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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
금태현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소망을 갖는 일은 뭔가 잘 될 거라는 주문을 외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지금과는 다른 삶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은 키우지 않은 게 좋을지도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소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들처럼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때때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만 삶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기에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속 화자인‘ 나’ (코피노 청년)가 하루하루를 용케 견디는 게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 길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도(正道)가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세월은 우리를 대책 없이 성장시키고 있었다. 일년에 키가 10센티미터 자라기도 했다. 또 새해가 다가왔다. 새해 들어 우리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12쪽)
필리핀 세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처럼 산다. 한국인 아빠는 병에 걸려 죽었고 엄마는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나 일본으로 떠났다. 엄마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할 뿐이다. 지역의 특성상 세부의 삶은 관광객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부모의 돌봄 없는 코피노 청년은 공부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닥친 일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제 곧 성년이 되는, 온전한 어른이라 할 수 없는 나이에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 세부 유흥가 망고스퀘어에서 사람들이 프러포즈를 할 때 관광객의 지갑을 훔치거나 한인 박사장의 마약 운반 심부름을 한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열 살도 훨씬 많은 한국에서 온 누나의 연락은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엄마처럼 살갑게 아픈 나를 보살피고 연인처럼 안아주는 누나야말로 가족과 다름없었다.
필리핀에서 코피노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코피노를 떠올리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과 겹쳐진다. 물론 이 소설이 코피노 청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평범한 듯 특별한 자신의 삶을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닿을 수 있으니까. 그건 어디에서 살든 많은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가족이 아닌 이들과 살고 있으며 불확실한 내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가 유튜브에 실패한 영상을 올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건 타인의 실패에 우리가 작지 않게 위안을 받고 있다는 증거 인지도 모른다. 성공한 누군가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누군가도 나처럼 실패의 삶을 살고 있다는 위로 아닌 위로 같은 것이랄까.
실패를 딛고 성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최악이다. 마약 운반의 발각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나’에게 그 일을 시킨 박사장은 피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박사장의 가게에서 일하던 베렌을 찾아오라는 일이다. 베렌의 고향에서 베렌의 어머니와 동생을 만났지만 베렌을 찾는 단서는 얻지 못한다. 좋아하는 여자를 박사장에게 대령해야 하다니. 박사장과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고 놀랍게도 베렌과 연락이 닿는다. 베렌을 박사장에게 인계하는 대신 ‘나’는 엄마가 있는 일본으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먼저 일본에 도착해 베렌을 기다리면서 ‘나’는 일본에서 이방인임을 확인한다. 일본의 유흥가에서, 호텔에서, 망고스퀘어를 떠올린다. 세부에서 코피노로 살아가는 자신과 일본인 할아버지와 살아가는 필리핀인 엄마, 박사장을 피해 고향과 가족을 떠나 일본에 온 베렌, 모두가 그러했다. 간절히 정착을 원했지만 부유하는 삶을 이어갔다.
‘나는 우리 네사람이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베렌과 엄마가 나란히 주방에서 밥을 짓고,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음식이 식탁을 구성하는 게 아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식탁을 규정한다. 가족 중 누군가 잔소리를 하거나 참견할지 모른다.’ (169쪽)
소설은 사실 단순하면서도 평범하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 내가 모르는 삶의 방식, 그 안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에 끌리는 건 주인공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절망이 아닌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소망 말이다. 한 공간에서 밥을 먹고 서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봐 주는 일, 소소한 하루 일과를 나누고 내일을 기대하는 보통의 일상. 세부에 돌아가 망고스퀘어에서 베렌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상상으로도 행복하다.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잘도 갔다. (253쪽)
잔인하게도 현실은 상상에 닿지 못한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은 소망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니 누군가는 소망을 갖는 게, 주문을 외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소망도 없는 삶은 황량하고 적막한 사막과도 같다. 사막을 건널 수 있는 힘이 오아시스라는 소망에 있듯 ‘나’에게는 엄마와 베렌이 있기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소망을 키우냐에 따라 성장의 크기와 미래는 달라진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도 그 시간 안에 그들이 함께 있으면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