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여름이니까. 그래도 더위가 너무 빨리 온 것 같다. 바람이 그립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작년에 선풍기를 사용한 날이 많지 않다. 그러나 올해는 장담할 수 없다. 마트에서 할인하는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넣어두는 날이 많아졌고 국이나 찌개를 끓이지 않는다. 대충, 먹는다. 대충, 살고 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침 산책을 나가고 성경을 읽고 짧은 기도를 드린다. 나를 위한 기도, 병원에 있는 언니를 위한 기도, 누군가를 위한 기도. 기도가 참 좋다는 걸 새삼 깨달는다. 기도를 하는 동안 나는 단순해진다. 복잡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기도는 어렵다. 그래서 나의 기도는 아주 짧다. 책도 읽는다. 김영하를 만났고 젊은작가(강화길, 박민정, 최은영, 김금희, 백수린)의 소설을 읽는다.

 

 완벽한 여름을 위해 비가 필요하다. 도대체 비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주말에 많은 비를 만나고 싶다. 아주아주 많은 비. 빗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여름밤. 완벽한 여름, 쏟아지는 비, 김애란의 소설과 박준의 산문, 김엄지의 소설도 다시 읽어도 좋겠다. 그리고 황인찬의 시를 곁들이면 그럴듯한 여름이지 않을까.



 여름 연습

 

 

 무정한 포유동물과 무심한 조류들이 이곳에는 많았는데

 무료한 식물들을 손 내밀어 만져 보면

 왠지 소름이 돋았다

 

 나는 걸었다

 

 흐르는 땀을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새인지 벌레인지 우

는 소리를 듣지 못ㅎ는 채로 숲길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로

 

 이 여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격발되는 것이 있다면 격발되는 것이고 죽어 가는 것이

있다면 죽기로 된 것이다 총소리가 들릴 이유가 없는데 총

소리가 들리는 것은

 

 또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계속 걸었고 나는 계속 먹었고 나는 계속 쉬기만

했다 그러다 보면 총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는데 쓰러지는

것이 없었다

 

 무고한 벌레들이 내 눈으로 자꾸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면 좋을까 할 수 있다면 좋을까

 정말 그럴까

 

 인간으로 있는 것이 자주 겸연쩍었다

 

 무엇인가 자꾸 내 눈 밖으로 나오려 했는데 완전히 망가

지니 이 여름 속에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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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7-06-2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산책과 기도, 그냥 이 단어만으로도 청량감이 들어요.

자목련 2017-06-22 11:44   좋아요 0 | URL
여름이라는 계절의 옷을 입었기에, 더욱 그렇겠죠.
blanca 님, 더위와 친하게 지내는 여름이길 바라요^^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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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작가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건 독자인 내가 문학의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80~90년대생 작가들의 소설을 읽노라면 더욱 강하게 느낀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른 시선을 인정하면서도 온전히 이해하며 흡수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난 소설 중에서도 점점 더 끌리는 작가가 있는 반면 마침표를 찍는 작가도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수장작 임현의 「고두」는 읽으면 읽을수록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윤리적인 삶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윤리교사가 털어놓은 제자 연주와의 사건. 결국 윤리교사가 자신을 변론하는 이야기라고 할까. 그러니까 윤리교사가 뭐라고 하는지 끝까지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중적인 그의 태도는 비루하면서도 처참했다. 그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사과를 하는 듯 머리를 조아리고 있지만 사과하지 않는 가식적인 행동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담 없이 읽었지만 불편한 부담을 남긴 소설이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보렴.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태생적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다.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고두」, 36쪽


 강화길의 「호수 - 다른 사람」은 소설집 『괜찮은 사람』에서 이미 만났다. 사람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소설집에서 등장하는 인물처럼 강화길의 인물은 약간 모호하면서 답답한 면이 있다. 그것은 단점이면서도 장점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질문을 던지니까.「호수 - 다른 사람」은 서른두 살 민영과 진영의 이야기다. 친한 친구 사이였던 둘은 종종 아파트 근처 호수를 산책했다.  어느 날 호숫가에서 쓰러진 민영은 생사가 불투명하고 진영은 민영의 남자친구에게 집요함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민영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호수에 뭔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진영에게 함께 그곳에 가자고 부탁한다.

 

 나는 그와 이야기할 때면 몸의 어딘가에 난 깊고 붉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쓰리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묵직하게 몸을 짓누르는 느낌.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는, 나도 모르게 몸에 박힌 상처를 발견하는 기분. 그래서였다. 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털어놓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호수 - 다른 사람」, (180쪽)


 사고가 나기 전 민영의 몸에 상처와 민영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생각하면 범인은 그일지도 모른다. 아마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끝날 때까지 모호함으로 일관한다. 여성 혐오나, 데이트 폭력에 대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곳곳에 내재한 불안과 공포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강화길이 그려내는 사람을, 계속 읽고 싶은 이유다.


 이미 다정하면서도 담담한 위로로 잘 알려진 최은미의 소설은 여전했다.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그 여름」에서 이경과 수이는 마치 「쇼코의 미소」에서 쇼코와 나와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경과 수이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다. 소설은 오롯이 이경과 수이의 세계만 고수한다. 동성애를 포함한 전체 성소수자로 확대가 아닌 오직 이경과 수이만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껴앉을 수 있는 위로할 힘이 전해진다. 하여, 단단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최은영의 소설의 이미지로 고착될 수 있다.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그 여름」 (252~253쪽)


 처음 만나는 천희란의 소설은 편안했다. 효주와 선생님이 서로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라는 형식으로 성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접근이 편안했다는 것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글, 편지가 주는 특별함이라고 할까.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선생님께 그 상황을 듣고자 하는 효주의 편지는 간절함이 묻어 있다. 우연하게 사건을 목격하고 결국 효주의 후견인 된 선생님은 객관적인 사실을 전하려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편지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여자였다고 고백할 때 감춰진 진실은 드러난다. 그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딸을 인정해주는 아버지가 훗날 효주를 대하는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다. 식물을 기르는 과정에서 비유적으로 정성스럽게 들려주는 말, 그것은 다양성과 변화에 대한 존중이었다. 어쩌면 효주는 이미 자신의 어머니와 선생님의 사랑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을, 자신의 환경과 주고받는 영향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절대로 홀로 존재할 수 없어서,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하면, 그 변화가 세상의 다른 것들을 바꾸기도 한다고 하셨어요.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297쪽,)


 누군가 언급했듯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를 포함 현재 한국 문학은 여성 작가의 활동이 대단하다. 그동안 소설에서 일부만 다루었던 여성의 삶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와 진화의 힘으로 전복시키고 일으켜 세우는 문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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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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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강화길의 소설이 좋았다. 천희란, 최은영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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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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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수상작품집. 수상작 박민정과 김엄지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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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에겐 나무가 꽃 필요해. 잘 살기 위해서. 흔들리

는 나뭇잎을 보며 그 소리를 듣는 일이. 어떤 사람에겐 남

의 행복이, 또 남의 고통이 필요해. 어떤 가치 없고 무고한

타인의 죽음이 필요하고. 흔들리는 나무 밑에서 그런 비극

을 떠올리며 어쨌든 좀 슬픈 것 같은 순간이 필요해. ‘어떤

사람은 그냥 걷다가도 죽는대. 사랑하다 죽고. 사랑을 나누

다가 기쁨이 넘쳐서 죽고. 산에서 죽고. 바다를 건너다 죽는

대.’어떤 사람에겐 행복이 필요해. 꼭 나무를 보듯 불행이

필요하고. 어쨌든 어떤 믿음, 소망, 관용, 이런저런 이야기

가 필요해.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신, 옆 사람, 어떤 사람

그것도 아니면 크든 작든 사람을 닮은 그 무엇의 기쁨과 슬

픔이. 우리에겐 우리와 비슷한 형상에 대한 사랑이 필요해.

어떤 나쁜 마음이라도. 잘 살기 위해서. 조각난 팔과 다리.

터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대한 말이 꼭 필요해. (「어떤」, 전문)

 

 

 학창시절에 시를 암송하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이 결정되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기에 가능했을 시간.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책도 읽었고, 요즘 아이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시도 나오고 소설도 나오고. 그건 좋을 걸까. 좋은 시가 많았던 시집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그러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그러나 강한 기운이 전해지는 시집. 김상혁의 다른 시집은 읽어보지 않았으니 그의 시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좋아하는 시를 반복해서 읽는 것, 기록하는 것, 기억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어떤」이란 시가 참 좋아서, 계속해서 읽고 있다.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말하듯 말이다. ‘어떤 사람’이란 말 대신 누군가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기도 한다. 아니, 내 이름을 넣는다. 아침마다 만나는 나무의 놀라운 변화를 생각한다. 계절을 오롯이 껴앉는 나무들.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나에게도 병원이 필요하지만 나 같은 게 병원에 와도 되는 걸까, 이런 슬픔에도 치료가 필요할까, 동그랗게 둘러앉았는데 나는 고개도 못 들고 (「슬픔의 왕」, 중에서)

 

 

 너무 슬플 땐 무서운 게 없더라네요 아무래도 내겐 공포를 지나질 수 있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무언가를 말해도 되는 걸까, 나의 멀쩡한 집과 가족을 어떻게 설명할까 (「슬픔의 왕」, 중에서)

 

 

 슬픔이 넘치는 세상, 절망이 차오르는 세상에 이런 시는 어떤 위로가 될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처럼 슬픔에 무뎌진 삶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어떤 시는 그렇다. 시를 읽노라면 눈물이 나고, 시를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언제부턴가 여름이란 단어를 사랑하고 있는 걸 확인한다. 여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말이다. 무성한 풀들, 생명력 넘치는 식물들의 천국 같은 계절. 그 안에서 나도 그들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자란다. 그 여름이 내가 알지 못하는 여름일지라도.


 그렇지만 네가 밟은 것, 밟아서 더 깨뜨린 것, 더 깨뜨려서 흩어진 것, 그런 지겨운 것이 죽은 새, 웅덩이, 부서진 울타리, 뒹구는 손을 덮어준다. 풀과 꿈을 키워준다. 다가올 여름과 지나간 여름 사이 슬픔이 있다면 너는 오늘과 슬픔 사이에 있고 싶다. ( 「너의 여름 속을 걷는 사람에게」, 중에서)

 

 

 저녁은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지치기도 쉬운 시간이구. 하지만 제 손으로 머리칼을 털며 고갤 숙이고 있는 장면만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말도 가능하다. 내가 매일 현관으로 쓰러지며 쏟은 별과 모래를 아침마다 네가 예쁘게 비질한다고. (「가정」, 중에서) 

 

 

 아침을 기대할 수 있는 저녁,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면서 만남을 기다리는 시간. 저녁이 없는 삶이 아니라 저녁을 꿈꾸는 작고 소박한 시를 읽는다. 시인이 남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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