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이삼성 지음 / 한길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단을 피부로 느낀 것은 일상을 통해서이지만 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 대해 글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별세한 강만길의 <분단체제의 역사인식>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조선은 식민지 시기를 거친 후 진통을 겪고 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겪으며 분열과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강만길은 이 분단체제에 대해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진 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을 주창하며 백낙청의 '한반도 분단체제론'을 비교 대상으로 던진다. 백낙청은 분단체제론을 통해 남과 북은 외견상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사회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양자는 교묘하게 얽혀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는 적대적 상호의존을 통해서라고 했다. 

백낙청은 기고를 통해 저자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을 비판하는데(아시아의 상황을 일본과 아시아 나머지가 대립하는 체제로 논하는 것은 개념의 남용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백낙청이 주장한 '한반도 분단체제론'은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문제를 한반도 내로 국한해서 규정 짓기 때문에 동아시아적 맥락이 빠져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창하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상호의존은 깊어지는 반면 군사정치적인 갈등이 격화되어 지역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역구도를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미소 냉전과 결부되면서도 중국과 일본이라는 차상위국가들의 역사심리적 대립이 결합된 미일동맹체제 대 아시아 대륙이라는 구조를 갖는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하위에 남북 분단과 중국과 타이완의 분단이라고 하는 ‘소분단체제’를 거느리고 있다. 이는 탈냉전이 되었음에도 해체되기는커녕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한국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최대의 희생자이자, 지정학적 역사심리적 ‘중간자’(아시아적 전망의 관점)라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동아시아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공동의 안보질서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주체로서 역할을 할 것을 주장한다. - P695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중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미국의 동아시아 경영이 그 근간에서 일본과의 유서깊은 연합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으로 일시 파국에 직면했던 미일연합(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미일 관계는 밀착되어 있었다)은 원폭투하와 미국의 일본 단독점령, 미국이 취한 일본 재건 정책에 의해서 복원의 길을 걷는다. 

전후 동아시아 질서의 다른 축은 중국대륙이다. 반식민지 단계의 중국은 미국이 일본과의 제국주의 연합에 의한 경영의 대상이었지만, 태평양전쟁 기간에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 정권은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전후 3년(1946~1949)에 걸친 내전 끝에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신중국이 탄생한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미국과의 외교관계 개선을 탐색했으나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미중 갈등의 매듭은 풀어지지 못했다. 같은 해 말 중소동맹조약이 맺어지면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국은 한반도에 군사개입을 단행했고, 동시에 타이완해협에도 항공모함을 파견하면서 중국에 압박을 가한다. 여기에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미중 간의 정면 대결이 벌어졌다. 1951년 미일동맹으로 미일-한반도/타이완의 소분단체제가 이루어지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서 인도차이나에도 소분단체제가 만들어졌다. 인도차이나의 소분단체제는 두 소분단과 함께 ‘미일동맹 대 중국’이라는 대분단 기축과 서로 지탱하고 심화시키는 상호작용 관계를 형성하면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협력 관계에 있었으며, 진주만 사건 이후 양국 관계가 틀어졌지만 중국 내전과 한국 전쟁으로 미일 관계는 돈독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한일 관계 협력을 종용하였고, 남한과 베트남도 미일 연합 체제에 들어오게 되었다. 미중 관계는 중소 간의 갈등이 벌어진 이후에 개선이 되었으나, 소련 해체와 함께 시작된 탈냉전 이후에는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특히 한미동맹의 유연화를 주문하는데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한미동맹이 애초부터 잘못 설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지금도 한미 간 관계가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남북 간 평화 정착과정과 함께 이후 동아시아에서 한국 외교의 미래에 대한 거시적 방향감각이 필요하다. 하나는 유연한 동맹의 정치이며,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공동안보의 추구다. 한편으로 동아시아질서에서 한국의 영토적 존엄 및 안보와 동아시아 세력균형에 기여하는 유연한 형태의 동맹의 정치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동맹외교에만 머무른다면 동아시아에서 경직된 동맹체제에 바탕한 국가 및 진영 간 군비경쟁과 군사정치적 긴장의 영속화에 기여할 뿐이다. 그러한 구조는 한반도의 운명에 항구적인 위협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다른 한편으로 공동안보질서를 지향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노력의 한가운데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 - P827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 일본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외교는 영리하면서도 합리적으로, 고무줄처럼 유연해야 하는데 끌려 다니거나 아예 거부하거나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인 것부터 안되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는 느낌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체는 한국이어야 한다. 

 

저자는 2000년 초반부터 논문, 칼럼, 기고, 책 등을 통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이론을 정립하고 살을 붙여 나갔는데 이 책이 그 결과물이다. 책은 최근 글부터 역순으로 하여 2000년 초반까지의 글을 담아내고 있어 순서대로 읽으면 저자의 최근 생각부터 그 기원을 추적해나가는 방식으로 읽게 되는 것이고, 뒷부분부터 시작하여 거꾸로 읽으면 최초의 생각부터 현재까지 심화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정신적 폐쇄회로로 기능하는, ‘일본의 역사문제‘로 상징되는 동아시아질서 안의 역사심리적 간극을 해소해나가는 것이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 모두의 절실한 숙제라는 점은 누구라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질서의 전체 구조의 핵심 요소이자 그 전체를 감싸는 정신적 폐쇄회로라는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역사문제에 그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폐쇄회로를 해체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한 전제는 그것의 현실적이며 논리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정신적 폐쇄회로는 두 가지의 딜레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 (unrepentant Japan)이라는 문제의 구조적 조건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분명 일본이라는 특정 사회의 역사적 자기성찰 능력의 미성숙을 표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사회의 반성적 역사의식의 미성숙이 미일동맹의 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속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반성을 거부하는 일본‘과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외부 압력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자체의 지속성에 던지는 문제다. - P348~349

 

나는 한미동맹에 대한 생각, 일본과 한중 간에 벌어지는 역사적 마찰의 문제에 있어서 일본이 해야 할 역할이 인상적이었고 좋았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가 아시아 냉전의 근원적 토대라면, 동아시아에서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미국의 뿌리 깊은 거부감과 적대의 이데올로기는 왜 세계와 아시아에서 냉전의 뿌리 깊은 근원적 요인의 하나로 거론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응당 던질 수 있다. 중국과 인도차이나, 필리핀, 그리고 한반도에서 모두 미국이 혁명적 사회운동에는 강한 적대감을 갖고 대처한 점에서 일관성을 보였다. 이 지역들 모두에서 반혁명적 엘리트집단과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또한 익숙한 일관성을 보였다. 중국과 미국 쪽의 동력을 가급적 균형 있게 깊이 돌아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 P799

 

저자가 20 여년간에 걸쳐 한 이론을 체계화시키며 누적한 결과물을 책으로 만나는 것이 소중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특히나 온 세계가 전쟁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어 한편으로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냉철한 이성과 논리로 무장하고 이 중 하나씩이라도 차근히 해결해나가는 해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국의 계보학 -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서사들 메두사의 시선 4
실라 미요시 야거 지음, 조고은 옮김, 정희진 시리즈기획.감수 / 나무연필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이든 화이트와 폴 리쾨르는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과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본질적 관계를 언급한 바 있다. (…) 

우리가 과거를 서술하기 위해 무언가를 선택하는 방식은 우리가 자신의 공동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 P179


나는 어떤 세대에 속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새마을 운동의 위대함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고, 1980년대 민중의 항쟁을 전해 들었으며, 조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국민 체조’를 교육 받고, 고등학교 때까지 교련 수업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국가주의에 대한 교육이나 세뇌였음을 지금은 인지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해서 싫었는데 지금은 그 때를 향수처럼 기억하기도 하는 반면 씁쓸하거나 불쾌하게 느끼게도 한다. 

국가가 국민을 알게 모르게 의식화시키기 위한 작업들이 일상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기념 사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종종 전쟁 기념관을 들러 전시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나마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만약 멀지 않았다면 현충원도 가지 않았을까. 국립서울현충원이 국군 묘지에서 출발하여 애국지사 묘역으로 조성된 것처럼 전쟁 기념관도 한국 전쟁을 기념한다는 이유에서 조성되었다. 


<애국의 계보학>은 한국의 근현대 시기의 역사에서 이상적인 미래로 내세운 관념이 무엇이었는지 그 계보를 추적하는 책이다. 한국의 역사를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거나 분석한 책들은 있으나 이를 젠더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는 것이 이 책의 특별한 점이다. 


젠더 담론이 항상 혹은 반드시 젠더 자체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젠더란 상호적으로 구성되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여성과 남성의 범주로 개념화된다. 그리하여 젠더 체계는 다중적이고 가변적인 방식으로 다른 문화적, 정치적, 미학적 구조 및 경험의 양식과 서로 연관된다. - P11


젠더 담론이 사회의 구조를 해석하는 데 필수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젠더에 대한 이해 없이는 사회를 온전히 해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른 책들처럼 일반적으로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정체성, 남성, 여성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개인이 젠더적 주체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펴보게 한 것이 효과적이었다 생각한다.


저자는 신채호를 한국 근대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 최초의 인물로 제시한다. 그는 국가와 민족의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고구려 광개토 태왕 등 고전적 영웅을 이상화하여 끌고 온다(그는 위인전을 많이 썼다). 신채호는 당시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학자로서 낡고 헤진 조선을 뒤로 하고 근대적 이상향을 제시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을 과거의 복기를 통한 회복 방법이다. 살라 미요시는 그가 근대성으로 제시한 방법이 무사, 영웅으로서의 ‘남성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몇 십년이 지나지 않아 박정희도 이상적 현대의 모습으로 신채호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다. 18년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이순신 등 영웅의 부활 사업을 꾸준히 추진했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을 개혁한다고 했지만 이는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국가를 이상화시키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박정희는 일본식 군사 교육을 받았고, 일본 장교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었는데 이를 자신의 체제에 적용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구미시가 박정희 기념 사업을 위해 근현대사 명소를 만든다는 추진 계획을 밝혔고, 경상북도는 새마을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국내가 아닌 아시아 및 아프리카 16개국에 시범마을을 조성한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이 성공적인 모델임을 자인하는 것이며, 나아가 박정희를 여전히 기념하기 위한 숨은 포석도 있다고 생각된다. 


김일성은 남한에서 실패한 군사적 남성성 대신 과거의 유교적 모델에서 부성애를 강조함으로써 1980년대 학생들 사이에서 붐을 일으켰다고 이야기한다. 김일성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남한의 이상과 현실이 학생들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된다. 박정희 뿐 아니라 전두환도 국민과 국가를 단결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으나 실상 잘 되지 않았고 실패했다. 올림픽 개최, 행사 등 국내외 사업을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려 했다는 점을 지금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살라 미요시가 다룬 인물 중 이광수는 앞선 인물들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급된 작품 <무정>,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 <윤광호>, <사랑인가>를 읽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저자가 제시한 관점은 놀랍기 짝이 없다. 나는 그저 사랑을 통한 계몽, 해방 의식 정도를 느낄 뿐이었는데 그는 이광수가 사랑의 상실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종국이 ‘여성’이라고 하는 귀환점이었다고 말한다. 귀환은 출발점이자 도착점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고 집, 나아가 국가,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광수는 근대적 여성의 모델을 제시했지만 그 이상적 근대성이 일본을 모델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전쟁 기념관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전쟁 기념관은 전쟁 영웅을 숭배하여 기림으로써 국민을 교육시키고 나아가 국가를 개혁시키고자 만들어졌다. 나는 전쟁 기념관을 둘러보며 한국 전쟁 이후의 전시에 주로 집중했던 것 같은데 살라 미요시는 전시 중 조선 시대에 가장 긴 할애를 하고 있다고 했다고 하여 놀랐다. ‘형제의 상’도 봤을 것 같은데 생각이 흐릿한 것을 보면 주목하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광개토 대왕비(복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부 전시들보다 사실 외부에 있던 전쟁 전사자들을 적어놓은 공간이 기억에 또렷하다. 건물 설계자는 의도적으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숭고함을 느끼도록 표현했다는 것을 보면 이는 제대로 성공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의 유교화 과정>, <냉전과 새마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일상적 민족주의>가 연관되어 떠올랐다. 이 중 <한국의 유교화 과정>과 <일상적 민족주의>는 읽으려고 생각했던 책인데(심지어 <일상적 민족주의>는 샀는데) 아직 읽어보지를 못했다. 이후 읽는다면 관련하여 좋은 자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21세기에 들어선 뒤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오직 이행의 개념으로만 이해하고자 했던 포괄적 역사 이론의 실패한 약속을 반성하면서, 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국민국가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과제가 제시되었다. 그러한 전략의 결과가 차이와 저항의 행동을 통해서든 역사 서사 전체를 회피하는 것을 통해서든 그저 지배 문화를 다시 쓰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진보적 역사에 대한 이전의 비판 전통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벤야민이 말했던 ‘변증법적 이미지’, 즉 그가 감춰지거나 잊혔을 과거와의 연결이 현재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며 밝혀지는 각성의 순간이라 부른 관점을 통해 국가를 개념화했던 방식을 비로소 재고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가의 과제는 텍스트, 사건, 이미지의 병치로 드러나는 여러 겹의 의미적 층위를 벗겨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하고 예상치 못하거나 숨어 있는 연결을 (재)포착하는 것이다. - P24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4-01-11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의 공부> 1월호에서 김소연 시인이 경주를 박정희 정권이 주도해서 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조선 이전, 백제가 아닌 신라를 조명하는 것도 의도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화가님 후기를 보니 생각났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4-01-12 08:31   좋아요 1 | URL
박정희 시기 문화재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관련 사업들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국립문화재연구소 같은 것도 만들어지고요^^ 삼국을 통일한 신라를 통해 통합과 단결을 강조한 것 같기도 합니다.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 방콕, 하노이부터 치앙라이, 덴파사르까지 13개 도시로 떠나는 역사기행 도시로 보는 시리즈
신윤환 외 지음 / 사우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남아시아는 현재 11개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영역은 상당히 넓다. 도시국가인 상가포르와 브루나이를 제외하면 넓지 않은 나라가 없다. 그에 비하면 인구는 적은 편이다. 그래서 동남아시아는 도시가 중심이 되어 발달했다. 동남아시아 각국의 오랜 역사 동안 중요한 지역에서 거점이 되는 도시가 사실상 나라의 명운을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는 오늘날까지 중요한 관광 명소가 되거나 교통의 요충지가 되어 다른 관광지로 연결해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동남아시아 도시들이 중요한 이유다. - P6


얼마 전 아시아사를 읽고 나자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동남아시아사로 굵직한 책을 갖고 있지만 그 책을 읽기 전 징검다리로 입문할 만한 책이 무엇이 있을까 고르다 선택한 것이 이 시리즈다. 마침 2권까지 나와 있었고 평도 나쁘지 않아 보여 도서관에 가서 빌려와 읽게 되었다. 


동남아시아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물과 친하지 않고 해산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휴양지 느낌이 강해서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먹고 노는 관광객으로서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남아시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많은 부침을 겪었기 때문에 도시가 그야말로 역사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는 도시를 위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관광객으로서 접근성도 좋으면서도 역사학도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공부할 거리가 많은 곳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것을 느꼈기에 값진 시간이었다.


5명의 학자들이 7개의 나라에서 고른 13개의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자마다 다른 국가와 전공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야기의 스타일이 다른 것이 꽤나 재미있었다. 

태국 현대사를 전공자가 방콕, 치앙라이, 폰사완의 민주화와 민족 갈등, 전쟁 경험을 통해 태국과 라오스의 아픈 현대사를 들려준다. 특히 소수민족과 국경, 그 각각에 대해서, 또 둘 간의 관계에 대해서 포커싱을 맞추어 전달한다.

베트남의 정치, 경제를 전공한 정치학자는 하노이와 호찌민시의 거리와 건축물을 통해 역사를 설명하면서도 베트남의 유적지와 현재를 볼 수 있는 여행 장소를 빠짐없이 소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연구한 인류학자는 덴파샤르, 족자카르타, 수라바야를 소개하는데 지나치게 개발된 자카르타, 발리를 벗어나 현지인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들로서의 매력을 가져서다.

동남아시아 불교 미술을 전공한 미술 사학자는 믈라카, 페낭을 소개하며 일찍부터 외부의 눈에 띄어 식민지가 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 그 때문에 다양한 문화의 혼종성을 낳았다고 말한다.

동남아시아 화교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는 싱가포르, 양곤, 쿠칭을 소개하는데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치앙라이, 폰 사완의 국경 전쟁에 따른 피해와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기억에 남았다. 또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찌민을 비교하며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는 현재를 주목하기도 했다. 고양이 천국인 쿠칭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붐비고 지나치게 개발되어 관광화되어버린 자카르타나 발리 대신 현지인들을 느길 수 있는 덴파샤르, 수라바야, 족자카르타는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다.

믈라카, 페낭은 역사적 가치와 미관만으로 가고 싶은 욕망은 충분하다. 특히 페낭 신학교는 김대건 신부을 비롯한 조선의 신자들이 사제의 서품을 받은 곳이라 특별하게 느껴진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현재 페낭교구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입문하기에 적절한 책인 것 같다. 교양서이기도 하고 대중서이기도 하지만 책의 깊이가 얕지 않아서 좋았다.  


동남아시아 도시들의 탄생 시기는 다양하나 도시로 성장하고 발전한 것은 식민 지배와 국가 건설 과정에서다. -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모사 1867 - 대만의 운명을 뒤흔든 만남과 조약
첸야오창 지음, 차혜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만 역사의 ‘나비’가 1867년 이 해변에서 첫 날갯짓을 했다. 이 날개짓은 1874년 일본의 대만 정벌로 이어졌으며, 1875년 심보정의 개산무번(청나라가 대만 원주민 산지를 개척하면서 진행된 침략)과 1885년 대만 건성(청나라가 대만을 성으로 승격시킴)을 거쳐,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로 이어졌다. 일본인이 대만에서 물러나면서 이 해변에서 시작된 대만 역사의 나비효과는 비로소 멈추게 된다. 


1867년 대만 남단 해역에 미국 상선인 로버호가 좌초되었다. 10명의 선원이 배를 버리고 해변에 상륙했으나 생번인 원주민에게 살해된다. 

이 소설은 1867번 로버호 사건을 파고들어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만은 당시 포르모사라고 불렸다. 17세기 중엽의 포르모사는 37년 동안 네덜란드의 동양 진출을 위한 근거지였으며, 당시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돈을 많이 번 식민지 중 하나였다. 이후 청나라가 대만을 점령했으나 통치 범주의 최남단을 방료까지로 한정함으로써 그들의 지배력은 섬 가운데 서북부 정도에만 실렸다. 1858년 천진조약에 따라 담수와 안평항이 개방되고 북경조약에서 계롱과 타구가 추가 개방되었다. 


포르모사는 물산이 풍부할 뿐 아니라 전략적 요충지로도 중요하여 영국, 프랑스는 진작부터 눈독을 들였다. 일본의 근대화 계기가 된 흑선의 주인공 페리가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1854년 7월에 마케도니안호(The Macedonian)과 서플라이호(The Supply)를 계롱항에 파견하여 포르모사 해안을 측량했다. 마케도니안호의 선상 목사이며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조지 존스(George Jones)는 상륙하여 내륙의 탄광 갱도까지 들어가 탐사했는데 이곳의 탄광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포르모사를 극동 기지로 여겨 중요하게 생각했으나 자국에 남북전쟁으로 포르모사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영국에 선점 기회를 내주었다. 


“1860년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 무려 스무 척 이상의 상선이 포르모사 해역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침몰했습니다. 청나라 지방 관리들은 백성들이 배와 선원들을 상대로 약탈을 자행해도 방임합니다. 생번만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게 아닙니다. 스윈호가 청나라 정부에 몇 번이나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관리들은 계속 미루면서 세월만 보냅니다. 신사적인 스윈호도 견디지 못하고 자구책을 강구하여 군함을 파견해 포르모사 연해를 순찰했습니다.”



위의 지도는 당시 미 외교관 이양례가 작성한 대만 지도이다. 한 눈에 봐도 다양한 부족들이 있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부족 간에 교류 및 통혼이 있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풍습으로 갈등이 빈번했다. 복로와 객가는 언어와 풍속이 다를 뿐 아니라 생존 경쟁구도에 놓여, 매사에 대립하고 반목했다. 두 집단은 처음에는 땅을 두고 충돌했다가 나중에는 정치적 입장에서 충돌했다. 

몇 차례에 걸친 복로와 청나라 조정 간의 전쟁에서 객가인들은 모두 통치자인 청의 편에 섰다. 청나라 조정의 눈에 복로인들은 정성공의 반역 이후 태생적으로 반골 기질이 있는 고약한 백성이었다. 반면 객가 출신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의로운 백성이라고 여겼다. 


대만 역사 교과서는 1867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데 이 해는 전통적인 역사관으로 볼 때 그저 평탄했던 한 해였다 여기기 때문이다. 대만 남부에서 발생한 선박 조난 사고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는다고. 청나라 조정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만부의 지방 관리가 작성한 상주문 몇 편인데 사실을 그대로 쓰지도 않았을 뿐더러 기록도 소략하다. 

반면 작가는 1867년이 역사상 지극히 중요한 해라고 주장한다. 1683년에 강희제가 대만을 봉쇄하고 대만과 대만 사람들이 184년 동안 세계사에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 이후 두 번째로 국제 무대에 등장한 해이기 때문이다. 


1867년 200명에 육박하는 미국 해병대가 대만에서 군사 행동을 전개했다. 군사 행동이 일어난 장소는 현재 세계적인 휴양지인 컨딩국가공원이다. 미국은 이 때 대만 원주민에게 맥없이 당하고 의기소침하여 돌아갔다. 만약 미군이 승리했다면 일본 정벌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며 1867년 대만 남부가 이미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으로 대만과 미국은 조약을 체결했다(남갑지맹). 대만을 대표한 사람은 괴뢰산의 생번 두목이자 낭교 18부락 연맹 총두목인 탁기독이었고 미국을 대표한 사람은 대사인 이양례였다. 1869년 2월 28일 확인한 조약의 협의서는 지금도 미 국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양례는 19세기 대만 운명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그는 후에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일본의 대만 정벌(일본 입장에서 모란사 사건을 부르는 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1867년 사건은 대만 각 부족 집단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만은 다민족이 병립하는 사회였으나 사건 이후 심보정의 개산무번, 항해 금지 완화로 이주민들이 크게 증가하면서 한족과 원주민의 경계가 허물어져 오늘날 대만계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이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뒤 ‘대만 본토 의식’이 일어났고 서서히 과거의 잊힌 문화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속에 2000년 이후가 되어서는 후손들이 조상의 유적을 찾고 ‘원주민 의식’을 부활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 이전에 <포르모사 삼족기>라는 책으로 17세기 대만 역사를 담은 소설을 집필한 이력이 있다. <포르모사 1867>은 대만 근대 역사 3부작 시리즈로 그 시작이라고 하니 이후 소개될 책들이 기대가 된다. 그 전에 <포르모사 삼족기>도 시간을 내어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대만의 역사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가가 넣은 허구적 인물과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좀 뻔하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당시 사건을 나는 처음 알았기 때문에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작가의 건필을 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1-02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2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4-01-02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이동물원 읽고 대만 역사를 살펴보다가 이 책 궁금했는데,,, 읽어보고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4-01-03 10:12   좋아요 1 | URL
저도 켄 리우 작가 소설은 언젠가 읽어보고 싶어 찜해놨었어요. 대만의 근대 초기 상황을 거의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인데 그레이스님이 읽으시면 어떨까 저도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4-01-04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나 그렇지만 대만은 더 모르는 것 같네요 어느 나라나 나름의 역사가 있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은 그런 데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공부를 하고 알기도 해서 즐겁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04 09:07   좋아요 2 | URL
대만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외교와도 관련이 깊지만 근대 시기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관련이 깊은 것 같아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조금씩 공부해보고 있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 그렇게 올라타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따른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 P15


과거를 떠올리면 이제는 구체적인 기억보다 희미해진 기억이 더 많다. 적어도 내게는 이것이 감사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장사로 바쁘셨고 집이라는 공간은 나와 동생들에게 내맡겨진 곳이었기에 차갑기만 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어머니는 나와 동생들을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어려운 일임을 일찍부터 깨달았기에 하루 빨리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폭력과 자본이란 단어는 일찍부터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는 동시에 해방을 꿈꾸게 했던 것 같다. 


인간이란 큰 일을 겪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것일까. 다치고 아프게 되기 전 깨달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되뇌여보지만 그 때 아버지는 나사 풀린 브레이크 같았고 어머니는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다. 괴로웠고 피하고만 싶었던 존재들이 시간이 지나 병마가 찾아왔고 이후에 그분들은 신앙을 찾고 바뀌었다. 

부모님은 노화와 병마의 후유증으로 신체적 기능은 떨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평화롭다 말씀하신다. 내게 종교는 의미가 없지만 부모님께서 신앙의 힘으로 기운을 차리신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매년 김치를 담가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행위는 분명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어제는 2023년 마지막 날이었는데 가족들에게 전화를 내가 먼저 걸어야겠다 싶어 그렇게 했다. 

어머니는 “니가 웬일이야.”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평소 내가 쌀쌀맞게 군다고 서운해하신다. 그럼에도 내가 이전에 가족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며 미안해하신다. 옆에 아버지도 계시다고 하셔서 이어서 통화를 했다. “고맙다.” 무서웠던 아버지는 없고 이제는 내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버지가 있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이런 표현이 익숙지 않지만.


사람들은 성격이나 감정을 말할 때 온도와 관련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따뜻하거나 냉담한 마음, ‘차가운‘ 기질, ‘뜨거운 열정처럼. 극지방의 태양에 관해 쓴 지 1년쯤 후, 그러니까 남편이 갑작스레 익사한 후에 메리 셸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마음이 차가운 사람인 걸까?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이 마음 한가운데 있는 얼음같이 차가운 무언가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겠지. 적어도 이 차가운 심장에서 나온 감정이 만들어 내는 눈물은 뜨거운 것임을."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그녀는 차가운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듣곤 했다. - P71


어머니가 내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던 시절, 나 역시 내가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끔찍해하고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사실은 얼마나 닮았는지, 어머니가 나의 가장 본질적인 취향이나 관심사 혹은 가치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 어머니는 평생 동안 도덕적인 질문과 원칙에 사로잡혀 있었고, 사람의 삶은 그가 이룬 것과 그가 기여한 것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점을 물려받았다. 좀 더 작은 것들도 있다. 꽃이나 메마른 나뭇가지를 보고 즐거움을 얻는다든가, 책을 좋아하는 점, 일종의 불안감과 불확실성 같은 것들. 물론 외모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 P340


솔닛의 글은 위로가 되고 따뜻했다. 게다가 문장도 좋아서 기뻐서, 슬퍼서 벅차오를 때가 많았다. 읽을수록 내 스타일이다 싶어 전작 읽기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그녀가 역사가이기도 해서 고전과 역사적 사례를 끌고 오는 것도 좋았다. 선물해주신 분의 마음이 더해져서 소중하게 읽었던 것 같다. 감사하다.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 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그 순간부터는 정말로 중요해진다. 이 순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손님은 때로는 안내인처럼 친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거의 시간을 모조리 부숴 버리고 우리를 문밖으로 난폭하게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반응하고, 그 반응이 바로 그 순간 이후에 살아가게 될 삶이다. - P223

먼 거리를 작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미로는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두 고안물과 닮았다. 하나는 실타래고, 다른하나는 단어와 문단과 쪽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이다. 책의 문장이 실타래에 감긴 한 가닥의 실이라고, 그 문장도 실처럼 풀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풀린 문장이 만들어 낸 선 위를걸을 수 있다고, 실제로 걷고 있다고 말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 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 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 나간다. - P278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도 나는 멸종해 버린 과거의 어머니와 여전히 다투고 있고, 과거를 해결하고 싶어 하고, 과거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너무 작아졌지만 여전히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어머니를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과거의 어머니와 과거의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독특한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불러낸다. - P339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4-01-01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베카 솔닛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올해는 읽어보고 싶습니다.
가족의 존재가 참 그런 것 같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거리의화가 2024-01-01 19:53   좋아요 1 | URL
솔닛의 글 참 좋네요^^ 페넬로페님께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가족이란 멀고도 가까운 존재인 듯 싶어요. 가까워서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01-01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1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1-02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면서 거리의화가 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부모님을 떠올리기도 하셨군요 이 책을 보시고 리베카 솔닉 책을 다 보시기로 하시다니... 멋지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02 09:04   좋아요 0 | URL
내용이 저자의 어머니의 사연으로 시작되어서인지 자동으로 저도 옛 기억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녀의 책을 조금씩 읽어보고 싶습니다.

자목련 2024-01-02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가까운 날에 이 책을 읽고 싶어요. 미루지 말고...

거리의화가 2024-01-02 12:45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이 이 책을 읽고 풀어내실 감상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