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첫날에는 꽃을 보고 왔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안개가 남은 산속 도로를 지나 작은 사찰에 오래된 왕벚꽃을 보고 왔다. 이른 시각에서 사진기를 챙겨온 이들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곳을 찾았을 때는 제법 넓은 곳이라 여겼는데 이번에 마주하니 아주 작고 아담한 사찰이었다. 만개한 꽃들은 꽃잎을 떨어뜨렸고 봄은 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햇살 대신 안개를 안은 꽃은 몽환적이었고 우리는 내년 봄을 기약했다.

 

 

 

 

 

 

 어제는 연두와 초록을 만났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작은 숲이 있다. 숲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울창하다고 말해도 좋을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나무들, 그들이 뿜어내는 초록와 연두는 눈이 부셨다. 아름다웠다.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책로에는 많은 이들이 걷고 있었다. 맨발로 빠르게 걷는 아주머니, 마스크를 쓰고 산길을 달리는 아저씨, 둘이서 셋이서 걷고 걷는 모습을 길이 다정하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오늘은 투표를 하고 왔다. 예배를 드리고 근처 투표소에 갔다. 6시 전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렸고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투표를 하기 전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될까. 알 수 없다. 결과는 9일이 되어야 알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만나게 될까. 우리는 조금 희망을 가져도 될까. 5월은 빠르게 흐른다. 벌써 4일이다. 징검다리 휴일이 있어서도 그렇고 다음 주에 잠깐 집을 비울 예정이라 그렇다. 5월에는 부모님과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 주말에는 부모님 추도 예배를 드릴 것이다. 바쁜 철이라고 매년 시간을 조율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될 것이고 밭에는 초록이 무성할 터. 5월을 위한 책을 고른다.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설레는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고 나희덕의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과 박영의 『위안의 서도  궁금하다. 5월의 시집으론 짙은 연두색 표지가 예쁜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가 좋겠다. 초록초록한 5월,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5월, 건강한 날들이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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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단둘이 한 방에 누워 나란히 잠을 잔 기억은 두 번뿐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기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고등학교 입시 후 예비소집일에 맞춰 도착한 낯선 도시. 엄마와 나는 자취집을 구해야 했고 지리를 몰라 학교 근처가 아닌 곳의 모텔방에서 잠을 잤다. 아침으로는 식당이 아닌 방에서 배달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7년 후 같은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졸업식이 있던 날, 사진을 몇 장 찍고 돼지갈비를 먹었다. 그 돼지갈비는 내가 엄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 드린 음식이었다. 그 저녁에는 엄마를 잠시 혼자 방에 남겨 두고 외출을 했다. 잠이 들기 전까지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엄마가 택시에 두고 내린 작은 가방에 무엇이 들었냐고 물었던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봄이 가까이 있던 계절이었다.

 

 이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의 주어는 엄마다. 어떤 이는 이 글이 기행문인 되기엔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소설로 삼기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자전소설쯤으로 타협을 보려 할까. 어떻게 불리더라도 모든 문장이 엄마를 중심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가 겪은 사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상상한 것들로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느낀 것들도 엄마를 이룬다. 그 전부가 엄마다. (157쪽)

 

 김탁환의 『엄마의 골목』을 읽기 시작한 날, 우연하게 친구와 엄마 이야기를 했다. 작년에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친구는 철쭉이 피는 걸 볼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울었다. 친구가 울음을 그쳤을 때 나는 『엄마의 골목』을 읽고 있다고, 엄마와 아들이 함께 걷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엄마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나만 엄마가 없는 게 아니라 이제 친구에게도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발을 맞추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일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진다. 어리석게도 그렇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도 많을 터.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철이 들고난 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길을 걷은 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만다. 엄마보다는 친구, 엄마보다는 연인, 엄마보다는 새로 이룬 일가가 먼저였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가 아들과 만나 자신의 삶의 터전인 진해를 걷는 엄마의 큰 기쁨이 곳곳에서 전해져 너무도 부러웠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연애 이야기, 노년에 배운 하모니카를 배우는 엄마의 연습 노트, 늦은 밤 집에 온 아들에게 차려주는 엄마의 밥, 아들이 쓴 소설을 읽고 감상을 들려주는 엄마.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모든 게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일상인지 말이다. 엄마의 일터, 엄마의 고향, 엄마의 추억이 있는 공간에 다시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일.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며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모르며 사는 우리들. 함께 산책하기.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아침에 짧은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꽃과 나무가 너무 예쁘다. 예전에는 몰랐던 기쁨이다. 어른들 말씀이 모든 게 꽃이라더니, 맞는 말이었다. 종종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겨울을 뚫고 나온 산나물과 들꽃을 보며 대견해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년 봄이면 다시 필 꽃이라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분들에게는 내년 봄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일흔이 넘은 삶을 알 수 없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뵙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도 제목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살아갈 삶인데도 그렇다. 여느 걸어본다 시리즈와 다르게 이 책에서는 그 길이 걷고 싶다거나 그곳에 가도 싶다는 생각이 아닌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한다.

 

 좋아하는 곳은 갈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준다. 같은 풍경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다른 일상이 되기도 한다. 어제 본 꽃들은 지고 새로운 꽃이 피는 걸 발견하는 나의 산책길처럼 말이다. 걸어본다 시리즈는 만날 때마다 걷는 즐거움이 자란다. 글을 따라 익숙한 공간에 머물고 낯선 도시를 탐색한다. 독일 뮌스터를 산책하며 쓴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엔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이라는 것은 버릇을 되풀이하며 기억을 재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뜻한’ 기억에 대한 소망은 그 안에서 부풀어오른다.’ 따뜻한 기억을 간직한 삶은 어떤 추위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진해 골목을 걷고 걸은 김탁환에게는 그런 기억이 있으니 앞으로 삶은 얼마나 충만할까. 엄마는 곁에 없지만 엄마 같은 고모와 언니들이 있다. 늦기 전에 함께 혼자 걷는 봄이 아닌 함께 걷는 봄으로 채워야지. 내가 모르는 엄마를 알고 있는 고모, 내가 모르는 오빠를 알고 있는 올케언니, 내가 모르는 꼬맹이 나를 알고 있는 언니와 봄을 걸어야지. 혼자 걷는 봄은 이제 안녕.

 

 엄마가 죽고 나면 이야기가 끝날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인 내가 엄마와의 이야기를 쓸 것이니까. 아들인 나까지 죽고 나면 이야기가 끝날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죽은 모자가 나눈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을 테니까. 모자의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마저 죽고 나면 이야기는 끝날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쓴 바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해도, 세상의 모든 엄마를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니까.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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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30 08: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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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딥 워크 - 강렬한 몰입, 최고의 성과
칼 뉴포트 지음, 김태훈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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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빠른 시간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를 원한다.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내고 완벽한 성과물을 얻을 수 있을까? 학창시절의 시험기간에 짧은 시간을 투자하고 좋은 성적을 내던 친구의 비결은 뭐였을까? 수많은 정보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 칼 뉴포트는 『딥 워크』가 답이라 말한다.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몰입과 집중으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도 그것이라 말한다. 과연, 딥 워크는 무엇일까? 우선 저자가 정의한 딥 워크(Deep work)는 인지활동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수행하는 직업적 활동을 말한다. 딥 워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며, 따라 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얼핏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칼 뉴포트는 딥 워크(심층적 작업)이라는 활동의 이미지가 아닌 구체적인 예를 들어 딥 워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명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심리학자 칼 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칼 융은 취히리 호숫가에 타워라는 이름의 돌집을 짓고 그 안에서 하루에 2시간씩 집필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2시간의 딥 워크로 논문과 저서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융처럼 저마다 딥 워크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지금 일하는 사무실이 집이, 그 어디에서라도 딥 워크를 할 수 있다는 게 칼 뉴포트의 주장이다.

 

 어떻게 하면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20세기 학자 칼 융이 아닌 현재 최고의 성과를 내는 애덤 그랜트 교수의 예를 보자. 그는 가을 학기에만 강의를 하고 나머지 봄과 여름에 연구에 집중한다. 연구에 집중할 때에도 메일에 답을 하지 않고 교수실에 있더라도 자리 비움으로 공지한다. 애덤 그랜드의 딥 워크는 집중 강도를 극대화하여 투입 시간당 성과를 극대화하는 생산성 법칙을 활용한 것이다.

 

 고품질 작업 성과 = 투입 시간 × 집중 강도

 

 분명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애덤 그랜드처럼 메일을 확인하지 않고 교수실의 방문자를 거절하며 연구하는 이는 많지 않다. 바로 우리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몰입을 위해 주변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일이 딥 워크의 시작인 것이다. 저자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SNS로 시작하는 현대인에게 분신 같은 소셜 미디어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인터넷과 SNS의 노예가 된 이들에게 과감하게 제안한다. 업무용 메일과 SNS의 사용으로 소비하는 시간을 몰입의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그것들의 이점에 대해 언급하겠지만 꼭 필요한 사용이 아닌 습관적으로 낭비하는 웹 쇼핑의 시간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메일과 문자 알림에 즉각 확인하고 있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는 다른 창을 열지 말고 문서만 열어놓고 가까운 곳에 휴대전화를 두면 안 되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적확한 사실을 놓친 것이다.

 

 중요한 일이 명확하면 중요치 않은 일도 명확해진다. (63쪽)

 

 책에서 저자가 많은 사례를 통해 언급하는 딥 워크를 위한 4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누구나 최고의 몰입 상태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 포인트인 4가지 원칙인 1 몰두하라, 2 무료함을 받아들여라, 3 소셜 미디어를 끊어라, 4 피상적 작업을 차단하라,를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몰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목표를 수립하고 목표를 위해 딥 워크에 들인 시간을 지표로 삼고 딥 워크에 들인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성과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자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딥 워크 외의 시간에 대한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쉽게 말해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놀 때도 열심히 놀라는 말이다. 두 번째 원칙인 무료함을 받아들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산만함을 극복하는 훈련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인터넷 구간과 오프라인 구간을 나눠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적절한 시간 안배로 일상에 쉽게 적용한다면 인터넷 없는 일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일상에 익숙해지면 세 번째 원칙은 소셜 미디어를 끊은 것도 어렵지 않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재미를 위한 인터넷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앞선 세 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마지막 피상적 작업을 차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종종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서 수행하는 부수적 작업인 피상적 작업을 왜 줄여야(새로운 가치창출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되니까. 그러므로 저자가 인용한 행동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위니프리드 갤러거의 나는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삶이기 때문이다. 란 말은 옳다.

 

 모두가 책에서 소개한 연구자, 철학자, 교수처럼 지식 노동자는 아니지만 집중력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의미 없이 허비한 시간을 정비하고 몰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의미로 가득 찬 삶을 만든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찾는 과정, 나에게 집중하는 삶, 그 역시 딥 워크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딥 워크는 따라 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딥워크 #몰입 #민음사 #칼 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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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린 곳
박혜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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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과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사람 중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 올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언제라도 돌아갈 사람을 둔 이가 조금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기다린다는 건 혼자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상대가 있으므로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돌아간다는 건 이곳이 아닌 그곳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말이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확신이 없는 이상 누군가는 기다리는 일도 기다리는 이에게 돌아가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박혜상의 소설집『그가 내린 곳』에서 마주한 삶이 그러했다. 안을 떠나 밖으로 간 사람들, 밖에서 다시 안으로 가는 사람들. 안과 밖을 헤매는 사람들. 의지와 상관없이 안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떠남을 선택했지만 길을 잃고 만 이들, 결국 안에 있는 이도 밖에 있는 이도 부유한 생을 이어가는 것이다.

 

 「Y의 바깥」에서 시인은 무명 소설가 Y의 집에서 그를 기다린다. 곧 철거될 집에서 불안과 외로움을 견디며 단체에서 지원하는 창작 지원금을 받고 외국에 간 Y가 보낸 메일을 읽는다. 하루하루 무너지는 일상이 아닌 평온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Y는 과연 돌아올까? 시인처럼 집 주인을 기다리는 이는「사랑의 생활」에도 등장한다. 광고를 보고 찾아온 케이의 집에 살기로 한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과외를 하는 외출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케이의 집에서 그를 기다린다. 머무는 자가 지키는 자가 되었다. 정원을 가꾸고 연애가 끝나고 돌아오는 케이를 맞이한다. Y와 시인처럼, 케이와 나는 가까운 사이지만 감정을 교류하지 못한다. 그저 맴돌 뿐이다.

 

 케이는 나와 비슷한 감수성을 지녔다. 뛰어난 감수성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케이는 인정하기 싫을 테지만, 케이와 나는 마음의 주파수, 즉 마음이 동하는 지점이 비슷하다. 선수를 빼앗긴 심정은 달리 말하면 사랑일 것이다. 케이를 향한 감정의 표현은 처음부터 차단되었다. 제대로 외톨이로 성장한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사랑하기 위하여, 외톨이는 사랑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산다. 내가 할 일은 케이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 나라는 존재는 케이의 반대말이 된다. 케이는 표출하고 나는 은폐한다. 케이는 떠나고 나는 남는다. 케이는 돌아오고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사랑의 생활」, 79쪽)

 

 표제작 「그가 내린 곳」은 제목부터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삶을 암시한다. ​주인공 윤은 아무 연락 없이 부산의 지인을 찾았다. 군대에서 사랑을 확인했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그저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러니까 윤을 떠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윤이 「Y의 바깥」의 Y란 점이다. 시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곳을 떠나 떠도는 것이다. 현실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타인의 삶을 보면서 윤은 자신이 인생을 생각한다. 윤의 목소리를 빌려 박혜상은 작가인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는 듯 보인다.

 

 인생이란 결국 누군가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윤은 생각했다. 그것이 ‘나’일 때는 오로지 이야기로 누군가의 삶을 지독하게 말해줄 때였다. 작가란 그런 것이라고 윤은 믿었다. 그러나 ‘나’의 삶을 살아주는 누군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내린 곳」, 124쪽)

 

 떠나는 자의 뒷모습 따위야말로 낭만적인 환상에 불과했다. 아마도 남은 사람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무엇이 그들을 불편하게 했는지 명확하게 깨달았을 테니까. 삶의 주인공은 떠돌이가 아니라 제 땅 제 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가 내린 곳」, 132쪽)

 

 Y와 케이가 자발적으로 삶을 회피하고 도피한 경우라면 정리해고로 어쩔 수 없이 회사와 동료, 그리고 가족에게서 멀어져 밖으로 밀려난 「그 사람의 죽음과 무관한 알리바이」의 그와 미국에서 사기를 당하고 돌아온 후 산책으로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낮달과 낙타」 의 남편은 권력과 돈의 피해자였다. 때문에 그들에게 집은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은 곳을 걷고 또 걷는 것이다.

 

 떠나는 삶의 상징인 Y는 「그 사람의 죽음과 무관한 알리바이」에도 등장해 그와 만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Y가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삶을 통해 다시 바깥에서 안으로 돌아가는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죽은 어머니가 남긴 집과 형이 있는 고향 바닷가의 마을로 돌아온 「봄눈」의 주인공은 Y인 것이다. 성공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은 그곳, 돌아갈 그곳은 어디일까. 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가 내린 곳, 그곳에...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바다가, 있다. 그렇다고 마을 앞에 놓인 바다를 출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또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거대한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배후처럼, 밟을 수 없는 그림자처럼, 발목이 묻혀 있는 그림자처럼, 바다가 있다.(「봄눈」,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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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린 곳
박혜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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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그녀의 첫 소설집을 천천히 읽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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