), (부드럽게 먹음), (야채등을 소박하게 먹음), (적게 먹음)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옵니다.

 

p224. 속담에 고집 센 아들은 집안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p280. 자신이 어렸을 때 당한 횡액을 대난불사, 필유후복이라고 풀이하고 있어요. 무슨뜻인지 알아요? 큰 재앙에도 죽지 않았으니, 반드시 나중에 복을 받는다는 얘기가 아니고 뭐겠어요!

 

p337. 소나무는 키가 높아도 가지가 무성하고, 학은 늙어도 깃털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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