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창훈 지음, 한단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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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일까? 그렇다면 한창훈의 이야기는 불행한 나라에 관한 것일까. 아니면 모두가 행복해서 정작 그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책을 읽기도 전에 나는 행복과 불행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불행이 싹텄을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내렸다. 혼자만 사는 세상이라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갈 테니까.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야 한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 수 있는 다섯 편의 짧은 연작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뜨거워졌다. 군사 목적으로 존재했던 섬에 병사들은 모두 떠나고 측량사만 남는다. 풍랑으로 섬에 들어온 사람, 구조선을 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그 나라로 간 사람들」는 태초의 삶이 시작된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란 법만 존재할 뿐 바다가 보여주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함께 살아간다. 나와 너의 분리와 경계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행복이란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화산 폭발로 섬을 떠나 본토에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육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한다.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는 왜 휴일에도 쉬지 않느냐고 묻자 섬사람들은 충분히 쉬는 것이라 말한다. 화산활동이 끝나고 사람들은 섬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남는다. 육지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한 쿠니는 헤어지고 혼자가 된다. 어느 날 공원에서 노인의 말을 들어주다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운영하다. 많은 사람들의 쿠니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쿠니는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일방적인 모습, 상대의 목소리는 무시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소통을 거부하는 단절된 사회에서 행해지는 정치는 올바른 것일까.

 

 “당신과 가까워지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진정으로 가까워지려면 서로 번갈아 이야기하고 관심 깊게 들어야 한다는 거, 듣는 것도 마치 말하는 것 같아야 한다는 걸요.”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 66쪽

 

 쿠니의 이야기가 단절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그 아이」는 규칙과 규율이라는 틀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의 현주소를 말한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하기를 원하지만 어른들이 원하는 건 무조건 1등을 위한 기술뿐이다. 진정 무엇이 중요한지를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이라 서글프다. 섬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시 그곳으로」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가장 잘 아는 섬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선장이라는 사람의 명령에 따르기를 강요한다. 선장은 독재자를 대신한 말로 그것이 주는 공포와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금수저, 흙수저 란 말로 신분을 따지고 빈부의 격차가 커지며 공감은 사라지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란 한 하나의 법으로 살아가는 섬나라 사람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한창훈이 바라고 꿈꾸는 좋은 세상을 우리는 만들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해서 잘 사는 게 아니라 개인의 기쁨이 넘치고 웃음이 피어나는 나라 말이다. 타인의 불행으로 행복을 확인하지 않고 행복이란 말이 없어도 내일이 기다려지는 나라, 그런 나라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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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9-2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적인 나라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ㅜ.ㅜ

자목련 2016-09-23 18:03   좋아요 0 | URL
상식이 통하는 그런 나라도 넘 멀리 있는 걸까요. ㅠ.ㅠ
 

 

 ‘내 몸뚱이를 갖고 스스로 울기 시작하면서 나는 괴로워졌다. 내 손으로 밥을 집어먹고 내 입으로 말을 하게 되면서 나는 고통스러워졌다. 추운 걸 알게 되고 배고픈 걸 알게 되고 맞으면 아프다는 걸, 원망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걸 알게 되었다. 원망. 미움. 고통. 괴로움. 공포. 분노. 나는 그 글자의 의미를 다 안다. 아니까 기억한다. 그 느낌. 뽀족한 바늘로 내 몸에 하나하나 새겨 넣던 그 감정들.’ (206쪽)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픔을 지닌다. 존재에 대한 이유를 몰라서 슬프고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슬프다. 무엇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는지 누군가에게 따지고 묻고 싶을 뿐이다. 왜 태어나서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끊임없는 질문은 정체성을 찾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작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설사,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더라도. 모든 존재는 고귀하며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될 때 성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영악하게 재빨리 그것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길고 긴 성장통을 앓기도 한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일생을 몸부림치기도 한다.

 

 ‘이년’, ‘저년’, ‘언나’, ‘간나’로 불리던 소녀는 알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가짜 아빠에게 맞고 집을 나가는 가짜 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를 찾으면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이가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아도 찾지 않는 부모, 자신의 슬픔과 분노에 갇혀 아이를 볼 수 없던 부모가 아닌 다른 부모가 필요했다. 그런 상상으로 불안을 걷어가려 애쓰고 있었다. 당돌한 이 소녀는 자신이 만날 세상이 핑크빛이 아니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구멍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던 그때 그 순간, 나는 이미 끝을 경험했는데.’(19쪽)

 

 소녀와의 동행이 길어질수록 나는 소녀가 끝이 아닌 시작과 만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하게 따뜻한 누군가와의 도움이 아니었고 행복도 아니었다. 세상이 행복한 곳이라고 나는 소녀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떻게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알게 된 소녀는 더욱 당돌하고 사납고 거칠게 굴었다. 행복이라는 순간은 짧고 긴 불행이 찾아오는 걸 몸으로 익혔다. 그러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로 인해 살만한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기는 했다. 그것은 황금다방의 장미 언니처럼 자신의 처지에서 시작된 연민이며 태백식당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이었고 폐가에서 만난 남자의 침묵과 진짜 엄마를 찾아주겠다던 과격한 각설이패의 단순함과 자신을 동등하게 대하던 가출 소녀 유미와 나리의 시비 같은 것이었다. 소녀를 알아본 이들은 모두 소녀처럼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 정착할 곳이 없어 떠돌며 결핍으로 채워진 삶을 사는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소녀의 존재를 인식했기에 이름을 물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불리는 이름이 있으므로.

 

 세상의 모든 가짜를 불태워버리면 진짜로 가득한 세상이 될 거라고 믿었던 어린 소녀는 이제 없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야 할 이유는 사라졌다. 어린아이에서 소녀로 엄마가 될 수 있는 몸으로 성장하는 동안 진짜 세상의 민낯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면으로 가득한 잔혹한 세상의 단면을 말이다. 어떤 이유로 세상은 모두 가짜였고 어떤 이유로 세상은 모두 진짜였다.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 맞는 대신 때리는 자이고 때리는 게 번거로우면 죽여 없앨 수도 있다. 그 모든 게 귀찮을 땐 외면한다. 상관없는 척한다. 그뿐이다. 오직 중요한 건 자신의 생존이다. 불행이나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다. 이제야 알겠다.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 쉽고, 너무 쉽기 때문에 나는 여태 못 찾고 있었다. 너무 흔하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 그 속에도 있다.’(274쪽)

 

 그런데 정말 소녀는 이름이 없었을까. 소녀가 진정으로 바랐던 이름은 기차 소리를 닮은 ‘드드덕’이었을까.  당찬 얼굴로 나를 쏫아볼 것만 같은 소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너의 존재를 나는 알고 있다고. 너를 만나 반가웠고 나는 너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존재하는 고통과 분노와 슬픔이 조금은 사라졌냐고. 아마도 소녀는 미친 소리라고 말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 피식 웃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김사과의 단편소설 『02』속 영이, 오정희의 장편소설 『새』속 우미를 떠올린다. 그러나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 할 수 있는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은 비단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 아닌 모두의 성장소설이다. 왜냐하면 소설 속 소녀를 보았지만 못 본 척했고 알지만 모른 척 지나쳤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니, 멈춤 없이 성장하는 소설이 맞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녀와 소년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스쳐가지 않게 먼저 인사를 건네도 눈을 마주할 소녀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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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9-2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에 대한 이유를 몰라서 슬프고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슬프다.
무엇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는지 누군가에게 따지고 묻고 싶을 뿐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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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너무 늦게 온다.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기도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기꺼이 환대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실재를 확인했지만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아프고 어렵다. 어느 정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탄생과 달리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니 사는 동안 언제 어떤 형태로 나의 죽음과 마주할지 한 번도 상상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몇 차례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 위에 있거나 중환자실 신세를 졌을 때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과거가 되는 순간과 동시에 죽음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만다. 죽음과 삶이 겹치는 순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삶과 죽음이 겹치는 순간에 대해 말한다. 그러니까 죽음에게로 향하는 삶의 기록이다.

 

 아버지와 큰언니의 죽음 이후 나는 죽음을 인지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어떤 장르의 글이든 죽음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죽음을 이해하고 상실과 부재에 대한 위로를 받기 위해 선택한 글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의 동요 없이 폐암 진단 과정와 그에 따른 치료법과 일과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담담하게 기록한 폴 칼라니티의 글은 아주 천천히 읽어야 했다. 어느 부분에서는 멈춤이 필요했다. 담백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내게로 스며들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의 직업이 의사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간호사였던 큰언니는 폐암이었다. 폴 칼라니티의 글에서 나는 큰언니의 통증을 느꼈고 삶을 보았다. 폴과 큰언니는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라는 점만 같을 뿐 온전하게 같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漸近線)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143쪽)

 

 병원에서 죽음은 입원, 퇴원, 수술처럼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는 더욱 그렇다. 동요하면 안 되니까. 그러나 우리가 아는 건 표면에 불과하다. 인간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의학을 선택한 폴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은 현실적이면서도 그 이상의 무엇이다. 때문에 폴은 자신의 죽음을 세밀하게 기록하려 한 것이다. 의학 전문대학원에서 4년 과정을 마치고 뇌를 다루는 신경외과를 선택해 수련의 생활 6년 차에 폐암이 발병했지만 그는 치료를 받으며 수술을 병행했다. 마지막인 7년 차 암이 재발했지만 수련의 과정을 끝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폴은 최고의 순간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했다.

 

 일반 사람과 다르게 의사였던 폴은 자신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긍정적이라는 말은 죽음에 휘둘리지 않고 직시하며 죽음과 동행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찾아온 암과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서도 그는 혼자 남겨질 아내 루시를 걱정했고 딸 케이디를 얻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했고 남겨진 시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채워나갔다. 오늘이 아닌 내일 죽고 싶은 마음, 지금이 아닌 나중에 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생명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인 죽음을 택했다.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숭고함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의 결정은 감동적이다.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게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161쪽)

 

 자신의 삶과 죽음을 차분하다 못해 평온하게 써 내려간 폴. 사랑하는 남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그의 글을 완성하고 마침표를 찍은 아내 루시. 그들의 이야기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큰언니가 남긴 노란 노트를 펼친다. 투병 중에 남긴 메모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큰언니의 생각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누구나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변한다. 죽음이 아주 멀리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죽음을 무시하고 멀리 있던 죽음과 아주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느꼈을 때 죽음을 자세히 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죽음과 삶이 겹치는 순간이 만든 인생을 말이다. 우리 모두 그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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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9-19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은 한번에 휘리릭 다 읽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기엔 저자가 말하는 주제가 너무 크고 진지한데 또 내 것이 될 것이기도 하고...언제나처럼 잘 읽고 갑니다...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하여서도 더 담담하고 좀 덜 겁쟁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2016-09-20 16:01   좋아요 0 | URL
저자의 깊은 사유에 큰 감동을 받은 책이었어요.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만 곧 잊어버리니...죽음을 편하게 그리고 친근하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올까요. 저역시 성숙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기를 바라요.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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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은 표현해야 한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아낌없이 말이다. 좋은 소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애정은 무조건 좋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아쉽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도 애정이다. 관심이 없다면 아예 읽지도 않을 테니까. 7회를 맞이하는 젊은작가수상작품집은 매년 구매하면서도 매년 성실히 읽는 건 아니다. 읽다가 만 단편도 있고 나중에 소설집으로 나왔을 때 읽은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온전하게 읽었다. 7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상 수상자인 김금희, 정용준, 최정화, 김솔의 소설이 좋았다. 김솔의 소설은 아마도 다시 읽었을 때 더 좋을 것 같다. 뭐랄까, 처음에는 맛을 모르고 먹었지만 자꾸만 기억되는 맛이라고 할까. 기준영, 오한기, 장강명의 소설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내게는 아직 어렵거나 친근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한기의 소설은 독특했지만 나 같은 독자에게는 불편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타인을 이해하려는(조금 쉽고 친절한 다른 말로 대신하고 싶은데 그런 말을 모르겠다) 작가의 흔적이 역력한 소설을 사랑한다. 김금희의 단편「너무 한낮의 연애」는 묘한 감정을 불러오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필용은 대기업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원으로 좌천된다. 직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사내식당 대신 근처 종로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십육 년 전 대학시절을 회상한다. 그 시절 필용의 곁에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재미없는 시나리오를 쓰는 양희라는 후배가 있었다. 양희가 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양희의 고백은 좀 이상했다. 지금 오늘은 필용을 사랑하고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양희의 고백은 생각해보면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다. 시시때때로 모든 건 변화하니까. 그러니 김금희의 이런 문장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어떤 그리움과 알 수 없는 감정과 맞닿는다. 시간이 지나야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하면 맞을까.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너무 한낮의 연애」, 43쪽)

 

 정용준의 단편「선릉 산책」에서 화자인 나는 자폐을 앓은 발달장애 청년 한두운을 돌보는 아르바이를 한다. 단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무엇을 해야 좋을까. 대화가 통하는 사이도 아니니 그저 근처 선릉을 산택할 뿐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한두운을 관찰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세상을 보는 그에게 연밀을 느끼면서 나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경계를 두었던 나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사력을 다해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데 삶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말이다. 

 

 과거의 인터뷰 사건으로 모든 걸 잃고 다시 재기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내면의 갈등과 불안을 섬세하게 포착한 최정화의 「인터뷰」는 무엇이 삶을 흔들고 균열시키는지 보여준다. 최정화는 불행을 통해 삶을 환기시키는 소설을 쓰는 것 같다. 제목 그대로 알바생을 자르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린 장강명의 소설은 가독성과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내게는 이제 그의 소설이 특별하지 않다.

 

 김금희와 정용준의 소설 속 화자는 우리의 일상과 가장 닮은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기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 어제같은 오늘을 살지만 결코 어제와 같지 않은 오늘을 그렸다고 할까. 여하튼 나는 그 둘의 소설이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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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자목련 2016-09-19 11:17   좋아요 1 | URL
긴 연휴가 끝났는데 게으름은 여전합니다, ㅎ
서니데이 님, 즐거운 한 주 시작하세요^^

보물선 2016-09-1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두편이 좋았슴다!

자목련 2016-09-19 11:18   좋아요 0 | URL
^^*
 

 

 여름은 사라지고 싶지 않은가 보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낮에는 여전히 뜨겁다. 아파트 주변에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정겹다. 햇빛과 만나면서 반짝이는 붉은 색이 참 예쁘다. 언제부터 그 빛깔들을 보고 예쁘다, 생각했던가. 맵기만 한 고추, 긴 겨울에 뿔을 따느라 손이 아렸던 기억밖에 없던 고추가 예쁘다니. 달라진 건 나였다. 내가 달라져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지만 곧이 듣지 않았던 시간이 지났구나, 혼자 생각했다.

 

 주말에는 H를 만났다. 출장 다녀오는 길에 시간을 내어 내게로 왔다. 어느 시절에는 밤을 꼬박 새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잠을 자야만 하는 내가 되었다.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계획된 일정에 대해, 소소하지만 거창하다 말할 수 있는 삶의 일부에 대해 말했다. 감사를 느끼는 순간에 대해, 두려움을 이겨냈던 순간에 대해, 화가 나고 속상했던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에 대해 말이다. 좋은 밤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말하는 사이가 된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채울 수 없는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숭고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남, 이별, 그리고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강에 다리는 놓은 일은 아닐까. 그냥 건너뛸 수 있는 물에는 다리는 놓지 않는다. 젖어도 괜찮다고 여기니까. 그러나 깊고 넓어지는 강에는 반드시 다리가 필요하다. 깊고 넓다는 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난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는 놓은 일은 수고스럽다. 많은 왕래에도 튼튼한 다리, 갑자기 쏟아지는 비, 바람을 견딜 수 있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정성으로 상대를 대하는 마음, 진실을 보여주는 행동,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이다. 피곤을 안고 먼 길을 가야하는 H를 배웅하며 산다는 건 별게 아닌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은 따뜻하다. 문자나 메신저, 전화로 수많은 다짐과 약속을 반복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짧은 순간처럼 온전한 감정의 교류는 없다. 그러니까 H를 만나서 나는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런 책도 즐겁다. 드디어 『악스트 Axt 8호에서 김연수를 만난다. 이번 호는 정말 많이 팔릴 것 같다. 류근의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 구병모의 장편소설『한 스푼의 시간』, 강영숙의 단편집『회색문헌』​. 9월의 리스트다. 강영숙의 소설집은 5년 만에 나오는 것이다. 명절연휴에 읽어도 좋겠다. 긴 연휴, 스트레스는 날려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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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1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16-09-14 07:4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건강한 명절 보내세요. 언제나 다정한 안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