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는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이 끝날 때까지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수술이 다 끝난 후에야 연락을 했다. 그것도 퇴원을 바로 앞두고 말이다. 퇴원 후 집에 왔을 때에도 암이란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큰언니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화학요법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큰언니가 치료를 받는 동안 곁에서 식사를 책임지고 간병 아닌 간병을 했다. 항상 큰언니의 돌봄을 받아왔던 내가 큰언니의 보호자가 된 것이다. 큰언니의 유품은 온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정리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故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는 일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도 그랬다. 메모 하나하나를 따라 읽는다는 건 김진영의 마지막을 향해 나가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가 베란다에서 듣는 피아노 소리, 바라보는 바깥의 풍경, 소란스러운 삶의 움직임, 가만히 벤치에 앉아 마음을 다스렸을 시간, 내리는 비를 보면서 든 생각. 그 모든 것이 요란하지 않았고 단정했고 명확했다. 살 만큼 살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살 만큼이란 시간은 얼마를 의미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내게 죽음은 저 멀리 있는 불확실한 명제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고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생의 유한함을 인정하는데 조금 평안해졌기 때문이다. 언제 내게 도래할지 모르는 그 마지막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바람인 것이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234개의 짧은 글은 삶의 순간에 충실한 태도였고 의지였다. 분명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을 텐데, 그 어떤 징후도 찾을 수 없고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슬픔이 몰려왔다. 큰언니가 남긴 글도 그랬다. 두려운 감정은 없었고 담담하게 마지막 정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전했고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따르려 노력했다. 어쩌면 나는 김진영의 글을 읽으면서 여전히 그리운 큰언니를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년이란 시간은 길 수도 있고 짧은 수도 있다. 애도의 시간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세게, 조금 약하게 그 강도를 오르내릴 뿐이다. 문득 한 문장, 혹은 두 문장, 그리고 조금 더 길어진 글을 쓰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증이 커졌다. 그러다 이내 사라졌다. 나는 알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알 수 없고 그것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글에 담긴 감정을 헤아리려 애쓰지 않았다. 편안했을 거라 단단했을 거라 짐작한다.
비 오는 날 세상은 깊은 사색에 젖는다. 그럴 때 나는 세상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지도 안다. (75. 92쪽)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122. 145쪽)
어떤 시간은 아주 천천히 오고 어떤 시간은 너무 빨리 온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이어지는 의사와의 면담, 가족과 지인들의 연락. 그 모든 것이 특정한 시간에 다 도착했을 것이다. 김진영은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잡은 것 같다. 그런 평정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도 칼럼을 연재하고 책을 읽고 철학자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 마르셀 프루스트, 니체, 그들을 언급하며 사유하는 시간을 잊지 않았다. 읽다 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가끔씩 펼쳐보는『애도 일기』와 나는 조금 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아침의 피아노』도 그러할 것이다.
모든 것이 꿈같다. 그런데 현실이다. 현실이란 깨지 않는 꿈인 걸까. 그 사이에 지금 나는 있다. (24. 34쪽)
때와 시간은 네가 알 바 아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그 열림 앞에서 네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105. 125쪽)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여전히 나는 사랑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많이 …… 이것만이 사실이다. (203. 243쪽)
삶은 유한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것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해 깊은 사유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묻는다. 생의 마지막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에 감사하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김진영의 말처럼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큰언니의 마지막, 우리도 그러했다. 수많은 말들이 떠다녔지만 선택된 말은 사랑이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사랑에 포위됐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진부하고 평범한 말, 우리가 만든 거룩하고 고귀한 말. 아픔이 있고 위로가 필요한 곳에 사랑을 전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조용한 손길에 담긴 사랑.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말고 잡고 있어야 하는 사랑.
우리에겐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생, 사랑했으니 후회 없는 생을 살라고 그는 말하는 듯하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사랑을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김진영의 바람처럼 이 책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어루만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분명한 일이다. 삶을 사랑하는 일,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 그 모든 걸 껴앉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애도의 시작이며 끝은 아닐까.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