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우리 곁을 떠난 정군님의 리뷰를 하나 옮겨놓는다. 지승호의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창, 2006)에 대한 것이고, 형식은 '오마이뉴스'의 서평기사를 퍼오는 식으로 하겠다(정군님의 알라딘 리뷰들은 현재로선 모두 그와 걸음을 같이 했으므로). 딴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아침에 '필름2.0'을 읽다 보니까 이번주 인터뷰이(!)가 지승호씨였다. 이달에 나대로 고른 '사회적 독서'의 대상 중 하나가 <금지를 금지하라>였기에 관심을 갖고 읽었고(이 인터뷰는 내주에 옮겨놓을 생각이다), 두 주 전쯤에 산 책을 아직 못펴들고 있지만 조만간 읽어볼 결심을 다시 하게 됐다.

그런 생각으로 '지승호'를 검색하니까 가장 먼저 뜨는 게 바로 오마이뉴스의 이 서평기사이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지. 서평도서에 대해서 그만한 애정과 부지런함을 갖춘 '서평꾼'이 이제 이 마을에는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쉽고 씁쓸하다(물론 나도 '양다리 걸치기'에 대해선 충고를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도덕적인 책임의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래의 리뷰는 그걸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오마이뉴스(06. 12. 11)  세상을 발전시키는 대화가 여기에 있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열 번째 인터뷰집을 내놓았다. 자본의 논리에 맞서는 이들, 박원순,조정래, 마광수, 이상호, 정태인, 문정현, 최승호, 지승호 등 8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담긴 <禁止(금지)를 금지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그 분야에서 자신이 믿는 것들을 위해, 그것이 권력을 지닌 자본의 논리에 비켜나는 것일지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열혈인사들이기에 인터뷰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맨 뒤에 있는 '지승호'와 한 인터뷰다. 저자가 다른 이를 만나서 인터뷰한 것을 담은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셀프 인터뷰'다. 10번째 인터뷰집을 기념해서 담아본 것이라고 하는데, 그 시도가 생소하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묵묵히 인터뷰집을 내놓았던 지승호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들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가장 마지막에 있는 지승호 인터뷰부터 보도록 하자. 눈길을 끄는 것은 솔직함이다.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서 소를 연상케 하는 성실함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인터넷에 달린 댓글에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며, '열등감으로 가득 찬 나르시스트'라는 자평은 예의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지승호씨 또한 알라디너인데, 나는 본인도 고백하는, 그리고 노출하는 그의 '피해의식'이 오히려 책읽기를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저자는 적당히 신비스러운 구석이 있어야 하지 않나. 이건 굳이 저자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일기장에 담을 법한 내용이라고 할까? 인터뷰집이라는, 아직은 생소한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저자의 어려움과 고뇌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는 왜 인터뷰를 계속하는 걸까? 지승호는 도올의 말, 즉 "대화는 편견의 확인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인터뷰의 매력을 소개하고 있다. 대화는 힘이 세다! 그것을 믿고 인터뷰를 하며, 더 좋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일 게다. 자본은 뒤로하고, 오로지 그 믿음 하나만 갖고 사는 열혈남자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지승호가, 대화의 힘을 믿는다는 그가 책 속에서 만난 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시작은 참여연대를 나와 희망제작소를 만든 시민운동가, 얼마 전에 삼성에서 지원금을 받아 논란을 일으켰던 주인공 박원순이다. 인터뷰에서 박원순은 본의 아니게 유명인이 된 시민운동가의 고뇌를 털어놓는다.

그 고뇌란 무엇인가?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주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심지어 이름만이라도 빌려달라는 것도 있다. 박원순은 마지못해 그렇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곳에서 '너무 설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박원순은 이것을 농담처럼 말하지만 단순히 유명세로 얻은 병치레라고 치부하기에는 커다란 고민이 있어 보인다. 그런 고민을 듣는 것 외에 참여연대에서 희망제작소로 옮긴 과정, 그리고 희망제작소에서 삼성의 기부금을 받은 것에 대한 생각 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것도 반갑다.

지승호의 질문이 날카롭기 때문일까? 박원순은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않았다. 참여연대에서 나오게 된 과정, 기업으로부터 돈 많은 것에 대한 생각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박원순을 비판했던 이들에 대한 생각까지 들을 수 있다. 박원순, 나아가 오늘날의 시민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체크해 볼 가치가 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한강>과 <태백산맥>, 그리고 <아리랑>이라는 말 많은 작품의 주인공 조정래다. 이 작품들이 말이 많다는 건 왜일까? 고발된 문학 작품! 마광수, 장정일과 달리 조정래의 작품은 '레드 콤플렉스'로 인해 무성한 말이 오고 갔다.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다른 인터뷰들은 기이할 정도로 이것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작품의 의미만을 파고드는 반쪽짜리 인터뷰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조정래에 관해서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암묵적으로 존재했던 셈이다.

하지만 지승호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것을 파고들었다. 또 조정래에게 정치에 관해서도 물어보고 있다. 덕분에 조정래는 <금지를 금지하라>에서 작품으로 말할 기회에 이어 '대놓고 말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은 예의 치레에 박힌 말들이 아니라 인간 조정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말들이기에 반쪽이 아닌 정상 인터뷰가 만들어졌다. 조정래에 관한 인터뷰 중에서 가장 성실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한 인터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자유정신 선동가' 마광수다. 마광수는 속칭 '야한' 소설로 말이 많은 작가다. 지승호나 마광수 또한 이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때문에 이들은 이것부터 파고든다. 마광수는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무엇이 억울한가? 마광수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 예컨대 무라카미 류의 작품처럼 야한 정도로 따지면 더 노골적이 있는데도 국내 작가들의 작품만 차별한다는 것이다.

대중에 대한 서운함도 빼놓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작품을 읽어본 뒤에 '비판'을 한다면 감수할 수 있겠지만, '너무 야하다!'는 말만 듣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광수의 말은 듣기에 거북한 것이지만, 근거가 있는지라 간과할 수 없다. 외국의 것은 작품성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의 것은 작품성과 별도로 '위험하다'는 이상한 이중성의 잣대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광수의 인터뷰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리로만 전락한 것은 아니다. 다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며 자유로우면서도 '올바른' 성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적하는 것들은 농담 같지만 진지하고 장난 같지만 경청할 필요가 있는 뼈있는 말들이다.

이외 대추리에서 만난 문정현과의 인터뷰에서는 '낮은 곳'에서 나이를 잊고 고군분투하는 종교인의 속마음을, 정태인과 한 인터뷰에서는 한미FTA의 위험성을 이상호와 최승호가 만난 인터뷰는 한국 언론에 대한 문제점을 들을 기회가 된다.

인터뷰 하나에 질문을 140개 만들 정도로 성실하게 준비했기 때문일까? 이들과 나눈 대화는 살아 있다.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니라 인터뷰만 봐도 그들을 직접 만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 있고 굳세다. '대화의 힘'은 묻히지 않았고 활자 위에서 생동하고 있다. 덕분에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대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엿보게 해준다.

박원순, 조정래, 마광수 등 그들의 말만 갖고도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법한데, 그들 8명을 한 권에 담아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금지를 금지하라>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의 논리에 맞서 싸우는, 진실을 찾는 이 사회의 일꾼들의 목소리가 담긴 <금지를 금지하라>, 세상을 발전시키는 대화가 담겨있다.(정민호 기자)

07. 01. 16.

P.S. 참고로 저자가 가장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인터뷰는 이상호 기자와의 인터뷰라고 한다. '사회적 독서'는 취향이나 형편에 따라 읽으면 좋고, 가 아니다. 의무적인 독서이고 강제적인 독서이다. 물론 그래도 각자의 사정을 무시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 많이 봐드리자면, 한권씩 그냥 사서 꽂아두시길. 그래야 책이 계속 더 나온다. 지승호 인터뷰집의 근간은 <감독, 열정을 말하다> 속편이라고. 그의 계획대로 홍상수, 김기덕 감독 편까지 포함한 인터뷰집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7-01-16 23:05   좋아요 0 | URL
'작금의 현실'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비로그인 2007-01-17 06:36   좋아요 0 | URL
이 글보니 더 쓸쓸해지네요......

라로 2007-01-17 15:38   좋아요 0 | URL
푸훗~ 그러네요~.ㅎㅎㅎ
로쟈님 남자분이세요?
줄곳 여자분인줄 알았다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면 할말 없지만...
님의 유머감각 좋아요~.찡긋

로쟈 2007-01-17 15:40   좋아요 0 | URL
라라님/ 그렇죠? 가을도 아닌데...
nabi님/ 제가 머리는 밀었어도 (여자처럼) 세심한 면이 있지요.^^

이방인 2007-12-11 01: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사실 시작은 Film 2.0에서 시사IN이었는데, 로쟈님도 Film2.0을보고 지승호의 책을 다시금 꺼내들었다는 말씀에 묘한 운명같은게 느껴지네요.
저는 Film 2.0메니아로, Film 2.0의 지승호씨 인터뷰를 무척 인상깊게 보았다가, 최근 시사IN의 알라딘 리뷰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로쟈님이 말씀하셨던 특정분야의 1등은 먹고 살게 해줘야 한다는 말에 필이 꽂혀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여기 다시 들어오게 된 이유는 금지를 금지하라 책 읽으면서 또 필이 꽂혀 박원순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혹시 추천해놓으신게 없나 싶어서...
 

원고 때문에 미적거리고 있다가 맑은 정신도 아니어서 북리뷰들이나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 지난주에 출간된 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세기>(민음사, 2007)에 관한 리뷰를 하나 옮겨온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말미에 편집과정에서 빠진 대목들이 지적되고 있어서이다.

동아일보(07. 01. 13)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미완의 시대’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의 동양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 그가 펴낸 자서전의 원제는 ‘Out of Place(제자리를 벗어난)’였다(*어느새 품절이군). 사이드는 팔레스타인계이지만 영국식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가 조국이라고 가르친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한평생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으로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망명객으로 살았던 이 비범한 문화비평가는 불행한 이방인의 삶을 학문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아마도 진정한 지식인은 관찰자이자 외부자로서 살아야 하는 고독한 숙명을 타고나는가 보다.

에릭 홉스봄 역시 한평생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홉스봄은 근대 유럽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길을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등 4권의 명저로 담아낸 역사가. 올해 아흔 살의 노(老)역사가는 국경의 울타리를 넘어 역사학에서 보편주의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좌파 지성인이다.

그는 영국계 유대인이면서 이집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스라엘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최고 마르크스학자였지만 그의 저서는 소련에서 판금됐다. 이 불행한 경험은 홉스봄의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역사는 격정과 감정, 이념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하며 특히 ‘일체감’이란 유혹을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라는 얘기다.

“(이방인의 삶은) 개인으로서는 고달팠지만 역사가로서는 각별한 자산이었다”고 회상한 노역사가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가 번역 출간됐다. 그에게 20세기는 ‘흥미로운 시대’다.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그리더니 자서전에선 흥미로운 시대로 봤다. 역설적이다. 어쩌면 어느 세기보다 끔찍한 침략과 전쟁이 벌어진 20세기를 통째로 살아내며 해석해야 했던 자신의 삶을 은유한 것이리라.

노역사가의 회고는 자신이 왜 공산주의자가 됐는지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홉스봄은 베를린에서 나치의 등장을 지켜봤다. 한편에서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대중시위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집단 황홀경’과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 등이 그를 공산주의로 이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삶을 바쳤던 공산주의 이념은 스탈린주의로 왜곡됐고 20세기가 끝날 무렵 종언을 고한다. ‘공적인’ 역사가 노역사가의 ‘사적인’ 삶과 맞물려 쉼 없이 펼쳐진다. 680여 쪽이나 되는 기나긴 회고 내내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노역사가의 시선은 윤색이나 자기연민 없이 놀라울 정도로 정직하고 객관적이다.

무엇보다 이 자서전의 백미는 노역사가가 오늘의 역사학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 이 경고는 21세기 초 논쟁의 지뢰밭이 된 한국 역사학에도 긴요하다. “자기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어난다…오로지 (특정) 집단을 위해서만 씌어진 끼리끼리 역사(일체감의 역사)는 역사로서는 함량 미달이다.” 한국 사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처럼 뜨끔한 노역사가의 일갈이다.

막강한 대영제국이 졸지에 사라지고 1000년을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본 노역사가. 그는 자서전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관찰자이자 이방인이면서도 역사와 시대에 뛰어들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학자의 거친 숙명임을 웅변하는 듯하다. 그래서 20세기는 그에게 ‘미완의 시대’다. 편집 과정에서 8장 ‘반파시즘과 반전투쟁’부터 11장 ‘냉전’까지의 주석이 빠진 것이 옥에 티. 원제 ‘Interesting Times’(2002년).

07. 01. 16.

P.S. 2002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도서관에 원저가 안 들어왔길래 구입신청을 해놓았다. 원저가 464쪽. 번역본은 692쪽이다. 번역본의 경우 대개 30% 정도씩 증면되는 듯하다. 책값? 중고본들은 훨씬 싸지만 새책의 경우에도 원서는 21불, 배송비 포함하면 3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겠다(새책 수준의 중고본은 2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가격이 더 다운되지 않는 건 하드카바이기 때문. 국역본은 25,000원(10% 할인가가 22,500원인데, 요즘 나오는 책들에 비해 특별히 비싼 건 아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인 2007-01-16 09:13   좋아요 0 | URL
아니; 편집 과정에서 3장이나 주석이 빠진 것이 '옥의 티'일 수 있는 건가요? 그 정도면 새로 찍어야 되는 중대한 실수일 것 같은데. 모두 내용주가 아니라 인용 문헌을 알려주는 주라고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실수 같습니다...
어쨌든 ^^; 퍼갑니다. 에렉 홉스봄 아저씨가 어느새 아흔살 이라니..

로쟈 2007-01-16 13:50   좋아요 0 | URL
실물을 아직 못 봐서 잘 모르겠는데, '흔한' 실수라고 판단한 것이겠죠...
 

중견작가 김영현씨가 신작소설을 냈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 2006). 소설집이 아니라 전작 장편소설이다. 300쪽 남짓이니까 분량이 두툼한 건 아니지만. 특이한 건 노골적으로 러시아작가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베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작가들은 구원론적인 주제를 탐구하려면 도스토예프스키적인 걸 다뤄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몇 년전에 읽은 것으로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주제를 다룬 정찬의 <그림자 영혼>(세계사, 2000)도 아주 실망스러웠다).

아래 인터뷰기사를 보면, 작가 자신이 '문학의 제2기'에 들어선 것 같다고 고백하는데, "당분간은 종교적 탐구를 계속해 보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멘트가 기대보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사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야말로 광신도적인 신앙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구원에 대한 회의를 끝까지 밀고간 작가가 아니었나(왜 우리 주변엔 인도로 가거나 수도원으로 가는 작가들만 있는 것인지? '당대적 현실'은 어디로 간 것인지?). 

한국일보(07. 01. 15) '낯선 사람들' 낸 소설가 김영현

소설가 김영현(52)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이렇다. 리얼리즘, 낭만, 서정, 민중문학, 민중운동, 학생시위, 긴급조치 위반, 구속, 고문…. 실천문학사 대표라는 현재 직함이나, 낭만적 색채 짙은 그의 리얼리즘이 민중문학의 발전이냐 퇴보냐를 놓고 뜨겁게 벌어졌던 1990년대 초의 ‘김영현 논쟁’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가 4년 만에 새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을 펴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저 열거된 단어들의 어떤 기색도 찾아보기 어렵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표나게 원용한 그의 이 신작은 욕망과 원죄, 악령과 신성이라는 종교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제를 탐구한, 말 그대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작품이다.

“이제야 비로소 김영현 문학의 제2기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패배감의 터널에서 빠져 나와 문학적으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그는 말했다. 운동을 할 때는 그래도 내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편안한 것 자체도 감수하기 힘겹다고. “우리처럼 오랫동안 운동권에 있었고, 아직도 몸 속에 그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2000년대로부터 조롱당하는 것 같은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껴왔죠. 지금의 세계는 좋게 말하자면 다원화한 노마디즘의 세계지만, 다른 면에선 일종의 무정부 상태예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내던져진 존재가 돼버린 거죠. 오지 여행도 많이 하고, 러시아 문학도 다시 읽고 하면서 이제야 내가 어떤 문학을 해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피살된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의 비밀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파헤친 <낯선 사람들>은 이런 회의와 고통의 소산이다. 소설은 파렴치한 수전노 아버지와 그의 걸신들린 욕망이 낳은 배 다른 아들들의 갈등을 축으로 하는데, 이 소설에서 수도원 신학생인 차남 성연이 아버지의 진짜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윤리적, 존재론적 갈등은 오롯이 작가 자신의 것과 겹친다.

“성연이 수도원을 떠나 첫 사랑 안나를 찾아나서는 결말을 통해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부대끼고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수도사처럼 침묵 속에서 생을 완성해가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얄궂은 운명 속에서 관계를 맺었다 해도 이 누추한 삶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게 의미 있는 삶 아니냐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간과 함께 피의 역사가 시작됐지만 사랑의 역사도 시작됐고, 그게 우릴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김영현의 작품을 김영현적이라 하지 않고 도스토예프스키적이라고 말하는 게 미안하지만, 작가는 <낯선 사람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 체홉,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작가들의 방법론을 활용해보려는 거대한 구상의 첫 작품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쓰지 않는 동안 고전으로 다시 돌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침체된 우리 문학을 위해 고전적 주제와 품격, 구도를 가진 문학을 다시 재건해내야겠고 생각했어요. 박완서 이문열 같은 1세대 작가들과 유행에 휩쓸리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텅 빈 중간세대로서 제가 할 일은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제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화력 강한 위장이 생긴 것 같다는 그는 “저도 제 자신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는 한 달에 1주일은 집필실에 들어가있겠다고 선포까지 했다. “작가는 평생 삶의 화두를 찾아 떠도는 자기 시대의 수도사입니다. 저는 삶의 의미라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막막한 우주에 영혼이라는 이토록 정교한 장치들이 존재한다는 게 바로 그 증거일 겁니다. 그걸 기독교가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당분간은 종교적 탐구를 계속해 보고 싶네요.”(박선영 기자) 

07. 01. 15.

P.S. 미완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주인공 알료샤는 수도원을 나와 (창작 메모에 따르면) 나중에 테러리스트가 된다(구원은 그 다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시대의 수도사'가 아니라 '자기 시대의 테러리스트'가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삶의 의미 따위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의로 무장한. 러시아 작가들의 방법론의 '한국화'에 대해서 우려를 갖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인 2007-01-15 21:5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종교적 탐구를 기원으로 타인의 구원으로 나아가는 방향도 있겠지요. ^^ 물론 저는 그 방법에 '동감'하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반대하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1-15 22:04   좋아요 0 | URL
저는 구도소설 따위를 믿지 않습니다. 소설이 핑계가 되는. 그보다는 종교가 핑계가 되는 소설이 더 윗길이라고 생각해요. 차라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의미라는 환상이 아니라 궁극적 의미의 불가능성 아닐까요?..

나비80 2007-01-16 15:34   좋아요 0 | URL
타인은 겨냥하고 자신은 관조하는 소설들이 낙양의 지가를 올린 때가 있었죠.
어떤 공교로움이나 불가해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참 모순되는 행위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저 역시 로쟈님이 말씀하신 궁극적 의미의 불가능성의 관점에서 삶을 환유하는 입장입니다. 뭐 제 자신의 가치관에 뚜렷한 기준이 서 있는것도 아니지만. 홍상수 식으로 말하자면 "그깟 오해와 편견의 기준"말이죠.^^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하루종일 집에 붙어 있게 된 탓에 신문을 보지 못했다. 물론 인터넷으로 주요 기사들을 훑어보게 되지만 '신문지'를 읽는 것만큼 개운하지는 않다. 구닥다리 활자문화세대이면서, 신문지 세대여서 그런가 보다. 온라인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눈에 띈 기사를 옮겨놓는다. 아마도 내일자 지면에 실리게 되는 듯하다. <자본론>의 한국어판 출간 20주년에 관한 기사이다.

경향신문(07. 01. 15)  이보게, 마르크스 다시 얘기해보세…‘자본론’ 재조명 활발

직선제 헌법 20주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20주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 20주년…. 올해는 유난히 ‘20주년’이 많다. 1987년 6월 민주화의 산물들이다. 또 하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한국어판 출간도 20주년이다. ‘무시무시한 금서’로 일본어판, 북한 번역본 등이 은밀히 떠돌던 자본론이 당당하게 일반인들 손에 쥐어질 수 있었던 것도 민주화의 세례 중 하나다.



당시 한국사회에 자본론을 공개적으로 처음 소개한 사람은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부 교수(53)와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65). 김교수 책이 더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빗장을 열어젖힌 것은 강교수의 ‘자본’(이론과실천)이다. “87년 농협중앙회 조사부 근무 시절이었어요. 이론과 실천의 김태경 사장이 와 뭔가 건넸는데 집에 와서 뜯어보니 ‘자본론’이더군요. 익명의 서울대생들이 초벌 번역한 것이었죠. 밤을 새워가며 다듬어 ‘익명의 역자들’로 해서 출간이 됐습니다. 당시 문화공보부에 납본(納本)하기까지 1주일간 책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어요. 난리가 났죠.”

잠적했던 김태경 사장이 결국 잡혀 법정에 섰다. 민주화 물결 속에서 김사장의 부인이었던 당시 강금실 부산지법 판사, 김수행 한신대 교수 등의 탄원에 힘입어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사실상 ‘해금’이었다. 강교수는 이어 자본론 2, 3권을 실명으로 번역해냈다.

“실명으로 책을 낼 때는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당시 학계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받아줄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민주화 이후 동아대에서도 학생회가 대학 당국에 ‘정치경제학’ 강의를 요구했죠. 그래서 박사논문 쓴 지 6개월도 안된 제가 임용됐어요.” 강교수는 절판된 자신의 번역본 출간 20주년을 맞아 주석까지 모두 담은 자본론의 독일어판 번역본을 새로 낼 예정이다.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비봉출판사)은 좀더 완결된 번역으로 89년 2월 출간돼 대중에게 파고들었다(*영역본을 옮긴 것으로 안다). 72년 외환은행 런던지점 근무 시절이던 자본론을 접하고 문화충격을 받았던 김교수는 80년대 초부터 이미 자본론 번역에 들어갔다. “서울대 교수가 출판하니 공안당국에서도 손을 댈 수 없었다고 봅니다. 당시 내 강의는 수강생이 1000명이 넘었어요. 다 수용하지 못해 후배 학자들을 동원해 강의를 맡겼을 정도였죠.”

주황색 표지에 마르크스의 초상화가 그려진 ‘자본론’(1~3권) 완역본은 불온서 해금의 상징이 됐다. 비봉출판사에 따르면 책은 지금도 매년 1000여권씩 나가는 스테디셀러로 제1권 상(上)편 기준으로 3만여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나도 이 책만 갖고 있는 듯하다). 김교수는 “93년 한꺼번에 몰아 받은 인세로 산본의 아파트 분양대금을 치렀다”며 “마르크스가 나를 먹여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생명은 짧았다.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다. 많은 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했고, 대신 그람시, 알튀세르 등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했다. ‘시차를 갖고’ 도입된 마르크스주의였지만 그나마도 대중화되기에 시간이 짧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론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다시 조명을 받게 됐다. 김수행 교수는 “경제적 불안정성, 공황의 반복과 실업 증가, 빈부격차의 증대 등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가 드러났다”며 “자본론의 수요가 다시 생겨났고, 연구자들도 조금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신준 교수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으로 소수만 더 행복해지고,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상황을 보며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를 다시 얘기해볼 수 있는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마르크스주의는 자본론 번역 20년을 맞아 중흥을 꾀하고 있다. 김수행, 김세균, 이진경 교수 등이 문화사회연구소에서 마련한 ‘한국 마르크스주의 지형 연구’ 강좌를 진행 중이다. 또 한국사회경제사학회는 오는 4월 학회 설립 20주년을 맞아 ‘민주화 이후의 한국자본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다루는 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맑스코뮤날레 등도 마르크스주의를 주제로 한 문화제인 제4회 ‘맑스코뮤날레’를 열 계획이다.

이 외에 장상환, 정성진 교수가 주축이 돼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 연구를 주도해온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은 ‘마르크스주의 연구’ 6호를 냈다. 20년전 자본론 한국어판을 처음 내 옥고를 치른 이론과 실천 김태경 사장은 최근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를 다시 펴내며 이렇게 밝혔다.



“‘수고’가 쓰였던 1844년에도, 출간됐던 1932년에도, 한국에 번역됐던 1987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인간 사회 저 심연에 똬리 틀어 입 벌리고 있는 악의 본질이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항하기 위한 강력한 사유의 무기로 ‘경제학-철학 수고’는 아직 유효하다.”(손제민 기자)

07. 01. 25.

P.S. 국내 마르크스 학자들 간에도 의견/노선 차이가 심한 것으로 아는데, 그 중 한 축을 대표하는 정성진 교수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 2006)가 작년말에 출간됐다. 564쪽이니까 두툼하다. 나로선 마르크스보다 트로츠키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번 들춰볼 듯한데,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현재까지는 제로이군(최근에야 깔린 것인가?)...

P.S.2. 생각난 김에 시 한 편도 옮겨둔다. '자본론' 하면 떠오르는 시가 내겐 황지우의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이다. 나도 프로그레스출판사의 양장본 마르크스를 모스크바에서 잠시 찾은 적이 있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았다.
  (아니다. 사실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 식탁에 앉았더니
  아내가 먼저 이 닦고 세수하고 와서 앉으라고 해서
  나는 이빨 닦고 세수하고 와서 식탁에 앉았다.)
  다시 데워서 뜨거워진 국이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침부터 길게 하품을 하였다.
  소리를 내지 않고 하악을 이빠이 벌려서
  눈이 흉하게 감기는 동물원 짐승처럼.
 
  하루가 또 이렇게 나에게 왔다.
  지겨운 食事. 그렇지만 밥을 먹으니까 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 짐승도 그랬을 것이다; 삶에 대한 想起, 그것에 의해
  요즘 나는 살아 있다.
  비참할 정도로 나는 편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아서 아침밥 먹고,
  물로 입 안을 헹구고, (이 사이에 낀 찌꺼기들을 양치질하듯
  볼을 움직여 물로 헹구는 요란한 소리를 아내는 싫어했다.
  내가 자꾸 비천해져 간다고 주의을 주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소파!
  '소파'하면 나는 '비누' 생각이 났다가 또 쓸데없이
  '부드러움'이라는 형용사가 떠오르다가 '거품-의자'가 보인다.
  의자같이 생긴, 젖통이 무지무지하게 큰 舊石器時代의
  이 多産性 여인상은 사실은 비닐로 된 가짜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오우 소파, 나의 어머니!" 나는 속으로 이렇게
  영어식으로 말하면서, 그리고 양놈들이 하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소파에 앉았던 거디었다.

  
  나는 오늘 아침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으면 거실이 飜譯劇 무대 같다.
  중앙에 가짜 가죽 소파 하나, 그 뒤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는
  괘종시계가 걸려 있고, 세잔風 정물화 한 점, TV세트,
  窓을 향한 幸運木 한 그루, 그리고 폼으로 갖다놓은 읽지도 않은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모스크바, 프로그레스 출판사) 양장본 3권이
  가로로 쓰러져 있는 서투른 書架와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수족관;
  그렇지만 이 무대에서 번역될 만한 비극은 없다.
  다만 한 사나이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았다.
  젊었을 적 사진으로는 못 알아보게 뚱뚱해진,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최근엔 입에서 나쁜 냄새가 난다고 아내에게 비난받은 바 있는
  이 사나이가 멍하니 소파에 앉아, 마치 동물원 짐승이 그렇게 하듯이,
  하품을 너무 길게 하고, 눈물이 난 눈을 두 번 깜, 빡, 깜, 빡하고 있을 때
  무대 왼편(주방)에서 그의 아내가 등장했으며, 그녀가 소파에 걸터앉아
  그의 턱을 쓰다듬어주면서 면도 좀 하라고 하자,
  그가 아내를 껴안으면서 "엄마!"라고 불렀을 뿐이다.
 
  하마터면 피아니스트가 될 뻔했던 아내가 출장 레슨 나가기 전에
  그에게 와서 나를 어루만져줄 때가 나는 좋다.
  나는,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커트해 줄 때,
  낮잠 자고 있는 그에게 가만히 다가와 나의 발톱을 잘라줄 때,
  혹은 그를 자기 무릎에 눕혀놓고 내 귀지를 파줄 때, 좋다
  아침마다 그에게 녹즙을 갖다주고, 입가에 묻은 초록색을 닦아주자
  나는 그녀를 보면서 방그레 웃었다.
  나는, 아내가 그를 일으켜주고 목욕시켜주고 나에게 밥도 떠먹여주고
  똥도 받아주고, 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의 남은 생을, 그녀에게 몽땅 떠맡기고 싶다.
  코로 쉼만 쉴 뿐, 꼼짝도 않고 똥그란 눈으로 뭔가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
  그녀가 다 알아서 해주는 식물 인간이고 싶다.
  가끔 햇빛을 보고 싶어하므로 창문을 열어줄 필요만 있을 뿐.
  동정할 수는 있어도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이 幸運木, 나는
  이 病室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
 
  나는 오늘 아침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아서,
  아내가 나갔기 때문에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놀았다.
  비계 덩어리인 구석기 시대 어머니상에 푸욱 파묻혀서
  괘종시계가 내 여생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너무 많이 남아도는 나의 시간들이 누에 똥처럼 떨어졌지만
  나는 수락했다. 이것도 삶이며
  이제는 그것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걸.
  사람이 喜劇이 되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일이 있을까마는
  그러므로 무위는 내가 이 나머지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格이랄까,
  사람이 만화가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비록 사나이 나이 사십 넘어서 "내가 헛, 살았다"는 깨달음이
  아무리 비참하고 수치스럽다 할지라도, 격조 있게,
  이 삶을 되물릴 길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이것 인정하기 조금은 힘들지만
  세상에 조금이라도 복수심을 갖고 있는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천함보다야
  無爲徒食輩가 낫지 않겠는가! 나는 소파에 앉아서 하루종일,
  격조 있게, 놀았다.
  탄식하는 시계가 분침과 시침을 벌려
  역광을 받는 공작새처럼 화사한 오후를 만들고,
  내가 손대지 않은 無垢한 시간을 뜯어먹은 누에가
  다른 종류의 생을 예비하는 동안
  수족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얼굴에
  橫으로 도열한 수마트라 두 마리, 열대어 화석처럼 박혀들어왔을 때
  나는 내가 담겨 있는 空氣族館을 느꼈다.
  거기서 나는 고기처럼 또 하품을 했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前해군참모총장이 검찰청 앞에서
  검은 라이방을 쓰고 사진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는 거디었다.
 
  내가 "오우 소파, 마마이야!" 외치면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아내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했다.
  슈퍼마켓에 들렀는지 식료품 봉다리를 들고.)
  나는 오늘, 밥 먹고 TV 보고 잤다.
  자기 전에 아내가 이 닦고 자라고 해서 이빨도 닦았다.
  화장실 앞에서 前해군참모총장처럼 포즈를 취했더니
  아내가 쓸쓸하게 웃었다는 것도 적어야겠다.
  아 참, 오늘 날씨는 대체로 맑았고 서울과 중부 지방 낮 28도였다.
  내가 안방 문을 열면 무대, 불이 꺼진다.
  어둠 속에서 한 사나이가 외친다; "지금, 옥수수밭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 들리지?" 저 15층 아래 강;
  밤에는 강이 긴 비닐띠처럼 스스로 광채를 낸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가련한 空氣族들이여, 안녕, 빠이빠이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인 2007-01-15 20:29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우울한 시대 이상 새롭게 쓰기. 학부 때 주위에 황지우-주의자 들이 많았었는데, 그 황지우-주의자들은 다 무얼하고 있을까. ^^;

로쟈 2007-01-15 22:05   좋아요 0 | URL
황지우-주의자들이란 소파족들인가요?..

yoonta 2007-01-16 01:14   좋아요 0 | URL
강신준씨가 독어 번역본을 새로 내시나보군요..반가운 소식이네요. 김수행씨의 번역본은 북한본을 많이 참조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강교수의 새로나오는 번역본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재미나겠네요. ^^

로쟈 2007-01-16 08:44   좋아요 0 | URL
나중에 꼭 비교한 글을 올려주시길.^^

나비80 2007-01-16 14:35   좋아요 0 | URL
'읽지도 않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양장본 3권' 이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그런책 수다하거든요.^^ 디스플레이 용이랄까.
김수행 역 <자본론>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존재하는 듯 합니다. 지금 서점이나 대학가에 깔린게 거의 김수행 역이라 그렇지 정치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번역이 좀 조야한 수준이라네요. 저도 오역과 패역에 대한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교수님들이 그럴때마다 '그럼 당신이 해보시지'라는 말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오긴 합니다. 솔직히 조금 편안한 문장으로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것도 아니죠. 그래도 저 오렌지 빛과 고등학교 수학 정석 같은 표지는 여전하네요. 저는 사실 시초축적(본원적 축적) 부분만 심하게 발췌독을 해 놓은 형편이라 <자본론> 전반에 대해 가타부타 할 입장이 못 됩니다.

로쟈 2007-01-16 14:43   좋아요 0 | URL
사정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로선 말씀대로 '수학 정석' 같은, 혹은 고시서적 같은 권위적인 모양새가 별로 마음에 안 들거든요(게다가 처음엔 한자 투성이었죠). 그리고 중요한 책이면, 소프트카바에 문고본으로도 나와야 정상 아닌가라는 게 제 지론입니다...

천재뮤지션 2007-01-22 09:55   좋아요 0 | URL
손제민 기자. 제 고등학교 선배인데 이렇게 멋진 기사를 선물해주시다니!
그나저나 빨리 강신준씨 새 번역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로쟈님께 질문 하나만.
(사실 누군지도 모르고 항상 눈팅만 하다가 처음 남깁니다)

자본 번역본이 국내에 한 3개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그 중 제일 볼 만한 번역본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로쟈 2007-01-22 11:16   좋아요 0 | URL
그건 제 판단을 넘어서는 질문입니다.^^; 제가 강신준 번역은 안 갖고 있고, 본문에 적은 대로 김수행본도 일부만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독어본과 대조해볼 능력이 안됩니다. 아마 다른 분들이 지적해놓은 게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오 마이 갓!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설마 이런 뒷북성 제목을 내가 달았을 리는 없다. 오마이뉴스의 뒷북성 기사의 제목이 그럴 뿐이다(알라딘에서 맨날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입증해준다!). '씨네마떼크 탐방'을 다루는 기사가 연재되는 듯한데, 두번째 꼭지가 지난번에 소개했던 아스트라 테일러 감독의 <지젝!>이다. 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관련기사'로 옮겨놓는다. 나와 무관하지도 않기에... 

 

오마이뉴스(07. 01. 15)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라캉도 어려운데 지젝에게까지 관심이 생겨 자료를 찾다가 뜻밖에도 '오!재미동'에서 귀한 다큐멘터리 자료를 한 편 만났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겸 문화연구자 슬아보예(*슬라보예) 지젝을 다룬 다큐멘터리 물이다. 슬아보예(*기자분이 아직 감이 없나 보다) 지젝은 현존하는 지식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국내에도 그의 다작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람이지만, 다큐멘터리로 그를 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2006년 가을 종로의 '스펀지'에서 열렸던 서울영화제에서 지젝에 관한 영화가 한 편 상영되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알게는 되었지만 보지는 못했다. 그 영화가 이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반가웠다(*단순한 사실도 확인하지 않다니. 서울영화제에서 상영된 건 <지젝의 기묘한 영화강의>였다). 국내에는 출시가 물론, 되지 않았고 'ZEITGEIST FILMS'라는 곳이 판권을 가진 DVD로 물건너 온 것이였다. '오!재미동'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은 로쟈라는 분이 자막을 입혔고, 지난 12월에는 상영회와 강의도 있었다고 한다(*어떻게 '-했다고 한다'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DVD케이스의 표지에 지젝(Slavoj Zizek)은 "문화이론의 엘비스(The Elvis of cultural theory)"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젝은 인문학 동네에서는 남자 마돈나 취급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하고, "동시대의 정치적 무관심에서부터 이웃집 닭한테 잡아먹힐까 봐 걱정을 하는 남자에 관한 조크에 이르기까지" 주제로 삼아 끊임없이 주절대는 수다쟁이 철학자이기도 하다(*이건 나의 서평 멘트를 옮겨온 것이다).

그런 그는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철학자'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 보면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엄밀히 말하면, 쉘링)로부터 정신적 세례를 받은 진정한 좌파철학자이다. 전 지구적 세계화문제부터 모국인 슬로베니아의 정치적 현실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고민하고 글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한편, 자신을 스스로 스탈리니스트라고 주장을 하는 공산주의자이기도 하다. 동구에서는 공산당 정권의 몰락 이후 좌파들이 서유럽보다도 더 비난과 공격을 당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현실 좌파로서의 선택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1990년대에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는데, 그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는 그의 사상이 현재보다는 오른쪽이었고 다원주의사회 지향적이었다고 한다.

<지젝>에 나오는 자료화면을 보면, 그의 정당은 자유민주당(Liberty Democratic Party)이다. 하지만, 이 당명을 우리식으로 '자민당' 정도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역사적, 현실정치적 문맥에 따라서 똑같은 '자유'와 '민주'도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단히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었고, 1989년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으로 영어권 학계와 이론계에 등장하여 불과 15년이 지난 현재 당당히 우리 시대의 사상가 반열에까지 올라있다. 현재는 구체적 정치보다는 출판과 담론의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젝!>은 사실 그의 이론세계를 다 알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그의 여러 강연들과 인터뷰를 보면서 때론 오해를 했을 법한 그의 퍼스낼리티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있었고, 그가 사실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가령, 라캉 정신분석학과 쉘링철학, 마르크스레닌주의 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특히 보스턴에서의 강연을 보면 그가 여러 이론상의 적들, 특히 페미니스트의 공격에도 쟈크 라캉의 철학을 고수하고, 그가 일종의 흥행수단으로서 택한 자신의 강의와 저술방식에 대한 변명을 듣게 되어서 이채롭기도 하다.

혹시 최근 인문학, 철학, 문화연구 동향에 관심이 있어서 지젝의 세계에 대해서 한 번 공부해 보고 싶다면, 먼저 아스트라 테일러의 71분짜리 다큐멘터리 <지젝!>을 한 번 시청하고, 지젝 입문서로 엘피출판사에서 간행한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으면 그의 여러 저서들을 직접 독파해 보라! 현대사회와 정치현실, 대중문화와 서구의 주요정치·문화담론에 대한 나름대로 식견이 생기게 될 것이다.(심정곤 기자) 

07. 01. 15.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소경 2007-01-1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식입니다. 다만 저로써는 그 상연회와 강의를 듣지 못해 아쉬움점이 뒷북을 칩니다.

로쟈 2007-01-1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들으셨다고 하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강의는 아주 훌륭했답니다...

열매 2007-01-16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지젝의 책에서 무엇을 읽었다는 이야기는 한줄도 안 나오는군요. 기사로 본다면 고작 영화 한편과 토니 마이어스의 책 한권 정도 읽고 이런 하나마나한 '기괴한' 글을 쓴 꼴인데, 그 용기에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1년 여 영어본으로 라깡을 읽어왔는데, 과연 한국에서 라깡을 이야기한 사람 중에 라깡의 에끄리나 세미나를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이 들더군요.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글을 그렇게 잘 정리해서 외우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깡의 세미나들은 그 당시 세미나를 함께 했거나, 함께 했던 사람들을 '모시고' 전수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11월에 동국대에서 있었던 라깡학회에 '구경'갔을 때 느꼈던 것은, 라깡을 원전으로 읽어내는 '일진'학자들과, 라깡'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간의 미묘한 위계 질서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철학과에서 풍기는 이런 미묘한 뉘앙스, 혹 아실까 싶습니다.
여하튼 이런 어이없는 기사를 북리뷰에서 자주 보다 보니 한국에는 언제쯤이나 제대로 된 북리뷰를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안쓰러움'이 듭니다.

로쟈 2007-01-1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를 읽으면서 저도 반가움보다는 착오적인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거기에 기시감!). 원래 'news'를 다루는 게 언론이 아닌가요. 아니면 심층분석/이든가. 오마이뉴스야 '시민기자'들의 기사로 채워지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편, 지젝도 영화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요즘 읽고 있는 스타브라카키스도 그런 얘기를 하는데, 비의적이고 수사적인 라캉의 담론이나 제스처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다 사기입니다...

나비80 2007-01-1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의는 아주 훌륭했나보군요ㅋㅋ^^ 저도 전형적으로 저런식으로 기자질을 해먹다가(?) 그 비루함을 못 견뎌 뛰쳐나와버렸죠. 기사를 쓸 때 어려운 주제는 감당이 잘 안되곤 해 여러 곁말을 에둘르거나 중대한 사안일지라도 실체 확인을 게을리 해 개박살이 나곤 했답니다. 예민한 독자들은 엄연히 존재하는데 말입니다. 그만두길 백 번이고 잘했다 생각합니다. 본격적, 전면적으로 구라를 칠 수 있는 일이 제게는 맞겠더라구요.^^

로쟈 2007-01-16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를 하셨군요.^^ '전면적 구라'는 언제쯤 나오는지요?(이건 소이부답이신가요?)^^

오늘사람 2007-02-18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를 쓴 심정곤이라고 합니다.
먼저 지젝에 조예가 깊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현재 라캉에 관한 기사도 썼는데 그것도 욕먹겠군요.
제 의도는 고지곧대로 소개입니다.
씨네마떼크,지젝,라캉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도 있지만
저처럼 조금만 아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언짢아 마시고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로쟈 2007-02-1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 읽기>에 관한 기사도 읽어봤습니다.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기사를 쓰신다는 것에 저는 이의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기사라면 '팩트'를 확인하시고 쓰셔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에크리'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아직 영문으로도 완역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는 내용은 어떤 소스에 근거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브루스 핑크의 완역본이 작년에 나와 있습니다. 기사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사람 2007-02-1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군요.

브루스 핑크 완역본은 어디선가 들은 가억이 나기는 했는데, <라캉읽기> 책내에 언급된 내용을 기준으로 기사작성했습니다. 시차가 있나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