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페증.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현실에서 멀어지고 자기의 내면에 틀어박히는 정신질환.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자페증이 뭔지 이해하기는 너무 부족하다. 역시 네이버 지식인에 도움을 받았다.
자폐증 (Autism)은 유아나 소아에게 잘 나타나는 병적인 소외 현상으로 대개 성인이 된 다음까지 이어진다. 원인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청각 및 시각자극에 대한 이상 반응이 나타나고 언어 발달이 매우 느리거나 이뤄지지 않아서 상대방의 말을 되뇌이거나 같은 말만 반복한다. 사회상 발달도 더디어 눈길을 맞추거나 타인과의 사회적 접촉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특정 물체 혹은 생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이로 인해 특이행동과 더불어 늘 생활하는 곳이 아닌 다른곳에 간 경우처럼 주변환경이 일상적인 패턴을 벗어났을때 불안해하거나 소리를 지르는등의 행동을 보인다. 지능은 평균 이하로 여겨지나 어떤 면에서는 정상인보다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도 간혹 있다. 단순기억 시각공간적 기능을 요하는 면에서는 뛰어난 경우도 있다. 자폐증이 장애로 인정받은 것은 1999년이다. 나는 한번도 주변에서 자폐아를 본 적이 없지만 1000명당 한명꼴로 나타나는 장애라고 한다.
스무살난 초원이는 자폐증이다. 자폐아들만 다니는 특수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의 특기는 마라톤이다. 이는 엄마가 어릴때부터 뭔가 아이가 좋아할 만한것을 하나 만들어 주기 위해 열심히 훈련을 시킨 덕분이다. 초원이는 마라톤 외에도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한다. 어느날 세계 마라톤에서 1등을 한 경력이 있는 선수가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초원이가 있는 특수학교로 오게 된다. 이를 안 엄마는 초원이에게 마라톤을 지도 해 줄것을 부탁하고, 초원엄마의 질긴 부탁으로 그 선수는 마지못해 초원이를 가르치게 된다. 초원이 엄마는 초원이를 춘천마라톤에 내보내서 서브쓰리 (마라톤 41.195km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것) 를 할수 있게 하는것이 꿈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것은. 뻔한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 장애가 있는 사람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대부분은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인간승리 휴먼드라마가 되기 쉽상이다. 허나 말아톤은 그 쉽고도 안전한 길을 용케 잘 피해간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인의 갑절은 노력해서 정상인도 하기 힘든 마라톤 서브쓰리를 해내는 것. 영화는 그것에 촛점을 맞추지 않는다. 물론 주인공 초원이는 마라톤을 하고 또 마지막에는 춘천마라톤 코스에 참가해서 완주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나기는 하지만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엄마의 눈물겨운 모성을 보여주는 영화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장애아의 엄마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아이를 위해 헌신적이다 못해 자기몸이 만신창이가 될 지경건만 그저 아이를 돌보는 일에만 몰두하는 엄마. 초원이 엄마도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는 질문을 한다. 정말로 그게 다만 아이를 위해서냐고. 초원이 엄마는 끊임없이 사람들 앞에서 부정하지만 스스로를 속이지는 못한다. 코치 선생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입원한 병실에서의 독백을 통해. 장애를 가진 아이 엄마도 사람임을. 그래서 아이를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또 아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장한엄마 컴플렉스로 인해 아이를 다소 힘들게 하더라도 무리를 해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함을 인정한다. 둘째는 자폐아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일반인의 시선으로 찍혀있다. 하지만 마지막 초원이가 춘천 마라톤에 참여하여 달리는 장면에서는 온전하게 초원이의 시선. 즉 자폐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물론 영화 자체를 자폐증 장애를 가진 사람이 찍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게 정말로 자폐아의 시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에본 자폐증 환자가 나오는 프랑스 영화처럼. 무조건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꿈결같은. 마치 장애를 온갖 화려한 상상으로 뒤덮으려는 짓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관객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배우 조승우의 힘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승우가 요즘 잘 나가는 연예인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처럼 흥행보증수표인 누구누구, 관객동원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누구누구의 영화는 아닌 것이다. 여기서 배우 조승우의 힘은 오로지 연기력에 기인한 것이지 그의 스타성에 의한것이 아니다. 다소 작은 체구와 가는선을 지닌 배우 조승우는 언젠가 영화 기자들이 조금만 더 외모가 받쳐줬으면 하고 안타까운 배우 1위로 꼽았을 만큼 사실 그의 비주얼은 별로 볼것이 없다. 그래도 영화배우니까 조금 특별해 보일 뿐. 만약 조승우가 일반인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잘생겼다 혹은 멋지다라는 말을 듣고 살았을성 싶지는 않다. 흔히 비교되는 영화배우 박해일과는 또 다른 종류의 평범함을 가지고 있다. (말아톤 초원역에 박해일도 물망에 올랐었다고 한다.)
사실 춘향전에 나왔을때만 해도 나는 조승우가 배우라기 보다는 그저 대가의 작품에 운좋게 주연을 따낸 일회성 신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 와니와 준하, 후아유, H, 클래식등에 나왔을때도 고만고만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인것 같았다. 허나 하류인생부터 조승우는 영화속에서 자신의 아우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늘 다른 배우들에게 가려 있어서 허약하게 보였던 그의 연기에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쩌면 그 전의 배역들은 H를 제외하고 그다지 인상적인게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 말아톤은 조승우가 아니면 도저히 안되었겠다 싶을 정도로 그는 호연을 보여준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그러하듯. 조승우 역시 초원이역을 맡아 완벽하게 변신한 배우 조승우가 아닌. 자폐증 장애가 있는 스무살 윤초원 그 자체가 되었다. 어느 연기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이 영화에서 조승우는 온몸으로 연기를 해야 했다. 자폐증으로 인한 틱, 본인의 나이보다 20년은 더 정신연령이 어린 몸짓 (조승우는 80년생이며 극중 초원이의 정신연령은 5세이다.) 거기다 특이한 발성법과 목소리까지. 정말 눈빛연기 하는 사람은 연기도 아니게 편하겠다 싶을 만큼 배우 조승우는 머리카락부터 엄지발가락까지 다 연기를 한다. 사실 장애를 가진 역활을 하면 어지간히만 해도 다 칭찬을 받는다. 하다못해 데뷔 10년이 넘는동안 연기력에 대한 칭찬은 단 한번도 받아본적 없는 김희선마저 슬픈연가에서 시각장애인 역활을 맡아 칭찬을 받을 지경이니 말이다. 허나 조승우는 이 영화에서 어지간히 연기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장애 연기는 조승우로 인해. 조승우 이전과 조승우 이후로 나뉠지도 모른다.
중견배우 김미숙의 연기는 비교적 만족스럽다. 그녀의 오바하지 않는, 너무 애끓지 않는 담담함으로 인해 이 영화는 자칫 뻔한 감동으로 이어질뻔 한 부분들도 스무스하고 담백하게 넘어간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역이라면 당연히 수반될 지나치게 진한 눈물도 김미숙은 흘리지 않는다. 오히려 김미숙은 단 두어시간동안 장애를 가진 엄마가 아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엄마처럼 단련되어있고 담담해진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역활에 만약 대단한 연기파 배우를 내새웠다면 장애아대 장애를 가진 아이 엄마의 세기적인 연기대결이 될 뻔 했겠으나 김미숙은 관객의 시선이 옳곧게 조승우를 향하도록 지나침없이 잘 보조를 해 주고 있다. 따라서 약간 밍숭한듯 하지만 김미숙의 연기력은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연기력이라기 보다 캐릭터와 영화의 이해력이 뛰어난 똑똑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자폐증 장애를 가진 아이의 마라톤 완주라는. 보지 않아도 다 본듯한 뻔한 스토리로 인해 망설인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영화표를 끊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나 뻔했다면 나는 이 영화의 리뷰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이긴 하지만. 감히 내가 미리 예측을 한다면 적어도 내 이럴줄 알았다는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하는데, 나는 지하철 장면과 마지막에 초원이가 얼룩말과 함께 달리는 장면에서만 울었다. (지하철보다 얼룩말에서 더 많이 울었던것 같다.) 눈물이 많은편이라면 손수건이나 티슈를 준비함과 더불어 여성이라면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도 하지 말것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