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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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간단하다. 오로지 주인공의 시점에서 바라본 영상을 담을 뿐. 그러나 단 한 줄의 줄거리로 요약될 수도 있는 이 소설은 어째서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것인지.

죽음은 단연 무섭고 반갑지 않다. 삶을 치열하게 살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도 있지만 막상 떠올리면 막막하고 두렵다. 고통이 더해진 누군가의 죽음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하지만, 격랑 같은 삶을 살다가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죽음은 무척이나 마음 시린 것이 아닌가. 절대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러나 <아침 그리고 저녁>은 이러한 ‘죽음’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아름답게 미화하거나 과장해서 그려내지 않았다. 그저 생과 사의 경계에 선 한 남자를 둘러싼 주변의 세계들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오랜 시간 살아온 터전, 어우러지는 자연,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들, 기억, 남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책 속에서 흘러가는 주인공의 일상은 ‘모든 것이 다르면서 여느 때와 같고,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으면서 동시에 다르다(58쪽)’. 어제, 그리고 지난주, 비슷하게 흘러갔을 ‘오늘’을 흘러가듯 잠잠히 서술하고 있으나, 책의 후반부 어딘가 다른 그림을 발견하고 그것이 하나로 맞춰질 때 독자는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한다.

초록의 오랜 바닷속 물로 된 오래된 집 그곳에 오래된 모든 것 더이상 없고 빛나는 별들 멀리 물러났다 가까이 다가와 흐릿한데 모든 것에 별과 같은 광채, 땅속으로부터 드러난 부드럽고 또렷한 차가운 선 하나 그리고 저 고요 이 그곳에서 비롯되었으나 더이상 그 안에서 오지 않을 있어야 할 것 그러나 다시 오지 않고 사라지는 무엇 그 소멸은 늙음에 다름 아니나 결코 그와 같지 않으며 저 또렷한 외침 맑게 외침 별처럼 또렷하고 이름처럼 감각처럼 바람 이 숨 고요한 숨 그러고 나서 고요히 고요히 고요한 움직임들 (19쪽)

책 속에 묘사된 아이 탄생의 순간, 무의식으로 내뱉는 언어는 언뜻 보면 시 혹은 정리되지 않은 비문과도 같지만 각각의 어절을 발음할 때마다 야릇한 기분이 들게 된다. 고요하고 잠잠하지만 역동적으로 뛰고 있는 생의 모든 것들을 상상하게 한다. 소설 속에는 생과 사가 혼재되어 있다. 섞이고 섞이고, 마침내 분리되는 순간 ‘아침과 저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눈부신 아침, 그리고 저녁. 다가오는 죽음이 마치 날마다 이어지는 아침과 저녁의 순환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떠나는 거야, 자네와 내가(129쪽)”

최근의 숱한 안타까운 죽음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이 책을 만나며, 모두가 이렇듯 (갑자기 찾아온 죽음은 혼란스러울지라도) 평온하고 잔잔하게 사랑하는 존재들을 떠올리며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 잘될 거야, 그럼그럼, 마르타가 여전히 느리고 깊은 숨을 쉬며 말한다, 이 세상 바깥의 고요한 어딘가에서 오는 숨이라고, 올라이는 마르타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요한네스는 큰 소리로 울고 또 울며 세상 밖으로 울려퍼지는 제 목소리를 듣는다, 울음.소리는 아이가 새로이 속한, 세상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다뜻하고 검고 조금 붉고 조금 축축하고 온전한 것은 더이상 없다, 이제 저 자신의 움직임뿐이다, 모든 것을, 존재하는 모든 것을 메우려는 듯한, 무엇인가, - P24

그래, 아침을 유달리 좋아한 적은 없지만, 아침에는 항상 너무 춥고 집안이 썰렁하니까, 어차피 춥고 흐린 날씨라 해도, 아침은 유독 흐리고 추운데다 하늘도 아침이면 제일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 누가 뭐래도 하늘이 눈부시게 푸른 여름 아침도 물론 있었고, 이따금 하늘빛이 부드럽고 가벼운 새벽도 있었지만, 그래 물론 그렇지만, 그의 눈에는 항시 달리 보였다, 춥고 흐린 아침이라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 했던가, 밝고 부드럽든, 어둡든 심지어 칠흙 같든, - P54

부잔교와 부표에 묶여 있는 그의 작은 노 젓는 배, 그리고 보트하우스들과 거리 위쪽의 집들을 바라보며 그는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요한네스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것을, 하늘 저 뒤편에서, 사방에서, 돌 하나하나가, 보트 한 척 한 척이 그에게서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그는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모든 것이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 P74

그리고 요한네스가 올려다보니, 페테르의 고깃배는 난바다를 향해 서쪽 항로로 나아가고 있다

나갈 수 있으려나, 파도가 높은데다 비바람까지 부는데? 요한네스가 말한다

갈 수 있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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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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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것들을 만날 때 나는 당황하고 막막해진다. 시의 문장 속에 담긴 생각을 파악하지 못해서 답답해진다. 어떤 예술 작품 앞에서 창작자의 마음을 골똘히 생각한다. 사랑 앞에서 시시각각 널뛰는 기분이 못마땅하다. 문학과 예술과 사랑, 나는 이것들을 아직 다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능숙한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이들이 다 같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정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 모호함이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각각은 더욱 풍성해진다’. 그림과 시와 사랑, 셋의 공통점이라 생각한다.

이 셋 모두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는 정말로 풍성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은 ‘활자에 잠긴 시’라 이름으로 예술과 문학을 접목시킨 시리즈 중 한 권의 책인데, 화가 ‘프리다 칼로’와 시인 ‘박연준’이 주인공이다. 박연준 시인은 책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번역’한다. 그림에 대해 해박하지 않을뿐더러 낮은 수준의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는 시인은, 그림 번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그림과 시의 공통점을 말한다. “그림과 시는 비와 눈처럼 닮았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미술 평론가의 해석 대신에, 시인은 “‘왜’라는 물음 대신 이미지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보았다"라고 말한다. 장르의 변형은 시인에게도 도전이지만, 그림 속에 살아 숨 쉬는 프리다 칼로의 영혼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프리다 칼로의 형상을 한 시의 관절들 ―기형으로 꺾이다 나뭇가지처럼 자라나는 창작 욕망, 날것으로 파닥이는 혀, 꿰뚫는 시선, 우회하지 않는 손가락, 달을 가리키는 입술―에 매료되어 이 책을 썼다. 쓸모없어 보이는 이야기들과 주변을 맴도는 나 자신의 이야기들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이룰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청소년기 사고로 몸 한가운데 강철봉이 박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자화상은 한동안 잊히지 않고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림과 함께 알게 된 그의 삶은 고통과 비극이 넘쳐 났다. 사랑하는 사람은 줄곧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여성 편력과 외도로 그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프리다 칼로는 그를 목숨처럼 사랑했다. 그의 그림 속에는 그가 사랑했던 ‘디에고 리베라’의 모습이 종종 담겨 있으며, 때로는 상처 입은 마음과 눈물이 그대로 담겨 있다. 프리다 칼로의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프리다 칼로는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선택한 사랑과, 삶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시인을 통해 이 책에서 몇 편의 시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과 삶의 자질구레한 모습들이 더해졌다. 이 책은 프리다 칼로를 향한 애정의 기록이기도, 온갖 감정을 드러냈던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쓴 사랑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림과 시와 사랑, 셋이 만나 풍성하기도 하거니와 각각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사랑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인생이 어떤 원리로 흘러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봄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늙은 개의 입에선 비린내가 나고 눈곱이 많이 생기는 새끼의 건강은 좋지 못하다는 것을 ‘그냥’ 아는 것처럼, 받아들일 뿐이다. 살아 있는 것은 왜 늙는지, 왜 죽음을 피할 수 없는지 답을 알 수 없다. 그저 늙은 동물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처럼 동물도, 늙으면 휜다, 모든 면에서. 익은 모과에선 향이 나고 오래된 모과는 기어코 썩는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아는 것. 어떤 사랑은 죽지 못한다.

외로움이란 누구를 골라 찾아가고 비켜가는 감정이 아니다. 불시에, 누구에게든 온다. 비나 눈처럼. 온다.

이제 나는 외로운 상태를 ‘조금’ 안다. 하나일 때보단 둘일 때 오롯해지는 감정. 젖은 옷 같은 것. 비에 젖은 옷 아니라, 눈에 젖어 시나브로 축축해진 옷. 입고 있기엔 축축하고, 벗어 말리자니 유난을 떠는 일 같아 감추게 되는 것. 설명할 수 있지만, 하려다 마는 것.

"탁자를 벽으로 밀고, 밀고, 밀면 벽에 닿지. 벽에 닿으면 어느 순간 벽을 뚫고 벽 너머의 세계로 갈 수 있을 것 같거든? 정말, 벽 너머로 말이지. 아주 잠깐. 테이블이. 벽 너머로. 그 기분과 비슷해. 황홀하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려)는 일이니까. 벽 너머로 갈 수만 있다면! 동시에 불행한 일이기도 하지.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하염없는 짓이니까. 끝나면 벽 밖으로 다시 튕겨져 나와야 하거든. 나는 다시 벽 밖의 사람이 돼. 허기지지(원래 사랑에 빠진 자는 허기지잖아?). 다른 사람이라는 벽. 사랑이 벽 밖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비극이지. 그렇지만 또 시도하는 거야. 벽 속으로, 벽 너머로, ‘잠시’라도 들어갔다고 착각하기 위해서. 당신이라는 벽, 말이야. 사랑의 환락을 경험하려고. 환락 끝에 마주하는 게 다시 벽일지라도. 다시 우리는 테이블을 밀고, 밀고…. 밀어 보는 거지."

마음이 변해서 사랑이 죽는 게 아니야.

돌보지 않아서 사랑은 죽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돌보지 않으면 죽어. 이 자명한 진리를 사람들은 모를 때가 많아. 특히 더 많이 사랑받는 자들은 모르지. 사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러나 끝난 사랑은 누군가 돌보지 않은 결과야. 가꾸지 않으면 집 안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은 죽는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사랑은 깨지기 쉬운 원료로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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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 -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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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리듬으로 살다가 온몸으로 편안하게 늘어질 수 있는 시간이 오면 마침내 긴 호흡을 들이쉴 수 있다.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어딘가로 정처 없이 걸을 수 있는 건, 온종일 시간이 비워진 주말의 특권이다. 계산적으로 짧게 쪼개진 일상의 호흡이 조금 느려진다. 시야 또한 넓어져 미처 보지 못했던 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잿빛 안개가 씌워져 있던 산과 건물은 어제보다 오늘 더 또렷해졌다. 재빠르게 날지 않고 종종거리며 걷는 참새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천의 흐르는 물속에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새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2019년 1월, 시인의 타계 소식을 듣고 책장 속에 꽂혀 있던 두 권의 책을 다시금 꺼내 보았다. 국내에 출간된 책은 단 두 권 뿐이라 아쉬워하다가, 연말이 돼서야 출간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라는 담백한 부제는 작가의 이름에 퍽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그가 말하는 ‘시’는 조금 다른 면모로 다가오는 듯 느껴진다. 세상의 수많은 시인들에게 ‘삶=시’라는 명제는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메리 올리버의 삶엔 다른 하나가 더해진다. 삶과 시, 그리고 자연.

때로는 광각렌즈에 투영된 장면처럼 넓은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때로는 작고 작은, 좁디좁은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금 뚫어지게 바라보며 사랑을 느끼니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무한대로 넓어진다. 시인은 자연을 위대한 조언자로 칭하며 구름과 바다, 돌고래, 지렁이의 움직임, 나방의 날개와 같은 것들을 본다. 수많은 종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자연의 생물들이 사냥을 하고 굶주리고 잡아먹히는, 그렇게 만들어진 생태계를 관찰한다. 어쩌면 소박하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위대한 것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리하여 처음에 세상이 온다. 그다음엔 문학, 다음으로 연필이 천 마일의 종이 위를 움직여 해낼 수 있는(어쩌면, 가끔) 것은 무엇인가.(52쪽)” 누군가에겐 외면을 당하고 짓밟히거나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시와 자연은 그에게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인간과 호랑이, 호랑이와 참나리가 다르면서도 얼마나 흡사한지 보라! 우리 모두 몇 번의 여름, 여기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가 끌어모을 수 있는 육체적, 지적 능란함으로 우리 상태를 개선시키고 그런 뒤에 조용히 풀밭으로, 죽음의 초록 구름으로 물러나지 않는가? 그 무엇이 솟아나면서, 사라져가면서 귀엽거나 매력적일 수 있는가?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 나는 풀 위로 머리를 내민 백합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 심장의 줄기로부터 즐거운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한 나라, 한 가정에 살고 있으며 한 램프에서 불타오른다. 모두가 야성적이고, 용감하고, 경이롭다. 우리는 아무도 귀엽지 않다.” (118쪽)

귀엽다는 말은 오락거리로 대체되거나 위엄을 잃고 누군가에 의해 소유될 수 있다는 시인의 우려 섞인 말을 들으며,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짓밟힌 것들을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굳건히 지켜낸 강인한 모든 존재들을, 우리는 너무 손쉽게 망가뜨리고 있진 않은지.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금세 바쁜 일상 속에 흐려지곤 한다. 이렇듯 모순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 속에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시인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고 존재했다는 것은 또한 너무나 경이로운 일이 아닌가. 시인처럼 살지 못해서, 나는 가끔씩 그의 책을 넘기며 마음을 조금씩 가다듬는다. 작은 하나라도 지켜보자는 다짐으로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본다.

삶은 더 이상 기쁨과 용맹 속에서 발현되지 않고, 오직 세속적 재물 축적의 도구로만 이용된다. 시가 그런 사람들에게 의미를 지니려면, 그들이 먼저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물질에 구속된 사리추구적 삶에서 벗어나 나무들을 향해, 폭포들을 향해 걸어야 한다. 시를 읽는 사람들이 너무 적은 것은, 이 겁에 질리고 돈을 사랑하는 세상에서 시의 영향력이 너무도 미미한 것은, 시의 잘못이 아니다. 결국 시는 기적이 아니다. 개인적 순간들을 형식화(의식화)하여 그 순간들의 초월적 효과를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시는 우리 종의 노래다. "세상의 종말은 영원히 오고 있지 않는가?" - P42

첫 번째 축복인 자연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흥미로움, 신비로 가득했고 행운과 불운을 있었지만 남용은 없었다. 두 번재 축복인 문학의 세계는 형식의 즐거움을 준 것 외에도 감정이입(키츠가 부정적 능력이라고 부른 것의 첫 단계)이라는 자양분을 제공했고, 나는 그걸 향해 달려갔다. 나는 그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기꺼이, 기쁘게 모든 것―다른 사람들, 나무들, 구름들―의 대역을 맡았다. 그로 인해 다름 속에 서게 되면서, 세상의 다름은 혼란의 해독제임을 깨달았다. 바깥의 들판이나 책 속 깊은 곳에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최악의 아픔을 겪은 마음에 고귀함을 되찾아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 P45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을 그리는 것과도 같다. 어떤 별들이 누락되거나, 잘못된 자리에 놓이거나, 잘못 해석되거나,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나는 밀레이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반 바구니쯤 되는 양일까? 누구든 타인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가? 우리는 그러기를 희망해야 한다. 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이 어둡다. 나는 가공할 힘을 지닌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이해되거나 오해될 열정적인 말들을 듣는다. 나는 심장이 몸의 문간에서 긴 돌계단을 내려가 홀로 이 세상에서 나가는 걸 느낀다. - P115

‘귀엽다’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 같은 말들은 잘못됐다. 그런 식으로 지각되는 것들은 위엄과 권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귀여운 것은 오락거리로 대체 가능하다. 말들은 우리를 이끌고 우리는 따라간다. 귀여운 것은 조그마하고, 무력하고, 포획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실수다. 우리 발치에는 양치식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인간 종족이 어디에도 없고 전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던 때에 최초의 이름 없는,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다의 무시무시한 여울 속에서 거칠고 결연하게 자라났다. 우리는 그것들을 예쁘고, 섬세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우리의 정원으로 가져온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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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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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길이면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보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나치던 고가 밑 도로, 동생을 데리러 가던 어린이집, 초등학교로 가는 표지판들을 깊숙이 살펴보지 않고 늘 스쳐가곤 했다. 몇 미터만 가면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애써 발길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히 느껴지는 노스탤지어와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오랜 시간 동안 직접 가까이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옛날 동네에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 저기다. 한번 가볼까? 오랜 추억을 함께 갖고 있는 언니와 즉흥적으로 핸들을 돌렸던 것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에 걷던 골목을 자동차의 속도로 스쳐갔다. 너무나 많이 변했고, 너무나 그대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을 정리하기엔 버거웠다. 감정뿐일까. 그곳의 냄새도 기억한다. 바람도, 공기도. 그러나 완전히 행복한 기억만 떠오르지 않는다. 좋고 나쁜 분위기가 언뜻언뜻 떠오른다.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머뭇거리게 되는 어린 시절의 냄새는 시원하면서도 비릿한 수영장의 냄새와 닮았다. 시퍼런 책표지에 마음이 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민선의 하루를 그린 만화. 책은 ‘수영장’의 차갑고 비릿한 냄새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맞벌이, 늘 자신보다 뛰어났던 친언니, 친구들의 은근한 놀림과 조소,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민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가능할 듯한 익사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39쪽)
“분명히 다들 나처럼 불편해하면서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127쪽)

조금 불쾌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듯하지만 주인공 민선이 툭 던지는 말속에는 뼈가 숨어 있다. 어린이였다면 알지 못했을 뼈의 존재도, 어른이 된 내겐 분명하게 보인다.


민선의 하루는 책의 마지막, 세월을 건너뛴다. 동네의 작은 수영장은 어느새 큰 공간으로 확대된다. ‘가능한 손끝으로 입수하고, 가능한 오래, 물 안에서 머무른다.’ 차가운 물은 금세 적응된다. 물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그 차가움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차가워지고 식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수많은 민선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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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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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책을 시작할 땐 마음이 편안하다.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집중력,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온다. 추리력, 사실을 검증하고 정체를 밝히려는 호기심 또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런 것은 팩트고 저런 것은 거짓이다,라는 명제는 던져두자. 왜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따지지도 말자. 오로지 필요한 것을 하나만 정하라면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사랑의 감정,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될 것이다.

아, 그런데 이쯤에서 약간의 실수를 한 것 같다.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에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야 한다. 조금이 아니라 우주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쯤으로 말해야 할까. 등장인물은 자그마치 외계인이다. 게다가 권태기가 와 떠나버린 전남친의 몸을 빌려 변신했다. 여러 의미로 괴상망측한 존재인 외계인은 주인공 ‘한아’를 이용하거나 농락하러 온 것이 아니다. 단지 지구 저편에서 바라본 한아의 모습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웠을 뿐. 세계를 파괴하기를 넘어 서로를 파괴하기까지 하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며 살아가던 한아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띄었던 모양이다. 한아의 삶의 방식은 그의 직업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환생’이라는 빈티지 샵을 운영하며, 누군가의 삶이 맞닿은 옷들을 섬세하게 살펴 추억을 보존한 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소설 속에는 주인공 한아를 비롯해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지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람들 속에서 지구를 살리려 노력해보는 사람,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해 마땅히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 나만의 영원한 우상을 위해 평생을 사는 사람,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면 유별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누구도 그들을 나무랄 권리는 없으니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소설 속에 가득 담겨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왜 경민이 얼굴로 왔어? 물론 처음에 널 봤으면 꽤 놀랐겠지만…… 정우성 얼굴로 올 수도 있었잖아!”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도 물론이지만, 정세랑 식 유머는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게 되는 데 한몫을 한다. 현실에서 전혀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일들을 재치 있게 펼쳐나가는 뻔뻔함에 되려 기분이 좋아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소설. 요즘 이런 소설은 정말 많지 않다. 비슷한 온도와 가득 힘을 준 문장들로 개성을 찾기 힘든 한국 문학 속에서 일관성 있게 자신만의 문학을 밀고 나가는 정세랑 작가는 한아의 모습과 닮아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어찌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거야.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다들 날아가서 부딪치면 좋겠다. 한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경민이 와준 건, 왠지 대놓고 인정하긴 싫었지만 행운이었다. 우주적 행운. 한 반광물 생명체의 획기적 진화. 대단한 희생을 기반으로 한 기적. 뭐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 한아는 망원경 앞의 저녁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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