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식포털'이란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심봤다!'가 아니라 이 또한 '요지경' 속이다. 왜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이 모양인가? 아마도 아침신문의 기획특집쯤 되는 모양인데(정치만 고민할 일이 아니다!), 근심스러운 기사이지만 남의 일로 치부할 수도 없는지라 옮겨놓고 함께 고민해보시길 제안한다.

한국일보(07. 03. 06) 국가지식포털은 '정보의 고물상'

“지식의 만물상이라고요? 여기저기 헤매다 시간만 버렸어요.” 디지털미디어방송(DMB) 사업 자료를 찾기 위해 국가지식포털(www.knowledge.go.kr)에 접속한 P사 대표 박모(39)씨의 푸념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 1,000여 단체가 보유한 지식정보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은 차라리 비아냥거림 같았다. 검색된 자료 대부분이 DMB 서비스가 시작되기 이전 것인데다 원문보기를 누르면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뜨기 일쑤였다. 박씨는 “운영자가 최신 이슈에 관해 선별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자랑한 ‘테마지식’ 코너마저 철 지난 자료들만 올려놓았다”라며 “지식의 미로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지식포털’(이하 지식포털)에 쏟아 부은 예산의 규모를 알게 되면, 박 씨는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정보통신부는 포털의 기반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에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500억원을 투자했고, 포털 구축에만 20억원을 썼다. 정통부가 지난해 말 확정한 ‘지식정보자원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2011년까지 5년간 DB 확충 등에 1,831억원이 추가로 투자될 예정이다.

지식포털 구축은 미래 국가경쟁력의 바탕이 될 ‘공공정보의 재이용(Re-Use)’, 다시 말해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일반인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업. 그러나 1일 평균 순방문자(UV)는 지난해 말까지 500명 미만, 검색 기능 등을 강화해 재 개장한 올 1월에도 1,300명에 그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것. 검색의 정확도가 떨어져 같은 정보가 수십 건 중복 검색되는가 하면,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할 ‘요약’ 정보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운영자가 선별한 ‘테마지식’의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자료 중 ‘전염병 위기관리 전략’을 찾아보자.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자료인데도 요약 정보에는 발행처 ‘미확인’으로 나온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공공 DB 구축 사업도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됐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공공정보의 DB화와 보급을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어느 기관이 어떤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활용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공공 지식정보자원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DB화를 추진하다 보니 정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이희정기자)

한국일보(07. 03. 06) "정부주도 포털 필요한가" 무용론 제기

국가지식포털의 운영은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문화진흥원에서 직원 단 1명이 맡고 있다. 콘텐츠 관리부터 신규서비스 기획까지 하고 있지만, 이용자 질문에 답하고 오류를 점검하기에도 벅차다. 진흥원측은 3월 중 민간기업 가운데 운영업체를 선정하고, 서포터즈 3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공공 정보의 관리를 민간 업체에 맡길 수 있느냐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이 지식포털 활성화의 해법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식포털의 부실은 그 기반인 공공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통합ㆍ연계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선 지식포털이 제공하는 공공 정보가 제한돼있다. 공공 DB는 1993~97년 구축한 초창기 DB와 외환위기 당시 정보화근로산업 성과, 2005년부터 행정자치부 주도로 구축한 행정DB 등 여럿이지만, 지식포털에서는 정보통신부 주관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에 따라 구축된 DB만 서비스한다. 게다가 DB 표준화도 이뤄지지 않아 애초부터 공공 포털 형태로 통합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무리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공 기관들마저 지식포털보다는 민간포털과 직접 손잡고 싶어하는 실정이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관계자는 “사이트 방문자수로 실적 평가를 받는데,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지식포털과 제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통합사이트를 운영하는 대신에 민간의 정보가공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식을 바꾸는 게 어떠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들도 “민간포털에서 쉽게 각 기관의 사이트를 찾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정부 주도 포털이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이희정기자)

한국일보(07. 03. 06) 엉뚱한 정보·잠자는 코너

지식과 정보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활용하도록 하는 것은 정보화시대 국가의 의무다. 가령 국가가 보유한 과학 정보를 공유하면 대학과 연구기관의 신기술 생산으로 이어지고, 첨단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로 가치가 확산된다. 정보통신부가 내세운 ‘국가지식포털’(www.knowledge.go.krㆍ이하 지식포털)의 목표도 정부ㆍ공공ㆍ민간 기관 등 1,000여 곳이 보유한 활용가치 높은 지식정보자원을 누구나 손쉽게 찾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원 스톱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만물상’이라는 화려한 포장과 달리, 실상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초라하다.

이름값 못하는 국가포털

정통부는 1월 지식포털 서비스를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대폭 개편했다고 밝혔다. 검색 기능 업그레이드, 분류체계 개선, 블로그를 비롯한 개인화 서비스 강화 등이 골자다. 그러나 여전히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없다. 같은 정보의 중복 검색 문제도 여전하고, 주제별 분류체계도 일반 기사가 ‘연극/영화’ 항목에 뜨는 등 엉터리가 많다.  요약 정보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어떤 것은 목차, 어떤 것은 원문 일부를 맥락 없이 뚝 떼내 보여주는 등 기준이 제 각각이고 내용도 부실하다.

간판과 달리 검색 가능한 DB가 제한된 경우도 있다. 초기 화면에 배너까지 달아 서비스 하는 ‘국가전자도서관’은 본래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법원도서관 등 7개 주요 국립도서관의 통합검색 시스템이지만, 지식포털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만 이용할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 유통을 위해 개설한 국가지식포럼과 국가지식블로그의 운영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식포럼 개설자의 상당수가 포털 운영자인 정통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직원들이고, 인기포럼이라는 곳도 개설자가 자료 몇 건을 올려놓았을 뿐 사실상 ‘휴면상태’다. 블로그 서비스는 업로드 한 글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글자가 깨지는 일이 잦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식포털은 지난해 공공부문 우수 웹사이트로 선정돼 ‘2006 웹어워드’를 수상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이 상을 수여한 웹어워드코리아의 후원기관이다. 정보화의 거센 물결도 우리나라의 관료주의 만큼은 깨뜨릴 수 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저작권 개념이 없는 지식사업

경기 양평에 국악음반박물관을 운영하는 노재명(38)씨는 지난달 14일 정통부 장관을 저작권 침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가 20년간 전국을 돌며 발품과 돈을 들여 수집하고 정리한 국악 관련 자료 가운데 1만여점을 지식포털에서 허락 없이 무단 게재했기 때문이다.

노씨가 인터넷((www.hearkorea.com)에 올린 이 자료들은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가 운영하는 문화포털(www.culture.go.kr)을 통해 지식포털에 제공됐다. 지식포털에 연계된 5개 전문정보센터의 하나인 문화포털은 민간 콘텐츠까지 검색로봇을 활용한 웹 수집 방식으로 검색한다. 문화포털의 경우 제목과 2, 3줄의 정보만 보여주고 클릭하면 원문 사이트로 이동하는 딥 링크(Deep Link) 방식인 반면, 지식포털은 팝업 창을 통해 제공하는 요약정보에 원문 전체 혹은 일부를 그대로 띄워놓는다.

저작권조정심의위원회 이영록 책임연구원은 “딥 링크의 저작권 침해 여부는 견해가 갈리지만,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원문 전체 혹은 일부를 그대로 보여줄 경우 저작권 침해”라면서 “요약 정보도 원문의 창작적 표현이 포함되면 2차 저작물에 해당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식포털은 노씨가 지난달 초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자 해당 콘텐츠를 삭제했고, 노씨가 고소장을 낸 직후인 지난달 17일 문화포털의 웹 수집 방식으로 들어온 자료 37만건을 모두 삭제했다.

한국일보(07. 03. 06) 외국의 공공정보 관리 실태

위성의 지리정보, 경찰의 교통정보, 기상청의 날씨정보…이 같은 공공정보를 민간이 가공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조한다. 컨설팅그룹 파이라 인터내셔널이 집계한 데 따르면 미국에서 공공정보 활용으로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2000년 기준 약 877조원, 유럽연합(EU)에선 약 79조 5,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의‘국가지식포털’처럼 정부 주도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검색 하게 하는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미국 유럽은 민간이 공공 정보를 자유롭게 가공ㆍ유통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정보 공개’를 넘어 적극적인 ‘정보 배포’로 정책을 전환했다. 2003년 11월 유럽의회는 ‘공공정보 재이용(Re-useㆍ상업적 이용)에 관한 지침’을 공표했다. 회원국 간 제도의 차이를 최소화해 기업들이 공공정보 활용을 통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 것. 또 EU는 민간 수요가 많은 지리 교육 문화 과학 학술 등 정보를 활용해 기업과 공공기관이 함께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개발하는 ‘e콘텐츠플러스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2005년부터 4년간 총 1억4,900만 유로가 투입될 예정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공공정보의 활용을 시장에 일임해왔다. 1966년‘정보자유법’이 연방정부 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권을 보장한 이후, 미국은 정부 문서의 이용, 재판매ㆍ재배포 제한금지 등 일정한 원칙을 정해 민간에서 정부의 지식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발전시켰다. 자치단체와 공기업은 지적재산권을 판매할 뿐 아니라, 민간기업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문준모기자)

07. 03. 06.

P.S. 정보화 격차, '디지털 디바이드'란 용어가 유행어처럼 쓰인 적이 있었다. "정보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따라 정보 습득 능력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격차가 커지는 것"을 말하는데, 주로 사회적 불평등이 계층별 정보화 수준(인터넷 활용 등)에 있어서 격차를 가져오고 이것이 다시 불평등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걸 경계하는 말이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국가간/언어간 '콘텐츠 디바이드'라는 걸 근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엊저녁 한 모임에서도 화제가 됐었지만 구글과 네이버의 차이, 정보의 양과 질에서의 차이를 고려하면 이 '디바이드'는 만만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 같지 않다. 10년, 20년후에도 인터넷세상에서 지식언어로 한글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가지식포털' 같은 마인드라면 이미 시작도 해보기 전에 진 게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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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3-06 12:35   좋아요 0 | URL
그 차이라는것이 지금 학생들의 수준에서는 영어능력의 차이로 나타날것 같습니다.초등학교 3학년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데 이건 공적인 배움이고 사적으로는 미국원어민들보다 쓰기나 단어능력들은 한 2-3살 위에 이르도록 배우는것이 지금 현실이니까요. 그대로 먹고살만하면 다들 외국으로 보내는지도?
올해들어 회사때문에 미국과 캐나다로 떠난 두분이 있는데 자식들은 초딩이고 한국에서 영어유치원 다니면서 영어공부했는데 그쪽나라 가서 언어테스트하고 나서는 한학년 월반했다고 하더군요. 구글과 네이버의 차이만큼이나 영어를 원어민 수준에서 하면서 영어로 과외받으면서 크는 애들과 그렇지 못한 애들, 국가에서 뭘 해주길 바라는거, 그것이 도서관이나 접할수 있는 자료(한겨레인가 학교 도서관 상황에 대한 기사도 본것 같은데)같은, 거의 요원하지 않나 싶습니다.

로쟈 2007-03-06 19:57   좋아요 0 | URL
제가 우려하는 것은 그러한 개인간 차이가 궁극적으론 국가간/언어간 차이로 고착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국에 대한 의미있는 자료도 영어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게 아닌가 염려됩니다...
 

가십 기사가 하나 눈에 띄어 옮겨온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의 도난당한 그림 한 점이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사무실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소장자인 스필버그는 '장물'인 줄 알지 못하고 구입했다고. 하지만 나의 흥미를 끈 건 록웰도 스필버그도 아니고, 그림의 제목인 '러시아 교실'이다. 실제로 러시아(당시엔 소련) 학생들의 수업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뉴시스(07. 03. 03) 노먼 록웰의 도난작품, 30여년만에 스필버그 감독의 사무실에서 발견돼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미국, 1894 - 1978)의 작품 한 점이 도난당한 지 30여년 만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사무실에서 발견됐다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2일(현지시간) 밝혔다. '러시아 교실(Russian Schoolroom)'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지난 1973년 6월25일 미 미주리주의 클레이튼 미술관에서 사라졌었다.

지난 1989년 합법적인 경로로 이 작품을 구입한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제작자 중 한 명이 FBI에 수사를 의뢰한 지난 주까지 이것이 도난 작품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FBI는 전했다. 미술품 감정사들과 FBI의 조사 결과 진품으로 판명된 이 작품의 초기 감정가는 약 70만달러(약 6억 6000만원).



공산주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흉상이 놓여진 교실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러시아 학생들의 모습을 그린 이 유화 작품은 "처분이 결정될 때까지" 스필버그 감독의 소유로 남아 있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작품이 도난당할 당시 클레이튼 미술관에 근무하던 메리 엘렌 쇼트랜드는 작품이 사라지던 날 "록웰의 석판화를 주제로 한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며 "이 작품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함께 전시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미주리주의 한 고객에게 2만 5000달러에 팔릴 계획이었던 이 작품은 그러나 구매가 결정된지 며칠만에 미술관에 침입한 괴한들과 함께 사라졌다. 쇼트랜드는 "그들이 가져간 것은 이 작품뿐"이었다며 "이 작품만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 후 종적이 묘연해진 이 작품은 지난 1988년 뉴올리언스 주의 한 경매소에서 7만 400달러에 보험금 10%의 조건으로 낙찰된 것으로 확인됐다. 쇼트랜드는 약 15년 전 뉴욕의 한 소규모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판매한다는 광고를 보고 클레이튼 미술관의 모회사인 시카고의 '서클 파인 아트'에 연락을 취했으나 '러시아 교실'을 되찾는데는 실패했다고 말해다.



일상생활의 소소한 순간에 드러나는 인생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뛰어났던 록웰의 작품은 '가장 미국적'이란 평가와 함께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록웰은 '러시아 교실'이 사라진지 5년 후인 1978년, 84세의 나이로 작고했다.(정진하기자)

07. 03. 04.

P.S. 생소한 이름이지만(미국은 넓다!) 찾아보니 록웰은 국내에도 소개돼 있다. 어깨가 좁고 얼굴이 긴데다가 수척해보이는 듯한 인상이 '미국식' 그림들과 잘 어울려 보이지는 않지만 아래의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같은 그림은 '아메리카니즘'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관련서가 더 소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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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가장 고대하는 책 중의 하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생각의나무, 2007)이다. 역자는 역시나 김종건 교수인데, 상품 소개가 뜨지 않아서 책이 범우사판을 한 권짜리로 다시 내는 것인지 개정된 내용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달라진 내용이 없다면 일종의 '트릭'이다). 제목이 <율리시즈>에서 <율리시스>로 바뀐 이유도 잘 모르겠고(그냥 '차별화 전략'인가?).

 

 

 

 

나로선 범우사판의 <율리시즈>를 모두 갖고 있고, 역자의 <알기 쉽게 풀이한 율리시즈>(범우사, 1997)도 챙겨놓은 지 오래이다. 다만 이 세기의 문제작을 완독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간혹 여름방학때면 조이스학회에 주관하는 '율리시즈 강독' 강좌가 개최되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한번 들어본다고 마음만 먹다가 두어 차례 흘려보내고 말았다.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던 것인데, 덕분에 2종류 갖고 있는 <율리시즈>의 원서도 책장에서 자고 있다. 게다가 범우사판 <율리시즈>와 관련서들이 모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라 이번에 나온 책이 개정번역판이라면 새로 구입해볼 생각을 품어본다. 그런 생각의 와중에 문득 '준비'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 이 페이퍼를 쓴다.

 

 

 

 

먼저 조이스에 관한 책들을 챙겨둘 필요가 있겠다. 리처드 앨먼의 평전 <조이스1,2>(책세상, 2002)가 일단 챙겨두어야 하는 소장도서(조이스 컬렉션을 마저 채우려면 돈푼깨나 깨지겠다). 나는 이 두툼한 평전 대신에 얄팍한 조이스 두 권, 곧 데이비드 노리스의 만화 <조이스>(김영사, 2006)와 프랭크 스타터의 <30분에 읽는 제임스 조이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을 챙겨두고 있는데, 상황을 봐서 용적을 늘려야겠다(사실 문제는 책값이 아니라 꽂아놓을 공간이다). 거기에 국내서를 보태자면 나영균 교수의 <제임스 조이스>(정우사, 1999), 김학동 교수의 <제임스 조이스>(건국대출판부, 2001)를 꼽아볼 수 있겠다. 두 권 모두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들이다.  

<더블린 사람들>에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거쳐서 <율리시즈>에 이르는 조이스의 여정에 대해서는 굳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여러 종의 번역서들이 나와 있다). 다만 거기에 덧붙여 횡적으로 읽어야 할 책들도 있다. 러시아작가 나보코프가 세계 4대소설로 <율리시즈>와 함께 꼽은 책들인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경우 국내 유일의 완역본(국일미디어, 1998)이 현재는 절판중이지만 같이 읽어두어야 할 고전이다. 거기에 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문학과지성사, 2006)까지가 그 네 권의 소설들이다(카프카의 경우엔 <변신>을 꼽았는지 아니면 다른 작품을 꼽았는지 헷갈리긴 하다). 모두 20세기 전반기에 각 언어권별로 세게문학이 산출해낸 걸작들의 목록이다.

 

 

 

 

그리고 종적으로 읽어야 할 책은 물론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06)부터이다. 이 방대한 고전도 읽어내려면 상당한 견적을 요한다. 영역본도 한두 종 정도는 갖춰놓는 게 좋겠고(인터넷에 떠 있긴 하지만 편의상) 해설서도 챙겨두도록 하자. 피에르 비달나케의 <호메로스의 세계>(솔출판사, 2004)나 강대진의 <고전은 서사시다>(안티쿠스, 2007)가 적절한 길잡이가 돼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아우구스테 레히너란 오스트리아 작가가 다시 쓴 <오디세이아>(문학과지성사, 2006)도 번역/소개돼 있다. "그리스 서사 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현대의 독자들을 위해 새롭게 쓴 작품. 원전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가치와 의의를 그대로 전하는 동시에 읽는 재미를 준다. 지도와 등장인물 소개 글을 수록해 장대한 텍스트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짚어준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명화도 함께 실었다"고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책이 프랑코 모레티의 <근대의 서사시>(새물결, 2001). 문학사의 모더니즘에 대한 도발적인 재평가/재서술을 시도하고 있는 이 야심만만한 책의 한 장이 '<율리시즈>와 20세기'에 바쳐져 있다.

Улисс

개인적으론 지난 2004년 모스크바 체류시 러시아어본을 구하고자 했었던, 하지만 끝내 구하지 못한 책이 세 권 있는데, <율리시즈>는 그 중 하나이다(<모비딕>과 <특성없는 남자>가 다른 두 권이다). <율리시즈>의 경우는 러시아어본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너무 고가였다(기억에는 3만원이 넘는 액수였다). 

Улисс

그러는 사이에 작년에 보다 대중적인 판본의 새 번역서가 나왔다(역자가 같은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감스러운 건 인터넷서점에서 품절중이라는 것. 내가 <율리시즈>를 읽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손대볼 수 있는 건 이 러시아어본을 손에 넣는 일이다...

07.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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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4 03:08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퍼갑니다.

류스케 2007-03-04 10:28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신 분이군요 ^^ 추천하고 갑니다~

biosculp 2007-03-04 13:31   좋아요 0 | URL
지금 강대진의 고전은 서시시다 를 읽고 있는데 글이 간결하면서 번역투가 아니라 머리복잡하게 하지 않고 뚜렷이 읽히게 만듭니다. 더불어 고전읽기의 해법이라는 책머리의 제목처럼 고전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니(들어갈지는 들어가야 하니 아직은?) 최근 읽은 책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근데 혹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위하여라는 페이퍼를 쓰신적은 있나요.
열린책들에서 새로운 판본을 210질 낸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오면
달려들어볼 계획인데요.

로쟈 2007-03-04 14:42   좋아요 0 | URL
두분의 추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전은 서사시다>는 서점에서 보고 바로 손에 들 뻔한 책인데, 책값을 보고서 다시 내려놓은 기억이 있습니다.^^; 좋은 책들임에도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들을 안 하는 것인지(실제로 많이 안 팔리는 것인지) 저자의 책들이 주로 고가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선 다른 페이퍼들을 좀 쓴 게 있습니다. '새로운 판본'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는데, 210질 한정본인가요?..

biosculp 2007-03-04 16:10   좋아요 0 | URL
새로운 판본이 아니라 겉표지가 새로운것입니다. 한정본이더군요.아직 나오지는 않고 출판사에서 가격고민중인것같더군요.

로쟈 2007-03-04 19: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이미 전집 초판을 갖고 있는 데다가 여러 권의 '빨간책'을 소장하고 있어서 '고민'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2007-03-05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3-05 13:38   좋아요 0 | URL
**님/ 햇빛비둘기님의 정보를 참고하시길...
햇빛비둘기님/ 목돈 들어가게 생겼네요.^^;

로쟈 2007-03-05 15:35   좋아요 0 | URL
주석 말씀하시는 거지요? 저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박스에 있을 뿐입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소 2007-03-07 06:52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조만간 '율리시즈'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마침 이 책 발간 소식을 듣고 살까,말까 고민하던 차에 로쟈님 페이퍼 보니 구매의욕이 불끈 솟아 오릅니다. 아주 알찬 페이퍼네요.^^ 추천 꾸욱!!

로쟈 2007-03-07 23:04   좋아요 0 | URL
다소님/ 이 카테고리가 '로쟈의 낚시'랍니다.^^
**님/ 메일 드렸습니다. 감사.^^

2007-03-13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3-14 23:04   좋아요 0 | URL
**님/ 그러셨군요. 강선생과는 직접 면식은 없지만 한다리 건너서 예전에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잔혹한 책읽기>가 나오기 전에). 저에 대한 '온갖 소문'은 뜻밖인데 아직 숨어계신 분들이 다 드러나지 않은 탓이란 생각이 드네요...
 

지난주에 출간된 책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도널드 시먼스의 <섹슈얼리티의 진화>(한길사, 2007)이다. 학술명저번역 총서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는데, 지난 1979년에 출간된 원저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진화생물학/진화심리학 분야의 '고전'으로 살아남은 이유/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데이비드 버스의 책들이나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사이언스북스, 2005)를 비롯해서 이후에도 이 분야의 '명저들'은 많이 출간/소개됐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저자의 이름도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책소개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아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출판된 지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에 따라 진화심리학에서 그 당시 이뤄졌던 논의와 현재 진행되는 논의가 다소 다를 수도 있으나, <섹슈얼리티의 진화>는 성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논의의 이정표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있는 책이다. 관련 분야의 다양한 논의를 심화시키는 데 이바지한 바가 크며, 특히 국내의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 성 심리학, 그리고 여성학적 논의의 성숙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성매매 특별법' 등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요컨대, 이정표가 된 책이라는 것. 분량도 560쪽(원저는 368쪽)에 이르기에 부피에 대한 바람도 채워준다. 장서용으로 좋다는 얘기이다. 다윈의 <인간의 유래>(한길사, 2006)도 아직 꽂아놓고 있지 못한 형편인지라 소장도서로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하지만, 리뷰 정도는 미리 읽어두도록 한다.  

 

문화일보(07. 03. 02) 남성의 바람기는 ‘유전자의 명령’

여성을 위한 ‘플레이 보이’지를 창간하려는 사람에게 주는 충 고. 첫째, 음경이 발기한 남성의 사진이 음경이 축 늘어진 남성 의 사진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둘째, 남성의 단독 사진보다는 벌거벗은 남성과 함께 있는 여성의 사진이 좀더 효과적이다. 셋째, 남녀가 서로 어루만지는 사진이 특히 효과적이다.

이 같은 충고는 여성의 성(性)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여성의 벗은 모습에 시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성과 달리 상당수 의 여성들은 남성의 누드사진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기한 남성의 사진이 그렇지 않은 남성 사 진에 비해 효과적인 것은 보다 실질적인 성 관계를 시사하기 때 문이다. (이는 여성을 위한 포르노 잡지의 입지가 빈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포르노토피아(pornotopia)에선 합당한 맥락에서의 성적 현실 보다는 환상적인 상황을 설정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은 남성을 시각적으로 대상화하는 데서 오는 자극보다 는 사진에 같이 나오는 여성에 대해 주관적인 동일화를 함으로써 더욱 자극받는다. 이는 세번째 충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단순한 시각적 자극보다는 사진에 자신을 투사해보기를 여성은 더 선호한다. 사진에 자신과 같은 성인 여성이 나오는 것은 경쟁과 질투심 같은 정서 또한 촉발할 수 있다.



책은, 이 같은 인간의 성 특성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고찰을 집대성한 고전이다. 진화심리학에선 인간의 진화사를 통해 보통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심리적 특성과 행동을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성적 행동과 태도, 감정에서 남녀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차이가 생래적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똑같은 환경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남녀 사이에는 전형적인 성 특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인류의 진화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성 특성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이성을 두고 벌어지는 동성간의 경쟁은 일반적으로 여성들 보다 남성들 사이에서 훨씬 치열하다. 둘째, 남성은 일부다처적인 성향이 농후하지만 여성은 이런 측면에서 비교적 유연성이 있다. 셋째, 배우자에 대한 성적 질투심은 남성이 더욱 강렬하다. 넷째, 육체적 특징 특히 젊음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에 비해 남성의 육체적 특징(젊음 등)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작다. 다섯째, 여성에 비해 남성은 훨씬 많은 수의 성 파트너를 갖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여섯째, 성은 여성이 남성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또는 호의로 간주되며 그 반대는 아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남녀의 성적 특성이 유전자의 보존과 후대 전달을 위해 모든 생물이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유전자의 후대 전달을 위해 남녀간 성적 특성과 행동에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남성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수에 제한이 있는 여성은 다수의 남성과 무작위로 관계를 맺기 보다는 우수한 유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 따라서 남녀는 각기 다른 성행동 전략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사족 한마디. 남성에게 다수의 성 파트너를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특성 이 있다는 ‘사실(fact)’에서 ‘가치(value)를 도출해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자연’과 ‘선(善)’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진화론적 원인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김영번기자)

07. 03. 03 - 04.

P.S. 저자인 도널드 시먼스는 "캘리포니아 대학 인류학과 교수"로서 "인간의 성 특성의 진화론적 해명에 관심을 가지고 줄곧 연구해왔으며, 성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탐구를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소개돼 있다.

"지은 책으로는 <놀이와 공격성: 붉은털원숭이에 대한 연구>, <섹슈얼리티의 진화>, <전사 연인들: 성애적 허구, 진화 그리고 여성의 섹슈얼리티> 등이 있다"고 하는데, 마지막에 언급된 <전사 연인들>이 최근에 나온 <다윈의 대답> 시리즈의 한권이다. 마저 소개되면 좋을 듯하다...

P.S.2. 섹슈얼리티의 진화심리학의 연장선상에서 '강간의 진화심리학'에 대한 소개/논의를 옮겨놓는다. 온라인 학술저널 담비의 리뷰팀이 <섹슈얼리티의 진화>의 역자이기도 한 김성한 교수의 연구논문을 요약정리해놓고 있다.

담비(07. 03. 03) 진화심리학을 오해하는 페미니즘에 맞서

강간 같은 흉폭한 강력범죄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서는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설명의 유파가 존재한다. 피해 여성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는 강간은 그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간에 대한 기존의 설명은 주로 페미니스트들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이 그 주도권을 잡아왔다. 강간을 사회문제화하고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처벌 기준을 제시해온 그들의 공력은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강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이 등장하면서 양 측이 해석공방을 벌이고 있다.

최근 '철학' 제89집에 발표된 김성한 서울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의 '강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 비판은 타당한가?'는 진화심리학적 설명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분류하고 그 각각에 대한 반론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먼저 김 연구원은 강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을 요약해서 제시한다.

불필요한 질문처럼 여겨지지만 왜 남성이 강간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까부터 보자. 이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생물학적 성 특성의 차이 때문으로 "여성이 상대를 가림에 비해 남성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남성은 단순히 교접만으로도 자손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랑없이, 상대와 비교적 무관하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시각적 자극 등 비교적 단순한 기작을 통해 성적 욕구가 일어난다.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상대를 잘못 고를 경우 자칫 자손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 선택에 신중하다. 이 때문에 성관계와 관련한 수요 공급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남성들이 성적 파트너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가 성매매의 사회적 승인여부와 관계없이, 나이와 사회경제적 지위 또는 정신병의 유무와 관계없이 지극히 정상적인 남성들마저도 강간범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다. 남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설문조사에선 잡히지 않으면 강간을 범하겠는가의 질문에 35%가 그렇다고 답했다는 건 이런 주장을 보강해주는 자료다.

강간으로 인한 여성의 고통에 대해 진화심리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왜 강간의 고통이 여타의 폭력 등에 비해 더 심각한 상처를 안겨주나. 강간 희생자인 여성은 육체적 상처를 넘어서, 아이출산 시기와 상황,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가 될 남성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하며, 이로 인해 번식적 성공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기 때문이라는 게 그 설명이다. 심지어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런 가정도 해봤다고 한다. 만약 여성들에게 번식적 성공의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교육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 물론 터무니 없는 추론이다. "여성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강간당하는 경험을 원하게 될만큼 유연한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결론.

그렇다고 진화심리학이 강간을 옹호하거나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레이(R. Gray) 같은 학자는 "진화론적 설명은 우리의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유전자에 프로그램화돼 있으며, 그래서 그 행위가 자연스럽고 고정적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다"라고 비판적 입장을 보이지만, 진화심리학은 남성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야기하면서까지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을 타고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즉, '여러 여성과의 성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곧 강간에의 욕구는 아니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유전자 결정론자로 비난을 받고 있는 도킨스조차 "우리는 유전자에 대항할 힘이 있으며,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이기적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적 지배에 반역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에드워드 윌슨도 인간의 공격성은 유전적 성향과 사회가 처한 환경, 그리고 그 사회의 역사라는 세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발생한다고 말한바 있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결정은,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지 않을 수 없어서 구했다'라는 의미의 결정이 아니라, '직각적으로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사실이며, 그러한 감정이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라고 김 교수는 되풀이 설명한다.

그럼에도 진화심리학자들은 학습이나 환경적 요인들이 통제력을 발휘해 행동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일부 성향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호랑이의 맹수적 본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진화심리학자들은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김 교수는 논문에서 이들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자연적인 것'이라는 등식은 받아들이지만, '자연적인 것=옳은 것'이라는 등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연적인 경향을 인정하는 게 곧 옳음을 주장하는 게 아니며, 이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화심리학에 대한 기타 사회과학자들의 구체적인 반박을 살펴보자. 먼저 진화심리학의 강간에 대한 설명은 꼭 필요하지 않은 군더더기라는 관점이다. 니네들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된다는 것으로 탕-말티네즈(Z. Tang-Martinez) 같은 이는 "강간이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다고 주장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페미니스트 사회심리학 분석을 통해서도 해결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스트 사회심리학이란 남성은 어렸을 때부터 사회화를 통해 여성을 통제, 지배하려는 욕구를 습득하게 되고, 이것이 고착 강화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으로 나타난다는 해석으로, 강간이 일종의 정치적 행위라는 주장을 표방하는 입장을 지칭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김 교수의 주장처럼 동일한 현상에 대해 근인(proximate cause)적 설명과 궁극인(ultimate cause)적 설명을 모두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는 동물의 행동을 신경, 호르몬, 인지과정, 유전자, 조건화, 감정 등을 통해 설명할 수 있으며, 이들 중 어떤 한가지만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강간에서 생물학적인 성 특성을 간과한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심리학자들은 강간이 성범죄가 아니라는 걸 주장하기 위해 강간범들의 증언을 활용하기도 한다. 강간범들은 붙잡히고 나서 왜 그랬냐는 질문에 "불만, 분노, 소외감" 등을 대기도 하는데, 이를 근거로 강간을 힘, 지배, 굴욕, 착취, 가학성에 관한 폭력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 강간범들이 "더 이상 내가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성적 충동을 최소화해서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사실상 크고, 일부 조사에서 강간범들은 자신의 실제 동기를 말하기보다 연구자들이 원하는 설명을 제시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간할 때의 폭력사용을 이유로 강간을 폭력으로 이해하려는 경우도 비판하고 있다. 강도가 피해자의 물건을 강탈할 때 강도의 목적이 물건이지 폭력이 아닌 것처럼, 강간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손힐(R. Thornhill) 등의 경험적 연구가 있는데, 강간범의 폭력을 도구적 완력과 과도한 완력으로 나눌 때 대부분 전자에 속한다는 연구가 그것이다. 또한 강간희생자가 살해당하는 경우도, 전체 살인사건에 비해 극히 일부분이고, 면식범의 소행일 경우 사건은폐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도 덧붙이고 있다.

또한 일부는 전쟁중에 강간이 많이 발생하는 것을 근거로 강간이 성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브라운밀러 같은 이는 전쟁 중에 남자들이 떼거지로 다니면서 여자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집단윤간을 행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이나 지배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성적 욕구의 충족을 목적으로 일어난 강간으로서, 다만 전쟁중에는 처벌받을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강간빈도가 높아지고 행위의 수준도 강화된다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아무튼 강간의 원인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기존의 사회심리학적 설명의 부족한 부분을 잘 메워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김 교수의 논문은 진화심리학적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사회심리학적 설명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감이 없지 않다. 때문에 이것은 논쟁을 통해 가다듬어 나가야 할 주제인 듯하다.(리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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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옮겨오는 경향신문의 연재 '작가와 문학사이'이다. 이번주에는 시인 김선우씨가 '스스로 충만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고 평론가 신형철씨가 거들고 있다. 한겨레('모 일간지')의 '18도' 지면에서도 그녀의 칼럼을 종종 읽을 수 있으므로 젊은 시인들 가운데는 지명도가 높은 편이다. 시집으론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물밑에 달이 열릴 때>(창비, 2002), <김선우의 사물들>(눌와, 2005) 등이 있다.

 

경향신문(07. 03. 03) [작가와 문학사이](8)김선우-스스로 충만한 아름다움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만취한 여자 하나 밤거리에서 비틀대고 있었다. 몸 가누지 못하고 기어이 쓰러져 머리가 깨졌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피 흘리던 그녀, 헤실헤실 웃으면서 말한다. “아아 상쾌해.”(‘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80년대는 “격렬한 외상의 날들”이었으나 90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었다. 한 시절은 속절없이 저물고 함께 꾸던 꿈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몸 상할 일 없어 좋겠구나 했는데 꿈 없는 세상이 끔찍해 마음은 속에서 곪아갔다. 그러니 아시겠는가, 무엇이 그녀를 쓰러뜨렸는지. 취중난동은 자해공갈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선우, 1970년에 태어나 1996년에 시인이 되었다.

그녀가 여성성의 매혹과 위력을 새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머리 미처 성할 날 없었을 것이다.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왔습니다/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벌 나비를 생각해야만 꽃이 봉오리를 열겠니/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얼레지는 얼레지/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얼레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타자(남성)의 시선을 바라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족하는 아름다움이다. 원한의 여성주의가 아니라 긍정의 여성주의다. 꽃을 여성의 생식기와 포개었던 화가 조지아 오키프 생각도 난다. 특히 “얼레지는 얼레지”가 이 시를 어여삐 들어올린다. 힘 있는 것들이 발설하는 자기확인의 동어반복은 역겹지만 겨우 존재하는 것들의 자기확인은 당당하다. 이 시인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분별 자체를 해체하는 길 말고 여성의 고유성을 더욱 보듬는 길을 택했다. 이를테면 “그냥 두세요 어머니, 아름다워요”(‘어라연’)라고 말하는 긍정의 길이다.

제 안의 여성(어미)됨에 지극한 이라면 고통 없이는 볼 수 없는 사태들이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 나를 꽃 피워주세요/당신의 몸 깊은 곳 오래도록 유전해온/검고 끈적한 이 핏방울/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탐욕이 탐욕을 불러요 탐욕하는 자의 눈 앞에/무용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무력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찢겨져 매혈의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어머니, 당신의 혈관으로 화염이 번져요.”(‘피어라, 석유!’)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검은 피’에 굶주린 이들 앞에서 어머니-대지는 “매혈의 치욕”을 감당해야 했다. 화자-석유는 제 자신이 차라리 ‘무용한 꽃’이거나 ‘무력한 꽃’이기를 바란다. 안쓰러운 반전시위다. 둘 다 꽃을 노래하고 있지만, ‘얼레지’의 관능과 ‘석유-꽃’의 절규 사이의 거리는 멀다. 애틋한 긍정에서 애절한 부정까지의 이 거리가 바로 김선우 시의 넓이다. 이 화력(花力)의 시학을 세간에서는 에코-페미니즘(생태-여성주의)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그 꽃들의 산파가 될 것인가.

거름을 줘야 한다. 시인은 어렸을 적 파밭 밭둑에 똥 한 무더기 누고는 밭고랑에 던져놓고 오기도 하였다(‘양변기 위에서’). “뜨듯한 흙냄새와 시원한 바람 속에 엉덩이 내놓은”(‘오동나무의 웃음소리’) 채로 오줌을 누기도 하였다. (뒤의 시를 아껴 읽은 소설가 천운영은 언젠가 이 시인을 만나면 꼭 한번 함께 오줌을 누리라 다짐한다. 마침내 시인을 만난 소설가, 통음난무 끝에 얼추 목표달성 했다는 후문.) 건강하고 생생하다. 꽃의 시들이 한바탕 피고 나면 똥오줌의 시들이 능청스럽게 거름을 뿌린다. 그 위에서 다시 꽃은 피리라. 이것이 김선우 시의 선순환(善循環)이다.



세상의 꽃은 세상의 칼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백전백패의 아름다움만이 서정의 본진(本陣)이고 문명의 배수진이다. 혹여나 그녀 시의 아름다움을 많이 배운 여자의 우아한 성정 탓이라 할 텐가. 모 일간지에 띄엄띄엄 실린 그녀의 세설(世說)들을 읽으면 모진 말 쉽게 못할 것이다. 세상의 낮은 곳으로 퍼져 흐르는 연대(連帶)의 향기가 거기에 있다. 내처 기다려 보라. 곧 나올 그녀의 세번째 시집은 아마도 자신이 꽃임을 잊어버린 이 시대의 슬픈 여성들에게 바쳐질 것이다. 피어라, 꽃! (신형철|문학평론가)

07. 03. 03.

P.S. 시인은 지난 2004년,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피어라, 석유!' 등의 시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기사에도 인용되고 있는 시의 전문은 이렇다. 그 아래는 두번째 시집의 표제시 '도화 아래 잠들다'. 

피어라, 석유!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 나를 꽃 피워주세요
당신의 몸 깊은 곳 오래도록 유전해온
검고 끈적한 이 핏방울
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
탐욕이 탐욕을 불러요
탐욕하는 자의 눈앞에
무용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
무력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
온몸으로 꽃이어서 꽃의 운하여서
힘이 아닌 아름다움을 탐할 수 있었으면
찢겨져 매혈의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
어머니, 당신의 혈관으로 화염이 번져요
차라리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으세요
포화 속 겁에 질린 어린아이들의 발 앞에
검은 유골단지를 내려놓을게요
목을 쳐주세요 흩뿌리는 꽃잎으로
벌거벗은 아이들의 상한 발을 덮을 수 있도록
꽃잎이 마르기 전 온몸의 기름을 짜
어머니, 낭자한 당신의 치욕을 씻길게요

도화 아래 잠들다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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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7-03-0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야구 선수 김선우를 생각했었습니다.^^ 요즘은 작가들도 인물이 좀 되야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건가요? ㅎㅎ

jouissance 2007-03-0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저는 이 시인의 책이나 칼럼에 함께 실린 사진을 보면 왠지 불편하더라구요. 만일 제가 바르트라면 '모델처럼 찍힌 시인의 사진'이라는 기호를 가지고 아주 재미있는 설을 풀어 볼 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냥 그런저런 시인이라면 모르겠는데 '에코 페미니즘과 진보'를 얘기하는 시인이라, 그 사진이 무심하게 보이지만은 않더라구요. 너무 강팍하고 삐뚤린 시선으로 본 건가요? 한 가지 분명한 건 그의 시와 산문이 좋다는 겁니다...ㅎㅎ

로쟈 2007-03-0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니다님/ 아무래도 매체환경이 유인하는 면이 있겠죠. 게다가 여성성을 강조하는 시인이기도 하고...
jouissance님/ 한마디로 색을 쓸 줄 아는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데 개인적으로 특별히 와닿는 시인은 아닙니다...

jouissance 2007-03-04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성을 노래하는 시인은 '색'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페미니스트들에게 '색'을 얘기하면 당연히 으르렁 대겠지요. 그렇다면 여성성과 페미니즘 동시에 강조하는 사람은 '색'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슬며시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신형철 선생이 조금 오바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벌써 '색'에 포섭된 걸까요..ㅎㅎ

로쟈 2007-03-04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시집에 대한 김승희 시인이 추천사를 다소 길지만 인용해봅니다. "김선우의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는 여성적 글쓰기의 긍정적 차이와 해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전범이다. 그녀의 텍스트를 이루고 있는 맛있는 모국어와 무의식이 질주하는 치렁치렁한 환유의 시 문법은 남성 시인의 직선적 상상력과 발성과는 차이가 있으며, 여성적 글쓰기의 긍정적 차이와 흘러넘치는 환상(環狀)선의 욕망을 보여주는 기표들의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육체와 대자연의 쾌락, 성욕 등이 무한한 욕망으로 겹쳐지면서, 이 대자연-상상계적 여성 육체는 그리하여 아버지-근대-로고스중심주의를 넘어서서 탈근대라는 새로운 담론의 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민둥산'이나 '69-삼신할미가 노는 방'이 보여주는 우주적 에로티시즘, '완경(完經)'이나 '물로 빚어진 사람'이 보여주는 엄마-딸의 생리적 연대와 사랑, 여성의 '여성다운' 육체와 생리를 대자연의 성욕에 천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열락(jouissance)의 상상력. 이러한 특징은 김선우적 여성 텍스트가 모유와 음문(陰門), 유방과 아주 능동적인 클리토리스로서의 풍요로운 글쓰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jouissance의 상상력에 대해서는 jouissance님이 가장 잘 아실 거 같습니다.^^

jouissance 2007-03-0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러 인용해주신 로쟈님께는 죄송하지만, 일순 짜증나게 만드는 추천사입니다. 평론도 아니고 추천사인데, 이런 고답적인 어투 조금 거북스럽네요. 꼭 이렇게 교수티를 내고 싶은 걸까요. 아무래도 김선생이 교수들의 나쁜 습성을 너무 여과없이 받아들인 것 같아요. 사실, 최근 몇년 사이에 읽은 김승희 선생 대부분의 글에서 이런 불쾌감을 경헙했답니다. 하루빨리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기를 바랄뿐입니다...ㅠㅠ

로쟈 2007-03-0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교수'로서의 정체성은 다른 것이니까요. '대부분의 글'을 읽으셨다니 놀랍습니다.^^;

jouissance 2007-03-0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교수가 발표한 '대부분의 글'을 읽은 게 아니라, 제가 읽은 김교수의 글에 한에서 '대부분'이 그랬다는 말입니다. 근데 로쟈님, '시인 김승희'가 역량에 비해 평단에서 너무 홀대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외도를 많이 해서 그런가^^

로쟈 2007-03-04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이 양반은 크리스테바의 기호분석론 같은 걸 시텍스트 분석에 적극 도입하려고 해서 좀 '현학적'인 게 나오지요. 그리고 '시인 김승희'는 소월문학상을 이미 수상했고 아마도 '서정주 문학상' 정도만 남은 듯한데, '홀대'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소설가로서도 좋은 평을 받았었고. 그보다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시인, 작가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jouissance 2007-03-05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동년배의 여성 시인들 중에서 '김승희'를 특별히 좋아합니다(그냥 취향이 맞아서요^^) 애독자로서 비슷한 연배의 최승자, 김혜순, 고정희에 비해 비평가들로부터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문학상 수상 경력(소월, 고정희 문학상)과 평단의 주목은 별개일 수 있습니다. 발표된 시인론을 예로들면 되겠네요. 비교해보면 아시겠지만 저 세 시인들보다 상대적으로 편수가 적답니다. 가벼운 연구 책자 정도는 나올 법도 한데 아직 없구요(예컨대 '작가세계', '깊이읽기', '문학앨범'...뭐 이런 시리즈 말입니다) 그래요, 그보다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시인,작가들이 훨씬 많지요. 아마 이런 저의 불만은 애독자의 편향된 시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면 거의 정확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