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책, 그리고 올해 네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책. 저명한 영어권 헤겔학자 테리 핀카드의 헤겔 전기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가 출간됐다. 부랴부랴 리뷰들을 찾아봤지만 아직은 감감 무소식이다.

개인적으론 예전에 헤겔에 관한 문헌들을 찾아보면서 이 두툼한 전기에 눈길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이걸 언제 읽겠는가?'라며 마음을 고쳐먹은 적이 있다. 국역본 1088쪽이니까 만만찮은 분량이지만(원서보다 300쪽 가량 늘어난 분량이다) 그만하면 읽어볼 만하다. 국내에 나와 있는, 몇 안되는(아니 거의 없는) 헤겔 전기류를 단번에 평정하고도 남을 만한 책이니 특별히 기록해둘 만하다.  

손쉬운 대로, 저자에 관한 소개를 옮겨오면, 현재는 "노스웨스턴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고, "뉴욕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칸트부터 현재까지의 독일 철학, 특히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시기의 철학을 주로 연구했다. 1988년에는 독일의 튀빙겐 대학교에서 명예교수와 명예강사로 위촉되었고, '철학 연구 잡지(Zeitschrift fur philosophische Forschung)'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헤겔의 변증법>, <헤겔의 현상학: 이성의 사회성>, <독일 철학 1760-1860: 관념론의 유산> 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앞의 두 권은 나도 갖고 있는 책이다. 헤겔 관련서로서 지명도가 있었고 국내 서점들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책이다(이번에 나온 전기는 따로 주문해봐야겠다). 핀카드 교수는 "최근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 영역본 출간 작업을 하고 있다"고(새 영역본이 나오는 것인가?).

 

 

 

 

아무튼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헤겔의 전기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신뢰할 만한 것이다."(런던 리뷰 오브 북스)라고 하니까 기대해봄 직하다. 그의 전기를 읽고 나면, 혹 알겠는가? <정신현상학>이나 <논리학>을 읽어내기가 좀 수월해질지(슬라보예 지젝이 꼽은 두 권의 책이다. 무인도에 간다면 들고 갈). 하긴, 절판된 <논리학>은 그냥 들고 다니거나 꽂아두기도 힘들겠지만(나는 예전에 1권만 놔두고 2, 3권은 박스에 집어넣었다).  

덧붙여 고백하자면, 헤겔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을 내가 얼마간 갖게 된 건 순전히 지젝 덕분이다. 나는 지젝만큼 이 '괴물 철학자' 헤겔을 재미있게 읽어내는 '괴물'을 따로 알지 못한다. 핀카드는 헤겔의 생애를 혹 그만큼 재미있게 읽어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그런 '친절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06.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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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08-04 19:39   좋아요 0 | URL
헤겔의 <논리학>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의 주저인 <논리학>과 <엔찌클로페디(철학집성 또는 철학강요라고 불리는)>내의 <논리학>부분이 그것인데, 전자를 '대논리학', 후자를 '소논리학'이라고 부릅니다. 대논리학은 임석진번역으로 벽호(지학사)에서, 소논리학은 서동익번역으로 을유문화사, 전원배번역으로 서문당에서 출판되어있습니다. 이 세종류의 책은 지금 모두 구할 수 있습니다. 대논리학은 교보종로점에 꽂혀있습니다.

로쟈 2006-08-04 20:14   좋아요 0 | URL
예, 알고 있습니다. <대논리학>, <소논리학>이란 구분은 일본에서 전래된 관례로 알고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논리학>하면 <대논리학>을 가리키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한편 소논리학은 김계숙 번역도 있습니다. <대논리학>도 아직 서가에 꽂혀 있는 걸 저도 보았었지만 잔여본이 약간 남아 있을 뿐 책은 이미 절판된 게 아닌가 싶네요...

주니다 2006-08-09 10:33   좋아요 0 | URL
서점에서 직접보니 책장에 꽂아두면 자세나올 책이더군요. 이제이북스의 북 디자인은 수준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읽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구입을 해야할듯...^^
 

어제 낮에 구내서적에서 본 책인데, 한 도서광 내지는 책중독자의 도서편력기를 다룬 <책사냥꾼>(동녘, 2006)이 출간됐다. '책사냥꾼'이란 비유 자체가 유별난 건 아니고, 나로서 흥미로운 것은 최근에 이런 류의 책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가령 <젠틀 매드니스> 같은 책을 생각해보라).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교양미술서들이 팔려나가는 것처럼 이런 류의 편력기들도 팔려나가는 것일까? 츨판/도서 평론가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아무튼 나로선 동류의식을 느낄 만한 저자의 책이어서 반갑다. 한겨레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08. 04) 구제불능 책중독자의 도서편력기

-책에 미친 사람은 곳곳에 있다. 책이 그러한 것처럼…. 맛이 간 사람들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어한다. “어? 미친 녀석이 여기 또 있네” 하면서. <책사냥꾼>(동녘)은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방송인, 작가이자 책 수집가인 존 백스터(1939~ )의 회고록. 말이 좋아 회고록이지 평생을 책에 중독되어 산 구제불능 노인의 주절주절 수다다. 그런데 참 재밌다!

 

 

 

 

-도처의 책은 도처로 그를 끌고 다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런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프랑스 파리를 주유하게 만들었다. 그가 처음으로 중독자의 대열에 발을 디디기는 1978년 런던. 스위스 코티지의 벼룩시장을 어슬렁거리다 그레이엄 그린의 희귀본 어린이책이 단돈 5펜스에 얻어걸렸다. 그와 더불어 전설적인 서적 판매상 마틴 스톤을 만나 평생지기가 되었던 것.

-1980년대 초반 그가 수집한 그린의 책은 거실 벽을 넘쳐 침실 벽을 침범했다. 한번은 알파벳 순으로, 한번은 연대순으로 책을 새로 배치하면서 완상하다가 어느 순간에 다가온 깨달음. 한때 커다란 기쁨이었던 어린 새가 거대한 뻐꾸기가 되어 자신의 에너지와 돈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1982년 6월24일. 그는 책을 팔아치웠다. 하지만 책수집 열정이 식겠는가. 텅빈 책꽂이가 더 큰 유혹이 되었다. 1990년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창고에 보관하던 책을 파리에 모아 책으로 성을 쌓고는 장엄하게 선언한다. “이제 모두 완성되었다.”

-그는 “책을 수집하는 목적은 순전히 책을 손에 넣는 그 순간에 느끼는 전율 때문”이라며 그 순간을 삼각주의 수로에서 물고기를 낚는 순간의 손맛에 비유한다. 그가 추구해 마지 않던 그린마저 “지난 30여년 동안 내가 꾼 가장 행복한 꿈은 헌책방에 대한 것이었다”고 할 정도이니….

-책을 따라 읽다보면 자연스레 문학거장들의 세계로 끌려들어가고 책사냥꾼들이 희귀본을 찾아 헌책방, 벼룩시장, 경매장, 오래된 빌라를 누비는 과정에 합류하게 된다.(임종업 기자)

06. 07. 04.

P.S. 리뷰만으로는 너무 단촐하여 '책중독'이라면 전혀 남의 얘기가 아닐 만한 번역가이자 출판평론가 표정훈씨의 칼럼 '책사냥꾼'도 옮겨놓는다. 이 '사냥꾼들'의 세계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항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책사냥꾼들이 있다. 그들의 사냥터는 실로 전방위적이다. 요컨대 서점은 그들이 활동하는 사냥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서점은 그들에게, 사냥감을 미리 풀어 놓은 뒤 사냥꾼들에게 돈을 받고 운영하는 곳 정도에 불과하다. 무척 편하기는 하지만, 사냥감을 발견하고 손에 넣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떨어진다.

-책사냥꾼이 보통의 사냥꾼들과 다른 점은, 사실상 일상 생활의 모든 장면들 속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는 안테나를 접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는 물론이거니와,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집 서가라던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때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서점이라던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라던가, 버리지 않고 쌓아 둔 몇 년 전 신문더미라던가..... .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냥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이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일단 사냥감을 발견하고 나면, 책사냥꾼의 몸과 마음은 바빠진다. 우선 과연 그 사냥감이 사냥에 나설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서점이 주요 무대라면, 사냥감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다양한 체널을 동원해야 한다.

-우선 그 사냥감을 손에 넣은 적이 있는 주위 사람에게 직접 물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사냥 일지('서평'이라는 이름의)를 찾아 볼 수도 있다. 다른 나라 말로 집필된 사냥감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저자, 서평, 인터넷 서점에 올라 온 다른 사냥꾼들의 일지, 기타 등등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도서관 이용이 가능하다면, 각종 도서관을 방문하여(직접 방문이던, 인터넷을 통한 방문이던) 그 책의 소장 여부를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도서관 이용의 경우, 치사한 사냥 방법이기는 하지만 불법 복사 및 제본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사냥감이 천연기념물에 해당하는 경우,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구할길이 없고 오직 한 군데 도서관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경우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도 책사냥꾼의 양심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책사냥꾼이 보여주는 이런 종류의 양심 몰수가 과연 윤리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사항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불법 제본, 그러니까 박제로 만들어 획득한 사냥감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쾌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책이라는 사냥감은 그 속살뿐만 아니라, 가죽과 털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사냥당한 적이 있는 사냥감을 모아 놓고 파는 곳, 그러니까 이른바 중고서점이라는 사냥터는 각별한 사냥의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일반 서점과는 달리, 우연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사냥감이 갑자기 등장할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 그러니까 중고서점은 일종의 밀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경우에 준비된 실탄(돈)이 없으면 곤란하다. 실탄을 장전하기 위해 뜸을 들이는 동안, 누군가 다른 사냥꾼이 선수를 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정한 프로 책사냥꾼이라면, 어디를 가든지 사냥을 위한 여분의 실탄을 장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냥에 성공한 다음 할 일은 역시 사냥감의 속살을 맛보는 일인데, 이 단계에 불충실한 사냥꾼들도 적지 않다. 요컨대 서가에 진열해 놓기만 하고 좀처럼 그 속살의 맛을 보지 않는 경우라 하겠는데, 나 역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언젠가는 맛보리라 생각하며(마치 뱀술, 과일주 등을 큰 유리병에 담아 놓고 바라보는 애주가의 눈길과 비슷) 흐뭇하게 바라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지만, 역시 책이라는 사냥감은 직접 맛을 보아야 제격이다.

-책사냥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냥감을 직접 만들어 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다. 요컨대 다른 사냥꾼들의 후각을 자극할만한 사냥감을 만들어 풀어 놓고 싶다는 생각. 일본의 어느 저명한 동양학자(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책을 소개하고자 마음먹기도 했었는데.)의 책에 대한 신조랄까 그런 것이, "책을 구입한다. 구입하면 반드시 읽는다, 읽고 나면 반드시 쓴다"였다는데, 가히 책사냥꾼의 입신의 경지라 할만하다.

-요컨대 책을 사고, 그것을 읽고, 읽기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그렇게 쓴 글이 모이면 책으로 출간하여 팔고.... 뭐 이런 순환 과정인 셈이다. 여하튼, 책사냥이라는 일은 강박 관념에 가까운 집착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서, 갑자기 읽고 싶은 생각이 든 책이 있는데, 분명히 서가 어느 곳에 있기는 있는데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자신의 서가 전체를 여러 번 살펴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러나 결국 찾을 수 없어서 잠못 이룬적이 있는 사람. 오래 전에 절판되었으나 반드시 구하고 싶은 책이 있는데, 도무지 구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아 괴로워한 적이 있는 사람, 한 달 생활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우연히 만난 훌륭한 사냥감에 주저 없이 투자한 사람, 실탄 부족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 사냥감을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그러니까 훔치는 일)하고 싶다는 치명적인 유혹에 시달려본 적이 있는 사람, 그런 등속의 사람들(*이런, 이 모두에 해당하는군!).

-탐미주의 또는 유미주의라는 말도 있지만, 탐서주의 또는 유서주의라는 말도 가능할지 모른다. 탐미주의자의 의식 상태를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한다면, 탐서주의자의 의식 상태 역시 그러할 것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책의 노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스스로 노예가 되고 싶어 하는 상태, 그러니까 일종의 약물 중독과 비슷한 상태라는 점이다.

-문자의 금단 현상,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문도 들어오지 않고 변변한 책이나 책방 하나 없는 산골에서 사흘 이상을 견디지 못하는, 일종의 문명병이라고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사실상 치유 불능에 가까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내릴 수 있는 처방 아닌 처방은 아마도,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한 시한부 말기 암환자" 가족에게 의사가 건네는 이런 말밖에 없을 것 같다. "집에 모시고 가셔서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게 하십시오."(*아니, 사냥꾼 얘기가 어이해서 말기 암환자에 대한 비유로 마무리되는가? 하긴 간혹 정신병원에 가보란 소리를 듣는 나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겠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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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8-04 01:19   좋아요 0 | URL
'책에서 배운 것대로' 살기 위해서라면 많은 책이 필요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제 주변의 아는 분 같은 경우도 성경책 한 권 읽는 걸로 충분하다고 믿으시니까요. 수천 권의 책을 읽을 경우에 무얼 배우고 무얼 따라 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을까요?..

로쟈 2006-08-04 08:49   좋아요 0 | URL
새벽이라기보다는 한밤중이었는데. 저는 곧 잤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늙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웃음소리 2006-08-10 09:39   좋아요 0 | URL
그런데 로쟈 님은 어떻게 표지에 들어간 그림까지 따로 갖고 계실까... 궁금. ^^ 로쟈 님 글을 조용히 읽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흔적 남깁니다. 덕분에 재밌는 표정훈 씨 글도 읽고 고맙습니다. 이번 휴가 때는 책사냥꾼이랑 로쟈 님이 표지 붙여 놓은 책들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로쟈 2006-08-10 11:33   좋아요 0 | URL
그게요, 언론사 리뷰들에 붙어있는 거걸랑요. 저는 포샵은커녕 파워포인트도 못 다루는, 스캐닝도 할 줄 모르는 위인이랍니다...
 

제목 그대로 '니체와 니힐리즘'이 아니라 '니체와 알피니즘'이다. 작가 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이라는 한국일보 연재칼럼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 편을 옮겨온다. 이 여름에 피서지에 들고 갈 책으로 문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가 아니라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한국일보(06. 08. 03) 니체의 철학사상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지 않는다. 그의 책을 즐겨 읽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가는 극단적이다. 어떤 이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논리의 비약이 심해 과격한 수필에 불과하다며 악평을 늘어놓고, 또 다른 이는 기독교 문명의 몰락과 허무주의의 도래 사이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 세기말의 대철학자라고 한껏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사상이 다름 아닌 산악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니체는 19세기를 마감하는 1900년에 죽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이 산악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과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알피니즘을 풍미했던 사조는 이른바 ‘단독 등반’이다. 당시의 젊은 산악인들은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자일조차 사용하지 않고 홀로 까마득한 바위 절벽들을 기어올랐다. 단 한번의 사소한 실수도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등반 형태다. 실제 이 시기에 홀로 산에 오르다 외롭게 죽어간 산악인들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훗날 우연히 발견된 그들 시체 곁의 배낭 속에서는 니체의 책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음, 정정해야겠다. 나는 니체를 권하지 않았다!).

 

 

 



-목숨을 내걸고 단독 등반에 나선 산악인들에게서 염세주의적 경향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현세를 부정하거나 혐오했다. 그들은 인간이란 더 나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위대한 목표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죽음의 공포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야 할 그 무엇으로 여겼다. 그들은 어쩌면 ‘초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대표되는 니체의 초인사상이 과연 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니체의 초인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한 것이 과연 단독 등반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었을까? 논증할 방법은 없다. 다만 시체로 발견된 단독 등반자들의 배낭 속에서 그의 책이 자주 발견되곤 했다는 것만은 에누리 없는 사실이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마’로 취급 받았던 니체가 더욱 혹독한 비난에 시달리게 된 것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알프스 북벽 초등 경쟁 시기였다. 이 시기의 초등 경쟁은 ‘국가주의적’ 색채가 짙었다. 당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이 경쟁을 주도해 나갔던 민족은 독일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총지휘했던 히틀러가 니체의 초인사상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켜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죽어버린 니체가 만약 후대에 벌어진 이런 사태들에 대하여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본의와는 무관하게 ‘죽음을 무릅쓴 단독 등반’과 ‘국가주의적 등반 경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니체는 과연살아 생전에 등산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나 있을까? 있다. 그것도 여러 해에 걸쳐 지속적으로 등산을 즐겼다. 전문 산악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적어도 ‘등산 마니아’ 정도는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니체는 평생을 불행하게 살다 간 철학자다. 불과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을 만큼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갖추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1870년에 벌어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평생 편두통과 정신착란에 시달렸다. 게다가 ‘추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못 생긴 외모 탓인지 여인들과의 사랑에서도 언제나 쓰라린 상처만을 맛보곤 했다. 삶에 너무도 지친 그가 교수직에서 사퇴하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가 결국 안주한 곳이 바로 스위스 알프스 엥가딘 지역에 있는 질스-마리아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다.



-유명한 산악관광지 생모리츠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해발 1,800m의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니체는 1879년부터 8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요양과 집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치료하였다. 훗날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을 넘어서>,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의 전부 혹은 핵심적인 대목들은 모두 이곳에서 쓰여진 것이다(*나는 너희에게 등산을 가르치노라!).

-그가 이곳에 머물면서 자주 올랐던 산들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코바치봉, 라그레브봉, 데 라 마그나봉 등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코바치봉(3,451m)은 그가 가장 즐겨 올랐던 산이어서 현지에서는 ‘니체의 산’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운다. 이를테면 그는 이 산을 오르내리며 ‘차라투스트라’와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를 완성하고 이곳을 떠난 니체는 그 직후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켜 토리노 광장에서 졸도한다. 이후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은 다시 처참한 불행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기간은 알프스 자락 엥가딘에 머물던 8년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좀 더 일찍 알프스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도 죽었다. 그의 책을 탐독하며 단독 등반에 나섰던 이름 없는 젊은이들도 죽었다. 그의 사상을 핑계 삼아 야만적인 전쟁에 광분하였던 나치주의자들도 죽었다. 영원한 것은 오직 산뿐이다.

● 니체의 저서에 나오는 등산 비유 문장들

“내 글의 공기를 호흡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것이 높은 곳의 공기, 기운 찬 공기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그 공기를 느낄 수 있도록 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은 가까이 있고 홀로 있음은 처절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햇살 속에 얼마나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는가! 숨쉬기는 또 얼마나 자유로운가! 발 밑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는가! 철학은 얼음으로 뒤덮인 고산에서 자발적으로 사는 것이리라.”(<이 사람을 보라>)

“(나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이 시대에 조우하게 되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정신이 필요하다. 비유적인 의미로 높은 곳의 보다 희박한 공기에, 그리고 겨울여행과 얼음과 산에 순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도덕의 계보학>)

“진실이라는 산맥을 타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든지, 그렇지 않다면 내일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힘을 단련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06.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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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6-08-03 16:47   좋아요 0 | URL
헉, 차라투스트라가 '설교'를 하는 공간인 산이 메타퍼가 아니었네요? 실제로 등산을 즐겼다니, 놀라워라. 나도 산 밑에서 태어나긴 했는데 ;;;--

로쟈 2006-08-03 20:58   좋아요 0 | URL
물론 이리가레(이리가라이)는 '바다의 연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프라즈나 2006-08-04 09:02   좋아요 0 | URL
음...그런데 제가 아무리 봐도 니체는 추남(?)은 아닌것 같은데요^^
그거땜에 여자들에게 쓰라린 상처만을 맛보았다고 쓴 것은 쪼끔 논리적 비약인듯...

로쟈 2006-08-04 11:12   좋아요 0 | URL
외모야 일단 그 자신이 어떻게 생각했느냐 중요하겠죠.^^ '니체와 여성'이란 주제만 해도 덩치가 큰데, 저도 언젠가는 좀더 다루어보고 싶긴 합니다...

parioli 2006-08-04 12:00   좋아요 0 | URL
니체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평소 그리 미남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책에선 니체가 옷을 잘 입는 멋쟁이-잘 생겼다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됨-로 유명했다고도 하고. 이 글에선 추남이라고까지 하네요...철학자와 외모 사이엔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연구해 볼만한 주제 아닌가요? ㅎㅎ

로쟈 2006-08-04 12:02   좋아요 0 | URL
그게 소크라테스부터 문제가 됐던 것이니까 거의 철학의 '기원적'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만큼 내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읽기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는 사회학자도 드물다. 이건 그의 책 대부분이 동문선에서 출간되고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어지간하지 않은 책값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갈 수 없는 책들과 몇 번 대면하다 보면 지레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의 책 <실천이성>(동문선, 2005)의 경우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없는 책으로 치고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집어들게 되었고(서점에서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외국의 청중들을 상대로 한 강연문집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어쩌면 부르디외의 사회학에 대해서 그 자신이 가장 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입문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었고: "부르디외가 설명하는 부르디외의 사회학 이론을 접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행운이라 할 터이다. 그의 직접적인 목소리로 듣는 해설서로서 <실천이성>이 그의 독창적 학문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278쪽)

하지만, 나의 행운과 기대는 멀리 가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불어본과 영역본(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장의 번역이 누락돼 있다)까지 대출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제일 처음 읽은 것은 1장의 부록인 ''소련의' 변형과 정치적 자본'이었다. 국역본상으로 6쪽짜리의 글인데(불어본과 영역본은 5쪽), 내용에 들어가기 이전에 몇 가지 사항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번역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일단 첫문장: "나는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디스탱숑>을 깊이 있게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32쪽) 부르디외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 <디스탱숑La Distinction>이 <구별짓기>를 가리킨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에 대한 불만들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작년에 국역본 재판(새물결, 2005)까지 나온 바 있다(부르디외 전공자인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을 '탁월화'라고 엉뚱하게 소개한 전력이 있다). 같은 책이 동문선에서는 아마도 새물결판과 구별짓기 위해서 <디스탱숑>이란 음역 제목으로 근간 목록에 올라놓고 있는데, 한국어판 판권이 과연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정이 어떻든간에 우리말로 아무것도 전달해주지 않는 '디스탱숑'을 책의 제목으로 삼는 태도 자체가 불만스러웠는데, 막상 번역서에서 그런 제목을 읽으려니까 심사가 아주 디스탱숑해진다.

 

 

 

 

동베를린에서 강연한 강연문인 이 글에서 부르디외가 '여러분'이라고 호명하는 대상은 1989년 10월 25일 당시 동독인들이었다(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건 불과 며칠 후인 11월이었다).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구별짓기>의 모델이 프랑스 밖에서도 적용가능한가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문에 대해 답하겠다는 것(국내에도 부르디외 사회학의 한국적 적용을 탐색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즉, 이 책에 제안되어 있는 모델은 프랑스의 특수한 사례를 넘어서 유효한 것인가? 그것은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적용된다면 그 조건들은 무엇인가?"를 부르디외는 따져보고자 한다.

이때 인용문에서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는 주의를 요한다. 부르디외의 발화시점에서 '통일 독일'은 아직 없었으며 그가 쓴 표현은 '동독'이기 때문이다. 불어로 동독은 RDA이며 영어로는 GDR(German Democratic Republic)이다. 사실 어차피 통일된 마당에 동독이나 독일이나 뭐가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강연의 제목/주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역자가 '소련의 변형'이라고 옮긴 표현은 'La Variante 'Sovietique'(The 'Soviet' Variant)이며, 이건 ('미국형'이나 '자본주의형'에 대응하여) '소련형' 혹은 '소비에트형'으로서의 동독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독일을 '소련의 변형'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RDA/GDR은 원래대로 '동독'이라고 옮겨야 하는 것이다(더불어 이 글의 제목은 '소비에트형 사회와 정치적 자본'이라고 옮기고 싶다).

RDA가 나오는 여러 대목들이 '독일'이라고 옮겨진 것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서 "확인의 명목으로 우리는 그렇게 획득된 사회적 공간의 모델이 오늘날 RDA가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들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36쪽)에서 'RDA'는 왜 튀어나오는 것인지(이 불어 약자는 GDR과 달리 단번에 검색되지도 않는다)? 역자의 부주의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하는 문제일까?  

 

 

 

 

그렇게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니까 곧 흠잡을 것 투성이가 된다. "그래서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구축 작업, 나아가 -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E. P. 톰프슨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 제조 작업을 대가로 해서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 될 수 있다."(33쪽)

내가 아직 톰슨의 명저를 읽어보지 않아서 'mobilized and active classes'라고 영역된 문구를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라고 옮기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사정은 역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Thompson'이 '톰프슨'이 아니라 '톰슨'으로 옮겨지며, 그의 주저는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가 아니라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적어도 국역된 번역본이 있는 경우에(더구나 그게 무시할 만한 번역본이 아닌 이상) 이를 참조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건 일반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 아닐까?

부르디외가 강연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프랑스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중요한 사회적 변수인 반면에 (동독과 같은) 소련형 체제에서는 '정치적 자본'이라는 게 중요하게 기능하며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학적 분석에서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런 내용은 제목에서부터 이미 암시받을 수 있고 상식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내가 읽기에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새로운 상식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상식을 확증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 상식으로의 여로는 '디스탱숑'과 'RDA'와 '톰프슨' 등을 거쳐가야 하는 울퉁불퉁한 험로이다. 짧은 강연문에 대한 브리핑을 기획했다가 이런 식의 불평만을 늘어놓는 게 과연 나의 결벽 탓인지?..

06.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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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3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 로쟈님의 번역관련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만약 제가 또 번역을 하게 되면 정말 눈에 힘을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사이드 선생이 <미메시스>에 대해서 쓴 글을 한 문예지에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죽겠더라고요. 덕분에 신학책도 봐야했고 미메시스도 다시 영역본으로 읽는 등. 번역은 정말 작심하고 공부하면서 하지 않으면 완전히 '민폐'를 주는 것 같습니다. ㅎㅎ ^^

아래는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확인의 명목으로 우리가는 그렇게 획득된 사회적 공간의 모델이 오늘날 RDA가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들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는' 은 고유명사인가요?;; '우리는'일 것 같은데 문맥상으로는요.

로쟈 2006-07-3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이 맞습니다. 오타였어요.^^

krinein 2006-07-3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공부할 때 읽은 국역본들이 대부분,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건 그렇다치더라도, 긍정문과 부정문까지도 혼동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었지요. 예의 새물결판 [구별짓기]는 역자가 실상 일어판을 주로 참고했다기에 상대적으로 문법적인 오류는 적을걸로 기대했는데도 말입니다(물론, 영역본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뭐, 동문선 번역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알라딘 서재는 주로 읽기만 하는 편이라 인사는 처음입니다(라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 글을 퍼가면서 인사드린 적이 있었군요^^;;;). 늘 재미있게 읽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2006-07-31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8-0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rinein님/ <구별짓기> 개정판이 교정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역에 대한 지적들이 있고부터 초판본은 그냥 꽂혀 있는 책입니다. 박스에 넣기도 뭐하고...

**님/ 그렇게 질문하시니까 저도 헷갈립니다. 저라면 몽테뉴(혹은 파스칼)이라고 적겠습니다(^^;).
 

얼마전 G8 정상회담이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바 있다. TV뉴스에 자주 나왔을 법한 장소가  회담장소였던 콘스탄틴궁이다. 이 콘스탄틴 대공의 사저를 복원한 것이라 하는데, 페테르부르크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소식이다. 러시아 관련 참고자료로 관련 칼럼을 옮겨놓는다. 조선일보 정병선 특파원의 기사이며, 크렘린궁에 관한 내용도 연달아 옮겨놓는다.  

Konstantin palace in Strelna

조선일보(06. 07. 28) 권위보다 국민 배려

-G8(선진공업 8개국) 정상회담이 열렸던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콘스탄틴궁(宮)이 세계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회담이 열리는 동안 이곳은 이미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회담장에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한참 동안 궁내 장식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포착됐으며, 각국 정상들이 궁전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한 게 모두 기사화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곳은 미국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과 같은 존재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할 때마다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자신과 친밀한 각국 정상들을 초대해 회담하고 파티를 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에서 영감을 얻어 이곳을 만들었다. 지난 2001년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에 초대받아 지내며 강한 인상을 받은 뒤 자신도 부시 대통령처럼 고향에다 그와 비슷한 대통령의 별장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의지가 콘스탄틴궁 복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콘스탄틴궁은 제정(帝政) 러시아 때 건축됐지만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침공하면서 완파돼 건물 터만 남았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방문 직후 궁 복원 지시를 했다. 특히 궁을 단순히 제정 시대 궁전으로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 정상들을 초대해 회담도 하고 함께 지내며 식사와 여가를 겸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의 관저이자 정상회담 장소로 손색이 없도록 한 것이다.



-콘스탄틴궁 복원에는 재건축비가 250만 달러 투입됐지만, 실내 장식 등 내부 시설에 투입된 예산은 건축비보다 10배 이상 소요됐다. 크리스털 장식과 대형 거울, 금으로 도장된 장식품이 즐비한 회의실은 눈이 부실 정도로 호화찬란하다. 궁전 주변 50㏊에는 정원과 현대식 호텔(코티지식)이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섰다. G8 정상회담에 초대받은 정상들은 이곳을 숙소로 사용했다.

-지난 2003년 도시 창건 300주년 기념식 때 주 행사장으로 이용됐던 이곳은 당시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45개국 정상들을 맞으면서 처음 공개됐다. 그때는 일부 선택받은 정상만이 이곳에 묵을 수 있었다. 콘스탄틴궁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각국의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제정러시아 황제처럼 군림하며 여름 궁전을 만들었다”면서, ‘콘스탄틴궁’이 아니라 ‘푸틴궁’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곳은 개관 이후 매년 1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명소가 됐다. 기존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 ‘표트르궁’, 예카테리나 여제의 여름 궁전 ‘예카테리나궁’(*아래 사진)과 더불어 백야(白夜)로 유명한 상트 페테르부르크시(市) 최대 명물로 떠올랐다.

Czar's Village. Catherine palace. Church wing

-콘스탄틴궁은 푸틴이 이곳에서 자주 외국 정상과 회담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면도 있지만 정부가 이곳을 단지 대통령 별장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인에게도 공개하면서 더 유명세를 치렀다. 실제로 이곳의 정상회담장인 대형 회의장과 숙소는 실비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고 있다. 관광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시는 콘스탄틴궁의 성공적 결과에 고무돼 제2, 제3의 콘스탄틴궁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콘스탄틴궁은 대통령의 별장이지만 대통령 소유가 아니고, 특별한 인사의 전유물도 아니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국민 모두의 것으로 여긴 러시아 정부의 파격적인 마인드가 가져온 하나의 수익 모델이다.

조선일보(06. 02. 10) ‘크렘린궁 패밀리’ 되려면… ‘줄’ 없으면 꿈도 꾸지마

-러시아에서 모스크바의 권력중심을 상징하는 크렘린궁. 그 행정실은 크렘린궁을 둘러싼 3개의 건물에 분산돼 있다. 행정실은 대통령 행정실로도 불리며 러시아에서는 별천지로 통한다. 그만큼 이곳에서 근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다.

-행정실은 분석국, 통제국, 외교국, 내무국, 인사국, 포상국 등 모두 12개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직원은 약 2000명 정도. 평균연령은 45세로 알려졌다. 더 이상은 비밀이다. 행정실 직원을 뽑는 원칙은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은 공무원들 가운데 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맥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의 길로는 미국 백악관처럼 인턴십 연수과정을 거쳐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다. 인턴들은 주로 모스크바국립대, 국제관계대, 모스크바외국어대학 학생들이 총장 추천을 받아 선발된다. 연수기간은 대개 3~4개월. 이 기간 동안 국가정보기관은 인턴이 제출한 이력서의 진위와 신분조회를 한다.

 

-실제로 모스크바국립대 졸업생들이 ‘크렘린궁 패밀리’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역사학부, 어문학부, 법학부, 언론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출신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행정실 근무자인 콘스탄틴 포르마료프(가명·35)는 “최근 공무원 채용부터 퇴직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한 ‘공무원법’이 제정됐지만, 아직은 크렘린궁 패밀리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스크바대 출신에다 ‘줄과 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러시아는 '줄'과 '친구들'이 말하는 사회이다).

-대통령 행정실 직원들의 월급은 다른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적은 편이다. 부국장급 월급이 3만1500루블(1100달러 수준), 중간급은 1만루블 정도이다. 하지만 월급보다 많은 온갖 특혜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국장의 경우 국가관리용 고급별장과 자가용이 특별 제공되며, 직원 모두에게는 러시아 최고 병원으로 치는 ‘대통령총무국 산하 부속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여름휴가 동안 흑해 요양소 이용권을 3분의 1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3주 동안 흑해요양소 이용권은 5만5000루블 수준이다.

-자녀들에게도 온갖 혜택이 주어진다. 유아(2~7세)들은 대통령 총무국 산하 부속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고, 특수학교 입학도 보장된다. 대통령 총무국이 특별히 선발한 교사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행정실 직원 자녀들은 두세 가지의 외국어 습득은 물론 예체능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등 마치 제정 러시아시대의 귀족 교육과 같은 과정을 받는다.

-이 때문에 크렘린궁 행정실은 행정직 외 기술직, 식당 종업원조차도 경쟁이 치열하다. 한번 크렘린궁 행정실 직원이 되면 20~30년 이상 평생 근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식 역시 대를 잇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크렘린궁 행정실 직원 같은 철밥통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06.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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