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영화표를 모으기 시작했다. 가끔은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때 부터 줄곧 모아온것 같다. 해마다 묶음으로 정리하는데 많이 보기 시작한 요즘에는 연도별로 정리해두지만 그 전에는 그냥 한꺼번에 다 뭉쳐뒀다.

요 몇년간 보통은 40편 이상 60편 이하로 봤었다. 올해는 딱 40편을 봤다. 가을과 겨울에 너무 게으름을 피워서 저조한 성적이다.

사실은 영화 표만 모으는게 아니다. 목록도 작성해둔다. 영화표를 잃어버릴때도 있으니까. 거기에는 날짜와 시간. 제목, 영화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누구와 봤는지가 적혀있다. 누구랑 영화를 봤는지를 보면 그 당시 내가 어떤 사람과 자주 다녔는지를 알게된다. (더 디테일하게는 사귀던 남자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일테니) 그리고 한해에 7편 정도는 혼자 보는것 같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고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으면 그렇게 된다. 제일 많이 가는 극장은 메가박스. 요즘들어서는 MMC를 많이 간다.

올해 처음으로 본 영화는 1월 5일날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다. 혼자 봤는데 시간으로 봐서 (4시 45분) 분명히 회사 땡땡이치고 본거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오늘 본 왕의 남자. 꽤 재밌었고 동네 언니랑 같이 봤다. 12시 영화를 보려다가 좌석이 앞자리 뿐이여서 한시간을 카페에서 기다린 다음 1시 영화를 봤다.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릴때부터 나는 영화를 너무너무 좋아했었다. 그래서 자막을 읽을 수 없을때에도 부모님들은 나를 데리고 영화관에 가는걸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스크린에 푹 빠져서 조금도 칭얼거리거나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큰 스크린에 압도되었고 내가 사는 내내 저것은 매력적으로 나를 홀리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렸을때 본 영화는 슈퍼맨, ET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다음에 기억에 남는건 아무래도 대학교때 본 영화일 것이다. 이미 지나간. 그래서 나는 보지 못했던 영화를 비디오로 봤는데 그 재미에 빠져서 하루에 4편씩 잠도 안자고 본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한참 스펀지 같이 말랑해서인지 봤던 영화들 모두를 빨아들였던것 같다. 요즘에는 영화를 보면 그 감정이 그렇게 오래 가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꽤 고생했었다. 현실감을 찾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으니까. (이렇게 감정 이입이 잘 되는데 왜 연기는 그렇게 못했을까?)

영화를 본다는 것은 늘 설레이고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개봉하기를 오래 기다린 영화의 표를 끊었을때는 잠시지만 심하게 행복하기도 하다. 나중에 근사한 서재를 꾸미는 것도 꿈이지만. 그게 이뤄지면 집에 작은 상영관을 꾸미고 싶다. 프렌즈의 조이네가 쓰는 가죽 의자 (뒤로 팍 제껴지는) 도 가져다 놓고 팝콘 튀기고 콜라에 얼음 동동 띄우고. 아...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그래도 거의 대부분은 영화관에서 보고싶다. 왜냐면 웃을때 다 같이 와~ 하고 웃는 그 재미가 없으니까. 영화는 그럴때야말로 보는 맛이 있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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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1 0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5-12-3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영화표 다 모아요. ^^ 극장별로 분류해놓는데. 님도 극장별로 해놓은거 같은데요? 예전엔 저도 같이 본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는데 혹시라도 나중에 여자친구가 보게 되면 기분이 나쁠거 같아서 안적은지 오래됐어요. ^^

twoshot 2005-12-3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의 여자...농담이죠?^^

moonnight 2005-12-3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영화 좋아해요. ^^ 영화본 거 적어놓는 일기장 같은 게 있는데 거기다 표를 같이 붙여놓는 식으로 영화표도 모았었는데.. 요즘은 그냥 뭐, 잃어버리기도 하는 거 같아요. ^^;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영화표는 다 똑같은데 그걸 뭐하러 모으느냐고요. ^^;;; 왕의 남자. 저도 보고 싶네요. 기대되던데.

플라시보 2005-12-3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히히. 고쳤습니다. 바본가봐요.^^

아프락사스님. 아뇨. 극장별은 아니고 그냥 연도별로 정리해뒀어요. 같이 본 사람들의 이름은 극장표에 적지 마시고 그냥 따로 적어두세요. 그럼 여자친구가 볼 일 없잖아요.^^

marcus님. 아뇨. 농담이 아니고 어쩌다 저렇게 적힌겁니다. 어떤분이 지적 해 주셔서 고쳤어요. 히히^^

moonnight님. 이제 제 주변사람들은 영화표 모은다는거 알고 자기들이 챙겨줘요. (티켓을 항상 제가 들고 있는건 아니니까) 다 같은 영화표지만. 나중에 보면 이것저것 떠올릴게 많잖아요. 일기쓰는거랑 똑 같은것 같아요.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은 것. ^^ (왕의 남자. 생각보다 재밌어요. 사극 특유의 중간에 살짝 지루함 이런게 전혀 없거든요.)

토토랑 2006-01-0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프랜즈 조이의 그 의자는 상표명이 'Lazy boy' 라고 하더군요,
회사동기 누나네에 그게 있는데 진짜 한번 앉으면 두어시간은 후딱가고 일어나기 힘들다고 ^^;;

플라시보 2005-12-31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랑님. 오.. 상표가 그것이로군요. 비싸긴 또 끝내주게 비싸죠? 조이네가 가지고 놀던 그 뭐냐 테이블식으로 된 축구경기 하는거 있잖아요. 그것도 몇백만원이나 하더라구요. (걔네들이 워낙 허접스럽게 가지고 놀아서 몇푼 안하는줄 알았다가 보고 놀랐어요) 아으... 그 의자 정말 꼭 사고 싶어요. 서재에도 하나 놓고 싶구요. 제가 책읽는 습관이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기 때문에 책상에 딱 앉아서는 좀처럼 책을 잘 못보거든요.

흰 바람벽 2006-01-0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를 무척 즐기는데요.
시집간 뒤로 영화 한편도 못 봤어요~~~ ㅠ.ㅠ
아흑~ 하두 징징대니깐 신랑이 뭐 이것저것 다운받아서 집에서 보자하는데...
글쎄 주말엔 뭐 봤게요?
(밴드 오브 브라더스)무려 1~6편까지 죽치고 봤습니다.
총알 날라다니고, 피 튀기고...
좋은거 이쁜것만 봐도 시원찮을판에 전쟁영화라니~
ㅋㅋ

플라시보 2006-01-0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흰 바람벽님. 음.. 결혼하면 영화보는거 쉽지 않을것 같아요. 밴드 오브 브라더스 보셨나봐요? 전 그거 케이블에서 해 줄때 가끔 봤어요. 참 이상하게 요즘은 피 튀기거나 그러면 눈을 감게 되더라구요. 전에는 눈을 부릅뜨고 보면서 저거 피가 너무 덜 걸쭉한거 아냐? 막 이랬었는데..흐흐.
 

오로라 공주 : 방은진. 그녀의 성공적인 감독 대뷔에 박수를...

방은진. 내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95년도 작품인 301.302를 통해서였다. 요즘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인형같이 예쁜 것 이외에는 별로 하는일이 없었던 황신혜와 함께 열연을 했던 방은진은. 특수분장을 하고 끊임없이 요리를 하고 또 요리를 먹는 여자로 나왔었다. 당시 그 영상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나는 며칠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를 보면서 연기를 참 잘 한다고 느꼈고 훗날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에서 그녀는 이런 내 생각을 입증이라도 하듯 역시 열연을 펼쳤다.

그런 방은진이 감독으로 대뷔했다. 가수이기 이전에 먼저 영화배우였던 엄정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로라 공주는 방은진의 감독 대뷔작이다. 이 작품의 성공 여부에 따라 그녀는 ‘연기나 하지 왜 설치고 난린가’ 혹은 ‘이렇게 잘 할꺼 왜 진작 안했는가’ 라는 극명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오늘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내 개인적인 평가는 후자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평단은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이미 많은 부분의 스토리가 노출되었다. 주인공인 엄정화는 5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그때마다 단서를 남긴다. 이 단서를 형사인 문성근과 권오중이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정작 중요한 스토리들은 모두 숨겨져 있다. 엄정화의 캐릭터는  언뜻 보면 예고 살인을 하는 팜므파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또 엄정화가 남기는 오로라공주 스티커의 단서는 실제 영화에서 단서로써의 의미 보다는 엄정화의 비밀에 대한 부분을 말해준다.


오로라 공주가 정말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시나리오의 뛰어난 완성도이다. 엄정화가 보자마자 방은진을 쫒아가서 졸랐다고 하는 부분이 이해가 간다. 특히 마지막에 모든 사건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시나리오는 거의 최고점을 보여준다. 엄정화 혼자서의 고군분투가 아닌 또 다른 사람의 도움. 그리고 그것으로 완성하는 그녀의 살인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리고 엄정화가 이루지 못한 한 껀의 살인은 실제 화면에서 보여지지는 않지만 확실한 암시를 해 주고 끝이난다. 오프닝 씬은 엔딩 씬에 가서 그 의미를 알려준다.


여기서 우리는 엄정화라는 배우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가수 출신의 (그녀는 영화가 먼저였지만 가수로써의 훨씬 알려졌으므로) 예쁘장한 얼굴 하나 믿고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해대는 여느 여가수들과 달리 그녀는 정말로 배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준다. 이미 결혼은 미친짓이다와 싱글즈에서 그 가능성을 입증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썩 좋은 시나리오가 가지만은 않는 것 같았다. 어쨎거나 그녀는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고 그것은 감독에게 분명 부담감으로 자리했을테니 말이다. 이 영악한 배우는 그래서 가만 앉아 시나리오를 기다리다가 홍반장 같은 작품만 찍지는 않기로 마음먹는다. 직접 감독을 찾아가서 자기를 써 달라고 말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엄정화가 아니면 안될만큼 그녀와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좀 전형적인 살인자로 보이는 엄정화는 뒤로 갈수록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정순정을 무리 없이 연기해낸다. 거기다 그리 길지 않은 쓰레기 매립장에서의 포크레인 씬 때문에 그녀는 포크레인 기사 자격증까지 딴다. 단 한 장면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척이 아닌 제대로 연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정말로 열심히 찍었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이 영화에서 모든 액션씬도 직접 소화해낸다. 특히나 그녀의 목소리 변화는 듣는 사람에게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만약 거기서 그녀가 어설프게 해 냈다면 아무리 연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도 정순정 캐릭터는 훨씬 더 매력이 줄었을 것이다. 요즘 발성이나 발음도 잘 안되는 애들이 연기를 한다고 설치는 것을 보면 엄정화 반만이라도 좀 본받으라고 말 하고 싶을 정도이다. 연기는 몸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큐싸인 떨어지면 닭똥같은 눈물을 좔좔 흘린다고 해서 연기를 잘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목소리도 연기의 일부임을. 배우는 대사로 연기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엄정화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나리오의 힘을 입었건 엄정화같은 배우를 만난 행운 때문이건간에 방은진 감독은 감독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작품을 내어놓았다. 마냥 잔인하고 잔혹할수 있었던 영화가 그나마 부드럽게 풀려간 것은 그녀가 여성이며 또 여성 특유의 감성을 잘 발휘해서 영화를 만든 덕분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비교가 되는 것은 친절한 금자씨였다. 비주얼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스토리만 보자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금자보다 덜 아름답지만 그래도 관객들에게 진심을 이끌어낸 정순정이라는 인물에 훨씬 더 정이 간다.


살인을 재미삼아 혹은 보여주기 위해 너무도 쉽게 하는 영화들이 쌔고 쌘 이 마당에 정순정의 살인은 분명한 이유가 있고 또 그 이유는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소 쇼킹한 이유를 소재로 삼기는 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 모든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담담히 보여줌으로 인해 영화는 거부감 없이 관객에게 어필한다. (회상씬은 지구를 지켜라와 견줄만하다.) 단서를 남겨서 잡히고 싶어하는 살인자. 혹은 살인자의 단서를 가지고 쫒아가는 형사라는 마케팅 전략도 훌륭했다. 그것만을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은 의외의 감동까지 받아서 나올테니 말이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감독, 배우의 3박자 뿐 아니라 마케팅의 힘 까지 잘 활용을 한 보기 드문 케이스가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영화를 그저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혹은 엄정화에게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기대하고 보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보다는 다른 엉뚱한 얘기를 해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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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eol 2005-10-2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로라 공주 vs 내 생애~ 중 고민했는데..
플라시보님의 글도 생각나고 혼자서도 유쾌해졌음해서 내생애로 낙찰!
이 글을 먼저 봤다면 더 고민했을 수도 있겠네요 흐흐

저도 엄정화에 대해 비슷한 편견이 있었는데 함 보고 싶어요..
암튼 어제 본 주인공들이 다 사랑스러워서 보는 내내 기분 좋았어요..ㅋ

플라시보 2005-10-2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레님. 내 생애도 그렇고 오로라 공주도 그렇고 모두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내 생애 재밌었죠? 흐흐.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랑스럽다는 님의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기회가 닿으신다면 오로라 공주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오프닝씬을 주의해서 봐 주세요.^^)

sooninara 2005-10-2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보고 싶게 만드시는군요!!
소문 나기전에 봐여지^^ 이런 영화는 소문 난뒤에 보면 재미가 반감되서요.
내생애~~일주일도 개봉 3일째날에 봤어요

플라시보 2005-10-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oninara님. 후훗. 그래서 저는 기대작은 언제나 개봉 첫날에 봅니다. 그래야 제일 먼저 보고 남들에게 '재밌어' 혹은 '보지마' 하고 말 할 수 있거든요. 낄낄. 이 영화 내 생애에와 마찬가지리로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림자 2005-10-2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덕분에 볼까말까한 저도 낼 보러갑니다^^

비연 2005-10-29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봐야겠슴다!^^

플라시보 2005-10-29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자님. 네. 보시면 아마 후회하지 않으실껍니다. 간만에 확실하게 추천할 영화를 만난것 같아요.^^

비연님. 흐흐. 그러시길. 님도 재미나게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새드무비 : 새드무비가 아니라 새드뮤비겠지.

 새드무비를 얼마나 기다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래서 이 영화를 기다리다 못해, 이것과 거의 엇비슷해 보이는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봤고, 그 영화가 예상외로 괜찮아서 새드무비에 대한 기대치가 더더욱 높아져서는 그야말로 개봉 일주일 전부터 안달복달을 했다는 얘기는 정말이지 하고 싶지도 않다.


2003년. 우리는 영국에서 매우 신선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 한편을 받아보게 되었다. 러브 액츄얼리는 극장가에서는 여름다음으로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거의 석권하다 시피 했었다. 뚜렷한 스타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익숙한것도 아닌 옴니버스식의 이 영화가 성공하자 충무로는 ‘저거도 하는데 우리라고 몬하겠나?’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비스무리한 각종 영화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 중 몇편의 영화가 엎어졌고, 그 과정에서 몇 명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과 제작자들이 머리를 쥐어 뜯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지만 아무튼 그때의 기획으로 인해 그로부터 2년뒤인 2005년 가을. 우리는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를 표방한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과 본 영화 ‘새드무비’를 만나게 되었다.


내 생에가 조금 더 일찍 관객들을 만났고, 그 영화는 다소 복잡한 에피소드들의 연결에도 불구하고 전혀 난잡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게 스토리를 잘 풀고 나가서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사정이 이렇고 나니 이후 개봉할 새드무비에 대한 기대는 더더욱 높아만 갔다. 거기다 어찌나 마케팅을 잘도 했는지 이 영화는 사전 조사에서 올 하반기 가장 기대되는 영화 1순위로 등극됨은 물론. 개봉 첫날에는 무척 높은 예매율까지 보였더랬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이 영화는 내 생에의 발뒷꿈치도 되지 않았다. 비슷한 영화로 고무되어 비슷한 기획을 하고 또 비슷비슷하게 배우들을 잔뜩 쓴다고 해서 꼭 비슷한 영화가 나오지는 않음을 새드무비는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은 다 싸이더스 HQ 소속사 배우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싸이더스 HQ의 정훈탁 대표와 그 계열사인 I필름이 만든 영화이다. 거대 소속사들이 이미 드라마에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에 응하는 조건으로 안나가는 소속사 배우를 끼워판다는 정도의 횡포야 이미 횡포 축에도 들어가지 않지만, 이 영화처럼 자사 배우들을 잔뜩 출연시켜서 말아먹는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그저 영화계에도 가요계의 SM 이수만 대표같은 거대 공룡 한명이 탄생했다 정도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싸이더스는 이미 스타 전지현을 데리고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라는 정말 입도 다시 떼기 싫은 영화를 만든적이 있었다. 그 영화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 동시 개봉을 한다고 했을때, 비록 영화계 종사자는 아니지만 심히 쪽팔리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해외 영화제에가서 상을 타고 인정을 받으면 뭣하겠는가? 저 영화 한편으로 한국 영화계 수준은 형편없이 떨어질텐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새드무비에 출연한 배우들은 사실 연기력 면에서 그렇게까지 엉망인 배우들은 아니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연기력을 오로지 외모로 들이미려는 배우가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너무 택도아닌 시나리오와 연출력 덕분에 완전히 죽을 쒔다. 에피소드 여러 가지가 모여서 한 영화가 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건 우리가 어릴때 받던 과자상자가 아니다. 잘 나가는 과자 보다는 못나가는 과자들을 잔뜩 넣은, 그렇지만 오로지 그 사이즈와 내용물의 양만으로도 용서가 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러 배우가 나오고, 그들의 연기력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였다는 평을 내릴 얼빠진 관객들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정말로 노력을 안해도 너무 안한다. 오죽하면 내가 저 위에다가 뮤비(뮤직 비디오)라고 썼겠는가. 정말이지 새드무비에 나오는 각종 에피소드들은 딱 뮤직비디오 수준이다. 도무지 왜 그런지에 대한 관객의 이해는 안중에도 없고, 그러니까 그런줄 아시라는 내용들만 잔뜩 등장한다. 에피소드들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비주얼이 괜찮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여기서 나는 촬영감독과 조명 감독이 뭘 한지를 모르겠다. 씬마다 다른 배우들의 피부 및 얼굴 생김은 그들이 피곤한 촬영 스케줄에 시달려 영화 한편을 찍는동안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로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어떤때는 조명을 끝내주게 때려서 마치 밀랍인형 같던 그들이 또 어떤 장면에서는 나라면 저 클로즈업씬을 빼 달라고 시위라도 벌였겠다 싶을만큼 엉망인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말만 새드무비였지 새드무비에는 슬픔도 영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식의 가벼우면서도 억지스러운 사랑과 눈물과 이별이 존재한다. 그나마 신민아와 이기우의 에피소드에서는 믿을수 없을만큼 소품이 큰 활약상을 펼쳐서 겨우겨우 본전을 뽑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염정아와 임수정과 신민아와 정우성과 이기우와 차태현을 데리고 뭘 한지를 모르겠다. (여기서 빠진 여배우 한명은 제발 연기를 관뒀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녀는 심지어 뮤직비디오 에서도 연기를 너무너무 못한다.) 정말이지 이런 식이라면 싸이더스 HQ라는 거대 공룡은 단지 괴물일 뿐이다. 그것도 한국 영화의 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괴물 말이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는 억지스런 연결 내지는, 괜히 전 에피소드 인물이 현재 에피소드의 배우들 뒤에 떡하니 서 있다. 거기다 에피소드들 자체 역시 어떤 무게감도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배우들이 모두들 눈물을 흘리는 포스터와 티저 예고편은 꽤나 감동적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이 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네 배우들과 자기네 영화사를 가지고 자기네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제멋대로여도 된다고 대체 누가 정훈탁 대표에게 가르친 것일까? (스스로 터득했다면 더 무서운 일이다.) 이럴꺼면 자기네들끼리 홈비디오로 만들어서 돌려보고 말 것이지 관객들에게 거의 사기에 가까운 마케팅의 힘으로 시간과 돈을 빼앗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앞으로 싸이더스 HQ가 얼마나 더 이런짓을 할른지는 모르겠지만 부탁이니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여친소 내지는 새드무비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 졸작을 만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나마 여친소는 전지현이라 용서를 했지만(전지현이 너무너무 이뻐서라기 보다는 그녀에게 연기 자체를 기대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런 용서조차도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해드카피를 빌려 한마디 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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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10-2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밌네요. 하하하 잘 읽었어요.

플라시보 2005-10-2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흐... 영화는 되게 재미 없습니다. 모처럼 재미 없다고 장담할만한 영화인것 같습니다. 쩝..

노부후사 2005-10-2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더스 HQ가 자사 스타를 대규모 투입했다 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으나 플라시보님 글을 읽으니 그 이상이었던 것 같군요. 하기사 정훈탁이 하는 짓이 원체 그렇겠죠. 그나저나 이 영화 연출한 권종관 감독 재능이 아깝네요. 99년인가에 "이발소 이씨"라는 단편은 빼어났었는데 말입니다. 데뷔작 에스 다이어리부터 제작자 잘못 만나서 재능이 깍여나가는 불쌍한 경우군요. 쩝...

노부후사 2005-10-2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추천도 했어요. 정훈탁 타도를 위해서.

이매지 2005-10-2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진서도 나오나요?
그나저나 보려고 했는데 차라리 내 생애 - 를 봐야겠네요.

비로그인 2005-10-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정말 재미없었어요. 저도 티저포스터가 마음에 들고,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예상외로 재미있어서 이 영화에 엄청난 기대를 걸었었는데, 쯧쯧. 정말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 영화더군요. 도대체 뭐가 새드무비인지 모르겠더군요. 어설프게 짜집기한 이야기들하며 정말 실망이었어요. 그리고 님이 말하신 그 여자분, 정말 이제는 그만할때도 되었건만, 저는 그 슈퍼마켓 씬만 나오면 괜히 화가 났었드랬지요. 마지막에 눈물 콧물 다 훌쩍이는 관객들이 몇몇 있어서 도대체 왜 우시냐고 물어볼뻔 했다는 ㅡ,.ㅡ;;
아~ 마지막으로 저는 처음에 임수정이랑 신민아 얼굴 클로즈업씬보고 정말 화들짝 놀랬어요. ㅠㅠ

플라시보 2005-10-25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메테우스님. 사실 저는 이 영화가 싸이더스 제작인지 모르고 봤었습니다. 처음 오프닝 크레딧 보는 순간 확 불안해지더니 저 배우들이 가만 보니 싸이더스 소속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렇게 다 싸이더스인줄은 나중에 확인하고 알았습니다만) 아무튼 정훈탁 대표가 사업수완에 소질이 있다는건 알겠지만 영화에 대한 부분은 감독에게 좀 맡겼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입김이 쌘 사람이라 어쩌면 약간만 간섭을 했는데 감독들이 (여친소 감독 포함) 지례 겁을 먹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매지님. 앗 죄송합니다. 윤진서는 내 생에에 나옵니다. 제가 잠시 착각을 했네요. (본문에는 수정을 했습니다.^^)

처음마음처럼님. 제가 봤을때는 우는 관객이 그나마 아무도 없었다는..^^ 정말이지 이 영화는 내 생에 덕도 꽤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그걸 본 관객들이 이 영화도 당연히 매우 재밌을것이라 생각을 했을테니까요. 만약 이게 먼저 개봉을 했다면 내 생에라는 좋은 영화가 심한 타격을 입었을텐데 그걸 피한것 만으로도 어쩌면 영화판에서는 꽤 좋은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드무비를 저처럼 개봉첫날 본 사람들은 피를 봤죠. 흐..

바람돌이 2005-10-25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정말 재밌었는데 말이죠... ^^

비로그인 2005-10-25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피와 살을 가진 밀랍인형같은 염정아의 모습을(박신양과 나왔던 도박영화에서 말이지요) 다시 한 번 보고싶었더랬는데, 참아야겠습니다. 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플라시보 2005-10-2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그러게요. 내 생에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는데 이 영화는 기대치는 고사하고 기본도 못한것 같아요.

Jude님. 네. 염정아는 물론 여기서 연기를 잘 하려고 고군분투 하긴 하지만 그녀가 나오는 에피소드도 워낙 엄해서 말이죠. 전혀 슬프지도 설득력도 없습니다.

치니 2005-10-25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오랜만에 재미있네요

플라시보 2005-10-2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아..진짜 오랜만이네요. 님 댓글을 보는것도, 또 제가 글을 올리는것도..ㅎㅎ

sooninara 2005-10-2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생애~~일주일은 정말 괜찮았는데..
새드무비는 악평이 대부분이네요. 오죽하면 신문 영화평에서도 악평을 받더라구요.

플라시보 2005-10-2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oninara님. 네. 새드무비의 경우는 전문 기자들도 관객들도 전부 평이 좋지 않더라구요. 보고 싶으시다면 비디오로 출시될때 보는게 좋을것 같아요. 아니면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까워요.

RainSmile 2005-10-2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감. 영화가 끝나고 콧방귀를 크게 뀔려고(?) 옆에 친구를 착 돌아봤더니 울고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왜 울어?'물어봤다는..ㅡㅡ;;
근데 차태현이 내생애랑 중복출연했나요? 아.. 도통 기억이 안나는데..

플라시보 2005-10-29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inSmile님. 이런이런 임창정이랑 착각을 했나봅니다. 둘이 왜 엇비슷하게 보였을까요? 흐... 근데 정말 이 영화 홍보비가 아까울 따름입니다. 돈 많이 들었을텐데..쩝
 

 꼭 드라마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을 살다가 보면 여러가지 우연한 기회로, 우리는 갖은 사람들과 연결된다. 알고보니 딸이었더라 혹은 내가 니 아비다 정도의 거짓말같은 우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나오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서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 한번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또 관계를 맺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랑도 있고 세상살이의 힘듦이나 삶의 고단함도 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러브 액츄얼리를 표방했다. 하지만 주로 사랑에 국한되어 있던 러브 액츄얼리와는 달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는 사랑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얘기들이 들어있다. 빨간색의 크리스마스 리본 테두리의 러브 액츄얼리와 포스터마저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이 영화는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준다.

영화의 가장 큰 축은 저 포스터에 나오는 여덟명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짠돌이 극장사장 노주현과 그 극장 한켠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운영하는 오미희의 이야기나 엄정화의 남편 천호진과 그의 아들의 이야기 등은 결코 주연을 받쳐주기 위한 조연급 스토리가 아니다.

먼저 엄정화와 황정민의 이야기. 엄정화는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이다. 남편 천호진과는 이혼을 했고 아들이 하나 있지만 남편이 키우고 있는 중이다. TV토론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우연히 무식한 형사 황정민과 엮이게 된다.

수녀인 윤진서는 가수인 정경호를 남몰래 짝사랑한다. 그러다 둘은 같은 병원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고 그때부터 윤진서의 기발한 애정공세는 시작된다.

아내에게는 회사를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고 지하철에서 싸구려 물건을 파는 임창정. 그리고 그냥 먹고 싶어서 김밥을 만다고 거짓말을 하고서는 길에서 김밥을 파는 서영희는 가난한 부부이다. 임창정은 매일 채권추심사 직원으로부터 독촉전화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괴롭게 보낸다.

김수로는 과거 잘 나가던 농구선수였다. 그 시절 만났던 여자의 아이가 어느날 병자가 되어서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을 아빠라고 부른다. 마침 아이는 한 TV프로그램에서 후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김수로가 다시 농구코트에 서서 골을 10개를 넣어야 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 엄정화의 아이는 김수로의 딸과 친구이고, 임창정에게 채권추심을 하는 직원은 김수로이다. 마치 촘촘한 그물로 연결된것 처럼, 그렇지만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처럼 이들은 서로의 인생에 끼어들게 된다. 언뜻 보면 얽히고 섥혀서 무척 복잡해 보이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무게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 무게 중심이란 어느 한 배우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뉘어져 있다. 이 영화는 어떤 스토리 하나만 중요하고 나머지는 그 스토리를 위해 존재하는 보조자 역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똑같은 무게와 똑같은 힘을 가지고 스크린 속에서 빛난다. 배우들은 모두 각자의 역활에 딱 맞는 정도의 연기를 선보인다. 다만 황정민이 너무나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서 조금 튈 뿐이다. (황정민의 연기는 정말 끝내준다. 그가 연기한 무식한 형사역은 마치 황정민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같다.)

언젠가 아는 영화사 사장님이 내게 이런 소망을 피력하신적이 있었다. 일단 관객이 많이 들게 한 다음 그 관객들을 웃기고 종국에는 울려서 내보내고 싶다는. 나는 그게 정말 말도 안되는 바램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판국에 웃기다가 울려서 보내겠다고? 그것도 많은 관객들을? 나는 속으로 그랬다. 아서라 말아라.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그 영화사 사장님이 꾼 꿈이 실제로 이루어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코믹터치도 아니다. 충분하게 웃기고 충분하게 감동을 주는걸 한 영화에서 가능하다고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영화는 그걸 능청스럽게 해내고 있다.

다만 이 영화에도 약간의 문제점은 발견된다. 감동을 주려는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뻔한 공식을 따라간다는 것, 그리고 제목을 의식해서인지 억지로 요일을 가져다 붙여서 일주일간의 스토리를 만들려고 한다는 점 (사실 이 영화에서 일주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굳이 이 얘기들이 일주일안에 일어났다고 상기시키지 아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나 이만큼의 성도를 보이는 영화에 그 정도의 문제점은 문제점이라고 하기도 좀 미안하다.

새드무비를 기다리다가 지겨워서 소 뒷걸음질 치다가 잡은 식으로 본 영화치고는 월척을 건진 셈이다. 내가 올해 본 한국 영화중에서는 제일 괜찮았다고 감히 말 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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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0-07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개봉했군요. 이거 봐야게따...

플라시보 2005-10-07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네. 전 되게 재밌게 봤습니다.

▶◀소굼 2005-10-07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오늘 개봉. 내일 볼까 생각주이에요: )

플라시보 2005-10-07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1t님. 으음. 그렇군요. 내일 재미나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매지 2005-10-07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황배우 좋아해서 보고 싶은데 좀 산만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달 말에 남자친구 휴가 나오면 봐야겠어요 ^-^

그림자 2005-10-07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회사사람들과 볼 생각인데 기대되네요^^
러브 액츄얼리도 상당히 잼이게 봤거든요...^^
황정민 좋아해서 초기작부터 거의 챙겨 봤는데 너는 내 운명은 아직 못봐서리...

하루(春) 2005-10-0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이 민규동이라죠? 보고 싶어요.

플라시보 2005-10-0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저도 황배우 좋아라 합니다. 제가 볼때는 전혀 산만하지 않고 스토리를 아주 잘 풀어나갔더라구요. (휴가나오면 남자친구랑 꼭 보세요. ^^)

그림자님. 네. 저도 러브 액츄얼리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황정민의 연기는 너는 내 운명보다 이 영화에서 더 빛났던것 같습니다.^^

하루님. 네. 여고괴담2 했던 감독이요^^

비로그인 2005-10-0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리뷰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에는 건물 자체에 케이블 TV가 가입이 되어 있다. 허나 이런식의 가입은 SKY Life같은 것과 달리 채널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전 부터 밤 10시 정도가 되면 3번 채널에서 On Style 채널이 나오는게 아닌가 (이상하게 낮에는 안나온다.) 덕분에 나는 어제 오프라 윈프리쇼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쇼는 워낙에 유명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덧붙이자면. 미국에서 1976년부터 시작된 장수 토크쇼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오프라 윈프리라는 흑인 여성이 진행하며 연예인은 물론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출연한다.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하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은 이미 세계적인 영향력 내지는 유명세가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이 쇼는 단순한 토크쇼 이상이다.

오프라 윈프리쇼는 방청객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유명하다. 오프라가 재밌게 읽은 책이랄지 가끔은 자가용을 주기도 하고 집을 고쳐주거나 스타일을 바꿔주기도 한다. 이 모든게 오프라의 힘으로 이뤄진다니 놀랍지 않을수가 없다. 어제 본 내용은 오스카 시상식장의 뒷 얘기들이었는데 과연 처음 봤지만 시선을 확 잡아 끌 만큼 그녀의 진행방식은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조금도 떨려하거나 혹은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르는 느낌. 그리고 대본대로 말을 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굴 피부를 너무 당겨서인지 고무인간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사실 외모는 오프라의 명성에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흑인에 뚱뚱하고 못생긴편인 그녀가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끔 여성 토크쇼 진행자들이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꿈꾼다고 했을때, 나는 뭐가 그렇게 대단한 여자인가 했었는데 단 한번의 시청으로 나는 오프라 윈프리의 카리스마를 느꼈다.

물론 오프라 윈프리쇼는 가만히 보면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일제히 박수치고 '우~' 혹은 '와~' 하는 소리만 내는 우리나라의 방청객들과 달리 오프라쇼에 나온 방청객들은 잔뜩 흥분해있다. 그 속에 오프라는 마치 교주처럼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오프라의 작은 한마디에도 방청객들은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고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이건 마치 굉장히 잘 나가는 교회의 풍경을 떠 올리게 했다. 스타 목사와 그에게 완전히 정신적으로 매료되어 있는 광신도들.

물론 그녀는 대단하다. 수없이 많은 상을 받았고 토크쇼 진행자뿐 아니라 기업가로써도 유명하다. 다방면에 걸쳐 그녀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여성은 전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대하는 방청객들의 모습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느정도 감동받거나 재미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겠지만 저렇게까지 과한 표현을 할 정도인가 싶었다. 어쩌면 내가 단 한번 밖에 오프라쇼를 보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유명해져서 들어온 프로그램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위기의 주부들과 엑스파일, CSI시리즈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오프라 윈프리도 거기에 들지 안들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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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10-0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브리나~'를 어울리지 않게 좋아한답니다. 보신 적 있으신가요?? (씰데없는 댓글인듯... --;)

플라시보 2005-10-05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법사 사브리나 아닌가요? 말하는 검은 고양이 나오는.. ^^ 가끔 본적이 있는것 같아요.^^

BRINY 2005-10-0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브리나에 나오는 고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플라시보 2005-10-06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그 고양이 할랑한것이 겁나게 웃기죠? 흐흐. 표정도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