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포퍼 논쟁>(생각의나무, 2007)이란 책이 출간됐다. 제목이나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닌데,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란 부제가 눈길을 끈다. 재작년에 출간된 원서의 표지에는 그런 부제가 붙어 있지 않으므로 국역본에 새로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도발적'이라니까 흥미는 끈다. 분량도 230여쪽이어서 부담없고(원서는 143쪽이다).

소개에 따르면, "1965년 7월, <과학혁명의 구조>로 명성을 떨친 토머스 쿤과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비판적 지성의 거장으로 주목받던 칼 포퍼가 만나 과학의 본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 한 번의 격돌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공적 토론의 중심 주제로 군림해왔으며, 거기서 쿤의 다원론적 시각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지은이 스티브 풀러는 논쟁의 주역들이 풀어놓은 이야기의 맥락이 완전히 오해되었다고 평가하며 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과 열광 속에 대중의 집단적인 판단 착오가 녹아있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대립한 쟁점은 과학철학뿐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풀러에 따르면 쿤은 과학의 개방성을 옹호하기는커녕 냉전의 압력에 맞닥뜨려 과학자들의 자율권을 지켜내려 애쓴 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퍼는 '열린 사회'를 옹호했던 그의 철학적 입장에 걸맞게 비판적 합리성의 기수로서의 과학을 옹호하며 나아갔다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MIT의 '쿤 아카이브'를 연구 고찰한 풀러는 쿤의 과학적 변동 이론에서 철학적 감시를 찾아볼 수 없음을 피력하며, 이를 바탕으로 과학자 사회에 지나치게 부여된 독자적 권한을 되찾아오고자 노력한다. 세기의 대결에 대한 이 급진적 평가서 속에는 쿤/포퍼 논쟁의 맥락을 짚어주는 섬세하고도 정교한 지침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책은 과학철학사의 이 세기의 논쟁을 일종의 추리소설로 재독해하는 재미를 줄 듯하다. 게다가 마지막 장의 제목은 '토머스 쿤은 미국의 하이데거인가?'이다. 별로 웃을 일이 없던 차에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주제이고 구성이다.

 

 

 

 

사실 이 주제/논쟁과 관련하여 참조할 만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이전에 소개한 바도 있고). 먼저, <현대과학철학 논쟁>(아르케, 2002)은 이 논쟁의 '원문'을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스티브 플러가 참조하고 있는 건 '쿤 아카이브'이며 이러한 공식적인 논쟁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탐색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제이북스, 2002)은 쿤의 과학철학과 그 사회학에 관한 가장 읽기 쉬운 소개서이다. 이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제일 먼저 손에 들 만하다.

그리고 평전 <토머스 쿤>(사이언스북스, 2005). 소개에 따르면 "토머스 쿤 위에 두껍께 쌓인 오해의 먼지를 날려 버리는 책. 저자들은 토머스 쿤의 저술들을 조심스럽게 독해하여,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과학사와 과학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그리고 포퍼의 과학관/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그의 에세이집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부글북스, 2006). "눈부신 과학발전, 탐욕과 독선으로 빚어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등 21세기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산 지은이가 인생 마지막 25년 동안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간추"린 책이다.

 

 

 

 

쿤과 포퍼와 주요 저작들은 물론 번역/소개돼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 <과학으로 생각한다>(동아시아, 2006)는 한겨레에 연재됐던 글들을 모은 것인데, '과학 속 사상, 사상 속 과학'에 해당하는 넓은 범위를 다룬다. "뉴턴에서부터 인공지능까지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자들의 사상을 다양한 학문 분야로 확장, 통괄하면서 펼치는 유쾌한 지적 파노라마. 과학자들이 세계를 보고 생각했던 다양한 방식을 인문학적, 사회적으로 되짚으며, 일상에서 어떻게 위대한 과학적 아이디어가 출현했는지, 그 과학적 사상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다"루는 책으로 당연히 쿤과 포퍼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으며 이 논쟁의 배경이 될 만한 이야기거리들을 읽어볼 수 있다...  

07.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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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18 16:52   좋아요 0 | URL
로쟈님 페이퍼만 보면, 관심만 있고, 손 못대고 있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_- 관심과 욕심만 많아가지고.

로쟈 2007-01-18 16:54   좋아요 0 | URL
저는 손만 댑니다.^^

나비80 2007-01-18 18:37   좋아요 0 | URL
인기 많은 학자들이라 논술시장 들썩이겠네요. 요즘은 그 쪽 업계가 최신경향을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랍니다.^^

로쟈 2007-01-18 18:40   좋아요 0 | URL
<과학으로 생각한다> 말씀이시군요. 생각의 폭은 넓혀주는 교양서일 텐데, 구체적으로 논술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학생들은 생각 이전에 문장도 안되는 형편이어서...

나비80 2007-01-18 19:00   좋아요 0 | URL
그뿐 아니라 '토머스 쿤'이나 '칼 포퍼'란 학자 자체가 워낙 대중적(?)으로도 알려져 있어 깊이 있게 읽히기 보다 다이제스트 식으로 핵심정리되는 것을 줄 곧 보아 와서요. '문장도 안되는 학생들'에게 가라타니 고진이라든지 지젝을 주입하고 어떤 논술문을 기대하는 건지... 사실 대학도 별반 다를 바 없죠. 학부생들 레포트 제대로 자료 정독하고 써냅니까. Ctrl+c, Ctrl+v면 다 되는 세상이니까요.

로쟈 2007-01-18 19:06   좋아요 0 | URL
"데카르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머릿속에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철학을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라고 합니다."이게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학년을 위한 '철학동화'에 들어 있는 '해설'입니다. 이 '똑똑한' 어린이들이 자라면 좀 달라질까요?..
 

이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놓은 책들을 한번씩 점검하고 있는데,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도 그 중 한권이다. 이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지만 이번에 옮겨놓은 건 오마이뉴스의 리뷰이고 필자는 우연찮게도 정민호 기자이다. 며칠전 <금지를 금지하라>에 이어서 연이어 정기자의 글을 옮겨놓는 셈이 된다(그가 밤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는다는 게 허언은 아니겠다). 책상맡에 책이 놓여 있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다 보니 나는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내주쯤에나 관심있는 장들을 좀 훑어볼 참이다. 마음가짐을 다잡는 차원에서 리뷰도 다시 읽어본다.  

오마이뉴스(07. 01. 02) 미국을 향한 미국 역사학자의 냉철한 비판!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가 있다. 바로 자유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자유의 나라임을 강조한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유의 나라라고 말이다. 동시에 부정하고 있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는, 미국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다. 그 의미는 언제나 변했을 뿐더러, 또 미국을 좋아한다고 해서, 미국에 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중심에 있는 자들만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아무리 자유의 나라임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누구나 그것을 누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소개되는 에릭 포너는 우리에게 낯선 학자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인정받은 실력파 역사학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이란 매카시즘이 풍미하던 그때, 소위 '빨갱이' 집안의 자식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색안경 낀 사람들은 그를 미국을 망치는 인물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주요 역사학 단체의 회장을 지내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편견을 뛰어넘는 실력이 있다는 말일 게다.

그 실력이란, 사각지대를 볼 줄 아는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에릭 포너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공산당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흑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 흑인의 인권에 관심을 갖던 이가 누가 있었겠는가. 이것은 성장한 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남들과 달리,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다.

에릭 포너가 이야기 하는 진정한 '자유'
앞에서 언급된 '자유'로 생각해보자. 미국이 자유롭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미국인들이 스스로 자유롭다는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자유와 반대되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즉 '자유의 땅, 미덕의 현장, 피압박자의 피난처'라는 주장을 펼치게 하려면 상대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바깥 세계를 과장해서 부정적으로 그려야 한다. 동시에 스스로 미국을 특별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미국의 독립운동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독립 전쟁을 "인류 역사에서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사건"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미국과 나머지 인류의 차이를 부각"되는 계기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것인가? 옳든 그르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이 퍼질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과연 자유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에릭 포너의 답이다. 그는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자유가 무엇인지 강의하려고만 들지 말고 바깥 세계에도 뒤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유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자족적인 독백에 그치지 말고, 바깥세계와 주고받는 대화가 돼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요즘의 미국의 행동을 본다면, 특히 권력의 나팔수가 된 이들의 말이 무성할 때에, 이 말의 의미는 그렇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미국엔 왜 사회주의가 없을까?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 외에도 진지하게 탐구할 것들을 던져주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날 때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이뤄졌다고 알려진 '화해'는 사실 백인들끼리만 했다는 것, 또 흑인들을 차별하면서 모순적으로 자유를 주장하는 태도를 탐구하는 것 등이다. 물론 이제껏 흑인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은 많았다. 그렇기에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뭐 그리 특별할까 싶지만, 다른 의미가 보이고 있다. 그것은 날카롭다는 것이다.

흑인이 차별받았으며, 또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은 우리만 해도 자주 듣고 있다. 그럼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또한 그들을 이상하게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인식 속에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미국인이라고 믿는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 하지만 에릭 포너는 오랜 역사부터 거슬러 오면서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는 현존하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 착각이 어울릴 때, 이 의미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들이 자유에서 배제된 문제들은 지나간 역사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중요한 것은 흑인만 그런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이 아닌 모두가 흑인처럼 대우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말이다. 흑인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셈인데 이 책은 그것을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눈길을 끄는 것으로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는가?'하는 주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을까? 유럽만 하더라도 사회주의가 있다. 그들은 선거에 나서서 꽤나 큰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랬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미국은 그 단어와 거리가 멀다.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에릭 포너는 그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풀이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지금껏 떠올리던 미국과는 다른 모습이 보이는지라 몇 번 놀라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요즘 유행하는 역사책들과 달리 흥미진진한 주제를 다룬 것은 아니다. 흥미와는 거리가 먼, 오랫동안 생각해야 할 것들을 던져주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미국하면 떠올리던 이미지들, 특히 맹목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던 그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접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정민호 기자) 

07. 01. 18.

P.S.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란 주제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책은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란 부제를 가진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이다. 립셋의 논의들은 포너 자신도 참조하고 있는데, '미국 사회주의의 역사'에 관해서라면 권위자가 아닌가 한다. 예전에 관련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 작년에 나온 미국학 관련서들 가운데에서는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과 함께 나대로는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아두고 있다(한데 전자는 아직 구입을 못했다. 목돈이 나올 구멍을 알아봐야겠다).

참고로,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란 질문은 독일의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처음 던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사치와 자본주의>로 소개된 사회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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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1-18 16:28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 항상 감사합니다..언젠가는 읽어야지요.불끈 !!!
물론 제돈 주고 사서요..ㅎㅎ

드팀전 2007-01-18 17:10   좋아요 0 | URL
왜 없다고 했더라? 읽으면 잊어버리니 ^^ <미국예외주의>에서..대략...이민사회의 특수성이 계급 갈등을 민족갈등 형태로 바꾸었다는거,일찍부터 자리잡은 양당제도가 계급적 불만을 자체적으로 포섭했다는 것,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사회적 부가 형성되어서 중류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자본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제국주의적 팽창책을 쓰면서 내적 통일을 이루기 쉬웠다는 점 등등....또 몇가지 있었는데...루이스 매넌드<메타피지컬 클럽>이 관심이 가네요.책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보관함만 무거워지네요.핑핑..

로쟈 2007-01-18 17:17   좋아요 0 | URL
파비아나님/ 예, 제가 못 보태드립니다.^^
드팀전님/ 올려놓으신 리뷰 읽어봤습니다. 저보다 한참 부지런하신데요, 뭐...
 

기분도 날씨만큼이나 울적한 김에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올려둔다. 미겔 에르난데스(1910-1942)의 '비행'. 시집 <양파의 자장가>(솔출판사, 1995)에 실려 있다. 10년도 더 전에 좋아하던 시이긴 한데, 나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이 시를 중얼거리곤 했다. "쏠로 끼엔 아마 부엘라. 뻬로 끼엔 아마 딴또. 께 쎄아 꼬모 엘 빠하로 마쓰 레베 아 푸히띠보?" 스페인시는 낭송하기에도 좋고 듣기에도 경쾌하다. 무슨 뜻이냐고? 아래에 영역과 우리말 번역도 같이 옮겨놓았지만, "사랑하는 사람만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그토록 사랑하는가?"

Vuelo
de Miguel Hernandez

Sólo quien ama vuela. Pero ¿quién ama tanto
que sea como el pájaro más leve y fugitivo?
Hundiendo va este odio reinante todo cuanto
quisiera remontarse directamente vivo.

Amar... Pero ¿quién ama? Volar... Pero ¿quién vuela?
Conquistaré el azul ávido de plumaje,
pero el amor, abajo siempre, se desconsuela
de no encontrar las alas que da cierto coraje.

Un ser ardiente, claro de deseos, alado,
quiso ascender, tener la libertad por nido.
Quiso olvidar que el hombre se aleja encadenado.
Donde faltaban plumas puso valor y olvido.

Iba tan alto a veces, que le resplandecía
sobre la piel el cielo, bajo la piel el ave.
Ser que te confundiste con una alondra un día,
te desplomaste otros como el granizo grave.

Ya sabes que las vidas de los demás son losas
con que tapiarte: cárceles con que tragar la tuya.
Pasa, vida, entre cuerpos, entre rejas hermosas.
A través de las rejas, libre la sangre afluya.

Triste instrumento alegre de vestir: apremiante
tubo de apetecer y respirar el fuego.
Espada devorada por el uso constante.
Cuerpo en cuyo horizonte cerrado me despliego.

No volarás. No puedes volar, cuerpo que vagas
por estas galerías donde el aire es mi nudo.
Por más que te debatas en ascender, naufragas.
No clamarás. El campo sigue desierto y mudo.

Los brazos no aletean. Son acaso una cola
que el corazón quisiera lanzar al firmamento.
La sangre se entristece de batirse sola.
Los ojos vuelven tristes de mal conocimiento.

Cada ciudad, dormida, despierta loca, exhala
un silencio de cárcel, de sueño que arde y llueve
como un élitro ronco de no poder ser ala.
El hombre yace. El cielo se eleva. El aire mueve. 
 


Flight

(CXXXV: From ‘Cancionero Y Romancero De Ausencias’)

 

Only he who loves, flies. But who loves enough

to be like the slightest and most fugitive bird?

It goes eastwards sinking, commanding hatred, all that

might have wanted to rise again, direct and alive.


To love... But who loves? To fly... But who flies?

I will conquer the blue, eager for plumage,

but love, always beneath, is saddened

at not finding the wings that sure courage gives.


An ardent being, clear of desires, winged,

wanted to ascend, to have freedom in which to nest.

He wanted to forget that men move away in chains.

Where they lacked feathers put valour and oblivion.


Sometimes he flew so high, that the sky shone

over his skin, under his skin, the bird.

Being, you who were once confused with a lark,

others, like weights of hail, brought you down.


You know already the lives of the rest are flagstones

to cover you: prisons to swallow what’s yours.

It passes, life, among bodies, behind bars of beauty.

Through the bars, the blood flows free.


Sad instrument happy to be worn: urgent

tube for desiring and breathing fire.

Sword devoured by constant use.

Body in whose closed horizon I unfold.


You will not fly. You cannot fly, body that wanders

through these corridors where the air is my knot.

No matter how hard you struggle in ascending, you are wrecked.

You will not cry out. The field is what follows, deserted and mute.


The arms do not flutter. Perhaps they are tail-feathers

that the heart wanted to launch into the firmament.

The blood is saddened at fighting on alone.

The eyes turn saddened from knowledge of evil.


Each city, sleeping, waking crazy, exhales

the silence of prison, of sleep that burns and rains down,

like a hoarse insect having no power to take wing.

The man lies down. The sky lifts itself. The air moves. 

 

 

비행

사랑하는 사람만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그토록 사랑하는가?
가장 가볍고 날쌘 새처럼 될 만큼 사랑하는가?
곧바로 살아서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에 퍼진 이 증오가 가라앉아간다

사랑한다... 그렇지만 누가 사랑하는가?
난다..... 그렇지만 누가 나는가?
깃털에 목마른 푸르름을 나는 정복하리라
그러나, 확실한 용기 주는 날개가 없음을
사랑은 언제나 아래에서 슬퍼한다

불타는, 욕망으로 빛나는 날개 달린 존재는
오르고 싶어했다. 둥지에 자유를 갖고 싶어했다
사람이 줄줄이 멀어져감을 잊고 싶어했다.
깃털이 필요한 곳에 용기와 망각을 놓아주었다

이따금 너무 높이 날아
그 가죽 위로 하늘이, 아래로 새가 반짝이곤 했다
언젠가 네가 종달새와 혼동했던 존재
때로는 거친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던 존재.

타인들의 삶이 너를 가둘 무덤임을 너는 안다
너의 삶을 삼켜버릴 감옥임을 너는 안다
삶이여, 육체들 사이로 아름다운 철책들 사이로 지나가라
철책들을 통해, 마음껏 흘러들어라

즐겁게 치장하는 슬픈 기구
불을 탐내고 호흡하는 성급한 管
계속되는 사용으로 부서진 칼
육체, 그 세계 속에서 꼭 닫힌 채 내가 펼쳐쳐있는 육체

너는 날 수 없으리라, 너는 날 수 없다
나를 속박하는 대기의 회랑 사이로 방랑하는 육체여
네가 아무리 기를 쓰고 올라가도 너는 조난당하고 말리라
너는 외치지 못하리라. 평원은 계속해 황량하고 말이 없다

팔은 펄럭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가슴이 창공에 던지고픈 꼬리이리라
피는 홀로 몸부림침에 슬퍼진다.
눈은 불행한 인식으로 슬퍼진다

잠든, 깨어있는 미친 도시들은 저마다 감옥의 침묵을,
날개가 될 수 없는 거친 초시류의 날개처럼 불타고
비 내리는 꿈의 침묵을 발산한다
사람이 누워있다 하늘이 올라간다 대기가 움직인다.

 

 

07. 01. 17.

 

P.S. 가끔은 이 시가 사랑에 인색한 내게 변명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나도 사랑을 해봐서 아는데, '날아갈 듯한' 기분까지는 비교적 쉽게 도달하지만, 정작 날아가는 건 정말 어렵다. 두 발이 땅에서 떼지지를 않는 것이다(해서 주변의 사랑타령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엄청난 분발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덧붙이는 약간의 변주. "아마르... 뻬로 끼엔 아마?"("사랑해, 아니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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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겔 에르난데스의 시와 명예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0-12 08:36 
    스페인 시인 미겔 에르난데스(1910-1942)에 관한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번역된 시집 <양파의 자장가>(솔, 1995)가 절판된 지 오래인데, 나는 거기 실린 '비행'이란 시를 꽤나 좋아했었다(예전에 만든 페이퍼를 링크로 걸어둔다). 기사 덕분에 상기하게 된 사실인데, 에르난데스는 프랑코 독재시절에 탄압을 받고 31살에 요절했다. 올해, 그리고 이번달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라 한다. 그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마음
 
 
나비80 2007-01-1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죠. 사랑.

아놔키스트 2007-01-1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았다가 가볍게 착륙할 수만 있다면야.. 근데 대개는 날다가 추락하지요.. 떨어지는 충격이 무서워서리... 암튼, 시 좋군요.. 퍼가도 될까요?(허락은 나중에 받고 일단 퍼갑니다.. 안 된다 하시면 다시 갖다 놓을게요..^^)

연우주 2007-01-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가도 될까요? 라고 말씀드리고 저는 퍼갈래요. ^^ 시도 멋지고 아래 로쟈님의 글도 멋지네요.

로쟈 2007-01-1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셔도 저는 축나지 않는답니다.^^

라로 2007-01-1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st fugitive bird....안타까와요,,,,공기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일까요~. 딸꾹

로쟈 2007-01-1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날쌘 새'로 번역돼 있는데, 그 정도로 재빠르지 않으면 중력에 덜미를 잡히는 탓이겠죠(그러고 보니 nabi님도 날아다니시는 종류네요). 공기가 부족하신가요?^^

로쟈 2007-01-1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폐활량이 적어서 공기를 덜 축내긴 합니다.^^

mini74 2020-01-1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같이 올려주신 샤갈그림이랑 어울리는 시네요 참 좋아요. 마티스의 이카루스 그림도 생각나네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있습니다 ~
 

지승호의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 등과 함께 이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내가 또 올려놓은 책은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2006)이다. 시집을 읽고 소감을 적는 게 '사회적 소임'이겠으나 이런저런 글독촉과 글쓰기 장애에 시달리는 즈음이라 그럴 만한 여유는 없고, 대신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사회적 의무감'에 올려놓는다. 몇 달 전에 스크랩해놓은 기사이다.  

컬쳐뉴스(06. 10. 09) "시는 직업이 아니라 시를 쓰는 상태"

권혁웅 시인으로부터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라는 찬사를 받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의 작가 김경주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시집 속 미모(?)의 시인을 보고 잠깐 ‘여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만나본 시인은 체구는 작지만 수염을 깍지 않은 까칠한 모습에 제대로 된 전라도 말을 쓰는 말 그대로 전라도 남자였다.  

그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기형(畸形)’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인터뷰 중에도 ‘기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많은데 시를 읽는 사람이 없고, 시를 읽는 사람은 없는데 서점에 시집은 넘쳐나고 이 모든 것이 ‘기형’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시의 기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이 세상의 모든 ‘기형’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 그림이 되지 않으면 /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 「외계(外界)」 중에서

시인은 이번 시집이 첫 시집이지만 지난 2003년 등단 후 2년 동안 발표한 시들은 일부러 싣지 않았다. 시인에게 ‘현재 진행 중’인 고민들을 담아내고 싶었던 까닭이다. “어느 정도 제 깜냥 안에서 고민이 끝난 것들은 저한테 설렘을 주지 못하더라고요. 첫 시집이니까 지금 고민이 와 있는 자리, 지금 고민을 담은 시들을 묶고 싶었어요. 그래야 앞으로의 시간도 견뎌줄 것 같더라고요.” 

시인은 등단 후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지방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시인에게 서울은 낯선 곳이었다. “서울은 정말 딴 세상 같았어요. 사투리가 굉장히 심해서 실어증을 1년 쯤 앓을 정도로 말을 하지 못했죠.” 그는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람을 사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인의 서울에 대한 이질감은 그의 시에 ‘외로움’과 ‘상실’이라는 감수성으로 드러난다.
 
“(…)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데 걸리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를 평생 등 뒤에서만 안고 잤다 제 정신으로 듣는 음악이란 없다(…) 밤이면 방을 밀고 우주로 간다” - 「우주로 날아가는 방 1」 중에서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 - 「내 워크맨 속 갠지스」

그리고 시인은 이러한 낯섦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고향에서는 ‘한강’이라는 것이 매우 낯선 것이어서 소재로 들어오기 힘들거든요. 하지만 서울에 오면 ‘한강’은 아주 단순하게 존재하죠. 이 두 개의 낯섦 사이에는 새로 생겨난 것과 사라지는 것이 있는데, 연민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연민’의 정서가 시적 화두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시인이 서른 한 살을 먹는 동안 시인의 서른 한 살까지의 삶이 지나가버렸다. 시인은 그렇게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며,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경계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벌써 학부만 네 번째 전전하고 있는 만학도(滿學徒)다. 법학과, 독문학과, 국문학과를 거쳐 지금은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그가 문학에 입문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세 번째 학교에서 국문학과를 다닐 때 군대를 가게 됐는데요. 해군이다 보니 무인도에서 군 생활을 했어요. 딸랑 6명이서 무인도에 있다보니 어찌나 무료하고 심심한지, 휴가 나왔을 때 제대할 때까지 읽을 심산으로 선배들이 제일 어렵고 알레고리화 되어있다고 한 시집 다섯 권을 들고 갔어요.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어렴풋하게 시에 대한 느낌이 오더라구요.”

그렇게 시에 좋은 느낌을 갖고 제대한 뒤 무작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3~4년 쓰다 보니 등단에 이르게 됐고, 지난해에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라는 말을 들으며 대산창작기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인이 ‘직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지속의 순간 바로 그 상태만이 그 이름의 정체성으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라는 호명은 그 지속의 상태에서만 불릴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김경주 시인은 글 쓰는 것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등단 후 삼성생명에서 카피라이터를 2년간 했었고, EBS에서 사회과학 탐구 부문 구성작가를 했었다. 또 대학 친구들과 독립영화사 ‘청춘’을 설립해 단편영화 작업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계간지 『풋』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시를 쓰는 순간에만 진실하면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특별히 시 쓰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다양한 장르에서 일을 하면서 시의 다양한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준 것 같아요. 지금 철학을 공부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저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쫓아서 할 겁니다.”

그는 자유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방랑자 같았다. 방랑자는 자유롭지만 늘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주위의 것인지 모른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시인은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그가 자유의 하늘에서 펼쳐 보일 퍼덕거림을 오래도록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위지혜 기자)  

07. 01. 17.

P.S. 내친 김에 국민일보의 신춘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국민일보(07. 01. 04) 시인 ‘김경주’… 시·희곡 넘나드는 문단 괴물

시인 김경주(31). 그는 지금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그가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를 냈을 때 문단 안팎에서 ‘헉’ 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서도 ‘미래파’라는 용어로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풍을 일별한 문학평론가 권혁웅씨가 붙인 시집 발문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

시인 김경주에게도 그런 격찬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터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미래파는 아니에요. 미래파라는 용어는 규정되고 단정된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론 자체가 낡은 것이죠. 모든 시인이 미래지향적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남 광주 태생. 전남대 법대,조선대 독문과,원광대 국문과를 거듭 중퇴한 이력의 소유자. (요즘 젊은 시인들의 구심체라할 황병승을 비롯해 최승철 송승환 이현승 윤석정 시인이 모두 원광대 국문과 문턱을 거쳐간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등단 4년차에 지금은 서강대 철학과 4학년.



졸업 시험을 치르고 있던 지난 연말에 홍익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속초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40여일에 걸쳐 시베리아를 횡단할 계획입니다. (지금쯤 그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해 얼어붙은 바이칼 위를 미끄러지고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시베리아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기회가 주어진다면 러시아의 옛 유배지들을 둘러보고 싶어요. 페테르부르크까지 갔다가 다시 이르쿠츠크를 경유해 고비 사막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고교 중퇴 이후 그의 생활은 자발적 유배의 연속이었다. 가출이 아니라 출가였다. 낮에는 학원 앞 분식집 서빙,새벽엔 신문배달,의대에 간 친구 소개로 시체 닦는 일도 해보았다. 부산 한 공원의 벤치에서 몇달간 노숙도 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남총련에 가입,화염병 만드는 법을 배우다가 입대한다.

“엄마 나 슈퍼 좀 다녀올라요”하고 입대한 해군에서 그는 바닷속 폭탄을 설치하는 심해잠수사였다. “처음 1년은 우리나라의 모든 섬을 군함타고 돌았고 나머지 1년은 무인도에서 경비를 섰지요. 모두 6명이었는데 그 중 한 놈은 자살,한 놈은 감전사했지요.” 죽을 사(死)자를 발음할 때 죽음에 저항이라도 하듯,그렇지 않아도 번뜩이는 그의 눈매가 더욱 매섭게 빛났다. 외로움의 극단에서 그의 시는 쏟아져 나왔다.

“인간의 수많은 움막을 싣고 지구는 우주속에 둥둥 날고 있다 그런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를 쓰는 일은 자신의 분홍을 밀랍하는 일이다 불씨가 제 정신을 떠돌며 떨고 있듯 북극의 냄새를 풍기며 입술을 떠나는 휘파람,가슴에 몇천 평을 더 가꿀 수도 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이,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외로워해 주는 것이다//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1’ 일부)

그가 살고 있는 움막을 보고 싶었다. 방이 어질러져 공개할 수 없다던 그가 천천히 앞장을 섰다. 아현동 산동네 초입에 그가 타고 다니는 ‘올드 바이크’가 서 있었다. 한참을 더 올라가 파란 쪽문을 열자 냉기 도는 옥탑방이 나왔다. 겨울엔 기름값 때문에 보일러 버튼에 가동금지 표시로 녹색 테이프를 붙여놓는다고 했다.

좁다란 2층 구조의 아래칸은 화장실과 간단한 조리시설,위칸은 침대와 책상이 놓인 침실이었고,그 옆으로 동서양 고금서책으로 꽉 들어찬 작은 서재가 있었다. 월세 20만원. 상경한 지 5년동안 흑석동 염리동을 전전하다 들어온 시인의 집은 부서진 난파선 같았다. 그 방에서 친구와 함께 ‘청춘’이라는 단편 영화도 찍었다. 그가 시집에 쓴 ‘시인의 말’에 “초대받은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없는 나의 창(窓). 사람들아,이것은 기형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시인은 차고 넘치는데 시집 읽는 이가 없으니 그게 기형이지요. 기형은 퇴화도 진화도 아니고 일그러진 그 자체가 아닙니까. 봉준호 감독이 영화 ‘괴물’에서 보여준 바로 그 괴물. 기형에 시적 언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어가 극단적인 것은 다양성의 폭력성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인데,상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형식 파괴가 나오지요. 시가 형식 파괴에 앞장서야 하고요.”

시놉시스,희곡 등에서 시적인 느낌을 주는 텍스트를 생산해야될 의무가 시인에게 있다는 그는 올해엔 자신의 희곡을 대학로 연극무대에 올릴 계획이라고. 시보다 먼저 희곡을 써왔다는 그는 “시인으로서 희곡판,연극판을 부활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심해잠수사 출신답게 그는 인생의 결락 부분을 채우기 위한 발화의 욕망에 뇌관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도 들이지 않은 눅눅하고 차가운 방에서 이 젊은 몽상가는 그 폭발력으로 날아갈 우주의 바깥을 꿈꾸고 있었다. 시와 함께 그 자신도 폭발하고 있었다.

“예컨대 비평가 김현(1942∼1990)이 지금도 살아있는 건 이성복 시인을 찾아낸 것에 있지요. 비평가들도 10년안에 작가를 못찾으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요즘 비평가들에게는 미학이 없어요. 작가나 시인을 출판사에 연결시키는 중개 역할에 머물고 있지요. 결국 비평가는 보이고 작가는 안보이게 되는 것이죠. 문학은 좋은데 문학 풍토는 싫더군요. 그래서 문학 밖에서 찾게 되지요.”

일찌감치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속에서 순교할 것이다”(‘드라이아이스’)라고 선언해버린 시인. 그의 시베리아행은 문학 밖에서 문학의 과녁을 찾는 순교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학보다는 삶이 먼저인 것이니 그가 허무에 함몰되지 않는 심리적 버팀목을 이번 여행길에서 찾게되길….(정철훈 전문기자)

경향신문(06. 09. 13) 김경주씨 첫 시집 출간…세상을 희롱하는 ‘외로운 울음’

외로움은 꽤 귀족적인 감정이다. 외로움은 세상과 삶이 수준미달로 여겨질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진짜 시인’은 오만불손하게 외로운 자들이다. 도무지 세상과 사이좋게 지내기가 힘들다. 세상과 관계를 맺을수록 상처받는다. 결국 자기만의 성(城)을 쌓는다. 세속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인이 예정된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지만, 시인의 눈으로 보자면 세상을 비웃거나 반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난해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란 말을 들었던 김경주씨(30)가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를 냈다. 제목부터 외로움을 표낸다. 세상이 그를 열외(列外)시킨 것과 그가 세상을 열외시킨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지구에서는 시인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의 별에서는 지구가 보인다”(‘비정성시’ 중). 세상과 ‘맞장’을 뜨는 패기야말로 시적 재능의 대표적 증거일 테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드라이아이스’ 중).

젊은 문인 권혁웅씨는 시집 뒤표지 ‘주례사’에서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라고 썼다.

‘기자의 감각을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 때문에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요한 시집’은 재능의 폭발이 아니라 한 시대의 영혼과 정신의 형식을 내장(內藏)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두번째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수록작 ‘우주로 날아가는 방 1’에 따르면 ‘시인=세상 아닌 것’이다. 그것들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 “외로워해주는 것”이다. 이때 외로움이란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자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몸의 음악과 생을 이해하는 데 시간과 사랑을 쏟는 일이 세상에서는 ‘불편한 삶’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인은 외롭다.

시인의 외로움은 방랑과 눈물로 육화된다. 둘의 공통점은 ‘떠는 일’이다. “방랑이란 (중략)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이고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상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중)이다. 쭈그려 울고 떨면서 한 점 열(熱)을 내보내는 게 그의 시(詩)인 셈이다.

그때 외로운 울음이란 자기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중). 사람을 짐승 상태로 냅두려는 미친 세상의 복수가 두렵지 않을까. “기껏해야 생은 자기 피를 어슬렁거리다 가는 것”(‘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중)이다. 그러므로 미친 세상은 시인을 얕보지 말아야 한다. “바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말라”(‘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 중).

시인은 자신에게 반말하는 세상의 ‘외계(外界)’에 산다. 세상은 시인을 포용하지 못하지만, 시인은 세상 밖에서 그 세상을 슬퍼해주면서 운다. 세상의 ‘자궁’에 대한 도저한 연민 탓이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중략)/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외계’ 부분).(김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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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1-17 15:46   좋아요 0 | URL
젊고 새로운 시인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러워 합니다...

나비80 2007-01-17 16:03   좋아요 0 | URL
저도 일전에 김경주 시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야기는 못 나눠보고 어깨넘어로 슬쩍슬쩍 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팽팽한 건강함이 살아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겠더라구요. 시집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07-01-17 16:13   좋아요 0 | URL
수유님/ 작년 가을에 첫시집이 나왔을 뿐입니다.^^
소이부답님/ 한 평론가가 '한국의 랭보'란 평을 하더군요.^^

마늘빵 2007-01-17 16:31   좋아요 0 | URL
김경주를 만났던 최측근으로부터 그의 사석에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밌군요.

sommer 2007-01-18 00:30   좋아요 0 | URL
이번 호 문예 중앙에서 '낭만주의자'로서의 시인의 모습이 빼곡하게 펼쳐져 있는 걸 흥미롭게 읽었었죠. 몇 장의 사진과 한 편의 자전적 산문...놀라운 건 그에게서 낭만주의가 기억/추도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로쟈 2007-01-18 00:45   좋아요 0 | URL
다들 아시는군요.^^ 문예중앙 겨울호 얘기는 저도 들었는데, 서점에 잘 없더군요. 도서관에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시인이야 본디 낭만주의가 제젹이죠. 소설과 다르게...

parksang 2007-01-18 11:03   좋아요 0 | URL
시 몇편을 찾아 읽었는데, 좋군요. 다만 이미지가 넘쳐나는데요. 나이 먹은 독자 입장에서 이런 시 읽기는 좀 뻑뻑하죠. 그리고 간혹 어줍잖은 잠언이 보이는 건, 흠입니다. 낯선 이름의 평론가의 ‘한국어로 씌어진 어쩌구’ 주례사보다는 경향신문 김중식 기자의 평가가 적절해보입니다. 그 역시 단 한권의 시집으로 이만한 주목을 받았던 시인이었더랬죠. 신진평론가의 '안목'보다는 김기자의 '감각'에 한표 던집니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121725451&code=960205
시인은 직업이라기보다 시를 쓰는 상태다, 라는 도전적인 발언은 좋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군요.

로쟈 2007-01-18 13:10   좋아요 0 | URL
저도 읽어봤는데, 말씀하신 김에 마저 옮겨놓지요. 김중식 기자도 좋은 시인이었는데, '시인'이 직업으로선 좀 대책이 없지요.^^

2007-01-19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9 00:47   좋아요 0 | URL
**님/ 김경주에게서 '아름다움'이 키워드인지는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미래파와 구별되는 건 맞구요, 구분의 근거에 대해서는 좋은 비평거리가 될 만하네요.^^

Runa 2007-01-19 11:13   좋아요 0 | URL
저도 작년에 가장 주목한 시인이었는데, 책표지에서 본 것만도 독특하군 했는데, 이력이 이토록 다채로운지 몰랐네요. 평범한 삶에서는 시가 나오기 힘든 모양입니다. 허나 들뢰즈를 보면 철학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믿음으로 갈랍니다.^^;;;
오랜만에 들어오니 좋은 읽을 거리들이 많네요. 몇 개 퍼갈게요.^^

로쟈 2007-01-19 11:18   좋아요 0 | URL
바쁘셨나 보군요.^^
 

마님과 따님이 '주몽'에 빠져 있는 동안 혼자 서재에서 내주부터의 독서 계획에 잠시 빠져본다. 하이데거의 <철학입문>(까치글방, 2006)을 구하러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하이데거(1889-1976)를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6)와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생각의 가닥을 일단 적어놓기로 한다.

 

 

 

 

사실 가닥이랄 것도 없는 게 지난주에 <예술의 비인간화>(고려대출판부, 2004)를 다시 구한 다음에(이전에 갖고 있던 미진사판은 중역본이었다) 한번 '진지하게' 읽어볼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하이데거의 <철학입문>을 손에 들면서 오르테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6)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이 오르테가의 책도 1929년에 마드리드대학교에서 행한 강의록이기에 시기적으로도 <철학입문>과는 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철학입문>은 1928-9년 겨울학기에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행한 강의록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형이상학입문>(문예출판사, 1994)도 실로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오르테가의 <형이상학 강의>(서광사, 2002)까지 같이 읽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해서 묶여진 게 하이데거-오르테가 커플이다.

자주 인용되는 말이지만, 알베르 카뮈로부터 "니체 이후 유럽 최고의 철학자이자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은 오르테가는 한편으로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정신적 스승'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고 한다. 그게 아마도 스페인쪽에서 많이 하는 얘기일 듯한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대중'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 바가 얼마간은 인정이 되는 모양이다(특별히 실존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걸로 돼 있다).   

In the 1920s and 1930s under the spell of Ortega y Gasset, Bergson, Spengler, Keyserling and others, a reaction arose among intellectuals against the democratic and social enlightenment. The philosopher's attempt to make the "revolt of the masses" responsible for the alienation and degradation of modern culture, prepared indirectly way for fascism. Politically Ortega favored a form of aristocracy - culture is maintained by an intellectual aristocracy because the revolutions of the masses threaten to destroy culture. From the late 1920s Ortega's thought showed the influence of Martin Heidegger, whose major work, Sein und Zeit (1927, Being and Time), was not transparently political but was later interpreted against his Nazi sympathies.

 

6년의 나이차이니까 그냥 동료나 선후배 정도의 관계일 텐데(오르테가는 독일 유학시절 주로 베를린대학과 마부르크대학에서 공부했고 하이데거 또한 마부르크대학에 몸 담았었다), 여하튼 철학자로서의 절대적 크기를 떠나서 각각 20세기 독일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철학자의 사유를 비교해가며 더듬어보는 일은 흥미로울 듯하다(단, '레져 클래스'에 속하지 않는 탓에 이런 독서계획을 여유 있게 실행할 만한 여건은 되지 않는다. 다만 준비하고 꿈꿀 따름이다).

철학에 대한 두 사람의 기본적인 입장을 맛보기로 읽어본다. 먼저 하이데거: "우리는 철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철학하지' 않아도 철학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 실존하는 한, 언제나 필연적으로 철학한다. 인간으로 거기 있다는 것은 철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은 철학할 수 없다. 그리고 신은 철학할 필요가 없다. 신이 철학을 했다면 그 신은 신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의 본질은 한 유한한 존재자의 유한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철학입문>, 15쪽)

이이서 오르테가: "과거와 비교해볼 때 현재는 상대적으로 명백하게 철학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 즉 사람들은 철학하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중적 분위기 속에서 철학적인 단어들이 날아오르면 곧바로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먼 길을 여행객이 돌아왔을 때 그의 여행담을 듣기 위해 그에게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철학자들에게로 모이고 있다.(...)  이와 같은 대중들의 정신적 변화와 일치하는 놀라운 사실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철학자는 지난 시기 철학자들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정신 상태로 철학을 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에 어떻게 우리가 지난 시기 철학자들을 지배했던 정신과는 완전히 다른 정신으로 철학에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철학이란 무엇인가>, 3쪽)

07. 01. 16.

P.S. 오르테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와 <형이상학 강의>는 모두 같은 역자가 스페인어에서 옮긴 것이다. 한데 <형이상학 강의>의 서두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옥의 티가 눈에 띄어 적어보면, "오르테가는 생적 이성을 인간 삶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로 제시한다."(10쪽)나 "이러한 도구적 이성으로의 생적 이성을 발견한 오르테가는..."(11쪽)이라고 할 때 '써'는 모두 '서'로 바뀌어야 한다. 처음엔 오타이겠거니 했는데, 반복되는 걸로 보아 역자나 편집자가 한국어에 좀 무신경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이러한 도구적 이성으로서의 생적 이성을 발견한 오르테가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폐기하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Cogito quia vivo).'라는 명제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정열적인 삶은 철학을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 삶 자체가 바로 철학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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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a 2007-01-1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독서 계획이시네요. 그래요, 나만의 독특한 의미 부여와 발견의 공부만이 긴 공부길을 지치지 않게 하겠지요. 오르테가는 철학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지의 철학이지요. 로쟈님에게 자극받아 저도 어제 받은 철학입문을 그런 식으로 독서해볼까요?^^ 더구나 전 지금 들뢰즈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강독회를 하고 있는 처지니, 더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사실 들뢰즈 책 읽으면서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볼까 하다가 바빠서 게을러서 또 잊고 있었거든요. 그런 주제에 이런 말 하긴 체면(?)이 안 서지만,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들뢰즈 만큼 철학하는 인간으로서의 깊은 통찰과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는 철학자가 있을까 하고 감탄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일독을 권합니다.

로쟈 2007-01-1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그렇게 재미있으셨나요? 한 10년쯤 전에 읽을 때 진도가 엄청 안 나가던 책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