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 체 게바라
후안 마르틴 게바라 & 아르멜 뱅상 지음, 민혜련 옮김 / 홍익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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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보통의 삶이 아닌 정의를 위해, 온전히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부모나 형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것 같다.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전설이며 상징이다. 검은 베레모와 단호한 표정, 그리고 시가를 피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쿠바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정도다. 그렇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무엇이 그를 혁명가의 삶을 살게 했는지, 왜 조국 아르헨티나가 아닌 쿠바의 영웅이 되었는지. 때문에 ‘체 게바라 50주기 추모작’『나의 형, 체 게바라』는 인간 체 게바라와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 알려줄 것 같았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체 게바라의 삶 다 말할 수도 없도 다 만날 수도 없다.

 

 책은 영웅 체 게바라의 죽음과 그 죽음의 진위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던 가족의 안타까움으로 시작한다.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막냇동생 후안 마르틴은 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큰형에 대해 들려준다. 체 게바라의 삶을 동경했고 그를 지지한 사람이다. 평범한 아르헨티나 중산층 부모의 다섯 아이의 첫째로 태어난 그는 심각한 천식 때문에 유년 시절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어머니가 교육을 담당했고 집에는 항상 책이 많았다고 한다. 체 게바라의 혁명에는 자유로운 성향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영향을 주었다고 동생은 말한다.

 

 그렇다면 의과대학에 다니던 평범한 청년은 어떻게 혁명가가 되었을까? 어쩌면 모든 건 우연으로 시작해 운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복된 일상에서 안위하는 게 아니라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 다른 세상을 꿈꿨던 단순한 오토바이 여행에서 체 게바라는 길가에서 만난 가난한 빈민들(강자가 약자를 무차별적으로 착취하는)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존재를 바쳐할 것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혁명가의 삶이었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치고 나 아닌 누군가가 할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달랐다. 바꾸려고 노력했고 끝내 바꿨다.

 

 ‘어머니, 저는 본질적으로 치유불능의 방랑자입니다. 정착민의 규범에 갇힌 의사라는 직업에 저는 그 어떤 미련도 없습니다. 제가 믿는 것이 최종 승리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신념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저의 유랑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기대와는 반대 방향일 테고, 이 여정을 끝내겠다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139쪽)

 

 쿠바에서 산업부장관까지 지낸 그는 멈추지 않았다. 콩고의 반군을 돕기 위해 게릴라 요원으로 활동했고 볼리비아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에게 누군가 만든 혁명은 의미가 없었다. 민중이 함께 모여 외치고 힘을 모아 나가는 것, 그것만이 진짜였다. 혁명가의 동생으로 후안 마르틴의 생도 평탄치 않았다. 좌파운동을 하다 8년 넘게 감옥생활을 한 프롤레타리아다. 그는 체 게바라가 쿠바나 볼리비아에서 하나의 상징이면서 관광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화가 나고 안타깝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체 게바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후안 마르틴이 체 게바라의 생애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변화와 혁식이 필요한 세상에 새로운 체 게바라의 등장을 바라는 건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체 게바라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다. 과연 누가 체 게바라의 사상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내 생각에, 거의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당대의 위대한 마르크스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사내가 무기를 들고 시대의 벽에 도전한 게릴라였다는 사실만이 훌륭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모험가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진리를 위해 삶을 내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은 진정한 인간이었다.’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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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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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을 때 항상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읽다가 멈추는 소설이 늘어난다. 소설의 문장만 읽고 있을 뿐 작가가 그리는 그림이나 메시지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라는 걸 안다. 취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인물을 이해하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는다고 말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보니 나도 그런 때가 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든 생각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집을 다 읽지 못했다는 말이다. 궁금했던 작가의 소설과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만 읽고만 것이다.

 

 처음 읽게 된 홍희정의 「앓던 모든 것」은 무척 아름다웠다. 홍희정이란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일흔넷의 화자 ‘나’는윤오라는 청년을 수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갈 곳이 없는 윤오에게 자신의 집의 방을 내준다. 누가 보면 할머니와 손자처럼 보이는 사이다. 그러나 ‘나’에게 눈부신 청춘인 윤오가 다르게 보인다. 한때 문학에 적을 두었던 나에게 노랫말을 쓰는 윤오는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젊음에 대한 욕망을 조심스럽게 탐한다고 해야 할까. 윤오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사고마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독특한 관계 설정과 아름다운 묘사가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백수린의「첫사랑」은 아련하고 아득한 기분을 몰고 온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나’는 짝사랑했던 J선배와 만날 약속을 한다. 만약을 위해 예쁜 원피스라도 장만하기 위해 동기의 소개로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만난 동기들과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 통폐합 위기에 처한 현실을 생각한다. 동기들은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만 하는 나에게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하기도 한다. 그러다 J선배의 근황을 듣게 된다. 소설을 첫사랑이라는 제목처럼 낭만적인 부분이 등장하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일이 현실의 괴리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김엄지의 「느시」는 다시 읽어도 묘한 매력을 지녔다. 무기력한 일상의 반복임에도 경쾌함 같은 리듬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개인적인 애정에서 비롯된 감정일 듯하다. 궁금했던 정영수의 소설 「애호가들」도 나쁘지 않았다. 스페인 문학을 강의와 변역을 하는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를 무척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 박민정의 버드아이즈 뷰」는 몰래카메라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왕따와 관계의 단절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날카로운 일침을 던진다고 할까. 오한기의 「사랑」은 기괴하면서도 독특했고 신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놓치 않는 김솔의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사업」도 기억에 남는다.

 

 소설에도 유행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시류에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정지돈, 이상우(후장사실주의자)가 주목받는 작가라는데 그들의 소설이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쉽지 않다. 해박한 지식과 이론을 병행한 이야기, 모든 것을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에 동의하지만 아직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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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6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7-02-06 17:40   좋아요 0 | URL
저두요 저두요!
 
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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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뒤늦게 끌리는 작가가 있다. 주변에서 좋다고 추천해도 이유 없이 미루고 있던 작가의 글 말이다. 그러니까 작가와의 만남에도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어떤 작가는 소설보다는 산문이 더 매력적이고 어떤 작가는 소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둘 다 너무 좋은 작가도 있다. 개인적인 취향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부럽다. 문장에서 뿜어 나오는 당당함과 마주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에서는 그런 당당함이 전해졌다. 자신감과는 다른 그 무엇 말이다.  저자의 개인적인 일상과 더불어 생각을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책이지만 『태도에 관하여』과는 같은 듯 다른 책이다. 글을 쓰며 사는 일, 삶을 사랑하는 일, 건강, 가족, 친구, 행복, 가치에 대한 주제로 쓴 글들이다. 쉽고 간결하고 지루하지 않으며 힘이 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이력과 갑상선암으로 다섯 번이나 수술했고 여전히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점을 제외하면 보통의 40대 여자의 삶이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20대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 담배를 배우고 끊게 된 계기, 작가로서 독자와의 관계,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방법,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솔직한 글, 담백한 글, 그리고 감정이 있는 글이다. 그러니까 이제 알겠다. 내가 끌리는 건 바로 감정이 있는 글이다. 선명하고도 명확하게 기준을 잡은 삶을 지향하며 자신이 사랑하며 잘 하는 걸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관계에 대한 이런 부분이 참 좋았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맺은 관계는 어느 시점에서는 끊어지고 어느 시점에서는 다시 회복되고 어느 시점에서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저장된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힘든 건 지난 일에 대한 후회나 그리움에서 시작되는 게 경우가 많다. 한때 잘 나갔다는 이유로, 한때 그 사랑을 몹시 사랑했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면서는 지나간 젊음에 대한 미련으로 아프다. 과거가 존재했기에 현재가 있는 건 맞지만 과거에서만 살려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왔다가 또 나간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아끼고 좋아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라고는 나와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정도다. 번지수 틀린 곳에서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서까지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좋다」, 121쪽)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내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에 대한 애정(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랑한다면서 줌파 라히리의 글에는 투명하면서도 우아한 슬픔이 있다고 말하는)의 글은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 괜히 우쭐했다. 아직 읽지 못한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작가의 하루는 과연 어떨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글쓰기를 위해 준비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며 하루에 얼마나 글을 쓰는 것일까, 주부이자 엄마로 육아를 병행하며 원고를 쓰기 위해 최적화된 카페를 찾고 쓰기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해 작업하는 모습에서는 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졌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단정 짓던 그 수준을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퍼스널 트레이닝에서 배운 것」, 259쪽)


 문득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쓰며 사는 삶, 진정한 자유를 즐기고 누리는 사람, 그런 삶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 눈부신 열정을 전염시키는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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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2-0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말씀처럼 저두 감정이 있는 글을 참 좋아합니다. 이 책이 그렇다니 임경선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 지네요 잘 읽고갑니다^~^

자목련 2017-02-03 11:00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에서 느낀 감정과 해피복북 님이 만난 감정의 같다면 더 좋겠네요. 포근한 하루 보내세요^^
 

 

 설 연휴에는 단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무가 주는 기쁨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어쩌다 보니 나는 같은 것을 보고 읽고 있었다. 다큐에서는 소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를 다뤘다. 방송을 통해 나무와 숲,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책은 미야시타 나츠의 『양과 강철의 숲』이란 장편소설이다. 한 마디로 말하지만 무척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라 하겠다. 주인공 도무라가 조율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잔잔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향하 열정,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감동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소설이 더욱 빛나는 건 잔잔하게 스며드는 아름다운 비유와 묘사 때문이다. 피아노를 통해서 보여주는 나무와 숲이라니. 나무와 피아노는 어울리지 않을 조합처럼 보이지만 무척 잘 어울린다.

 

 ‘건반은 총 여든여덟 개가 있고 각각의 건반에 한 줄부터 세 줄까지 현이 연결되어 있다. 강철 현이 똑바로 뻗고 그 현을 때리는 해머가 마치 목련 봉오리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등이 꼿꼿하게 펴졌다. 조화를 이룬 숲은 아름답다.’ (25쪽)

 

 도무라는 우연하게 학창시절 학교 강당에서 조율사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그는 숲을 떠올리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조율을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일하는 악기점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피아노를 닦고 선배를 따라 피아노 조율을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고객와의 응대와 피아노에 대한 것을 배우고 익힌다. 그럼에도 조율사로의 일은 쉽지 않다. 고객과 스스로에게 완벽하면서도 만족한 조율을 하고 싶지만 매번 좌절만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피아노를 잘 모른다. 피아노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연주곡과 어린 시절 다니고 싶었던 피아노 학원 앞을 서성이던 모습만 따라온다. 그리고 연주자인 피아니스트가 전부다. 피아노를 조율하는 조율사는 이상하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소리를 매만지는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소설은 조율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 세계로의 여행은 생경하면서도 신비롭다. 어쩌면 주인공 도무라가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피아노를 통해 숲을 보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숲을 떠난 온 도무라에게 숲은 언제나 가족이자 그리움이었다. 언제나 그곳에 자리한 나무와 숲.

 

 나무는 나무다. 내가 이름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그곳에 존재하며,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잎이 자라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이윽고 열매가 익으면 나무에서 떨어진다. 어린 시절, 가을날, 숲에서 놀다 보면 사방에서 열매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켰다. 내가 있어도 없어도 나무 열매는 떨어진다.’ (40쪽)

 

 소설은 조금씩 조율사로 성장하는 도무라와 함께 같은 듯 다르게 조율사로 살아가는 이들이 들려주는 조율에 대한 해석과 의미,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고객들의 이야기다. 단순하게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사람,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 피아노로 인해 변화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연주가 된다. 하나의 피아노는 연주자의 손을 만났을 때 숨을 쉬고 조율사의 손을 만났을 때 편안하게 노래를 한다. 도무라는 자신이 조율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성장하는 쌍둥이 자매를 통해 더욱 조율이 주는 기쁨과 감동에 다가간다.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부단한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에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과 만나는 이에게 이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강한 응원과 격려가 된다. 피아노를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모습은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으로 다가온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음악을 들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만 들을 수 있는 음악. 가즈네의 지금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계속 이어져온 음악. 짧은 곡을 연주하는 동안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물결이 일렁였다. 가즈네의 피아노는 세계와 이어진 샘이어서 마르기는커녕 듣는 사람이 설령 하나도 없었더라도 계속 샘솟아왔다. (197쪽)​

 

 영롱하고 투명한 피아노 연주를 들은 듯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무와 피아노를 다룬 『슈베르트와 나무』가 생각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무 칼럼리스트 고규홍과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가 함께 나무를 만나는 이야기다. 나무처럼 편안하고 햇살처럼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본다는 것에 익숙해져서 다른 감각을 잊은 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색다른 자극을 전한다. 고규홍과 김예지는 같은 나무를 보고 느낀다. 안내견 찬미와 함께 매일 걸었던 길에서 만나는 나무와 꽃은 이전의 그것이 아닌 나무로 다가온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귀를 기울인다. 고규홍이 나무에 대해 설명해주면 김예지는 감각에 더해 기억한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냈던 꽃이 진 목련나무를 천천히 만난 김예지가 들려주는 말은 철학적이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겨 다른 무엇으로는 확장시키지 못한 사유였다.

 

 ‘나무는 제 향기와 빛깔에 따라 다른 소리를 가진다. 바람이 몰래 다가와 잎을 스쳐 지나는 소리가 나무마다 다를 뿐 아니라,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또한 분명 다르다.’ (『슈베르트와 나무』, 53쪽)

 

 “나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어요? 뭐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나무의 크기뿐 아니라 나무의 생명 에너지 같은 기운이 분명히 내 주위에 드리워졌다는 느낌이 있어요. 사람을 압도하는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어요.​” (『슈베르트와 나무』, 254쪽)

 

 두 사람의 나무 체험을 통해 김예지는 눈이 보이지 않아 걸림돌이라 여겨졌던 나무와 음악이 닮았다는 걸 발견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여정의 끝에 서면 나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나무가 더 좋아졌고 눈이 아닌 몸으로 나무를 만나고 싶어졌다. 한 번 쯤 눈을 감고 나무를 안아보고 나무 잎사귀를 만져보고 나무 기둥에 코를 대보고 싶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나무를 통해 느낀다. 봄을 품고 있을 나무를 상상하게 만든다. 『양과 강철의 숲』과 『슈베르트와 나무』은 묘하게 닮았다. 행간에 퍼지는 숲의 향기와 피아노 소리를 듣는 순간, 진짜 휴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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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런거리는 유산들
리디아 플렘 지음, 신성림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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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쁜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가족이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말도 맞지만 말이다. 어제는 작은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사촌 동생의 한의사 합격에 대한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친밀하게 교류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강한 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명절에 아버지 형제를 만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당연한 일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설이 다가오는 시기라 그런지 식탁 위에 놓인 사진을 들여다본다. 많지 않은 식구들, 봄날의 햇살 아래서 다들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를 보내고 찍은 사진이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껏 그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 안에 계속 존재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 쪽에서는 우리를 더는 생각할 수 없다. 대화는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이어진다. 그들에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40~41쪽)

 

 아버지를 기억할 물건은 거의 없다. 반대로 큰언니의 흔적이 남은 물건은 아주 많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큰언니와 함께 산다. 다만 곁에 없을 뿐이다. 사라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 다시는 만질 수 없는 것, 대화를 나룰 수 없는 것, 특유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 소소한 것들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건 때로 비통함을 몰고 온다. 곧 첫눈이 올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큰언니에게 전할 수 없다. 아니, 전할 수 있다. 눈이 온다는 걸 말하면 그것을 큰언니가 듣는다는 걸 믿으니까. 사촌동생의 한의사 합격 소식을 마음으로 전하면서 함께 기뻐한다.

 

 사라져서 곁에 없다는 것, 그것이 죽음의 실체일까. 죽음에 대해 말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주인을 잃고 남겨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하면 맞을까. 주기적으로 큰언니 집에서 일정의 시간을 보낸다. 그것엔 나를 기다리는 나무들이 있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윙윙 거리는 커다란 냉장고가 있다. 계절마다 이불장을 환기 키시고 이불을 꺼내 소독한다. 큰언니를 증명하는 신분증, 여권, 일기장, 영수증은 아직도 그곳에 남았다. 천천히 정리해도 괜찮다는 이유로, 미뤄둔 일이다. 유산을 정리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럴 때마다 리디아 플렘의 『수런거리는 유산들』 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책은 부모님의 유산으로 남겨진 집을 정리하면서 상실의 슬픔과 애도를 기록한 책이다.

 

 부모님의 공간은 그들의 부재를 증명한다. 병원에 계시다고 믿고 싶어도 현실은 거짓을 곧 드러낸다. 저자는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게 싫고 두렵다. 왜 자신이 그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화가 난다. 남겨진 자의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주저한다. 건강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잡다한 것들, 어머니가 소중하게 간직한 손수 만든 옷들, 외가와 자신이 태어났을 상황에 대한 기록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에게 보낸 750통의 편지. 저자의 부모는 젊은 시절 나치 수용소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잔인한 고통의 시절을 살아온 그들의 연애편지를 읽기가 겁나는 건 당연하다. 외동딸에게 그 경험을 들려주고 싶지 않다. 털끝만큼도 그 시절에 닿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한 번도 그 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영원히 봉인되어야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건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인 일인가. 사랑을 담아, 서로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워하는 편지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 사랑할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삶을 향한 의지와 자신을 향했던 사랑도 함께. 큰언니의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 나의 기분도 그러했다. 내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어느 해의 일기장을 펼쳤다가 낯익은 글씨체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행의 흔적이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큰언니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곳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함과 결핍함, 동요의 순간들과 함께. 상냥함이 깃든 슬픔이 퍼지는 것은 더 나중이다. 부드러운 아픔이 떠난 사람의 이미지를 둘러싼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119~120쪽)

 

 그러니 부모님의 죽음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의 공간과 물건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정리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당연한 게 아니다. 사라졌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는 크면 클수록 그들의 존재감도 커진다는 걸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애도의 기록이자 죽음에 대한 『수런거리는 유산들』이 증명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과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죽음은 그렇게 우리 삶에 존재한다. 동시에 부재한다. 며칠 후 명절에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또 대화를 통해 떠난 가족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움의 두께가 얼음처럼 단단해진다.

 

 무의식이 과연 죽음을 아는지, 단지 이별만 아는 건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영원히 헤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영원히라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사는 법을 배우려면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부어야 할까? 우리는 성인이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을까? 몸속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간직하는 나무들처럼?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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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1-26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17-01-30 11:58   좋아요 1 | URL
건강하고 행복한 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포근한 날들이어서 편하게 지낸 것 같아요.
항상 다정한 서니데이 님의 인사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