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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멍 강옵서 감동이 있는 그림책 1
박지훈 글.그림 / 걸음동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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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광 감수광 ...  가거들랑 혼조옵서예~" 가수 혜은이씨의 <감수광>이라는 노래가 한창 유행했을 때 노랫말의 정확한 뜻도 모른 채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노랫말 중에 "혼저옵서예"가 혼자 오라는 말이려니 짐작하고 말았는데 이 말은 제주도 방언으로 실제 뜻은 어서 오라(빨리 오라)는, 전혀 다른 의미였지 뭔가. 어멍 강옵서. '엄마 다녀오세요'를 제주도 방언으로 표현한 제목을 단 이 작품을 본 참에 제주도 방언에 대해 검색해 보니 같은 나라의 말인데 이리 다를까 싶을 정도로 낯설고 독특한 표현들이 많다.  


  첫 장을 펼치면 샛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 뒤로 키 작은 집들이 보인다. 자잘한 구멍이 송송 뚫린 돌을 이용해 지은 집과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돌담이 제주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도의 특이한 대문의 구조도 눈에 들어온다. 제주의 옛날 대문은 세 개의 구멍이 뚤린 기둥(정주목)과 긴 나무 작대기(정낭) 세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둥에 가로로 걸쳐 놓아 두는 작대기 갯수에 따라 집주인의 부재 여부를 알려준다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작대기가 다 내려져 있는 것은 집에 사람이 있을 때. 늘 문단속에 신경을 쓰고 사는 요즘 -특히 도시-사람들에게는 정낭의 갯수로 집이 비었다는 것을 버젓이 알려주는 제주의 대문 자체가 신기하게 여겨질 게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이웃을 믿고 서로에게 정직했기에 도둑이 드는 것에 대한 걱정조차 않고 살았으리라.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담아낸 이 그림책은 아이가 바다에 나가 물질하러 나간 해녀 엄마를 기다리며 보내는 하루의 일상을 들려주고 있다. 본문에 간간이 -어멍, 재게, 도르멍 등-, 제주도 방언을 사용하였던데 조금 더 많이 포함시켰으면 읽어주는 이나 듣는 아이나 더 재미있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약간. 가령 본문에 등장하는 '소라'는 제주 방언으로 '구젱기'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어멍은 하루도 빠짐없이 바닷속에 들어가 미역과 전복을 딴다. 딸에게 예쁜 옷을 사주기 위해 오늘도 망사리를 손질하여 바닷가로 향하는 어멍은 아이를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나(은정)는 하루만이라도 일을 쉬고 놀아주었으면 하는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일을 나간 어멍이 야속하면서도 날씨가 변덕을 부려 비바람이 치자 바다 속에 있을 어멍이 걱정되어 기도를 한다.
 


 마지막에 저녁노을이 진, 눈부시게 일렁이는 바닷가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모녀의 -검은 형태로 보이는- 모습을 담았다. 주인공은 그림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을 풍겨서 어떨 때는 열 살 넘어 보이기도 하고 그보다 어린 나이로도 보이는데, 후반부로 가면 부쩍 어려지는 느낌. 쑥쑥 자라서 어멍과 함께 물질을 하겠노라 말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엄마 키의 반 정도로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주 어린 아이 같다. 그런 차이가 있는 것과 별개로 마지막 장면은 그 자체로 어여쁘다.

 


 제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박지훈 작가의 다른 작품인 <똥떡>을 보면 사실적인 화풍과 더불어 진한 색감으로 강렬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다. 제주도와 바닷속 풍광제주도와 바닷속 풍광,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일상, 해녀들의 모습 등을을 담은 이번 그림책은 색감이 연하고 부드러워 따스한 느낌을 준다. 그 좋다는 제주도의 풍광도 올레 길도 아직 접해 보지 못해서 참 아쉽다. 남편이 더 늙기(^^;) 전에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한 번 다녀오자고 가끔 말을 꺼내는데 다섯 식구가 움직이려면 비용이 만만찮을 터이니 여행 적금이라도 하나 들어야 할까 보다. 

- 책 띠지에 "제주도의 세계 7대 자연 경관 선정을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어 검색을 해보니  스위스 뉴세븐 원더스 재단이라는 곳에서 주관하는 캠페인으로 2011년 11월 11일에 7곳이 결정(출처:위키백과)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제주가 선정된다면 매우 기쁜 일이겠으나 이와 관련하여 이런 저런 잡음이 있는 듯 하여 좀 더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별점은 3.7 정도라 넷으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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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그림책은 내 친구 29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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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가는 길.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아침이면 늘상 걷게 되는 그 길은 별 변화가 없는 듯 하면서도 소소하면서도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집에서 나서는 길에 마주치는 이웃 어른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도 해야지. 친구를 만나면 한 십 년 못 보기라도 한 냥 소리 높여 부르며 반갑게 달려가기도 하고. 주택가를 벗어나 여러 가게며 건널목을 건너기도 할 테고, 문구점에 들려 준비물을 사는 날도 있을 거고. 내가 만들어 낸 상상 속에 빠지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축지법을 쓴 것도 아닌데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벌써 학교 앞에 도착해 있을 때도 있을테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상상 그림책 2번째 작품. 다리미 자국이 다양한 대상으로 변모하는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는 학교 가는 길에 펼쳐지는 풍경을 발자국 형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 이런 형식을 그래픽 콩트라고 하는구나. - 신발바닥 앞부분과 뒤축이 분리되어 있는 형상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문과 찻잔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신문을 입에 문 강아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 가지 형상에 간략한 선과 색감을 더하는 것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사물을 표현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여전히 재미있고 참신하게 다가온다.



 학교 가는 길에 지나치는 치과, 꽃집, 가구점 같은 가게를 치아, 선인장과 꽃, 소파 등 연관되는 사물로 표현해 놓았다. 단어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다르지만 두 대상을 연결지어 인식하는 과정이 사고의 확장과 연상 작용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하굣길에는 발자국이 반대 방향으로 찍혀 있고 다른 길로 오는데, 마찬가지로 야채 가게, 생선 가게, 경찰서 등 다양한 건물들의 특징을 잘 짚었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가다 보면 다양한 업종의 가게나 건물을 지나치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이 책에서처럼 하나의 형상을 이용해 다양하게 표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어떻게 표현할까, 무엇을 더 그릴까, 요모조모 궁리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각도 상상력도 쑥쑥 커질 게다.


 아이들이 다니는 길이 안전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부모 마음과 달리) 위험은 어디에나 있나니, 신호등 있는 건널목이라도 건널 때 조심해야 하고, 아무리 맛난 것으로 유혹해도 행여 낯선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길을 가다 보면 재미난 일이 눈에 들어와 그걸 지켜보느라 멈춰 서 있다거나, 흥미진진한 상상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아차, 지각할라! 어린이들, 한눈팔지 말라는 엄마 말씀도 잊지 말아요~. 
 세상에는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언제나 가장 좋은 곳은 나는 반겨주는 이가 있는 내 집이 아닐까. 멍멍이도, 엄마도 나를 반기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내 동생. 동생이 첫 걸음을 떼게 될 날을 그린 마지막 장면에 보이는 작은 발자국 하나. 재미나고 호기심 가득한 일들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 발자국이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선 아이의 발자국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았구나... 책장을 덮고는 손가락으로 눈밭에 찍힌 발자국 같은 느낌을 주는, 표지 위의 입체감 있는 발자국을 새삼 손가락으로 더듬어 따라가 보았다. 아이들이 먼 거리를 통학하는 것이 안쓰러운 마음- 학교 근처로 이사 가면 좋겠단 생각도 가끔-이 들곤 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구나 싶어진다. 

 요즘은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 역시 바쁜 일상에 쫓겨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뭐 그리 바쁜 일이 있다고 앞만 보고 걷나, 가끔 내가 가는 길에 어떤 가게들이 있고, 요즘 유행하는 패션은 어떤 것들인지 눈길 주며 걷는 날도 있어야지~. 큰 아이는 전에 등하교시에 길을 익히려고 경로를 바꾸어 다니곤 했다던데 -특정 가게를 본 적이 있나 물어보니 모르겠다는 대답만- 길만 눈여겨 살핀 모양이다. 주변의 다양한 풍경과 변화로운 일상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재미를 포착하고 즐길 줄 아는 여유. 간단한 것으로도 많은 것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그림책이 그런 여유를 일깨워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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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는 기분이 좋아요 알맹이 그림책 23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김서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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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아끼거나 좋아하는 것을 주거나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일지라도, 상대가 기쁨에 겨워 팔짝팔짝 뛰거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힘든 생각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나 역시 함께 뿌듯하고 행복한 기분을 누리게 된다. 이 그림책은 부활절을 배경으로 아이가 몰래 준비한 깜짝 선물에 가족들이 놀라고 기뻐하는 광경을 보며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보며 처음 안 것인데, 스웨덴에서는 부활절이 크리스마스 만큼이나 큰 명절인 모양이다. 아이들이 부활절에 가끔 학교 앞에서 교인들이 나누어 주는 삶은 달걀을 받아오곤 하던데, 스웨덴에서는 부활절 토끼가 달걀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단다. 그런데 그 달걀은 진짜 달걀이 아니라 초콜릿과 젤리, 사탕으로 만든 것이라는 점도 생소한 부분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산타가 몰래 다녀가는 것처럼, 부활절 토끼는 부활절 토요일 모두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다녀간다고. 스웨덴 아이들에게 부활절 달걀이 없다는 것은 크리스마스에 기대했던 선물을 못 받는 것 만큼이나 속상한 일인가 보다.

 로타는 오늘 무척 화가 나 있다. (오빠야 로타가 언제나 화나 있다고 말하지만~) 로타는 오전 내내 오빠와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하필 오늘 같이 특별한 날, 생일 초대를 받았다며 거기를 가야한다고 하지 않는가. 다른 날도 아니고 부활절인데! 마녀 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주는 사탕과 초콜릿을 받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날이니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겠는가. 초대받은 자리에 로타도 같이 가서 언니 오빠와 함께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면 화가 덜 났을까? 
  건강이 좋지 않은 이웃 아줌마네에 들러 안부를 묻는 공손함을 보이기도 로타. 자기가 "왔다 갔다 하면서 돌봐 드려서 아줌마는 좋겠다"는, 찰랑찰랑 넘칠 듯한 자부심이 담긴 말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한다.  거리로 나간 로타는 자신을 "기푼 좋은 아이"라고 부르는 바실리스 아저씨네 사탕 가게에 들렸다가 생각지도 못한 -로타가 부활절의 기적을 연출할 수 있게 해 준- 선물을 한아름 받게 된다. 

 세 남매는 뒤늦게 부활절 마녀 복장을 하고 나서지만 사탕과 과자가 거의 없다는 말에 맥이 빠진다. 거기다 아빠는 가게 문을 닫아서 부활절 달걀을 사지 못했다고 말하고, 심지어 요나스 오빠는 짓궂게도 부활절 토끼도, 산타클로스도 아빠라는 것을 로타에게 알려준다. 그런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부활절 토끼와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건 앙코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인 걸. 
 어린 시절에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찾아오는- 혹은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미리 선물을 주고 가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는다. 선물을 준비하는 이가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이들은 여전히 특별한 날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한다. 미아 마리아와 요나스는 이제 부활절 토끼가 아빠인 것을 아는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부활절 달걀을 구하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부활절 아침이 되자 다른 때처럼 부활절 토끼가 다녀갔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런 심리일 게다.


 부활절 토끼를 대신해 다녀간 크리스마스 토끼(?) 덕분에 나이만 가족은 부활절 아침, 자작나무 아래 풀밭에 펼쳐진 멋진 광경에 큰 기쁨을 누린다.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로타는 날마다 놀라게 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앞서 로타가 베르크 아줌마네 헛간에 있는 커다란 가방(본문 말미에는 '상자'로 표기했던데 원작에도 다른 단어로 지칭했을까?)-에 남겨 둔 것들은 로타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혹여 아줌마가 발견한다면 또 한 번의 깜짝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

 어릴 때 참 재미있게 본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 작가가 누구(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고,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훌쩍 커서 내 아이들에게 보여줄 책을 고르면서부터이다. 린드그렌의 작품은 지금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으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작품들을 동화책과 그림책으로 꾸준히 접할 수 있어서 반갑다. 혹 로타가 등장하는 작품이 더 있나 찾아 보니 절판된 <말썽꾸러기 로타/다락방>와 <나, 이사 갈 거야/논장> 등 세 아이(요나스, 미아 마리아, 로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더 있는 모양이다. - 책을 처음 볼 때 그림책 치고는 글밥이 생각 외로 많아서 조금 놀랐는데, 애초에 작가가 그림책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 아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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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11-01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비로소
아이한테 읽힐 아름다운 책을 깨닫지 싶어요.
 
[엄마가 화났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엄마가 화났다 그림책이 참 좋아 3
최숙희 글.그림 / 책읽는곰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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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순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던 시기가 지나면 아이는 혼자서도 숟가락을 제법 능숙하게 하고, 가끔은 혼자 노는 것도 즐길 줄 알게 된다. 아이가 장난감 놀이나 색칠하기-TV나 비디오로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물을 볼 때도-에 몰입한다 싶으면 아이와 놀아주느라 미뤄두었던 집안일이나 식사 준비, 혹은 다른 볼일을 후다닥 해결하려고 잠시 자리를 뜨곤 한다. 아이가 혼자서도 조용히 있는 순간은 대게 어떤 일의 재미에 폭 빠져 있을 때인데 그럴 때라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엄마를 찾지 않는 평온함이 가져다 준 잠깐의 방심이 불러온 처참한 결과를 보게 될 때면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달려 나간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어이없어 하며 순간적으로 "ㅇㅇ야!"하고 아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고는, 아이에게 눈을 홀기면서 뒷수습을 하는 와중에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눈물바람으로 안겨드는 아이를 보고서야 그 나이 또래면 다 하는 행동인데 싶어 그제야 감정이 앞섰던 것을 후회하며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곤 한다. 이 그림책을 보며 달리 남의 집 이야기일까, 작가도 아이를 키우며 다양한 일을 경험했을 텐데 그것을 작품에 참 잘 녹여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책은 엄마가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 몇몇 순간을 포착하여 담아냈다. 산이가 식탁을 지저분하게 만들어가며 자장면을 손으로 먹는 모습을 본 엄마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가만히 앉아 얌전히 먹으라고 말한다. 얼룩덜룩해진 얼굴을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서는 거품놀이의 재미에 빠져 든다. 일전에 우리 집 막내가 혼자 욕실에 들어가서는 조용하기에 가보니 손 안 닿는 곳에 놓은 줄 알았던 손세정제를 가져와 뚜껑을 열어 반 이상을 세숫대야에 들이 부어놓고 거품 장난을 하고 있었다. 수돗물을 틀어 놓고, 치약을 짜놓고, 아이가 있는 집이면 대게 한 번쯤은 겪어보는 일들이지 않을까.
 
 엄마에게 혼난 산이는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가만히 앉아서. 그런데 그리다 보니 종이가 너무 작아 여기저기에... 종이 안에만 물감 질을 했으면 하는 건 엄마의 바람일 뿐이고, 아이가 그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종이 대신에 자기 손에 물감을 칠하기도 하고, 서툴거나 혹은 과감한 붓질로 종이를 벗어나 바닥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벽이며 마룻바닥에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본 엄마가 산이 때문에 못 살겠다고 화를 낸다. 불같이. 큰소리로 야단맞는 순간의 아이에게는 정말 엄마 입에서 불이라도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산이가 사라졌다. 엄마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불길이 산이를 삼켜버렸다. 엄마는 산이를 찾아 나선다. 아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성이 보일 때마다 정신없이 달려가 보지만 산이는 없다. 앞서 산이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을 때 산이가 가지고 놀던 물건들의 집합체가 엄마를 보고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엄마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거품이 툭툭 터져 작아질 것 같다고, 엄마는 걸핏하면 자기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지만 자기는 엄마가 정말 좋다고... 산이를 찾아 떠난 엄마가 찾아간 성과 주변 풍경, 성 안에 어른거리던 그림자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 앞의 그림 속의 사물들과 비교해 보는 이색적인 즐거움을 준다. 

  산이를 찾아 헤매는 사이에 엄마가 입고 있는 옷의 노란 색감이 탁하게 퇴색하고, 밑단이 헤지는 등 점점 남루해져간다. 그것을 나보다 먼저 알아챈 건 함께 듣고, 보고, 묻던 아이다. 그림책은 그림을 먼저 충분히 감상하는 최근에는 그림책에 대한 감이 많이 무디어진 탓인지 글에 먼저   내가 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이는 그림을 보고 있었던 차이를 보여주는 순간이랄까. 막내가  "엄마 옷이 왜 그래?"하고 묻기에 내심, '호, 나름 관찰력이 있는 걸~" 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미안하단 말을 반복하며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을 때 감쪽같이 사라졌던 산이가 모습을 나타난다. 어느 사이에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은 엄마의 꽃무늬 노란 치마 밑에서. 서로 꼭 안아 주는 산이와 엄마가 바로 내 아이와 나의 모습 같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 화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려면 도를 닦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대게의 양육서를 보면 아이에게 일단 화부터 내는 것을 자제하라고 말한다. 그런 책들을 읽었음에도 현실적으로 화를 참기란 쉽지 않다. 순간을 억누르지 못하고 화를 냈다면 그 뒤에 상처 입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거려주며 사랑을 확신시켜 줄 때 아이와 부모 모두의 감정이 치유되지 않나 싶다.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날 때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을 때면 이 그림책을 봐야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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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이상한 친구가 전학 왔어요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38
데이비드 매킨토쉬 글.그림, 최지현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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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가 시작되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작은 아이가 집에 와서는 자기 반에 새로운 아이가 전학을 왔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소식을 전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아이랑 친해졌다며 집으로 데려온 것을 보고 내심 놀래서 속으로 '벌써 친구가 되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책은 주인공이 전학 온 낯선 아이에 대한 거리감을 거두고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의 원제를 보니 미국인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 앞에 흔히 쓰는 "my"가 아닌 "our"를 쓴 점이 인상적이다.


 화자인 '나'가 다니는 학교에 전학 온 '이상한 친구' 마샬은 (표지 그림에서 잘 표현한 것처럼) 우주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많은 아이다. 나의 책상에는 손에 잡을 수나 있을까 싶게 짧디 짧아진 몽땅 연필과 얇은 표지가 달린 공책이 놓여 있다. 반면 마샬의 책상을 보면 단단한 (고급 다이어리 수준인) 양장 표지의 공책과 깔끔하게 깍인 색연필들이 들어 있는 필통을 비롯한 펜과 잉크, 수정액, 자, 컴퍼스 등 온갖 문구용품들을 즐비하게 갖추고 있다.


  새로운 친구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듯 외모-마샬의 귀 모양, 가르마를 곧게 탄 머리 모양, 새모이 같은 주근깨 등-도 조목조목 자세히 살펴 보고 평해 놓았다. 명품으로 보이는 안경테를 다른 아이의 안경을 빼앗아 쓰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 웃음을 준다. (안경테에 작은 글자로 적혀 있는 '레이번'이라는 상표명을 인터넷을으로 검색을 해보니 선글래스 전문 브랜드라고...) 가져온 점심 도시락도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음식 이름이 적혀 있는 은박지로 싸여 있는 것들이다.


 대게 어떤 공동체가 형성된 후 그 울타리 안에 새 사람이 들어오면 공동체 무리도, 새로 온 이도 서먹한 느낌으로 서로를 대하게 된다. 시간을 두고 탐색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가까워지게 되기도 하지만 그 무리와 융화되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겉도는 경우도 있다. 첫인상이나 분위기도 관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아무래도 자기와 비슷한 점이 많으면 쉽게 받아들이지만 다른 점이 많은 경우에는 거리감과 더불어 약간의 반감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마샬의 경우, 집에 텔레비젼도 없고 대신 신문을 좋아한다는 역시 여느 평범한 아이에게는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마샬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운동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한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밖에서도 항상 모자를 쓰고 있고 그늘 아래에 있을 때가 많은데 그게 오존층 때문이라니, 좀 유난스럽다고 여겨질만하다. 그러고 보면 피부도 유난히 하얗고 왠지 좀 병약해 보이는 것이, 운동에서도 제외시켜 주는 것을 보면 아픈 아이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가 마샬에 대한 거리감이 사라지는 계기는 마샬의 생일파티이다. 앞서 마샬이 풍기는 분위기를 비롯하여 생일 파티에 반 친구 모두를 초대한 것만 봐도 있는 집 아이구나 짐작할 수 있는데 모습을 드러낸 집 외관과 내부를 보니, 과연~. '나'는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하며 억지로 생일파티에 가지만 예상과 달리 정말 신나게 뛰어놀게 된다.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이 담긴 선물 가방까지 받고! (이런 점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주인공이 마샬을 좋은 친구로 여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늘 따로 놀던 학교에서와 달리, 생일 파티를 즐기는 내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고 나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일 게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이나 선입견 같은 것들이 더 크게 작용하여 색안경을 쓰고 판단하게 되곤 한다.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정말 이렇게 많은 면에서 다른(무엇보다 경제적인 격차가 큰) 아이를 쉽게 친구로 받아들일까 하는- 위화감 역시 나의 편견에게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책을 보며 맥컬리 컬킨 주연의 '리치리치'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작가 뿐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마샬을 좋은 친구로 받아들인 '나'는 전학 온 또다른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수 있게 도와주려는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 나와 많이 다를수도 있는 사람을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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