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었던 어제는 삼계탕을 끓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모가 끓여서 보내준 냉동 삼계탕을 데워 먹었다. 삼계탕을 먹는 내내 땀을 흘렸다. 여름이, 여름이, 이렇게 나를 지배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인공적인 바람을 피하게 된다. 나이가 드는 거라고, 늙는 거라고 친구와 지인에게 말했다. 타국에 계신 선생님의 문자도 받았다. 초복이라서 닭에 대한 유머를 보내셨다. 선생님이 계신 곳은 이곳보다 더 습하고 더운 날이 많다. 이 더위를 건강하게 보내자고 선생님과 다짐 비슷한 인사를 나눴다. 병원에 다녀온 일은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는 일로 결론이 났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간 날들이 지나간 것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정상은 무엇이며 비정상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아는 게 병이라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 중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저울질하기도 했다. 역시나 이런 일도 늙는 과정이구나 혼자 결론을 내었다. 늙는다는 말이 슬프다고 서럽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나는 점점 그 말에 친근함을 느낀다. 젊어질 수는 없으니까.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데, 오랜만에 통화한 분과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이 포스팅은 그 말씀 때문이다. 기쁘고 감사하게 살고 있다는 말씀이다. 감사하다는 말은 습관처럼(때로 진정성이 없을 때도 있다는 말이다) 하는데 기쁘다는 게 단짝처럼 붙으니 전혀 다른 메시지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좋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할까. 그냥 묘하게 그 말이 계속 생각난다. 기쁘고 감사하게, 즐겁고 감사하게, 건강하고 감사하게!

 

 책을 좋아하는 동생과 통화를 하면서는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엊그제는 리커버 한정판 시집에 대해 말했다. 구매를 하느냐, 마느냐 그런 이야기다. 소장하고 있는데 예쁘니까 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 시집은 이렇다. 박 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은규의 『다정한 호칭, 장석남의 『고요는 도망하지 말아라이미 곁에 둔 시집인데 한정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야 할까? ㅎ

 동생이 추천해 준 책과 관심 있는 책을 검색하다 보니, 같은 출판사라 괜히 신기했다.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라틴어 수업』과 함께 리스트를 작성하는 책은 시집이라는 이유로, 문학과 지성 시인선 500선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나저나 신철규 시집은 언제 나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쌓아두는 책이 늘어나면서 조립식 책장을 들였다. 책장이라기보다는 책꽂이가 더 알맞은 크기였다. 작은 그곳에 책을 꽂아두는 일은 맛있는 사탕의 껍질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설렜다. 그리고 제법 책장의 형태를 갖춘 책장을 구입했다. 그 이후 그곳을 채우는데 정성을 쏟았다. 같은 크기의 책장을 하나 더 채우고 나는 더 이상 책장에 대한 욕망을 키우지 않는다. 키우지 않는다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여러 경로를 통해 그곳에 방을 만든 책은 때로 긴 잠을 자다가 떠나기도 하고, 모두 떠나고 혼자 남기도 한다. 아주 가끔 출판사 별로 책을 정리한다. 이런 즐거운 이벤트에 참여하려고 말이다. 내가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출판사의 책은 무엇인지, 이름만 다르고 하나의 출판사에서 나온 열매는 무엇인지, 고유한 이미지를 지키는 출판사의 책도 찾아보고, 시리즈로 유명한 출판사의 책도 찾아본다. 


 이동진과 정혜윤의 신간이 반가운 위즈덤하우스의 책을 찾아보니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책은 바로 이 두 권이다.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과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이다. 책을 찾기 전에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가장 최근에 읽은 이승우의『사랑의 생애, 한귀은의 『그녀의 시간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었다. 특히 한귀은의 산문을 애정한다. 전미정의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는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친구가 읽고 한동안 그 책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원재훈 시인이 만난 작가들의 이야기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읽을 때 정말 즐거웠다. 잊고 있던 책과의 추억이다. 내용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그 책을 만났을 때의 부푼 마음이랄까. 책을 읽는 인간은 자유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사람에겐 나무가 꽃 필요해. 잘 살기 위해서. 흔들리

는 나뭇잎을 보며 그 소리를 듣는 일이. 어떤 사람에겐 남

의 행복이, 또 남의 고통이 필요해. 어떤 가치 없고 무고한

타인의 죽음이 필요하고. 흔들리는 나무 밑에서 그런 비극

을 떠올리며 어쨌든 좀 슬픈 것 같은 순간이 필요해. ‘어떤

사람은 그냥 걷다가도 죽는대. 사랑하다 죽고. 사랑을 나누

다가 기쁨이 넘쳐서 죽고. 산에서 죽고. 바다를 건너다 죽는

대.’어떤 사람에겐 행복이 필요해. 꼭 나무를 보듯 불행이

필요하고. 어쨌든 어떤 믿음, 소망, 관용, 이런저런 이야기

가 필요해.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신, 옆 사람, 어떤 사람

그것도 아니면 크든 작든 사람을 닮은 그 무엇의 기쁨과 슬

픔이. 우리에겐 우리와 비슷한 형상에 대한 사랑이 필요해.

어떤 나쁜 마음이라도. 잘 살기 위해서. 조각난 팔과 다리.

터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대한 말이 꼭 필요해. (「어떤」, 전문)

 

 

 학창시절에 시를 암송하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이 결정되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기에 가능했을 시간.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책도 읽었고, 요즘 아이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시도 나오고 소설도 나오고. 그건 좋을 걸까. 좋은 시가 많았던 시집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그러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그러나 강한 기운이 전해지는 시집. 김상혁의 다른 시집은 읽어보지 않았으니 그의 시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좋아하는 시를 반복해서 읽는 것, 기록하는 것, 기억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어떤」이란 시가 참 좋아서, 계속해서 읽고 있다.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말하듯 말이다. ‘어떤 사람’이란 말 대신 누군가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기도 한다. 아니, 내 이름을 넣는다. 아침마다 만나는 나무의 놀라운 변화를 생각한다. 계절을 오롯이 껴앉는 나무들.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나에게도 병원이 필요하지만 나 같은 게 병원에 와도 되는 걸까, 이런 슬픔에도 치료가 필요할까, 동그랗게 둘러앉았는데 나는 고개도 못 들고 (「슬픔의 왕」, 중에서)

 

 

 너무 슬플 땐 무서운 게 없더라네요 아무래도 내겐 공포를 지나질 수 있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무언가를 말해도 되는 걸까, 나의 멀쩡한 집과 가족을 어떻게 설명할까 (「슬픔의 왕」, 중에서)

 

 

 슬픔이 넘치는 세상, 절망이 차오르는 세상에 이런 시는 어떤 위로가 될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처럼 슬픔에 무뎌진 삶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어떤 시는 그렇다. 시를 읽노라면 눈물이 나고, 시를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언제부턴가 여름이란 단어를 사랑하고 있는 걸 확인한다. 여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말이다. 무성한 풀들, 생명력 넘치는 식물들의 천국 같은 계절. 그 안에서 나도 그들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자란다. 그 여름이 내가 알지 못하는 여름일지라도.


 그렇지만 네가 밟은 것, 밟아서 더 깨뜨린 것, 더 깨뜨려서 흩어진 것, 그런 지겨운 것이 죽은 새, 웅덩이, 부서진 울타리, 뒹구는 손을 덮어준다. 풀과 꿈을 키워준다. 다가올 여름과 지나간 여름 사이 슬픔이 있다면 너는 오늘과 슬픔 사이에 있고 싶다. ( 「너의 여름 속을 걷는 사람에게」, 중에서)

 

 

 저녁은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지치기도 쉬운 시간이구. 하지만 제 손으로 머리칼을 털며 고갤 숙이고 있는 장면만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말도 가능하다. 내가 매일 현관으로 쓰러지며 쏟은 별과 모래를 아침마다 네가 예쁘게 비질한다고. (「가정」, 중에서) 

 

 

 아침을 기대할 수 있는 저녁,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면서 만남을 기다리는 시간. 저녁이 없는 삶이 아니라 저녁을 꿈꾸는 작고 소박한 시를 읽는다. 시인이 남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계속 이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월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바다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작년과 올해의 여름은 조금 다르게 형성될 것 같다. 매년 5월과 6월에는 작약과 수국을 보러 수목원에 다녀왔는데 올해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항상 언니와 같이 다녔기 때문이다. 쉽게 행했던 일들이 쉽지 않은 일들이 되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건 나무뿐이다. 거대한 바람과 비가 나무를 뽑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침마다의 산책은 조금 게을러졌다. 오늘도 눈을 뜨고 침대를 벗어나는데 15분의 갈등이 있었다. 햇빛의 세기가 강해지는 날들이 되었다. 나뭇잎이 우렁우렁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 언제 꽃을 피우는지 몰랐던 산딸나무의 꽃을 보았고 곧 자귀나무의 꽃도 만날 수 있다. 며칠을 벼르다 오늘 아침에는 산딸나무 꽃을 담았다. 나뭇가지가 높아서 꽃을 담기가 힘들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내 키도 계속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하는 아침이었다. 산딸나무 사진과 함께 좋아하는 가로등의 사진도 찍었다. 오랜만에 찍은 거라 괜히 미안했다. 다음엔 종종 만나는 고양이도 담아야지.

 

 

 

 

 

 

 

 

 싱그러운 소설을 읽고 싶다. 싱그러운 소설이 뭐냐고 묻지는 말아주길. 여름 같은 소설, 청명한 기운이 도는 그런 소설. 초록의 냄새를 맡는 듯한 소설. 그러나 읽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 책이란 도도한 존재다. 나를 읽어 봐, 나를 읽어야만 너랑 말을 할 거야, 하는 그런 존재. 싱그러움을 기대하는 소설로는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히라노 게이치로의 『마티네의 끝에서다. 시집은 신영배의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은 어떨까. 여름에 만나기를 기대하는 소설과 시집은 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인 강화길의 소설과 신철규의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이다. 아, 최진영의 장편소설도 있다.

 

 

 

 

 

 

 

 

 

 

 

 가뭄이 길어지고 있다. 시원한 빗줄기를 기다린다. 내일과 모레,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지만 과연 얼마나 내릴지 알 수 없다. 붉은 장미는 조금씩 시들어가고 이웃의 블로그에는 작약의 사진이 올라온다. 언니의 퇴원 후 작약 대신 수국을 보러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월의 첫날에는 꽃을 보고 왔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안개가 남은 산속 도로를 지나 작은 사찰에 오래된 왕벚꽃을 보고 왔다. 이른 시각에서 사진기를 챙겨온 이들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곳을 찾았을 때는 제법 넓은 곳이라 여겼는데 이번에 마주하니 아주 작고 아담한 사찰이었다. 만개한 꽃들은 꽃잎을 떨어뜨렸고 봄은 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햇살 대신 안개를 안은 꽃은 몽환적이었고 우리는 내년 봄을 기약했다.

 

 

 

 

 

 

 어제는 연두와 초록을 만났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작은 숲이 있다. 숲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울창하다고 말해도 좋을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나무들, 그들이 뿜어내는 초록와 연두는 눈이 부셨다. 아름다웠다.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책로에는 많은 이들이 걷고 있었다. 맨발로 빠르게 걷는 아주머니, 마스크를 쓰고 산길을 달리는 아저씨, 둘이서 셋이서 걷고 걷는 모습을 길이 다정하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오늘은 투표를 하고 왔다. 예배를 드리고 근처 투표소에 갔다. 6시 전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렸고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투표를 하기 전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될까. 알 수 없다. 결과는 9일이 되어야 알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만나게 될까. 우리는 조금 희망을 가져도 될까. 5월은 빠르게 흐른다. 벌써 4일이다. 징검다리 휴일이 있어서도 그렇고 다음 주에 잠깐 집을 비울 예정이라 그렇다. 5월에는 부모님과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 주말에는 부모님 추도 예배를 드릴 것이다. 바쁜 철이라고 매년 시간을 조율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될 것이고 밭에는 초록이 무성할 터. 5월을 위한 책을 고른다.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설레는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고 나희덕의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과 박영의 『위안의 서도  궁금하다. 5월의 시집으론 짙은 연두색 표지가 예쁜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가 좋겠다. 초록초록한 5월,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5월, 건강한 날들이 이어지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