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서울, 삼풍 -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서울문화재단 기획,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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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종종 텔레비전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를 보았을 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와르르, 몇 초 만에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땐, ‘건물은 이렇게 무섭게 무너지는구나’ 했고, 매몰되었지만 기적같이 살아난 생존자를 볼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건 그냥, 너무 큰 고통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되새기는 삼풍 백화점 사고에는 더 많은 생각들이 달라붙었다. 젊었던 엄마도, 대학생이었던 나도 백화점 건물 안에서 일했다. 만약 당시였다면 업무 도중 빠릿빠릿한 눈치로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을 감지한 뒤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1995년 서울, 삼풍>은 지은이 이름에 적힌 ‘기억 수집가’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다양한 방면에서 사고를 접했던 이들의 기억을 꼼꼼하게 재조립한 책이다. 생존자, 희생자의 유족, 지인,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구조 작업을 담당했던 소방관, 민간 구조자, 건축업자, 기자, 의사, 봉사자……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힘썼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슬픔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오는 고통에 대하여 상세하게 전한다. 구술자의 심리와 행동을 괄호 안의 지문으로 강조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고의 정황 속에는 몰랐던 사실도 정말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함’을 감지했으나 갖가지 이유로 피하지 못했고, 역시나 주변 건물의 사람들과 민간 봉사자들은 직접적으로 수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절도를 목적으로 봉사에 합류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고). 당시 응급 의학 자체가 미비한 상태여서 체계적인 제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았으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불과 몇 초 만에 무너진 건물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유족들이 있었고 난지도에 버려진 건물 잔해 속 부분 시신까지도 간절하게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건축은 의사, 변호사처럼 사회정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가나 건축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면 그런 결과들이 초래됩니다. 고객이 이렇게 해달라 요구할 때 건축가가 이런 이유로 안된다 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았겠죠. 그런데, 네, 알아서 하세요. 도장 찍어줍니다.” 건축에 대한 이 한 마디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은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무언가를 만들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일들이 때때로 무시된다. 수많은 안타까운 사고의 시작이 작은 한 마디라고 생각하면 순간 섬뜩해진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기억’의 슬로건이 대두된 이후로, 2년 뒤 이 책이 출간되었다 (종종 구술자의 발언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월호 유족들에 관련한 비방이 거세질 때, 지겹다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들려올 때, 세월호가 지겹다는 이들에게 삼풍 생존자가 쓴다는 글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링크).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인간의 예의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이다. 매번 기억하며 우울 속에서 살아갈 리 만무하지만, 감시의 역할로도 기억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기억을 이렇듯 온전히, 한숨과 말줄임표 하나까지 꼼꼼히 담아준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 친구가 무너지기 30분 전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백화점이 너무 덥다. 옥상에 균열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에어컨이 멈췄다더라. 그런데 이상하다, 분위기가.’ 이 친구가 1층 로비 바로 앞에서 근무하니까 사람들이 나가는 게 보이잖아요. 윗사람들, 경영진들이 굉장히 급박하고 왠지 모르게 긴장된 모습으로 빠져나간다는 거예요. "이상해." 계속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잖아요, 백화점이 무너질 거라는 걸. 저도 좀 이상한 느낌에 "너도 매장 두고 퇴근하는 건 어때?" 그랬어요. 그랬더니 "저 물건들 비싸잖아.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해. 내 책임이 될 텐데" 하더라고요.

평생 잊혀지지 않는 분이 계셨는데 아주 작고 왜소한 체구에 도배, 페인트 일하는 분이에요. 저희가 엄청난 먼지와 악취 속에서 숨쉬기도 힘들어하면서 작업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는지 커다란 널빤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합판 부스러기인데 저희가 굴을 파고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바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기를 불어넣어주셨어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뒤에서 공기를 넣어주면요, 작업 환경이 정말 좋아져요. 작업하다가 뒤돌아보면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안경 고쳐 쓰고 닦아가면서 저희에게 계속 부채질을 해주시는 거예요. 저는 그 분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구조 대원들 모두 입 모아 말했어요. ‘저 아저씨는 상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활이 안 된다, 이 정도는 아닌데 무너질 걸 항상 대비하죠. 어디로 튈까, 그런 생각을 해요. 위에서 뭐만 떨어져도 무서워요. 이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뭐가 흔들리기만 해도 겁나고 바람이 불어서 문 같은 게 꽝 닫혀서 아래층이나 위층이 울리면 ‘아, 문 좀 잠가놓지’ 이런 생각 하죠. 고층도 싫어 못 살겠어요. 어쩌다 한번 누구네 집에 놀러가면 몰라도 고층에서는 못 살아요.



죽은 자와 산 자의 짐은 다릅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짐을 산 자한테 떠넘기고 가요. 살아 있는 자는 그 짐을 평생 지고 가는 거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짐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뭐냐, 내가 달라져요. 건장한 스무 살 짜리 애가 들던 짐의 무게와 지금 드는 짐의 무게가 똑같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 생각하실 적에 더 아파하고 슬퍼하잖아요.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 거다. (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어요 ‘그러나’라는 단어를요. 또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는 ‘ing’라는 단어를요. 견디고 또 참아내면 저희 세대로 끝나겠죠. 하지만 제 자식 세대가 그 짐을 들고 가게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도시는, 특히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망각을 근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누군가가 기억을 하고자 하면, 왜 기억하는가, 무슨 의도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윽박지른다. 우연적인 사고로 축소하여 도시 일상의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대책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힘들이 모든 상처 입은 자들과 고인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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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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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좋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고작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좋아하는 작가’라 말하기는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든다. 김애란은 내게 이런 기분으로 다가오는 작가였다. 연이어 단편집을 읽었고, 단편의 한 글귀를 입에서 오물오물 되뇌기도 했으나, 완전히 다 알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스무 살 즈음에 『침이 고인다』를 만났고, 중반 즈음에 『비행운』을 읽었다. 이후 『바깥은 여름』을 읽으면서 감동했다. 우연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만나게 된 김애란의 소설은 함께 연결되어 나이 드는 동질감을 느끼게 했지만, 그의 ‘처음’을 알지 못해 허전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2005년에 첫 출간된 소설집이 십여 년을 지나 새 옷을 입고 나왔다. 순서가 바뀌고 작가의 말도 새롭게 적어 넣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반가운 기회로 김애란의 풋풋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만나게 되었다. 작가의 초기작을 만나는 것은 늘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이번에는 빠져 있던 퍼즐 조각을 찾은 듯 유독 즐거운 기분이다.

이십 대에 들어서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나는 전혀 어른이 된 것 같진 않지만 그때와 현저히 달라진 존재를 느낀다. 그때는 내 생애 가장 우습고도 밝은 시기였다. 마음은 조금 부풀어 있고 살짝 열려 있었다. 겁이 나도, 살짝 열린 틈으로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기회, 내가 하고 싶은 상상 속에 잠깐이라도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나이가 돼서야 볼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때의 나이에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풋풋한 스물,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또 한 번 나의 시간을 생각한다.

만나지 못했지만 늘 가슴 한편에 있는 동경의 대상을 생각한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 그리고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사랑의 인사>라는 단편들은 부재하는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면에서 비슷한 결을 가진 소설이었다. 그 누군가는 종종 아버지의 존재로 비춰졌다.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을 이야기할 때 면 조절하기 힘든 감정을 적당한 온도로 전하고 있었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탁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단편들이었다. 건조하면서도 섬짓한 분위기의 이 소설들이 유독 좋았다. 글을 쓰는 존재로서의 고뇌가 느껴졌던 <영원한 화자>, <종이 물고기>도 기억에 남는다.

소설 속에는 작가의 책을 좋아한 이유이기도 했던, 문장의 신선한 표현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초기작의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첫’ 소설의 무거운 고뇌 또한 들어 있는 듯했다. 마치 뼈 있는 농담을 듣는 기분이라 할까. 물론 조금 더 매만져진 지금의 김애란이 나는 더 좋긴 하지만, 첫 소설의 매력을 느끼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었다.

 

어머니는 발가벗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을 큰 손으로 몇번이나 쓸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39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한다는 점에서 무레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 P127

"죄송합니다." 나는 그가 건네는 포장 만두를 받아들었다. 볼일이 끝난 뒤에도 내가 계속 꼼짝 않자, 청년은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뭔가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그런데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 어물쩍 한마디 내뱉고는 큐마트를 나왔다. "문자 왔어요." - P237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모든 벽면이 바깥을 향해 천천히 부풀어올랐다 다시 원상태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럴 때면 다섯개의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이 일제히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자 더욱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 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 다니는 상상을 했다. 마치 자신이 물고기 지느러미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았고, 반대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기분도 느꼈다. 대체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알 수 없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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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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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잃어버린 작은 개가 길가에서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사진을 봤다. 머리만 집중적으로 훼손되어 길에는 피가 흘렀다. 주인이 개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고자 본 CCTV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남자 두 명이 개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차고, 결국엔 죽이고, 박수까지 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국민 청원이 열렸지만 확실한 해답이 나올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인간이 어디까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하루하루 시험하게 되는, 믿기 힘든 뉴스들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흘러나올 것이다.

차라리 귀를 닫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관여와 악담은 어떤 ‘약자’를 죽이고, 수그러드는 듯하다가도 금세 다시 타겟을 찾는다. 권력은 국가 위에 군림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 “인간에겐 희망이 없어요.” 수많은 범죄를 목격하는 이수정 교수의 발언을 캡처해 돌아다니는 ‘짤’을 보고는 조금도 과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분노와 적의를 실어 나르는 우리는 / 누구를 가슴속에서 완전히 지우고도 /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술을 아는 우리는 // 지우개를 발명하고 / 사랑과 증오를 오려붙이고 /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은 차단하고 /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 심심해서, 라고 말하는 인류는 (97쪽, <쓰는 인류>)

환멸로 쓰인 시. 이 책의 모든 시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무튼 이 구절에서 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느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시집의 처음도 아마 그랬으리라. 등단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참아온 일들을 터뜨리고, 문단을 세차게 흔들어 놓은 시인의 하루는 너무나 고단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 <괴물>과 ‘미투’ 이후, 최영미 시인은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새 시집을 출간하려 했지만, 제안을 넣은 여러 출판사들에게 답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단 권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그의 이름을 부담스러워했다고 시인은 밝혔다. “그럼 내가 내야겠네.” 시인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당찬 해답을 냈다. 그의 인터뷰 기사(링크)에는 그렇게 자기 손으로 신작을 만든 일련의 과정이 간단히 드러나 있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로 / 존재하지 않는 깊이를 표현하려는 / 욕망에서 시가 탄생했다 / 징그럽게 늙지 않는 얼굴들 / 깊이 없는 이름들, 검색어가 점령한 서울 /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는 전염병을 피해 / 바빌로니아를 발굴하려는 욕망으로 / 시가 뚱뚱해졌다. (62쪽, <깊은 곳을 본 사람>)

요즘의 시대에 최영미의 시를 읽는다는 건, 낯설고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최영미의 시는 너무도 솔직하기 때문이다. 더 아름답고 더 깊이 있고 더 아리송해지려 노력하는 듯한 시들의 모임 속에서 오히려 뚜렷한 개성을 드러낸다. 직접적인 언어들로 감정을 전달한다. 시가 달아나 떠오르지 않는 순간을,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는 지난한 일상을, 법원에서 소장을 받은 모욕적인 기억을, 스스로 출판과 경영을 하며 겪은 새로운 경험들을, 시인은 쓴다.

허공에 색을 덧칠한 언어들 / 말이 말을 낳고 / 은유가 은유를 복제하는 / 요사스러운 말의 잔치에 질려, 나무를 보고 / 눈을 떴다 감았다 / 초록에 굶주린 몸이 도서관을 나온다 / 시 따위는 읽고 쓰지 않아도 좋으니 / 시원하게 트인, 푸른 것들이 보이는 / 자그만 창문을 갖고 싶다 / 담쟁이넝쿨처럼 얽힌 절망과 희망을 색칠할 (85쪽, <꿈의 창문>)

허무와 현실 앞에서 지나친 꾸밈 따위는 어떤 소용도 없다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말하던 그의 솔직함과 당당함은 아직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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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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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거나 특별히 이름 붙이지 않아도 계급은 옛날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유치한 비유라 할지 몰라도 비슷한 계급의 분포도를 따진다면 꼭 피라미드 모양과 같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날카로운 꼭대기와 땅에 붙어 묵직하게 자리 잡은 아래쪽을 본다. 까마득하게 놓여 있고 더 이상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1%의 세계는 가장 작지만 너무도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세상의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그 1%를 빼놓고 말하기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20 vs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그동안의 수많은 불평등 담론이 최상위 1%에 초점을 맞추던 것과는 달리 조금 더 범위를 확대한다. 이제 사회는 점점 발전되고 교육의 수준 또한 높아지고 있으니 달라진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상위 20%, 중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기자, 연구자, PD, 교수……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들은 숨 막히는 경쟁의 사회에서 조용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상위층에서의 불평등을 간과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격차는 중상류층과 그 아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파워는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기획한 ‘529 플랜’ 개혁안과도 관련이 있다. 자녀의 대학 학비 마련을 위한 장기 저축상품인 529 플랜의 세제 혜택을 없애기 위한 개혁안은 의회에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반대로 무산되었다. ― 529플랜이 제공하는 세제 혜택의 90퍼센트 이상이 소득 기준으로 상위 25퍼센트에 속하는 가구로 들어간다. (14쪽)

중상위층에 포진한 사람들이 모두 불공정한 방법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활용하여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다. 그러나 저자는 세대 간의 소득 격차가 기회의 격차와도 연결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자녀(가족)의 안위를 위해 택하는 ‘기회 사재기’가 영속적인 불평등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기회 사재기 매커니즘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동문 자녀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사정 절차, 알음알음 이뤄지는 인턴 자리 분배’. 이들은 ‘유리 바닥’으로 불리며 지위의 대물림의 한 수단이 된다.

"아메리칸 드림이 죽었다고, 또는 죽어 가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서 유행인 듯하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죽지 않았다.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있고 건재하지만, 중상류층인 우리가 그 꿈을 사재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그 꿈을 공유할 의지가 있는가?" (33쪽)

책의 초반부터 저자는 시종일관 ‘우리’라는 주어를 택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분야의 손꼽히는 연구원으로서 그는 자신이 공격하고 있는 상위 20% 중상류층에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겪고 가까이서 목격한 일들을 통해, 자신이 택할 이득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의지를 보인다. 저자는 사회의 전체적인 수준을 위쪽으로 끌어올리고 더 많은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며,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가장 고려되어야 할 것은 불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돕거나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다. 악순환을 깨기는 쉽지 않지만 그는 용기 있게 발언한다.

“모든 지점에서 개입이 필요하며, 이는 위쪽에서 벌어지는 계급 분리와 계급 영속성의 정치적 함의를 우리 중상류층이 회피하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대체로 괜찮게 산다면 소득 계층에서 한두 단계쯤 떨어지는 게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미국의 현 상황을 전제로 쓰인 책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 모두 이 현실이 우리나라와 거의 다르지 않다고 인식할 것이다. 중상류층의 ‘안전하게 살기 위한’ 그들만의 전략과 위선이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자기반성을 토대로 한 저자의 문제 인식과 대안은 분명 큰 가치가 있다. 정말 그의 말대로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일까.

불평등은 매우 열띤 정치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이다. 오바마는 불평등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어려움의 본질"이라고 언급했는데, 실로 그렇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불평등 담론은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나머지 99퍼센트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는 듯이 말이다. 1퍼센트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인 우리가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 P16

우리가 기회를 사재기하면 우리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다른 아이들은 기회가 차단되어 피해를 본다. 우리 아이가 동문 자녀 우대로 대학에 가거나 연줄로 인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아이들은 그만큼 기회가 줄어든다. 이런 행위에 대해 ‘불공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일 뿐이다. 너무나 많은 미국의 중상류층이 자신과 자녀의 성공을 전적으로 본인의 재능과 머리와 노력 덕분이라고 굳게 믿는다. - P28

기회가 ‘반경쟁적인’ 방식으로 분배될 때 사재기라고 부를 수 있다.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중상류층은 사립 학교, 명문 대학, 전망 있는 첫 직장과 같이 희소하고 가치 있는 기회들을 다른 계층 사람들보다 많이 누린다. 중상류층이 더 많은 기회를 분배받는 데에 개인의 성과와 하등 상관없는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다면 반경쟁적인 기회 사재기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 P153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비용이 하나도 안 드는 것처럼 말해서 당신을 바보 취급하지는 않겠다. 기회 사재기를 줄인다는 말은 중상류층이 지금보다는 어느 정도 손해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손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지금보다 약간 덜 고급스러운 동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덜 지루한 동네가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복도에서 가난한 아이들도 마주치게 될 것이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기보다 꽤 좋은 공립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만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정도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희망은 없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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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 안의 소녀 소설의 첫 만남 15
김초엽 지음, 근하 그림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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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이라는 신예 작가의 이름은 다른 책을 읽다가 알았다.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한 작가 혹은 평론가가 인터뷰 중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말했고,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이라는 단편을 콕 집어 언급했다. 이 언급이 아니었더라면, 늘 과학을 불친절하게 여기는 내가 그의 책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도 하지만 그저 추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어려워하던 과학 소설과는 조금 다르게 가까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 작품은 모두들 알아보는 것인지, 이제 부쩍 김초엽 작가의 이름이 종종 보이기 시작한다. 단편집을 읽기 전 소설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위한 얇은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원통 안의 소녀>는 공기와 날씨를 통제할 수 있는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걷잡을 수 없이 상태가 악화되는 대기오염의 위기 속에서 분진형 나노봇 ‘에어로이드’가 개발된다. 가정용 공기청정기 대용이었던 에어로이드는 점차 공공분사 시스템을 통해 대기와 날씨를 제어할 수 있는 용도로도 쓰이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깨끗한 환경 속에 살게 되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에어로이드를 위한 합성 물질인 ‘베타-프로니틴’에 대한 이상 면역 반응을 보였다. 주인공인 ‘지유’는 그중 하나였다. 온갖 집중 치료는 소용이 없었고 방독면 없이 밖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다행히 열 살 무렵 ‘프로텍터’라 불리는 원통형 차량이 지유에게 제공되었다. 대가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원통 안의 소녀’를 알게 되었으나 그동안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기 중의 에어로이드 농도가 옅어지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지유는 플라스틱 차량을 벗어나 걸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스피커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연락이 되는 것일까.

늘 미세먼지 걱정에 시달리는 오염된 세계에서 소설 속 상상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깨끗해진다는 상상은 행복하지만 모두가 편리한 세상을 만끽할 때 어떤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고통을 느낄 수도 있었다. 사실 이렇게 깊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가정이었다.

과학의 편리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과학 덕분에 너무도 빠르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능성’을 생각하는 소설은 너무나 따뜻했다. 과학의 편리함 속에 ‘누군가의 소외’와 ‘불편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짚어주는 저자의 시선이 너무나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세상이 더욱더 빨라지고 편리해져도 이런 마음만 있다면 다행일 것 같다.

 

괜히 억울한 기분에 지유는 프로텍터의 안쪽 벽을 툭 쳤다. 이런 걸 타고 다니는 이상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다. 투명한 원통이라고는 해도 여기저기 달린 공기 정화용 장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야가 가려진다. 그런 점을 들어서 동정심에 호소해 보지 뭐. 설마 가난한 학생에게 다 물어내라고 하지는 않겠지. 못된 생각인가?

지유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동정이 싫다면서 결국엔 동정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 P33

‘아마 이제 노아를 만날 일은 없겠지. 우리는 그냥 나쁜 사고로 엮이게 된 사이니까.’ 지유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쓸쓸했다. 목소리만 알고 있는 상대에게 며칠 만에 정을 붙이다니.
- P46

지유는 이 도시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에어로이드가 없는 도시를 상상했다. 그건 언제나 모순적인 감정이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하고 멀리 있었다. 이 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햇볕을 머금은, 물기 어린, 비가 온 다음 날이면 곳곳이 반짝이며 빛나는 …… 그러나 자유를 위해 설계되지 않은 도시. 평생을 이곳에 살았지만 지유는 여전히 이곳의 여행자였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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