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다. 더위를 유독 심하게 타는 체질이기도 하거니와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기대했던 일에 대한 결과도 모두 좋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기대했던 만큼 그 과정에 있어 열심을 내지 않았던 것,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할 수 없었던 게 맞다. 대충, 늘 하던 대로 하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이기적이다. 아니, 늘 최선을 하고 열심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 최선이었겠지만 말이다.

배롱나무를 보러 가자던 친구를 만난 하루만 유독 반짝였다. 사진은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찍은 것이다. 놀이터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맑아진다. 모든 놀이터가 간직하고 있는 선하고 신나는 기운이 전해진다고 할까. 여전히 태양이 뜨거워 아이들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조용하던 놀이터였지만 그 안에 고인 생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이었던 8월의 말경부터는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고 소멸하는 여름을 지켜보았다. 완전히 소멸했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젠 여름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이른 추석에 마음은 괜히 분주하고 네 장의 달력으로 남은 올해를 생각하면 조바심을 감출 수 없다. 마음이 그러거나 말거나 가을엔 소설을 읽어야지. 한국소설을 읽어야지. 그래야지. 읽고 있는 은희경의 장편과 김금희와 윤이형의 단편집 단편집, 최정화의 장편. 모두 궁금하다. 소설 읽기 좋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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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열네 살 린다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어려웠다. 나는 그 나이의 감각을 잊어버렸다. 소녀였던 시절, 빨리 어른이 되면 좋을 것 같았고,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사랑을 기대했고 사랑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랑을 원하는 마음, 그 하나는 닮았을지도 모른다. 열네 살에서 열다섯이 되는 시기는 돌봄이 필요하다. 동시에 누군가를 돌보기에 충분한 나이다. 에밀리 프리들런드의 『늑대의 역사』에서 린다가 원한 건 돌봄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마음의 돌봄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춥고 어두운 숲의 오두막에서 린다는 부모와 함께 산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 주변의 호수에서 카누를 타거나 네 마리의 개와 달리기를 한다. 린다는 어렸을 때 모여서 생활했던 공동체를 기억한다. 어떤 계기로 그것이 실패를 돌아가고 이렇게 오두막에서 살게 되었는지 린다의 부모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시골의 한적한 변두리에서 사춘기 소녀 린다에게 세상은 고요하고 시시했을 것 같다. 그래서 새로 부임한 그리어슨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꼈고 호수 반대편 근사한 통나무집에 이사를 온 가족을 몰래 지켜봤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자신의 몸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거다. 그리어슨 선생님이 릴리 대신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릴리는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아이였고 린다는 그런 릴리가 부러우면서도 질투를 느꼈다. 결국은 스캔들로 그리어슨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우리 셋 사이에는 열한 살의 나이차가 있었다. 우리는 네 살, 열다섯 살, 스물여섯 살이었다. (…) 항상 출타 중인 천문학자 남편이 서른일곱 살이라는 사실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자 이제는 겁이 날 지경이었다. (116쪽)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린다에게 패트라와 폴 모자와의 만남은 즐거운 변화였다. 학교가 끝나고 네 살짜리 아이와 놀아주면서 용돈을 벌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우주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인 남편 레오는 집에 없었고 아내 패트라는 남편의 원고를 수정하느라 바빴다. 폴과 린다는 제법 잘 통했고 서로를 좋아했다. 하루하루 폴과의 놀이는 즐거웠다. 하지만 그리어슨 선생님에 대한 관심과 릴리를 향한 묘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린다의 인생을 흔드는 일,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폴의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떠났다. 마음은 들떴고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행복했다. 폴이 기운이 없었던 것만 빼면 말이다.

 

린다가 다시 폴의 가족을 찾았을 때 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린다는 그 사실을 몰랐다. 레오와 패트라가 자신만의 종교적인 이유로 폴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재판에서 알았다. 폴의 죽음에 대한 재판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가족이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린다를 향한 질문은 너무 난해했다. 폴을 대하는 젊은 부부 패트라와 레오의 행동이 어떻게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추구했던 삶이 무엇인지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주는 린다의 이야기는 한 번씩 소설의 첫 문장(폴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을 불러온다. 린다는 숲의 오두막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기도 했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이제는 십대가 아닌 어른이다. 짝사랑 대신 원하는 상대와 사랑하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들의 행적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폴의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지울 수 없다.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명제로 말하기엔 가혹한 일이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숲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서른일곱의 린다의 마음도 알 수 없다. 비밀로 가득한 공동체 생활이나 모호하게 설명하는 패트라와 레오 부부의 신념처럼. 어른이 되면 다 알 것 같고 모든 게 선명할 것 같았던 기대는 사라졌다. 세상은 모르는 일 투성이다. 모든 성장소설이 아름다운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몸이 아픈 상태를 “맘이 좋지 않아.”라고 말한 폴을 생각하면 싱글맘과 아홉 살 아들 욘의 외롭고 쓸쓸한 일상을 그린 『아들의 밤』과 겹쳐진다. 엄마를 기다리다 겨울밤을 혼자 걷고 걷는 욘의 차가운 손을 생각한다.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아이, 스스로 자신을 달래며 무서움을 이겨내고 믿음을 키울 수밖에 없던 소설 속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들의 밤』은 성장소설로 볼 수는 없지만 욘의 느꼈을 감정은 린다의 그것과 비슷할 것 같기도 하다. 『늑대의 역사』는 누군가 필요할 때 힘든 마음과 상처를 달래줄 이가 등장하는 성장소설과 달라서 더 강한 울림을 안겨준다. 거기다 소설은 무척 아름답다. 숲이이라는 배경과 계절의 바뀌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런 문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여름을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항상 뭔가 잘못되었다. 어디를 보나 허공에 빽빽한 벌레들, 나무를 샅샅이 뒤지는 새들, 가지를 축 늘어지게 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나뭇잎들뿐이다. 여름을 억누르고, 망가뜨리고, 다 부숴버리고 싶어진다. 오후는 참으로 넓고도 길다. 무슨 일을 하건 그게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 (180쪽)

​이 또한 『아들의 밤』에서도 만날 수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눈이라는 소재를 차갑고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소년의 움직임은 슬프고 애처롭다.

불빛을 받는 눈은 황색과 청동색을 띠고 있었고 움푹 패어 그림자가 드리운 곳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숲은 고요했다. 욘은 야간 조명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동안 자신이 두려워해온 일을 극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225쪽)

 

우울과 슬픔으로 채워진 성장소설로 빼놓을 수 없는 건 오정희의 『새』다. 소설에는 우미와 우일 어린 남매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보호한다. 외할머니, 외삼촌, 큰집, 아버지까지 어른이 있었지만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데리고 온 여자가 떠나고 아버지마저 돌아오지 않는 셋 방에서 남매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좀 더 나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내일을 바랐을 아이들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새처럼 날 수 있다고 믿은 우일의 소망이 이뤄졌기를 바란다. 죽음을 통해 새가 되었다 하더라도. 성장한다는 건 아픔을 동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이 아팠겠다고 어루만지는 다정한 손길, 든든한 어른이 없는 지독한 성장은 고통스럽다. 설령 그것이 소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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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9-07-16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디자인이 눈을 홀리네요.

자목련 2019-07-16 18:24   좋아요 1 | URL
네, 독특한 표지에요. 내용도 그러하고요^^
 

 

아, 하는 사이에 6월이 되었다. 더위에 약한 누군가는 에어컨을 켰고 선풍기는 진즉 꺼내 놓았다. 화려했던 꽃잔치가 끝이 나고 초록의 맛으로 가득하다. 가까운 해수욕장의 개장을 시작으로 바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름은 휴가를 계획하게 만든다. 작은언니는 제주도 일정을 잡았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무언가를 계획한다는 건 반복된 일상에 소소한 흥을 돋운다.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예매하고 책을 구매하고 색다른 음식을 먹는 일. 큰 계획이 아닌 작은 계획도 그렇다.

 

사용하고 있는 청소기가 이상하다. 소음이 많아졌고 뭔가 예전과 다르다. 고객센터에 문의를 하는 대신에 나는 청소기를 검색했다. 당장 멋지고 튼튼한 청소기를 구매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일은 일정의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이런 행동도 계획은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사용하게 될 청소기를 검색하는 일, 읽고 있는 책의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하는 일, 신간 알림 메시지를 받고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 일. 그 모든 게 제법 신나는 일상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아들의 밤』을 읽으며 소설 속 장면을 상상하는 일, 『소설 보다 : 봄 2019』를 읽을 즐거움을 기대하는 일,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속 OST를 듣는 일, 마트에 좋아하는 자두가 나올 날을 기다리는 일, 생각을 이어가니 끝이 없을 것 같다.

 

 

 


 

 

 

 

 

 

 

아, 하는 사이에 6월을 산다. 지난 5개월 동안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속상한 일도 있고 여러 가지 걱정은 여전하다. 그것들과 함께 6월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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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4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4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의 끝에 다다랐다. 아파트 옆 작은 숲에는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여름이 왔다는 말이다. 하긴 나도 반소매 옷을 입기 시작했고 그 위에 얇은 카디건 같은 건 더 이상 입지 않는다. 조팝나무는 눈처럼 꽃을 피웠고 아담한 찔레꽃도 한창이다. 하나의 계절이 지배했던 날들이 사라지는 중이다.

 

봄을 앓지는 않았는데 우울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기운의 근본에 자리한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그것을 변형시킬 수는 없다는 게 더욱 안타깝다.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 우울의 근원은 모두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의 이름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말이다. 누군가의 발병,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사고. 반갑지 않은 소식을 매일 접하는 세상이라는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하루를 맞이하면서 오늘을 어떻게 보낼까.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일까. 저마다 간직한 어떤 것들을 곁에 두고 살면서 바라보는 시간이 적을뿐이다. 어떤 것에 시선을 두고 오래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울한 마음만 바라본다면 하루 종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상을 짓게 된다. 자꾸만 신경을 끄는 그것을 잠시 서랍에 넣어두었다고 생각해야겠다.

달려오는 여름과 즐겁게 지낼 생각으로도 바쁜 날들이 시작될 터. 여름과 잘 어울리는 제목처럼 상큼한 맛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레몬』은 권여선의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 궁금하다. 하재연의 시집은 처음에는 좋은 줄 모르다가 나중에 그녀만의 세계가 얼마나 근사한지 알게 된다. 그러니 『우주적인 안녕』은 안녕, 걱정이나 탈이 없는 안녕(安寧),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엊그제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을 생각했다. 나만의 선생님이면 좋을 그런 분. 올봄에는 젊은 할머니가 되셨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선물에도 행복해하시는 그런 모습을 오래 보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생님인 나의 친구. 새벽까지 과외를 하는 친구를 떠올린다. 내가 보낸 문자에 친구는 “안 그래도 아카시카 향기 맡으며 니 생각했는데” 라며 답을 보냈다. 아주 짧은 순간, 우리는 서로를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완벽한 충만함을 느낀다. 우울은 접어두고 친구, 선생님, 그리고 나의 당신들에게 안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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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 책을 좋아한다. 책과의 사귐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책의 입장은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느 시절에는 세계 책의 날이라는 날이 있는지도 몰랐다. 온라인 서점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해마다 서점에서 제공하는 빅데이터로 나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지(순전히 구매에 대한 분석), 어떤 작가의 책을 관심 신간으로 기다리는지, 심지어 어떤 굿즈를 구매했는지도 보여준다. 네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킨다. 그 정보는 일정 부분은 맞고 나머지는 틀리다. 책을 구매했지만 읽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관심 신간에 체크를 했지만 수정하지 않아서 그대로 관심 작가로 남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게 맞다. 이렇게 세계의 책을 날에 잊지 않고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읽고 싶은 책에 대해 말해볼까. 지극히 현재의 나의 취향에 대해서 말이다. 다수의 작가들이 좋아하고 추천하는 작가로 알려진 W. G. 제발트의  『이민자들』을 읽고 있다. 제목처럼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으로는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과 진은영, 김경희의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두 권이다.


요즘 나는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말이 품은 감정과 말을 지키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 안에서 말이 이어지는 순간, 말이 소멸하는 순간을 생각한다. 책에서 들려줄 말이 어떤 말인지 모른다. 그 말에 대한 관심이 언제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지금, 세계의 책의 날인 오늘은 사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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