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는 코끼리인데 코끼리는
육중하고 엘리펀트는 불가해하다 왜
엘리펀트일까 모스크바에서
언제던가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손인지 발인지 코가 손인지
무엇이 코로 들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
콜럼바인 고등학생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사냥했지
아무렇지도 않게 난사했지 아니
조준했지 울면서 벌벌 떨기도 했었나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엘리펀트처럼
두 친구는 친구답게 냉정하고 무자비했다네
나는 아이다호의 구스 반 산트를 보러 갔다가
이런 구스 반 산트 같으니
이것이 엘리펀트인가 엘리펀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영화에서 난 코끼리를 본 건지 기억이 없는 건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방관했지 우리는 모두가 목격자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숨죽이고 있었다네 여기는 모스크바
콜로라도가 아니라오
두 친구가 돌아보기 전에 우리는 입을 씻기로
아무도 공중전화로 달려가지 않았다네
아무일도 없었던 그날
콜로라도 하늘엔 흰구름 떠가고
모든 상황은 민방위훈련처럼 종료되었지
왜 엘리펀트인가 묻지 않았네
그런데 이제 와서

엘리펀트, 그러니까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흰구름 떠가고
나는 불가해한 일들에는 불가해한
표정으로 응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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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 두 권은 조성기의 소설들이다. 장편소설 <라하트 하헤렙>과 소설집 <통도사 가는 길>이다. 두 권 모두 ‘오늘의 작가총서‘ 버전이다. <라하트 하헤렙>은 198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고 <통도사 가는 길>은1992년에 나왔는데 199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우리시대의 소설가‘가 수록돼 있다. 바로 1991년에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과내 동아리 세미나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내가 문학이론 세미나의 교사였다).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든 건 조남현 교수의 신작 <소설의 본질>(서정시학)을 읽다가 조성기 소설이 언급된 걸 보아서다. 조성기는 곧이어 <욕망의 오감도>(1993)와 평역 <삼국지>(2002) 등을 발표했고 나로선 작가로서 변절이라고 생각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시대의 소설가‘ 정도는 90년대 소설의 상황과 지형도 되짚어보는 데 유익할 것 같아서 주문한 것. 27년전에 읽은 작품을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도 궁금하다.

<소설의 본질>은 저자의 <소설신론>(서울대출판부)의 연장선상에서 읽어볼 만한데 소설에 대해서 너무 폭넓게 정의하고 있는 게 불만이다(나는 최대한 좁게 정의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서사시‘로 정의한 루카치가 좋은 사례다). 그럼에도 저자의 식견과 통찰은 유익한 참고가 된다. 나로서도 러시아문학 관련서를 몇 권 내고 나면 문학일반론(시론과 소설론)도 생각을 정리볼 계획이다. 더이상 미룰 수 있는 나이도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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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고양시 화정도서관에서 5월 17일부터 31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문학속의 철학' 강의를 진행한다.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속의 철학>(책세상)에서 <안티고네>와 <캉디드>, 그리고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강의 주제로 골랐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문학 속의 철학



1강 5월 17일_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2강 5월 24일_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3강 5월 31일_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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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눈으로 보았을까
너의 그 눈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도 볼 수 없는
눈을 가졌다네 하늘도 보고 하늘의 언저리도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고 보다 말아도 보고
그래도 나는 볼 수 없는 만지기만 할 뿐 볼 수 없는
너의 눈동자 속의 나를
네가 보는 나를
이불 속에서도 이불 밖에서도 길 밖에서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밥 먹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러다 눈을 감아도 다시 눈을 떠도
앉아도 주저앉아도 가끔은 눈에 안약을 넣어도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음에도
잃지 않았음에도
나는 보지 못하네
네가 보는 나를
너의 그 눈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나를
너의 눈동자 속의 나를
이제 다시는
이제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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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4-2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주변에 널린 책들을 집어서 읽지만, 가끔 옛날에 본 책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엔 서점에서 페이퍼미니북을 보고 반가와서 몇
권 챙겼지요. 고전문학. 어릴 적, 시각적 묘사가 풍부한 작품을 좋아했
나 봐요^^ 로쟈님 시 내용이 시각을 추구하지만 대만영화 장면이 계속
떠오르는 ...암튼 기이한...

로쟈 2018-04-24 22:37   좋아요 1 | URL
어떤 대만영화인가요? 저는 홍콩영화.^^

로제트50 2018-04-25 09:03   좋아요 0 | URL
오래전 본 거라 제목이
생각 안나요.
빈집에 숨어 지내는 남자, 부동산업자가 들어와 침대 밑에 숨은 상황.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1978)를 강의에서 읽었다. 이번이 세번째. <에투알 광장>(1968)으로 데뷔한 10년차 작가에게 공쿠르상을 안겨준 작품. 한데 예외적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모디아노의 전작에 주어졌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여섯 번째 소설이지만 그의 작품 전체가 한권의 작품을 구성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모디아노 자신의 생각이 그렇다. 그 여섯 편은 아래와 같다.

<에투알 광장>(1968)
<야간순찰>(1969)
<외곽 순환도로>(1972)
<슬픈 빌라>(1975)
<호적부>(1977)*번역본 제목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1978)

이 가운데 ‘점령 3부작‘으로 불리는 첫 세 편이 아직 번역되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힌 바 있는데(이유도 모르겠다) 그 이후에 나온 몇 편 대신에 먼저 번역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 3부작을 제외하면 그 이후론 상당수의 작품이 번역된 상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모디아노의 동생 뤼디와 아버지에게 헌정되고 있는데 나는 이 점이 작품 이해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뤼디를 위한 소설이면서 아버지를 위한 소설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살 터울의 동생 뤼디는 1957년에 세상을 떠나고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알베르 모디아노는 1977년에 타계한다. 모디아노에게는 삶의 일단락이 지어지는 셈인데 작품으로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그 일단락에 해당한다.

모디아노 작품세계의 원천이 되는 가족사는 그가 뒤에 발표하는 <혈통>(2005)을 참고할 수 있다. 이 자전소설 에서 모디아노 소설의 중핵이 되는 경험을 민낯에 가깝게 읽을 수 있다. 곧 다른 소설을 읽는 데 준거로 삼을 수 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만 같은 주제의 반복과 변주로 읽히기에 일단은 기본형을 확인해두는 게 요긴하다. 점령 3부작을 참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호적부>(번역본 제목은 원제를 살리는 게 좋았겠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그리고 <혈통>을 기본으로 읽는 수밖에. <슬픈 빌라>는 걸출한 영화 <이본느의 향기>의 원작소설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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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2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화영은 한강연에서 <혈통>,<추억~>,<외곽~>,<감형>을 추천~
번역도 안되어 있는 책을 추천하는건~~

로쟈 2018-04-24 17:20   좋아요 0 | URL
네 분량도 많은게 아닌데 소개되지 않는이유가 납득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