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이런저런 기사들을 읽고 옮겨놓는 것이다. 더구나 며칠 전에 읽은 기사라면 불은 라면 먹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얼마전부터 '6월민주항쟁20주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상상변주곡’가 열리고 있는데, 총 9회에 걸쳐서 이루어질 이번 토론회는 현재 두 차례 진행되었다. 도정일 교수에 이어서 발제자로 나선 이는 문화평론가 진중권씨인데, 컬처뉴스의 관련기사와 함께 그 발제문 '신체의 지질학'을 옮겨놓는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돌입한 한국사회 정치의식의 변화추이를 '지질학'적 시각으로 포착하고 있는데, 그의 강점이 '진중함'에 있다기보다는 '순발력'에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그는 담론의 유희가 무엇인지 아는 평론가이다).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두 번째 행사가 지난 5월 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렸다.

컬처뉴스(07. 05. 04) 새로운 '몸'을 어떻게 볼 것인가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두 번째 시간(5월 3일)은 진중권 문화평론가의 발제로 시작됐다. 진중권 평론가는 「신체의 지질학」이라는 발제를 통해 농경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정보화 사회로 돌입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특징과 변화된 ‘정치의식’을 분석했다.

 

 

 

 

 

 

 

 

 

 

진중권 평론가는 “급격한 지각 변동이 지질학적 지층에 고스란히 기록되듯이, 급격한 사회 변동 역시 한국인의 사회적 신체 안에 고스란히 축적”되는데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를 거쳐 정보사회로 변모하는 것이 반세기도 안되는 동안에 이뤄”짐으로써 “한국사회 안에는 농경사회의 신체와 산업화의 신체, 정보사회의 신체가 공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은 “생존을 걸고 싸우는 처절한 투쟁으로서의 정치와 일종의 퍼포먼스의 성격을 띤 놀이로서의 정치가 공존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시위 모습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 같은 두 가지 형태의 정치가 공존하는 것은 압축성장으로 인해 한국사회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민중운동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NL’과 ‘PD’의 대립과 관련해서도 ‘신체의 차이’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NL은 “산업화 과정에서 몰락한 농민들의 좌절감, 개발에서 배제되어 낙후된 농촌지역의 소외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로 위협받는 농민계급의 위기감 등을 미제에 대항하는 민족주의로 승화시킨 것”이며, PD는 “7~80년대에 이루어진 산업화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혁명가들이 갖춰야 ‘철의 규율’은 무기물(철)을 유기적 신체의 모범으로 삼는 산업화의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NL과 PD의 대립은 두 개의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실은 두 개의 다른 신체의 대립”이라는 것이다(*그 신체는 물론 '농민의 신체'와 '노동자의 신체'로 일반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세계적으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행은 역사의 종언, 서사의 종언, 정치의 소멸, 그리고 주체의 죽음과 같은 문자문화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을 완료한 한국 역시 “정보가 재화가 되고, 상품이 비물질화하고, 소비가 기호화하고, 생산이 정신화하고, 노동이 오락화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보사회의 특징은 “그저 지적인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력의 수준이 과거의 산업적 신체와는 다른 신체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보적 신체를 가진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의 변화된 정치의식은 이러한 탈문자화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표가 있다고 믿지 않”으며 “그들에게 미래는 그저 SF의 시간일 뿐이고, 역사는 그저 퓨전사극의 배경일 뿐”이다. 때문에 “이것을 단지 젊은 세대의 ‘보수화’로만 볼 수 없으며, 진보나 보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완전히 차원이 다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방송 3사의 고구려 드라마를 예로 들면서 “문자로 씌어지는 역사가 사라진 곳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신화가 등장하고 있”으며 “텍스트로 무장한 386세대의 역사적 의식은 디지털 영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신화적 의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 토론에서 손석춘 전 한겨레 논설위원은 “NL이 우리사회에서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북쪽에 전쟁위협을 가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유지되고 있고 한국사회에 미치는 규정력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며 “농경 신체적 특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비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보사회에서의 노동자계급 해체논리와 관련해 “노동자계급의 단결 문제는 새삼스럽게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며, 그 해체논리에는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준영 문화평론가는 “농경사회 신체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진중권 선생이 말한 요즘 세대가 가진 정보사회의 신체가 불과 10년 만에 확고하게 형성될 수 있는가에 의문이 생긴다”며 “90년대 이후 대학가에서 발견한 변화된 모습은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라기보다는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 세대들이 소시민화되는 경향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진중권 평론가는 “정보사회가 빠르게 우리사회에 흡수될 수 있었던 것은 문자문화의 전통이 짧고 낙후돼 있었기 때문이며, 농경사회에서 남아있던 구술문화, 다시 말해 소리와 이미지를 기억하는 신체는 바로 인터넷이라는 기술과 만나면서 급속하게 이입됐다”고 답했다. 그 밖에도 ‘황우석 사태’에서 보여준 젊은 세대들의 ‘디지털파시즘’의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와 연관돼 산업화 시대로 역행하고자 하는 ‘보수화’된 젊은 세대의 경향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위지혜 기자)

진중권 (문화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  신체의 지질학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거기서 다시 정보사회로. 이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반적 변화의 양상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 모든 변화가 한국에서는 유례없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변모하는 것이 반세기도 안 되는 동안에 이루어진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급격한 지각의 변동이 지질학적 지층에 고스란히 기록되듯이, 급격한 사회의 변동 역시 한국인의 사회적 신체 안에 고스란히 충적되어 있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은 19세기에 일어났다. 그래서 서구인들에게 농경사회는 아득한 역사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한두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바로 농경사회의 추억과 연관된다. 거의 모든 인구의 가정에 농경사회의 신체를 가진 이가 존재한다. 신체는 늘 자신을 재생산하려는 경향을 보이기에, 산업사회로 이행을 완료한 다음에도 농경사회의 기억이 가까운 사회의 성원들은 몸속에 여전히 농경사회의 습속을 갖고 있게 된다.

다른 한편, 근대화의 흐름에 뒤쳐져 식민통치를 겪었던 뼈아픈 역사적 경험은 한국인들을 미래주의적으로 만들었다. 황우석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에 대한 믿음은 한국에서 거의 종교적 신앙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국은 사회의 일반적 발전 수준 이상으로 IT 인프라가 발달해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의 신체는 온갖 디지털 기기와 결합되어 있다. 한국인의 몸은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사이보그화한 신체가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한국전쟁 후에 일어난 사회운동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이승만 정권의 붕괴는 신체의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능에서 비롯된 정치적 현상이다. 신체의 ‘근대화’에는 크게 두 가지 과제가 따른다. 첫째는 사회 성원들을 자율적 판단과 행위의 능력을 가진 독립적 인격으로 바꾸어 놓는 민주화의 과제이고, 둘째는 그들의 신체를 자연에서 떼어내어 기계와 결합시키는 산업화의 과제이다.

이승만 정권은 이 두 과제 중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비록 미국식 민주주의의 형식을 취했지만, ‘국부’라는 호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승만 정권의 통치 스타일은 외려 봉건적 군주제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정권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부패와 비효율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4.19 혁명은 결국 시민들이 막연하게 느끼던 정치적, 경제적 근대화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4.19 혁명 이후 내각제를 받아들인 것은 나름대로 대통령제의 제왕적 성격을 수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민간정부에서 수립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4.19가 그저 정치적 혁신의 운동에 그치는 게 않고, 경제적 산업화를 포괄하는 폭넓은 의미에서 근대화 요구라는 것을 그 정부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혁명으로 수립된 준비 안 된 정권이 이 두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기란 불가능했고, 바로 그 좌절에서 탄생한 것이 5.16 쿠데타였다.



민주화 없는 산업화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전략은 ‘민주화 없는 산업화’였다. 박정희가 즐겨 사용하던 ‘인간개조’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의 시급한 문제는 신체를 자연에서 떼어내 기계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저곡가 정책 등 박정희 정권이 도입한 이농정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해방 후 90%에 이르렀던 농민의 비중은 그 후 급속히 감소한다. 자연을 등지고 도시로 올라온 신체들은 군사정권의 군대식 훈육을 통해 폭력적으로 기계와 결합하게 된다.

한편, ‘인간개조’는 남한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 역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서는 사회개조, 자연개조와 더불어 무엇보다 ‘인간개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주화 없는 산업화라는 점에서 북한의 성과는 적어도 60년대까지는 남한의 것보다 더 눈부셨다. 하지만 경제적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체제의 유지를 위해 농경적 신체의 봉건적 충성심을 온존시켰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가진 그로테스크한 특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산업화의 초기 단계에는 군대식 훈육이 어느 정도 작동한다. 노동력의 단순투입으로 생산력을 제고하는 단계에서는 군대식 충성심을 가진 기계화한 신체야말로 외려 효율적이다. 하지만 사회의 생산력은 결국 사회 성원 개개인의 수행능력(이른바‘노동력의 질’)에 달려 있다. 게다가 노동력의 단순투입에는 절대적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산업화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외려 군대식 신체가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사회 민주화의 요구는 이때 터져 나오게 된다.

박정희의 죽음과 더불어 ‘민주화 없는 산업화’의 시대는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두환 정권은 역사에서 반동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이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폭압적인 통치를 행했지만, 경제의 영역에서만은 국가통제에서 벗어난 자유주의 정책을 편 것은 데에 주목해야 한다. 한 마디로, 당시의 산업의 발전수준에 맞는 개혁을 도입하되, 그것이 민주화로 확산되는 것을 폭압적으로 막으려 했던 것이 전두환 정권의 존재이유였다.

민중운동
하지만 그런 봉합의 시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는 6월 항쟁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6월 항쟁을 주도한 것이 학생과 넥타이 부대였다는 것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자유주의를 경제의 영역에만 가두어둘 것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라는 요구로 볼 수 있다. 물론 민주세력의 분열로 노태우 정권이 등장하고, 이로써 군사정권은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계속되었지만, 이미 그때부터 통치는 연성화하기 시작한다.

이어 87년 6월 항쟁으로 열린 정치적 민주화의 분위기 속에서 그 동안 가장 억압을 받아왔던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다. 이미 운동의 이념화는 80년대에 급속도로 진행되었지만, 그것의 계급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88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일이다. 다른 한편, 민주화로 인해 열린 비교적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념적 금기를 깨려는 시도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이다.

하지만 80년대 말에 일어났던 동구권의 몰락과, 북한 사회의 답보 내지 퇴보는 너무 늦게 나타난 이런 이념운동의 싹을 잘라 버렸다. 사회주의권의 급작스런 붕괴는 이념세력으로 하여금 자기 혁신을 통해 현대화를 할 틈을 주지 않았고, 역사적 텔로스를 잃어버린 이념운동은 곧 불어 닥친 포스트모던의 탈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혹은 30년대에나 어울릴 구태의연한 수사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박제가 되어갔다.

NL과 농경적 신체
민중운동의 두 기둥은 실은 한국사회가 거쳐 온 두 개의 발전단계, 그 과정에서 형성된 두 개의 신체를 대표한다. NL은 농경적 신체의 이데올로기다.
산업화 과정에서 몰락한 농민들의 좌절감, 개발에서 배제되어 낙후된 농촌지역의 소외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로 위협받는 농민계급의 위기감 등을 미제에 대항하는 민족주의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NL의 이데올로기다. 게다가 NL 이념에 원형을 제공한 북한 체제 자체가 농경적 특성을 온존시킨 봉건사회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

NL적 신체들이 산업화 이전의 농촌공동체 정서를 가지고 있음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조직화를 하기보다 ‘관계 맺기’를 활용하고, 논리적 설득보다 정서적 ‘감동’을 강조하고, ‘품성’이나 ‘의리’와 같은 전근대적 수사법을 사용하는 것은 문자문화가 이전의 구술문화에 속한 신체들의 전형적 특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렸던 신학철 화백의 그림, 즉 농부가 쟁기로 미제 문화를 몰아내는 그림은 NL적 신체의 이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NL의 이상 속에는 미국에 반대한다는 네거티브한 요소와 산업화로 잃어버린 공동체적 삶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라는 포지티브한 요소가 공존한다. 80년대 운동권에서 NL이 주류로 떠오른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것은 한국인들 신체가 여전히 농경문화에 젖어있음을 말해준다. 해방 직후 한국 사회의 문맹률은 90%에 달했다. 오늘날 문맹자는 거의 없게 됐지만, 문자문화로의 진입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의 신체는 여전히 구술문화의 특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

PD와 기계적 신체
PD는 7~80년대에 이루어진 산업화의 정서를 대변한다. 재미있는 것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이들도 역시 ‘군대’의 은유를 즐겨 사용했다는 것이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로 시작되는 인터내셔널가의 번역에는 기계와 결합한 노동자의 군대적 신체가 세계를 해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농업생산과 달리 신체를 기계에 맞춰야 하는 산업생산에는 규율이 필요하다. 그것이 또한 혁명가들이 갖춰야 ‘철의 규율’이 된다. 이 표현에는 무기물(‘철’)을 유기적 신체의 모범으로 삼는 산업화의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

PD는 문자문화의 전형이다. NL이 인간을 믿는다면, PD는 텍스트를 믿는다. 그들은 인간관계보다 사상서적을 더 신봉한다. 이들에게는 품성보다는 논리가 중요하고, 의리보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 농경적 신체에게 이런 태도는 당연히 ‘차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논리보다 정서를, 원칙보다 인간미를 더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그 영향력이 일정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NL과 PD의 대립은 두 개의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실은 두 개의 다른 신체의 대립이다.

문자문화의 소산인 PD는 세계와 문자의 동일성을 굳게 믿는다. ‘자본주의를 알고 싶은가? 그러면 자본론을 읽으라.’ 이것이 문자문화의 상식이다. 하지만 80년대 말에 있었던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이들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무너진 것은 사회주의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자본주의)=텍스트(자본론)’이라는 믿음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때부터 텍스트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고, 이들은 대거 ‘텍스트 바깥은 없다’는 포스트모던의 정신적 분위기 속에 빠져들게 된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역사주의’는 문자문화의 산물이다. 텍스트는 선형적이어서 거기에는 처음이 있고, 또한 끝이 있다. 창세가 있고, 종말이 있다. 가장 위대한 책인 성서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묵시론으로 끝난다. 마르크스의 역사도 원시공산주의에서 시작하여 발달한 공산주의사회로 끝난다. 포스트모던은 이런 문자문화적 사고방식의 종언을 의미한다. 종교적 의미에서든, 세속적 의미에서든 사람들은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적(telos)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역사의 종언, 서사의 종언, 정치의 소멸, 그리고 주체의 죽음. 서구 자본주의가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산업혁명기에 형성되었던 문자문화의 역사주의는 종말을 고한다. 이것은 그저 지적인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력의 수준이 이전과는 다른 신체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담론의 변화는 토대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를--앞서서 혹은 뒤늦게--반영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사회주의권 몰락의 충격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사회에서도 ‘탈정치화’는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90년대 이후 한국이 정보사회로 진입한 것과 관련이 있다. 한 사회의 노동인구 중에 재화의 직접적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에 종사하는 이들의 비율이 절반을 넘을 때, 그 사회를 ‘정보사회’라 부른다. IT 분야에서 선두권에 속하는 한국은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을 완료했다. 정보가 재화가 되고, 상품이 비(非)물질화하고, 소비가 기호화하고, 생산이 정신화하고, 노동이 오락화하는 사회는 당연히 과거의 산업적 신체와는 다른 신체를 요구하게 된다.

미래의 노동자계급
한때 인구의 90%를 차지하던 농민계급은 오늘날 인구의 10%로 줄어들었다.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이 농민계급을 해체시켜 버린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다시 정보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 역시 해체의 운명을 맞는다. 노동계급의 힘은 시간과 공간의 동일성에 기반한 조직력에 기초한다. 하지만 미디어는 시간과 공간의 동일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조직’이라는 말은 고루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 대신 새로운 관계맺음의 방식, 즉 네트워크가 등장한다.

산업사회에서는 산업노동자가 세계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정보사회에서 주요한 가치는 정보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이미 산업 노동자의 다수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여 주변화하고 있다. 그들의 대다수는 ‘계급’이라는 이름의 집단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위탁업체와 개별 계약을 맺어야 하는 고독한 노마드로 존재한다. 한편, 노동계급 중의 상층부는 일종의 ‘엔지니어’ 혹은 ‘매니저’로 특권화한다. 이런 시대에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란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블루칼라는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며 정보사회에 필요한 디지털 반사신경을 발달시키고 있다. 미래의 화이트칼라는 고학력을 가지고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이른바 ‘R&D’에 몰두하고 있다. 이 새로운 노동자들을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산업사회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의 욕망을 과연 산업혁명기에 형성된 ‘계급의식’이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낡은 좌파 이념을 리사이클링하는 것만으로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사회의 정치의식
빌렘 플루서는 정치를 ‘저개발의 정치’와 ‘과개발의 정치’로 구별한다. 저개발의 정치는 생존을 걸고 싸우는 처절한 투쟁으로서 정치다. 과개발의 정치는 일종의 퍼포먼스의 성격을 띤 놀이로서의 정치다. 이미 우리는 거리에서 두 가지 형태의 시위를 본다. 파이프와 화염병이 난무하는 투쟁으로서 시위. 그리고 문화 콘서트와 함께 열리는 촛불 집회. 한국에 저개발의 정치와 과개발의 정치가 공존하는 것은, 압축성장으로 인해 한국사회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티조선 운동은 네티즌들이 즐기는 가벼운 오락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노사모 운동은 온오프를 넘나드는 일종의 버추얼 리얼리티 게임으로 존재했다. 탄핵반대시위는 거대한 종합예술의 퍼포먼스로 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놀이로서의 정치, 즉 과개발의 정치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과잉진압으로 농민이 사망하고, 절망한 노동자가 분신을 하고, 시위대와 경찰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저개발의 정치가 공존한다. 시위를 하는 취향의 차이는 당연히 신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농경적 신체는 애써 기른 농축산물을 거리에 뿌려대며 절망감을 표현하고, 산업적 신체는 군대를 방불케 하는 조직적 전투로써 항의를 표현한다. 반면 정보적 신체는 비(非)물질적이어서 이런 저항의 물리적 방식에 거부감을 갖는다. 농경적, 산업적 신체에게 정치란 육체의 생존이 걸린 진지한 행위이나, 정보적 신체에게는 정치마저 비(非)물질화한 채로 가상, 유희, 오락의 영역에 편입된다. 저개발의 정치는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과개발의 정치는 이미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대선은 보수신문이라는 활자매체 대(對) 방송과 인터넷이라는 영상매체의 대립으로 치러졌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인쇄의 정치 대신에 영상의 정치가 들어선다. 공약은 흑백이다. 그것은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로 적힌다. 반면 이미지는 칼라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보라색과 초록색의 이미지뿐이다. 그 선거는 철저하게 가상으로 치러졌다. 문자로 공약을 하던 진지한 정치는 이제 시각적 스펙터클을 동원한 판타지의 정치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역사에서 신화로
역사는 문자문화의 소산이다. 문자문화의 종언과 더불어 역사주의 의식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정보적 신체를 가진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표(telos)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해방된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현재를 위하여 과거에 있었던 피억압의 기억을 조직해야 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그저 SF의 시간일 뿐이고, 역사는 그저 퓨전사극의 배경일 뿐이다.

시간이 클릭할 수 있는 공간이 될 때, 시간의 선형성에 대한 믿음도 약화된다. 그들에게 세계는 역사의 진행이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의 영겁회귀일 뿐이다. 때문에 정보적 신체를 가진 젊은 세대가 역사의식을 갖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것이 텍스트 세대의 눈에는 ‘보수화’로 보일지 모르나, 이것은 진보나 보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완전히 차원이 다른 현상이다. 진보/보수의 이항대립은 선형적인 역사관을 전제하나, 정보적 신체는 이미 그 지평을 떠났기 때문이다.



문자로 씌어지는 역사가 사라진 곳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신화가 등장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정치인과 학자들이 문자로 역사를 고쳐 쓸 때, 한국에서는 PD와 작가들이 미래주의적으로 역사를 영상으로 극화하고 있다. 방송 3사의 고구려 드라마가 일깨워준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의식’이 아니다. 판타지로 이루어진 황홀한 환각의 체험이다. 텍스트로 무장한 386세대의 역사적 의식은 디지털 영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신화적 의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07.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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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뮤지션 2007-05-07 23:22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분석입니다. 사회의 성격 변화에 대한 진단을 그의 전문 분야의 언어로 훌륭하게 '변주'해내어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NL과 PD에 대한 언급까지 잊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진중권은 자신을 배출한 '신체'에 대한 소속감을 은연중에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같습니다. (의외로 안 그런 것 같은 사람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자신이 배운 학문을 발판 삼아 그 학계의 지루한 풍토에 젖어들지 않고, 저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 결국 다 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네요.. ^^;

로쟈 2007-05-07 23:36   좋아요 0 | URL
그런 부러움은 천재뮤지션님의 닉네임과는 잘 안 어울리는 듯한데요.^^
 

어제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정간물실에서 잠시 문학잡지들을 훑어보았다. 걔 중에는 <21세기문학>(2007년 봄호)도 껴 있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인문학 위기에 관한 기획좌담을 읽어보았다(실은 그 좌담자의 한 사람이었다). 사회자의 표현을 빌면, '인문학 임파서블 시대'의 인문학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 다른 두 분 선생님들과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나눈 자리였다. 생각난 김에 내가 거들었던 대목들만 추려서 창고에 넣어둔다.    

■ 최근 인문학 서적의 출판 동향

제가 출판동향 분석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기존의 인문학에 대한 도전’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문학 서적의 새로운 수용자를 찾으려는 움직임, 소위 ‘쉬운 인문학’의 유행입니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처럼 인문학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반인들,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인문학의 희망을 나누려는 움직임도 있죠. 그런데 쉬운 인문학이 급증하는 현상은 논술시장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두 번째는 ‘제 3의 문화’인데, 일련의 자연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인문학자들도 포함시켜서 일종의 인문학과 자연학 사이의 구분, 곧 ‘두 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존 브록만 같은 편집자와 리처드 도킨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인문학자(New Humanists)’라고 부르더군요. 국내에서도 최재천․도정일 교수의 <대담> 같은 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디지털 미디어와 인문학의 접속입니다. 소위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인데, 인문학 분야 가운데서는 가장 ‘돈 되는’ 축이 아닌가 싶습니다. 끝으로 정신분석학의 도전, 혹은 대중화를 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문학비평뿐 아니라 영화비평 쪽에서 라캉과 지젝 같은 이론가들의 작업이 활용되고 있지요. 아카데미즘 내부에서는 아직 비주류이지만 대중문화 비평이나 대중적인 채널 속에서는 이런 정신분석학 계열의 책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인문학 위기 담론


사실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이 제도적인 문제이고 학문 후속 세대와 관련된 문제이지요. 인문학과 내부에서도 서로 이해관계가 상당히 다르고요. 어문계열만 하더라도 영문과 중문과 독문과 불문과 등등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죠.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 좋은 영문과나 중문과는 전혀 위기의식이나 문제의식을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볼 때는 인문학 전공자들의 생계와 관련된 문제도 얽혀있죠. 같은 전공자라 하더라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또 같은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학진(학술진흥재단)에서 제도적인 지원을 받고 있느냐 안 받고 있느냐에 따라서 서로 입장이 다르지요. 언론에서는 크게 뭉뚱그려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각자 자기의 소속이나 지위에 따라서 ‘위기의식’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멘토로서의 인문학


저는 포커스를 다른 점에도 맞추고 싶은데요. <천개의 공감>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독서치료, 문학 치료, 영화치료, 음악치료 이런 것들이 유행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 듯해요. 최근에는 문학이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이러한 문학 치료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소설을 읽으면 정서적 불안이 해소되고 시를 읽으면 우울증이 해소되고 이런 식입니다. 이것은 인문학을 굉장히 ‘실제적인 요구’에 맞추는 행위이기도 해요. 인문학에 대한 대중과 출판계의 요구도 아마 이런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겠죠.

 

 

 

 

 ■ 정서산업과 인문학

이게 한국적 문화코드예요. 신경증이라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 아닌가요. 프로이트 말대로라면 현대인은 모두 노이로제 환자이기도 하구요. 한국사회에서는 정신과에 가는 데 여러 가지 심리적∙문화적 장벽이 있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통해서 적절히 제어하는 거죠. ‘인문학의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부분이 다뤄져야 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인문학의 운명이 최근의 산부인과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출산율 저하되면서 산부인과 광고가 전부 피부관리, 비만관리, 보톡스 이런 거예요.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인문학도 보톡스 인문학, 체형관리 인문학, 피부관리 인문학 이런 식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문학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또 요즘은 그런 걸 요구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인문학의 생존술?


그렇죠. 한데 체형관리, 피부관리가 산부인과 본래 목적은 아니듯이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슬림’하게만 만드는 것이 과연 인문학의 본업에 맞는 일일까 의문은 갖게 됩니다. 제가 아는 전통적인 인문학은, ‘이렇게 살면 행복하다’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를 스스로 반문해보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인문학 자체가 원래 인간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요? 나의 안락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 그런데 요즘 유행하고 있는, 또 한편에서 요구받고 있는 인문학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위무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이게 인문학의 살길로 포장되고 있고. 새로운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이거야말로 반(反)인문학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 배고픈 인문학


예전에 인문학은 배부른 학문으로 유한계급의 학문이었죠(*혹자는 '왕후장상의 학문'이라고 했다). 이제는 전형적으로 배고픈 학문이 되었어요.(웃음) 요즘 학문 후속 세대들은 수료 이후에 학위까지 받고 10년, 길게는 20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로 버텨야 하거든요. 이것이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가장 실제적인 이유지요. 제가 간혹 동창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보면 이야기의 결론은 다 부동산이더군요. 그런 부동산-테크가 없는 저로선 뭐 할 얘기도 없고 끼워주지도 않아요. 인문학자들이 저마다 고상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한가하거나 한심하게 보이는 거죠. 이제 이런 인문학의 형편이 들통 나는 바람에 더 이상 사회적 존경도 유지할 수 없는 그런 처지죠. 비관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위기 타개는 그런 정직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라이프 스토리

 

중학교 때부터 서점 순례가 취미였어요. 집에 가기 전에 동네 서점 다 둘러보고 들어오는 게 버릇이었는데, 늘 새 책이 별로 없어 본 책 또 보면서 반복적인 서점 순례를 했었죠. 그런 서점 순례 습관이 계속 이어지다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다보니 서점 순례를 인터넷 공간에서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건 단순히 인터넷 탓만은 아니구요. 모든 생산이 위기에서 비롯되잖아요. 제 경우도 비슷합니다. 대학에서 박사과정 수료하고 결혼했는데(제가 원래 현실감각이 좀 없어서요), 상당히 암담하더군요. 담벼락에다 과외광고 붙이고 다니고 학원강의도 뛰고 그랬죠. 저대로는 위기국면이었는데 그렇다고 별수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할 줄 아는 게 책읽기밖에 없어서 그거 가지고 버티다 보니까 어느 순간 다른 구멍으로 빠져나오게 되더군요.


■ 인문학 위기가 아니었다면?


논문만 써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논문 쓰는 것 좋아합니다.(웃음) 러시아 문학 같은 경우 국내 연구진들이 뭐든지 연구만 하면 ‘최초’일 경우가 많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최초의 단행본 연구서가 작년에 나왔을 정도니까요. 러시아 문학이 번역은 꽤 되었지만 제대로 된 연구서는 여전히 빈약하죠. 연구인력도 부족하고요. 한데, 제도적인 뒷받침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관심도 돌보랴 생계도 유지하랴 정신없죠.(웃음)


■ 글쓰기와 인문학


프랑스 같은 경우 유명한 정치인 같으면 나름대로 역사서든 소설이건 내야지 자기자 제대로 된 정치인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예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까요.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든 철학서 역사서를 쓰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가 된다면 말이죠. 사회적인 동의도 필요하고, 붐도 있어야 하지만, 그저 자동적으로는 안 되죠.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과 글쓰기의 강제도 필요한 것 같아요.

 


■ 인문학과 소통의 어려움


분과 학문 체계를 어차피 넘어서기로 했다면 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문화 콘텐츠 학과도 생기고 문화 콘텐츠 진흥원도 생길 정도로, ‘문화 콘텐츠’라는 말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죠. 그런데 실제로 ‘본토’에서는 안 쓰는 말이라네요. ‘문화산업’이라고 더 많이 쓰고요. 그런데 이게 한국적인 용어로 ‘문화 콘텐츠’란 말이 상용화된 거죠. 그러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이런 게 붐을 이루고 있고요. 더불어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들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제 생각엔 학제간 연구 자체가 기이한 알리바이입니다. 기존의 학과 구분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면 경계를 부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잘은 모르지만, 동경대 같은 경우 표상문화학부 이런 식의 편제가 있더군요. 나름대로 파격적이죠. 좀 더 파격적으로 학제간 연구를 재구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끝으로 덧붙이자면, 오늘 좌담의 주제가 계속 인문학의 ‘대중적 소통’에 맞춰지고 있는 듯한 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문학 자체가 ‘소통 불가능성’ 내지는 ‘소통의 어려움’ 자체를 탐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쉽게 소통되지 않는 부분이야말로 인문학의 독특한 관심 아닐까요?..

 

07.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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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9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막간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력 사건과 관련한 칼럼 두 개를 옮려놓는다(사건은 김회장이 구속되는 선에서 조만간 마무리될 모양이다). 사건 자체야 어처구니 없지만(사실 더 뉴스거리가 될 만한 건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태도였다), 과연 그게 국민적 에너지를 투여할 만한 일인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인민재판식 여론몰이 또한 국외자적 시각에서 보자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인 코드'와 관련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한국인 코드'가 새삼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뒷맛은 씁쓸하다. 아래는 그런 씁쓸함을 되새기게 해주는 칼럼들이다.  

문화일보(07. 05. 04) 미국과 다른 한국의 문화

한국에 20여년 살면서 한국인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집단적으로 무척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좋게 말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뜻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집단편집증 같기도 하다.

우선, 2002년 당시 효순·미선 양 사건을 돌이켜보자. 그 꽃다운 여학생들의 불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 뒤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미군 운전병이 그 학생들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불행한 사고가 마치 주한미군, 나아가 미국 전체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반미감정 차원으로 비화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근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사건이 터지자마자 미국 정부는 가장 먼저 조승희 부모의 신변 보호에 들어갔다. 사건 초기 한때 재미 한국인들에 대한 보복 우려가 제기됐지만 기우로 끝났다. 한국교포가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발상은 어떻게 보면 한국인 스스로의 피해 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오히려 조승희 가족도 피해자라면서 동정론까지 펼쳤다.

한국인인 아내와 함께 미국이나 유럽여행을 하던중 전철이 고장나 발길이 묶인 적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 사고가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면 이용객들은 묵묵히 전철이 출발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내는 한국에서라면 벌써 전철 역무원과 거친 목소리가 오갔을 것이라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은 미국에서라면 이렇게까지 1주일 이상 전국이 들썩거릴 정도로 난리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김 회장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별적인 사안인 이 사건을 마치 한국 대기업 전체의 문제, 나아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립구도 식으로 몰아가는 듯한 움직임은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본인이 술집에서 얻어맞으면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참았을 것이라고 한다. 술집 배후의 조폭 보복이 무섭기도 하거니와 술집에서 얻어맞아 이마를 10바늘 꿰맸대서 그것을 법에 호소한다고 쉽게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 문제로 가면 달라진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은 자식 사랑이 지나친 어느 아버지의 성급한 과잉대응이 아닐까.

한국인들의 끔찍한 자식 사랑은 사실 유별난 데가 있다. 한국인 아버지들은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내심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자문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속마음은 깊이 감추고 돌연 이 사건을 대기업 총수의 문제로 보아 가진 자와 힘 있는 자가 당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과연 이번 사건을 막강한 대기업 총수 대 무력한 술집 종업원이라는 전형적 이분법의 틀에 담는 게 바람직한 자세일까. 미국인들은 조승희 사건에 대해 민족·인종·계급의 문제와 무관한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면서도 그 사회·문화적 맥락을 차분히 따져보는 성숙한 자세를 보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우선 개별 사안이라는 전제를 분명히한 뒤 혹시 그 배경에 있을지 모를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생각해보는 게 문제 해결의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다섯살 때 하루는 동네 형에게 얻어맞고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아버님의 동정을 살 요량으로 울어보았지만, 아버님은 오히려 내게 다시 가서 그 형을 때리고 오든지 아니면 당신한테 한 대 더 맞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게 아닌가. 물론 나는 몽둥이를 숨기고 그 형을 불러내 한대 때리고 줄행랑을 쳤다. 그 형의 몸집이 아버님의 절반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아무리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도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에릭 함슨 / 명지대 교수·영문학)

한겨레(07. 05. 07) 김승연 회장은 곧 잊혀진다

“당신들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내 생명도 소중합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제발, 제발 …” 참수를 당하기 전 화면에 비쳐진 고 김선일의 절규 앞에서 전율을 느꼈었다. 온나라가 아니 온세계가 다 그러했을 것이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 사건은 또 어땠을까. 희대의 줄기세포 사건, 황우석 교수 얘기는?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겠다. 바로 얼마 전, 눈동자 너머로 깊은 우물이 패어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줬던 총기 난사범 조승희의 동영상을 보던 심정은 어떠했던가.

사건·사고라는 이름으로 세론에 떠오르는 온갖 ‘세상의 일들’은 언제나 늘 그렇게 터지고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일까. 김승연 사건, 정확한 명칭으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부자의 보복폭행 의혹사건’이 휩쓰는 세상 속에서는 버지니아의 조승희도 서귀포의 양지승 어린이도 벌써 까마득한 옛일 같기만 하다. 냄비근성에 대한 탄식 못지않게 인간사가 본래 그렇지 뭐, 하는 체념이 앞서기도 한다. 날마다 일정 분량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듯이 사람은 늘 일정한 감정 격발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감정’ 문제다. 더 정확히 속내를 드러내자면 감정‘만’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가 하는 자기반성이 그것이다.

김승연 회장 사건을 언론에서 처음 접했던 순간에는 자동반응처럼 특권층의 초법적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 정도 갖춘 사람이 그런 수준의 보복행동으로 대응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경멸감이 일었다. 그 와중에 택시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기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매섭고 날카로웠다. 그는 사건의 내역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그 내역을 빌미로 해서 자신의 분노를 토로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보세요! 저 악질 기업가가 정말 나쁜 일을 저질렀어요!’쯤을 외치는 듯이 전달되어 왔다. 보도라는 공적수단을 통해 한 인격체가 저렇게 매도되어도 되는 것일까. 더욱이 수사가 확정되기도 전에. 기자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폭력을 휘둘렀다는 ‘회장님’에 대한 동정이 치미는 기분은 참 미묘했다.

김수영의 시 ‘풀잎’에서 풀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묘사된다. 학교시절에 그 풀은 민초를 뜻한다고 배웠다. 과연 민초가 그러한가. 한국의 언론보도가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고 더 먼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긴 언론의 선정주의는 말하기도 지겹다. 과당경쟁 상황에서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렇게 과잉되게 ‘울고불고’ 해야 반응이 오는 사회심리에 더 큰 탓이 있는 것도 같다.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는 불의 연료는 감정이다. 감정이 사건을 지배하는 한 그 사안에 종횡으로 연루된 복합적 성격은 규명되지 않으며, 은폐된 본질이 미처 토론의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이란 끊임이 없는 법이어서 새 사건이 이전 사건의 파장을 금세 뒤덮어 버리기 때문이다. 흥분 곧 감정격발의 연쇄상태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이다. 사회문제 관심 주기는 상상할 수 없이 짧다.

법 위에 올라서서 쇠파이프를 휘두른 당사자들은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금방 잊혀질 테니까. 선행폭력을 휘두른 이른바 술집 종업원(?)들은 희희낙락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불쌍한 희생자로 둔갑했으니까. 기자들은 슬슬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미 식상한 사안이 돼 버렸으니까. 그리고 국민은? 물론 또다른 사건으로 흥분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 늘 그래왔지 않은가.(김갑수 문화평론가)

07.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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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조간에 실리는 칼럼을 미리 읽어보았다. 경향신문의 기획연재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에 기고된 김우창 교수의 글이다. 김교수는 같은 지면에 고정칼럼을 연재하고 있는지라 '지식인 현실참여'의 의미를 짚어보고 있는 기고문을 이 기획기사와 관련하여 읽을 수 있는 건 낯설지 않다. 돌이켜보면, 지난 30여년간 한국사회에서 문학평론가로선 아마도 백낙청 교수 다음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온 분이지 않나 싶다. 그는 아래의 글에서 지식인의 현실참여, 지식과 정치의 결합이 갖는 본질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되새겨보고 있다.

경향신문(07. 05. 07)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Ⅱ-1. 지식인 현실참여, 그 복합적 의미

플라톤의 이상국은 지식인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근대 서구의 정치 변화에서 지식인은 중요한 선동자 또는 매개자가 되었고, 공산주의 정권에서는-정권의 관점에서 저울질하여-바른 지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이 통치자 그리고 정치의 수임자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특히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에서, 바른 도덕의 정치는 정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이상의 수호는 학문하는 자의 주요 사명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의 위치는 이러한 유학 전통의 학자, 서구의 정치 변화에서의 참여 지식인, 그리고 현대사의 민족의 수난에 대처한 애국지사들의 모델로서 정의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델은 본질적으로 플라톤이나 공자가 생각한 것이면서 거기에 저항적이고 비판적 기능이 첨가된 것이다. 현대국가는 이외에도 성격을 조금 달리하는 전문지식의 보유자-정책과 행정 연구자, 전문 관료, 그리고 기업 경영인, 근래에 와서 첨단과학기술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한다. 전문적 지식인의 필요는 날로 더 절실한 것이 되어 간다. 그러나 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을 말할 때, 그것은 대체로 이러한 전문적 지식인이 아니라 그 필요의 테두리에 영향을 미치는 더욱 전통적인 의미의 참여 지식인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참여 지식인의 역할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 지식에서 온다. 이들 지식인은 자신의 역할을 어떤 전문지식에 의해서라기보다 특별한 정치 이상과의 관계에 의하여 정의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정치에 일정한 방향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상을 분명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또 어떤 이상이 하필이면 특별한 지적 노력의 소산인가? 정치이상은 정치적 삶 일체를 하나로 통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사회의 현대적 발전의 한 의미는 바로 사회공간에서 삶의 통괄을 위한 이상이나 목적의 영역을 줄이고 삶의 수단의 신장을 위한 활동의 폭을 넓힌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적 부재의 사회에서 이러한 일반적 지식인의 기능은 모호하다. 목적의 부재는 사회적 아노미 그리고 사회의 불균형 발전의 원인이 된다. 이것이 지식인을 사회참여로 끌어낸다. 또 많은 사회에서, 수단-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파악되는 삶의 수단을 에워싼 갈등은 분배의 정의를 강력한 사회적 쟁점이 되게 한다. 정의는 전통 사회에서도 그 자체로 목적의 성격을 가졌었지만,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상에 이끌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람을 정치로 끌어들이는 동기의 하나는 억제할 수 없게 솟구쳐 나오는 원천적 정열로 보인다. 이 정열은 정치질서의 구성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한다. 모든 에너지는 명암을 가지고 있다. 정열의 인간은 강한 성격의 인간이다. 정치적 정열은 외고집, 독선, 그리고 전체주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 정열에서 나오는 정치 참여욕이 가장 세속적으로 표현된 것이 정치적 야망이다.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누가 대장부라 할 것인가”하는 남이(南怡)의 시 구절은 정치적 야망으로 인생을 규정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것이다.

조선조에서 도덕적 이상은 정치참여의 명분이었지만, 벼슬은 그 자체로 많은 학자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목표였다. “동문에 출세한 사람도 많은데, /나 홀로 춥고 가난한 가운데 떨어져 /나이 서른에 관직도 없는 나그네로, /동서를 헤매는 사람”-이규보(李奎報)는 유교가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관직 없는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쓴 일이 있다. 이러한 정치적 야망은 조선에서 벼슬 욕심으로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크고 작은 야망은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정치참여의 위험 요소를 나타낸다. 물론 이 위험은 다른 긍정적 업적을 위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대가라 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야망을 떠나서도, 현실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불투명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는 것을 말한다. 현실 참여는 현실의 논리에 가담하고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자연과학의 방법을, “정복하기 위해서 복종한다”는 말로 간략하게 설명한 일이 있지만, 이것은 사회를 정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현실을 개조하려는 이상은 알게 모르게 현실에 휘말린다.

역사에서 우리는 가장 이상주의적인 정치가 가장 권모술수의 활용을 서슴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의 권화가 되는 것을 본다.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이상은 현실과 대결하면서 그 스스로 이상 실현을 가장 천박하고 야만적인 전술을 위한 구실로 삼을 수 있다. 현실정치에 간섭하는 것은 언제나 현실정치에 의한 간섭이 될 가능성이 많다. 중국의 유학과 정치의 역사에서 “정치를 인간화하려 한 유학자들의 의도”는 “도덕적 상징들을 정치화하여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편리하게 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어떤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이상주의적 전통의 경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경계한다고 하여도, 지식과 정치의 결합에는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다. 사회 현실에 작용하려면, 그것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개입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을 체계화하는 데 능한 것이 지식인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의 힘을 넘어가는 독자적인 힘과 무게를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는 현실의 진상으로부터 괴리된 아이디어의 체계를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자신의 사회이론은 삶의 현실에 기초한 과학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만이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면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나아가 이데올로기를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데올로기일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해결 없는 패러독스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한 진실 허무주의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대하여 힘을 발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 이데올로기는 기존질서의 옹호로서 또 정치혁명의 수단으로서 효과를 발휘한다. 근대 세계사에서나, 우리 역사에서나 정치혁명은 늘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조 전체를 한 관점에서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부정의 관점은 긍정의 관점보다도 더 쉽게 전체를 드러내 보여준다. 구조의 긍정적 효과들은 작은 것들이 총계로서만 파악되는 데 대하여 부정적 측면은 쉽게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연결된다.

사회의 복합성은 부정에 의하여 단순화된다. 이것은 삶이 끝없는 세말사인 데 대하여 죽음은 하나의 사건인 점에 유사하다. 혁명적 전복의 시기에 사람이 필요로 하는 도덕도 정의(正義) 하나로 단순화된다. (정의는 다른 덕성에 비하여, 가령 인(仁)에 비하여 부정의 덕성이다.) 부정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역사적 과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어떤 역사적 순간에만 그리고 파괴의 작업에만 현실적 의의를 갖는다.

노무현 정부의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정부를 움직여 온 것은 일정한 진보적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전의 민주혁명의 이념들을 계승한 것이지만, 그보다도 더욱 추상화된, 그러니까 더욱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해진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도 혁명적 전복의 대상으로서의 현실이 약화됨에 따라 그만큼 현실 충격의 힘이 줄어들게 된 결과일 것이다.

거대 계획 중심의 정책 발상, 파당성을 강조하는 언어와 인사 정책, 움직이는 현재보다도 과거에 주의를 응고시킨 과거사 바로잡기 등-이 정부의 정책 발상들은 그 사고의 이데올로기적 추상성에 깊이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문제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합리적 사고력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빈부격차나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계속되는 자가당착적인 정책들은 현실에 즉하여 그리고 긴 숨결로 끈질기게 사고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긴 하나, 현실참여의 과실에는 궁극적 불확실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사회현실은 간단한 이념의 도면에 따라 또는 몇 개의 손잡이로 움직여지는 기계가 아니라 무수한 자유변수들의 종합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그것은 근년의 과학에서 말하는 바, 단선적 사고로 포착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이성적 연산(演算)을 넘어가는 것은 아닌, 복합체계에 비슷하다.

필요한 것은 하나로 있으면서 현실의 복합성에 조응하여 변화하는 유연한 이성에 이르려는 노력이다. 그에 이어진 도덕적 이상도 좁은 투쟁적 목표를 넘어 넓은 인간성 실현을 위한 윤리적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도덕적 이상은 종종 우리의 원한(ressentiment)의 한 표현일 수 있다. 이성의 사실적, 도덕적 명증성은 끊임없는 자기정화의 과정을 통하여서-야망으로부터, 사적인 정열로부터, 마키아벨리즘의 유혹으로부터, 또 독선과 오만으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함으로써만 근접된다. 이 명증성을 위한 노력은 지식인의 제1차적인 의무이지만, 지식인의 국가와 사회를 위한 봉사의 본령도 여기에 있다.(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07.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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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북커진이라는 새로운 형식 책(혹은 잡지)이 출간됐다. 혁명(Revolution)의 머릿글자를 딴 잡지 'R'이 그것인데, 매호 주제별로 묶인다는 첫호의 주제는 '소수성의 정치학'이다. “주변화가 지배적 척도에 의한 존재의 부차화를 가리킨다면 소수화는 그 척도로부터의 탈주를 가리킨다.”는 기획의 변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게 없지만 그것이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출간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거기엔 '물질적 노동'이 관여하기 때문에. 관련리뷰와 책을 낸 출판사 그린비의 유재건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5. 05) 권력·자본으로부터 탈주… 소수의 가치를 실험하다

“다수는 상대적으로 큰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의 결정을 의미한다. 백인, 성인, 남성 등 다수성이 지배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상태가 다수성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다수성과 소수성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수적으로 우세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 척도’를 쥐고 있기 때문에 ‘다수적 지위’를 차지한다. 반면 그 척도에서 벗어나 있는 자들은 비주류, 즉 소수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척도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여전히 ‘진행형’인 한국 사회에선 이같은 ‘소수성’이 다양한 형태로 양산되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위해 공유수면에서 추방당한 어민들, 안보를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한 평택 대추리의 농민들, 법체계에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추방당한 중증장애인들….

도서출판 그린비와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공동 기획한 반연간 인문사회지 ‘R’는 이처럼 권력과 자본에 의해 추방된 타자들에 주목한다(R는 alter(다른)+Revolution(혁명)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그간 ‘전체’를 위해 희생이 불가피한 ‘일부’로,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로 취급됐다. 그런데 이 ‘일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져서 우리 사회의 대다수 ‘대중’의 형상이 됐다. “전체를 위해 희생해야 할 ‘부분들’이 사실상 전체이고,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가 정상을 이루는 것”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의 연구원이 평택 대추리의 철거된 건물 위에 ‘모두가 소수자’ 라는 의미를 담은 깃발을 꼽고 있다. <도서출판 그린비 제공>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추장’인 고병권씨는 총론격인 ‘주변화 대 소수화:국가의 추방과 대중의 탈주’에서 이같은 문제의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난 10년간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대중들은 지속적으로 추방당해왔다. 그는 이를 ‘주변화’(Marginalization)라고 정의하면서, 이 ‘마진’(Margin)의 사전적 의미(주변, 한계, 이익, 여백 등)에서 많은 것을 읽어낸다. 첫번째 의미인 ‘주변’은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부차화된 대중의 지위를, ‘한계’는 대중들의 삶이 처한 상황을, ‘이익’은 권력과 자본이 주변화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여백’은 이같은 주변화가 정치권에서는 전혀 사고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주변화’와 ‘소수화’(Minoritization)를 구분한다. “주변화가 지배적 척도에 의한 존재의 부차화를 가리킨다면 소수화는 그 척도로부터의 탈주를 가리킨다.” 책은 바로 여기에 주목한다. 권력과 자본은 대중들을 추방하고 주변화하지만, 대중들은 그만큼 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탈주하고, 다른 삶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희선의 글 ‘새만금의 노모스’에선 새만금 어민들의 삶과 투쟁이 기존 법의 소유권 개념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신지영의 글 ‘대추리의 코뮨주의’에선 “올해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투쟁이 재화를 독점하는 국가적 공공 개념의 모순을 어떻게 폭로하는지 보여준다.

‘이주노동자와 이동’ ‘중증장애인, 비인간의 탈인간 되기’ 등의 글도 대상만 다를 뿐 소수자와 탈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얘기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책 말미를 장식하는 진은영 시인의 글은 짧지만 의미심장하다. “소수는 모든 사람이다. …소수자는 우리가 특별히 만나야 할 어떤 인물, 어떤 계층이 아니다. 그는 기준에 벗어나는 모든 순간을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이다.”(김진우 기자) 

한겨레(07. 05. 04) "사회이슈 깊이 파고든 ‘책잡지’랍니다”

처음 유재건 그린비 출판사 대표를 인터뷰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니고, 한다면 당연히 고병권씨가 해야죠.”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이런 독특한 잡지를 낼 용기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해볼 만한 주제 아닌가요?” 그는 거듭되는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쑥쓰럽네요.” 그래도 여전히 그는 주인공은 ‘수유+너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그린비 출판사가 펴낸 잡지 (아르)다. 이 잡지의 품목명은 특이하게도 ‘부커진’이다. “북(책)과 매거진(잡지)을 합성한 말인데요, 1980년대에 자주 나왔던 ‘무크’(매거진+북)를 뒤집어놓은 꼴입니다. 그 시절 무크라는 게 단행본 형태로 된 부정기 간행물이었잖습니까? 무크가 잡지의 성격이 강했다면, 우리가 내는 부커진은 책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면 됩니다. 기존 잡지가 주제 하나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단행본 책 형식을 취해 그 깊이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이 ‘책-잡지’는 일반 단행본 책처럼 독자적인 제목이 있다. 이번에 나온 첫 호의 제목은 ‘소수성의 정치학’이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발견되는 소수성의 문제를 이슈로 삼았습니다. 새만금 문제라든가 한-미 에프티에이 문제, 평택 미군기지 문제, 장애인 문제 같은 이슈들을 소수자의 관점에서 접근한 거죠.”

이 책-잡지의 특이함은 ‘부커진’이란 이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상의 잡지나 무크가 일인 대표 편집위원 체제로 굴러가는 것과는 달리, 이 잡지는 매번 편집인이 바뀐다. 이번호 편집인은 고병권 대표다. 그가 고병권 대표를 자꾸 앞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번 대표 편집인이 바뀔 예정인데, 해당 이슈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열정적으로 그 이슈를 이야기할 사람이 편집인을 맞는 게 옳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수유+너머’가 기획을 주도했다고는 해도, 출판사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희 출판사와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이 함께 고민해서 이슈를 잡았습니다. ‘소수성의 정치학’이라는 주제 아래 쓴 글들은 ‘수유+너머’ 연구원들이고요, 저희는 이슈로 묶은 글 외의 다른 글들을 책임진 셈이죠.”

유 대표가 이 잡지를 처음 생각한 것은 5~6년 전이었다고 한다.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넓혀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이다. “기획을 구체화한 것은 1년 전쯤입니다. 지난해 사회적 이슈가 많았잖아요?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시위나, 평택미군기지 반대시위에 ‘수유+너머’ 사람들과 함께 나갔죠. 지난해 5월에는 ‘수유+너머’ 회원 20여명이 새만금에서 평택을 거쳐 서울까지 20여일간 도보행진을 했는데, 거기에 저희 출판사 사람들이 잠시 동참하기도 했고요. 그 무렵 잡지를 만들자고 합의했던 거죠.”

혁명(Revolution)의 영문 알파벳 첫 글자를 딴 제목 ‘아르(R)’의 의미는 고병권 편집인이 쓴 ‘창간사’에 소개돼 있다. “모든 혁명은 첫 글자 ‘R’만을 필요로 한다. 혁명이란 완성할 수 없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매번 새로 쓰지 않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기에 그렇다. 우리는 과거 혁명이 제 자신의 철자를 계속 이어가려 할 때마다 단호하게 미래 혁명의 첫 글자 ‘R’을 쓴다.” 다시 ‘아르’(R)의 의미는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R’을 쓴다. 너무나 오랫동안 발전해온 ‘발전’과 결별하기 위해, 너무나 선진화된 ‘선진’과 결별하기 위해 ‘R’이라고 쓴다. 우리에게는 발전론 자체가 낡은 과거다. 아니 반대로 말해도 좋다. 발전론과 결별한 우리에게는 어떤 과거도 충분히 미래적이다.” 말 그대로, 탈근대적 혁명을 꿈꾸는 전사들의 선언문이다.

이 전사 동맹에 가담한 유 대표는 이 동맹이 열린 동맹임을 강조했다. “이 잡지를 저희(그린비와 ‘수유+너머)가 시작하기는 했지만, 저희들만의 소유물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연구자들이 이 매체를 통해 여러 목소리를 내줬으면 합니다. 반드시 정치적 입장이 같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슈들을 제기한다면, 그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고명섭 기자)

07. 05. 05.

P.S. 반년간 문예지인 <작가와 비평>의 작년 하반기호 주제도 '타자-마이너리티-디아스포라'였다. 아마도 요즘 가장 유행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은데, '소수성의 정치학'이란 주제도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수적' 주제는 아니다. 거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소수성의 아포리아'이다. 들뢰즈의 정의를 따라 어떤 표준 혹은 '지배적 상태'를 다수성이라고 한다면, '소수성'은 언제나 상대적으로만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소수는 모든 사람이다"는 규정은 아포리아적이다. 그것이 참이라면 "다수는 모든 사람이다"라는 반대적 규정 또한 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소수이면서 다수이다(장애인이 '소수성'이라면, 정상인은 무어라고 규정되는가? 혹은 우리는 알고보면 저마다 '장애인'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 나는 차라리 그러한 이중성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소수성의 정치학>에 실린 글들은 모두 '소수성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을까?). 언제나 '다수성'을 전제하며, 그에 따라 대타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탈근대적 혁명'의 기획은 그 유예의 기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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