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여행을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12년 전 리뷰다. <여행 정신>이란 책을 읽고 적은 것인데 아득하게 느껴진다. 4년 뒤부터는 주기적으로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여행을 생각하는 자‘는 ‘여행을 떠나는 자‘가 되었다. 그와 함께 ‘여행을 기획하는 자‘가 되었다. 내년과 후년의 문학기행을 궁리하던 차여서 여행의 정신을 다시금 바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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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경멸과 권태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강의에서 아직 다루지 않아서(움베르토 에코와 프리모 레비가 예외다) 알베르토 모라비아 소설은 내게 여전히 ‘가보지 않은 도시‘다. 이탈리아문학기행을 한번 더 기획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모라비아의 책들은 마치 꽃이 피고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출간과 절판을 오가고 있다. 11년 전 페이퍼에서 언급한 <경멸>과 <권태>는 현재 절판된 상태이고 이후에 나온 <순응자>와 다른 번역의 <경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년쯤엔 가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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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톨스토이와 역사의 교훈

7년 전 리뷰다. 내달에 <전쟁과 평화> 강의도 있는 김에 챙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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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서밍업과 인간의 굴레

7년 전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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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평전이 새로 나왔다. 독일의 저명한 전기작가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신잡 <프란츠 카프카>다. 요즘 강의에서 읽는 쿤데라는 작품을 작가의 전기와 연관지으려는 시도에 대해 단호한 거부감을 피력한다(이 거부감은 프루스트의 것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지 않고 전기를 읽는다고 조롱하는데 그 예가 바로 카프카다. 물론 나도 카프카 작품을 읽기 전에 전기를 먼저 손에 드는 독자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전기주의적 태도가 항상 온당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작가와 작품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한 얼마든지 실용적인 선택과 절충이 가능하다고 본다.

카프카의 전기로는 라이너 슈타흐의 <카프카>(전3권)가 가장 상세하지만 분량상 쉽게 번역되진 않을 것 같고 차선이라면 자프란스키의 책이겠다. 독어로 쓰인 평전으로는 과거에 번역됐다 절판된 바겐바하의 최초의 카프카 평전과 함께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쿤데라는 바겐바하의 전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국내 저자의 책으로는 이주동 교수의 <카프카 평전>이 현재로선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프란츠 카프카>를 옮긴 편영수 교수는 앞서 막스 브로트의 <나의 카프카>도 우리말로 옮겼는데 이 역시도 쿤데라의 맹렬한 비판을 받은 책이지만 카프카에 관한 최측근의 기록이어서 요긴하다. 비록 브로트가 카프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쿤데라의 비판이지만 무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지 음미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기에.

알려진 대로 브로트는 미발표 원고들을 소각해달라는 친구의 유언을 배신했다. 친구와의 약속을 어긴 셈인데, 만약 그 약속을 지켰다면 20세기 독일 10대소설에 꼽히는 <소송>과 <성>이 독일문학사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 빠졌을 것이다(그래도 <변신>의 작가로는 남았겠다). 배신은 비난받을 수 있지만(쿤데라는 용서하지 않을 기세다) 브로트의 경우도 그러한지는 따저볼 문제다. 카프카가 브로트의 배신을 미리 예견했을 수도 있다면 더더욱. 이 문제에 대한 자프란스키의 견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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