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에 씌어진 걸로 돼 있는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11)'에서 나는 이렇게 적어놓은 적이 있다.

"하여간에 이 자서전(*아시모프의 자서전)이 절판된 것은 좀 아쉽다. 그렇게 절판된 자서전들 가운데 또 기억나는 것은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동물학자 데즈몬드 모리스의 <옷을 입은 원숭이>(샘터사)이다.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됐지만(원제는 '동물들과의 나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석희씨의 번역이고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모리스의 책들이 대부분 출간된 거에 견주면, 이미 번역돼 있는 그의 자서전이 '묵혀'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묵혀 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제목은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 2006)로 바뀌었고, 출판사도 한얼미디어로 옮겨갔지만, 역자는 그대로이다(역자는 <털없는 원숭이>(정신세계사, 1991)도 옮긴 바 있다). '데스몬드' '데즈몬드' '데즈먼드' 등은 다 같은 사람 '모리스'의 이름이다.

아직 언론에 아무런 책소개 떠 있지 않아서 알라딘의 소개를 잠시 옮겨오면, "<털없는 원숭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자전적 에세이"이고, "유년기에 동물과 동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과정, 스승인 콘라트 로렌츠와 니코 틴베르헨과의 만남,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했던 경험, 런던동물원 포유류관장 시절에 일어난 갖가지 에피소드를 경쾌한 문체로 담았다."

로렌츠와 틴버겐 같은 그의 스승들은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다. 옥스포드대 출신인 모리스는 니코 틴버겐의 직속 제자이다(모리스는 창가시고기를 연구했다). 근데, <동물의 사회행동>의 저자 '니코 틴버겐Nikolaas Tinbergen'의 표기가 '니코 틴베르헨'으로 바뀐 모양이다. 출생지가 네덜란드라서인가? 전공자들도 다들 관례적으로 '니코 틴버겐'이라고 쓰고 있는지라 내게도 '틴버겐'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게다가 내가 알기로 그는 반평생 이상을 영국 대학의 교수로 살았다). 같은 성의 이름으론 네덜란드인 얀 틴베르헨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군...  

소개를 마저 옮기면,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지은이가 어떻게 뛰어난 동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킨 저술가로 성장했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학문을 하는 지은이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가 더 진지해질 수 없다면, 즐기기나 하자" "내속에 있는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아직도 서로 싸우며 번갈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말을 통해 동물학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재미를 찾아가는 지은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그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나도 느끼는 바인데, 굳이 자책할 필요는 없겠다.)

이 자서전에는 기억에 그림을 그리는 침팬지 콩고 이야기도 나오는데, 작년 뉴스기사에는 이런 것도 있다(같은 종류의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세계일보(05. 06. 21)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 2600만원에 팔렸다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이 20일(현지시간)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2만5620달러(약 2600만원)에 팔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영국 경매회사 본엄스는 ‘콩고’라는 침팬지가 1957년 그린 추상화 3점을 경매에 부친 결과 하워드 훙이라는 미국인이 낙찰가 외에 웃돈을 얹어 2만6352달러에 샀다고 밝혔다. 추상화들의 예상 낙찰가는 1000∼1500달러 정도였다.

-본엄스의 현대미술 담당자는 “우리는 이 그림이 얼마만큼의 가치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며 “단지 (특이함이라는) 즐거움을 위해 경매장에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침팬지의 작품이 팔린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경매에는 앤디 워홀과 르누아르의 작품도 선보였지만,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의 인기에 가려 팔리지 않았다.

-콩고는 1954년 영국 동물원에서 태어나 2∼4살 무렵에 약 400점의 데생과 유화를 남긴 뒤 1964년 결핵으로 죽었다. 이 침팬지는 연필과 붓을 받아들 때 다른 침팬지들과 달리 재빨리 사용법을 익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이 완성된 뒤에는 붓과 연필 잡기를 거부해 ‘마구잡이로 그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콩고를 세상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 1957년 콩고의 그림들을 모아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 그는 “침팬지들이 인간 예술의 몇몇 요소를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자세한 건 이 자서전을 참조하시길...

06. 07. 28.

P.S. 보다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한겨레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필자는 임종업 기자이다.

한겨레(06. 08. 04) 기어이 한마리의 동물이 되고 만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1928~ )는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접촉> <맨워칭> <바디워칭> 등이 번역 소개돼 비교적 낯익다. 이번에 나온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는 지은이가 쉰한 살 때인 1979년 출간한 것으로 지은이의 관심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아간 시점까지의 역정이다. 일종의 학문적 성장기다.

-할아버지 유품인 놋쇠 현미경과 <위장과 내장의 비교해부학 입문>이란 책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매혹된 그는 집, 정원, 차고를 수집한 야생동물로 채웠다. 그는 “토끼굴로 내려간 앨리스처럼 현미경의 대롱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그 세계에 매료됐다. 그를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이는 기숙학교의 ‘버터컵’이라고 불렀던 동물학 선생님. ‘올챙이적에 배운 것은 두꺼비가 되어서도 기억될까’라는 호기심은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 탐구열로 바뀌었다. 버터컵 선생님은 동물학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칠 뿐, 스스로 질문을 하는데 숙달되도록 만들어주었다.

-두번째 스승인 네덜란드 동물행동학자 틴베르헨(1907~1988)을 만난 것은 버밍엄 의대 특별강연 때. 그는 “한 시간 강연이 준 감동에서 빠져나왔을 때 과학도로서의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떤 종교적 개종도 그보다 더 적극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모리스는 옥스퍼드에서 틴베르헨을 지도교수로 가시고기의 동성애적 성향을 밝히는 박사논문을 썼다.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징집된 그는 부적응자로 부대를 전전하던 끝에 제대병한테 직업교육으로 미술을 가르친다. 이때 훗날 결혼하게 된 소녀 래모나를 만난다. 그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끝이 없어 뱀까지 좋아해 모리스와 천생연분 반려가 되었다. 모리스는 래모나가 진학한 옥스퍼드로 가기 위해 코피 터지게 공부해 버밍엄대학을 최우등 졸업한다.

-세번째 스승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1989). 1951년 강연을 듣고 모리스는 “그는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신과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훌륭한 에스키모개를 뒤섞어놓은 인물처럼 보였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육포를 주며 낯을 익힌 갈까마귀한테 성기를 물린 로렌츠의 경험을 ‘예비동작’이라는 동물행동학 용어를 쓰며 자세히 소개한다. 틴베르헨이 그를 동물학자로 세례를 주었다면 로렌츠는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모리스는 그후 런던동물원의 영화 텔레비전 책임자가 되어 그라나다텔레비전의 ‘동물원 시간’을 진행했다. 이때 최근의 동물학적 발견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는데 주력했다. 예컨대 코브라의 춤은 피리 소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리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 등. 그후 런던동물원의 포유류관장이 된 그는 인간화한 동물로 가득찬 그곳을 야생에 근접한 환경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또 야생동물의 약탈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동물 결혼상담소를 운영했다. 죽어서 동물원 호랑이가 된다는 아내의 유언을 믿고 찾아와 마누라 내놓으라고 호통치던 영감님, 나중에 <야성의 엘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이 에덤슨이 자료와 사진을 들고와 책을 내고 싶다고 하던 일 등 일화를 소개한다.

-길들여진 침팬지 ‘콩고’한테 한개의 장을 할애한 것은 인상적이다. 그와 함께 텔레비전을 누빈 콩고는 합성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 팬레터를 받는 등 인기를 끌었다. 콩고와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썼다. “나는 의사소통을 할 줄 모르고 제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는 자폐증 아이의 아버지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하는지를 말하고 싶어서 애가 탔다.”

잠간동안의 백수시절 아내와 함께 본 알타미라 동굴 벽화. 그림 속의 들소가 몸은 미세한 명암과 균형이 뛰어난 반면 다리가 뻣뻣한 것이 의아했다. 그는 살아있는 들소를 그려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했다는 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죽은 동물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것이라고 본다. 그럴 듯하다.

“나는 어떤 동물을 연구할 때마다 나 자신이 그 동물이 되었다. 나는 그 동물처럼 생각하려고 애썼으며 그 동물처럼 느끼려고 애썼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우살이 2006-07-28 11:09   좋아요 0 | URL
얀 틴베르헨과는 한 형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형제가 노벨상을 탄 영광을...^^;;

로쟈 2006-07-28 11:2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가문의 영광이네요.^^
 

사진작가 김중만의  '청춘시절'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에 맞추어 사진집도 출간됐다. 'Sexually Innocent'(미메시스, 2006). 22살이면 순진한 나이인지 순진해 보이는 나이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 찍은 사진 들이라고 한다. 테마는 대략 에로티시즘이고.

 

 

 

 

연예인 사진이 아니면 내가 작가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언젠가 아프리카의 야생을 카메라에 담던 모습이다(그래서 내게는 '김중만=아프리카'이다). 이후에 언론에서도 자주 얼굴이 비쳐 '유명세'를 짐작하게 했지만, 이번 사진전은 그런 유명세와 무관한 시절의 '고독한' 작업이었을 법하다. 작가도 그런 때가 그리웠던 것일까? 전시회 관련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파이낸셜뉴스(06. 07. 26) 사진작가 김중만의 ‘청춘 시절’을 훔쳐볼수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경기도 양평 사진갤러리 와(瓦·WA)에서 8월17일까지 전시되는 ‘Sexually Innocent 김중만:1975’전은 22살 청년의 김중만이 젊음의 방랑 고뇌와 함께 자유와 사랑을 담은 작업들이다. 작가로서 출발점이 되는 김중만의 초기작업이다.

-당시 김중만은 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영화를 전공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김중만의 에로티시즘을 느낄수 있는 사진들로 여성과 자연풍경을 찍은 흑백사진 50점이 전시된다. 김중만은 75년 프랑스 니스의 아뜰리에 장피에르 소아르디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전에 참여해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뉴시스(06. 07. 18) 경기도 양평 사진 갤러리 瓦 WA에서 초대 기획된 ‘Sexually Innocent Kim, Jung-Man: 1975’ 전은 1975년 당시 22살 청년 김중만의 젊음의 방랑, 고뇌와 함께 자유와 사랑을 담은 작업들이다.



-김중만은 프랑스 니스 국립 응용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업들은 김중만의 에로티시즘(Eroticism)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로서 여성과 자연 풍경을 찍은 흑백 사진 50여점이 전시된다. 습작 시기를 거쳐 작가로서의 출발점이 되는 김중만 초기의 작업이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성의 이미지를 암시하는 여성과 자연 풍경을 담은 은유적 기법의 사진들은 직접적 성 행위보다 오히려 더욱 에로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에로티시즘은 심층적 심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에 심취한 여성을 통해 생명의 환희와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가장 김중만다운 작업으로 그의 순수한 성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Sexually Innocent Kim, Jung-Man: 1975’ 사진전은 7월15일부터 8월 16일까지 진행된다.

06. 07. 28.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니다 2006-07-2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의 이미지를 암시하는 여성과 자연 풍경을 담은 은유적 기법의 사진들은 직접적 성 행위보다 오히려 더욱 에로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제가 눈이 어두워서인지, 순진하지 않아서인지 전혀 에로틱한 감정이 들지 않는군요.^.^

로쟈 2006-07-2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사진들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좀 다른 게 있지 않을까요?^^

작것 2006-12-1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계..를 말하고 싶은건가.
 

대규모 러시아문화 페스티벌이 개최된다고 한다. 오늘자 한국일보가 전하는 소식이다. '올 가을 러시아 예술이 몰려온다'란 제하에 오미환 기자가 정리해주고 있는 내용을 옮겨온다. 대신에 기사는 축제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몇 가지 보충하면서 재구성했다.

 한국일보(06. 07. 27) 올 가을 러시아 예술이 몰려온다

-러시아 문화의 오늘을 소개하는 대규모 페스티벌이 올 가을 서울과 성남에서 열린다. 한국과 러시아 수교 기념일(9월 30일)을 앞두고 9월 15일부터 열흘 간 ‘한-러 교류축제’라는 이름으로 음악, 무용, 오페라, 연극 공연과 미술 전시회가 이어진다.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 만큼이나 문화의 폭과 깊이가 대단한 나라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거인들로 우뚝한 문학 뿐 아니라 발레, 오페라, 음악, 미술,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찬란한 전통을 지닌 예술 강국이다.

-이번 축제는 러시아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맞춰 1980년대 말 개혁 개방 이후 지금까지, 즉 오늘의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를 집중 소개한다. 성남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열리는 총 6개의 공연 중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올가 포나의 첼랴빈스크 현대무용단만 빼고 다 한국이 첫 방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올해 탄생 100주년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나 또한 가장 기대를 갖게 되는 작품이다). 한국 초연인 이 작품은 대담한 음악과 에로티시즘 때문에 스탈린 시절 10년간 공연이 금지됐다. 줄거리는 부자와 결혼했지만 권태와 억압에 짓눌린 한 여인의 일탈이 불륜과 살인을 거쳐 자살로 끝난다는 내용이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러시아 최고 영예인 황금마스크 상을 11번이나 받은 헬리콘 오페라단이 가져와서 선보인다.

 

 

 

 

(*)이 오페라의 원작이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얼마전에 번역된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소담, 2006)이다. 헬리콘 오페라단?(러시아어로는 '겔리콘') "러시아 국내외에서 60 여 편이 넘는 오페라를 연출하며 ‘러시아 국민 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드미트리 버트만 . 그가 러시아의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과 음악가들을 모아 창단한 오페라단이 헬리콘 오페라단"이란다. "1990 년 4 월 10 일 에 창단한 이 헬리콘 오페라단은 7 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350 명이라는 대규모로 성장한 무서운 오페라단이다 . 한 해 200 회 이상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며 각각 다른 분야에서 11 개의 황금 마스크상을 수상하였고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까지 인기와 호평을 동시에 누리며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홈피는 http://www.helikon.ru/)  

(*)이번 공연의 의의: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적인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는 인간 내면의 본성을 발가벗긴다는 점에서 기존의 고전 오페라와는 상당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음악적 표현기법이 생동감을 불어넣어 오페라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의 대미 가 될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 이자 러시아 오페라단이 노래하는 러시아 오페라 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무대가 될 것이다." 참고로 오페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막 - 남편 지노비는 집을 비우고

제1장 지노비의 젊은 부인 카테리나는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도 없고, 남편은 지루하고, 날로 쌓여가는 집안일은 카테리나를 미치게 한다. 시아버지 보리스는 결혼한 지 5 년이 지났음에도 자식 하나 낳지 못한다며 카테리나를 못마땅해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지노비가 집을 잠시 떠나있게 되고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정절 맹세를 강요한다. 카테리나는 일꾼 세르게이에게 일탈적 매력을 느끼는데...

제2장 요리사 악시냐는 새로 들어온 하인 세르게이에 대한 소문을 카테리나에게 전한다. 전주인과의 불륜으로 쫓겨나 이리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세르게이는 집안 하인들과 작당하여 악시냐를 겁탈하려 하는데 이 장면을 카테리나가 목격한다. 이를 말리려던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와 크게 다투는데 강하게 자신을 누르는 그에게 카테리나는 일탈적 매력을 느낀다.

제3장 세르게이는 책을 빌리러 왔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몸이 한참 달아있던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와 돌이킬 수 없는 뜨거운 밤을 보낸다.

제2막 - 불륜을 들킨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보리스를 독살한다

제4장 며느리에게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던 보리스는 카테리나의 방 주위를 서성이다 그녀의 방에서 나오는 세르게이를 목격하고는 분노를 터트린다. 보리스는 세르게이를 그 자리에서 붙잡아 채찍으로 마구 두들겨 패고는 창고에 가두어 버린다. 허기를 느낀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음식을 좀 가져오라며 시키는데 앙심을 품은 그녀는 쥐약을 탄 버섯요리를 가져다 먹인다. 시아버지를 독살한 카테리나는 바로 창고로 달려가 세르게이를 풀어준다. 집으로 돌아온 지노비 역시 그들에게 살해당하는데...

제5장 장례식을 가식으로 치른 카테리나는 마음 놓고 세르게이와 한 침대를 쓰며 지내지만 보리스의 혼이 그녀를 가만두질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지노비는 아내의 부정한 행각 앞에 카테리나를 책망하며 몰아세운다. 나름 화가 난 그녀는 세르게이와 합세하여 지노비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포도주 창고에 숨겨 버린다.

제3막 - 많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결혼식을 올린다

제6장 남편이 실종된 것으로 소문을 낸 카테리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죄의식에도 불구하고 세르게이와의 결혼식을 거행한다. 결혼식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한 소작농이 정신없는 틈을 타 포도주를 훔쳐 마시려고 창고에 몰래 들어간다. 창고에서 지노비의 시체를 발견한 그는 기겁하여 경찰서로 달려간다. 결혼식장에서 체포당한 카테리나와 세르게이.

제7장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바로 결혼식장으로 달려오지만 초대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구에서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제8장 한편 포도주 창고 자물쇠가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한 카테리나는 집안의 돈을 챙겨 달아나려고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살인죄로 실형 선고를 받는다.

제4막 - 수용소로 끌려가는 중 세르게이는 여자 죄수 소네트카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제9장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 가고 있다. 카테리나는 보초를 매수하여 세르게이를 어렵게 만나지만 그는 이미 카테리나에게 싫증이 날만큼 나있다. 세르게이는 새로 알게 된 소네트카의 환심을 사려고 카테리나를 꾀어 그녀의 양말을 빼앗아 낸다. 소네트카가 춥다며 따뜻한 양말 한 켤레를 구해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테리나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저주를 느끼며 소네트카를 급류 속으로 떠밀고 스스로도 몸을 던진다. 두 여인의 익사를 뒤로 하고 죄수들은 수용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유럽에서 1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여성 2인조 팝 그룹 타투(t.A.T.u), ‘러시아의 비틀스’로 불리는 러시아 최초의 록 밴드 ‘더 플라워즈’(The Flowers)의 첫 내한도 예정돼 있다.

 

 

 

-2000년에 결성된 타투는 2003년 발표한 음반 ‘All The Things She Said’ 로 영국에서 4주 연속 싱글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3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도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올렸다(*타투의 음반은 이미 국내에도 여러 장 나와 있으므로 더 이상의 소개는 불필요하겠다(http://www.youtube.com/watch?v=C37TVelsPiQ). 사실 노래보다는 동성애 코드와 섹스어필로 유명해진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1969년 결성된‘더 플라워즈’는 진부한 구 소련의 팝을 깨부순 혁명가들. 서구사상과 히피를 추종한다는 이유로 강제 해산되기도 했던 이 팀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고, 러시아 밴드로는 처음으로 세계 순회공연을 했다(*홈피는 http://www.flowersrock.ru).

-이번 축제에서 이들은 한국인 3세로 러시아 록의 영웅인 빅토르 최 추모공연을 한다(*과문한 탓에, '더 플라워즈'(러시아어로는 '츠베뜨이')의 노래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러시아의 비틀즈? 하긴 꽃이 있으면 벌레도 끼는 법이지. 아무튼 '빅토르 최' 추모공연이라니까 구미가 당긴다. 성남아트센터가 어디에 있는 건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미술을 소개한다. 이밖에 그림자극과 피아노 라이브 연주를 결합해 환상적 무대를 연출하는 러시아 극단 뗀의 ‘그림자 극장’(*Ten'이 러시아어로 그림자란 뜻이다), 올가 포나의 첼랴빈스크 현대무용단의 최신작 공연,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팝스콘서트 등이 준비돼 있다(축제 홈페이지는 http://www.russianfestival.co.kr)

 

 06. 07. 27.

P.S. 중앙일보의 이장직 음악전문기자가 쓴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중앙일보(06. 08. 04) '스탈린 열 받게' 한 바로 그 오페라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75)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페라 대표작 '므첸스크 (마을)의 맥베스 부인'이 세계 각지에서 대거 상연된다. 9월 30일~10월 17일 일곱 차례 무대에 올리는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프로덕션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2006~2007년 시즌에 토론토 캐나디언 오페라(8회),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6회), 모스크바 볼쇼이 오페라(3회),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3회), 비스바덴 오페라(1회)가 '맥베스 부인'에 도전한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키로프 오페라단이 20일 런던 프롬스 축제, 내년 2월 4일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콘서트 형식으로도 상연한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마침내 국내 초연된다. 내달부터 열리는 '2006 한러교류축제'(중앙일보.SBS프로덕션 공동주최)의 일환으로 내한하는 모스크바 헬리콘 오페라단의 무대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맥베스 부인'을 번안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이 원작. 억압과 굴종의 굴레에서 해방을 갈구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

-1934년 1월 22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초연 당시 2년간 180회나 상연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년 후인 36년 1월 소문을 듣고 궁금해 하던 스탈린이 당 간부들을 거느리고 직접 객석에 나타났다. 이틀 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음악이 아닌 혼란'이라는 제목의 비판 기사를 게재했다. '불온한 좌파가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살해하는 장면이 암살의 공포에 떨고 있던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스탈린은 자신의 모습이 등장인물 중 경찰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러시아 작곡계에는 검열의 회오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유명한'상연 금지'조치는 러시아 음악사에서 가장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남아있다.

-스탈린이 사망한 지 10년 후인 1963년 1월 8일 모스크바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에서 상연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는 이 작품의 수정판이다. 음색의 급격한 대조, 불협화음,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상당히 순화시킨 것이다. 침실에서 벌어지는 여주인공의 유혹 장면의 리얼리티도 훨씬 반감됐다. 소련 당국의 상연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의 팔 다리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는 얘기다.

-헬리콘 오페라단은 볼쇼이 오페라나 마린스키 극장 같은 유명 단체는 아니지만 러시아 최고 권위의 황금가면상을 11회나 수상한 실력파 오페라단이다. 연출가 드비트리 버트만이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1990년에 창단했다. 단원 7명으로 출범했지만 지금은 350명 규모로 급성장했다. 무엇보다도 헬리콘 오페라단의 장점은 기존 레퍼토리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을 누비면서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보저널, 혹은 좌파저널 '레디앙'에 가끔 들른다(유감스럽게도 '레디앙Redian'이란 신조어(?)는 진보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다. 화장품 이름 같기도 한 그 단어가 내게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은 '폼'이다). 두어 번 기사를 옮겨온 것 같기도 한데, 이번에 옮겨오고자 하는 건 윤재실 기자의 '세계의 사회주의자' 연재 중 에리히 프롬(1900-1980)에 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에서부터 시작된 이 연재는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에까지 이르렀는데, 기자의 품팔이에서 나온 거라고 보기엔 너무 발이 넓어서 무슨 '출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기밀사항일까?). 여하튼 읽어볼 만한 연재이다. 프롬의 책들도 한번쯤 챙겨둘 겸 읽어보기로 한다. 기사의 원타이틀은 '인간적 사회주의 꿈꾼 정신분석학자'인데, 보다 단순하게 '에리히 프롬과 사회주의'로 고쳐단다.  

레디앙(06. 07. 18) 인간적 사회주의 꿈꾼 정신분석학자

"교회는 아직도 대체로 내면의 해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진보주의자들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정당들은 외부의 해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유일하게 현실적인 목표는 총체적 해방인데, 이러한 목적을 근본적(혹은 혁명적) 휴머니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존재의 기술> 중에서)

"휴머니즘적 사회주의는…최대 이윤의 욕구를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장과 자본의 비인간적 힘의 법칙에 따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스스로 계획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사회 체제이다."(<불복종에 관하여> 중에서)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의 책으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우리에게 심리학자 혹은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다. 신프로이드 학파의 거장이었던 프롬이 마르크스의 초기사상과 프로이드의 이론을 융합해 인간주의적인 사회주의를 꿈꾼 인물이었고 미국 사회당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폴 로빈슨이 <프로이트 급진주의>에서 꼽고 있는 프로이트 좌파는 빌헬름 라이히, 게자 로하임, 허버트 마르쿠제 등이다. 신프로이드주의 혹은 프로이트 수정주의는 정신분석학의 계보에서 보자면 '프로이트 우파'에 해당한다. 프롬은 포지션은 '프로이트 우파 +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이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다).

 

 

 

 

-프롬은 1900년 3월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태인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보모는 독실한 유태교 신자였다(*<정신분석과 종교>가 나올 만한 배경이다). 아버지인 나프탈리 프롬은 와인상을 하는 중산계급이었다. 프롬은 1918년 프랑크프루트 대학에 입학해 2학기 동안 법학을 공부한 뒤 하이델베르크대로 옮겨 사회학을 공부했다.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학위논문은 "유태교의 두 종파에 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였다. 그때까지 유태교가 프롬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1926년에 그는 유태교와 작별한다. 

-그후 베를린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하던 그는 1931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활동근거지이던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에 참여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예상치 못했던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중심지였던 독일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퇴조하면서 독일의 좌파지식인들은 곤경에 빠졌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돌파구 중의 하나는 "과거의 오류를 규명하고 새로운 행동을 강구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의 근본적인 토대를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좌파지식인 서클이었다.



-1923년에 정식으로 설립된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는 초기에는 사회변혁의 주도세력으로 노동계급을 상정했지만 "산업사회의 기술적 합리화가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거세했다"고 판단하고 현대사회의 문화적 상부구조를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활동의 초점을 옮긴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분석학의 도입이 요구됐다. 이에 따라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1년, 3명의 정신분석학자를 맞아들였는데 그들은 칼 란트아우어, 하인리히 멩, 그리고 에리히 프롬이었다.

-프롬이 합류함으로써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프로이드와 마르크스의 융합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1932년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의 기관지 <사회연구>지에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의 방법과 과제'를 발표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프롬은 1933년부터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 무렵 독일에서는 나치가 득세를 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많은 좌파 지식인들처럼 프롬도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먼저 스위스 제네바로 갔다가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콜럼비아대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교류를 지속했던 그는 1939년 프로이드 해석과 평가에 관한 연구소와의 의견차이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결별했다. 프롬은 이후 정통프로이드주의와도 멀어져 갔다.



-서구의 자본주의도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프롬은 이때부터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주목하며 인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소외론의 마르크스이다). 1955년 펴낸 <건전한 사회>는 이러한 그의 사회변혁의 이론과 사상이 제시된 책이다.

-프롬은 자본주의도 소비에트식의 공산주의도 인간성을 짓밟고 관료적 사회구조를 만들어 ‘소외’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데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담겨 있는 사상을 더욱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프롬의 생각이었다. 프롬의 사회변혁방법론은 '개인의 내적 변화를 통한 자기 해방과 사회변혁이 동시에 추진돼야한다'는 것과 '사회변혁운동이 정치적 영역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영역에서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생각은 <마르크스의 인간개념>,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로 이어졌고, 이론뿐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서 그는 그가 발딛고 있는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당에 몸담으면서 그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프롬은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 중반 미국 사회당에 가입해 활동을 했고 베트남전 시기에는 평화운동, 반전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반전을 기치로 내걸고 민주당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의 예비후보 경선을 도왔던 프롬은 닉슨의 당선 이후 정치적 활동을 접었다.



-1965년 멕시코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정년 퇴직한 뒤에도 <소유냐 존재냐>, <희망의 혁명>등 7권의 책과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프롬은 1980년 3월18일 스위스에서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뒤 1981년 <불복종에 관하여>가 출간됐는데(*이 책은 번역돼 있지만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이 책에 실려있는 미국 사회당의 강령 초안은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이 흥미롭다.

06. 07. 26.

P.S. 프롬의 저작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건전한 사회>가 일찌감치 세계사상전집 등에 들어가 있었을 만큼 국내에는 많이 소개되었고 많이 읽혔다(짐작에, <소유냐 존재냐>나 <사랑의 기술> 같은 책들이 그의 베스트셀러이다. 제목이 '선정적인' 만큼 가장 많은 종의 번역서들이 나와 있기도 하다. 대입논술문제로도 나오고). 그건 그의 주장이 그만큼 상식적이라는 뜻도 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롬에 관한 저작은 아주 드물다. 박홍규 교수의 <우리는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필맥, 2004)과 박찬국 교수의 <에리히 프롬과의 대화>(철학과현실사, 2001)가 국내 저자가 쓴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길잡이로서 유일하다. 번역서로는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2000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논문집을 옮긴 <에리히 프롬의 현대성>(영림카디널, 2003)이 전부이다. 그걸로 충분하다면 사실 아주 경제적인 노릇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수신문(06. 07. 23)에서 학술동향 기사를 옮겨온다. 이정모(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인지과학과 제3의 움직임'이 기사의 제목이고 '뇌·신체·환경의 종합…정서와 의식 넘어선 움직임'이 그 부제이다. 인지과학쪽 책들을 교양수준으로는 갖고 있고 더러 읽어본지라 '업계'의 동향에 대해서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로 여겨진다.

 

 

 

 

-마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탐구에서 등장한 인지과학이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 동안의 인지과학을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그러한 움직임이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인지과학은 그동안 두 단계의 중요 패러다임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첫 단계는 마음에 대한 컴퓨터 은유를 바탕으로 한 고전적 인지주의 또는 계산주의의 시기로, 인간 언어의 추상적 구조에 바탕하여, 심적 내용은 표상, 심적 과정은 계산으로 개념화하여 마음의 본질을 탐구한 시기였다. 둘째 시기는 이러한 고전적 인지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등장한 연결주의와 신경과학의 전개다. 이 시기에는 생물적 뇌의 추상적 구조(연결주의)와, 실제적 구조(신경과학)에 바탕하여 마음을 탐구하되, 언어의 통사적 구조에 바탕한 표상주의는 배격하고, 기호(상징) 이하 수준의 계산, 신경적 계산을 강조한 시기였다.

 

 

 

 

-그러나 전통적 인지주의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격하시켜 뇌의 탐구를 소홀이 하였다. 심신동일론 관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연결주의나 현재의 신경과학도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두뇌=마음’의 개념 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지과학에서 제3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심신이원론이건, ‘두뇌=마음’의 심신동일론이건 현대 과학에서 지지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음은 두뇌 내부의 작용만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두뇌, 신체, 그리고 세계가 연결된 집합체 상의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거슬러 올라가면, 윌리엄 제임스, 듀이, 로티 등의 실용주의 철학자들과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대륙의 철학자들이 이미 제기한 것이었지만, 현대 인지과학에서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먼저 강하게 드러내준 사람들은 철학자들보다는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연구자들 그리고 발달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이었다.

-인공지능학자인 로드니 브룩스(Rodney A. Brooks, 사진)는 1990년대 초에 그 당시를 풍미하던 내적 표상 조작 중심의 인공지능시스템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표상이 없는 지능시스템이 앞으로의 로보틱스 연구가 지향하여야 할 방향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한편 발달심리학 연구자들은 어린아이가 걷기를 학습하는 행동 등을 내적 표상 개념이 없이 동역학체계적 틀을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함을 보였다. 마음이란, 특정 지식이 표상으로 뇌에 내장됨 없이,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개체가 환경에 주어진 단서구조들과의 상호작용하는 실시점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비표상적 활동이라고 본 것이다.

 

 

 

 

-한편 신경과학자들은 뇌와의 연결이 단절된 척추체계가 통증 감각과 학습에서 일종의 인지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과, 신경계가 아닌 전신에 퍼져있는, 호르몬 관련 세포 수용기들이 정서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서적, 의식적 사건이 뇌만의 사건이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음=두뇌’ 식의 단순화된 생각의 위험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인지과학 내의 경험과학에서의 이러한 논의나 연구 추세는, 철학이 개입하기 이전에는 데카르트적 틀에 대한 산발적 압력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21세기 초, 현 시점에서 철학이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인지과학의 경험과학적 연구의 새 변화들이 어떤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묶일 수 있는가 하는 개념적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과 뇌가 동일한 것이 아니며, 마음은 뇌를 넘어서, 비신경적 신체, 그리고 환경, 이 셋을 포함한 총체적인 집합체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개념화하여 인지과학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자연과학적 인지과학과 인문학의 철학을 연결하여 새로운 틀을 이루어 내려는 이러한 작업은 마음의 문제를 협소한 주관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념화한 듀이 등의 고전적 실용주의철학자들의 계승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가 괴리되지 않은 세상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일상적 인지를 강조한 하이데거적 재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움직임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동역학체계’ 틀로의 변화를 주창하는 것을 본다면, 과거의 ‘계산의 언어’에서 ‘뇌의 언어’로, 그리고 이제 ‘동역학체계의 언어로’ 개념화하는 작업이 인지과학의 여러 분야에 앞으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뇌, 신체, 환경의 총체로서 마음을 개념화 한 인지과학의 새 틀이 신경과학, 심리학 등에서 생산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려면, 앞으로도 자연과학으로서의 인지과학과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을 연결하는 추가적 작업이 더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06. 07. 26.

P.S. '마음=뇌'가 아닌 뇌로부터 분리된 마음(혹은 마음으로부터 분리된 뇌)이라... 흠,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농담만은 아니겠다...


댓글(3) 먼댓글(1)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인지과학의 현황과 조망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8 23:47 
         교수신문(09. 04. 06) “생각 교환할 수 있는 지적 흥분의 분위기 필요해요” 한국의 인지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가 얼마 전 『인지과학』(성균관대 출판부)을 펴냈다. 종합과학이자 융합학문으로서 인지과학의 성과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이 교수는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심성을 과학을 통해 해명하자는 야심찬 취지를 바탕으로 한
 
 
2006-07-26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6 14:59   좋아요 0 | URL
**님이 AI에 저보다는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지과학이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에 제기하는 도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지젝이 <신체 없는 기관>의 한 장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구요...

2006-07-26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