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신문의 기사들을 미리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서 옮겨놓는다. 대략 '러시아'란 단어만 들어가면 기사를 클릭해보게 되는데, "이것이 러시아 '갈매기'"란 타이틀이 걸려 있으니까 눈이 커질 수밖에. 러시아 극단의 내한 공연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이전에 내한한 바 있는 저명한 러시아 연출가 카마 긴카스 초빙 공연이다(러시아에서 긴카스 극단의 공연을 두어 차례 관람한 적이 있다). 그가 연출을 맡고 국내 배우들이 연기를 맡은 분업 공연이다. 작품은 체홉의 <갈매기>. 안 그래도 <갈매기>에 관한 논문도 준비중이던 차에 공연소식을 접하니 반갑다. 공연은 3월에 예정돼 있으니 봄을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하긴 요즘 날씨가 이미 봄날씨와 구별이 가지 않지만). 성공적인 공연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일보(07.01. 24)  이것이 러시아 '갈매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 카마 긴카스(66)를 위해 LG아트센터가 또 몸을 잔뜩 웅크렸다. 1,100석 규모의 극장이 절반인 660석 극장으로 기꺼이 거듭난다. 특히 이번에 긴카스의 연출로 거듭날 작품은 국내에서도 자주 상연되는 <갈매기>여서, 우리 무대와 세계적인 무대는 어떻게 다른가를 실증할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세기말 모스크바 근교의 영지에 모인 한무리의 귀족ㆍ예술가 등이 어떻게 서서히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근에도 2006 서울공연예술제, 애플씨어터, 극단 김금지, 체홉 서거 100주년 기념, 안톤 체홉 서거 100주년 기념 등의 자리를 통해 공연됐을 만큼 한국인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 온 무대.

지난해 10월 하루 10시간씩 모두 6차례에 걸쳐 이뤄진 공개 오디션의 열기부터 관심을 모았다. 러시아 세프킨 연극 학교 등을 졸업한 배우 이항나(아르카지나 역)는 “절대 울지 않는 강한 여인은 불행과 어떻게 맞서는가를 보여야 한다”며 “유학 기간(1993~96년) 동안, 러시아 연극의 역사라는 긴카스의 작품을 숱하게 봐 온 사람으로서 대단한 영광”이라고 300대 1의 경쟁률을 넘어선 소감을 밝혔다.

긴카스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극 이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은 물론, 혁명적 무대 메커니즘의 선두 주자로서도 이름 높다. 이번에 선보일 무대는 지난 2002년에 비하면 약과다. 2002년 LG아트센터 기획 공연으로 올려졌던 긴카스의 첫 한국 무대 <검은 수사>에서는 5분의 1 남짓한 200석이었다. 진중한 삶의 의미가 간결하게 함축된 수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거의 극장 개조 수준.

20톤에 달하는 물이 무대에 넘나든다. 40~100㎝로 채워질 물은 극의 진행에 맞춰 드나들며 계절의 변화를 관객에게 체감시킨다. 배우들이 수영복 입고 물놀이하거나 낚시도 하는 등 진짜 물로 자아내는 무대의 실존감은 새로운 관극 체험을 제공한다. 물의 출입은 LG 극장이 보유한 물탱크와 펌프로 제어된다. 물이 소도구가 아니라, 무대를 구성하는 환경으로 구사된 것은 우리 공연 사상 최초의 일.

이번 무대는 뮤지컬 제작사로만 인식돼 온 오디뮤지컬컴퍼니가 펼치는 변신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표 신춘수 씨는 “상업적 뮤지컬을 하지만 모든 공연 예술의 근간은 연극”이라며 “드라마적 여백을 메워 창작 뮤지컬로 연계시켜 나가는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업을 ‘체홉의 가을 프로젝트’로 명명, 매년 오디션을 거쳐 <세 자매> <벚꽃 동산> 등 체홉의 대표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긴카스는 모스크바 연극예술학교, 헬싱키의 스웨덴 연극 아카데미의 교수로 후학을 키우고 있다. 기존 경계를 초탈한 그의 연출법은 세계 각지의 연극 현장을 두루 섭렵한 탈경계적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무대를 위해 지난 10월 1차 입국한 뒤, 무대 구성과 연출 등의 이유로 두 차례 더 왕래하는 등 두 번째 한국 무대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오승명 조민기 김태훈 등 출연. 3월 15~25일 화~금 오후 7시 30분, 수ㆍ토 3시 7시 30분, 일 2시 6시 30분. (02)2005-0114 (장병욱 기자)

07. 01. 23.

P.S. LG아트센터 홈피에 올라와 있는 작품소개는 이렇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체홉의 가을 프로젝트로 본격적인 연극 진출 선언. 그 첫번째 무대 갈매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그리스>, <돈키호테>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제작하며 국내 뮤지컬계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체홉의 가을’ 프로젝트로 본격적인 연극계 진출을 선언한다. ‘체홉의 가을’은 중장기적인 연극 프로젝트명으로, 매년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체홉의 대표작을 선보일 예정이며 그 첫 작품으로 갈매기가 선정되었다.

세계적인 러시아 연출가 까마 긴까스와 러시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선보이는 혁신적인 무대연출, 1,100석 규모의 공연장을 660석 규모로, 객석까지 무대로 활용하는 상상 그 이상의 공간. 지난 2002년, LG아트센터 기획공연이었던 <검은수사>를 통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바 있는 러시아의 국보급 연출가 까마 긴까스와 현재 러시아가 가장 주목하는 차세대 연출가 막심 깔신 (협력연출), 그리고 몽환적이며 판타스틱한 무대와 의상을 창조해내는 알렉세이 보챠코프가 의상 및 무대디자인을 맡아 환상적인 의상과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300여명이 넘게 지원한 공개 오디션, 매일 10시간씩 6차가 넘는 접전 끝에 최고의 배우들 선정 하루에 10시간씩 총 6차가 넘는 오디션을 통해 오승명, 조민기, 김태훈, 이항나 등 이미 연기력을 인정 받은 실력파 배우들과 이원재, 한송이 등 새로운 신예배우까지 골고루 갈매기에 함께 하게 되었다."

 

 

 

 

 

 

 

 

 

P.S.2. 긴카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몇몇 작품들도 레퍼토리로 갖고 있는데, 그가 공연한 체홉 목록에 <갈매기>도 포함돼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모스크바에서 봤던 공연은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각색한 작품이었다(모스크바통신에 감상평을 몇 작 적어놓은 기억이 있다). 스틸사진 몇 장을 옮겨놓는다.

Режиссер Кама Гинкас задумал поставить в Московском ТЮЗе трилогию по Чехову под названием "Жизнь прекрасна". "Дама с собачкой" - вторая часть трилогии

Это одна из самых необычных постановок нынешнего сезона. Актеры играют прямо в зрительном зале и периодически падают с балконов вниз головой

이번 <갈매기> 공연에서도 무대를 특이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소개돼 있지만 독특한 무대 구성과 활용은 긴카스의 전매특허라 할 만하다(그런데, 좌석이 660석으로 줄면 관람료는 그만큼 반비례하는 것인가?). 한국에서의 새로운 '실험'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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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차를 태워보내고 곧장 편의점에 가서 한겨레와 한국일보를 손에 들고 왔다. 최장집 교수와 작가 이문열의 인터뷰를 읽어보기 위해서였다(최장집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기사는 여기저기서 다루기에 있기에 페이퍼를 만들다가 그만두었다). 곁가지로 읽은 기사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건 한겨레에 실린 '세계의 창'. 중국의 언론인 저우창이가 '샤오바오' 부리는 중국과 장이머우를 꼬집고 있는 칼럼이다(덕분에 '샤오바오'란 중국어 단어를 익히게 되었다). 이번주 개봉예정작인 장이머우의 <황후화>에 대해선 부정적인 영화평들은 미리 접한 바 있고 또 최근에 인터넷에 떠도는 영화를 미리 보기도 했다(집중해서 보진 않았지만 집중해서 볼 만한 영화도 아니었다). 장이모의 '변신'이 그 자신의 탓만은 아니라는 필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이 칼럼과 영화 <황후화>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1. 22) 장이머우와 샤오바오

중국에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어 우쭐대는 것을 ‘샤오바오’(燒包)라고 한다. 중국에는 아직 가난한 사람이 수억 명에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벼락부자가 되어 샤오바오를 부린다.

2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반지’였다. 손가락마다 금반지를 끼고 다니며 유세를 부렸다.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닌 것을 한탄할 정도였다. 1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연회’로 바뀌었다. 식탁 가득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고 호사를 부렸다. 이 바람에 베이징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의 음식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이런 식당에서 기꺼이 바가지를 썼다. 이때는 거리의 건달들도 샤오바오를 부렸다. 이들은 홍콩 조폭영화에 나오는 깡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황금영’(상하이 폭력조직 흑사회의 두목)을 되뇌었다.

요즘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첩’이다. 뇌물로 돈을 번 탐관오리나 장사로 부자가 된 이들은 하나같이 첩을 거느린다. 한둘은 기본이고, 첩을 열이나 데리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이들 첩의 샤오바오는 ‘황금장신구’다. 몸에 주렁주렁 금붙이를 달고 다니며 위세를 떤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긴 아내들은 ‘황금통장’이라는 샤오바오를 부린다. 이들은 남편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 비상금을 저축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젠 정부도 샤오바오를 부린다. 정부의 샤오바오는 ‘황금성’이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관청을 자금성처럼 호화롭게 꾸민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건물을 장식하는 데 마음껏 호사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니 백성들도 샤오바오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백성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무덤’이다. 요즘 같은 호시절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무덤을 궁전처럼 호화롭게 지어주는 것이다.

과거엔 세상이 모두 샤오바오를 부려도 지식인들만은 예외였다. 이들은 청빈을 얘기하며 고고함을 지켰다. 샤오바오라는 말을 만들어 부자들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 뒤에 있는 여론도 상인이나 관리들의 샤오바오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인들마저 샤오바오에 빠졌고, 여론도 샤오바오를 문제삼지 않는 지경이 됐다.

요즘 지식인들의 샤오바오를 대표하는 게 장이머우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황금갑>(당나라 말기 황궁의 암투를 그린 영화. 한국에선 <황후화>로 번역)이다. 그는 원래 중국 계몽영화의 기수였다. 그의 영화 <국두> <귀주이야기> <홍등>에는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듬뿍 배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는 중국 상업영화의 선두에 서 있다. 그의 최근 작품, 특히 <황금갑>에선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두 개의 단어 ‘사치’와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 중국 영화에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금갑>과 동시에 개봉한 자장커 감독의 <삼협호인>은 중국 영화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과거 중국 계몽영화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협호인>은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황금갑>이 3억위안을 벌어들여 중국 영화사의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삼협호인>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이는 장이머우의 잘못이 아니다. 사치와 탐욕에 눈먼 중국 관객의 잘못이다. 장이머우가 샤오바오하게 된 것은 결국 중국 국민들이 샤오바오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잘살게 되면서 샤오바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땐 샤오바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장이머우가 총감독을 맡은 올림픽 개막식이 샤오바오의 거대한 의식이 될까 걱정스럽다.(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마이데일리(07. 01. 22) 장예모의 '황후화'는 대국민 반란 경고메시지!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이 만든 대작 ‘황후화’가 오는 25일 국내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국서 지난 17일을 기점으로 3억위안(약 360억원)의 흥행을 돌파, ‘영웅’의 2억5천만 위안의 권위를 무너뜨린 ‘황후화’는 아직도 줄지어 영화관을 찾는 중국관객들 탓에 오는 설까지 1998년 ‘타이타닉’이 세운 3억5천만위안의 최고기록 갱신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중국인들을 영화관에 불러모은 중국 블록버스터 중 최고의 대표작이 이제 국내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연출력뿐 아니라 세계적인 배우 공리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이야기구성이 탄탄하고 관객의 진지한 고민과 참여를 요구하는 영화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황후화'는 “관객의 분노를 고려하지 않는 장이머우와 중국의 자본”(왕즈민 베이징영화대학 교수)이라는 혹평 뿐 아니라 중국의 모 인터넷 논단에서는 “영화를 보고 구역질이 나왔다”면서 “어서 장이머우를 (중국을 대표하는) 베이징올림픽 총감독 직에서 끌어내리라”는 비난도 동반하고 있다.

450억원의 자본이 영화 곳곳에 투입돼 화려하고 웅장한 그림을 자신있게 그려냈지만,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장면과 호화로운 영상으로 넘실대는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중국관객들은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미학적 가치판단 기준을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최저점으로 떨어뜨렸다”(인훙 칭화대 교수)는 ‘황후화’는 관객을 조롱하는 허무맹랑한 상업영화가 아니고 형식만을 강조한 중국식 블록버스터의 극단으로 치닫지도 않았지만 웬지 관객들과의 욕망의 접합에서 실패하고 있다. 

이 영화는 중국의 강력한 전제부권질서가 자유가 없는 아랫세대들에게 초래한 참담한 비극을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군관출신으로 혁명을 통해 왕권을 쥔 저우룬파(주윤발)이며 그는 영화 속에서 무력과 권위의 상징이면서도 어지럽고 출로가 보이지 않는 황실의 모든 잘잘못의 근원지다.



장이머우는 이러한 저우룬파에게 억압을 당하는 황후(공리 분)와 세 아들들이 갖가지 이유 때문에 저우룬파를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데 가담하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이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되게 됨으로써 현실생활 속의 중국인들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우선 태자(류예 분)라는 인물은 왕을 두려워하고 왕에게 복종하는 전형적인 유형으로 기존의 권력질서에 순응하지만 나라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왕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반란에 끌려간다. 황후와는 불륜이고 여동생과 난륜을 저지르는 그는 왕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둘째(저우제룬 분)는 왕의 신뢰를 받아 차기왕권을 계승받는 것이 시간문제이지만 황후의 편에 서서 쿠데타에 가담해 왕권을 쟁취하려 드는 판단실수를 저지른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스레 권력을 인계받을 수 있으나 황후의 꼬임에 넘어가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장이머우는 그를 죽음으로 끝맺게함으로써 감정에 치우친 반란을 통한 정권교체 욕망을 강하게 경고한다.

셋째는 가장 사욕과 과오가 없는 중국의 신세대를 대표하는 듯 하면서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계승자로 급부상하지만 결국은 권력을 위해 왕도 형제도 모두 단숨에 부정해버릴 수 있는 자가 돼버린다. '너희들이 모두 잘못이 있는 이상 너희는 모두 죽어야한다'는 생각을 펼치는 셋째는 태자도 죽이고 왕도 죽여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하나 장이머우가 이미 그를 중국이 가장 경계해야하는 젊은이의 유형으로 정해놓은 뒤의 일이다.

장이머우는 결국 이렇게 세 아들이 유일한 출로로 주장하는 반란을 참담한 실패로 귀결지음으로써 왕이 비록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누구도 왕만한 능력을 지니지는 못했고 왕을 탓하며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실은 왕보다 더 저열한 자들이라는 것을 관객들이 깨닫게 만든다. 중국인들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한 장이머우는 다시 관객의 차오르는 욕망을 분쇄시켜버린다.

피비린내나는 쿠데타는 반란을 일으킨 이들의 처절한 죽음만을 불러오고 황실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시체더미의 참상 뒤로 남겨진 것은 권력을 지켜냄으로써 미쳐가는 왕과 모든 것을 잃어버려 미쳐버린 황후 뿐이다. 하지만 장이머우는 세 아들의 쿠데타가 왜 실패해야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따끔하게 일러주며 쿠데타를 경고하는 데 머무르지는 않는다.



반은 미쳐버린 황후의 마지막 비명과 절규를 통해 어찌할 수 없는 황실의 현실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장이머우는 관객들이 저우룬파가 그려낸 왕이란 인물을 혐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관객들이 황실의 미래를 그려내는 데 참여해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변화를 요구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욕망만이 아닌 보다 냉철한 현실 판단을 주문한다.(이용욱 특파원)

07. 01. 22.

P.S. 매일경제의 기사를 보충하면 이렇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비극작품 중 하나인 '뇌우'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이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1990년대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중국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러나 '영웅'(2003년)이나 '연인'(2004년) 등 최근 들어 방대한 스케일을 강조하는 액션에 탁월한 연출력을 자랑하며 또 다른 신화를 개척해 가고 있다.

장 감독은 "내 과거 영화들이 주로 예술성에 주목했다면 최근에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영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많은 중국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 쪽으로만 가고 있어 그 대항적 측면에서 선택한 장르"라고 강조했다. 예술영화 거장으로 잘 알려진 그가 상업성을 강조한 대목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객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예술성과 상업성, 이 둘을 모두 잡는 게 지금 중국 영화인들이 가장 고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첸카이거의 <무극>과 함께 장이머우의 <황후화>는 중국 5세대 영화가 이젠 정말로 '과거의 영화'가 되었음을 입증해준다. 혹은 5세대 영화의 예정된 '몰락'인가. CG와 황금갑으로 덧칠하여 호화롭기 그지 없는, 그러나 몰락 혹은 말로...

P.S.2. 중국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기획은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시리즈의 첫권으로 나온 <중국의 세기>(북폴리오, 2006)의 사진들을 출판사와의 협의하에 한겨레에서 게재하기로 한 것. "<중국의 세기>는 중국사가 거쳐 온 격동의 세기를 감동적인 사진으로 정리한 연대기다. 300여장의 사진 대부분은 중국 바깥에서 출판된 적이 없는 것들이다. 개인 소장품, 사진작가 등에게서 입수한 사진들로 중국의 감춰진 얼굴에 전에 없던 생생함을 부여한다. <한겨레>는 7차례에 나눠 사진들을 소개할 예정이다."라고 소개돼 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20세기'가 되겠다(http://www.hani.co.kr/arti/SERIES/110/185752.html). '러시아의 세기' 같은 책도 나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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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1-2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오늘 <수면의 과학>을 보다가 허우 샤오시엔의 Three Times의 예고를 보았습니다. 그저 저는 저 장이머우의 영화보다는 <쓰리 타임즈> 같은 영화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정말 뜬금없는 소릴 하고 갑니다.

로쟈 2007-01-2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지아장커의 영화도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도 사람들이 안 본다는 것이죠...

클리오 2007-01-2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책에 대해선데, 러시아, 아일랜드 등 5권이 나온다고 들었었는데, 언제 나올런지요... (아! 황후화는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영화 볼 처지는 못되었으니.. ^^)

로쟈 2007-01-2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나중에 '러시아 편'이나 소장하고 있어야겠습니다...

paviana 2007-01-2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후화는 보고는 싶어요.볼 수 는 있을지 모르겠지만..ㅎㅎ

로쟈 2007-01-2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평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역시 장예모!'란 평도 있으니까 참조하세요(특히 <영웅>과 <연인>을 재밌게 보셨다면)...

urblue 2007-01-2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 이후로 장이모에게 무슨 컴플렉스가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화려한 화면을 만들어내는데 집착하는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점에서 '샤오바오'에 빠졌다는 지적이 딱 맞는 말로 들리는군요.

로쟈 2007-01-2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귀주이야기>와 <황후화>의 두 공리만큼이나 두 사람의 장이머우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문학 위기' 관련 기사를 하나 더 옮겨놓는다. 직접적인 건 아니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것인데, 한국일보의 '지평선'란에 실린 'MIT!!!'가 그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감탄스럽다는 것인가, 는 읽어보면 안다.

한국일보(07. 01. 22) MIT!!!

“자, 여기서 두 일차 방정식을 하나의 매트릭스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자, 어떻게? 잘 하면 되지! (학생들 웃음). 잘 하려면, 이 쪽을 하나로 묶어서 이렇게….” 난해한 선형대수학 강의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길버트 스트랭 교수가 응용수학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쉽고 요령 있는 교수법 때문인 것 같다. 수학의 대가가 막상 한 자릿수 덧셈 뺄셈은 손가락 꼽아가며 더듬더듬 하는 것을 보니 우습다. 이렇게 교실 풍경을 그대로 담은 강의를 본다면 책으로만 보는 것보다 공부가 한결 재미있겠다.

■이 강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오픈 코스 웨어(OpenCourseWareㆍ http://ocw.mit.edu/OcwWeb/index.htm)라고 해서 인터넷에 올려 전세계 어디에 있든지 누구든지 로그인도 할 필요 없이 그냥 공짜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직 이런 동영상 강의는 26개 과목에 1,000시간 분량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더욱 늘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오디오나 텍스트만 올린 강의는 물리학에서부터 컴퓨터 엔지니어링, 철학,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모두 1,550건이다. 계속 업데이트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9, 20세기 유럽 제국주의’ 강좌의 경우 강의 개요와 독서 목록, 과제물 내용 등이 완벽하게 올라 있다. 전문가라면 이 정도만 보면 이 분야에서 새로운 조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2002년 외신에서 MIT가 OCW(강의 공개 프로그램)를 통해 인터넷에 강의 내용과 참고자료 등을 모두 올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정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매달 전세계에서 140만 명 정도가 접속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MIT가 아이디어와 인적 자원과 콘텐츠를 제공하고 기업과 개인이 수천 만 달러의 운영 기금을 기부한 OCW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지식을 공짜로 보급해 세상과 삶을 바꾸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익 모델은…? 그런 생각할 시간은 강의에 활용된 제3자의 지적 생산물을 공개하기 위해 일일이 본인의 동의를 얻는 데 보냈다. 가히 노벨상 감이다. 그래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아낌없이 주는 지성”으로, BBC 방송은 “교육 혁명”으로 평가했다. 되지도 않은 콘텐츠를 가지고 표절이니 인문학의 위기니 해 가며 돈에 눈이 먼 한국의 현실이 참으로 초라하다.(이광일 논설위원)

07.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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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2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1-22 20:21   좋아요 0 | URL
오 MIT 즐찾해야겠어요. ㅎㅎ 서양사에 관심이 생겨서, 그 쪽 요즘은 뭐 공부하나 보게요 ^^;

로쟈 2007-01-22 21:08   좋아요 0 | URL
**님/ 짧은 시론에서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하려다 보니까 압축/비약이 있는 건 맞습니다. 제가 공감하는 건 '위기' 담론의 허실입니다. 정말 가만히 앉아서 '위기'만 주워섬겨온 게 아닌가 하는...
기인님/ 여행준비에도 바쁘실 분을 더 바쁘게 해드렸네요.^^

마노아 2007-01-22 23:55   좋아요 0 | URL
정말 '혁명'이네요. 놀라워요.

나비80 2007-01-23 01:04   좋아요 0 | URL
어떤 '위기'에 대처하는 대학과 인문학자들의 자세가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 건 동감합니다. 결국 '돈을 달라'는 옹아리만 하는 부류와 좀 배고파도 여전히 변함없이 정신의 풍요만을 누리겠다는 부류만 있는 것 같아 가상의 '위기'가 실제의 위기로 발전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우연히 눈에 띈 기사 하나를 옮겨둔다.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연재하는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의 첫 꼭지 시인 이성복 편이다. 기자가 적은 연재의 취지는 이렇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철갑영웅이 된 지그프리드나 어떤 칼도 뚫을 수 없던 헤라클레스도 마음의 상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입는다. 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살아 있다는 것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이면서, 또 극약이다. 상처에 굴복하느냐, 상처를 딛고 이겨내느냐가 문제다. 특히 예술가들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다. 상처를 문학과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다. 상처를 인생의 전기로, 또 삶의 또 다른 목적으로 이룬 문학·예술인들. 그들의 삶과 예술 속의 상처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한다."  

매일신문(07. 01. 19)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 ① 시인 이성복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시 ‘그날’ 중에서).

시인 이성복은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라고 했다. 상처를 얘기하면서 시인 이성복(56)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에 쓴 절절한 시편의 성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하 ‘뒹구는 돌’)는 벌겋게 곪아 벌어진 상처를 손톱으로 후벼 파는 듯한 시어로 가득 차 있다. ‘내 구두발에 짓이겨',‘엄마, 내 가려운 몸을 구워 줘, 두려워',‘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테야',‘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처 생산력의 극점을 달리던 1980년. 그의 시집은 현실의 폭력성과 일그러진 가족사를 칼 끝 같은 분노로 헤집으며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이 지독한 아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평 반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시인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작은 전기히터만 힘겹게 찬 공기를 데워주고 있었다. 그는 “시는 상처받은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첫 시집 ‘뒹구는 돌’과 두 번째 ‘남해 금산’은 그 제사상의 헌주고 헌사이다. 그는 초기 시집의 상처 이미지는 “집단적 상처가 내면화된 것”일뿐, 나의 개인적 상처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쏟아내는 독설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 누이와 형에 대한 훼손된 감정은 뭐란 말인가.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민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떼를 써 서울로 유학을 갔다. 가난해도 궁핍할 정도는 아니었고, 부모님도 사려 깊고 온화했다. 시 속에 보이는 폭력 이미지와는 판이했다. 실제 아버지는 시 속의 인물처럼 증오의 대상이거나, 상처를 준 장본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폭력이 가족사로 구조화된 것”이라며 자신은 “사회를 투영하는 하나의 공명통일 뿐”이었다고 했다. 가족사로 사회의 폭력성을 은유했던 카프카적인 해석인 셈이다.

그의 시 때문에 아버지가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해 가을’에는 ‘아버지, 아버지···X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는 극단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뱉는 욕설로 들리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중간에 끊어 줘야 되는데... 아버지한테 굉장히 미안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그의 상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처야 많지. 겨울날 살얼음 낀 웅덩이의 물도, 추운 날 수족관 속 도다리도 상처라면 상처지”라고 입을 뗐다. 그는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것이 상처”라고 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불가피성, 원죄에 대한 상처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잉크 삼아 시 한 줄 쓰는 시인의 결벽증이 엿보이는 해석이다. 우리가 갓 핀 미나리를 보면 저걸 솎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마저 상처, “결국 생명을 해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상처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그는 “육식과 초식은 오십보백보”라며 “나는 광합성이 제일 좋아”라며 웃었다. 그가 본 상처의 근원은 보들레르가 말하듯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무감각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상처도 있지만, 스스로 미성숙해 일어나는 상처, 자기 상처보다 남에게 저지른 상처를 기억하는 자기정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상처투성이로 보이는 그의 시 세계는 원죄를 안고 사는 인간의 생명 사이클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버지(‘뒹구는 돌’)->어머니(‘남해 금산’)->당신(‘그 여름의 끝’)->가족(‘호랑가시나무의 기억’)->사물(‘아, 입이 없는 것들’)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라캉이 분석한 인간 성장과정과도 닮았다. 초기의 격동은 가라앉고, 성찰적 그리고 영성적 태도로 사물을 쓰다듬는다. 구조적 폭력에 대한 격한 반응도 ‘아, 입이 없는 것들’에선 아버지의 얼굴에 앉은 파리마저 연민의 대상이 된다.(‘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그럼에도 근원적 고통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있다. 문학적 창작의 고통이다. 문학은 시체공시실의 시체를 덮은 시트를 벗겨 보는 것이다. “누가 보고 싶겠어. 그러나 벗겨 볼 수밖에 없어. 내 눈알이 휙 돌아가더라도...”라고 했다. 상처는 감각의 깊이지, 상처의 중량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섰기 때문에 누구도 탐낼 수 없던 예수의 상처처럼, 그 상처를 기억하고, 껴안고, 곱씹는 것이 오히려 상처 치유의 지름길일 수 있다.”고 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받는다. ‘뒹구는 돌’에서 그는 “상처는 ‘살아 있음’의 동의어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 후기를 적었다.

논어 등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시인이 최근 종교적인 성찰에 기대는 것도 상처를 껴안고, 그래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과정은 아닐까. 아직 미발표된 시를 기자에게 음송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퍽 편안해 보였다. 손바닥만 하던 히터의 열기가 그제야 온 방을 가득 채웠다.(김중기 기자)        

07. 01. 22.

P.S. 이성복 시인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던 듯하다. 한 독서대학에서 강의도 한 적이 있다(한데, 강의자료를 읽을 만한 글로 만든다는 계획은 몇 년째 창고에서 자고 있다). 개인적인 안면은 없지만, 언젠가 문학강연을 들은 적은 있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많이 읽어둔 탓에 기사의 내용은 새로울 게 없지만, '시체공시실'에 대한 비유는 다행히 처음 본다. 시가 씌어지지 않는다고 고통을 토로하던 시인에겐 '잔혹한' 주문이 되겠지만, 그의 새 시집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상처와 물집 이후의 '시적 존재론'은 어디까지 이르게 되는지 시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참고로 시인의 '어머니론'을 덧붙여둔다. '어머니'는 이성복 시의 비밀 중 하나이다.  

주간동아(05. 02. 08) "한평생 자기희생의 삶 나에겐 언제나 완벽한 분”

시인 이성복 교수(계명대 문예창작과)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현은 “시집 전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유기체를 이루고 있으며, 치밀한 계획 하에 잘 계산되고 제어된 풍경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해 여름의 끝’ 등 지금도 꾸준하게 읽히는 그의 시집들은 장인이 빚은 작품처럼 완결성을 갖췄다. 이성복은 스스로를 ‘1등을 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완벽한 글이 아니라면 내 이름표를 달아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 있잖아요. 선두에 서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제가 그래요. 근데 다행인 건 밖으로 드러내며 딴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음성치질처럼 안으로 끙끙대는 편이란 거죠.(웃음) 이건 제게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 벽이기도 했어요. 이런 성격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거예요.”

이 교수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었다. 학교는 문턱조차 넘어본 적 없는 어머니는 열여덟 살 나이에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월급쟁이에게 시집왔다. 그러나 2남3녀를 낳아 기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하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 교수가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병을 앓아 집안이 흔들릴 정도였으나 어머니는 꿋꿋하게 외풍을 막아내며 자식들을 챙겼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다섯 남매를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에 서울 유학을 가겠다며 울며 보채는 이 교수를 말없이 지원해준 이도 어머니였다.

“5학년 때 서울 성신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가했어요. 서울 아이들의 새하얀 교복 칼라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에서 삯바느질하며 고생하는 어머니 생각해서라도 장원 못 하면 고향에 못 내려간다’는 ‘앵벌이’식 산문을 써서 억지로 장원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표정 변화 없이 ‘잘했다’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올해 여든아홉이 된 그의 어머니는 거동은 불편해도 기억력은 이 교수보다 정확할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하다. 어머니는 대학에 간 손녀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는 “연애 안 해보면 시집도 못 간다”는 말로 손녀딸을 꾹꾹 찔러 결국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기억력이 가물가물한 여든일곱의 아버지를 홀로 수발하는 어머니 소원은 남편보다 먼저 세상 떠나지 않는 것. 이 교수는 “아버지는 어머니 기억 위에 사시는 분”이라 말한다.

이 교수의 작품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30대의 젊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언젠가 닥칠 어머니와의 이별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까, 젊은 아들은 그런 고민을 했다. 그러나 이제 쉰을 넘긴 아들은 어머니를 생로병사의 인생 과정에 선 하나의 생명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루고 머물다 파괴되고 텅 비는 것이 인생의 과정. 그 앞에 어머니가 있고 그 뒤를 아들이 걷는다. 그래서 더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니다.

“지금도 제사 때마다 조상에게 ‘우리 아들 글 잘 쓰게 해달라’고 비는 어머니에게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제게 성모 마리아처럼 자기희생으로 아들을 위하는 분이셨어요. 지금은 원경에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과 함께 어머니도 풍화해가고 있음을 사진 찍듯 시를 통해 이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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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1-2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대해서 첫 리필을 다는 것이 너무 기쁜 수유네요. 그 마음을 아시지요?
베레모를 쓴 시인이 늙어보여서 아쉽습니다. 리플 달고 읽겠습니다.^^
매일신문도 사서 읽어야 되는가... 천병희 선생이 번역하신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아를 오늘에사 사들고 들왔습니다.

수유 2007-01-2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요것도 제가 옮겨가겠습니다.

로쟈 2007-01-2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마음 알지요.^^ 일리어드, 오딧세이아는 저도 아직 구입하지 못한 책들입니다(--;). 한데, 역자께서 계속 업그레드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좀 미뤄도 손해는 아니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기인 2007-01-2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문지에서 나온 시집들만 페이퍼에 올려놓으셨네요. ㅎ

로쟈 2007-01-2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히는 기사에서 언급된 시집들만 올려놓았습니다...

나비80 2007-01-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에 대한 온갖 편견도 이성복이라는 지점에 이르면 누그러지는 부분이 있듯이 그만큼 큰 시인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는 간혹 시인을 볼 때면 나와 같은 인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전지현과 김태희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인 것 아시죠?^^) 이성복의 힘은 기댈 수 있는 넉넉함의 깊이가 다르달까요. 내려다 보는 게 아니라 멀리까지 내다보고 깊게 파고드는 그의 시를 신뢰합니다.

로쟈 2007-01-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이성복의 시는 세상과의 불화, 혹은 치욕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시들입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는 그런 시들을 더 쓸 수가 없겠죠. 그게 이성복 시 변모의 궤적이기도 한데, 저로선 '어머니'가 삶의 모천이면서 그의 시의 아킬레스건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유 2007-01-2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전히 늘 세상과 불화하지만, 끝까지 치욕을 밀고 나가지도 못하는 저로선, 그의 소위 '연애시'들을 좋아합니다만, (그 시들을 연애시라고 규정하는 것엔 반감이 들지요만,) 나는 내가 그의 시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저 위의 글 한 꼭지를 보고서 무릎을 칩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어머니와 연결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수유 2007-01-2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이성복론을 한꼭지 정도는 읽었습니다만, 정리해서 보여주세요, 기형도론도 함께.

로쟈 2007-01-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정리는 하겠지만 시간은 좀 걸릴 거 같습니다.^^; 다른 글빚들이 많아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레디앙'의 토요연재-책읽기에 월간 북매거진 <텍스트>의 필진들이 가세를 했다. 지난 11월부터의 일이다. 게스트 필자로 참여했던 잡지를 부분적으로 온라인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이게 '중복' 게재되는 기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꼭지를 읽다가 어제 인디고와 관련해서 올린 페이퍼와도 연관되는 '인문학 위기'에 관한 기사 세 편을 연달아 옮겨놓는다(글이 뱀 꼬리를 물듯이 이어진 탓이지 나의 계산 탓은 아니다). 필자는 <텍스트>의 권희철 기자이다.  

레디앙(07. 01. 20)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자의 위기?

지난해 ‘페렐만’이라는 러시아 수학자 이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수학사의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푼 뒤 인터넷에 이를 올렸다(*페렐만에 대해서는 나도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다). 학계는 응분의 보상을 하려 했으나 모두 거부했다. 최근에는 연구소 일도 그만두고 노모와 함께 은둔해 살고 있다. 이처럼 몇 안 되는 제한된 정보들이 페렐만에 대한 모든 것인데, 그럼에도 페렐만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가 유별난 삶을 살아서일까. 그런 기인의 풍모가 느껴질 만한 존재들을 학계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런 개인을, 그런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제도와 사회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학자는 모름지기 이래야 해’라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비 정신을 촉구해야 하기 때문일까. 황우석은 이런데, 페렐만은 저렇지 않느냐면서.

페렐만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점잖으신 학자분들께선 ‘인문학 위기 이대로 둘 수 없다’며 일갈하고 나섰다. 실상 양치기 소년의 호소에 가깝게 들리기도 했다. 글자깨나 쓴다는 분들이라면 저마다 위기의 징후를 담지하고 분석한 지도 너무 오래된 일이니, ‘죽었다’ ‘위기다’ 소리는 지겹기도 하고 뒷북처럼 느껴져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강정구 교수 강의를 수강한 학생에 대한 재계의 공갈 협박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분들, 이건희 철학박사 학위 수여가 무산되자 매체를 빌려 읍소하거나 보직 사퇴를 결행하던 분들, 학생들이 좀 버릇없게 굴었다고 교문 밖으로 영구히 쫓아내신 분들과 이에 침묵으로 눈감아 주던 분들.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인문학 위기’는 ‘인문학자들만의 위기’라는 조롱을 받을 만도 하다.

다시 페렐만으로 돌아오자. 페렐만의 아래와 같은 발언은, 그가 단지 돈 키호테나 세상을 등지고 은둔해 사는 계룡산 도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다수의 수학자들이 개인적으로 정직하다고 해도, 정직하지 않은 ‘권력자들의 횡포’를 그냥 수용하는 순응주의자에 불과하다.”(박노자, 「페렐만이 괴짜라고?」에서 재인용)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흔히 학문의 위기, 좁게는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때면,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사리가 밝아 고전을 탐독하는 등의 행위를 수지타산 맞지 않는 것으로 몰아가는 사회를 탓하게 된다. 인문학 위기의 발언은 곧 문명 비판이 된다(싸잡아 다 욕할 수 있는). 좁게는 교육을 비롯한 관련 제도의 허점을 지적할 때도 있다. 넓게는 ‘삶의 무늬를 새기는’ 게 인문학의 본령이라며 그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기양양한 낙관론과 인문학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라며 비분강개의 목소리를 높이는 비관론이 묘하게 공존하기도 한다. 어느 하나 틀린 말은 아닐 거다.

그러나 어느 하나로도 사태를 충분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페렐만에 대한 상상은 질문 하나를 덧붙인다. 인문학의 위기는 학문의 위기인가, 아니면 학문 권력의 위기인가. 몇 개의 글을 사례로 삼아 인문학 위기의 논의를 따라가 보려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추적은 국지적일 수밖에 없고, 한편으로는 문제를 정리하지도 못한 채 다시 흩뜨려놓는 꼴이 될 것이다.

지난 겨울 복간된 『비평』 13호의 한 꼭지(‘인문학과 인간적인 것’)에는 한국의 인문학을 대표하는 김우창과 이어령의 글이 실렸다. 먼저 김우창의 글을 본다. 그는 페렐만을 사례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그가(페렐만이) 보여준 것은 간단히 말하여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여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동시에 거꾸로 우리가 그러한 자유 선택의 가능성을 얼마나 멀리하고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p.94)

옳으신 말씀이다. 학문 차원까지 갈 것 없이, 뭣 하나 제 힘으로 제 의지대로 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좁게는 가족의 요구에 등 떠밀려 살아야 하고, 넓게는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읽어보자.

“불편한 마음들이 이는 것은 학문 연구가 연구자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데 대한 사실적인 원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 작은 일들에서 표현되고 있는, 근본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오늘의 정세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학문의 자유와 가치의 쇠퇴에 대한 당연한 불행의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p.95)

김우창의 발언은 자유롭지 못한 개인 이전에 그것을 야기하는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즉,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오늘의 사회 조건이 어떻기에 페렐만 같은 경우가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흔히 신자유주의를 말한다. 많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 한국 현대사 특유의 굴절된 경험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우창의 답은 다르다.

“인간의 자유와 자율적 존재를 위한 여유라는 관점에서 우리 사회는 극히 좁은 공간밖에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신자유주의 체제보다도 우리의 삶과 사고의 유일 체제적인 성향에 깊이 관계되어 있는 일일 것이다.”(p.98)

‘삶과 사고의 유일 체제적인 성향’이라면,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말하려는 것일까. 또는 그런 분위기 아래 도저하게 깔려 있는 거대한 ‘문화의 유산’을 언급하려는 것일까. 따라잡기 쉽지 않은 사색이다. 다만 김우창의 글을 읽으면서 인문학 위기를 대하는 그의 근본적인 태도를 보게 된다. 인문학의 위기와 사회 위기는 따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독자는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억측해 보자면,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는 사회 또는 문화의 위기가 곧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담론의 장을 펼치게 된 것은 수돗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벽 뒤에 그리고 땅속에 묻혀 있는 수도관을 통해서 나온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는 인문학자들의 목소리는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온 각종 이익집단의 목소리와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p.85)

이어령 또한 인문학 위기를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권유한다. 물이 말랐는데 다들 모여 수도꼭지만 바라보거나 그것만 고치면 죄다 해결될 것처럼 구는 건 옳은 해법이 아닐 것이다. 이어령에게 인문학이란 깊은 수원(水原)을 탐색케 하는 것이다.

“인문학이란 문사철(文史哲)의 분야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밝히고 깨닫게 하는 학문입니다.”(p.86)

그렇다면 이어령에게 있어 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다음의 발언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단순하게 말해서 휴머니티라는 말 그대로 인문학의 힘은 시스템을 중시하는 다른 학문과 달리 수리(數理)나 기계가 할 수 없는 공감empathy의 능력을 길러주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공감’은 타자에 대한 ‘열림과 소통’의 기능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오늘날과 같이 글로벌화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는 절대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p.88)

굳이 ‘절대’라는 단정적 화법을 쓰면서 ‘글로벌’까지 말해야 하는가 싶지만, 문장의 골자는 ‘공감’에 있음을 주지한다. 현 세태가 공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인문학의 처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인지, 인문학의 무능으로 개인과 사회의 공감 능력마저 상실되었다는 것인지, 인문학 내에서 서로 공감할 수 없는 언어와 논리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그 모두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여기서 인문학 위기를 대하는 또 하나의 접근법을 얻을 수 있다. 인문학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는 것. 김우창이 유일 체제의 문화를 언급했다면 이어령은 인문학(자)가 지녀야 할 태도에 집중한다.

“우리는 그동안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사용하다가 인문학의 고립과 위기를 자초했는지도 모릅니다.”(p.84)

상식선에 그치는 분석이지만, 그 상식이 무서울 때가 이런 경우일 것이다. 그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인문학을 멀리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인문학 고유의 난해한 어법과 문체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쉽게 쓰고 말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꽤 오래 전 일이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미 ‘쉬운’ 고전 읽기와 ‘쉬운’ 철학·역사 서적 등이 서가를 잠식했다.

아카데미 안에서는 파리 날리고 하품만 나와도, 바깥에서 열리는 각종 인문학 강좌들은 반응이 뜨겁다. 매체는 항상 인문학 위기와 위의 사례들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그것이 맞다면 인문학 위기는 그저 학계의 위기, 제도의 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적어도 출판계와 강단 바깥의 인문학이 건재하다면 인문학 위기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어야 할 텐데 사태는 그렇지가 않다. 단지 강단만의 위기라고 단정 짓기엔 사태를 호도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인문학의 소통 능력은 해당 인문학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소통 문제를 위기의 본질로 삼기보다는 위기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유력한 시험이라고 보는 게 보다 타당하지 않을까. 이 논의를 보충할 만한 책 한 권이 있다.('희망의 인문학'으로 이어짐) 

레디앙(07. 01. 20) 모두와의 소통 또는 낮은 곳을 향한 소통

“모든 사람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다양성과 보편성 그리고 옛것과 새것이 항상 공존하는 둥지의 알들이야말로 인문학의 희망입니다.”(p.91)

이어령의 ‘둥지의 알’로 충분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적어도 소통의 측면에서는 얼 쇼리스가 쓴 『희망의 인문학』이 꽤 적절한 사례가 될 듯싶다. 물론 이어령은 모두와의 소통을 말하지만, 얼 쇼리스는 누구와 소통할 것인지 묻는 데서 차이가 제법 크기는 하다. 얼 쇼리스의 소통은 싸잡아 모두가 아니라 낮은 곳과의 소통이다.

책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4년 8월의 일이다. KBS의 <가난한 자의 철학자 얼 쇼리스의 희망수업>이라는 다큐멘터리가 그것인데, 이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클레멘트 코스 이야기가 관련 당사자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상당했던 모양이다(‘클레멘트’라 붙여졌지만, 이 말은 야구선수이자 선행의 대명사 ‘로베르토 클레멘테’에서 비롯된 것이다). 책 안팎을 살피려 취재한 도중 만난 번역자와 어느 사회복지사 얘기에서도 그 충격적 경험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가령 이런 사례들이다. 책이나 예술 근처에 가지도 못하던 가난한 사람들의 놀라울 만한 변화.

“1996년 12월, 헨리 존스는 바드대학 흑인학생회의 회장으로 추대됐다. …… 데이비드 이사코프는 자신의 생물학 수업에서 과일파리를 이종 교배하고 있었다. 그녀의 여동생 수산나는 그때까지도 화학자의 꿈을 놓지 않고 있었지만, 아주 뛰어난 어느 교수의 수업을 듣고 난 다음에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었다.”(p.265~66)

더 나아가 정치적 각성에 이르게 된 가난한 학생들의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책은 가난한 자가 가난한 이유를 다른 데서 찾는다. 가난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들이 있다. ‘그 사람은 게으를 거야’, ‘타고난 성품이 그렇게 만들었을 거야’ 등 가난의 이데올로기라 불릴 만한 생각부터 적절한 동기 부여와 직업 교육과 알선이 뒤따른다면 빈곤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얼 쇼리스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난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기존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기존 관점이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가난에 대한 기존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치더라도, 그런 관점이 대물림되는 가난 속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p.24)

가난이 선천적이라는 생각은 편견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며 일반인과 빈자를 분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직업 교육이나 훈련이 소득의 크기를 좌우하는 것도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려는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얼 쇼리스가 생각하는 가난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는 비니스라는 재소자에게 사람들은 왜 가난한 것 같냐고 묻는다. 비니스의 대답.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얼 선생님. 그 애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배우게 될 겁니다. …… 그렇게 하면 그 애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p.168)

이 대화는, 얼 쇼리스가 미국에서 클레멘트 코스를 기획하고 곧장 행동에 옮기게 만든 주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얼 쇼리스는 비니스의 언급에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읽는다.

“비니스는 고대 고리스에서 정치가 탄생했던 과정과 똑같은 길을 걸어 왔다. 그녀는 성찰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은 이후 계속된 대화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녀가 말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은 바로 인문학을 의미했던 것이다. 인문학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 줄곧 세상 사람들의 성찰적 사고를 가능하도록 해준 근본적인 원천으로 기능해 왔던 것이다. 정치적 삶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길이라면, 인문학은 성찰적 사고와 정치적 삶에 입문하는 입구였다.”(p.173)

인용문에서 보듯, 얼 쇼리스 생각의 기본 모델은 고대 그리스의 교양과 덕성을 갖춘 시민에 있다. 그런 시민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단다.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가 든 사례들은 이러한 생각을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얼 쇼리스의 실험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책이 번역되자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런데 “가난 벗어나는 열쇠, 인문학”, “빈자에게 적선 대신 인문학을”과 같은 기사 제목을 보게 되면 책의 내용을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얼 쇼리스 말마따나 인문학 교육이 자기를 성찰하게 하고 삶의 동기를 만든다고 하는 것이야 동의하더라도, 그것이 곧 부富로 직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문학이 여전히 배고픈 학문이라는 건 우리의 상식이고 경험이니까. 마음의 부를 말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또 다른 우려 또한 든다. 요컨대 이런 논의는 한편으로는 (그 의도와 달리) 빈곤의 실제와 원인을 은폐하는 효과를 지닌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논지에서 벗어난 것이니 넘어가자. 언론의 과장된 홍보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지금 펼쳐지고 있는 클레멘트 교육이 그것이다. 이런 비유를 들자. 빵과 장미가 있다. 세상은 지금까지 가난한 자들에게 줄 빵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빵이 아니라 장미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장미가 빵을 산출할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게다가 그것은 ‘경험적으로’ 옳(았)다. 사실상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곤란하다. 논리적 판단을 떠나 유의미한 사회적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며 어설픈 논리로 가늠할 수 없는, 책의 표현을 빌자면 ‘클레멘트의 기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의 질문은 가능할 것이다. ‘장미를 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장미가 있기나 한 것인가. 혹여 그 장미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여기서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을 성토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쪽에서는 인문학의 위기와 죽음을 말하는데 한쪽에서는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인문학이라……. 의문에 대한 접근은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런 장미는 없다는 것이 하나라면, 또 하나는 ‘낮은 데로 임할 수 없는’ 한국 인문학 자체의 문제이다.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가 주관한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설립을 위한 실제’ 워크숍 자료집을 보며 우려는 거의 불신이 되었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에 참가한 저명한 교수들의 강의 요약문은 이랬다(*이 자료는 처음 보는데, '저명한 교수들'답다).

“자기 의식은 자기 확신은 물론 타자로부터의 인정도 필요하다. …… 전자는 자립적 의식으로서의 주인Herr, 후자는 비자립적 의식으로서의 노예Knecht.” “페이디다스는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신 그것을 나타냈다’고 할 정도로 칭찬되었는데, 조각의 형태를 통해 그 배후의 정신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런 논의가, 이런 교육이 어떻게 자기 성찰을 이끌어내고 삶의 의지를 북돋우며 정치적 삶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 과문한 기자로서는 판단키 어렵다. 다만 적어도 위에서 이어령이 언급했던 ‘공감’의 문제를 상기해 본다면 이런 이야기는 거의 소통 불가능에 가까운 게 아닐까. 장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논외로 하더라도, 장미를 전달하는 태도가 고압적이다. 게다가 이 장미 전달식 주최 측의 마인드를 알 수 있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인문학 강의를 위한 강사의 조건은 사회적 지명도, 강의 실력, 노숙인에 대한 애정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회적 지명도는 참여자들의 자긍심을 세우기 위해서 중요하다.” 인문학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현실의 인문학은 어떠한지, 인문학이 죽음에 이르렀을 만큼 한심한 작태라면 그 대안적 인문학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는 언사이다. 혹여 이들에게 인문학이란 ‘뽀대 나고’ ‘그럴싸한’ 게 아니던가. 물론 문제는 간단치 않다. 다음과 같은 노숙인 수강생들의 반응을 보자니 ‘환상의’ 허울 좋은 장미도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전달된 셈이니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고, 생활하는 것이 점점 불편해지고, 나 혼자서 생각하는 공간이 없어서 불편하다. 내가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과연 내가 인문학 과정을 마치고 난 뒤에, 내가 원하는 이상이 높아져서 내가 처한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철학 책이 말하는 자기 성찰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직접적인 그들만의 ‘성찰’.

이 책은 양면적인 문제작이다. 빈곤의 사회적 문제를 환기하고 그 해결책을 달리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의 인문학 교육을 염두하고 읽노라면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클레멘트 코스에서 교육 예술’이라는 문화예술 관계자 워크숍에서 몇몇 논자들의 지적도 기자의 이런 시선과 맥을 같이 한다.

“클레멘트 과정에 비록 비판적 글쓰기가 있지만, 대부분 과거의 원천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되어야 합니다. 현재 하부구조 자체를 파고드는 직접성을 피하고 있습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목적은 언젠가는 그 직접성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얘기하고 싶습니다”라는 김지섭의 말이나 “텍스트 중심주의에 있는 아카데미 인문학은 정전 해석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세계와의 대화, 삶과의 대화, 현장과의 대화를 외면하는 인문학자 또는 예술가가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한 인문학적 풍토에서 ‘대화’는 사교에만 필요할 뿐입니다”라는 이광준의 지적이 그렇다.

요컨대 문제는 클레멘트 코스의 한국적 적용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이미 노출된 인문학의 여러 문제들이 한참이나 선행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엇이 인문학 위기의 원인이고 진정 무엇이 문제냐는 질문에는 딱 부러지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저 여러 양상들을 보면서 문제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간단치 않다는 것만 확인하게 된다. 다만 인문학 위기 이전에 인문학에 대한 편견과 이데올로기가 만만치 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어쩌면 그러한 편견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그것은 한국의 인문학이 만든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장정일의 공부』 서문은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읽힌다.('장정일의 공부'로 이어짐)

레디앙(07. 01. 20) 중용, 사유도 고민도 없는 허위거나 기만

장정일은 평소 존경받던 원로들이나 지식인들의 엉뚱한 말들에 실망할 때가 있다고 한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늙으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떤 동기에 의해 사상적 전향이 이루어지는 건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장정일은 그 원인을 잘못된 중용의 태도에서 찾는다. 기계적 중립을 취하려 애쓰다 보면 현실과는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발언을 할 수밖에 없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p.5)

그리고 이어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중용이 미덕인 우리 사회의 요구와 압력을 나 역시 오랫동안 내면화해 왔다.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모난 사람, 기설을 주장하는 사람, 극단으로 기피받는 인물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p.4~5)

솔직하면서도 읽는 이를 뜨끔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심지어 중용의 태도와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조차 장정일의 고백을 듣노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중용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장정일의 고백이 날카로운 것은, 중용 비판으로 사회와 문명의 허위를 까발리는, 하나마나한 그럴싸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중용을 취하려는 태도를 앎(무지)의 문제와 연결한다. 이는 인문학 위기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한국에서 인문학이 잘 안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는데, 뼛속 깊이 스며든 우리의 ‘둥글게 둥글게’ 의식/무의식들 때문이다. 장정일을 응용하자면, ‘중용을 취하고 있으면 인문학의 허세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교양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인문학의 중용은 인문학의 결여였다.’ 책의 세부 내용은 물론 서문의 주장들과는 거리가 있다. 그저 꼼꼼한 텍스트 읽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장정일은 스스로에게 공부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그런 공부의 과정 자체란다.

공부하겠다 마음먹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고백은, 인문학에서 커다란 범위를 점하고 있는 문학 입장에선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무게를 지닌다. 허세와 허위에 빠진 철학도 문제라지만, 상서롭기 그지없고 세상에 태평하며 나오는 것마다 문제작 범주에 드는 문학 판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내 무지의 근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급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결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때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의 열정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우표 수집가나 난을 치는 사람을 지식인으로 존경할 수 없다. 시인의 참고서지는 오직 시집밖에 없으니, 시인이란 시 말고는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청춘을 그렇게 보냈다.”(p.5~6)

07. 01. 22.

P.S. 개인적으론 기사를 며칠 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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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22 16:13   좋아요 0 | URL
모두들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지만 사실 지난 10년은 수준높은 담론들도 많이 나오고 치열한 논쟁의 공방전이 펼쳐졌던 때가 아니었나 합니다. 인문학 위기의 근간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만 국한된다면 굳이 애써 그 위기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인문학이야 말로 새롭고 거대한 시장을 창출할 새롭고 기막힌 창구가 되어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마는... ^^

로쟈 2007-01-22 16:24   좋아요 0 | URL
'위기 담론'이 바깥에서 보기엔 실상 '엄살 담론'이기도 하지요(물론 당하는 사람들에겐 '엄살'이 아니지만). 어느 분의 말씀을 들으니까 한국사회에선 또 이런 엄살이 통한다고 하네요. 특히 인문학의 엄살에 대해서는 그래도 관심을 가져준다고. 한데, 그런 식으로 '안주'해 온 게 아닌가란 반성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수준 높은 담론들'과 '치열의 논쟁의 공방전'이 얼마간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기대치에 부응하는 것인지는 의문이고,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존경 자체가 과거와는 판이한 현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나비80 2007-01-22 19:2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지요. 현실은 엄연한 자본주의 체제니까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따라 '사회적 존경'도 경중이 갈리는 국면을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구요. 로쟈님께서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언급하신 대목도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다만 제가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논쟁의 장이 마련됐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논쟁과 담론의 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인문학의 위기란 말도 곧 사라질 수 있을 테지요. 저는 사실 인문학이야말로 우리가 파먹을 수 있는 마지막 양식이란 믿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로쟈 2007-01-22 21:15   좋아요 0 | URL
저보다는 낙관적이시네요.^^ 여러 가지 도전과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현재의 인문학이 정말 갖고 있는 건지 좀 회의적입니다. 고작 '인문학 콘텐츠'나 '디지털 인문학' 정도에서 타협점을 찾으려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어쩌면 그런 대응능력도 필요도 의지도 없는 건 아닌가 싶은 게 더 자주 갖게 되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