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대개 한겨레를 사서 보기 때문에 한국일보를 지면에서 읽는 건 드문 편이다. 그래도 내일을 한 부 사서 읽어봐야겠다. '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꼭지 때문이다. 최근 한중일 3국 합작으로 제작하고 안성기와 유덕화가 주연한 영화 <묵공>이 상영중인 걸로 안다. 관심을 갖던 차에 며칠전 한 사이트에서 영어자막으로 된 영화를 다운받아서 초반부만을 봤는데, 기사에서는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묵자/묵가의 사상에 대해서 유례없이 긴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설마 지면에 다 실리는 것일까?). 필자의 열기가 느껴지는 기사이다. 일독해 볼 만하다(묵독해야 하는 건가?).

한국일보(07. 01. 11) <묵공>이여, 당신의 꿈이 만든 집단자살극을 아는가

'묵자' 읽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3, 4년 전이니 공교롭게도 노무현정부가 들어선 것과 때를 같이한다. 물론 우연의 일치였다. 책을 정리하다 읽지 않고 두었던 <묵자>를 발견하고 펼쳐본 것이 계기였다. 첫 장부터 눈길을 사로 잡았다. 평등과 기득권타도, 분배를 외치며 집권한 노무현정부에 대한 기대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낙원'을 꿈꾸었던 묵자. 2,500년 전 그는 꿈은 정말 멋지고 원대했다. 차별 없는 하늘같은 나라. 내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겸애(兼愛)는 500년 후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고, 계급차이 없이 가진 것을 골고루 나누고 아껴쓰는 절검(節儉)은 마르크스의 사회ㆍ경제 사상과 다르지 않았다.

중국 천하가 갈갈이 찢기어 언제 오늘의 형제가 적이 돼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에,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전쟁으로 피냄새가 마를 날이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홀연히 '반전'구호를 과감히 들고나온 좌파의 시조. 그는 스스로를'북방의 천한 사람'이라고 했다. 봉건제도와 계급사회에서 고통 받는 백성에 눈을 돌려 기존의 신분사회를 기반으로 한 철학인 유학 대신 '겸애'를 주장하며 '머리에서 발꿈치까지 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자신이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면 끝까지 행하는 사람'이었다. 낡고 검은 옷에 맨발로 천하를 돌며 이웃 사랑을 외친 운동가이자 묵가의 교주였다. 전쟁에 지치고, 가난에 신물이 난 백성들은 열광했다. 그들을 향해 그는 외쳤다.

“하늘은 우리 모두를 똑 같이 사랑한다. 그 은혜를 저버린 자는 어김없이 천벌을 받으리라. 하늘을 숭배하는 자, 하늘의 두려워하는 자, 하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 하늘의 이치를 본받는 자는 성(盛)하리라. 그의 혼은 하늘에 있으리라. 하늘을 비웃는 자,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하늘을 배반하는 자는 멸(滅)하리라. 몸뚱이와 영혼이 함께 땅에서 썩어 흔적조차 사라지리라.”

“하늘은 가름(差別)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곳, 모든 생명에게 비와 이슬을 내려주고, 빛과 바람을 맞게 한다. 이것이 하늘의 마음이다. 천하는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하늘'의 고을이다. 어리고 나이 많고 귀하고 천한 구별 없이 모두 '하늘'의 자식이다. 가는 터럭이라도 할지라도 하늘이 만들지 않은 게 없다. 그런데 어찌 하늘이 천하를 아울러 사랑하고 이롭게 하지 않겠는가.

“가름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탐욕이 세상을 갈라놓고, 전쟁을 만들고, 빈부를 만들고, 계급을 만들었으며 귀함과 천함을 구분 지어 놓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이 가름을 없애는 일이다. 가름을 없애기 위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힘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바른 도(道)를 알고 있으면 서로 가르쳐주고, 재물이 있으면 서로 나눠주라.”

이 얼마나 멋진 주장인가. 인류가 꿈꾸는 지상낙원의 모델을 보는 듯했다. 정말 인류사에 감춰진, 불운하게도 덜 알려진 위대한 사상이 여기에 있었구나. 본격적으로 <묵자>를 만나보기로 작정했다. 묵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묵자를 언급한 중국 고전들을 찾았다. 이런 위대한 사상가를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다니. 노무현정부는 뭘 하나. 자신들의 통치철학이 될 수 있는 모델이 여기에 있는데…'

고전 읽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것을 현실과 끝없이 비교하는 일일 것이다. <묵자>도 그랬다. 기존 세력과 가치관(유학)에 대항하며 변혁을 꿈꾸는 묵자의 외침은 그 반역의 강도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마치 노무현의 좌파정부가 처음 그랬듯이(*이 좌파정부에는 따옴표를 붙여야 하지 않을까?).

묵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외쳤다. “의로움이야말로 올바른 것이며 천하의 보배다. 의로움은 어리석고 천한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귀하고 지혜로운 것에게서 나온다. 그럼 무엇이 귀하고 지혜로운가. 하늘이 귀하고 하늘이 지혜로울 다름이니, 의로움은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의로움을 행하기가 불가능하더라도 절대 그 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목수가 나무를 깎다가 잘 되지 않는다고 먹줄을 버릴 수는 절대 없다. 이를 따르는 것이 '천의'(天義)다.”

묵가는 확신주의자들이었다. “칭찬 받으려 의를 행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가는 것이 진실로 올바른 도라면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입으로만 그러지 않고 몸소 실천했다. 목수 출신인 묵자 스스로 몸에 따라 옷을 입고, 배나 채우려 음식을 먹으며 떠돌아다니는 천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음악을 부정하고, 전쟁이 있는 곳이면 열흘이 걸리더라도 달려가 그 부당성을 호소했다.

김학주 교수는 그의 저서 <묵자, 그 생애·사상과 묵가>(명문당 펴냄)에서 그런 이들을 이렇게 규정했다. "지배자의 비위를 건드리고 시대조류를 어기며 낮은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격한 주장들을 내세우고, 또 자기 희생을 무릅쓰며 그러한 주장들을 실천하였다는 것은 종교적인 신념 없이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묵가는 묵자를 정점으로 받드는 조직적인 집단을 이루어, 그 집단의 주장과 조직을 위하여서는 자기 희생을 가벼이 여기며 일사분란하게 단결하였으니, 이것도 종교집단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묵자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묵가라는 종교의 교주였고, 그의 사상은 종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묵가는 단순한 학파가 아니라 당시 사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종교집단이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건이 묵가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인류 최초로 기록될 끔찍한 종교적 집단자살극이. BC381년의 일이다. 이날의 사건을 소설식으로 꾸며보면 이렇다. 맹승은 '검은 무리'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거자(巨子)다. 그는 친한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한 초나라 양성군의 부탁으로 제자 183명과 함께 그의 성을 지키는 일을 맡기로 했다. 성에 도착하던 날, 양성군은 옥을 반으로 깨뜨려 하나를 맹승에게 주며 말했다. “우리 이걸 부신(符信)으로 삼아 나눠 차세. 믿음의 맹서일세. 어떤 일이 있을 땐 이 부신을 서로 합치고 기꺼이 서로를 따르기로 하세.”

맹승은 훗날 언젠가는 이 옥 조각이 자신과 제자들의 피를 요구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 역적이 되고, 아침에 초의 땅이 저녁에 진의 땅이 되는 배반과 전쟁의 혼란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맹승은 이 위험천만하고 어리석은 맹서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가 베풀어준 은혜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맹승은 젊은 시절 양성군의 식객이었다. 양성군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함께 거두어 주었다. 다른 식객이 주인을 도운답시고 빈둥대며 입만 나불거리는 것과 달리 맹승과 제자들은 잠시도 쉬지않고 집 안의 궂은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맹승을 양성군은 좋아했다. 기꺼이 대부로 대접했고, 친구가 돼 아침 저녁 겸상까지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 때 맹승은 다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보든 이 친구와의 신뢰는 지키리라.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하늘의 의로움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초나라 왕이 승하했다. 한달 전이었다. 초나라도, 양성군에게도 비극의 전조였다. 양성군은 서둘러 맹승에게 성을 맡기고 왕궁으로 갔다. 도읍인 영(?)으로 떠나는 양성군의 얼굴에는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그 이유를, 그리고 그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를 맹승은 이제야 알았다. 왕의 장례가 있기도 전에 재상 오기가 죽었다. 천하의 별이 또 하나 떨어졌다. 그가 누구인가. 불과 6년 만에 덩치만 컸지 허약하기 그지없는 이 나라를 200년 전 장왕시대의 영광으로 되돌려놓지 않았는가. 구차하게 이웃 나라와 손잡지 않고 위와 한의 남하를 막고, 날로 세력을 뻗치는 진(秦)의 깊숙한 곳까지 공격, 천하를 다투던 인물이 아닌가.

적들은 그의 이름만 듣고도 몸을 떨었다. 잔인함과 출세욕과 뛰어난 용병술로 숱한 일화를 남기지 않았던가. 그는 노(魯)의 장수가 되기 위해 적인 제(齊) 출신 아내의 목을 서슴없이 베었다. 병사들과 똑 같은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걸었으며 자기 식량을 직접 들고 다니는 등 기꺼이 병사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감격했다. 오기는 알고 있었다. 승리는 무기도, 병사의 수도, 맛있는 음식에도 있지 않고 병사들의 사기에 있다는 것을.

장수에게 감격한 병사는 '목숨 아끼지 않은 전사'가 된다. 그것을 알고 있는 한 어머니는 종기가 난 아들의 고름을 그가 직접 빨아주었다는 소식에 통곡했다. 사람들이 연유를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에 남편이 종기가 났을 때, 그가 고름을 빨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에 감격해 물불 안 가리고 싸워 결국 죽었습니다. 이제 내 아들까지 그렇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왕의 신임도 두터울 수 밖에 없었다. 오기는 군사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개혁의 칼도 휘둘렀다. 그의 전략은 간단했다. 그냥 있는 것 잘 정리해 두 배로 만들기였다. 재물만 탐하면서 불평불만 해대는 귀족과 관리들을 쓸어내 버렸다. 그리고 불필요한 관직을 없앴다. 예외는 없었다. 빈둥거리는 왕실의 친척의 봉록을 없애고 그것으로 군사를 길렀다. 군대는 풍족해졌고,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높았다. 그런 병사들을 이끌고 오기는 남쪽의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의 진(陣), 채(蔡)를 정벌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권력과 부정하게 얻은 재물을 뺏긴 왕족과 귀족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나라의 부강보다 자신의 이익이 중요한 그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강력한 그의 후원자인 왕이 죽은 것이다. 왕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 거사에 양성군도 가담했다.

쫓기다 막다른 길에 몰린 오기는 왕의 시신 아래 숨었다. 그들은 오기를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은 오기는 몸에 무수히 꽂혔고 그들은 오기의 사지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화살이 왕의 시신에도 무수히 가서 막힌 것이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역시 오기는 지략은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 죽어가면서도 원수를 갚을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멍청한 그들은 오기가 왜 도왕의 시신 아래로 숨었는지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위험에 처하고서야 알았다. 덜 떨어진 태자 역시 아버지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던 오기가 아니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불효자로 남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는 숙왕(肅王)에 오르자마자 장수 영윤(令尹)을 불러 명령했다. "아버지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라. 그 일족까지 죽이고, 그들의 성을 거둬들여라."

그 일로 이미 70여 집안이 도륙됐다. 이제 마지막 양성군 차례다. 더구나 순순히 목을 내놓지 않고 도망가버렸으니 왕의 분노는 더욱 크리라. 왕의 명령은 정당하다. 그 정당함에 맞서는 것은 반역이다. 맹승은 고개를 돌려 제자들을 보았다. '저들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래도 왕의 군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목숨을 위해 대신 지켜주기로 약속한 남의 성을 내줄 수도 없다. "내일이면 왕의 군대는 올 것이고, 우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맹승은 바람을 피하려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누(樓)로 걸음을 옮겼다. 양상군의 만류를 뿌리치고 누구보다 앞장서 백성들과 함께 들판에서 일하느라 땀에 절어 여기저기 버캐가 핀 헐렁한, 정강이까지 올라온 검은 홑바지가 뼈만 남은 앙상한 다리를 깃대 삼아 사납게 펄럭였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려갈 것이 불안해 보였다. 자루가 긴 창인 극(戟)을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가누어 누에 오른 맹승은 바람에 꺾인 흰 수염을 손으로 한번 쓰다듬고는,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실눈으로 남쪽 벌판을 응시했다. 극의 끝에 달린 붉은 천이 그의 머리 위에서 펄럭였다. 왕의 군대 전령이 다녀간 지 반나절. 벌판에는 흙먼지만 자욱할 뿐이다.

흙바람에 30리 밖에 있는 왕의 군대도 전진을 멈추고 쉬고 있으리라. 이런 흙바람 속에서 굳이 군사를 몰아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것은 적과의 전쟁이 아니다. 난동에 가담한 한 신하의 목숨과 재산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순순히 항복하고 성을 내 준다면, 굳이 칼에 피를 적실 이유가 없다. 모두 왕의 백성이고, 땅이기 때문이다. 전령은 그 시한을 오늘 해지기 전까지라고 했다.

“우리 뿐이로구나.” 짧게 한숨을 섞어 이렇게 중얼거린 맹승은 고개를 돌려 누 아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깃발처럼 펄럭이며 서있는 185명의 제자를 내려다 보았다. '검은 무리'의 상징이 돼버린 누더기 칡 베옷, 땡볕에 그을린 새까만 얼굴, 바지 아래로 드러난 앙상한 종아리, 너덜해진 짚신이 그들의 고된 노동과 절약으로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콩국과 냉수로 끼니를 채워 온 그들의 생활을 숨김없이 드러내 주고 있었다.

'옛날 우(禹) 임금처럼 소나기에 목욕하고, 거센 바람에 머리 빚으면서 장딴지의 살과 정강이의 털이 없어질 만큼 밤낮으로 고생하면서도 거둔 것은 나눠주며 살아왔다. 그게 우리의 법이지 않는가. 단 한번, 단 한명 그것을 어긴 적은 없었다. 죽음 앞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저들은 어떤 길이라도 따를 것이다. 모두 불에 뛰어들고, 칼날을 밟으라면 밟을 것이다.'

'길은 하나 밖에 없다.' 맹승은 눈을 감았다.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자신의 존재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빛보다 어둠이 늘 더 편안했다. 스승은 빛이야말로 하늘이 주시는 평등의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는 어둠이야말로 '하나'이고 '평등'이라고 생각했다. 삼라만상이 어둠에 복종할 때,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던가. 누구도 어둠을 거스를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 어지러운 세상은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꾸는 세상에 대한 꿈은 또 얼마나 좋은가. 꿈을 배반하는 건 늘 어둠을 증발시켜 버리는 환한 태양이다.

마른기침을 해도 먼지 먹은 목이 터지지 않아 맹승은 허리에 찬 물통을 열어 남아있는 물을 모두 마셨다. 먼지 먹은 얼굴들의 시선이 버려지는 물통을 따라 일제히 움직였다 다시 그의 얼굴로 모였다. 그들 역시 결단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듯했다. '검은 무리'의 맹서를 읊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맹승은 옥 조각을 쥔 왼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듯 조용해졌다. 바람을 가르며 맹승이 입을 열었다.

“제자들이여, 검은 무리여! 나는 이 성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약속으로 이 부신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금 서로 합쳐 뜻을 따르기로 한 다른 한쪽 부신은 볼 수 없고, 힘으로는 왕의 군대를 막을 수 없다…” 맹승은 잠시 말을 끊었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모로 돌렸다. 검은 구름 뒤에서 해가 떨어지고 있는지 사위는 더욱 검었다. '검은 하늘, 검은 땅, 검은 사람… 잠시 후면 이 모든 것을 지울 더욱 짙은 어둠이 우리를 찾아 오겠지.' 제자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킬 수 없다면, 스스로 죽을 수 밖에 없다.”

놀란 눈동자들이 일제히 맹승을 향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바람소리에 귀가 웅웅댔다. 맹승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자신의 키보다 1자는 족히 더 긴 극의 끝을 바라보았다. 맨 위에서부터 날이 자루와 직각으로 한 뼘 간격으로 짧게 뻗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맹승은 '이 극은 남을 죽이기는 좋은 무기지만, 자살하기에는 자루가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침묵을 깬 건 수제자 서약(徐弱)이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죽음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죽어서 양성군에게 도움이 된다면 죽는 것이 옳지만, 우리의 죽음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데, 단지 우리의 도(道)를 지키다 우리들만 세상에서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서약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뒤쪽에서 젊고 낯선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우리는 양성군의 일족도, 그의 군사도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을 양성군도 바라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두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을 보며 맹승은 이름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뭐더라. 완(緩)이지 아마. 늘 얼굴에 깊은 그늘을 갖고 있는….' 그가 떠듬거렸다. 자신의 말에 스스로 자신이 없는지 목소리가 점점 오그라들었다. “…어쩌면 우리의 죽음이야말로 친구의 신의와 뜻을 저버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맹승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나와 양성군의 관계는 스승도 되고 벗도 되며, 벗도 되고 신하도 된다. 죽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엄한 스승을 구할 때 사람들은 반드시 '검은 무리'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현명한 벗을 구함에 있어서도 '검은 무리'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훌륭한 신하를 구함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죽는 까닭은 우리의 의(義)를 행하고, 우리의 업(業)을 계승케 하려는 것이다. 거자는 송(宋)에 머물고 있는 전양(田襄)에게 물려 줄 것이다. 전양은 현명한 사람이니 어찌 '검은 무리'의 존재가 세상에서 끊어질까 걱정하겠는가?”

그들의 죽음을 알기라도 한 듯 지붕 위의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이며 요란하게 울었다. 맹승은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렸다. 놀란 맹승이 눈을 번쩍 떴다. “스승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청하옵건대 제가 먼저 죽어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역시 서약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짧은 칼이 그의 목을 뚫고 있었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분수처럼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뿜어져 나온 피가 장작 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쿵 하고 서약이 쓰러졌다. 그의 죽음이 신호라도 되듯 제자들이 일제히 '검은 무리'의 맹약을 암송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자식이다. 남이란 없다. 남을 내 부모형제처럼 섬긴다. 재물은 남을 위해 쓰며, 빈궁하게 산다. 우리에게는 나라도 왕도 규범도 없다. 오직 하늘의 의로움만을 따른다. 전쟁을 단호히 반대한다.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며, 지도자에 절대 복종하며 죽음도 기꺼이 바친다.”

맹승은 오른손에 잡은 과를 발 앞에 비스듬히 세워놓고는 힘차게 끌어 당겼다. 세번째 날이 그의 목을 찌르고 들어왔다. 귀에서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목에 뭔가 자꾸 걸렸다. 기침을 해보려 했지만 되질 않았다. 뭔가에 머리가 세차게 부딪쳤다. 눈에 하늘이 보였다. 어둠, 그것도 아주 진한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둘러보려 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도 누군가 맹약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눈동자를 움직여 주변을 보았다. 검은 피가 메마른 땅 여기저기 흩어지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눈앞에 시꺼먼 물체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저 놈의 까마귀. 맹승은 놈을 노려보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고 떴지만 어두워 사위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왕의 군대가 도착했다. 대장 영윤은 검은 무리의 주검을 보고 경악했다. 어떻게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스승의 한마디에 한 사람의 도망자 없이 모두 스스로 목에 칼을 찔러 넣을 수 있단 말인가. 신념과 집단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가벼이 여기는 '검은 무리'라는 말은 들었지만 영윤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붓을 들어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양성군의 성을 거두다. 광기의 무리 183명 모두 자살하다.'

 

 

 

 

정말 상상만해도 끔찍한 이 사건을 소설가 최인호는 <유림>(열림원)에서 '오늘날 맹신적 사교집단의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도를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모습에서 고귀함을 느끼기 보다는 광신의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 테러리즘이 타인을 향했을 때를 상상하면 더욱 그렇다. 광신이야말로 자신과 다른 상대에게 무자비할 수 있지 않은가. 애써 묵자 시대에서 찾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그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묵자>는 잠시 엄청난 환상을 심어주고, 현실만 더욱 어지럽히는 한낱 꿈처럼 보였다.

안성기가 왕의 군대의 대장 항엄중 역을 맡아 눈길을 끄는 홍콩 장지량 감독의 한ㆍ중ㆍ일 합작 영화 <묵공>(墨功)은 그러나 이 집단자살극을 싹 감추고 홀로 찾아온 묵자의 거자인 혁리(류더화)의 영웅적인 방어전쟁을 그리고 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마 광신도의 자살극으로는 차마 묵자의 '반전' '평화' '겸애'사상을 이야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묵자>에 나와있는 것처럼 방어라면 일가견이 있는 묵자의 전술을 보여주려면 자살항복으론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액션 사극일 수 밖에 없고, 그 속에서 묵자의 사상을 논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성이 있어야 황궁도 있다. 저을 무찔러야 자유가 있다. 전쟁은 피하는 게 좋다. 전쟁에서 안 억울한 사람 있나. 비공(非攻)과 겸애만이 평화의 길. 전쟁에서는 산 자나 죽은 자나 불행하기는 마찬가지. 사람이 사람을 왜 죽여야 하지'란 대사를 간헐적으로 내뱉을 뿐이다.

그러나 용감히 전쟁을 치르면서 혁리가 한탄하는 이런 말조차도, 정반대로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를 지킨다며 집단 자살한 행동만큼이나 백성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한다. 어쩌면 “모든 이를 사랑하라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양성의 왕이 한 말이야말로 묵자에게는 날카로운 비수일 것이다. 결국 성을 지키고, 백성을 지킨 사람은 혁리가 아닌 바로 그 왕이었다.

꿈은 꿈일 뿐이다. 결코 현실일 수 없다. 현실과 거리가 먼 꿈일수록 달콤하다. 사람들은 쉽게 그 꿈에 열광하고, 희망을 품는다. 꿈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며 꿈 꾸는 자가 행복한 이유다. 그래서 세상은 늘 꿈으로 가득하고, 그 꿈에 사람들은 취하고, 꿈에 취한 사람들의 더욱 고통스런 신음을 남긴다.(이대현 편집위원) 

07. 01. 12.

P.S. 오전에 한국일보를 사서 읽었지만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짐작대로 지면기사는 아닌 모양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iosculp 2007-01-1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안보셨으면 한번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만화에서는 권력관계가 더 드러나게 그린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리고 그당시 최첨단 공격과 방어 기술이 나오긴 하는데 만화인지 실제인지 구분은 안되더라고요.

로쟈 2007-01-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주변에서 추천하는 만화는 많은데, 만화세대가 책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저는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hallonin 2007-01-1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공은 장예모의 영웅과 반대 지점에서 깃발을 세우고 있다고 한 씨네21의 김혜리 편집위원의 지적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긴 글을 쓴 분에게는 체 게바라의 꿈과 현실에 대한 유명한 한마디가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겠군요.

파란여우 2007-01-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이 잼난 글을 왜 이제서야 읽게 된 걸까요.
읽다가 아주 잼나고 좋은 문장을 발견해서 퍼가요.

로쟈 2007-01-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dafuck님/ 맞습니다...
파란여우님/ 그러게요.^^ 동양 고전이라면 저보다 여우님이 일가견이 있으실 텐데오...

Mephistopheles 2007-01-1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묵공"이라는 만화책은 요즘 구해보고 싶어도 구하기가 힘들더라구요..^^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신문기사들을 둘러보려는데 바로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이탈리아의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1912-2007)의 타계 기사이다. 그 유명한 배우 소피아 로렌(1934- )의 남편이었고 데이비드 린의 영화 <닥터 지바고>(1965)의 제작자였다(필모그라피를 보니 펠리니의 <길>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영화계의 '큰손'이었다고 할 만하다. 기사를 읽어보니 이 제작자-여배우 커플의 사랑이 '의외로' 파란만장한데, 사실 <닥터 지바고>에서 줄리 크리스티가 맡았던 라라 역으로 그가 점찍은 여배우도 원래는 아내인 소피아 로렌이었다고 한다. 나이가 많고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데이비드 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지만.

한겨레(07. 01. 11) ‘소피아 로렌’의 남자라 행복했어요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오른쪽)의 남편이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자인 카를로 폰티(94·왼쪽)가 9일 타계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912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1938년부터 50여년 동안 <닥터 지바고> <길>(La Strada) 등 모두 150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대중에게 이탈리아의 육체파 여배우인 소피아 로렌의 유일한 남편으로 더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폰티는 1952년 당시 불과 17살이던 소피아 라자로를 미인대회 심사위원석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나폴리 빈민가 출신인 이 선이 굵은 미녀에게 한 표를 던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성 영화에 라자로를 기용했다. 그리고 성도 로렌으로 바꿔 불렀다.

하지만 20살 어린 로렌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험난했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당시 그의 고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로렌과의 사랑을 철저히 비밀로 한 뒤, 1957년 멕시코에서 양쪽 변호사만을 내세운 채 신랑·신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이 사실이 이탈리아 언론에 알려진 뒤 콘티는 중혼 혐의로 기소당했다. 로렌은 당시를 “나는 끝없는 지옥불과 파문의 위협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공공의 죄인들로 손가락질했다”고 회상했다. 로렌은 이 결혼식에 대해 “몇시간 동안 울었던 기억 밖에 없다”고 밝혔다.(*아래 사진은 1961년의 두 사람) 

두 사람은 결혼식 이후 타국을 떠돌았고, 결국 멕시코 결혼을 무효화한 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사랑의 곡절’은 프랑스 시민권 획득으로 결말을 맺었다. 조르주 퐁피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배려로 시민권을 받은 뒤, 1966년 파리에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호사가들은 폰티의 여배우 편력과 로렌 주위를 맴돌았던 많은 남자들을 떠올리며 결혼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예측은 어긋났다.

폰티는 로렌뿐 아니라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걸출한 이탈리아 배우를 발굴하고 키웠다.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하지만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9일 저녁 스위스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함께했다. 로렌이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지켜봤다고 친지들은 전했다.(강성만 기자)

07. 01. 11.  

P.S. 사랑은 세월을 버티는 힘이지만 세월은 사랑을 지워나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비80 2007-01-1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녁밥 먹으면서 뉴스로 봤어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제 친구는 "외울 것 하나 늘었다"며 인상을 찌푸리더군요. 헐리우드 외부에서 공고한 힘을 보여준 몇 안되는 제작자였는데 여성 편력으로만 한 사람의 인생이 평가되는 것 같아 좀 착잡합니다.

로쟈 2007-01-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에 따르면 '편력'이랄 게 없는데요.^^ 기사의 타이틀도 "‘소피아 로렌’의 남자라 행복했어요"이니까요...

딸기 2007-01-12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닥터지바고도 데이비드린 감독의 작품이군요 +.+
'인도로 가는길' 밖에 몰랐는데... 대단한 감독이군요!!!
(딴소리 하다 가서 죄송)

로쟈 2007-01-12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로 가는 길'은 거의 마지막 작품이구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들이 그의 전성기 걸작들입니다...
 

주디스 버틀러의 <안티고네의 주장>(동문선, 2005)을 예전에 읽다가 체크해놓은 대목들이 있어서 다시 대조해보기 위해 원서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이런 일이 드물진 않다. 내일 학교에 가서 다시 복사해야 할까?). '안티고네'란 주제에 대해서라면 한 학기 강의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수의 관련서들이 있고 나는 그 중 몇몇 권을 갖고 있다. 이 참에 견적이라도 내볼까 했는데 며칠 미뤄야겠다.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버틀러의 책과 함께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이연, 2006)를 참조하실 수 있겠다. 버틀러의 주저 7권에 대한 해설을 겸하고 있는 이 책은 당연히 <안티고네의 주장>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꺼내든 책은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이다. 전체 6개의 장에서 제5장이 '프로이트 독자로서의 주디스 버틀러'를 다루고 있는바, 지젝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버틀러의 독자들도 필독해야 하는 장이다(두어 페이지만 읽어도 이토록 재미있는 책을 사람들이 왜 읽지 않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guilty pleasure'라도 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안티고네'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도 다루어지는군.  

미리 말하자면, 이달말쯤에는 지젝의 또다른 주저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도 출간된다(예정대로 출간된다면 2월의 이론서로 꼽아둘 참이다). 참고로, 지젝 스스로가 꼽은 네 권의 대표작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그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시차적 관점>(2006)이다. 뒤의 두 권은 분량도 만만찮은데, 지젝의 이론적 매트릭스를 구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만큼 반복적으로 읽어두는 게 지젝을 이해하는 관건이다(*<부정성과 함께 머물기>는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란 제목으로 2월 중순에 출간됐다. 이제 <시차적 관점>만 소개되면 지젝의 '4대 주저'는 모두 번역된 셈이 된다).  

각설하고, 지젝의 버틀러론을 시간날 때마다 정리해둘 작정이다. 그 첫번째 꼭지는 '왜 도착은 전복이 아닌가?'이다. 이것만으로도 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서 '도착적 주체와 히스테리적 주체'란 제목을 달고 도착증과 히스테리증을 비교하고 있는 대목 정도만을 따라가볼 생각이다(이 절은 명실상부한 '도착적 철학자' 미셀 푸코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건 다른 자리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먼저, 서두: "'칸트와 사드와 더불어'라는 주제에서 이끌어낼 핵심 결론들 가운데 하나는, 미셸 푸코처럼 도착의 전복적 잠재력을 옹호하는 자들이 조만간 프로이트적 무의식을 부정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395쪽) 즉, 전복의 철학이나 정치적 기획은 프로이트적 무의식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 왜인가?

"이론적으로 이 부정은 프로이트 스스로가 강조한 바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정신분석에 있어서 히스테리와 정신증은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길을 제공한다, 즉 무의식은 도착증을 경유해서는 접근할 수 없다. 프로이트를 뒤따라서 라캉은, 도착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건설적인 태도인 반면에 히스테리는 훨씬 더 전복적이며 지배적 헤게모니를 위협한다는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396쪽)

그러니까 겉보기에는 훨씬 더 '쎄' 보이는 도착보다도 히스테리가 오히려 더 전복적이라는 것. 이것이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갖는 역설이다('프로이트로 돌아가자!'란 구호를 내건 라캉이 이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 건 당연한 일이겠고). 물론 상식적으로 보자면 상황은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도착증자들은 히스테리증자들이 단지 은밀하게 꿈꾸는 것을 공공연하게 실현하고 실행하지 않는가?"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사실로 인해 우리는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역설과 대면하게 된다. 무의식은 우리가 (히스테리증자로 머무는 한에서) 공상하기만 할 뿐 실현하는 것은 기피하는 은밀한 도착적 시나리오들로 구성되는 것인 아닌 반면에 도착증자들은 영웅적으로 '그것을 한다'는 역설과 말이다."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역설이란 무엇인가? 그게 은밀한 도착적 시나리오들과 무관하다는 것. 그러니 그러한 시나리오를 실현/실행하는 건 비록 '영웅적'이라 하더라도 헛발질이다. "우리가 우리의 은밀한 도착적 환상들을 실현(acting out)할 때 모든 것이 폭로되지만 무의식은 여하간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 무의식은 거기에 없었다?

왜인가? "왜냐하면 프로이트적 무의식이란 은밀한 환상적 내용이 아니며, 오히려 사이에 끼여드는, 은밀한 환상적 내용을 꿈의 텍스트(혹은 히스테리적 증상)으로 번역/치환하는 과정에 끼어드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이 향유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도착증자는 무의식의 핵심인 그 틈새를, 그 '화급한 물음'을, 그 장애물을 흐려놓는다."(396쪽)

히스테리와 도착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도착증자는 (무엇이 향유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타자에 대한) 답을 알기 때문에 무의식을 배제한다. 그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의 위치는 흔들릴 수 없다. 반면에 히스테리증자는 의심한다. 즉 그녀의 위치는 영원하고도 구성적인 (자기-)물음의 자리이다: 타자는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지? 타자에게 나는 무엇이지?..."(397쪽) 마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처럼!

 

"도착과 히스테리의 이런 대립은 특별히 오늘날 적실하다. 주체성의 전형적 양태가, 상징적 거세를 통해 부성적 법칙에로 통합된 주체인 것이 더 이상 아니라, 즐기라는 초자아의 명령을 따르는 '다형적으로 도착적인' 주체인, 우리 '오이디푸스 몰락'의 시대에 말이다." 즉, 오늘날의 주체는 '다형 도착적' 주체이다. '오이디푸스 몰락'의 시대에 넘쳐나는 건 갖가지 도착증자들의 행태이다(그럼에도 여전히 안티-오이티푸스가 우리의 구호인가? 누가 오이디푸스에 시달리는가? 아래 사진은 최근에 뜨고 있다는 인형방).

따라서, 오늘날 정치적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도착증의 닫힌 원환고리에 사로잡힌 주체를 어떻게 히스테리화할 것인가"이다. 지젝의 통찰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후기 자본주의 시장 관계의 주체는 도착적이며, 반면에 '민주적 주체'는 내속적으로 히스테리적이다. 다시 말해서, 시장 메커니즘에 사로잡힌 부르주아와 보편적인 정치적 영역에 연루된 시민의 관계는, 주체적 경제에서 볼 때, 도착증과 히스테리의 관계이다."(397-8쪽)

"따라서 랑시에르가 우리의 시대를 '후-정치적'(*탈정치적)이라고 부를 때 그는 정치적 담론이 히스테리에서 도착증으로 이처럼 이행했음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후정치'란 사회적 사태들을 관리하는 도착적 양태이며, '히스테리화된' 보편적/탈구적 차원이 박탈된 양태이다."(강조는 나의 것)

최근에 이러한 포스트-폴리틱스의 시대, 도착적 '탈정치 시대'를 징후적으로 드러내주는 유행어가 '참 나쁜 대통령' 아닐까? 아마도 곧 웃찾사나 개그야에서도 패러디될 만한 이 유행어를 듣거나 발언하면서 우리가 희희락락할 때 도착적 쾌락은 따로 먼 곳에 있지 않다('탈정치'의 노무현 버전이 '탈권위'이므로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는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관련기사를 읽어보는 것으로 이 페이퍼는 일단락짓도록 한다.

한겨레(07. 01. 12) '참 나쁜~’ ‘참 좋은~’ 요즘 정치권 최고 유행어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꺼내든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카드는 단숨에 정국을 개헌정국으로 몰아넣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는, 매우 엄중한 ‘개헌 국면’ 속에서, 아기자기한 유행어와 패러디가 탄생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으로부터 시작된 ‘참 나쁜 대통령’ 시리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박근혜 전 대표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단순명쾌하게 비판하자, 이튿날 노 대통령이 재반박하더니, 다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안에서 각각 이 말을 빗대 엄호와 반격을 펴면서 ‘참 나쁜 ~’, ‘참 좋은 ~’이 정치권에 유행어가 됐다.

#1. ‘참 나쁜 대통령’의 탄생/ 1월9일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에 개헌 제안을 하자, 박근혜 전 대표 캠프는 박 전 대표의 말이라며 다음과 같은 반응을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돌렸다.

<박근혜 전 대표, 노무현 대통령 회견 관련 반응>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2. 노무현의 반격/ 1월10일

이튿날인 10일, 3부 요인 및 헌법기관장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다. 이번 개헌은 나를 위한 개헌이 아니고, 차기 대통령을 위한 개헌이다.”

정권연장을 위해 3선 개헌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다. 전날 자신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한,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표를 공격한 것이다. 청와대는 청와대브리핑에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라는 글을 올려 노 대통령을 엄호했다.

“우리 역사에 정말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 있었다.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개헌, 독재를 항구화하고자 한 개헌, 그것을 날치기나 폭력으로 추진하려 했던 대통령이 진짜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묻는다.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추진한 이승만 대통령, 3선 개헌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유신 헌법을 제정한 박정희 대통령, 단임제이지만 7년 임기를 누릴 수 있도록 개헌한 전두환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인가.”

#3. 박근혜, “참 좋은 대통령 만들자”/ 1월11일

11일 서울 여의도에 새로 마련된 한나라당 서울시당 사무소 개소식에서 ‘참 나쁜’ 시리즈가 업그레이드됐다. 이 행사는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전 최고위원, 고진화 의원 등 대선 주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먼저, 강재섭 대표가 인사말에서 개헌론을 비판하며 외쳤다. “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국가안보나 국민경제는 없고 오로지 선거와 정권연장 음모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볼 때도 ‘참 나쁜 대통령’입니다!”

행사장에는 “명언이다”, “옳소”라는 추임새와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박근혜 전 대표도 환하게 웃었다. 이어 단상에 오른 박 전 대표가 말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서 민생 챙기기에 매진해도 모자라는 정권이 또다시 개헌을 들고 나오면서 온 나라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한마음으로 뛰어서 ‘참 좋은 대통령’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4. 김한길 “참 나쁜 발상”/ 1월12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확대간부회의에서, ‘참 나쁜’ 패러디를 활용해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한나라당에 말씀드린다. 헌법이 규정한 헌법 발의권 행사하는 대통령에 무대응하고 함구령으로 일관하는 한나라당은 초헌법적 발상이고, 초헌법적 발상은 ‘참 나쁜 발상’이다.”

이날 여의도 국회 주변 식당가에서는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참 나쁜 사람이군요” 등 ‘참 좋고, 나쁜’ 시리즈가 밥상, 술상에 올랐다.(황준범 기자)

07. 01. 11 -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요한 책들이 있어서 여덟 권을 한꺼번에 주문했는데, 그 중 하나는 역사학자 조지 이거스(1926- )의 <20세기 사학사>(푸른역사, 1999)이다. 지난 2005년에 내한한 바 있는 이 저명한 역사학자는 사학사의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는 그의 3부작이 모두 번역/소개돼 있다(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20세기 사학사>뿐이지만). 독일 태생이어서 '게오르그 이거스'라고 표기되기도 하지만,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후 미국의 대학에서 오래 봉직했다면 '조지 이거스'라고 불리는 것도 타당하다(그는 독어와 영어로 책을 쓴다). 지난 2002년 신년초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新질서 新문명' 코너에서 다루어진 인터뷰 기사와 소개기사를 자료로 옮겨놓는다(기사가 올려진 게 마침 오늘 날짜이다).

동아일보(02. 01. 11) 뉴욕주립대 명예교수 조지 G 이거스

조지 G 이거스 미국 뉴욕주립대 명예교수(76)는 역사를 바라보는 학자들의 시각을 한 발 뒤에서 관조하는 세계적인 사학사(史學史)학자로 유명하다.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았다(*아래는 조지와 윌마 이거스 부처. 조지는 <20세기 사학사>를 아내 '윌마'에게 바치고 있다).

-세계질서의 변동이 진행되고 있는 21세기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20세기역사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20세기 역사의 중요한 흐름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소련 붕괴 이래 지난 10년 동안 세계 질서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고 이와 함께 역사 인식도 변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20세기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1945년 이후 형식적인 의미에서 식민주의시대는 끝이 났고, 이전의 식민 지배국가들 대부분이 1945∼1960년 사이에 피지배국들의 독립을 받아들였습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계속 장악하려 했고, 프랑스와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수치스런 패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의 침공도 마찬가지였지요. 인종차별 제도도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990년대에 무너졌습니다. 백인우월주의는 이전의 식민지에서뿐 아니라, 1960년대부터는 서구 국가 내에서도 광범위하게 도전을 받았지요.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가치도 여성 운동의 부상과 함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런 역사의 변화는 역사 인식과 역사 서술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습니까?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역사 서술에는 두 개의 매우 다른 흐름이 있습니다. 이 두 흐름은 공식 문서에만 매달리며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을무시하는 국가 중심적 역사의 오래된 패러다임을 대치했습니다. 한편에서는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성과와 함께 컴퓨터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됨에 따라 고도로 계량화된 사회과학 지향적 역사가 일어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시도됐습니다. 사회과학적 역사는 비(非)개인적인 구조와 과정에 초점을 맞췄지만, 매일의 일상에 주목하는 이 새로운 역사는 생생한 인간들과 그들의 느낌들을 양적 측면보다는 질적 측면에서 잡아내고자 했습니다.”

-20세기말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은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하는 역사 서술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장-프랑스와 리오타르, 헤이든 화이트 같은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1960년대에 이미, 계몽주의 이래로 역사 서술의 원천이 됐던 서구의 ‘거대 담론’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역사는 목적도 방향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에게는 진실한 과거란 없었고, 따라서 과학적 또는 학문적 객관성의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각각 짜맞춰지거나 혹은 더 낫게 이른바 ‘창안된’, 검증 가능성 없는 많은 역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는 역사와 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이거스 교수님께서는 미시사적 접근을 비판하고 거시사적 역사 서술 방법을 주장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미시사는 거시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인간 일상의 삶을 드러내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담론의 퇴조와 함께 한국에서도 미시사적 접근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거시사’는 ‘미시사’로 대치되곤 했습니다. 이런 새로운 접근들은 실제로 과거에는 하찮게 여겨져 왔던 삶의 많은 측면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미시사가들은 이런 일상의 삶들이 일어난 큰 맥락을 다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20세기를 장식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처절한 잔혹 행위들을 충분히 설명해 낼 수 없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일어난 9·11 테러와 그에 뒤이은 ‘테러와의 전쟁’ 역시 그런 맥락일 겁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큰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시대의 역사와 역사 서술의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수천 명 죽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지만, 이는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겨냥한 것은 바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중심과 미국군사력의 심장부였습니다. 역사가들이 생각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이 이런 공격을 유발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한 것은 작은 테러리스트 조직일 수 있겠지만, 이들의 반(反)서구적, 특히 반미(反美)적 증오 뒤에는 무슬림이라는 훨씬 넓은 여론층이 있고, 나아가 이런 생각은 전에식민지배를 받았던 지역에 상당히 널리 퍼져있습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사회과학 지향적 역사와 소수자들의 경험적 삶에 주목하는 미시사는 모두 이 문제를 놓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분명히 자본주의의 힘에 의한 비서구사회의 식민지화를 탐구하는 거시사적 접근이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식민지화에 대한 것이라면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방식이 많이 사용돼 오지 않았습니까?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자본주의적 팽창의 역동성과 그로부터 유래하는 착취를 탐구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의부자와 가난한 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그러나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문화와 종교에 뿌리를 둔 비경제적 요소들을 충분히 설명해 내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사회과학적 분석들을 효과적으로 종합하는 데는 반드시 역사의질적 측면을 고려하는 문화인류학적 개념과 방법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9·11테러는 이런 역사 인식 방법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현재 상황에서 비극적인 문제는 전쟁의 상대인 테러리스트뿐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맹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현 정부와 그 동맹국들은 그들의 정책과 오만함으로 인해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삶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피해와 상처를 입고 있다는 점을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서방의 적들은 ‘서구’도 ‘비서구’도 모두 획일적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서구세계에도 고삐풀린 전지구화의 위험을 아는 넓은 여론층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근대 서구의 유산 중에는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필수적 긍정적 요소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과거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전세계의 많은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가난과 자의적 권력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유산에 주목해야 합니다.”(이메일인터뷰〓김형찬기자)

Picture of Georg G. Iggers

 

 

 

 

 

◇조지 G 이거스는 누구인가=미국 뉴욕주립대(버팔로) 명예교수인 조지G 이거스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사학사(史學史)가이다. 192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태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소년기에 나치를 경험한 그는 나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망명자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를 공공연히 지지했고, 베트남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운동 및 민권운동에 적극 가담해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프랑스사에서 독일사로, 지성사에서 역사이론으로 확대되며 역사 연구와 역사 서술의 역사를 국제적 수준에서 조망할 수 있는 우리시대의 유일한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역사학계에서 그의 중요성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미 모두 우리말로 번역된 ‘독일 역사주의’(박문각), ‘유럽 역사학의 신경향’(전예원), ‘20세기 사학사’(푸른역사)라는 그의 사학사 3부작이 나오지 않았다면, 사학사라는 분야는 역사학내에서 불필요한 분야로 고사 당했을지 모른다. 사학사란 하나의 역사서술이 나타나는 역사적 맥락, 즉 사회문화적 토대를 연구하는 분야로서 일종의 지성사다. 이거스 교수의 3부작은 바로 레오폴드 폰 랑케 이래 오늘날까지 역사학의역사가 어떤 흐름으로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대작이다.

둘째, 역사학을 보는 그의 시야는 그야말로 전지구적이다. 독일 역사주의를 기점으로 해서 성립한 근대 역사학은 역사를 ‘국민국가의 역사’ 곧 국사(國史)로 축소하는 전통을 낳았다. 이런 역사의 ‘국사화’는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역사학을 발전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역사학을 정치의 시녀로 전락시킴으로써 역사학의 위기를 초래했다.

오늘날 역사학 위기의 근본원인은, 역사의 중요한 문제들은 전지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서 발생하는데 비해 전문 역사학자들은 그 문제에 대한 연구를 국사의 차원으로만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역사학의 위기에 직면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역사학 분야는 역사학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진단하는 사학사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거스 교수는 사학사적 관점에서 9·11 테러 이후 앞으로의 역사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1960년대이래 서구 지성계의 가장 큰 흐름은 진보를 위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고 나타난 역사학의 새로운 경향이 미시사이다. 이거스 교수는 역사학의 이런 미시사적 경향이 대두하는 배경과 문제의식에 대해서는깊이 공감하지만, 그것이 역사학의 지배담론이 되는 데는 명백히 반대한다. 그는 9·11 테러가 일어난 역사의 거대한 맥락이 미시사적 역사 연구를 통해 해명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9·11 테러의 근본 원인은 분명 미국 패권주의 혹은 서구 자본주의와 같은 역사의 거대한 구조다. 그러나 어떻게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인물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미시사적 연구를 통해서는 이런 역사의 거대한 구조가 해명될 수 없는 것일까?

이거스 교수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사학사적인 메시지는 ‘거시사 대 미시사’라는 이원론적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둘 사이의 새로운 접합을 통해 ‘서구’와 ‘비서구’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해방과 자유의 역사라는 세계사의 보편적 과정 속에서 한국사의 특수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김기봉/경기대 교수·서양사학)

07. 01. 11.

P.S. 국역본의 대본은 독어본 'Geschichtswissenschaft im 20.Jahrhundert'(괴팅겐, 1993)으로 돼 있는데, 목차로 보아 그 증보판인 영어본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Wesleyan University Press, 1997)도 참조했을 것으로 보인다(저자의 서문에 따르면 영어본과 독어본은 많이 '다르다'. 3년 동안 저자가 책도 더 읽었고 또 염두에 둔 독자층도 각기 다르기 때문). 동료 역사학자인 피터 버크의 추천사가 붙어 있는 영어본은 나대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러시아에서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를 써서 구한 것도 아니고 매일 같이 들르던 구내 헌책방에서 어느날인가 못보던 영어책이 눈에 띄었는데 아주 새책이었다. '이거스'란 저자의 이름도 눈에 익어서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국내에 번역본이 있는 듯했다. 게다가 가격은 50루블(2,000원). 그게 지금 책장에서 빼와 만지작거리고 있는 영어본이다. 내일은 그 국역본을 손에 넣을 수 있겠다...  

P.S.2. 배송된 책을 확인해보니까 국역본은 예상대로 영역본을 대본으로 했다(다만 독어본으로 판권계약을 했다. 영어본이 출간되기 이전에 한 계약이어서일까?). 영어본이 더 최신판이어서 저자가 그렇게 권했던 듯하다. 그리고, 알고 보니 공역자 두 사람이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이거스 교수 문하에 있던 제자들이다. 영어본 원고를 사전에 전해 받아서 동시출간까지 기획했었다고 한다. '한국어판 서문'은 1997년 11월 서울에서 씌어졌는데, 마지막 멘트는 이렇다: "이 두 사람은 내 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나 또한 이들의 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책 내용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진 이 두 사람이 번역을 맡았다는 점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독자들의 기쁨이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1-11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1-11 21:27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지성사라는 것은 매혹적인 분야인 것 같습니다 ^^

로쟈 2007-01-11 21:50   좋아요 0 | URL
**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기인님/ 피터 버크의 책들도 비슷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듯해요. 역사이론 내지는 역사학 자체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것이죠. 헤이든 화이트의 고명한 저작을 포함해서...
 

물만두님의 서재에 갔다가 '신간 서적'으로 띄우신 책들 가운데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랜덤하우스중앙, 2007)이 들어 있는 걸 보았다.

만두님의 설명은 "나치의 치하에서 900여일동안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킨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과 인간, 투쟁과 역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리라."이다. 장르소설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지만, 일단 '레닌그라드'와 '에르미타주'란 말에 자동반사적인 흥미를 갖게 되는데, 알라딘의 소개는 턱없이 부족하다(출판사의 성의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작품소개는 전혀 없고, 작가 소개도 달랑 "소설을 쓰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뉴욕 시어터에서 배우 생활을 했다. 2007년 현재 작가이자 교수로 활동 중이다." 두 줄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는 수없이 손품을 팔았다.

먼저, 저자인 데브라 딘의 소설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가 그녀의 데뷔작이다. 그러니 미국내에서도 별로 알려진 인사가 아니었는데, 데뷔작으로 '붕' 떠버린 케이스이다(이 작품과 관련한 갖가지 인터뷰와 동영상까지 떠 있을 정도이니까). 그리고 알라딘에는 결정적으로 원작이 2003년에 나온 것으로 표기돼 있는데, 작년 3월에 나온 책이다. 분량은 240쪽이니까 '겸손'한 편이고. 그럼에도 반향을 불러일으킨 걸 보면 잘 씌어진 소설인 듯하다. 아래는 현지의 한 리뷰/서평이다. 그리고 그 아래는 추천사들이 보이는데, 우리가 잘 아는 이사벨 아옌데와 재미작가 이창래씨의 것이다(작가의 지명도를 짐작하게 한다). 모두 찬사 일색이다.  

A wonderfully spare and elegant novel in which the 900-day siege of Leningrad during World War II is echoed by the destructive siege against the mind and memory of an elderly Russian woman suffering from Alzheimer's. The novel shifts between two settings: 1941 Leningrad, when the city was surrounded by German troops, and the present-day, as Marina, who had been a docent at Leningrad's Hermitage Museum during WWII, prepares for the wedding of her granddaughter off the coast of Seattle in the Pacific Northwest.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first and foremost an eloquent tribute to the beauty and resilience of memory, especially as contrasted to the incomparable devastation that comes with its loss to Alzheimer's.

The Hermitage houses many of Europe's greatest treasures, from Greek and Roman sculpture to masterpieces from the Renaissance and the Dutch Baroque period, to some of the greatest paintings of the impressionists. In the Fall of 1941, the collection's very existence was threatened by the looming German invasion. As German troops tightened their grip on the city, Marina and her colleagues scrambled to evacuate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priceless pieces of art from the former Tsarist Palace. As they did so, they committed the masterpieces of art to memory, creating for themselves and for future generations what they called a "Memory Palace."

The novel shifts between the present and Marina's past almost seamlessly. In the present, Marina is slowly losing her grip on reality. She has trouble deciphering between what is happening at the wedding, and events that took place decades ago during the siege of Leningrad. Scenes of starvation during the war are juxtaposed with the marriage feast, and with Marina's memories of the empty Hermitage and its absent paintings. As Marina's thoughts focus on the Siege of Leningrad through the prism of the empty Hermitage and its absent art-works, it becomes clear that the skill that once sustained her - her ability to remember what she has lost - is slowing leaving her.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a moving novel of tremendous impact, beautifully told. The concluding scene is both heartbreaking and joyful, and one you will not forget soon.

"An unforgettable story of love, survival and the power of imagination in the most tragic circumstances. Elegant and poetic, the rare kind of book that you want to keep but you have to share."
-- Isabel Allende, author of The House of the Spirits, Daughter of Fortune and My Invented Country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an extraordinary debut, a deeply lovely novel that evokes with uncommon deftness the terrible, heartbreaking beauty that is life in wartime. Like the glorious ghosts of the paintings in the Hermitage that lie at the heart of the story, Dean's exquisite prose shimmers with a haunting glow, illuminating us to the notion that art itself is perhaps our most necessary nourishment. A superbly graceful novel.
-- Chang-rae Lee, author of A Gesture Life and Native Speaker

 

 

 

 

해서, 결론은 마음놓고 주문해도 좋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창래의 소설들에도 눈길이 가게 되는군. 아마도 그는 영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작가일 것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한국계) 작가는? 그건 퀴즈다(언젠가 페이퍼에서 다루기도 했었다). 이창래보다는 한 세대 연배가 위인 작가이다...

07. 01. 11.

P.S. 한편, 똑같은 '성모마리아'이지만 보다 대중적인 팝가수 마돈나는 레닌그라드가 아닌 모스크바에서 작년 가을에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다(잘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다). 세계투어의 일환이었는데, 러시아정교회에서는 그녀가 신성을 모독한다고 하여 콘서트를 보이콧하기도 했다(관련 뉴스동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svEMOtvoHUc 작년 9월 12일의 공연실황을 담고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1-11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1 14:43   좋아요 0 | URL
**님/ 그런 소스가 있으셨군요.^^

물만두 2007-01-11 15:00   좋아요 0 | URL
아나톨리 김아닌가요? 암튼 퍼갑니다^^

로쟈 2007-01-11 15:19   좋아요 0 | URL
너무 쉬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