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에서 프리모 레비 편을 옮겨온다. 이 연재에서는 이전에 <모크샤>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 편을 옮겨온 기억이 난다. 국내에는 직접적으로 소개된 바 없지만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나 증언자로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 작가이다. 나도 사실 그의 책을 실제로 처음 본 건 모스크바의 구내 헌책방에서였는데, 영어본 몇 개가 꽂혀있었던 것. 나는 그가 유태인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건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최근에 레바논 사태와 관련하여 한번쯤 귀담아볼 만한 '인터뷰'이다.

 

한국일보(06. 08. 08)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며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했던 유태계 이탈리아인. 자신이 태어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홀에서 투신 자살했다. 토리노에서 태어난 레비는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가 최초의 인종차별법을 공포해서 유태인들은 공립 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재학생들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의 졸업증서에는 ‘유태인’이라고 기재되었다. 졸업 후 제약 공장에 다니던 그는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진다.



-독일의 패전 후 어렵게 복귀해서 도료 공장에 일자리를 구한 레비는 1946년 ‘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을 써서 이듬 해 출판한다. 1963년에도 수용소 체험 에세이집 ‘휴전’을 출판하고, 이어서 단편집 ‘자연스러운 이야기’(1967) ‘형식의 결함’(1971) ‘주기율표’(1975) ‘릴리트와 단편들’(1981), 시집 ‘브레마의 선술집’(1975) 및 노동자에 대한 민속지학적 이야기 책 ‘멍키 스패너’(1978), 에세이집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 등의 작품을 출간해서 이탈리아 안팎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 아우슈비츠에서 나치가 그에게 문신했던 수인 번호 174517는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레비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공격적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면서 이에 ‘저항할 책임’을 주장했고, 또 디아스포라(이산)의 국제적 체험에 깃든 관용의 사상적 전통을 지켜내야 한다고 역설했다(*서경식 선생의 책들에서 프리모 레비는 자주 참조된다. 아우슈비츠의 또다른 생존 체험기로는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책들이 있다. 물론 그 수용소장 <헤스의 고백록>도 참조가 되겠다).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던 이스라엘 국방장관 샤론이 다시 권력에 복귀했을 때에도 애써 낙관적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려고 했던 레비가 끝내 자살을 하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쇼아’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동으로 소위 ‘역사가 논쟁’이 독일에서 터진 탓이다. 1986년 독일의 우파 역사가들은 학문의 외피를 쓴 채 독일 파시즘의 불가피성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40년에 걸친 자신의 증언에 대해 절망적으로 회의하게 되었다(*이러한 절망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함께 아직 현재진행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계속 살아 남아서 글로 증언하고 했던 정신적 계기는 바로 ‘기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의미’이며 ‘인간은 불행한 경험 속에서도 살아가야 할 의무’와 ‘그 경험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 자신이 믿어 왔는데, 그렇게 ‘증인의 의무를 갖고 지옥에서 나왔지만’ 이제 우파 역사가들의 뻔뻔스러운 역사 왜곡 앞에서는 ‘증언자로서 자신의 자격에 대한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자살은 당시 유럽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재현(이하 현) 레비 선생님, 이스라엘의 광기가 너무 무섭습니다. 최근에는 민간인 마을을 폭격해서 수십 명을 학살했습니다. 여기에는 너덧 살 된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3주 넘게 계속된 무차별 공격으로 숨진 레바논 측 민간인 사망자가 7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난 7월말 현재 난민 숫자는 레바논에서만 68만 명이고 시리아, 요르단, 사이프러스 및 걸프 지역에도 2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프리모 레비(이하 레비) 살해된 민간인 다수는 피난민들이고 사망자 절반 가까이는 아이들이야. 공습으로 죽은 유엔 감시단원들은 이스라엘측이 고의적으로 정밀 폭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있는 시신을 포함하면 죽은 사람들 숫자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게야.

현: 지금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거의 모든 곳을 아우슈비츠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홀로코스트(대학살) 범죄자라고 하면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 파시스트 도살자들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레바논 침공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홀로코스트의 범죄자들로 전락해 버린 셈입니다. 전세계에서 지탄을 하고 고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민간인들을 대낮에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전쟁 범죄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란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과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요?



레비: 니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괴물과 싸우다 보면 괴물이 되어버린다고 말이야.

현: 이스라엘은 이번 침공의 발단이 헤즈볼라에 의한 이스라엘 병사 2명의 납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레비: 우선 ‘납치’란 말이 잘못 된 거야. ‘납치’란 말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의 표현인 거고. 헤즈볼라 입장에서는 1982년 창설된 이래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니까 이스라엘 병사들은 엄연히 전쟁 포로인 거지(*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침공 자체는 정당화되는 것인가? 민간인 학살만이 문제될 뿐?). 그리고 원래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민저항위원회(PRC)의 지도자 아부 삼하다나 등 4명을 살해하고, 가자 지구 북부 해안을 폭격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7명이 사망하고 30명 넘게 부상하게 된 사건이 발단이라네. 그 사건 이후 하마스는 2005년 2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사이에 성립된 휴전의 무효를 선포하고 이스라엘과 전투를 하기 시작한 걸세. 헤즈볼라 측의 공세는 이 전투의 연장인 거야.

현: 헤즈볼라는 뭐고 하마스는 뭔가요?

레비: 헤즈볼라는 ‘신의 당’이란 뜻을 가진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창설되었고, 1992년에 처음 의회에 진출해서 현재 전체 128석의 의회에서 14석을 차지한 합법 정당을 갖고 있기도 해. 물론 산하에는 무장 조직도 있고, 평소에 의료와 교육 등의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이란 뜻의 팔레스타인 수니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7년의 제 1차 인디파타(봉기) 때 ‘무슬림 형제당’의 가자 지구 조직으로 출발했어. 2004년 3월에 하마스 지도자 야신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고, 올해 1월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해서 팔레스타인 의회의 다수당이 되었지. 하마스가 집권하자마자 미국은 팔레스타인 원조를 끊어 버렸지.

현: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공통점을 가졌군요. ‘무슬림 형제당’은 1928년과 1929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창설된 최초의 ‘정치적 이슬람주의’ 조직이고,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이란에서의 시아파 집권이지요. 그러니까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단지 이슬람 율법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창설을 통해서 이슬람화를 정치적으로 성취하려는 이념을 갖고 있는 거네요. 그들의 무장 투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침탈과 지배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인 거고요.

레비: 국민 국가마다 세부적인 사정은 다르지만 대체로 그런 거지. 그런데 문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우파 강경 집단이야. 1995년에는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1993년에 팔레스타인 측과 오슬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해서 이스라엘의 극우파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지. 또 올 3월에는 이스라엘 총선에서 카디마 당이 승리를 했는데 이 카디마 당은 강경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 당수로서 총리가 된 샤론이 작년에 새롭게 출범시킨 정당이야.

현: 샤론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다음, 국방장관 시절이던 1982년 메나헴 베긴 당시 총리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난민촌을 공격해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적이 있지요?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 ‘도살자’라고 불리기도 했구요.

레비: 그런 샤론이 총리 취임 후에는 독자적인 제안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작년 9월에 38년 간 점령했던 가자 지구를 포기했다네. 그 제안이란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이전의 점령지는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고 그 대신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쪽에 돌려준다는 내용이지.

현: 그런데 헤즈볼라나 하마스는 이 제안을 인정하지 않는 거네요. 제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던 1948년 이전을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이 제안은 애당초 말이 안 된다는 거지요?

레비: 이러한 학살과 증오와 광가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 없이 잠정적인 정치 협상 기술만으로는 절대로 참다운 평화가 만들어질 수가 없어. 게다가 아랍 내 일부 친미 권위주의 국가들의 집권층은 팔레스타인에 자치와 연대에 기초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속으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어. 대부분의 아랍 사람들이 현재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때문에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지.

현: 그럼 이번 레바논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또 어떻게 힘을 보태야 하나요?

레비: 나라고 해서 해답이 있는 건 아냐. 다만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26곡의 오딧세이 부분에서의 인용문을 들려주고 싶네. “너희들은 짐승 같은 야만적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도록 내게 힘을 주었던 구절이라네.



현: 어쨌든 일단 즉각적으로 휴전이 이루어져서 레바논 사람들이 한숨을 돌렸으면 좋겠네요. 협상은 그 다음에 하면 되는 거니까요.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지요.(문화비평가 이재현) *프리모 레비에 대한 서경식 선생의 책이 이후에 출간됐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2006)가 그것이다.


 

 

 

 

06. 08. 08

P.S. 이어서 헤즈볼라측 의견을 들어본다. 한겨레의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씨가 헤즈볼라의 창설주역이자 레바논의 국회부의장 하스 하산을 만나서 들어본 이야기이다. 그는 "군인 둘 때문에 전쟁 일으키는 이스라엘을 국제사회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모든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고 말한다.  

 

 

 

 

한겨레21(06. 08. 03) 조건 없는 휴전, 협상은 그 다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치란 참 실없는 짓이구나. 늘 현실과 동떨어진 딴 세상에서 놀고 있다.” 뭐, 이런 비관적인 건데, 멋지게 꾸며놓은 레바논 의회- 사실은 세상 모든 의회- 앞마당에 설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7월25일, 504호 의원실 문을 두드렸다. 헤즈볼라당 의원이며 레바논 국회부의장인 하스 하산 후세인(Dr. Has Hassan Houssein). 그는 1982년 헤즈볼라를 창설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14개 의석을 지닌 헤즈볼라당 출신으로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인 나스랄라를 정치적으로 보좌하는 인물이다.

-어제 헤즈볼라 쪽에서 휴전을 제의했는데.

=야만적인 이스라엘의 공격을 보라. 수많은 시민을 살해하고, 레바논 사회를 파괴시키고…. 이스라엘이 공습한 베이루트 남부 지역은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민간인 거주지일 뿐이다.

-그런 거 말고, 휴전 이야기부터 좀 해보자.

=그래서 휴전하자는 거다. 조건 없는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왜 지금 와서 휴전하자는 건가? 처음부터 개전을 말았어야지.

=이건 우리(레바논) 전쟁이 아니다. 그이들(이스라엘) 전쟁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켰다.

-‘무조건 휴전’을 내걸었는데, 그 다음은?

=휴전부터 하고 협상해나가면 된다. 포로 교환을 포함해서 모든 사안을 하나씩.

-이상적이긴 한데, 이스라엘이 들어줄 것 같은가? 휴전협상도 흥정인데.

=그러니 조건 없이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서로 조건 내걸면 휴전하기 어려우니.

-무조건이란 것도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만한 ‘거리’를 주는 거 아니겠나? 예컨대, 헤즈볼라가 납치한 군인 두 명의 석방을 넌지시 보장한다든가.

=그건 무조건이 아니지. 우린 완벽하게 조건 없는 휴전을 제의한 상태다. 그런 건 휴전 뒤에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먼저 휴전해서 시민 희생부터 줄이자는 게 우리 뜻이다.

-형식상 이스라엘은 납치당한 군인 둘을 빌미로 공격을 시작했는데, 명분 없이 휴전을 하겠나?

= (말 자르고 흥분하며) 군인 둘 납치와 전쟁은 다른 사안이다. 전쟁을 그렇게 쉽게 벌이나?

-그럼, 헤즈볼라는 군인 둘을 납치할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 못했다는 건가?

=세상이 모두 이스라엘을 예상할 수 있다. 레바논을 파괴시키겠다는 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계획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이걸 ‘새로운 중동’의 시작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럼, 예상했으면서 왜 이스라엘에 말려들었는가.

=(얼굴을 돌려버리며) 이런 유의 대화라면 그만두자.

-내 뜻은 헤즈볼라가 영리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스라엘에 전쟁의 빌미를 줬잖은가.

=군인 둘을 납치했든 안 했든, 그런 건 이스라엘에 아무 상관이 없다. 군인 둘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시민을 마구 죽일 수 있는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나?

=(좀 누그러지면서 겸연쩍은 듯 크게 웃고) 내가 당신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그렇다는 거다.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니 국제사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둘을 납치할 땐 전쟁을 예상했겠지? 나스랄라가 올해 두 번씩이나 이스라엘에 감금된 헤즈볼라 석방을 공언했고, 이번 작전명도 ‘진실한 약속’이 아니던가.

=그게 어떻게 전쟁이 되어야 하나? 그러면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일 권리가 있다는 건가? 이렇게 시민을 살해할 권리가 있다는 건가? 힘 있는 자는 아무나 죽여도 된다는 건가?

-그러면 계획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으니 이번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에 놀랐겠네?

=왜 놀라나? 이스라엘은 늘 그런 식이었는데. 내가 놀란 건 이스라엘의 공격이 아니라 그런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사회다.

-이번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나?

= 이스라엘이고 미국이겠지. 잃는 쪽은 레바논과 아랍 전체고(*이건 사실과 다르다. 8월 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4주째 이스라엘의 공세에 맞서고 있는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46)가 ‘아랍세계의 새로운 상징’,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아랍인들은 나스랄라를 ‘약속을 지키는 인물’ ‘정치·군사적 능력을 겸비한 아랍지도자’로 평가한다. 60년 베이루트 동부 빈민가에서 야채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나스랄라는 이라크와 이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헤즈볼라에 참여했다. 92년 전임자가 이스라엘 로켓에 암살되자 사무총장에 선출돼 헤즈볼라를 레바논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조직으로 키워냈다." 그러니까 이번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축에는 헤즈볼라도 포함되는 것.) 

-그럼, 헤즈볼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건가? 뭐 때문에 싸우나?

=물리적으로야 헤즈볼라도 타격을 입겠지만, 우린 정신적인 것들로 계산한다. 우린 잃을수록 더 강해진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더 강해질 거고, 이스라엘은 결국 패하게 된다.

-헤즈볼라가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텐데, 장기전에 돌입한다면 버텨낼 수 있겠나?

=어리석은 질문이다. 헤즈볼라의 역사를 봐라. 아랍에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유일한 조직이다.

-레바논이 다시 내전에 빠질 가능성은 없겠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현재 총리를 포함해 의회까지 모두 하나다. 내전은 없다. 적은 하나다. 이스라엘뿐이다.

-동료 의원이 그의 방으로 찾아와서 자리를 털었다. “빨리 휴전하고 복구해야 할 텐데….” 인사랍시고 던졌지만, 공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정치는 현실과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기만 했다. 그이 말이 모두 옳을지언정, 이 시간에도 수많은 시민이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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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08 18:38   좋아요 0 | URL
프리모 레비가 계단에서 떨어져 자살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서경식의 책에선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묘사)
그의 책엔 펠릭스 누스바움과 프리모 레비가 단골로 출연하지요.
지금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를 읽고 있는데
재일조선인과 팔레스타인, 아우슈비츠 모두 공통점이 있음에 씁쓸하군요.
날이 겁나게 더워서 컴 켜고 당최 뭘 끄적거리는 일이 끔찍하군요.
읽는 즐거움만 배가시키고 있답니다. 퍼갑니다.

로쟈 2006-08-08 18:53   좋아요 0 | URL
조르지오 아감벤이란 이탈리아 철학자의 아우슈비츠 3부작이 있는데,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고대하고 있는 책입니다. <호모 사케르> 같은 건 근간으로 돼 있는데도 빨리 안 나오네요. <난민과 국민 사이>는 저도 벼르고 있는 책인데, (맨날 하는 소리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군요(--;)...

오드라데끄 2006-12-02 20:31   좋아요 0 | URL
이재현 씨 저 가상 인터뷰 보고 불쾌했어요. 레비 책을 하나도 안 읽고 그냥 레비가 레바논 침공과 독일의 역사가 논쟁에 영향을 받아 자살했다는 서경식 이야기 한 마디만 듣고 썼더군요.(서경식은 아주 조심스럽게 내리는 추론인데 그걸 거칠게 가져다 써놓고 마치 자기 이야기인 척하는 것도 불쾌하고요) 레비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런 피상적인 대사들을 그것도 그의 글쓰기의 핵심인 세밀한 묘사, 위트, 겸손한 어조, 고도의 상징 등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 무슨 고리타분한 랍비처럼 보이게 만들다니...... 레비의 팬으로서 너무나 너무나 불쾌합니다. 아니 신문 한면 통째로 글 쓰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게다가 레비는 자신은 목격자,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아주 치밀하게 말하고 싶다고 했지요. 아 예전에 신문에서 보고도 분개했었는데, 다시 한번 분그 불쾌감이 고스란히 떠오르는군요. 아뭏튼 정말 정말 맘에 안 들어요. 이 사람. 왜 우리 신문에는 이렇게 자기가 모르는 걸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아는 척하는 글들이 많은 걸까요. 아우 승질나.

로쟈 2006-12-03 01:14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프리모 레비의 책들이 한권도 소개되지 않은 터라 '소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옮겨왔는데, 오해의 소지도 있다면 참조하겠습니다. 제대로 소개된다면 '아는 척하는 글들'이 알아서 꼬리를 내리겠지요...

오드라데끄 2006-12-16 17:37   좋아요 0 | URL
헉, 제가 너무 흥분해서 글을 옮기신 로쟈님이 불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이런 자료들을 링크 걸어주시는 건 너무너무 도움이 됩니다. 위의 책 모음도 그렇고요. 그리고 제 마지막 문장에 방점은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였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저도 로쟈 님 리뷰나 페이퍼들을 아주 유용하게 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랍니다. 님 말씀대로 제대로 소개가 되면 오해의 여지도 줄어들겠지요... 제대로 소개다 되어야 할 텐데... ㅠㅠ (관련자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로쟈 2006-12-17 01:2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관련자'분들의 의견들이 더 많이 나와야지요.^^ 듣기에 내년엔 레비의 책들이 두어 권 나올 거 같더군요. 얼마간 해갈이 될 걸로 기대해 봅니다...
 

문학과 여성에 대한 일련의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탓에 여성문학과 페미니즘 관련서들을 책상에 쌓아두고 있다. 독일 작가 엘케 슈미터의 <자르토리스 부인의 사랑>(황소자리, 2006)이 눈에 띈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책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인데, 일단 제목에서 허다한 부인들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작가의 오마주일 수도 있고 자신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분량이 200쪽밖에 안된다는 점(실제 원서는 더 적은 분량일 테니까 '중편소설' 범주에 들어갈 듯하다). 동아일보의 리뷰를 자료로 옮겨온다.

 

동아일보(06. 08. 05) 많은 걸작은 바람난 부인들에게 빚을 졌다. <안나 카레니나> <테스> <보바리 부인> <채털리 부인의 사랑>…. 여기 한 부인이 있다. 제목부터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원제 Frau Sartoris·자르토리스 부인) 이 책의 주인공, 자르토리스 부인이다.

 

 

 

 

-테스처럼 첫 남자에게 배신당했고 보바리 부인처럼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에 지친 안나 카레니나처럼 무료한 삶을 보내다가 앞선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바람이 난다. 2000년 독일에서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이 “모든 극과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을 위한 오마주”라고 찬사를 보낸 것처럼, 이 책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작품 속 많은 ‘부인’들을 다시 한번 불러낸다.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남편과 마음이 잘 맞는 시어머니, 예쁘장한 딸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자르토리스 부인.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첫사랑의 상처를 지울 수 없다. 20여 년 전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첫사랑 남자가 약혼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쫓기는 마음에 부랴부랴 결혼한 뒤 벌써 나이 마흔 살에 이르렀다.

-중년에 다시금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자르토리스 부인. 그러나 상대는 유부남, 그것도 유산이 많은 아내와 잘 자란 두 아들, 시청 문화국장이라는 타이틀까지 갖고 있다. 잠깐 한눈은 팔아도 야반도주를 저지를 리 만무하다. 남편에게 편지까지 써 놓고 사랑의 도피를 꿈꾸지만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이 중년 남자의 애인 노릇을 한다는 걸 알았다. 부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얼핏 진부한 듯 보이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구성이 독특하다. 자르토리스 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들려주는 중간 중간에, 도시에서 벌어진 뺑소니 사고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이 삽입된다(부인의 사연과 뺑소니 사고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데, 이런 점 때문에 평범한 연애소설이라기보다 미스터리물 같은 느낌도 준다).

-신파와 낭만을 철저하게 걷어낸 문체도 매력적이다. ‘자르토리스 부인의 불륜’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렵겠지만, 눈물 섞인 목소리가 아닌 담담하고 체념적인 고백은 ‘많은 것을 갖췄으면서도 하나를 갖지 못해’ 한없이 쓸쓸한 심정을 잘 전달해 준다.(김지영 기자)

06. 08. 07.

P.S. 국내 처음 소개되는 작가 엘케 슈미터는 "1962년 독일 크레펠트에서 태어나 뮌헨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한다. 약력을 보니,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독일의 좌파 일간지인 'TAZ'의 편집장을 지냈고, 1994년 이후 중도 좌파 주간지인 '디 차이트'와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쥐트도이체 차이퉁'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는 시사주간지 '슈피겔'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니, 전/현직 통틀어서 언론인이다.

 

 

 

 

언론인 출신의 여성작가, 하니까 떠오르는 이는 한겨레(씨네21) 기자 출신의 조선희씨이다. 엘케 슈미터보다 두 살 더 많다. 굳이 떠올리게 된 건 그녀가 소설을 쓰기 위해서 기자직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하이에나가 되기 위해서? 하이에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것이 개인차인지 아니면 한국과 독일의 (직장)문화적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려나 우리도 '자유부인'을 넘어선 우리식 부인전을 가질 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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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때문에 번역에 관한 책들을 훑어보다가 폴 리쾨르의 <번역론>(철학과현실사, 2006) 출간 소식을 접했다. 다행히도 중앙일보에 역자들과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옮겨온다.

중앙일보(06. 08. 02) "'번역론' 번역하느라 1년을 티격태격"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서양철학과 번역학을 각각 전공한 윤성우(39.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향(36.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박사는 지난 1년간 이 문제를 놓고 씨름했다. 프랑스 현대철학자 폴 리쾨르의 <번역론>을 우리말로 잘 번역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이들은 팽팽한 샅바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물이 <번역론-번역에 관한 철학적 성찰>(철학과 현실사)이란 이름으로 최근 번역돼 나왔다. 1일 오전 이들을 만나 공동번역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사람의 입장은 원문과 번역문 중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를 놓고 갈렸다. 리쾨르 철학 전문가인 윤 교수는 원문의 형식에 충실하게 번역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이 박사는 원문의 형식을 다소 파괴하더라도 전체적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자고 맞섰다. 두 입장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 번역의 기준이 될 것인가. 원문 한줄 한줄을 놓고 두 사람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렸다고 한다.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인데도 1년이란 세월이 소요된 것은 그 때문이다(*두 사람이 고심한 만큼 신뢰할 만한 번역서가 아닐까 믿어본다. 한데, 본문 68쪽짜리면 팜플렛 수준이군! 영역본은 'On translation'(2006)으로 국역본과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On Translation (Thinking in Action S.)
이 향="우리처럼 조합이 된 공동 번역은 처음인 것 같아요. 공역 과정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었어요. 적정한 선에서 서로 양보해 번역어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철학적 개념어의 경우 철학 전공이 아닌 제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어요. 개인적으론 해석학과 번역의 관계에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됐어요."

윤성우="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원문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무척 오래된 논쟁입니다. 어느 한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은 앞으로도 없다고 봅니다. 리쾨르의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 고전에 대해서도 다양한 번역본이 나오면 좋다는 것입니다. 번역의 우열에 대한 섣부른 판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공동작업을 통해 두 사람은 리쾨르가 <번역론>에서 제기한 "좋은 번역의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는 관점에 공감하게 됐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각주가 실린 전문가용 번역과 가독성이 높은 대중용 번역이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독자가 자신의 필요와 목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의 번역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번역론>은 리쾨르가 90년대 후반부터 써온 글들을 모아 타계하기 1년 전인 2004년 프랑스에서 출간한 책이다. 부제는 '번역에 관한 철학적 성찰'. 리쾨르가 번역을 단순히 외국어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제다. 리쾨르는 번역을 철학의 영역으로 대폭 확장시키며 '번역=철학'이란 견해를 밝힌다. 어떤 사태와 의미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선 늘 번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번역은 다른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대화를 풀어가는 철학 행위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리쾨르에 따르면 번역은 외국어 사이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모국어를 구사하는 동시대인의 문헌이나 대화를 타인에게 전달할 때도 번역 행위가 개입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곧 번역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이처럼 중요한 번역을 경시하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된 까닭은 무엇일까.

윤성우="서양에선 20세기 초반부터 번역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일본의 경우 서양 근대문화를 수용할 때 번역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외국어를 주로 취직.승진 같은 실용적 측면에서 보기 때문에 번역의 철학적 의미에 관한 논의가 적은 것 같습니다."

이 향="번역과 철학을 연결시키는 일은 사실 실무 번역자들에게는 낯선 설명입니다. 번역자들은 실제 구체적 도움이 되는 것들을 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번역자들도 번역의 철학적 의미와 같은 본질적인 물음에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게 됐습니다."



-현재 또 다른 책의 공동번역을 진행하고 있는 두 사람은 논문쓰기보다 번역하기가 더 힘들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전문 번역서를 제대로 평가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러한 지적들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런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 누가 움직여야 하는 것인지?).

06. 08. 07.

 

 

 

 

P.S. '번역의 문제'에 관련하여 내가 읽었거나 읽을 계획으로 있는 책들을 대략적으로 꼽아보았다. <번역과 주체>, <번역과 제국>이 번역과 철학, 정치학과 관련한 책이라면, <번역은 반역인가>,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는 우리의 번역/오역 현실을 둘러보게 하는 책이다. <번역은 내 운명>은 현장 번역가들의 육성을 담고 있다. 거기에 일본작가 쓰지 유미의 <번역사산책>, <번역과 번역가들>이 내가 이전에 부분적으로 읽은 관련서들이다. 음,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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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07 18:27   좋아요 0 | URL
1년 동안 리쾨르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문학도로서 '악의 상징'이나 '해석의 갈등' 같은 책은 매력적이더라고요. 정치적 입장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윤성우 선생님의 리쾨르 관련 개설서도 잘 읽히고 좋은 한국어 문장들을 구사하시던데, 이렇게 노력을 많이 하셨다니 기대됩니다. :)

로쟈 2006-08-07 18:50   좋아요 0 | URL
만만찮은 책들을 읽으셨군요. 사실 이번에 나온 책은 60여쪽 분량이니까(국역본 166쪽은 좀 부풀려진 것이고) 실제 작업보다는 '티격태격'에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을 듯합니다. 어쨌거나 리쾨르의 책들 가운데 가장 '빨리' 읽을 수 있을 거 같네요. 리쾨르 입문서 가운데 리처드 커니가 쓴 게 있는데, 그런 종류도 소개되길 이 참에 기대해봅니다...

swyun2002 2006-08-08 00:3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번 번역에 참여했던 공역자중 하나인 윤성우입니다.로자님의 글 잘 보았읍니다.독서력과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기인님과 로자님의 댓글도 잘 읽었읍니다.이렇게 찾아서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참고로 제가 쓴 해제와 저자인 리쾨르 소개가 60쪽 정도이고 리쾨르의 글은 실제 약 90쪽 정도 입니다 .  다른 공역자인 이 향 박사께서 작년 학위 준비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조금 길어진 면이 없진 않지만 1년을 내내 "티격 태격"한 것은 아닙니다. 통번역을 전공하는 분이라 불어는 물론이고 한국어 구사가 뛰어나신 장점과 제가 리쾨르 전공한터라 상호 보완성이 있었읍니다. 역자 후기에도 나와 있지만,  장절을 나누어서 번역하여 합친 그런 공역은 아닙니다. 원전을 AZ까지 함께 읽고 문맥과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우리말을 거듭해서 고민하며 옮겨 보았고 역주도 관련문헌을 찾아서 읽고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적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가더라구요. 그렇다고 해도 틀린 불어 철자나 오역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읽어시다가 발견되면 알려주세요.담에 반영하도록 노력해볼께요.야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리차드 커니는 파리에 머물며 리쾨르에게서 직접 배우기도 하고 오랜 교분이 있는 학자라 좋은 입문서가 될 듯합니다.  커니덕에 리쾨르가 종종 강연차 더블린에 가기도 했읍니다. 짧은 글로는 스피겔버그가 쓴 "현상학적 운동 II "'에 나오는 글도 추천할만 합니다.


로쟈 2006-08-08 00:15   좋아요 0 | URL
직접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사실은 낮에 책 주문을 넣었기 때문에 저는 모레쯤 읽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마침 번역 문제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생겼는데, 요긴한 참조가 될 듯합니다. 커니의 책은 'On Ricoeur'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윤선생님 같은 전공자께서 번역해주시면 좋을 거 같네요.^^

swyun2002 2006-08-08 00:28   좋아요 0 | URL
내 그 책은 저도 있어요.볼만 합니다.사실 영어권과 불어권의 세컨드리가 한 권정도씩 번역이 나와야 하는데, 눈은 졸리고 손은 더디어서요. 꾸뻑

기인 2006-08-09 05:51   좋아요 0 | URL
ㅋㅋ 윤성우 선생님 답글에 오타 많습니다 ^^; ㅎㅎ

swyun2002 2006-08-10 11:07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 시절에 놀기만 해서 띄어쓰기와 국어 ??실력이 좀 사실 떨어져요.인정.지적에 감사
 

재작년 모스크바에서 쓴 글을 하나 옮겨놓는다. 원래 제목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혹은 삶을 감상에서 구제하는 법'이었고 한 잡지의 청탁을 받아서 3배쯤 되는 초고를 쓴 이후에 다시 줄인 것이다(초고는 모스크바 통신에 올려놓았었다). 7월말쯤에 씌어졌지만 9월호에 맞추기 위해서 릴케의 '가을날'을 떠올렸고 자연스레 <두이노의 비가>에 대해 몇 마디 주절거리게 되었던 것인데, 책이 기억에는 8월 중순쯤 나왔을 법하다. 아직은 무더위가 기승이지만, 조금 앞당겨서 이 글을 호출한 이유이기도 하다. 곧 가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여, 마침내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시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시 '가을날'이다. 하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시는 그의 대표작 <두이노의 비가>이다. 그리고 이 <비가>를 읽어보기 위해서 얼마전 러시아어로 번역된 릴케시 선집을 한 권 샀다. 칸딘스키의 그림들이 표지와 속지 군데군데에 들어가 있는 손바닥만한 포켓북이다.

내가 제일 처음 읽은 <두이노의 비가>는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통해서였는데, 그게 벌써 17년 전이다. 무엇보다는 인상적이었던 건 <비가1>의 시작부분이었는데, 가령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같은 시구를 당신은 접해본 적이 있으신지? 당시에 나는 이런 걸 어떻게들 이해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나게 감동적이었고 아직도 감동적이다. 왜 그런가? 일단 처음 두 구절을 옮겨본다(번역은 우리말 번역본들과 러시아어본을 참조하여 조합한 것이다).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설혹 한 천사가 있어 갑자기 나를 가슴에 껴안는다 해도,
그 강한 존재로 말미암아 나는 스러지고 말리라.

릴케의 시구이면서 동시에 그의 것만도 아닌(그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적었다고 했다) 이 첫 시구에는 <비가> 전체를 이끌고 가는 핵심적인 모티브들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건 '천사’인데, 이 시의 기본축은 ‘강한 천사’와 ‘연약한 인간’의 대비이다. 흔히 말해지듯이, 인간은 짐승도 아니지만, 천사도 못 된다. 유한한 존재이자, 필멸적 존재인 인간, 그래서 맨날(은 아니더라도) ‘울부짖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갖는 그 ‘어중간함’이 릴케 시의 숙고의 대상이다(죽음의 관점에서는 ‘너무 이른 죽음’. 릴케는 그걸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런 어중간한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 받는가?

지상적 존재인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더라도 천상적 존재인 천사들은, 혹은 신은 눈도 꿈쩍하지 않으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건 ‘계’가 다르고 ‘질서’가 다르며, 존재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사들의 무관심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은 유치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으로 더 무서워할 만한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이라고 릴케는 말한다. 우리의 울부짖음을 불쌍히 여겨 설혹 한 천사가 우리를 껴안아준다 해도 문제는 우리가 그걸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질 거라는 것. 천사는 너무도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조야한 비유이지만, 가령 백일도 안 지난 아이한테 보약을 먹인다고 해보자. 그건 약이 아니라 독이며, 아이가 견딜 수 없는 ‘사랑’이다. 마찬가지로, 천사의 관심과 사랑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실제로 엄마의 젖가슴에 눌려 질식사하는 아이들도 있다지 않는가?). 그러니 어찌 함부로 관심을 구하겠는가, 사랑을 구걸하겠는가?

간혹 밥 먹듯이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정말로 사랑을 견딜 수 있는 건지? 가슴이 터질 듯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슴이 터져 스러지지 않(았)을까? 사랑이란 ‘연약한’ 우리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강한 정념이기 때문이다(나는 밥 먹으면서 사랑하고, 이 닦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활화산처럼 터져버리는, 그런 사랑”(혜은이)은 얼마나 무서운/두려운 사랑인가?

그건 ‘진리’나 ‘복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맨정신으로 대문자 ‘진리’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진리’를 견딜 수 있을까? 살아남는 일은 왜 많은 거짓말을 필요로 할까? 그건 진리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럼, 복음은 어떤가? 만약에 당신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당신은 ‘복음’을 견뎌낼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견뎌낼 수 있는가? 그의 ‘기적’은 어떤가? 혹은 ‘재림’은? ‘종말’은?..



해서, 릴케의 <비가>는 시작부터 많은 걸 ‘평정’하게 해준다. 내가 17년 전에 인생에 대해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건 릴케의 이 시 구절을 읽은 덕분이다.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 허무와 감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가끔은 골방에서 이 시구를 되뇌어보시라. 다소간 위로가 되고, 구제가 될는지 모른다(물론 구원은 턱도 없다. 우리는 연약하기만 한 게 아니라 천박하기도 하므로!).

하여간에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는 공연한 관심과 사랑, 진리와 복음을 구걸하지 말고, 그저 대충 울부짖는 데 만족할 일이다. 울다 보면 속이 후련해지고, 내가 또 언제 울어보겠냐는 생각도 들 테니까. 가을날, 우리의 삶은 그런 울음과 울부짖음 속에서도 딴은 탐스럽게 익어가나니...(<삶과 꿈>, 2004년 9월호)

 

 

 

 

04. 07. 26./ 06.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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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스럽게 익어가는 우리의 삶..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6-08-07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우리도 늦여름의 과일들만큼 열심히 살아야죠.^^
 

어떤 분야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상자는 그 분야의 간략한 역사서술과 용어사전이다(새로운 역사서술은 새로운 용어를 요구하며, 새로운 용어는 새로은 시각의 역사서술을 요청한다). 미술사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겠다. 물론 현장에서 미술을 '실천'하는 아티스트들의 경우에 이러한 개념적 도구들까지 직접 챙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걸 필요로 하는 건 비평가나 관람자들이다. 혹은 미술 텍스트의 일반 독자들이다.

 

 

 

 

시야를 좀 좁혀서 20세기 현대미술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역시나 필요한 건 이 시기 미술사에 대한 개관이고, 그걸 서술하기 위해 동원되는 개념들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한 필요에 부응하는 책이 새로 출간됐다.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31>(아트북스, 2006)이 그것이다. 원제는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들(Critical Terms for Art History, Second Edition)>(2003)이니까 말 그대로 '비평용어사전'이며, 국역본 표제로 보아 그게 31가지인 모양이다. 743쪽의 두께이니까 일단은 듬직하다. 빼먹은 것 없이 다루겠구나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니까.

아직 언론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지라, 알라딘이 소개를 옮겨오면, "'기호'에서 '아방가르드', '몸', '미', '예술의 사회사'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주요 용어 31개를 상세히 분석했다. 재현, 기호, 이미지, 시뮬라크룸, 양식, 문맥, 전용, 몸, 젠더, 미, 추, 응시, 정체성, 시각문화 등 미술사 비평용어에 관해 씌어진 31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공저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S. 넬슨은 "2006년 현재 시카고 대학의 미술사 및 문화사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돼 있는데, 확인해보니 작년에 예일대학교로 자리를 옮겨서 미술사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시카고나 예일이나 여하튼 명문대학의 미술사 강좌를 엿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제공해준다는 의미도 된다.

책의 특징? "미술이론을 비롯 다른 분야에서도 빈번하게 인용되는 비평용어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예컨대 '재현'을 기술하고자 하는 경우, 시각예술에서 논의되는 미학적이고도 예술적인 담론뿐만 아니라 철학적, 인식론적, 존재론적 담론들을 포괄하여 표상, 관념, 존재, 의미, 상징, 기호 등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식이다. 20세기말부터 21세기 초까지 해당 용어에 관한 개략적이고도 세부적인 논의의 역사도 함께 설명한다." 하니, 미술사나 미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필독서가 될 만하다(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게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두어 번은 통독해야겠다.


아직 번역본의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역자의 전력상 신뢰할 만한 번역인지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원서는 이런 모양새이다. 2003년에 나온 2판인데, "초판(1996)에는 22편의 에세이가 실렸고, 제2판(2003)에는 새로운 미술사의 학문 추세를 반영한 9편이 추가되었다. 추가된 에세이에서는 양식, 퍼포먼스, 정체성, 몸, 기억과 기념비 등의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 2판을 찍었다는 건 교재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는 뜻도 되겠다. 이 분야의 전문가나 미술비평가들의 리뷰를 읽고 싶지만, 당장 눈에 띄지 않기에 자리나 데우는 페이퍼를 미리 써둔다.
 
06.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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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6-08-0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자의 전력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우려를 저버리지 않았을 듯 합니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했지만...

로쟈 2006-08-0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상' 주문은 해놓았는데, 걱정이네요.^^

주니다 2006-08-0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실물을 대충 훑어봤는데, 역자가 대학원생 혹은 졸업생들과 나눠서 번역을 했더군요. 그나마 다행인 듯 싶습니다. 이거 어떻게 된게 학생들보다 못한 선생들 걱정을 해야하니 원...

로쟈 2006-08-0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레쯤 책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도서관에서 초판을 대출해왔는데, 대조해봐서 번역이 양호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2판을 아마존에서 주문해야겠지요. 이중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