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찾느라고 한겨레21의 박노자 칼럼을 뒤적이다가 예전에 그냥 지나쳤던 칼럼들을 몇 개 읽게 되었다. 그 중 우리 근대문학과 톨스토이에 관련한 칼럼은 '러시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육당과 춘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문학의 뒷계단'에 옮겨놓는다. 딱 3년전쯤 칼럼이다(톨스토이에 대한 박노자의 평가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평가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에 대해서는 예전에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최근 영어권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에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가 나란히 선정되어 '최고의 소설가'란 평도 얻은 톨스토이에 대해서 조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물론 이 칼럼의 초점은 '소설가'가 아니라 '사상가' 톨스토이이지만...

한겨레21(04. 02. 26) 너희가 '톨스토이'를 아느냐

근대 초기 한국에서 서구 중심 세계 체제로의 정신적 편입의 한 중요한 통로는 ‘서구영웅 기리기였다. 공자나 맹자가 그 빛을 잃고 ‘나파륜’(拿巴倫·나폴레옹), ‘비사맥’(比斯麥·비스마르크) 등의 ‘제국주의의 영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창간호(1908년 11월) 1면을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모습으로 장식하고, <나폴레옹 대제(大帝)전(傳)>을 연재한 육당 최남선의 잡지 <소년>과 같은 서구 중심주의적 계몽주의의 매체 자본은 물론, 황제 고종도 곽종석(郭鍾錫)과 같은 굳건한 유림들로부터 “나폴레옹을 고대 중국의 무왕(武王)보다 더 용맹스럽게 여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서구 위주의 세계관에 일정 부분 포획되었다.  

톨스토이 수용, 한가지 수수께끼

그럼에도 가끔 제국주의의 반대편에 선 소수의 서방인들이 세계적인 살육의 판도 속에서도 한국 지성인들의 주목을 받곤 했다. 대표적인 서방인으로 바로 현대의 평화주의와 반(反)국가주의의 원조로도 잘 알려진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였다. 1900년대 후반부터 시작돼 식민지 시기의 말기까지 이어진 톨스토이 붐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에 톨스토이 소개의 매개가 된 메이지 말기의 일본의 경우처럼, 톨스토이의 가르침은 근대 미증유의 폭력성에 환멸과 절망을 느낀 이상주의적 젊은 지식인들에게 살육과 증오가 없는 ‘대안적인 근대’의 길을 보여주었다. 톨스토이가 보여준 길이 꼭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 인도주의적 대안이 제시됐다는 것은 양심을 보유하는 지성인에게 반가운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불굴의 독립운동가 양기탁이 <신생>(新生)이라는 잡지의 창간호(1928년 10월)에 쓴 논설이 보여주듯, 제정 러시아의 부패와 폭정에 도전하여 박해와 비방을 감수하고 빈농들과 살기를 실천한 ‘안빈낙도의 지사(志士)’, ‘직언(直言)의 선비’의 이미지와 부합된 톨스토이의 인격은 유교적인 심성에 젖은 근대 초기의 지성인들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한국 지식인들은 유교와 불교, 묵가(墨家) 철학 등의 동아시아 사상에 대한 톨스토이의 존경의 태도에 감탄하기도 했다. 예컨대 <조양보>(朝陽報) 제10호(1906년 9월25일자)에서 톨스토이를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소개한 한 개신 유림은, 그가 “맹자의 이상을 이룩하려는 세계 일류의 사상가이니 한국의 유림들도 자애 자중할 수 있다”고 했다. 스스로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처럼 되자는 것이 대다수 개화파의 소원이었지만 한국이 부득이하게 ‘먹히는’ 쪽에 속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이 ‘약육강식’을 부정하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보기 드문 존경심을 가진 톨스토이의 가르침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톨스토이 사상의 수용을 연구하자면 한 가지 수수께끼에 부딪히게 된다. 톨스토이의 저작 중 <기독교와 애국주의>(1894), <두개의 전쟁>(1898), <죽이지 말라>(1900), <러시아를 비롯한 기독교 민족들이 왜 곤궁에 빠졌는가?>(1907년 탈고) 등 말년의 논문들은 국가와 교회, 애국주의의 허상과 ‘문명’의 허망한 꿈, 과학의 권위 등을 이론적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각자 군대나 학교, 교회 등의 살육·노예화·기만의 기구들을 등지고 살라는 실천적 요구를 담은 것이었다.

100년 전의 톨스토이 저작물들을 읽어보면 많은 성역들이 이미 깨져버린 오늘에조차 그 탈(脫)근대주의적 과감함에 놀라게 된다. “유럽 정부들은 국회에서의 자유주의적 궤변이나 거리에서의 사회주의적 시위들을 엄청난 양보를 하는 척하면서 용납해도 병역 거부나 군비로 쓰일 세금의 납부 거부는 절대적으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병역 거부야말로 모든 지배의 폭력적인 성격을 노골화하는 피지배자 해방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군사 존폐의 문제를 지배자들의 의지에 맡긴다면 전쟁이 더 끔찍해지지 끝날 리는 없다. 전쟁을 없애려면 지배자에 대한 공포나 지배자들이 제시하는 이득 몇푼 때문에 살인자들의 대오에 몸을 팔아 자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자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동시에, 모든 박해에도 불구하고 병역 거부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선각자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평화 회의와 관련해서>·1899)

국가와 폭력을 ‘과도기의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100년 전의 ‘주류’ 사회주의자보다도 톨스토이가 훨씬 더 철저한 근대의 이단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 같은 군사주의적 ‘영웅’들이 ‘신민(新民)의 모범’ 대접을 받고 병역이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 의식됐던 개화기나 일제 시대에, 어떻게 이와 같은 철두철미한 ‘급진파’ 톨스토이가 조선 지성계의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톨스토이의 조선 초기 숭배자 중의 한 사람인 최남선의 사례를 들어보자. 나폴레옹의 신봉자로서 <나폴레옹 격언집>까지 잡지 <청춘>(제8호·1917년 6월)에 실은 육당이 어떻게 톨스토이를 동시에 숭배할 수 있었을까? 자본주의적 근대국가에 대한 육당의 시종일관적인 선망을 아는 사람이라면 톨스토이를 1908~10년에 ‘예수 이후의 최대 인격자’, ‘대선지자’(大先知者), 공자와 같은 ‘부자’(夫子)로 불렀던 그의 태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육당의 “톨스토이 선생을 곡(哭)함”(<소년>, 제9호·1910년 12월)이라는 일종의 톨스토이 평전을 읽어보면 최남선의 톨스토이관(觀)이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靈)의 철학가’ 이미지만 만들다

최남선이 본 톨스토이는 금욕적인 생활과 ‘원수까지 사랑하는 일’, 미신이 아닌 이성에 근거를 두는 ‘신봉’(信奉·신앙)을 예수처럼 가르쳐준 ‘종교인’이었다. 즉, 그의 탐욕·폭력 극복론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닌 원론적인 종교적 이상이라는 것이 톨스토이 사상에 대한 육당의 근본적인 생각이었다. ‘영(靈)의 철학가 톨스토이’ 이미지를 만들려는 최남선은 병역 거부에 대한 톨스토이의 신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일제의 대륙 침략을 어디까지나 불가피하고 필요한 것으로 보는 육당이었기에, 전쟁을 일으킨 러·일 양쪽 정부가 다 강도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톨스토이 러일전쟁 반대의 서한(1904년 8월7일자로 일본의 사회주의자 기관 <평민신문>에 게재)도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친일적 성향의 신예 개화파가 톨스토이의 탈근대적 대안을 추상화·종교화해서 병역 거부·국가에 대한 불복종 호소와 같은 그의 정치·사회적인 핵심을 빼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소년>과 같은 개화 잡지에서 나폴레옹의 ‘격언’과 톨스토이의 ‘교훈’이 옆자리에 나란히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근대 지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온건’ 지성인들에 의해 종교화돼 ‘개인 수양의 이념’으로 탈바꿈돼버린 톨스토이주의의 비극…. 물론 톨스토이주의의 주된 ‘강령’으로 “군직(軍職)에 들어가지 말라”(즉, 병역 거부해라)는 것을 든(<개벽>, 제9호·1921) 진보적 천도교인 박달성(朴達成·1895~1934)과 같은 급진적 언론인이나, 지배계급을 ‘기생충’에 비유한 톨스토이의 노동중시론을 선호했던 1920년대 국내외의 조선 아나키스트 등은 사회·정치 사상가로서의 톨스토이를 스승으로 생각했지만, 이광수와 같은 부류의 ‘주류’ 예속 부르주아층의 논객들에게 톨스토이주의는 다만 비정치적인 ‘인격 수양’ 또는 ‘개량된 기독교 윤리’에 불과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닌 톨스토이의 대안 담론을 근대적 국가주의의 지배 담론에 종속시키려고 했다.

최남선과 이광수식 이해를 넘어

그들의 노력은 성공한 듯하다. 러시아 밖에서 톨스토이가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큰 권위를 지닌 나라들 중 하나인 한국에서 톨스토이 사상의 가장 핵심인 병역 거부와 국가주의에의 절대적 반대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이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문학작품들이 ‘교양인’에게 거의 필독으로 돼 있지만, 군대와 국가를 부정하는 그의 논문들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남선과 이광수식의 톨스토이 이해의 한계를 우리가 언제 넘을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에 접어든 우리가 아직도 100년 전의 친일적인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세계관의 경계선을 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참고 사이트 ]
1. 톨스토이의 주요 저서 디지털판(러먼)
http://www.lib.ru/LITRA/TOLSTOJ/
2. 톨스토이의 주요 저서 영역(英譯)의 디지털판
http://www.ccel.org/t/tolstoy/
3. 톨스토이 저서의 영문판과 여러 관련 영상들
http://www.selfknowledge.com/431au.htm
4. 톨스토이의 영문 전기와 일부 저서의 영문판
http://www.literatureclassics.com/authors/Tolstoy/
5. 톨스토이 학보(영문 학술지- 토론토대학교·캐나다)
http://www.utoronto.ca/tolstoy/

07. 03. 01.

P.S. 그러니까 좀 균형잡힌 톨스토이 수용을 위해서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이야기만 읽을 게 아니라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아웃사이더, 2004) 같은 책들도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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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이것도 여러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이제 비교문학 협동과정이 개설되었으니, 많은 '협동'을 통해 탐구되어야 할 지점이겠지요.

로쟈 2007-03-0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협동과정'에서 톨스토이(러시아 근대문학)에 관심있는 대학원생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못들어봤는데요.^^;

기인 2007-03-0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국 근대문학 전공하는 친구들 중에, 무교회 운동 우치무라 간조와 톨스토이 등에 관심있는 친구가 있거든요. 저도 1920년대 톨스토이에 대한 인식에 관심 있습니다. :)

소경 2007-03-1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같은 이야기만 아는 처지가..부끄럽군요.
 

얼마전 '한국SF 100주년과 러시아SF'란 페이퍼를 올린 바 있는데, 기사에서 인용한 내용 중에 카렐 차페크의 <로봇> 얘기가 있었다. 쥘 베른의 <해저여행기담>(<해저 2만리>)가 1907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25년에 차페크의 <로봇>이 박영희에 의해 <인조노동자>로 번역된 바 있다는 것.

1907년 ‘해저여행기담’에 이어 1908년 이해조가 역시 번안작품 ‘철세계’를 출간했다. 1925년엔 박영희가 세계 최초로 ‘로봇’이라는 말이 나타난 카렐 차페크의 작품 ‘R.U.R’를 번역한 작품을 선보였다(*차페크의 <로봇>이 그렇게 일찍 소개되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한데 이 책 또한 품절이군).

거기에 내가 붙인 코멘트는 보는 대로이다. 이광수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그 번역과 관련한 칼럼을 읽게 됐다.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정선태 교수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연재 중의 한 꼭지이다.

한겨레21(04. 02. 05) 카렐 차페크, <로봇>(RUR) - 계급투쟁이 로봇에 실렸네

“갈군! 갈군! 왜 인조인간을 만들기 시작하였나? 할레마이어군! 파브리군! 왜 자네들은 자네 머리 속에 그런 많은 계획을 생각하였었단 말인가? 왜 글쎄 자네들은 그 비법의 흔적을 남겨놓지 아니하였나? 아, 하느님 ― 나의 기도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 만일 사람을 남겨놓지 않으시려거든 인조인이나 남겨주십시오 ― 아무렇게 하더라도 인간의 그림자뿐만은 남겨주십시오! (다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만 잠이나 자고 싶다. (일어나서 창 앞으로 간다) 아직껏 밤이다! 저편에서 아직껏 별이 반짝이고 있구나! 이 세상에는 벌써 한 사람의 인간도 살지 않는데 저 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중략) 모든 것이 소용이 없구나. (시험관을 깨뜨려 부순다. 기계의 돌아가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린다) 기계! 또 기계로구나! (창을 연다) 인조노동자여, 기계를 정지하여다오! 너희들은 기계로부터 생명을 만들어내려고 생각하느냐?”

소수의 인간과 인조 노동자의 대결

로숨 유니버설 로봇회사의 건축주임인 알퀴스트의 절망으로 가득 찬 독백이다. 그는 이 회사의 대표인 도민, 기술담당 이사 파브리, 생리학 연구부장 갈, 로봇 심리연구소장 할레마이어와 함께 외딴 섬에서 인조인간을 대량 생산하여 세계 각 지역에 판매하던 인간들 가운데 ‘기계들’의 반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였다.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생명체를 복제하는 데 성공하고, 이 ‘영혼도 감정도 없는 인간’을 팔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던 로숨 유니버설 로봇회사의 인간들은 그들이 만든 ‘로봇들’의 반란에 직면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 알퀴스트는 이제 인간을 제치고 인간의 지위에 오른 로봇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내동댕이쳤던 하느님과 별을 찾으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공상과학(SF)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카렐 차페크(Karel Capek·1890~1938)의 희곡 <로봇>(원제는 Rossom’s Universal Robots)은 인조인간이 인간을 대신해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탄생하면서 막을 내린다.

SF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하여 올더스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등 이 분야의 뛰어난 작품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초래한 음울하고도 비극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 이에 따른 인간의 진보에 낙관적인 믿음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야기할 비극적인 결말을 경고하고 나섰던 것이다.

1920년에 발표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체코 출신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로봇>도 예외가 아니다. <로봇>은 화학적 결합을 사용하여 원형질이라고 알려진 생명체를 무한 복제하는 기술을 터득한 인간들이 어떻게 인간 자신을 파괴하는가를 예고하고 있는 희곡 작품이다. 과학기술을 장악한 소수의 인간들과 그들이 만든 인조인간 로봇의 대결,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개념이 결국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버리는 ‘과학의 희극’이 <로봇>을 관통하고 있다.

카렐 차페크(*왼쪽 사진)의 희곡 <로봇>이 이 땅에 처음으로 번역·소개된 것은 1925년 2월호 <개벽>을 통해서였다. 1925년을 전후하여 문단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신흥문학=계급문학의 ‘선봉장’이었던 회월 박영희(1901~?, 오른쪽 사진)가 이 작품을 <인조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네번에 걸쳐 완역한다. 이른바 ‘병적 낭만주의’에 빠져 있던 박영희의 사상적 변신은 놀라울 정도인데, 1924년 이후 그는 평론과 소설 등을 통해 계급문학과 사회주의적 이념을 전파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특히 그가 엮은 ‘중요술어사전’은 네 차례 <개벽>의 부록으로 실렸으며, 이는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잉여가치설, 공산주의, 유물사관, 과격파,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 새로운 사회주의적 개념들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소개한 중요한 자료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신흥사상’에 관심을 쏟고 있던 그의 눈에 카렐 차페크의 <로봇>은 어떻게 보였을까?

사회주의 이념 우회적 전파 통로

<인조노동자>라는 제목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이 번역자 박영희는 이 희곡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을 그린 작품으로 보았던 듯하다. 자본가에 의해 비인간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인조기계’, 즉 로봇으로 파악하고, 기계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취하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기계에 불과했던 ‘인조노동자’들이 공포와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여 자신을 지배하던 인간들을 살해하고 새로운 주권자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이야말로, 사회주의를 비롯한 ‘신흥사상’에 대한 감시자들의 검열이 더욱 촘촘해지던 상황에서, 계급사상을 우회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다시없는 통로였을 터이다.

예컨대 인조노동자의 반란을 이끈 로봇 라디우스가 ‘최후의 인간’ 알퀴스트에게 던지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역사를 보십시오. 사람의 서적을 읽어보십시오. 당신도 사람답게 살려하면 주권자와 살육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수는 번식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완전무결한 세계를, 또 없는 세계를 만들고, 남극에서 북극으로 가는 운하와 또한 새로운 화성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책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해서 우리들은 과학과 미술을 연구하였습니다. 인조노동자는 인간의 문화를 완성하였습니다.” 로봇의 인간선언, 또는 기계와 다름없던 노동자의 인간선언!

<로봇>의 번역 <인조노동자>는 더 이상 ‘SF’가 아니었다. 테크놀로지를 전유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영혼도 감각도 없는 ‘인조인간’으로 내모는 비극적 현실을 타파하라고 ‘선동’하는 팸플릿이었다. 반란의 지도자 라디우스는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서 이렇게 외친다. “전 세계 인조노동자 제군! 전 인류를 우리는 죽여버릴 것이다. 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함이 불가함. 각 공장, 철도, 기계, 광산과 그 외에 모든 원료를 남기고, 그 외에 것은 모두 파괴할 일. 그러고는 다 각각 노동에 돌아갈 일이다. 노동은 중지함이 불가함.”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저 유명한 ‘공산당선언’의 ‘선언’을 떠올릴 필요조차 없다. 인간, 즉 자본가들을 몰아내고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팸플릿의 기능을 <인조노동자>는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처럼 살았던 식민지 조선인들

유니버설 로봇회사 대표 도민의 말처럼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인 것이 현실이라면,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는 어떠한 공존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라면, 그리고 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피착취자 역시 인간임을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924년 일본에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을 보았을 조선의 청년 지식인 박영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의 소설들과 평론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박영희는 사회주의에서 그 희망을 찾았고, 그 이념을 담은 작품으로 차렐 차펙의 <로봇>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암울한 식민지 근대를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자를 뜻하는 로봇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처럼 <인조노동자>와 함께 실려온 새로운 사상은 많은 ‘맑스보이’와 ‘엥겔스걸’을 낳으면서 저항의 근거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바야흐로 러시아혁명의 성공에서 희망을 보았던 사회주의 사상이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07. 03. 01.

 

 

 

 

P.S. 참고로, 근대/문학과 번역 등에 관련된 정선태 교수의 흥미로운 논저들은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소명출판, 2003),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소명출판, 2006) 등에 갈무리돼 있다. 더불에 근대에 관한 여러 번역서들도 노작이다. 한달 정도 '큰방'에 간다면 다 읽어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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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1 14:55   좋아요 0 | URL
참. 정말;;
퍼갑니다. 식민지 시기를 전공하면 할수록, 식민지 시기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요. 내 친구 박영희, 임화, 이런 식으로 ^^; 동네 형 이광수 이런 식으로 ㅋ 어쨌든 내 친구 박영희라기 보다는, 저보다 '어린' 25살 박영희 군의 고뇌와 투쟁으로서의 문학... 안쓰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네요.
 

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지라 '앨러리 퀸(Ellery Queen)'이란 작가가 "사촌형제간인 맨프리드 리와 프레데릭 더네이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필명"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우리라면 '듀나' 같은 경우일 텐데, 그래도 필명/가명이란 티가 나는 '듀나'에 비하면 '앨러리 퀸'은 감쪽같다!). 지난달 컬처뉴스에 실렸던 한 '만담'기사를 읽으면서인데, 지난 연말에 터졌던 대필 사건들과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만담이기에 옮겨놓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내용이지만 '내부자'의 진술이기에 흥미롭다. 

컬처뉴스(07. 01. 26) 무림 출도를 고민하다: 출판시장과 유령작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Y의 비극』, 『Z의 비극』 등으로 유명한 미스테리 작가의 엘러리 퀸이 사망한 해가 1971년일까 1982년일까? 성급하게 답하자면 이 퀴즈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둘다 정답이며 둘다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엘러리 퀸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엘러리 퀸은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의 필명으로 사용했으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후 버나비 로스라는 또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공식석상에서 한 명은 엘러리 퀸을, 한 명은 버나비 로스의 행세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는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전략이며 일종의 ‘장난기’였다고 한다. 여하간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 뒤에 숨었있던 ‘실존인물’ 더네이와 리는 각각 1982년과 1971년에 사망했다. (이 두 사촌 형제는 공교롭게도 둘다 190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엘러리 퀸의 사망년도는 모호한 노릇이다

제법 길게 예전에 죽은 미스테리 작가에 관한 사설을 늘어놓은 까닭은 최근에 책, 혹은 글과 저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정지영 아나운서가 번역했다고 알려졌던 『마시멜로이야기』와 화가이자 방송인인 한젬마가 썼다고 알려졌던 일련의 미술관련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이다. 이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소식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라도 이 소식을 못 접하신 분들이 있다면 주요 포탈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표절’이라고 쳐보시라. 뉴스란에 뜨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각종 게시판을 떠도는 말들이 더 재미있다.)

그런데 출판계에 잠시 몸담았던 박서방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이 사건들은 그리 낯설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들어온 원고를 면밀히 잘 검토해서 책을 만들거나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잔인한 얘기지만 출판 기획자에게 좋은 책이란 잘 팔리는 책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하기 짝이 없는 출판업계에서 당장 현금이 안 도는 책이란 재앙이다. 책 한두권 대박 치면 1년이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책 몇 권 죽 쒀버리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하는 출판사들이 적지않다. 그러니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책을 ‘제조’해 내기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울래야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필자 이름 정도 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버렸고 글 팔며 먹고사는 ‘고스트 라이터’ (유령필자, 실명을 밝히지 않고 출판물 집필을 대행해주는 이들) 들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박서방도 출판계에 있을 때 명색이 초보 기획자였지만 실상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필자들의 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있는 원고를 다듬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 중에는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선거철 직전은 고스트 라이터들에게 가장 일거리가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금뱃지에 눈이 먼 이들의 선거용 출판물 (자서전, 정치평론 등) 작업에 임할 때는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일단 믿을만한 경로로 들어온 일을 받아야 하며 되도록 돈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원고를 의뢰한 자들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실제로 한번 이런 경우를 당한적이 있는데 당시 박서방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불량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왔으며 (한동안 박서방을 몹시 괴롭렸던 소위 ‘카드돌려막기’의 원인이 되었다.) 박서방은 그 정객(인지 사기꾼인지)에게 강력한 신체적 보복을 행사하기 위해 한동안 그 인물이 출마했던 지역구 주변을 배회하곤 했었다.

얘기가 옆 길로 샜는데 지금의 고스트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겠지만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의 존재는 꽤 오래됐다. 소설이 지금의 영화 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인기있던 19세기에만 해도 한 명의 작가 이름으로 여러 필자가 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 대중문학의 전성기였는데 이렇게 대중문학의 인기가 급증했던 원인은 흔히 노동자 계층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사무직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문맹률이 낮아졌던 것과 출판 기술 및 통신, 운송 수단이 화끈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흥밋거리를 담은 타블로이드판 형태의 ‘소설신문’(?)이 등장하게 되는데 양장본 소설책에 비해서 역시 화끈하게 싼 가격이었다고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펄프픽션’은 바로 이런 매체에 연재되었던 대중소설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로 다루어졌던 내용들은 황당무계한 연애담(아마도 박서방이 불타는 사춘기 시절 즐겨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류의 원조리라)이나 잔인한 범죄 이야기, 환상담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다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대부분 이런 소설은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명이 작업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본소 만화 전성기 때 유명 작가들이 사실상 만화공장장 노릇을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렇듯 예전부터 상업 출판물에서 필자의 이름은 상표다. 실제로 그 사람이 그 글에 개입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필명이 출판시장에서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많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앨러리 퀸을 탄생시켰던 두 작가가 버나비 로스라는 또 다른 작가를 탄생시켰던 이유는 아마 앨러리 퀸이라는 상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작품의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었던 두 개의 (혹은 서 너개의) 사건은 상표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었었으며 그 상표 덕에 상품을 너무 많이 팔았던 게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버린 원인이었다. 한편으로 한젬마 씨의 경우는 대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에 당초부터 고스트 라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부담스러운 경우기도 했다. 기획출판물이란게 대개 그렇지만 그 콘텐츠에는 상표 외에는 실상 별 게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런데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했던 상표가 좀 과하게 작용한데다 그 바람에 상품이 너무 팔려버린 것이다. 상표를 보고 샀는데 상품이 짝퉁이라면 소비자들은 열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봐야 이런 사건이들은 들불처럼 분노를 일으켰다가도 바람처럼 잊혀져 갈 것이 뻔한 노릇이며 이미 발 빠른 기획자들은 또 다른 상표를 찾아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출판물들도 있어야 고스트 라이터들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는 한심한 생각도 해 본다. 박서방도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 이상으로 치솟을 때면 글 팔며 연명하던 고스트 라이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긴 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유분방했던 측면도 있긴 했다. 이렇게라도 자위하지 않으면 청춘의 기억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래서 ‘천마신군’이나 ‘초혼객’ 같은 이름으로 무협지나 쓰며 사는게 어떨까 하는 백일몽에도 잠겨본다. 몇 년간 글을 자주 안 썼더니 글이 너무 심하게 구려져서 별로 자신이 없지만.(박서방 _ 인터넷 만담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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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연재칼럼이 마무리되면서 어제 읽어본 수요일자 한국일보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그런저런 기사들은 인터넷에서도 읽을 수 있기에). 그간에 목요일자 신문은 주로 경향신문을 봐온 터에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우리시대의 명저50'은 목요일에 연재되는 모양이다.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가 다루어진 걸 보고 편의점에서 가서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 글쓰기는 온라인 공간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지만 나는 사실 'e-북'이나 'e-저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그런 경우에도 대개는 프린트해서 읽는다. 물론 서비스되는 거야 편리하고 또 고마운 일이지만) '신문지 세대'이다. 보관상의 난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긴 하지만 글/책은 '만질 수 있어야' 제맛이고 제격이다(그러니까 눈으로 본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안 그래도 필요 때문에 한국문학사, 특히 현대문학사를 다룬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시대의 명저' <한국문학사>는 내 경우 박스보관도서이다(거의 징크스가 되고 있는데, 박스에 집어넣은 책이나 주제에 대해서만 강의나 일거리를 맡게 된다. 집안을 둘러싸고 있는 책들 가운데는 '일없이' 놀고 있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자니 멋쩍고, 다시 구매하자니 부담스럽다. 책보다 비싼 건 책을 꽂아놓을 공간이다. 그나마 이런 류의 기사는 온라인에 보관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한국일보(07. 03. 01) [우리 시대의 명저 50] <9> 김윤식·김현 공저 '한국문학사'

모자이크화는 작고도 이질적인 단위의 점으로 구성돼 있다. 감상자의 시야가 넓어질수록 그 화소(畵素)들은 한 편의 그림에 충실히 복무한다. 완전히 다른 생명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국문학사>(민음사)는 견실한 모자이크화다. 김윤식과 김현이라는 빼어난 화가들이 함께 모사해 낸 한국 문학 전도(全圖)다. 그 두 사람이 각각 어느 대목을 서술했는지, 절(節) 단위까지 서문에 명시돼 있긴 하다. 그러나 독자는 읽어가다 보면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두 사람이 교직해 가며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우리 학술사가 일궈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1973년 1판이 선보인 뒤 96년 29쇄로 1판은 마감하고, 다시 그 해에 개정판의 시대로 돌입했다. 여느 개정 작업처럼 내용에 대한 수정이 아니라, 한문 투의 문장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었다. ‘초판이 곧 정본’이라는 완벽주의적 신념 혹은 염결성(廉潔性) 덕에 책은 전국 대학의 국문과 120여 곳에서 여전히 교재로 쓰이는 등 그 의미를 확인해 왔다. 임화 -백철 - 박영희 - 조연현 등 선구적 학자들의 맥을 잇되, 여전히 현장 교육에서 애용된다는 점에서 새삼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책은 대단한 자의식, 또는 자긍심의 소산이다. 우리 역사의 운명 혹은 질곡이었던 주변 문화성을 문학적으로 극복한다는 목적의 소산이었다. 한국 문학사 고유의 개별적 추진력을 모색하는 한편 한국 근대사의 추진력이 무엇이었는가를 철학적 면에서 바라보자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자칫 생각만 웃자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수많은 토론과 세미나가 빈 틈을 촘촘히 메워주었다. 두 사람 사이의 굳건한 합치점 덕택이었다. 문학사란 역사와 다르게 예외적 개인에 관심을 쏟지만, 결국 당대 특정 계급의 무의식적 기반을 보여주는 상상적ㆍ풍속적 전거라는 것이다.

책은 서세동점의 위기의식이 그와 짝을 이루던 당시, 의식을 혁파하고자 한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김삿갓의 시를 통해 혁명까지 나아가지 못한 그들의 한계부터 논한다. 권력 구조의 밖에 서 있는 지식인의 쓰디쓴 자기 반성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직접적으로는 19세기말 조선이 서구의 충격에 의해 국가 상실의 위기에 직면할 때, 부자 중심의 가족 관계가 역기능일 따름이었으며, 이후 이광수의 자유연애론과 이상의 가족 콤플렉스 등으로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적극적 의미가 있다면 시조, 판소리, 가면극 등 민중적 예술 양식이었다. 개화기의 표면적 혹은 포괄적 현상을 풍속 혹은 유행의 차원에서 가장 잘 드러낸 양식, 연극은 그 적자였다.

책의 문제 의식은 철저하다. 난세 혹은 전환기에서 진정한 역량은 어디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권의 말단 주변인가 혹은 중간 문화권인가 하는 논란, 문화 수용에서 나타나는 엘리트와 민중 간의 편차 등 역사의 동인에 대한 철저한 자의식이 문학 작품의 형식을 통해 간단 없이 확인된다.

유길준이 탁월한 언어 감각에도 불구, 국한문 혼용체에 머문 것은 신분 사상과 평등 사상이 공존해 있었던 내적 갈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또 역사 의식이 결여돼 있던 이광수는 작품상에서 혁신적 개념과 보수적 사고 관례가 무반성적으로 공서(共棲)하는 우를 피하지 못했다. 소월은 창가 리듬에서 벗어나 새 운율을 찾는 노력을 보여주었으나, 절대에의 탐구를 포기했기 때문에 결국 새로운 민요 이상이 되지 못했다.

개인과 사회를 발견한 것은 염상섭 최서해 김동인 현진건에 이르러서 였다. 서울 중류 계급의 어휘량. 중인층의 현실 감각을 섬세하게 용해한 염상섭은 계급 해방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조선적인 것의 탐구(궁극적으로는 해방)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의 묘사는 한국 소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탁월하며, 특히 <삼대>는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함께 식민치하 작품 중 최상급에 속한다. 자신은 개량주의적 입장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다같이 흡수하려 했지만, 그러한 태도가 실제 문학화 하지 못한 점은 염상섭의 유일한 한계다. 이와 반대로 김동인은 계급 문학이 있다면 계급 빵, 계급 음료수도 있는 것이냐며 치기 어린 절규를 해보았지만 퇴폐적 정서로 자신의 이상주의를 오염시키고 말았다.

한편 이상은 ‘태도의 희극’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극한에 이르기까지 몰고 간 식민지 시대 유일의 작가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금기 체계, 그 금기 체계 내에서 생존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인들을 그는 다같이 부정했다. 그의 주인공들은 결사적인 자기 폐쇄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은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무리 폐쇄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는 사회와 은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잔인한 관계를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상은 부정적인 자기 폐쇄를 통해 정당하게 사회와의 통로를 차단당한 인간의 파산을 여실히 보여준다.

격한 직설체, 센티멘털한 열정의 작가 임화는 한국 문학사를 서구 문학이나 일본 문학과의 연관 아래 비교문학적으로 다루려 했으나 방법적으로 실패는 예정돼 있었다. 이상 채만식 박태원 김유정 같은 탁월한 작가들은 현실과의 치열한 투쟁을 작품화했고 이태준 김남천 등은 페이소스, 시니시즘, 유머 등의 수단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박태원이, 식민 치하의 가난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유 연애를 은근히 주장하는 것은 서울 서민층의 폐쇄성과 칩거성을 그것으로나마 극복해 보려는 조그만 의지의 소산으로 읽힌다. 단, 콤마의 적절한 사용으로 감각적 탄력성을 획득했다는 점, 지적인 재치와 심리주의로 요약되는 다양한 실험 정신은 높이 살만한 작가다.

한국어 훈련이란 관점에서 주목되는 시인들이 있다. 감정의 절제를 가능한 한도까지 감행해 본 한국 최초의 시인 정지용, 일제 식민 치하 후반기에 민족주의적 시를 당당히 쓴 ‘기적’을 보여준 윤동주, 일본 리듬인 7ㆍ5조로 기울기 일쑤인 정형시를 새 차원으로 격상해 시조를 현대시의 한 장르로 확고히 자리잡게 한 이병기, 시에 회화성을 도입해 끝까지 밀고 간 김광균, 자폐적 리리시즘의 김영랑 등.

해방 공간과 그 이후의 한국 소설은 만주의 대서사시를 쓴 안수길, 낭만주의적 현실 인식의 황순원, 휴머니즘의 기수 김동리, 도회 취미를 띤 과장적 자기 고백의 손창섭, 뿌리 뽑힌 인간을 탐구한 소외 문학의 최인훈 등으로 요약된다.

시로는 진실 탐구로서의 언어와 불교적 인생관을 천착한 서정주, 메시아를 열망한 박두진, 무의미의 미학을 추구한 김춘수, 소시민의 자기 확인과 항의의 김수영. 소멸의 시학을 추구한 고은, 실험의 작가 박목월 등을 주목한다.

조선조 후기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한국 문학을 조감한 책의 말미. 책은 해방 공간의 이데올로기 문제란 결코 간단치 않음을 다시 상기시키고, 대미 관계와 4ㆍ19의 재해석, 작가들의 전기 연구, 나아가 지성사와 병행하는 문학 연구를 갈망하며 화룡점정에 대신한다.(장병욱 기자)

"내가 지금 읽어봐도 명문이네. (지금껏 판을 바꿔 오면서도) 한 자도 안 고쳤네…." 서문을 읽어 가던 김윤식(71ㆍ서울대 명예 교수) 씨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웃음기가 감돈다. 34년 세월을 변함없이 이어 온 초판의 서문은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라는 이 시대를 예감하기라도 한 듯, 비장미마저 감돈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백수(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 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당대의 시대적 과제였던 식민사관 극복 작업에서 국사ㆍ국문학자의 자부심은 대단했어요. 독립 운동한다는 심정이었으니까." 당시 김현씨와 밤 새가며 토론했던 문건이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던 양안(量案ㆍ토지 대장)이었다. 사조나 문단의 흐름이 아니라 사회경제사에 토대를 둔 '과학적 문학사'라는, 미증유의 길은 그렇게 트였다.

"이 책은 전적으로 민족주의적이에요. 문학의 독자성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게 최대의 약점이랄 수 있을 정도로." 일제와 미군정하 국민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와, 4ㆍ19 세대인 김현에게 근대화라는 화두는 지고의 이슈였다. 시대 정신에 충실했던 책에 대한 수요는 출간 2, 3년 만에 급상승했다.

내용뿐 아니라, 인세도 한 해씩 번갈아 지급 받을 정도로 이 책을 정확히 공동 소유하는 김현씨. 집필 당시 그와 함께 펼쳤던 풍경은 우리 지성사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연구실, 술집 가리지 않고 벌어졌던 토론이었죠. 문학은 물론 경제학, 사회학자들까지 참석했던."

그러나 책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 김현의 부재는 그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후배지만 배울 게 많았어요. 아주 작은 원고지에다 늘 글을 쓰고 있었죠. 풍부한 인간성에, 섬세하면서 자상했었는데…." 공조자 김현은 그의 의식 속에 현존하는 듯 했다. "지금껏 얘기들은 김현의 말이 빠진, 내 개인의 생각이므로 부분에 불과해요. 사실 나로서도 그의 의견이 매우 궁금합니다."

김윤식

1936년 경남 진영 출생, 서울대 국어과 졸업
1975년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2001년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주요 저작 <한국 근대 문예 비평사 연구>, <한국 근대 문학 사상사>, <황홀경의 사상> 등

김현

1942년 전남 진도 출생, 서울대 불문과 졸업
1986년 서울대 불문학과 교수
1990년 작고
주요 저작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 <시인을 찾아서>, <한국 문학의 위상>, <젊은 시인들의 상상 세계> 등

07. 03. 01.

P.S. 마침 오늘이 3.1절이어서 "당대의 시대적 과제였던 식민사관 극복 작업에서 국사ㆍ국문학자의 자부심은 대단했어요. 독립 운동한다는 심정이었으니까."라는 멘트가 인상적이다(오래전 강의실에서 자주 듣던 회고조의 말씀이기도 하다). <한국문학사>의 초판이 나오던 시점에(도서관소장본은 1974년판이다) 두 저자는 30대 중반의 '청년' 국문학자와 불문학자였다. 누군가 현대는 '에피고넨의 시대'라고도 불렀지만 그만한 패기와 열정으로 무장된 '청년들'을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조숙한 원로들은 차고 넘친다). 인류의 지성은 혹 진화하는지 모르겠지만(적어도 축적되는지 모르겠지만) 패기/열정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건 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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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30대 중반, 초반의 두 학자들. 김윤식 선생님과 김현 선생님의 아름답고도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이 떠오르네요... 김현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아계시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도 해봅니다.
김윤식 선생님이 김현 선생님께 쓰셨던 말씀인 것 같은데. 고마움이 물이라서 가두어 보여줄 수 있다면, 호수를 네게 보여줄 텐데.. (사실 되게 감동적인 낭만적인 구절이었는데 잘 생각이 안 나네요;;; -_-)
김현 선생님은 평소 수업때 김윤식 선생님 비판하다가도, 하루에 한두번씩은 김윤식 선생님 연구실에 들러서, 선생님 뭐 하세요? 하면서 차를 얻어마시고 가셨다고 하데요. ㅎ
뭐 국문학도들에게는 신화이니, 경계도 해야겠지만서도요. ㅋ 저도 학부랑 대학원때 김윤식 선생님 완전 '팬'이었어서 ^^

jouissance 2007-03-0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숙한 원로들은 차고 넘친다" 로쟈님 오타입니다.
'척하는'이 빠졌잖아요. "조숙한 척하는 원로들은 차고 넘친다" ^^

로쟈님은 김현 책 두 권을 뽑으라면? 저는 '사회와 윤리' '시인을 찾아서'을 들고 싶네요;;;

로쟈 2007-03-0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아닌데요.^^; 제 반어법입니다. 나이보다 먼저 '원로'가 된이란 뜻으로...
두 권 다 초기 저작을 고르셨군요. 그냥 취향의 문제일 텐데, 얼른 떠오르는 건 <상상력과 인간>과 <분석과 해석> 같은 책입니다...

jouissance 2007-03-0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시간 되시면 '제네바학파' 페이퍼 좀 부탁합니다. 설마 벌써 올리신 건 아니겠지요^^

로쟈 2007-03-0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네바 학파라,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간에 국내에 몇 권 번역돼 있지만 완독한 것도 없구요. 스타로뱅스키의 책들이 번역되면 좋겠다 싶은 정도입니다(러시아어본이 여러 권 나와 있습니다)...

jouissance 2007-03-0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로쟈님 능력에 한계가 있으셨나요? 문학 철학 분야에서만큼은 한계가 없으신 줄 알았는데...ㅎㅎ

로쟈 2007-03-01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을요. 제가 안 다루는 분야가 얼마나 많은데요. 구멍 숭숭입니다. 해서 좀더 많은 분들이 이런 '삐끼' 활동에 동참해주셔야 합니다. jouissance님도 힘을 보태시길!..

jouissance 2007-03-0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끼'활동이라뇨? 로쟈의 서재는 저의 소중한 교양 창구랍니다^^ 능력만 허락된다면 진작 힘을 보탰죠. 댓글 이상은 저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ㅠㅠ -

그나저나 방학이 다 끝나가네요. 로쟈님 댓글 다는 시간이 많이 늦어지겠어요;;;
 

새해 들어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유일한 (반)강제는 매달 '사회적 독서'의 목록을 올리고 취지에 공감하는 몇몇 이들의 책읽기를 꼬드기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나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매달 같이 책을 읽거나 적어도 책을 서가에 꽂아두는 분이 몇 분 계시기 때문에(땡스투 추천으로 보자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는 된다) 아주 헛일은 아니다 싶다.

지난 2월에 꼽은 네 권의 책들 가운데 나는 케빈 스미스의 <순결한 할리우드>를 마지막으로 손에 들었고 '톰 크루즈와의 인터뷰' 같은 몇몇 꼭지를 전철에서 읽었다. "이 책으로 인해 성경은 인류 사상 두번째 위대한 책으로 밀려났다"는 밴 애플렉의 허풍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건질 만한 대목이 없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머지 책들, 니스벳의 <보수주의>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책장을 많이 넘기진 못했으나 언제나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다. 그리고 남재일의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도 여러 꼭지를 읽었으니 과락은 면할 만하다.

내 경우 자랑할 만한 습관은 아니지만 한두 권의 책을 완독해가면서 보통 20여 권의 책을 같이 뒤적이기 때문에 막상 '실적'으로 남는 책은 많지 않다. 최근에 완독한 책은 박이문의 <예술철학>(재판 2006) 정도이다(별첨으로 덧붙여진 번역논문 '양상론적 예술의 정의'는 부분적인 오역에다 오타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머지 책들은 모두 부분적으로 읽거나 참조하는 식이다(그렇게 건드리는 책들이 한달에 50권은 훌쩍 넘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여러 종류의 강의를 해야 하고 한편으론 원고/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남독의 습관도 딴은 강제된 것이라고 해야겠다. '사회적 독서'의 목록에 올려놓는 책들은 그런 가운데에서 매달 좀더 신경을 쓰기로 작정한 책들이다. 나름대로 '특혜'를 부여하는 셈이다. 이유는 함께 읽어봅시다, 라는 것이고.   

 

 

 

 

3월에 읽을 첫번째 책은 '한국문학 읽기'로 올해 발표 90주년을 맞는 이광수의 <무정>(1917)이다. 나로선 20년만에 다시 읽게 되는 작품인데, 사실 <바로 잡은 '무정'>(문학동네, 2003)이라고 새로운 '정본'이 나온 게 불과 몇년 전이다(<'국민'이라는 노예>(삼인, 2005)에도 편자의 후기 등이 재수록돼 있다). 편자인 김철 교수가 다시 책임편집을 맡아서 낸 <무정>(문학과지성사, 2005)도 불과 재작년에 나왔을 뿐이고. 그러니까 20년의 세월이라고는 하지만 다시 읽을 만한 분위기가 조성된 건 비교적 최근이라는 얘기이다.

물론 이광수를 읽을 때 옆에 두고서 필독해야 하는, 김윤식 교수의 평전 <이광수와 그의 시대1,2>(솔출판사, 1999)의 재판이 나온 건 좀 오래 됐다. 내가 처음 그 책을 읽은 건 아마도 80년대 후반쯤이었을 걸 같고, 그때 판본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1,2,3>(한길사, 1986)이었다(나는 2/3쯤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고는 나중에 절판되고 나서 구입해두지 않은 걸 후회했었는데, 솔출판사판의 재판이 나왔을 때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읽어보기 위해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보관해둘 만한 장소가 여의치 않은 탓이다(이러다 또 절판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도서관에서 같이 대출한 책은 젊은 이광수 연구자 최주한 박사의 <제국 권력에의 야망과 반감 사이에서>(소명출판, 2005). 학위논문을 손질한 것이기도 한데 이광수 연구서들 가운데서는 '드물게도' 재미있다(주로 다루는 건 <무정>이 아니라 <유정>이지만). 그밖에도 여러 권의 참고문헌을 꼽을 수 있지만 사설을 여기까지만. 참고로, 절판된 책들 가운데 가장 유익한 건 김현 편, <이광수>(문학과지성사, 1977). 김동인의 '<무정> 분석' 등이 포함된 유익한 자료집이다.  

 

 

 

 

두번째 책은 '한국사회 읽기'란 핑계로, 얼마전에 출간된 고종석의 <바리에떼>(개마고원, 2007)을 꼽는다. 책은 이미 구입해두었는데, 사실 '잡다함'이란 뜻의 프랑스어 '바리에떼'를 제목으로 삼은 건 내 취향이 아니다(내가 저자인가?). 기억에는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이 <프랑스문학을 찾아서>의 한 부에 그런 제목을 붙였고, 연원을 따지자면 프랑스 시인 발레리가 그런 책인가 에세이 묶음을 또 썼다(발레리만 그런 제목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서 '발레리 따라하기'를 거쳐서 '김현 따라하기'의 연장이 아닌가도 싶다(얼마전 연재를 끝낸 '말들의 풍경'이 알다시피 김현 평론집의 제목을 훔쳐온 것이었다). '따라하기'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바리데기'도 아닌) '바리에떼'란 말이 우리말에 아무런 소속을 갖고 있지 않은 '겉멋'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잡다함'을 빙지한 그런 '겉멋부림'에도 불구하고(사실 저자가 프랑스 포도주 마니아라고 하니까 '바리에떼' 정도의 멋을 부리는 건 이해할 만하다) 책은 여느 고종석의 책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재미있다(목차를 보니 내가 이미 읽어본 글들도 여럿된다. 잡지에 실린 에세이나 단행본에 실린 발문들이 그런 종류이다). '군소리'라고 붙여놓은 서문을 보면 그가 이 책에서 제일 자신하는 글은 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알음, 2003)를 다룬 '식민주의적 상상력'이다.

"비판의 대상이 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의 저자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으나, 식민지 시기의 역사적 복권을 통해 민주주의 운동의 정통성을 흔들려는 온갖 '경제론'들의 급소를 이 글이 비교적 정교하게 움켜쥐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이런 '자화자찬'이 본래 고종석스러운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고종석은 허튼 소리를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온갖 경제론들의 급소'를 같이 움켜쥐어보도록 하자.

덧붙이자면 '1970년대를 사는 백수의 잡감'이란 부제를 단 그의 자기세대론 '우리 세대를 위하여' 같은 글을 읽으면 저자와 포도주라도 같이 한잔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왜 포도주인가는 읽어보면 안다). 고종석도 거의 '아줌마' 다 됐다는 걸 확실하게 입증해준다.

안쪽 책갈피에는 '저자의 다른 책들'이라고 16권의 책 목록이 적혀 있는데, 훑어보니 내가 안 갖고 있는 건 <히스토리아>(마음산책, 2003)과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개마고원, 2006), 그리고 <고종석의 영어이야기>(마음산책, 2006) 세 권이다. 앞의 두 권은 주로 신문의 칼럼들을 모은 것이고 짐작엔 그 대부분을 나는 지면에서 읽었다. 그리고 기억에 고종석의 '영어공부' 책은 그 한권이 아니지만 나는 모두 안 갖고 있다. 그런 책들은 그가 '코리아타임스'의 기자였다는 전력을 떠올리게 해주지만 내가 좋아하는 고종석은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에 대한 애정과 아는 체를 늘어놓는 고종석이다. 그 영어책을 사둘 만한 여력이 된다면 그보다 먼저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 2007)을 사서 읽고 싶다. 사실은 이 책을 '3월의 책'으로 올리려고도 했지만 그건 나중 생각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엎어치나 메치나 두 권 모두를 꼽아놓은 셈이 되는군.  

 

 

 

 

세번째 책은 '미국을 알자'는 취지로 좀 '뒤늦은' 화두이면서 아직 진행중인 사안인 한미 FTA 관련서들을 목록에 올려둔다.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2006)를 먼저 꼽아두긴 했는데 관련서들은 더 많이 나와있으며 적절히 참조하면 되겠다. 협상마감 시한인 4월을 코앞에 두고 있는지라 도대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더 늦기 전에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눈뜨고 코 베이는 일을 당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끝으로 '이론을 읽자' 범주에서 꼽은 책은 지젝의 신간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도서출판b, 2007)이다. 번역본 상으론 450여쪽에 이르니까(원저는 280여쪽 분량이다) 다소 부담스럽긴 한데, 대신에 맨마지막 6장 '당신의 민족을 당신 자신처럼 즐겨라'를 먼저 읽을 예정이다. 지젝의 '민주주의론'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계획한 것이고, <삐딱하게 보기>와 <혁명의 다가온다>를 다시 참조할 생각이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박종철출판사, 1999)와 위너 본펠드의 <무엇을 할 것인가>(갈무리, 2004)를 옆에 나란히 놓아두고서. 더불어 같이 읽기 위해 엊그제 꺼내놓은 책은 네그리의 <혁명의 시간>(갈무리, 2004). 요약하면 '민주주의'와 '레닌'이 3월의 이론적 화두가 될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목표는 목표이다. 일정으로 보아 몇 페이지 건드리지도 못하고 3월 한달이 후딱 지나갈 가능성이 농후하지만(벌써 봄이라니!) '사회적 독서'의 의의라는 게 따로 있겠는가. 읽다가 다 못 읽으면 옆에서 이어서 읽어주고 뒤에서 마저 읽어주는 게 사회적 독서다. 당신이 그 옆사람, 뒷사람이 되어주면 좋지 아니한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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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3-01 00:29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페이퍼에 제 책짐이 늘어납니다. 읽는 속도도 느려서 줄 기미도 안 보입니다. 책정리하는 시점에서 괜시리 원망 한 번 던져보고요. ^^

수능세대, 교과서에서 접했던 택스트들을 재미로 다시 읽기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김승옥 전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단 말야!! 버럭! 혼자 막 화났던 기억 나요. 이광수의 '무정'이라.. 제 얇은 귀가 팔랑거리는 소리.. 들리시나요? ^^

로쟈 2007-03-01 01:55   좋아요 0 | URL
제가 '물귀신'이군요.^^ 계획으로 치면 하이드님이 저보다 덜 읽으시는 것도 아니던데요.^^

동대장 2007-03-01 06:54   좋아요 0 | URL
엎어치나 메치나로 소개하신 기자로 산다는 것이 끌리는 군요.
언제나 좋은 책 소개에 분주하신 님 덕분에 이달에도 또 한권 도전해 볼랍니다.
좋은 공휴일 보내시길.....총총

로쟈 2007-03-01 09:50   좋아요 0 | URL
그 '몇 명' 가운데 '동대장'님도 포함되시는군요.^^

에바 2007-03-01 10:14   좋아요 0 | URL
저는 '이론을 읽자'의 그 화두('레닌')가 마음에 들고 기대가 되는군요.^^ 저도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의 6장을 먼저 읽어 보겠습니다.

로쟈 2007-03-01 10:44   좋아요 0 | URL
에바-지젝님의 리뷰도 고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