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제시카 아우 지음, 이예원 옮김, 김화진 독서후기 / 엘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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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예정된 만남은 아니었을까 싶은 책이 있다.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 『사나운 애착』을 읽고 돌아가신 엄마와 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그 시간은 너무 짧았고, 한 공간에 같이 지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논과 밭으로 일하러 가신 엄마, 공부한답시고 학교로 도망친 나. 그러니 여행은 우리 생에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 방을 얻기 위해 여관에서 하루, 대학 졸업 때 자취방에서 같이 누운 게 전부였다. 그러니 엄마와의 여행을 다룬 제시카 아우의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는 내게 아리고 아픈 소설이었다. 연이어 엄마와 딸에 대한 글을 읽은 일은 예상하지 못한 복잡한 감정을 몰고 왔다. 


150쪽 분량의 이 소설은 화자인 ‘나’와 엄마의 일본 여행 기록이다. 도쿄, 오사카, 교토로 이어지는 여행기는 일본의 미술관과 박물관, 작은 가게,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 풍경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동시에 모녀의 과거를 소환하여 그들의 현재와 과거 시간을 들려준다. 서로 다른 도시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녀는 다른 시간에 각자 도쿄에 도착한다. 그간의 사정을 풀어낼 만도 한데 모녀의 대화는 단조롭다. 흔한 잔소리가 걱정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묘하게 둘의 관계가 이상적으로 보인다. 


가장 친밀하면서도 내밀한 관계이자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것은 알 수 없는 통증을 불러온다. 소설을 읽는 이라면 반드시 통과하는 어떤 시간과 감정이라 고 할까. 딸이든 아들이든 엄마와 단둘의 여행이 있다면 그 여행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온다. 누군가 늦지 않게 둘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을 서두를지 모른다. 엄마, 혹은 아빠와의 여행을 말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일본을 둘러보는 과정에 독자는 저절로 여행에 합류한다. 그런 점을 매력이라 볼 수 있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엄마와 딸, 두 사이의 거리와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이다. 홍콩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정착해 살아야 하는 엄마의 시간, 성장하는 내내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운 딸. 그 기억의 조각이 여행하는 동안 하나둘씩, 떠오른다. 낯선 언어를 배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지만 언제나 나를 지배하는 건 엄마의 가르침이라고 할까. 아니, 엄마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갈망 같은. 


엄마를 이해하는 일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어쩌면 엄마에게 닿고자 하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비단 엄마와 ‘나’뿐 아니라, 언니와 ‘나’, 연인 로리와 ‘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살면서도 서로가 품은 기억은 같지 않다. 때문에 여행의 기록은 마치 꿈이나 상상처럼 다가온다.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한 안개가 가득한 곳을 헤쳐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엄마를 생각했고 언젠가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는 어느 날,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 집에 단 한 가지 임무를 위해, 엄마가 한평생 쌓아온 소유물을 정리해 모두 치우고 꾸리러 언니와 함께 가게 될 것을 생각했다. 그 집에서 발견할 온갖 것들을 생각했다. 패물과 사진 앨범과 편지와 같은 사적인 물건도 있겠고, 꼼꼼하고 잘 정돈된 삶의 표지도 있겠지. 계산서와 영수증, 전화번호, 주소록, 세탁기기와 드라이어 사용 설명서 같은. 욕실에 있을 반쯤 쓴 향수와 크림이 든 유리병과 용기. 엄마가 매일 치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그리도 꺼리던 의식의 흔적. (126쪽)


돌아가신 엄마가 견디고 살아냈어야 할 것들에 대해 가만히 생각한다. 소설 속 엄마처럼 낯선 언어를 배우고 낯선 나라에서 삶을 살지 않았지만 조심하면서 살았던 엄마. 엄마의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했을까. 문득 궁금하면서 쓸쓸해진다. 엄마와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어디가 좋을까 상상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너무도 멀어진 엄마와 나 사이, 그 사이엔 그리움만이 쌓였다. 


가만가만 말하는 소설이다. 가만히 상대를 응시하고 가만히 말을 건네고, 가만히 속엣말을 듣게 되는 그런 소설. 한 번 더 말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은 소설. 알 것 같으면서도 도통 잡히지 않은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답지만 쓸쓸한 외로움이 전해지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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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1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만 쌓이네...

어느 노래 가사였던가요.
그리움이 쌓이기 전에 더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시간들이 아쉬울 따름
입니다.

가만가만한 소설, 만나 보고 싶네요.

자목련 2023-03-17 09:18   좋아요 0 | URL
이 소설, 묘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매냐 님은 어떻게 만나실까 궁금하네요^^

2023-03-16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7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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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어렵다. 사랑이란 범주에 이해가 포함되는 거라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가슴이 하는 일이고 이해는 머리가 하는 일이라 여겨서다. 가강 가까운 가족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 중 하나다. 도무지 모르겠다. 왜 그러고 사는지 말이다. 당신들의 삶을 강요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독립된 존재로 보고 거리를 두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그게 참 안된다. 내 핏줄, 내 부모, 내 형제, 나와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한평생 빨치산으로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 당연 불가능해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정지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와 함께 살아온 이들, 그들이 겪은 세상이다. 


아버지 ‘고상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구례로 내려온 딸 ‘고아리’. 장례식장에서 죽은 아버지와 보내는 짧은 시간, 그곳으로 모여든 이들이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증인이자 역사였다. 이름도 낯선 이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한달음 달려온다. 딸이라는 자격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지만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 장례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알아서 진행하는 사람들, 한때 동지였던 이들, 아버지와 반대편에 있던 이들, 연좌제 때문에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냈던 친척들이 오직 한 사람 아버지 때문에 한자리에 모였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생의 처음이 그러했든 생의 마지막도 모두에게 둘러싸여 배웅을 받는다. 장례식 또한 축제가 맞았다. 그들이 꺼내든 아버지와의 인연은 오래전 잊고 있던 아버지의 시간을 불러온다. 아버지로 인해 죽음을 당한 가족들, 그로 인해 평생을 형제가 아닌 원수처럼 지냈다. 아버지와 같은 빨치산이었지만 아버지처럼 살아남지 못하고 먼저 떠난 이들의 후손은 아버지를 원망했고 부러워했다. 살아남은 아버지에게는 그 사실이 부채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하나둘 떠오르는 아버지와의 기억, 사회주의자로 같은 뜻을 품고 살아온 어머니와 진정한 민중에 대해 투닥거리며 보낸 날들, 감옥에서 나와 어렵사리 얻은 자신을 극진하게 아끼고 보듬어준 아버지, 구례로 내려와 「새농민」이 알려주는 대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자신을 감시하는 형사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버지,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일처럼 달려가 도움을 주던 아버지. 그에게 사상이나 이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촌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뜻을 꺽지 않았던 아버지. 모든 일에 “긍게 사람이제.”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던 아버지. 


아버지 ‘고상욱’이 살아온 사회가 역사의 일부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내가 빨치산이나 사상범에 대해 안 건 그 아주 먼 나중이었다. 그러니 연좌제나 빨치산을 가족으로 둔 삶에 대해서는 소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얼마나 순화된 내용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그랬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그들은 그르다 말했다. 아버지는 그 선 자체였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 선을 자유롭게 오가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버지를 알고 지낸 이들은 세대, 계층, 의식 구분 없이 모두가 아버지에게 덕을 보았다. 


딸은 생각한다. 아버지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알고 싶다. 한 번도 제대로 묻지 못한 질문으로 남았다. 이제는 묻을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끝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안타깝고 애절하다. 화장한 아버지를 아버지의 발자취가 남은 곳을 다니며 아버지의 마음 몇 점을 남겨두는 딸을 아버지는 흡족할 것 같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한국 근대사의 무거운 한 축을 담은 소설이지만 무거움에 취하지 않는다.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왁자지껄한 수다와 유머와 정이 넘친다. 아버지이자 고달픈 생을 살다간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으로 시작된 화해와 용서를 담담히 전할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자전적 소설이라 조금 더 신중을 기했을지도 모른다. 혁명가, 사회주의자, 이념가가 아닌 아버지의 해방일지. 그가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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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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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안겨준 도시를 기억하는 일은 씁쓸하다. 그럼에도 그 도시가 여전히 그리운 것은 그곳에서 나를 채워준 사람들 때문이다. 나에게 도시란 그런 곳이다. 꿈과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미혹된 어린 시절, 도시는 반드시 가야만 했던 곳이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피폐했고 내 모든 결핍이 온전히 드러났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더라면 도시는 내게 다른 기억으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비비언 고닉이 두리고 다녔던 뉴욕의 거리처럼 나를 성장시키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들과의 사연으로 풍성한 장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도시의 면면을 살피는 일보다 그곳에서 적응하느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다짐은 바로 사그라들었고 세련된 친구들의 모습에 자꾸만 작아졌던 시절이다. 2주에 한 번은 주말마다 집에 내려와 가기 싫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돌아온 곳. 그래도 시간은 모든 걸 안정 시켰다. 친구를 사귀고 영화관에 가고 번화가에 다니면서 한 달, 두 달, 집에 다니러 가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대학에 입학 한 후 아예 용돈을 구하는 전화만 할 뿐 시골에 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비비언 고닉이 『짝 없는 여자와 도시』에서 들려주는 도시의 풍경과 그곳의 일부인 사람들의 풍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을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묘사하는 비비언 고닉의 탁월함이 있기에 가능하다.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나가는 사람들과 달리 고닉은 언제나 눈과 귀를 열어두었고 그 모든 장면을 소중하게 기록한다. 어떤 마음이어야 가능할까. 타인을 향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애정이라는 거창한 말은 오히려 고닉에게 핀잔을 듣기 충분하다. 그냥 고닉은 그런 사람이었다. 도시를 사랑하고 사람들과의 사귐과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그래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누구라도 고닉에게 어떤 고민이든 말할 수 있는 사람. 고닉의 글에는 그런 기운이 있었다. 나도 그녀에게 속마음을 말하고 싶어질 정도로. 무엇을 그를 그렇게 단단하고 멋지게 만들었을까.





고닉 역시 뉴욕에서 태어난 건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시골이나 다름없는 브롱크스에서 자랐다. 고닉의 도시와 나의 도시는 같은 듯하면서도 분명 다르다. 고닉은 여전히 뉴욕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레너드와 오랜 우정을 유지한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란 제목이 말하듯 고닉은 짝 없는 여자다. 그런데, 정말 고닉이 짝이 없을까? 아니다. 그에겐 너무도 많은 영혼의 짝이 있다. 남녀노소, 나이를 가리지 않고 고닉은 모두와 우정을 나눈다. 그 우정이야말로 고닉에게 가장 큰 동력이자, 걷기의 원천이다. 고닉의 사실적이면서도 은유적인 글 속에 살아 숨 쉬는 뉴욕을 본다.


뉴욕의 우정은 울적한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었다가 자기표현이 풍부한 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는 분투 속에서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리는 누군가의 징역에서 벗어나 또 다른 누군가의 약속으로 탈주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 도시가 그 여파로 어지럽게 동요하는 듯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44쪽)


나는 그 도시를 떠났고 그 도시를 찾지 않는다. 그곳에 있는 이들이 나를 보러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 검색이나 뉴스를 통해 그 도시를 본다. 어떻게 변했는지, 간혹 친구들과의 통화를 통해 사라진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내가 다닌 대학은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전했다. 같은 도시에 있지만 내겐 사라짐과 마찬가지다. 교정을 오가는 곳곳에 흐드러진 벚꽃, 그 꽃 가지 아래 친구와 함께 수줍고 어색하게 웃던 사진만 남았을 뿐이다. 도시에서 시작된 사랑은 떠났지만 우정은 지속된다는 단순한 진리에 웃음이 난다. 


고닉의 사랑은 어떤가. 도시를 걷다 만난 이와의 사랑은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로 타오르고 식는다. 그게 뭐 대순가. 다시 도시를 걷고 누군가를 만나고 또 사랑에 빠지면 그만이다. 거리를 오가는 연인 사이에 짝 없는 여자는 오히려 자유롭다. 도시 곳곳에 넘치는 사랑을 “다 흘려보내자고요.”(90쪽)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순간. 나만의 걷기를 통해 고닉은 보고, 듣고, 만나고, 발견하고, 사유한다. 그리고 ‘뉴욕은 나의 도시인 만큼이나 그들의 도시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도시를 더 가지진 못한다.’(108쪽)라고 쓴다. 이 얼마나 근사한가. 누구에게 나 열려있는 광장이자 토론하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공간이 바로 뉴욕이다. 


나는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도시를 있는 그대로 느낀다. 내가 지금까지 몸으로 살아낸 것은 온갖 갈등이지 환상이 아니었으며,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하나다. (215쪽)


돌아왔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지만 나는 시골에 산다. 이제 도시를 꿈꾸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도시의 거대한 아름다움은 수많은 피곤이 쌓은 찌든 삶으로 만든 거대하고 위태로운 탑으로만 보인다. 한치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도시 내면의 풍경을 찾는 건 소원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엔 나의 사람들이 만들어낼 관계와 사랑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언젠가 찾게 될 도시는 그들과 함께 나의 삶에 다정하게 편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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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3-17 0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게 해요.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할 숙제들이 좀 있지만.
그래도 이제 도시에 불시착한 걸 후회하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들(시골 처자들이 도시에서 공황에 빠지는ㅋㅋㅋ)이 잔뜩 생각나는 리뷰네요.
고닉의 책보다 자목련님의 도시 회고담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 도시, 서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목련 2023-03-17 09:33   좋아요 1 | URL
서울을 사랑하지 않지만 서울과 잘 협력하며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과 그곳에 소중한 이들이 있다는 게 서울의 삶을 지탱하는 게 아닐까 싶고요.
바빠서 걱정이네요. 얼른 마무리 하고 쟝쟝 님을 위한 시간 충분히 누리시길!!
 

어제저녁엔 일본과의 야구 경기를 보다가 말았다. 초반에는 기대를 했고 중반에는 응원을 했고 후반에는 채널을 돌렸다. 야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씩 경기 중계를 시청했다. 9회 말 투 아웃부터라고 하지만 그 말은 어제의 경기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팬이 아닌 나에게도 매우 아쉬운 경기였다.


3월인데 남부 지방에서는 낮 기온이 여름같이 뜨거웠다는 걸 뉴스를 통해 접했다. 날씨가 왜 이래를 떠나 미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날들이다. 그 날씨를 만든 장본인이 지구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언제나 무언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건 인간이고, 자연은 그런 인간에게 경고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 비가 온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맑음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맑은 하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봄의 공기가 잡히는 그런 오후라 하겠다. 봄의 공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환기를 위해 열어둔 바람이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느낌, 그 바람에 가만히 기대어 있어도 좋을 느낌이라 하겠다. 산행을 가도 좋을 것 같고, 꽃망울 터지는 매화를 시작으로 꽃들을 보러 가도 좋을 것 같은 그런 오후. 그런 오후지만 밖이 아닌 안에 있고 이런 소설을 읽을까 싶다.





알라딘에서 2022년 올해의 책이라고 선정된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좋아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말하는 해방이 같은 것일까. 읽어보면 알 것이다. 드라마로 방영된 「사랑의 이해」의 원작인 이혁진의 『사랑의 이해』,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아서 드라마랑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혁진 작가의 『누운 배』를 기억하고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뤘을지 궁금하긴 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닌 산불재난에 대한 안전 안내 문자가 도착하는 오후. 낮은 조금씩 길어지고 밤은 조금씩 짧아진다. 그 봄밤을 채우는 건 꽃이 될 것이다. 봄의 공기를, 봄밤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의 맛을 뿜어내는 꽃들. 다시 또 꽃들을 기대하는 봄이다. 아무렇지 않게 봄을 만나는구나 싶다가 이 봄이 감사한 봄이라는 걸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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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1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도 어제 한일전 야구 조금 보다가 잠깐 자리를 비웠더니 점수차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호주에 이어 두번 연속 지는 일이 생겨서 아쉽네요.
몇년만에 wbc경기 볼 수 있어서 좋은데, 우리 대표팀의 경기를 조금더 오래 보고 싶습니다.
따뜻한 토요일이예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3-13 10:38   좋아요 1 | URL
한일전이라 더욱 아쉬운 것 같아요.
무척 추워요.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망고 2023-03-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의 해방일지 자목련님 리뷰 넘 기대됩니다 이 책 참 재밌고 찡했거든요😂

자목련 2023-03-13 10:38   좋아요 0 | URL
읽는 중인데 재밌고 찡하다, 맞는 것 같아요^^

coolcat329 2023-03-12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기중에 봄이 느껴져서 좋은 요즘이에요. 코로나로 삼 년을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미세먼지는 그냥 그러려니하네요. 어쩌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위험할 수 있는데 말이죠.
<아버지의...> 저도 꼭 읽으려고 하는데 대출 예약이 꽉 차서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비가 온다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23-03-13 10: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미세먼지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집니다. ㅎ
<아버지~>는 읽고 있는데 망고 님 표현대로 재미도 있고 생각도 많게 만드네요. 활기찬 한 주 이어가세요^^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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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 터미널 근처의 여관에서 엄마와 하룻밤을 보냈다. 낯선 도시의 지리를 몰랐던 엄마와 나는 여관 주인의 도움을 받아 아침을 배달시켰다. 정확하게 무얼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2인분이 아닌 1인분이었다는 사실만 생각났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자취방을 구하러 나선 길이었다. 엄마는 방을 구하지 못하면 시골의 고등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러마했다. 다행이지 불행인지 골목에서 나와 같이 방을 구하는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났고 우리는 즉흥적으로 동거인이 되었다. 주인집 거실에 난 계단을 지나야만 하는 옥탑방에 방을 구했다. 보증금은 따로 없었고 사글세였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었다. 


징글징글한 애착은 아니더라도 엄마와 나 사이에 적당한 애착이 필요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비비언 고닉의 엄마처럼 사랑을 신봉하고 남편의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는 모습은 엄마에게 찾을 수 없다. 그럴 수도 없는 게 엄마가 먼저 돌아가셨다. 엄마와 싸운 기억이 별로 없다. 고교 입시와 대학 때만 내가 원하는 대로 고집을 부렸을 뿐, 엄마도 나를 상대로 욕을 하거나 매를 들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게 너무 속상하다.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지 않은 엄마는 조금씩 스스로를 갉아먹었을 게 분명하다. 할머니 때문에 그랬을까, 참고 살기만 한 엄마를 향한 마음은 그리움이지만 당시 애틋하고 애절함은 없었다. 그러나 십 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알았다. 언젠가는 엄마와 분리되었을 텐데, 그 시기를 늦추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걸 말이다. 


모든 모녀 사이에는 애증이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 서로가 서로를 거울로 삼고 살았던 비비언 고닉의 모녀의 일상을 지켜보는 일은 부러움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그건 고닉이 그만큼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1987년 공동주택의 한자리에 나는 착석했다. 침대에 누워 울부짖는 엄마와 창틀 난간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는 고닉의 모습. 고닉의 집을 오가는 이웃들. 그들의 면면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고닉의 엄마는 그곳에서 모든 걸 다 아는 듯한 표정과 말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 동지의식이 생기는 것처럼 고닉의 엄마와 그네들도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고민을 토로하는 반면 험담도 오갔다. 당연하다. 사람 사는 건 다 그런 거니까.





노년의 어머니와 중년의 고닉이 뉴욕의 맨하튼, 브롱스로, 윌리엄스버그를 산책하면서 여전히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나도 변한 게 없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현재에서 자연스럽게 과거로 이동하는 두 모녀의 대화는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시간을 생생하게 구연하는데 어떻게 그 모든 걸 기억할 수 있을까 놀라울 정도다. 길에서 만난 노숙자나 오랜만에 만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동네 친구까지. 그들과의 에피소드는 새로운 이야기이면서 다른 삶이다. 그것은 고닉이 성장하는 과정이자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엄마와의 대립과 갈등은 당연하다. 고닉을 대학에 보내는 것에 대해 당당했던 엄마가 고닉이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지 않았을 때 보이는 반응은 익숙하다. 뼈가 빠지게 뒷바라지해서 대학을 보냈더니 번듯한 곳에 취직도 못하는 자식을 어처구니없게 대하던 우리 부모 세대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들과는 전혀 다른 외국인 화가와 결혼을 선언한 딸에게 과연 좋은 소리가 나오겠는가. 고닉에게 그 결혼은 일종의 반항이자 독립선언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의 반대는 가히 옳았다. 엄마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사랑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혼은 현실이고 스물넷의 젊은 부부의 열정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지만 모른 척 시간을 끈다. 죽은 아버지를 향한 엄마의 끝없는 사랑이 고닉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왜 자신이 음식을 해야만 하는지, 남편은 일요일에도 그림을 그리는지, 자신과의 산책이 왜 어려운지, 고닉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의 헤어짐은 예상된 결과였다. 


고닉의 엄마는 고닉을 키우고 만든 게 자신이라고 여겼지만 고닉을 변화하고 만든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고닉이 공부하고 문학을 읽고 경험하고 고민하고 당도한 것이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큰 틀은 엄마라 할 수 있다. 유대인 이민자로 미국에서 정착하며 살기란 얼마나 버거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배운 딸이, 작가가 된 딸이 자랑스럽지만 딸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면 자신은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 그게 엄마의 솔직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고닉과 산책하다 만난 고닉의 친구가 호모섹슈얼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지.”(95쪽)이라고 말하면서도 딸이 권한 전기를 읽으면서 “나는 삶으로 다 살았어. 나는 다 안단 말이다.(113쪽)라며 화를 내는 모습을 돌아가신 내 엄마로 이입하려는데 쉽지 않다. 나는 그만큼 나의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사소하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길게 나눠본 적이 없다. 어떤 문제는 시대적 흐름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고 사소한 것들은 사소해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만약 엄마가 살아 계시다면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어디가 아프다는 말이나, 동네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의 남의 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모른다. 우리는 좀 더 은밀하게 동네 아줌마나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소문을 전할지도 모르고 어젯밤에 본 드라마 줄거리나 정치에 대해 언급할지도 모른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시간이기에 나는 그 시간을 상상하는 일이 서럽고 아프다.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300쪽)란 엄마의 말에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301쪽)라고 답하는 고닉.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301쪽)라고 말하는 엄마. 모녀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시간도 온 것이다. 함께 인생을 말할 수 있는 사이, 가장 가깝고 먼 관계. 그들은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내게 없는 관계라는 게 서글프게 다가온다. 사나운 애착은 끈끈하고 숭고한 연대가 되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모른다. (301쪽)


내 앞에 고닉이 앉아 묻는다. 잘 읽었어, 어땠어?라며 답을 기다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고닉의 생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순간 엄숙해진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사랑과 일 앞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을 눈부신 모습에 숙연해진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 안의 공간을 확인하고 확장시킨 고닉. 그 공간이 만들어낸 매혹적인 이야기를 갈망한다고 나는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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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3-11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끄아아앙 정말 다들 비비언 고닉 읽고 글써주는 거 너무 좋다!!! 🥹 자목련님은 엄마와 빨리 분리 되셨군요? 저는 아직도 분리 중…. 😩😩😩😩😩😩

자목련 2023-03-11 15:10   좋아요 1 | URL
이렇게 읽어주고 댓글 달아주는 쟝쟝 님이 있어 진짜 좋다!!
아무것도 모르고 분리되었고, 그리고 얼마 후 영원히 분리되었어요. 쟝 님의 분리 속도는 적당한 것 같아요^^

공쟝쟝 2023-03-17 07:28   좋아요 0 | URL
... 영원한 분리라니요... ㅜㅜ 목련님 이렇게 훅 들어오시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시러요 ㅠㅠㅠㅠㅠㅠㅠ 저 분리안될래요ㅠㅠㅠㅠ

자목련 2023-03-17 09:34   좋아요 1 | URL
식상하고 뻔한 말이지만 엄마랑 많은 시간 보내세요.
맛나는 것도 먹고 좋은 곳도 보고 잠도 많이 자고요. 돌아가시면 모든 게 후회이고 그리움이에요. ㅠ,ㅠ

솔뫼 2023-03-2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번역자인 줄. 참 잘 쓰셨는데 그림도 자화상인가요?

자목련 2023-03-22 09:00   좋아요 0 | URL
솔뫼 님,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자화상은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향기로운 하루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