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환대하는 일은 온전한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정보공개가 전제가 필요하다. 그 과정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등장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통과한다는 건 결국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생각,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들이 모두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김초엽의 단편집 『행성어 서점』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김초엽의 짧은 소설 14개는 그런 세상을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 혹은 현실에서도 이미 누군가는 경험했을지 모를 일상,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상상 속 우주의 이야기로 독자를 이끈다. 기이하면서도 낯선 설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김초엽이 말하고자 하는 건 연대와 환대라는 걸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든다. 거기다 소설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의 역할도 훌륭하다. 이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다 그림을 보면 훨씬 이해가 쉽다.


현실이 아닌 공상의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소설 속 행성어 서점이 궁금하고, 이끼 같은 먼지 뭉치인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곁에 두고 싶고 미래에는 버섯과 공생하는 인간을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뿐인가. 내가 잘 안다고 믿는 이가 혹시 외계의 다른 행성에서 온 우주인은 아닐까 상상하게 되고 연구를 목적으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공권력을 의심한다. 말 그대로 짧은 소설인데도 잘 짜인 스토리에 감탄한다.


최고의 건축가였던 「선인장 끌어안기」의 ‘파히라’는 수술 후유증으로 몸에 닿는 모든 것에 고통을 느끼는 접촉 증후군을 앓고 있다. 모든 물체와 접촉을 피하는 ‘진공의 집’을 설계해 그곳에 선인장과 살고 있다. 그저 닿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선인장이라니. 보조 로봇인 ‘나’는 그가 지난 로봇에게 보인 괴팍한 행동의 원인을 찾는 지시를 받았다. 외부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그와 같은 접촉 증후군이 있는 아이 소영과 함께 지냈던 시간, 고통과 통증을 이해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소영에게 배웠다. 자신과 파히리가 선인장 같다고 말한 소영. 다른 병으로 죽음을 앞둔 소영이 파히라를 안아봐도 되냐는 부분에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을 알면서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던 소영.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선인장 끌어안기」, 30쪽)


우리가 끌어안는 선인장은 무엇일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의 고통까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 가운데 진정한 그것은 얼마나 될까. 파히라와 소영은 서로가 같았고 같았기에 사랑하면서도 가까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을 꺼려 한다. 아니,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건 완곡한 표현일 뿐, 김초엽이 전하고자 하는 건 약자와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라는 걸 느낀다.


같은 지구에 사는 존재에게도 그런 대우를 하는 지구인이 우주에서 온 생명체에게는 어떻게 대할까. 사고로 3년 동안 혼수상태였던 「우리 집 코코」속 ‘나’는 그 사이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처음 만났다.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변화시킨 것이다. 어쩌면 미래엔 인간보다는 다른 종의 무언가가 인간을 더 따뜻하게 포옹하고 격려하는 위대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예전보다 행복해요. 이 작은 친구들이 우리의 옆에 머물러주기에, 인류는 더 이상 우주의 외로운 먼지 조각들이 아니에요. (「우리 집 코코」, 149쪽)


그런 미래에는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처럼 행성과 행성을 오가며 여행하거나 정착하는 이들도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속 다른 세계에서 같은 얼굴로 살아가는 존재도 많을 것이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이가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미래의 지구는 수많은 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도 지구를 떠나지 않고 다른 행성에서 온 누군가는 정착하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는 그런 미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포항에서 강릉의 연구소로 가는 중 ‘다현’은 폐업 직전의 휴게소에서 식당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초미각자’ 주인과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맛에 대한 감각이 둔한 다현은 뛰어난 미각 기능으로 음식을 즐기기 어렵다는 주인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쨌든 이곳이 다른 미각을 가진 거주자들에게 더 환대를 베풀 수 있는 행성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206쪽)


소설을 읽으면서 감각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짜고 맵고 쓴맛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다르게 느끼는 이도 있을 거라는걸. 그런 의미로 미래의 지구에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나와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태도의 삶이어야 한다. 중대하고 위중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공존하며 연대하는 삶 말이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변형되었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가장자리 너머」, 215쪽)처럼 삶은 변화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다름을 환대하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존의 삶을. 


김초엽의 소설은 언제나 그런 미래를 지향한다. 다가올 미래가 소설 속 모습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우리에겐 김초엽이 소설에서 보여준 연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힘이 필요하다. 낯선 생명체와 이웃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로의 왕래를 통해 더 넓은 우주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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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6 17: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초엽작가가 다름에 대해 참 잘 다루는 거 같아요. 본인의 다름에 대한 철학도 화고한 것 같고. 가벼운듯 가볍지 않은 글들. 자목련님 글에 공감합니다. 이 젊은 작가 저도 응원합니다. ~

자목련 2022-01-07 10:24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거겠지요.
미니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온라인 서점에서 해마다 나의 책 구매 이력을 알려준다. 이런 책을 샀구나 싶고, 이런 책을 샀나(?) 싶다. 책과 떨어질 수 없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내가 모르는 책은 무진장 많다. 일부러 신간 알림을 예약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책들, 때로는 그래서 나만 모르고 지나치는 책들이 많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만 모르고 지나쳐도 사실 무방하다. 하지만 그래도 책 욕심은 그게 아닌지라. 언젠가는 읽겠지, 아니 읽지 않더라도 지금은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렇게 또 몇 권의 책을 들인다. 연말이니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게 하지 않았으니까. 이런저런 부침에도 나름 잘 견디고 버티었으니까. 아, 구차한 변명이 길어진다.


김초엽의 짧은 소설(지난 번 단편집은 읽어냐고 묻지는 말길) 『행성어 서점』 은 평이 다 좋아서 덜컥 구매. 책 제목에 서점이 들어갔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까. 최승자 시인의 첫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처음 나왔을 때 몰랐으니 이제라도 읽어야지 하는 타당한 이유로, 카렐 차페크의 장편소설 『평범한 인생』은 문학의 고수 이웃님이 추천하니 그 세계를 경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겨우 세 권이지만 언제 읽을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책은 좋고 나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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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30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모르고 지나쳐도 조금 늦어도 상관없는데 책 욕심은 그게 아니죠^^

자목련 2021-12-31 09:21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책은 왜 이리 우리를 유혹하는 걸까요 ㅎ
그레이스 님, 건강하고 기쁜 새해 시작하세요^^

잠자냥 2021-12-30 11: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지 시집을 배경으로 하니 앞의 책탑이 더 예뻐보여요!

자목련 2021-12-31 09:20   좋아요 3 | URL
이런 댓글 기대하고 사진 찍었습니다. ㅎㅎ
잠자냥 님이 소개해주신 좋은 책과 귀한 글로 풍요로운 시간이 많았습니다.
내년에도 멋진 글 많이 써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cott 2021-12-30 1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문지 시집 제목을 이어보니
한 편의 시가 되네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물속의 피아노
단지 조금 이상한
불가능한 종이 역사
슬픔 치약 거울크림 ...
자목련님의 2021년 독서 이력은
반짝 반짝 빛나는 ^ㅅ^

자목련 2021-12-31 09:18   좋아요 3 | URL
앗, 그런 센스까지!!
올해 좋은 음악을 많이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쁨과 충만이 가득한 새해 맞으시길 바라요^^

프레이야 2021-12-30 1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겹쳐서 더 반가워요. 책은 늘 좋지요. 이틀 알차고 따스하게요^^

자목련 2021-12-31 09:17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책은 늘 좋아요!
프레이야 님, 따뜻하고 건강한 새해 맞으시길 바라요^^

오거서 2021-12-30 12: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은 아무튼 용례 중 최고인 것 같아요. ^^

자목련 2021-12-31 09:17   좋아요 3 | URL
우와, 정말요?
오거서 님, 연말 잘 보내시고 즐거운 새해 이어가세요^^

mini74 2021-12-30 1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책은 좋고 나는 즐겁다 ! 자목련님 이 문장 참 좋아요. 책도 즐거워해주면 좋겠어요 ㅎㅎ

자목련 2021-12-31 09:16   좋아요 3 | URL
책도 그렇겠죠?
미니 님, 책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기쁨으로 가득한 새해 맞이하길 바라요~~

coolcat329 2021-12-30 16: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책탑 조차도 어딘지 단정한 느낌입니다.

자목련 2021-12-31 09:15   좋아요 3 | URL
음, 사진은 위장이라는 거 아시지요? ㅎ
그래도 단정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쿨캣 님, 향기로운 날들 이어가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1-12-31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있으면 언젠가 읽겠지요 2021년에 샀지만 2022년에 만날 책이군요 그때 만날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겠습니다

자목련 님 2021년 마지막 날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12-31 09:15   좋아요 3 | URL
언젠가 꼭 읽어야 하는데, 자꾸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ㅎ
희선 님, 항상 감사드리며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희선 2022-01-02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새해네요 첫날이 지나고 둘째날이 왔어요 자목련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하는 해이기를 바랍니다


희선

자목련 2022-01-02 14:55   좋아요 2 | URL
희선 님, 새해 인사 감사해요. 올해도 잘 부탁드리며 많이 웃는 한해 시작하시길 바라요^^
 

매서운 추위를 뚫고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량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러했다. 평소의 주일과 다름없이 제 시각에 나와 차량 봉사를 해주시는 분을 기다렸다. 추우면 얼마나 춥겠나 싶었는데, 어이쿠 정말 추웠다. 추위에 제법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상한 건 항상 오시는 시각이 지나도 차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다 연락을 드렸더니 시동을 걸고 계시다고 하셨다. 그래서 금방 오시겠지 싶어 아파트 입구 계단에서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뒹구는 낙엽은 소리까지 동반하며 바람의 세기를 전해주었다. 그 와중에 만난 고양이. 평온해 보였는데 내 착각일까. 아무튼 오늘따라 장갑도 끼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귀까지 아팠다.





드디어 도착한 차에 올라타서 어젯밤 추위에 방전이 되었다며 미안해하셨다. 그분은 어젯밤 새벽 송을 돌았다고 하니 피곤함도 크셨을 텐데. 누군가의 봉사의 마음을 받아 나는 안전하고 따뜻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쌓일 것 같지는 않았고 바람 따라 어디론가 착지할 곳을 찾아 달아나는 눈처럼 보였다.


성탄 예배에는 귀여운 아이들의 율동이 있었다. 예전처럼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일까. 사실 이 시골에는 아이들이 귀하다. 단상에 올라온 네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율동을 하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항상 유아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아이들이라 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모두 키가 훌쩍 자라있었다. 건강하게 크는 아이들이 보배라는 걸 조금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작은 선물을 받고 과자로 채워진 선물 가방을 끌다시피 하며 내려오는 아이들은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매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지만 작년과 올해는 더욱 남다르게 느껴진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적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축복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말이 참 따뜻하고 포근했다. 친구와 나누는 크리스마스 인사도 마찬가지다. 뜸했던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인사를 건넬 수 있고 그동안의 사정도 들을 수 있으니까. 친구 하나는 오늘 생일이다. 음력으로 챙기는데 올해는 예수님과 생일이 같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락을 취하면서 모임의 언니의 사고 소식도 들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다고 했다. 많이 다친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하루를 맞는 일도 감사하고 매년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모두 서로에게 감사를 전하고 축복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냈으면 한다. 건강한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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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2-2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추운가요?
저는 춥기도 하건와 이틀 연속으로 교회를 갈수있을까 싶어
오늘은 인터넷으로 드리고 내일은 교회를 나서 볼까 생각중이었는데
어이쿠 하셨다니 내일도 인터넷으로 드려야하나 고민되네요.ㅋ
중국 어디는 영하 48도라는군요. ㅠ

자목련 2021-12-27 10:45   좋아요 1 | URL
어제, 주일은 성탄절보다는 덜 추웠어요.
말씀처럼 이틀 연속으로 예배를 드리니 주일인데 주일 같지 않았다고 할까요. ㅎ
오후부터는 날이 풀린다고 하니 다행인가 싶어요.
스텔라 님, 건강한 한 주 시작하세요^^

프레이야 2021-12-25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은 더 추워진다고 하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자목련 2021-12-27 10:45   좋아요 2 | URL
겨울은 추워야하는데, 올해는 유독 추위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프레이야 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2021-12-26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가 지고 눈이 날릴 때 밖에 나갔다 오다가 길고양이 만났어요 길고양이가 따듯한 곳을 찾아갔기를 바랐습니다 여전히 추운 날이네요 자목련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자목련 2021-12-27 10:46   좋아요 2 | URL
희선 님도 길냥이를 만나셨군요. 저 고양이는 아파트에 어딘가에 집이 있는 듯해요.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항상 받기만하네요.
따뜻한 월요일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2-27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 이 케잌 좋아하는데...^^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복된 새해 맞이하세요~

자목련 2021-12-28 08:59   좋아요 1 | URL
심하게 달지 않고 맛난 케익지요.
그레이스 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소설의 세계는 방대하다. 나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 소설 읽기는 그 세계로의 초대에 응하고 발을 내미는 일이다. 한국소설과 마찬가지로 몇 권의 소설을 꼽는다. 올해에 출판된 책 가운데 좋았던 인상적이었던 책이다. 잘 모르는 작가, 제목만 익숙했던 작가, 처음 만났지만 반해버린 작가. 먼저 고전이다. 읽었지만 다시 읽으니 새로운 단편, 아니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라고 할까.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집 『가든 파티』,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 『자고 싶다』, 넬라 라슨의 『패싱』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하게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여성의 삶, 차별과 혐오, 인간 존엄성, 마음에 대하여.













그런가 하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들, 그러니까 사랑을 말하는 소설들. 단순하게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인간 전체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은 인간과 로봇의 우정을 그렸지만 그 안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다. 먼 미래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윌리엄 트레버의 『펠리시아의 여정』은 추리와 스릴러를 겸비한 소설이다. 소설 속 펠리시아는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다. 가장 기본적인 사랑, 배려, 존중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프랑수와즈 사강의 『마음의 심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이미지, 인간의 욕구,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다. 미완이라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려보는 즐거움이 있다. 세 편의 장편소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문장, 섬세한 묘사도 탁월하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클라라와 태양』 중에서)












공교롭게도 나머지 소설들은 모두 한 출판사의 책이다. 세 권의 공통점은 성장소설이라는 점도 있다. 이 출판사를 내가 좋아하는 걸까. 단정 짓기는 어렵다. 아무튼 세 권의 소설이 모두 좋았다.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단어를 수집에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다. 단어, 내가 사용하는 말들의 역사라고 할까. 그 안에서 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이 아름답다. 테디 웨인의 『아파트먼트』는 반대로 두 남자의 이야기다.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기에 충분한, 한 시절을 통과하는 수많은 질문과 추억. 가장 최근에 읽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이 단어들 말이에요.” 트렁크 속으로 손을 뻗어 쪽지를 한 움큼 꺼내며 내가 말했다. “이것들은 숨어들려고 나한테 온 게 아니었어요. 이 단어들은 바람을 쐬어야 돼요. 읽히고, 공유되고, 이해되어야 해요. 어쩌면 거부당할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주어져야 된다고요. 스크립토리엄에 있는 다른 단어들처럼요.” (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중에서)


‘사랑’만큼 이형異形이 많은 단어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그 단어가 가슴속 깊이 울리는 걸 느꼈고, 그것이 내가 지금껏 듣거나 말해본 그 말의 어떤 이형과도 다른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중에서)











소설을 읽는 일은 다른 삶을 경험하고 내면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단순한 재미와 감동을 넘어 그 이상의 사유를 안겨준다. 인간의 심연에 닿을 수 없기에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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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2-21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말에는 참 이런 페이퍼 읽는 재미가 커요. 그쵸? ㅎㅎ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보관함에 담아두기만 했는데, 내년에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1-12-22 10:1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좋은 책들이 너무 많구나 싶어요.
잠자냥 님의 페이퍼 보면 더욱 그렇고요. <평범한 인생>도 리스트에 담겼어요. ㅎ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잠자냥 님도 좋아할 것 같은데, 그랬으면 좋겠어요^^

scott 2021-12-21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말씀처럼 소설 속 타인의 삶을 통해 내면을 성장 시켜나가고 살아 보지 못한 삶을 공감해 나가는 재미와 감동을!!
올려주신 페이퍼 속 소설
저도 🖐전부 다 읽었요 ! 뿌듯 ^^

자목련 2021-12-22 10:14   좋아요 1 | URL
스콧 님과 함께 읽은 시간이네요. 어쩜 같은 시간 같은 책을 펼쳤을지도 몰라요. ㅎ

새파랑 2021-12-21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그래도 자목련님이 선정한 아홉권 중 네권(가든파티, 클라라, 펠리시아, 사강)이나 읽었네요 ㅋ 완전 뿌듯함~!! 다 제가 좋게 읽은 작품이었어요 ^^
다른 작품도 좋다고 하시니 찾아봐야겠군요~!!

자목련 2021-12-22 10:15   좋아요 1 | URL
즐겁게 신나게 책을 읽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아요!!
다른 책들도 새파랑 님께 좋은 책이길 바라요^^

mini74 2021-12-21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세 권 ~ 자목련님과 세 권의 교집합이 있다니 넘 좋아요 *^^*

자목련 2021-12-22 10:17   좋아요 1 | URL
교집합에 속하는 책들이 있어 반갑고 좋습니다.
내년에도 겹치는 책이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즐거운 책읽기 이어가요, 우리!

책읽는나무 2021-12-21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끄럽게도 저는 한 권도 읽질 못했습니다ㅜㅜ
편독이 심하다는 걸 또 깊이 깨닫는 시간입니다^^
눈에 익은 제목들도 보이고, 처음 보는 제목들도 보이네요. 자목련님은 한국소설 매니아라고 여겼는데 꾸준히 외국소설도 많이 읽으셨군요?^^ 역시 소설에 대한 공평한 사랑꾼이셔요ㅋㅋ
내년에도 더 좋은 소설들 많이 듣고,읽고 싶네요^^

자목련 2021-12-22 10:18   좋아요 1 | URL
에구, 부끄러운 일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모르는 책들을 많이 읽으셨겠지 싶어요.
세상에 책은 많고 책을 선택하는 마음도 다르고 호불호도 다르니까요.
동지,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coolcat329 2021-12-21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쩜 단 한 권도 읽은게 없어요.ㅠㅠ

자목련 2021-12-22 10:20   좋아요 0 | URL
없을 수도 있지요. ㅎ
다양한 책들과 만나는 기쁨이 이 즈음 페이퍼의 즐거움 아닐까요?

희선 2021-12-22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두권밖에 못 봤네요 소설을 좋아하는데 서양이랄까 영미 소설은 잘 안 보는군요 어쩌다 한번 보는 듯합니다 어디에 살든 사람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1-12-22 10:21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시대가 다르고 공간이 달라도 사람 사는 건 비슷한 것 같아요.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차갑지만 맑은 공기가 흐른다. 따뜻함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 계절은 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걷잡을 수 없는 팬데믹의 혹독한 겨울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훗날 이 잔인함은 한 편의 영화가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줄 게 분명하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영화는 인간의 복잡한 심연을 다룬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나서 꺼내는 이야기는 인간의 그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 미술, 공간, 의상, 말 그대로 영화 속 모든 것이 우리를 자극한다.


배혜경이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가 바로 그렇다. 수필가로 탄탄한 내공을 지닌 저자가 분류한 주제에 따라 영화를 읽는다. 아련한 기억과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자연스럽게 연결된 75편의 영화를 통해 그 안의 삶과 우리의 그것을 비춘다. 어떤 영화는 너무도 똑같이 포개어지고 어떤 영화는 어긋나고 어떤 영화는 전혀 다른 삶을 비춘다. 영화를 보던 순간의 기억,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야기는 마치 그 영화를 함께 보는 듯한 착각에 빠드린다. 나도 좋았던 영화라서,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 부모님 몰래 늦은 시각까지 TV를 보던 주말, 낡은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함께 이제는 어디서나 너무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라서 영화만의 고유성을 찾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서 조금 쓸쓸해졌다. 연인과 처음 갔던 영화관에서의 떨림이나 혼자 영화관을 찾았던 그때의 절망이 떠오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영화는 기억 속 저편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75편의 영화 가운데 내가 본 영화는 너무 적어서 손에 꼽을 수도 없다. 그랬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화를 메모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무 유명한 영화는 그런 이유로 천천히 보고 싶어 미루고 정작 간절히 원했던 영화는 내가 사는 소읍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아 놓치고 나중엔 기억에서 사라진다. 영화 OST로 내게 남은 영화, 책과 영화로 모두 본 영화, 나만의 영화에 속하는 영화를 목록에서 발견하는 일은 괜히 뿌듯하다. 그러니까 영화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건다. 팬데믹의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일까.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삶,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사랑! 시간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나면 기쁘고 행복한 추억만 남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대로 그러기를 누구나 바랄 것이다. 자연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지고 쉬지 않고 흘러간다. 시간의 잔혹함은 그만 미루어 두고 마음의 시간에 집중하자. 우리에게 남은 시간, 남은 사랑이 지리멸렬하지 않도록. (53쪽)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영화 이야기다. 그럼에도 <밀양>과 <파주>는 손에 데일 듯 뜨겁게 다가온다. <밀양>의 원작을 읽어 그런 걸까. 아니면 내게 각인된 영화 속 한 장면 때문일까. 인상적인 장면 때문이라면 <흐르는 강물처럼>도 빼놓을 수 없다. 어쩌다 보니 세 영화 모두 신에 대한 부분이 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생각하지 못한 접점이다.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는 영역이다. 신에 대한 나의 생각도 일정 부분은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야 할 것 같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인연과 관습, 정석이라고 믿었던 어떤 조류이기도 하다. 우리는 강물에 모든 걸 맡기고 함구한다. 그리고 흘려보낸다. (104쪽)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대한 글로 좋았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더 객관적으로 영화를 생각할 수 있었고 보고 싶어졌다. 고흐에 대한 부분, 그러니까 영화로 만날 수 있는 고흐가 많다는 걸 몰랐기에 궁금해졌다. 책에 대한 주제로 소개한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말하는 영화, 그 영화를 말하는 글이니까.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유독 내게 스며든 영화는 모두 일본 영화였다. 평범한 일생이지만 그 안의 모든 것들은 평범하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와 소란한 마음속에서 진정한 고요를 찾기를 바라는 <안경>은 포스터도 너무 재밌다. 두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애틋하고 무심하면서도 다정했다.


이들에겐 말이 필요 없다. 긴 대사가 필요 없는 이 영화는 말치레와 소음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사람과 고요한 내면으로 돌아가게 한다. 나를 찾으라는 게 아니라 나를 그냥 놓아 버려도 좋다. (296쪽)


영화를 읽은 일은 책을 읽는 일과 다르다. 영화를 읽는 일은 입체적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건 통찰의 힘이 필요하고 저자는 그런 능력이 뛰어나다. 영화라는 매개로 삶을 배려하고 타인을 관찰하고 진솔한 사유를 건넨다. 내가 그 모든 걸 온전히 흡수할 수 없기에 안타깝지만 공감할 수 있기에 기쁘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일도 책을 읽는 것도 그런 일이 아닌가.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좋은 날, 영화를 찾아 채널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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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18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목련님처럼 [버닝] 글이 유난히 더욱 좋았어요^^ 아무래도 보았던 영화에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나봐요^^

자목련 2021-12-20 09:01   좋아요 0 | URL
잊고 있던 영화가 다시 막 보고 싶어졌어요. ㅎ
얄라 님, 따뜻한 한 주 시작하세요^^

프레이야 2021-12-19 1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양초 옆 책 사진이 참 따스해 데려갑니다^^
몸도 마음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불빛 잃지 않고 의연하고 명랑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고마워 영화,에도 그러셨는데 제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조근조근 읽어 주셔서 마음 따스해져요. 고맙습니다.

자목련 2021-12-20 09:03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 님의 깊은 통찰과 사유에 놀랍고 감탄했습니다.
저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는 것도 좋았고요.
쌀쌀한 기운이 감돌지만 그래도 포근한 하루 이어가세요^^

희선 2021-12-20 0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지금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오겠네요 소설은 조금 나오기도 했더군요 나중에 지금을 보고 그때는 그랬지 하면 좋을 텐데, 그 나중이 언제 올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보면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기도 하겠습니다

자목련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12-20 09:04   좋아요 1 | URL
현재의 삶이 영화가 되는구나 싶었어요.
지금의 이야기가 따뜻한 결말로 이어지는그런 영화이면 좋게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선 님 건강하고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