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대 대학원신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놓는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론 <봉인된 시간>에 대한 기획서평으로 씌어진 것이다. 오는 12월 29일은 그의 서거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때까지는 타르코프스키와 관련된 페이퍼들이 (진행중인 걸 포함해서) 몇 개 더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그의 영화 <거울>에는 노모인 마리아 이바노브나 비쉬냐코바(타르코프스카야)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연세대 대학원신문(06. 10. 31) 시로 빚어낸 순간들, 기적에 이르는 침묵

얼마 전 스웨덴의 전설적인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1922~2006)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세계 3대 촬영감독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이 ‘빛의 사제’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둘도 없는 파트너로서 두 차례나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부린 빛의 마술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유작 <희생>(1986)을 통해서였다.

이탈리아에서 <노스텔지아>를 찍고서 망명의 길을 택한 타르코프스키가 결과적으론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게 된 배경에는 제작을 맡은 스웨덴영화연구소의 안나-레나 위봄과의 오랜 우정이 놓여 있다. 위봄의 제안을 받은 타르코프스키는 얼란드 요셉슨(1923~ )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기로 결정한다. 베리만 영화의 단골 배우 얼란드 요셉슨은 <노스텔지아>에서 세상의 사람들의 각성을 호소하면서 로마의 광장에서 분신자살하는 도메니코역을 열연한 바 있었다.

거기에 같은 ‘베리만 패밀리’로서 요셉슨과 절친한 친구였던 닉비스트는 시드니 폴락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촬영을 제안받은 상태였지만 타르코프스키와의 공동작업을 선택한다. 닉비스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 중세의 성상화가를 다룬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를 본 이래로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닉비스트는 베리만과는 또 다른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방식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빛(조명)과 배우들에게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는 대신에 타르코프스키의 주요한 관심사는 장면의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 말 그대로 운동 이미지에 두어졌다고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의 영화를 많이 보면서 작업의 윤곽을 그리고 의견을 조율해나갔다고 하는데, 영화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생각을 집약해놓은 책 <봉인된 시간>(독어본 1986)을 닉비스트가 접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공동작업은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건 이젠 더 이상 타르코프스키와 대화를 가질 수 없는 시점에서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이란 국역본의 부제가 지시해주듯이 <봉인된 시간>(분도출판사, 2005)은 부분적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노트이면서 영화와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사고와 통찰을 보여주는 유례없는 책이다. 사실 대개의 감독들이라면 자신의 ‘영화미학’을 글로써 말하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로써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건 타르코프스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작업환경은 순조롭지 못했다.

장편 데뷔작인 <이반의 어린시절>(1962)에서부터 주관적이고 난해하다는 평을 들은 타르코프스키는 내내 당국과의 마찰을 경험해야 했고, 실제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고통스럽고 긴 휴식’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 ‘강요된 휴식’ 속에서 그는 자신이 영화의 창작과정 속에서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숙고할 수가 있었고 <봉인된 시간>은 그 산물이다.
 
시적 연결의 윤리학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낼 조각품의 윤곽을 보고 이에 걸맞게 대리석 덩어리의 모든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버리는 것과 흡사하게 영화예술가 역시 삶의 사실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정리되지 않은 혼합물들 속에서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예술적인 전체 형상의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순간들만을 남겨두는 것이다.”그것이 ‘봉인된 시간’(영역본의 제목은 ‘Sculpting in Time’이다)이란 말의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적 순간들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타르코프스키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 이상이다. 실상 이 책의 결론은 마치 <노스텔지아>에서 도메니코가 분신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에게 던지는 절박한 윤리적 호소를 연상케 하는데, 어쩌면 <봉인된 시간>자체가 영화 <희생>과 마찬가지로 암으로 투병 중이던 타르코프스키가 인류에게 건네는  마지막 호소이자 유언인지도 모른다. 영화미학을 타이틀로 내걸고는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타르코프스키에게도 미학은 곧 윤리학이라는 걸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윤리학이 미적 실천을 위해서 타르코프스키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적, 혹은 정서적 연결이다. 그러한 ‘시적 연결’은 같은 러시아인으로서 영화사의 걸출한 족적을 남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의 몽타주론이 지향하는 ‘논리적 연결’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식의 논리적 연결은 미리 계산된 미학적 효과와 의미를 창출해내고자 하는데, 타르코프스키가 보기에 그렇게 인위적으로 짜맞추어진 결과는 삶의 진실을 배제하며 관객을 감동으로부터 격리시킨다. 그가 보기에 삶의 양상 중에는 오직 주관적으로만 이해되고 시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묘사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장센: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  

딥포커스와 롱테이크를 자주 사용하기에 흔히 몽타주론과 대비되는 미장센론자로 분류하게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미장센이 테크닉적인 고려가 아니라 윤리적인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의 순간순간들에 대한 관찰을 강조하는 타르코프스키가 실제의 일화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가령 이런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형 집행 명령 위반으로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느 병원의 담벼락 앞 더러운 물구덩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마침 가을이었다. 사형수들에게 외투와 구두를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무리 중의 한 명이 무리에서 벗어나 구멍투성이의 양말을 신은 채 한참을 물구덩이 속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일분이 지나면 전혀 필요가 없게 될 자기 외투와 장화를 내려놓을 마른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장면을 어떻게 몽타주로 분할하고 또 나눠찍을 수 있겠는가? 타르코프스키가 관심을 갖는 장면은 그러한 어떤 ‘불일치’를 담고 있는 미장센들이다. 그가 자주 예로 들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 가운데 가령 <악령>에서 스타브로긴과 광신도 샤토프와의 대화장면은 어떠한가?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신을 믿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스타브로긴이 말하자 샤토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러시아와 러시아 정교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의 성체를 믿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러시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샤토프는 정신이 나간 채로 더듬거리며 말하는데, “신을 믿느냐구요, 신을?”이라고 스타브로긴이 재차 질문하자 “저... 저... 믿어 보겠습니다.”라고 (미래시제로) 말한다. 타르코프스키가 이 장면에서 지적하는 것은 “어찌할 바 모르는 당황한 영혼의 상태”를 포착하고 있는 천재적인 수법이다.

그러한 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을 드러내고자 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사실 정적이지 않으며 대단히 격렬하다. 예컨대 <노스텔지아>의 분신 장면과 <희생>의 방화 장면 같은 걸 떠올려보라. 카메라는 인물들의 행동을 숨죽인 관찰자처럼 따라가며 단지 보여주기만 하지만 그 조용한 화면에 비춰지는 것은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기도 하다.

죽은 나무 한 그루가 가져온 기적

한없이 느리게만 전개되는 것 같은 <희생>에서도 주인공 알렉산더의 내면을 뒤흔드는 건 3차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갖게 되는, 자신의 가족과 세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다(그러니까 <희생>은 타르코프스키 버전의 <그날 이후>이다. 이것은 남의 일일까?). 그는 세상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런데, 그 구원이란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단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상적인 하루가 지속되는 것. 그 단순한 소망을 위해서 알렉산더는 묵언을 결심하고 다음날 자신의 집을 모두 불태운다.

“아주 먼 옛날에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그는 산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단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지.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같이 물을 주도록 하라고. 제자는 매일 아침 산으로 올라가서 물을 주고는 저녁녘이 되어서야 수도원으로 돌아왔지. 이 일을 3년 동안 되풀이한 그 제자는 끝내 죽은 나무에 꽃이 만발했음을 보았어.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게 되는 거야. 만약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늘 꾸준하게 의식과도 같이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변하게 될 거다. 암, 변하지. 변할 수밖에 없어.”

영화의 도입부에서 바닷가에 나무를 한 그루 심으며 알렉산더가 아들 고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데(나는 이야기를 축약하지 않았다), 세상의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비록 매일같이 변기에 물을 붓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언젠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 얼마나 스펙터클하며 기적적인 일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벤 닉비스트는 치매로 인한 실어증으로 치료받던 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희생>에서 침묵 서언을 한 알렉산더(요셉슨)를 떠올리게 하고 또 바로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타르코프스키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그의 영화들과 한권의 미학, 그리고 한권의 일기(<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두레, 1997)뿐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편지를 보낸 러시아의 한 여성 노동자의 흥분을 우리의 것으로 하는 데에는 충분한 것일 수도 있다.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단순히 영화만을 보려고 극장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06.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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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6-12-0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기말 셤 기간이라 시간이 남네요~~ 이 글 옮겨갑니다. 인세 청구하세요.

초록별 2019-12-03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안녕하세요 ~~^^ 20c 러시아문학 강의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전업작가' 대열에 들어선 이인성씨의 첫 작품이 발표되었다. 불문과 교수직에서 명예퇴직하고 한동안 창작을 위해 칩거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창작이란 게 욕심을 낼수록 잘 안되기도 하니까) 해를 넘기지 않고 새소설을 탈고한 것. 이 '중견작가'의 재기의 신호탄이 될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문학에 대한 순교자적 태도'를 강조하는 초발심만큼은 기억해둠 직하다. 문학-수도사들이 갈수록 드물어지는 세태이기에...  

한국일보(06. 12. 02) 교수직 버리고 전업작가로 8개월 보낸 이인성씨

"강의와 논문 부담에서 벗어나니 마음은 편하고 자유로운데, 거꾸로 더 큰 부담이 하나 생겼어요. 이러다 제대로 된 소설을 못 쓰면 어쩌나 하는…”

소설 쓰기에만 전념하겠다며 지난 2월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에서 명예퇴직한 소설가 이인성(53)씨가 전업소설가로서 첫 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실린 80여쪽짜리 중편 <돌부림>. 돌연한 퇴직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학교를 떠난 후 꼬박 8개월을 매달려 쓴, <악몽> 연작 3호로 3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작품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첫 소설 쓰는 게 특히 부담이 됐어요. 어찌 됐거나 이젠 마무리가 돼서 편하긴 한데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들질 않네요.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글이 많이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

섬세한 언어의 조탁,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미로 속을 헤매게 하는 치밀한 통사 구조, 이야기 자체를 휘발시켜버리는 난해하고 해체주의적인 글쓰기로 독자를 매료시키기도, 더럭 겁먹게도 하는 그는 1980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해 26년간 학생과 학자라는 생업을 갖고 글쓰기에 봉직해왔다.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1983), <한없이 낮은 숨결>(1989), <강 어귀에 섬 하나>(1999), 장편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 26년간의 비블리오그래피를 이 5권의 책만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문학에 대한 그의 엄격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자발적 과작(寡作)임에 틀림없다.

“<악몽> 연작을 마무리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에요. 서너편만 더 쓰면 되는데, 내 스타일상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고, 다만 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은 벌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의 소설을 줄거리로 요약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도 없지만, <돌부림>은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한 돌덩어리를 마주한 현실의 ‘나’와 돌 속에 갇혀 망상과의 사투를 벌이는 의식 속의 ‘나’가 번갈아 화자 노릇을 하며 악몽과도 같은 의식의 흐름을 전개해가는 작품이다. ‘이인성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라 할 의식의 분열이 역시 소설의 주축을 이룬다.

병이죠. 분열이라는 주제는 제 병이라 못 벗어나요. 억압돼있던 온갖 욕망들이 터져나오던 90년대 이후 나를 사로잡았던 건 과연 욕망이라는 게 뭐냐 하는 문제였어요. 욕망에 대한 탐구랄까요. 한편으로는 욕망을 터뜨리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억제하고도 싶은 마음. 그러다 보니 분열이라는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됐죠. 그 물음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연 욕망의 끝자리가 뭘까, 욕망에 시달려가면 결국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하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악몽 아닐까요, 욕망의 최후 종착지는.”

소설만으로는 삶의 곤궁을 피할 길 없어 이런저런 생업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게 오늘날 소설가들의 현실이고, 그 중 대학교수는 가장 각광받는 직업이지만, 그는 “걸핏하면 책 몇 권 내고 문예창작과 교수 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정작 나는 학교라는 안정된 직장에 있으면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나부터 해방을 좀 시켜야겠다 생각했죠. 제가 자유롭게 살라고 선동해서 거리로 뛰쳐나간 친구들이 꽤 많거든요. 노래판, 영화판, 연극판으로 나가있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이젠 내가 저들 쪽에 가서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데요. 또 실제 나와 보니까 그냥 살겠더라구요. 수입은 학교에 있을 때에 비해 형편없이 줄었지만 불편한 건 없어요. 나는 연금이 나오니까 조건도 좋고.”

Madame Bovary-4

그는 불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불필요한 단어는 단 한 마디도 작품 속에 들여놓지 않으며 일생을 걸고 작품을 썼던 <마담 보바리>의 플로베르를 가슴 깊이 품고 있다(*사진은 클로드 샤브롤의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역의 이자벨 위페르. 불필요한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외모와 표정 아닌가?).

“요새는 그런 말하면 웃기는 소리 한다고들 할 테지만 문학에 대한 순교자 같은 태도가 저한테는 암시하는 바가 커요. 문학에 순교하는 그런 태도, 저도 끝까지 그런 태도로 문학을 하고 싶습니다.”(박선영 기자)

06. 12. 02

 

 

 

 

P.S. 내가 좋아하는 이인성의 책은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열림원, 2000)이다. 더디 읽히는 소설들과 다르게 그의 산문들은 잘 읽힌다. 그리고 재미있다. '문학에 대한 순교자적 태도'를 집약해주는 말이 또한 '식물성'이기도 하므로 '이인성 입문'을 겸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좀 이외일 수 있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문학과지성사, 1995)이다. 장르를 '코미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런 류의 소설들이 나는 은근히 좋다. 뭐 읽는 거야 독자의 자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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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레닌에 관한 페이퍼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더니 몸이 뻐근하다. 눈 내리는 겨울풍경이나 몇 장 옮겨놓으며 휴식을 취할까 했는데, 손은 어느새 토요일자 신문들의 북리뷰들을 클릭하고 있다(구제불능이다!). 최근에 나온 역사서들 가운데 두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옮겨온다. 저명한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1936- )의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이산, 2006)과 앙리 루소(1954- )의 <비시신드롬>(휴머니스트, 2006)이 그것인데, 전혀 다른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두 권 모두 일단 만만찮은 분량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어찌보면 '태평천국'과 '비시정부'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아들>은 진작에 보관함에 들어가 있는 책이고 <비시신드롬>은 주초에 교보에서 실물을 본 책이지만 생소한 저자인 탓에 어떨까 싶었는데 김기봉 교수의 서평이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경향신문(06. 12. 02) 中태평천국운동 주도했던 그

1836년 청조 말기. 중국 남부 광둥성 화현에 훙훠슈(洪火秀)라는 22세의 청년이 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광저우에 갔던 그는 알 수 없는 외국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게 된다. 선교사 량아파가 성서를 번역해 만든 ‘권세양언’(勸世良言)이다. 과거에 낙방한 훙훠슈는 꿈을 꾼다. 그 꿈에서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세상 요괴들의 사악한 길에서 백성들을 각성시키고 계몽하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완전함’을 뜻하는 취안(全)을 새 이름으로 지어준다.

평범했던 청년 훙훠슈가 하느님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 완전한 존재인 훙슈취안(洪秀全)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종교 조직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조직한다. 당시 타락하고 불안정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은 그의 사상에 매료되고, 세력은 급격하게 불어나 군대를 조직하고 근거지를 확산한다. 그리고 1851년 공식적으로 태평천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2천만명이라는 인명피해를 초래한 전란인 ‘태평천국운동’의 시작이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 ‘강희제’ 등의 저서를 통해 중국사의 대표학자로 자리잡은 저자가 태평천국운동과 홍슈취안에 대해 쓴 책이다. 그동안 태평천국운동은 중국이 근대화로 들어서는 과정, 혹은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으로써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보다 면밀하게 태평천국운동을 들여다본다. 훙슈취안은 자신의 세력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도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숙청을 행했다.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를 자처했지만 그 역시 욕망과 권력에 눈먼 인간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훙슈취안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서술하는 형식을 통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를 한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의 삶을 통해 태평천국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물론, 개신교가 중국에 유입되는 과정,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그려볼 수 있다.(이윤주기자)

경향신문(06. 12. 02) 佛현대사의 그늘 ‘비시정부’

프랑스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으로 알려진 비시정부다. 1940년 6월13일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후 제3공화국 107번째 총리가 된 페탱(Petain) 장군은 22일 휴전조약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독일 점령지역과 자유지역으로 나뉘었다. 비시정부란 이 자유지역에 비시를 수도로 하고 페탱을 수반으로 해서 수립된 프랑스 정부를 지칭한다.

당시 독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인들에게는 2개의 정부, 페탱의 비시정부와 드골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세운 임시정부가 있었다. 전자는 나치독일과 협력을 약속했다면, 후자는 프랑스인들에게 나치독일과의 항전을 계속할 것을 호소했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인들에게 전자는 청산돼야 할 과거라면, 후자는 영광스럽게 기억해야 할 역사다.

하지만 비시정부는 1940년부터 1944년까지 4년 정도만 존립했지만, 그 기억은 ‘비시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프랑스인들에게는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상처(trauma)’로 남아 있다. 비시정부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기억이 역사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신드롬’을 낳았다. ‘신드롬’이란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공통성을 가진 일련의 병적 증상, 곧 증후군을 의미한다. 비시정부는 독일군의 강압으로 세워진 괴뢰정부가 아니라 독일군 점령에 대항해서 싸웠던 전직 각료들로 구성된 정부다. 영화 ‘금지된 장난’의 첫 장면처럼 파리가 점령 당하자 거리는 피란민으로 아비규환을 이뤘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시민들은 집단탈출을 감행했고,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극도의 공포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 베르뒹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 페탱은 한 포스터의 글귀처럼 “영광의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려운 때도 저는 여러분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휴전을 전제로 한 비시정부를 수립했다.

비시정부는 독일에 대한 협력체제였지만, 무너진 프랑스를 재건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수립됐다. 마르크 블로크가 ‘기이한 패배’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프랑스가 패배를 당한 근본 원인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문제에서 비롯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제3공화국의 부패와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좌·우파의 끊임 없는 갈등과 대립은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민족혁명’을 꿈꾸는 보수주의자들을 태동시켰다.

죽기 얼마 전 젊었을 때 비시정부에 참여했던 경력이 밝혀져 커다란 충격을 줬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자신의 행동을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프랑스를 일깨우고 싶었다”고 변명했다. 젊었을 때 열렬한 페탱주의자였다가 레지스탕스 진영으로 돌아선 미테랑이 ‘비시 신드롬’의 전형일 수 있다. 만약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재임 중 과거 행적이 드러났다면 그것으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을 것이다. 레지스탕스 미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그의 과거는 억압돼야 했다. 하지만 억압된 과거는 망각되지 않고 트라우마가 된다.



비시 과거를 억압하기 위해 해방된 프랑스는 레지스탕스라는 민족 신화를 만들었다. 그 주역이 드골 대통령이다. 해군사관학교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이학수 교수가 번역한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이런 프랑스의 민족 신화가 허구임을 냉철하게 밝혀냈다. 저자는 비시 신드롬이 ‘왜’ 생겨났는가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물음으로써 프랑스 과거청산의 허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드골은 비시 체제의 진실을 은폐하고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신화를 날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전 국민을 ‘레지스탕스’로 만드는 ‘기억의 장(場)’을 구축했다.

‘비시 신드롬’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행하는 과거 청산의 무의미함과 위험성을 깨칠 수 있다.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다. 하지만 정치가 역사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과거사 정리는 ‘역사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역사화’를 위해 수행돼야 한다.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관철되는 과거 청산은 다양한 기억들을 억압하고 단순화해서 신화적 역사를 만든다.



앙리 루소는 기억은 복수이기 때문에 서로 갈등하며 투쟁을 벌이며,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은 후세대에게 전이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억이란 이미 죽어버린 과거라는 시체를 살아있는 역사로 부활시키는 생명의 숨이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의 삶은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과거가 돼버린 그들 삶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함으로써 우리 삶과 연결시켜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다.

우리는 어제의 이성이 오늘의 이성이 아닌 우상이 되기 때문에 오늘의 이성 또한 내일의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공산치하에서 부역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말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대문자 한국사가 아니라 소문자 한국사들을 쓰는 것이 과거사 정리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김기봉|경기대 교수·사학)

06 12. 02.

 

 

 

 

P.S. 조넌선 스펜스의 책들은 이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듯한데 <신의 아들>은 재작년에 나온 <반역의 책: 옹정제와 사상통제>(이산, 2004)에 이어서 그래도 오랜만에 나온 책이다. 러시아사에 관해서도 이만한 '이야기꾼'이 있었으면 좋겠다(내가 과문한가?). 그리고, 프랑스의 비시정부와 관련된 책은 몇 권 되지 않아 보인다.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까치, 2002)에 대해서는 얼마전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에서 독후감을 읽어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해서는 박지현의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책세상, 2004)를 먼저 읽고 윤곽을 그려보는 것이 순서에 맞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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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과 사도 바울'(http://blog.aladin.co.kr/mramor/1010259)에 이어지는 페이퍼이다. 내친 김에 지젝의 바울론에 대해서 정리해두고자 한다. 그래봐야 두 개의 문단, 각각 <믿음에 대하여>(동문선, 2003)과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한 문단을 읽어보려는 것뿐이다(두 책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대신에 국역본의 부정확한 대목들을 교정해두도록 한다. '그리스도에서 레닌까지'란 제목은 <믿음에 대하여>의 서문에서 따온 것이다.

 

 

 

 

먼저, <믿음에 대하여>의 8-9쪽. 조금 이전에 7쪽에서 밝히고 있는 이 책의 전제. "이 책의 기본 전제는 비록 그 전제가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만약 누군가가 자유-민주주의적 지배권을 포기하고 믿을 만한 급진적 지위를 주창하려 한다면 그것이 담고 있는 유물론적 해석을 승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The basic premise of this book is that, cruel as this position may sound, if one is to break the liberal-democratic hegemony and resuscitate an authentic radical position, one has to endorse its materialist version. IS there such a version?"(이후에 원문 대조는 생략하거나 부분적으로만 하도록 한다.)

번역문은 포기할 만한 내용인데, 누락된 마지막 문장을 포함하여 다시 옮기면, "이 책의 기본전제는, 비록 이 입장이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헤게모니를 분쇄하고 진정으로 급진적인 입장을 부활시키고자 한다면 그 유물론적 버전을 승인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버전이 과연 존재하는가?" 정도이다.

진정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이란 "정치를 일련의 실용주의적 개입이 아니라 (대문자)진리의 정치(politics of Truth)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오늘날 이러한 입장은 '전체주의적'이란 이유로 기각된다. "오늘날 이러한 장애로부터 탈출하여 진실의 정치를 표방하는 입장은 레닌으로의 복귀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다시 옮기면, "이러한 교착상태에서의 탈출, 곧 진리의 정치에 대한 재단언은 레닌으로의 회귀라는 형식을 취해야만 한다." 

레닌으로의 회귀는 <혁명이 다가온다>의 핵심적인 메시지이기도 한데, <믿음에 대하여> 또한 동일한 반문에 답하면서 주장을 전개한다. "왜 단순히 마르크스가 아닌 레닌인가? '제대로 된 복귀라면 원래 진영으로으 복귀여야 하지 않는가?' 오늘날 '마르크스로의 복귀'는 이미 학술권에서 별다른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마르크스를 고려하고 있는가? 한편으로 포스트모던 소피스트들의 마르크스, 메시아적 약속의 마르크스, 다른 한편으로 현대 세계화의 역동성을 예견하고 월스트리트 거리에서조차 회자되는 마르크스이다."

역시나 마지막 문장에 누락된 단어들이 있다. 이를 포함해서 다시 옮기면: "왜 그냥 마르크스가 아니고 레닌인가? 오늘날 '마르크스로의 회귀'는 이미 학계에서 나름대로 유행이다. 이 너나없는 회귀들에서 우리는 어떤 마르크스를 갖게 되었나? 한쪽에는 문화연구의 마르크스, 포스트모던 소피스트들의 마르크스, 메시아적 약속의 마르크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늘날 세계화의 동학을 예견한 마르크스, 월스트리트에서조차 그러한 인물로 환기되는 마르크스가 있다."

"이들 마르크스들이 지닌 공통점은 정치 본령의 거부이며, 레닌에 의거하게 되면 이 두 가지 함정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원문은 "What both these Marxes have in common is the denial of politics proper; the reference to Lenin enables us to avoid these two pitfalls." 다시 옮기면, "이 두 가지 계열의 마르크스들이 갖는 공통점은 정치다운 정치에 대한 거부이다. 레닌으로의 회귀는 이 두 함정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후의 지적들은 <혁명이 다가온다>의 주장들을 예견하게 해준다.

먼저, 지젝은 레닌의 개입이 갖는 두 가지 특징을 지적한다. 그 하나는 레닌의 외부성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인 전치이다. 차례대로 살펴본다.

(1) "첫째로 마르크스와 관련해 볼 때 레닌의 외부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니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친정집단'에 속하지 않았고, 마르크스나 엥겔스를 전혀 만난 적이 없다. 더욱이 그는 '유럽문명'의 동부 경계지역 출신이었다. 오로지 이 같은 외부적 위치에서만이 그 이론의 본래적 충동을 살려내는 것이 가능하다." '친정집단'은 'inner circle'의 번역이다. '동부 경계지역'이란 물론 러시아를 가리키는데, 러시아 내에서도 레닌은 타타르 출신이라고 해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반복하자면, 이러한 외부성, 외부적 위치에서만 이론의 충격을 되살려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바울에 관한 대목이다. "바로 이와 동일하게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를 정식화했던 바울 역시 예수의 친정집단 소속이 아니었으며, 라캉이 프로이트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이론 전통을 수평자로 사용하여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완수한 것도 마찬가지 논리이다." '수평자'는 'leverage'의 번역이며 '지렛대'라 옮기는 게 낫겠다. 요컨대, 성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너서클(측근)이 아니었고 라캉 또한 전혀 다른 이론적 전통을 지렛대로 삼아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달성했다는 것. 

라캉에 대한 부연설명: "프로이트는 이것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가 학식을 통한 입회에 기초를 둔 자신의 폐쇄된 공동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부 출신의 비유대인인 융에 신뢰를 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초라한 것이 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융의 이론 자체가 입회에 기초한 학식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융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한 사람은 라캉이었다." '이것의 필요성'이란 '외부성'의 필요성을 가리킨다. 그러한 외부성을 끌어오기 위해서 프로이트는 일부러 융을 수제자로 삼았지만 결과적으로 '배신'당한다. 프로이트의 적통을 잇는 것은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파문'당하는 프랑스인 이단자 라캉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과 라캉의 역할은 동일시되며,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의 관계에서 레닌의 역할로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사도 바울과 라캉이 원래의 가르침을 다른 맥락으로 재수록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자신의 승리로 재해석하고, 라캉은 소쉬르를 반사경삼아 프로이트를 읽는다). 레닌은 마르크스 이론의 원래적 맥락을 상이한 역사 시기에 적용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원이론을 대체하거나 탈색시켰으며, 그런 다음 효과적으로 그것을 보편화하였다." '재수록하다(reinscribe)'는 '재기입하다'로 옮기는 게 낫겠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십자가에 못박힘'을 가리키고 '자신의 승리(his triumph)'는 '그의 승리(영광)'가 아닌가 한다.

마지막 문장은 원문과 대조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Lenin violently displaces Marx, tears his theory out of its original context, planting it in another historical moment, and thus effectively universalize it." 번역문에서 '탈색시키다'란 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원랙의 맥락을 상이한 역사 시기에 적용'한다는 것도 문맥에 맞지 않는다. 다시 옮기면, "레닌은 마르크스를 폭력적으로 전치시키고, 그의 이론을 원래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다른 역사적 순간에 이식시킴으로써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편화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바울, 프로이트-라캉, 마르크스-레닌이라는 쌍이다. 이때 '우편'에 놓이는 바울-라캉-레닌은 모두 '외부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데, 참고로 이 '외부성'은 <혁명이 다가온다>의 2장에서 '당의 외부성'과 '정신분석가의 외부성'으로 변주된다(이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2) "'원래의 이론'이 잠재적인 정치적 개입능력실현하게 되는 것은 이같은 급격한 변개를 통해서이다." 원문은 "[I]t isonly through such a violent displacement that the 'original' theory can be put to work, fulfilling its potential of political intervention." '급격한 변개'는 'violent displacement'를 옮긴 것이고 앞에서 내가 '폭력적인 전치'라고 옮긴 것이다. 다시 옮기면, "이론이 갖고 있는 정치적 개입 역량을 실현시키면서 '원래의' 이론이 작동되게 하는 것은 오직 바로 이러한 폭력적인 전치를 통해서이다." 

"레닌의 독특한 의견이 처음으로 명백히 소개된 저술이 <무엇을 할 것인가>(1902)라는 점은 의미있다. 이 저술은 필요한 타협을 통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실용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모든 가능한 타협을 무시하고 명료한 급진적 관점 - 우리의 개입이 해당 상황을 변개시킬 수 있는 방식에서만 개입이 가능한 - 을 채택한다는 의미에서 레닌의 무조건적 상황 개입의지를 보여준다." '변개시키다'는 'change'의 번역이고, '해당 상황(the coordinates of the situation)'은 '상황의 좌표들' 혹은 '현실의 좌표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모든 가능한 타협'은 '모든 기회주의적 타협들'을 뜻한다.

그러니까 레닌의 관점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게 아니라 무조건적인 개입을 통해서 현실의 좌표들을 변화시키고 이론을 관철시킨다는 것이겠다. "이 점은 인민의 구체적 필요와 요구를 고려하는 전문지식과, 자유로운 사고력으로 무장한 채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논쟁 이면으로부터 나와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할 필요를 강조한 오늘날의 제3의 '포스트 정치' 방식과 관련지어볼 때 현격히 대비된다."

 

 

 

 

'제3의 포스트정치(Third Way 'postpolitics')'는 "'제3의 길'식의 탈정치"라고 옮기는 게 낫겠다. 번역문은 이런저런 오역으로 도배돼 있는데 다시 옮기면, "여기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제3의 길의 탈정치(학)이다. 이 탈정치는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구분을 뒤로 제쳐놓고 구체적인 인민들의 필요와 요구를 고려하는 전문지식과 자유로운 토의로 무장하고서 새로운 이슈들과 직면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의 구도는 '레닌주의냐, 제3의 길이냐'가 되겠다.

"이처럼 레닌의 정치는 제3방식의 실용주의적 기회주의뿐 아니라, 라캉이 상실된 것에 대한 자기애라 부른 바 있는 중도좌파적 태도에도 진정한 반격이 된다. 진정한 레닌주의자와 정치적 보수주의자간의 공통점은 이들이 자유주의적 좌파의 '무책임성'을 거부하다는 사실이다. 확고한 보수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레닌주의자는 행동을 취하고 아무리 못마땅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정치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과정에 뒤따르는 모든 책임을 떠맡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3의 길'을 '제3방식' 등으로 옮긴다는 것은 상식 이하다. 여하튼 여기서 레닌주의와 대비되는 것은 이 제3의 길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좌파'도 해당한다(지젝은 기든스 등의 '제3의 길' 혹은 '탈정치'에 대해서 한번도 동감을 표한 적이 없다). 번역문의 '중도좌파'는 'marginalist Leftist'를 옮긴 것인데, 상용되는 표현 같지는 않다. '자유주의적 좌파'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여하튼 이 대목은 지금의 국내정세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무책임성'을 '무능력'이라고 바꿔넣으면 더더욱 말이다(신자유주의적 좌파?).

이런 '무책임성'이란 무얼 가리키는가? "결속과 자유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옹호하지만, 구체적인 그리고 때로는 '잔인한' 정치적 조치라는 실제적 모습을 띠고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는 이를 회피하는" 태도이다('결속'이 아니라 '연대'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러니까 손에 물/피 안 묻히고 말빨로 해결하려는 좌파가 자유주의적 좌파이다. 자유주의적 좌파 또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진정한 혁명을 원하였지만,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할 실제적 대가는 피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하며 자신의 손을 더럽히려고 하지 않았다. 이처럼 허상적인 급진 좌파의 입장(인민에게 진정한 민주정을 제공하기 원하지만 반혁명과 싸울 비밀경찰도 없고 자신들의 학술적 특권도 전혀 위협받지 않는)과는 대조적으로 레닌주의자는 보수주의자처럼 자신의 선택에 따른 모든 결과를 떠안는다는 면에서, 즉 권력을 차지하고 그것을 행사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완전히 인식한다는 면에서 신뢰할 만하다."

 

 

 

 

'신뢰할 만하다'는 'authentic'의 번역이다. '진짜다'란 의미이다. 즉, 인민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지만 비밀경찰과 같은 물리력/강제력을 갖고 있지 않은 정부나 말로만 급진적인 강단좌파 같은 유사-좌파가 아니라 진짜-좌파라는 얘기이다. 지젝은 여기서 레닌주의자(a Leninist)를 오히려 보수주의자(a Conservative)와 동급으로 비교하고 있는데 이 둘의 공통적인 핵심은 자기의지의 무조건적인 관철그에 대한 책임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면에서, 이전에도 한번 언급한 바 있지만, 레닌주의자에 가장 가까운 모델은 박정희와 정주영이다(박정희는 브레주네프와 마찬가지로 소프트-버전의 스탈린 아닌가?).   

어쩌다 보니 서문의 마지막 단락에까지 도달했다(젠장, 한 문단만 읽는다더니?). "레닌으로의 복귀는 한 사고가 이미 특정 집단조직 안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아직 일정제도(확립된 교회, IPA, 스탈린파 정당국가)로는 안착되지 못한 독특한 순간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좋았던 옛 황금시대'를 향수적으로 재현하는 것도 실용적 기회추구 입장에서 옛 프로그램을 '새로운 조건'에 조정하는 것도 아니며, 현 세계의 조건하에서 범세계적인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자의 세계질서를 전방위적으로 저지하며 나아가 진실의 입장을 대변하고 억압된 진실의 관점에서 현 세계 상황에 개입하기 위한 정치 프로젝트를 주입하려는 레닌적 몸짓의 반복을 의미한다."

이미 지적한 대로 '진실'이라 옮겨진 것은 모두 '진리'로 교정되어야 한다. 더불어, '사고(a thought)'가 아니라 '사상'이다. '레닌으로의 회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있는 대목인데, 강조점은 어떤 '유일무이한 순간(unique moment)'을 포착하는 것. 이 순간은 이행의 모멘트이기도 하다. 이 모멘트의 포착으로서의 '레닌으로의 회귀'는 다르게 말하면 레닌적 제스처를 반복하는 것이다. 레닌적 제스처란 무엇인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전일성을 침식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획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기획은 억압된 진리의 관점에서 현재의 전지구적 상황에 개입하면서 스스로가 진리의 대변자로서 행동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단언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과 관련하여 행했던 일, 즉 범세계적 다중문화 정책을 오늘날의 제국과 관련하여 수행해야 한다." '정책(polity)'은 '정체'(정치체제)의 오역이다. 다시 옮기면,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대해 행한 일을 우리는 오늘날의 '제국', 이 전지구적 다문화적 정치체제에 대하여 행해야 한다." 그것이 이 서문의 타이틀 'From Christ to Lenin... and Back', 곧 '그리스도에서 레닌으로, 그리고 다시 레닌에서 그리스도로'가 뜻하는 바이다. 

06. 12. 01.  

P.S. 서두에서 <혁명이 다가온다>의 한 문단을 읽겠다고 한 건 분량상 다른 자리에서 행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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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편의점에 가서 금요일자 한겨레를 사들고 왔다. 요즘 기사들이야 온라인에 다 뜨지만 좀 '구식'인지라 아직도 '신문지'를 선호하는 편이다(e-book에 별로 취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지성 섹션에 읽을 만한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6)에 관한 리뷰를 일단 옮겨오기로 했다. 그건 이 책에 관한 자료들을 좀 찾아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제는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인데, 원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부'이다. 번역본의 제목이 '희망의 인문학'이라고 붙여진 것은 최근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는 의미도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겨레(06. 12. 01) 가난한 자에 필요한 건 '빵' 아닌 '장미'

가난한 사람 구제는 쌀을 나눠주는 것보다 쌀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는 게 당연히 낫다. 실직자에게 당장 돈 몇 푼 나눠주는 것보다는 취직을 위한 직업훈련을 시키는 게 더 나은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켄 로치의 영화 <빵과 장미>(2002)를 막바로 떠올리게 한다).

국가가 가난이나 실업구제 방편으로 동원하는 노동연계복지정책은 대부분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희망의 인문학-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이매진)는 이를 호되게 비판한다. 그런 식은 우선 “가난한 사람들이란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른 존재, 즉 능력이 부족하거나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 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가진 존재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토대를 둔 복지정책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키면서” 그들을 “쥐꼬리만한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게” 해준다.

좀더 나가 보자.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조차도 다른 사람들과 공평하게 힘을 나누어 가질 만한 경제력도, 지적 능력도 없다. 그래서 인문학을 부자와 중산층이 독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만들어 놓은 채 그저 훈련만 시킴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순응적인 사람들로 묶어놓을 수 있게 된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을 위한 정규대학 수준의 인문학 교육과정 ‘클레멘트 코스’ 창립자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 원제는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부(富)-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쯤 되겠다. 여기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 빈곤층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부’란 결국 인문학이다.

왜 인문학인가? 쇼리스는 뉴욕 인근 중범죄자 수용 교도소의 가정폭력에 관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비니스 워커라는 여성 재소자를 만난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그 재소자는 “그 문제는 아이들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애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삶을 배우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애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그 대화가 인문학자로서의 쇼리스 삶을 바꿔놨다.

해결의 실마리는 아이적부터 약자들의 사고 자체를 옭아매고 그들을 성장기까지 지속적으로 빈곤상태로 묶어놓는 매커니즘, 곧 무력(force)의 포위망을 깨뜨려 해체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들을 공적 세계(페리클레스가 말하는 정치적인 삶)로 이끌어가도록 교육하는 것이며 거기엔 ‘성찰적 사고능력’이 필수적이다. 비니스가 말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이 바로 그것이고 그게 다름아닌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결국 물고기 낚시기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왜 필요한지, 그 역사와 사회적 파장은 어떤 것인지 등 더 깊고 폭넓은 사유로 이끄는 것이 인문학인 셈이다. 저자는 대학을 비롯한 많은 학교들이 인문학 교육과정을 직업훈련으로 대체하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 “성찰적 사고의 윤리적이고도 지적인 힘을 망각한 국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번성”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경고한다.

클레멘트 코스란 명칭은 저자가 이 인문학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의논한 상대 제이미 인클란 예일대 법학부장이 설립한 상담소 ‘로베르토 클레멘트 가족보호센터’에서 따온 것이다. 뉴욕 남동부에서 ‘사회복지금 수급자, 노숙자, 재소자, 전과자들’까지 포함된 “가난하고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고 특별한 기술도 없던”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95년부터 시작한 클레멘트 코스는 지금 한국을 포함한 4개 대륙 6개 나라 57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고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코스 개설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책 역자들은 모두 광명시의 평생학습원을 수탁운영하고 있는 성공회대 교수들이며, 이들은 평생학습 분야의 새로운 접근방식과 실천사례의 모범으로 이 책을 선택했고 저자도 초청한 바 있다.(한승동 선임기자)

06. 12. 01.

P.S. 물론 함정은 있다. '빵 대신 장미', '빵보다 인문학'이란 발상이 동일한 시혜적 구조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가 '부'를 가진자의 양심의 문제로 환원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은 이러한 '말'이 아닌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인지라 예단은 유보한다. 참고로, 아래는 이 책에 대한 영문 소개이다.

Earl Shorris's book, Riches for the Poor, takes up the story of the Clemente Course in the Humanities, the eight-month course in poetry, logic, art history, U.S. history and moral philosophy that Shorris first described in his book on poverty in the United States, New American Blues (1997). Blues argued in compellingly lyrical prose that poor people tended to stay poor because of a "surround of force" that was made up of tough social facts (police brutality, bad landlords) and relative intangibles (the gloomy fatalism that attends poverty). Only exceptionally talented people could rise out of the "surround," which otherwise binds the poor inside a tight knot of fear and anxiety, hems them into purely private concerns with immediate safety, food and shelter. Studying Plato and Aristotle, Shakespeare and Conrad, Michelangelo and Cezanne, the poor could become "public" beings, and begin, as Shorris wrote, "the journey from poverty to democracy."

The course worked so well that even after Shorris stepped down from directing it in 1996 it flourished. As he notes in the first chapter of Riches, "by the autumn of 1999 more than 400 students were attending the Clemente Course," and there were some 17 Courses in the U.S.. Remarkably, the course remains the same seminar in foundational humanities in Seattle and Anchorage, Tampa and Mount Holyoke that it started out as on the lower east side of New York. "The Clemente Course originated in a single idea," Shorris recalls in the forward to the book. "Force and power are not synonymous in a democratic society."

As the Clemente Course grows nationally Shorris remains its best ambassador. Some of the biggest plans are on the horizon. In a recent interview he said, "The biggest projects are just getting underway. One is more Clemente Courses with Alaska Natives and Indians — we'll have six this year. The other is potentially just as exciting. Martín Gómez, Executive Director of the Brooklyn Public Library, and his staff and I are working on a way to start Clemente Courses in libraries. You asked how many Clemente Courses? There are a lot of libraries." Riches closes with a startling paragraph about the consequences of learning. In summing up his book, Shorris writes about the kinds of questions that the humanities encourages students to ask — how shall we live? what is the best route to the happy life? — and suggests that what the humanities offer is, in essence, a revolution in consciousness — that is, ultimately, what Shorris means by "politics." "In one way or other," he writes in his last paragraph, "politics will make dangerous persons of the poor. The certainty of that has worried the elites of this earth since politics was invented. But Plato was wrong about politics then and his fundamentalist followers are wrong now. The happiness of others is a goal worth pursuing, and the method for achieving it, democracy, is a risk worth taking."

P.S.2. 급하게 페이퍼를 정리하고 분리수거를 하러 갔다왔는데, 분리수거중에 떠오른 생각은 '빵과 장미'의 문제가 비단 자본주의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러시아 작가 블라지미르 두진체프(1918-1998)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1955; 집문당, 1989)가 문제삼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체제와 무관하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빵(생존)과 장미(행복)와 인문학(사유)이다. 이것을 순차적인 것으로 간주한 것이 현실사회주의의 오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건 '산업화'와 '선진화'를 우상으로 섬기는 뉴라이트의 오류이기도 한 것 아닐까? 그러한 순차성이 요구되는 상태는 '절대빈곤'에 한정되는바,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사유의 절대빈곤인 듯싶다. 인간은 살아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동시에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건 위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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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01 12:30   좋아요 0 | URL
마지막 문단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잘 읽었어요. 깊이 공감합니다.

sommer 2006-12-01 13:36   좋아요 0 | URL
'빵 대신 장미', '빵보다 인문학'이란 발상이 동일한 시혜적 구조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가 '부'를 가진자의 양심의 문제로 환원될 소지가 있다는 내용이 선뜻 이해가 안 되네요. 클레멘트 코스가 지향하는 것이 빵과 장미 혹은 인문학 사이의 담론의 차원에서의 양자택일이 아닌, 실정적인 측면의 위상을 강조하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빵과 장미 그리고 인문학'의 난점은 이러한 '부'를 가진 자들 역시 그만큼 핍진해 있다는 것이지요. 빵의 차원에서는 비대칭적 관계가 명료하게 형성되지만, 나머지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제 백분토론에서도 '저출산율'의 대책을 논의하면서 한 패널이 대책으로 제시한 '인식의 개선'에 대해 손석희씨가 곤혹스러워하며 결국 토론의 마지막에는 기업의 대표로 나온 패널에게 실제적인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종결지었던 장면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사회의 언표는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하게끔 만드는 동시에 실질적인 정책에 대한 강박은 그만큼 인식의 공백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곧 한국 사회에서는 '정신이 빵이 되는' 셈이지요. 빵이 빵 이상의 그 무엇이 되는 곳...

로쟈 2006-12-01 13:53   좋아요 0 | URL
제가 간단히 언급한 것은 예상되는 반론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한데, 가령 어떤 게임을 하는데 못사는 동네 아이들이 불현듯 나타난 좋은 코치가 잘 지도해준 덕분에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할 때 변화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남아있는 것은 그 게임의 규칙인 것이죠. 그 게임이 공정한 게임인가 아닌가란 문제가 좋은 코치를 가졌느냐 못가졌느냐란 문제로 치환/환원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입니다. 또 다른 예로, 가령 교양으로서의 클래식(고전) 교육을 한다고 할 때, '무엇이 클래식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빠뜨린다면 그 역시 백화점 교양강좌와 다를 바 없을 거라는 얘기지요. 물론 아이들이 그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청출어람하듯이...

기인 2006-12-01 21:00   좋아요 0 | URL
위, 빵과 장미를 보니 전태일 열사가 떠오르네요. 노동자 중심주의에 대해서 근래에 급속도로 회의하고 있었는데, 다시금 전태일 평전을 읽으니 그 통찰력과 행동력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공익이 이제는 공부방 같은 데에 투입되는 것으로 제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데, 기대도 됩니다. 제가 사는 관악구에는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생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서요. ^^
* 신문기사는 간략히 검토중이라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결국 공익은 공부방 청소 같은 일을 하게 되는 거겠지요 -_-;;; 그럼 학부 친구들이 와서 동네 학생친구들이랑 함께 공부하면 저는 옆에서 청소를 하고 문 잠그고 해야 되는셈? ㅡ.ㅡ;; 흠..
어쨌든 퍼갑니다 ^^;;;;

로쟈 2006-12-02 01:04   좋아요 0 | URL
공부방이 그래도 실질적인 '공익' 복무가 아닐까 싶네요. 저는 공익을 가장한 당번병을 했더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