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고금변증설'이란 꼭지가 있다. 오늘에야 알았는데, 강명관 교수의 칼럼란이다. 주자학과 돈에 대한 이번주 꼭지를 '사회적 독서'에 옮겨놓는다. 말미의 소회처럼 나도 주기적으로 우울하기에.

한겨레(08. 01. 05) 조선엔 ‘주자학’ 현대엔 ‘돈’이 교주님

1653년 윤7월 21일이었다. 송시열과 유계, 윤선거는 충청도 강경의 황산서원에 모였다. 송시열이 연기에서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 유계를 방문하고 여러 사람을 초청해 뱃놀이를 했는데, 시도 짓고 술도 마시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황산서원의 재실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윤휴의 학문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이야기가 번졌다. 송시열은 윤휴가 주자의 경전 해석에 반기를 든 이단이라 못을 박았다. 윤휴는 송시열만큼이나 주자학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또 정통했기 때문에 주자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윤휴의 학설은 곧 성리학의 발전인 셈이다. 그는 단지 경전의 해석에 있어 주자와는 다른 주장을 내세웠을 따름이다. 문제는 송시열의 경직된 주자 옹호였다. 송시열은 윤선거에게 윤휴가 이단이라면서 계속 그와 관계를 끊으라고 다그쳐 왔지만, 윤선거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날 밤 송시열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윤휴는 이단이다. 나의 말에 동의하고, 윤휴와 관계를 끊어라!” 윤선거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또 박절한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송시열의 말을 듣고 이내 수긍하지 않는다. 송시열의 말이 더 거세게 나갔다. “하늘이 공자를 이어 주자를 세상에 낸 것은, 실로 만세의 도통을 위한 것이다. 주자 이후 드러나지 않은 이치가 한 가지도 없고, 밝혀지지 아니한 글이 한 구절도 없다. 그런데 윤휴는 감히 자기 견해를 내세우며 제 하고 싶은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대는 성혼 선생의 외손이면서도 도리어 그의 편을 들어 주자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의 졸개가 되고 있으니, 무엇 때문인가?”

송시열에 의하면 모든 진리는 주자에 의해 밝혀졌기에 더는 진리에 대해 시비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늘 궁금했다. 송시열이 살아 있다면, 그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묻고 싶다. 모든 진리가 주자에 의해 완전히 밝혀졌다는 그 말이 요지부동의 진실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이다.

사실 진리가 주자에 의해 완전히 밝혀졌다는 말은, 그 말을 하는 자신, 곧 주자의 말을 진리라 설하는 자신의 말이 곧 진리라는 말이다. 어찌 좀 수상하다. 어쨌거나 송시열의 호된 다그침에 윤선거는 윤휴를 비난하는 말을 몇 마디 내뱉었다. 한데 내심 승복하지 않았기에 조금만 더 깊은 이야기를 하면, 윤선거는 송시열에게 항변했다. “의리란 천하의 공적인 것이다. 지금 윤휴에게 감히 말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주자 이후에는 딴 말을 할 수 없다면, 진순과 진역과 같은 학자들은 어찌하여 경전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의리란 천하의 공적인 것’이란 말은 진리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참여해 연구할 수 있는 학문적 주제란 말이다. 이 말은 윤휴의 주장이기도 했다. 윤휴는 일찍이 “주자만 천하의 이치를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인가?”라고 말한 바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말이야 맞지 않은가.

윤선거의 항변에 송시열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지만 근거 없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송시열은 황산서원의 모임 뒤에도 윤선거에게 편지를 보내 윤휴와 단절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 이면에는 아마 윤휴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윤선거는 송시열에게 “윤휴는 너무 뛰어난 인물이다” “그대가 윤휴를 너무 겁내고 있는 것이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았던가. 송시열이란 이름에 접할 때마다 나는 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를 떠올린다. 다른 수도사가 이단의 서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그 늙은 수도사 말이다.

황산서원에서 모임이 있었던 그해(1653)는 조선 건국(1392)으로부터 거의 2세기 반 뒤였다. 조선은 그로부터 2세기 반이 지나 망한다. 말하자면 그해는 조선조의 꼭 중간이다. 나는 그해 그 모임이 조선 역사를 전후로 가르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송시열의 발언 이후 주자학은 조선에서 절대 진리가 되었다. 조선 전기의 다양한 문화와 사유가 무너지고 성리학의 이념적 독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사회와 국가가 쇠락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진리다. 하지만 진리가 독점적인 절대진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인간에게 족쇄를 채우고 인간을 압살한다. 호르헤가 지키고자 했던 기독교가 진리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했던 것처럼, 성리학 역시 같은 구실을 하다가 역사에서 퇴장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기독교의 신이 진리가 아닌 지금, 성리학의 진리가 더는 진리가 아닌 현재, 진리란 이제 없는가. 혹여 그 진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상대주의가 편만한 세상이니, 진리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어리석은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결코 아니다. 인간 행위의 준칙이 되는, 인간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숭배하는 유일한 진리는 지금도 존재한다. 바로 ‘돈’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여 ‘화폐’이고 ‘자본’이다. ‘돈’ ‘화폐’ ‘자본’은 이 종교의 삼일일체이고, ‘유전천국(有錢天國)’ ‘무전지옥(無錢地獄)’은 그 교리의 핵심이다. 인간은 이제 더는 다른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갖고 있는 화폐량과, 그 화폐에 의한 소비능력으로 평가될 뿐, 윤리적 실천, 진리를 향한 기원 따위는 서푼어치의 값도 없다. 우리는 물신교라는 신흥종교의 충실한 교인일 뿐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나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직 물신교를 철저히 섬기겠다는 공약만을 보았다. 정말 우울하다.(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08. 01. 05.

P.S. 같은 지면에 실린 기사 '도덕성이 밥먹여 주냐'(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61055.html)도 같이 읽어둠 직하다. 현단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누가 도덕성을 담지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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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5 12:24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정말 닮았네요. 무섭고 비겁한 것두요.

로쟈 2008-01-05 18:27   좋아요 0 | URL
송시열과 호르헤 말씀이시죠. 물신교를 대체할 무엇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좀 비관적이네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책들이 올해 몇 권 소개될 예정이다. 그 첫 주자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2007)가 출간됐다. 원저 자체가 100여쪽 정도로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 않은 분량이고 국역본도 186쪽 정도. 아직 언론리뷰들이 뜨지 않았는데, 번역만 괜찮다면 일독해봄 직하다. 해서, 장회익, 최종덕 교수의 대담 <이분법을 넘어서>(한길사, 2007)와 함께 어제 주문을 넣은 책이다. 영역본도 얼마전에 구했기 때문에 이 달의 독서목록에 추가한다. 간략한 출판사 소개글만을 옮겨놓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미숙한 증오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명제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합당한 민주주의만 존재하며, 이 합당한 체제가 민주주의 문명의 지각변동을 억제한다.> 본서의 지면은 이 명제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그 관계망의 도출을 추구하는 데 할애 될 것이다. 현대의 관념체계(이데올로기)를 묘사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현대의 관념체계가 존재하는 양상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을 줄 뿐만 아니라, 정치를 통해서도 이 관념체계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확실히 당대를 관통하는 관념체계는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초래한 추사(醜事. les candale)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고, 민주주의 이념 속에 감춰진 칼날을 간파하는 안목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소개글로 보아서는 신뢰할 만한 번역서가 나온 것인지 좀 의문이 들긴 한다. '이데올로기'를 '관념체계'로 옮겼다면 의외이고. 랑시에르의 철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자크 랑시에르 워밍업'(http://blog.aladin.co.kr/mramor/1064936), '불화의 철학자 랑시에르(http://blog.aladin.co.kr/mramor/1066288), '자크 랑시에르와 평등의 철학'(http://blog.aladin.co.kr/mramor/1722976) 등의 관련 페이퍼들을 참조하시길...

08.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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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ebvre 2008-01-06 02:50   좋아요 0 | URL
랑시에르의 책을 오늘 받아서 좀 읽었습니다. 표지에서부터 오타가 있더군요."La haime"이 아니라 "La haine"인데...... 서론인 19쪽까지 읽은 감상은 ...... 음 ...... 랑시에르 읽기는 아무래도 견적이 많이 나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ㅠ.ㅠ

로쟈 2008-01-06 09:15   좋아요 0 | URL
좀 낯선 단어가 눈에 띈다 싶었습니다. 저도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는데, 애당초 출판사나 역자가 신뢰감을 주지 못해서요. 이런 식의 번역문화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바뀔 수 있는 건지...

로쟈 2008-01-09 22:33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배송받았는데, 실물을 봤더라면 절대로 구입하지 않았을 책이네요. 연말까지 가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최악의 번역서' 후보입니다.--;

람혼 2008-01-06 03:38   좋아요 0 | URL
다들 참 '빠르십니다'.^^;
'견적'에 대해서라면 개인적으로 저 또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그런 '불길한 예감'을 나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저의 가장 큰 병증이겠지요...ㅠㅠ

로쟈 2008-01-06 09:16   좋아요 0 | URL
"바꿀 수 없다면 즐겨라"가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이겟죠.^^;
 

지난 연말에 출간된 수전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이후, 2007)는 '1월의 읽을 만한 책' 목록에 올려놓기도 했고, 러시아 시인/작가들의 대한 비평도 여러 편 포함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흥미를 갖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몇 차례 페이퍼를 올리게 될 듯한데, 우선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 것 정도로 시작해둔다.

한겨레(08. 01. 05) 소설가이고 싶었던 비평가의 문학론

지난달 28일은 미국 비평가 수전 손택(1933~2004)이 타계한 지 만 3년 되는 날이었다. 손택은 평생 세 번 암의 침탈을 받았는데, 마지막 ‘골수성 백혈병’의 공격은 그의 끈질긴 삶의 열망을 사정없이 채가고 말았다. 〈문학은 자유다〉는 영롱한 스타일리스트의 3주기에 맞춰 번역·출간된 책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쉬기 직전까지 고쳐쓰던 원고를 비롯해 2000년 이후 그가 쓴 에세이와 연설문·대담글을 엮었다. 손택의 마지막 저작이자 유고집인 셈이다.

뉴욕의 유대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손택은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를 내놓으며 미국 비평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해석이란 지식인이 예술 작품에 가하는 복수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해석이란 이름의 비평 행위에 대한 불신을 신랄하게 표명한 것인데, 이 말은 그 자체로 ‘자기언급적 열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손택 자신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비평가로 알려졌고, 비평행위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만 손택은 스스로 작가 또는 소설가, 바꿔 말해, 창조하는 사람으로 자임함으로써 이 역설을 피해가려 했다.

실제로도 손택은 여러 권의 소설을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를 비평가로 인식했다. ‘문학은 자유다’라는 글의 제목을 이 책 자체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손택이 한사코 소설가로 기억되기를 바란 데 대한 한국어판 편집자의 공감의 결과다. 이 글에서 손택은 문학을 두고 “더 큰 삶, 다시 말해 자유의 영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여권”이라고 말한다. “문학은 자유입니다. 독서와 내성(자기 성찰)의 가치가 끈질기게 위협받는 요즈음, 더더욱 문학은 자유입니다.” 어떤 외적 강압과 불운 속에서도 인간은 문학을 통해 자기 내면의 진실을 지키고 가꿀 수 있다. 문학이 자유인 이유다.

손택은 이 책의 글들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몇몇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다. 그럴 때 그의 자세는 ‘비평가’의 자세가 아니라 ‘숭배자’의 자세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예의 ‘자기언급적 역설’을 에둘러 간다.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찬미’하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글이 빅토르 세르주(1890~1947)에 관한 글인데, 알다시피 세르주는 아나키스트로 출발해 공산당원이 됐다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세계를 떠돌다 비참하게 죽은 혁명가다. 그러나 손택은 세르주를 혁명가이기 이전에 소설가로 주목한다. 혁명가는 때때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포기하지만, 세르주는 정의와 진실이 다툴 때 거의 언제나 진실 편을 들었다. 그것이 그의 고난을 키웠음은 물론이다. 세르주가 추구한 진실이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진실과 동일한 것임을 손택은 강조한다. 그것은 그대로 손택의 진실이기도 하다.

손택에게 예술은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형식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윤리성을 포함한다. 진실로 아름답다면 윤리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손택은 믿는다. 아름다움은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지혜를 불러들인다. “아름다움에 평생 깊이 헌신함으로써 얻게 되는 지혜는 다른 어떤 진지함으로도 흉내낼 수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이 아름다움이야말로 생의 종착점에 이른 손택을 의연하게 견디게 해준 열망의 핵심이었다.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억센 것이어서 아무리 무자비하게 정신을 흩뜨리는 것이 있다고 해도 이겨낸다. 전쟁이나 예견된 죽음 같은 것도 그걸 말살하지는 못한다.” (고명섭 기자)

08.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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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1-05 10:36   좋아요 0 | URL
문학은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여권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울컥했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의 말미에 수록된 [문학은 자유다]가 단행본으로 나온건가요?

로쟈 2008-01-05 10:39   좋아요 0 | URL
당장 확인은 못했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유고집이라 말년의 쓴 글과 강연들을 모두 모아놓았습니다...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담을 엮은 <테러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4)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찾지 못해서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복사한 영어본도 눈에 띄지 않아 그마저도 대출했다. 이럴 땐 '소장도서'란 말이 아주 무색하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마도 2005년쯤인가 훑어보았는데, 얼마전 <데리다-하버마스 읽기(The Derrida-Habermas Reader)>(2006)를 구입한 김에 다시 정독해볼 요량으로 찾았던 것이다.

사실 수전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이후, 2007)에 대한 페이퍼를 써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얘기가 좀 길어질 듯해서다) 잠시 펼쳐든 게 <테러시대의 철학>인데, 펴자 마자 또 오역이 눈에 띄기에 교정해둔다. 문제의 대목은 서론의 '철학이 역사에 관해 말할 것이 있는가?'란 절에 나온다. 첫문장이다.

"철학이 보편적 원리들과 역사의 개별 사건들을 연구한 이래로 '시조차도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랑스럽게 선언하였다."(22쪽)

 

 

 

 

이건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내용이다(국역본에서 전후맥락을 더 옮겨놓았으면 싶지만 네댓 권이나 갖고 있는 <시학>이 한권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얼핏 그런가 보다 싶지만 '시조차도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란 명제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가 번역문에는 주어져 있지 않다. 원문을 전혀 엉뚱하게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원문은 이렇다.

"Aristotle famously declared that since philosophy studies universal principles and history, singular events, "even poetry is more philosophical than history.""(2쪽)

국역본은 'since'를 '-이래로'로 옮겼는데, 여기서는 '-이기 때문에'란 뜻이다. 그리고 'history'와 'singular events' 사이에는 동사 'studies'가 생략됐다. 다시 옮기면, "유명한 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은 보편적인 원리들을 탐구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에 '시조차도 역사보다는 더 철학적'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철학과 역사의 대비는 보편성 대 개별성의 대비이다. 그렇다면 시가 역사보다 철학적이라는 말은 역사보다 더 보편적이라는 뜻이겠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시'라는 말로 염두에 두고 있는 장르는 '비극'이다(알다시피 <시학>은 내용상 '극작술'을 다룬 책이다). "비극은 인간 존재를 움직이는 일련의 감정들을 합리적이고 보편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철학과 유사한 길을 가고 있다."(22쪽)란 내용이 뒤이어 나오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뒤집어 말하면, 철학은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것이 없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역사에 대한 철학의 무관심은 18세기 중반까지 서구의 전통을 지배"했던 것이다(주목할 만한 예외는 비코 정도이다).

대담자이자 해제의 필자인 보라도리가 '철학이 역사에 관해 말할 것이 있는가?'란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하에서이다. 과연 철학은 9.11에 대해서 뭔가 말할 수 있는가, 란 의혹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서양철학적 전통에서는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필자는 그러한 의혹에 맞서서 철학이 9.11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더러 말해야만 하는 책임까지도 진다고 주장한다. 데리다와 하버마스, 당대 최고의 두 철학자를 대담의 자리에 부른 것은 그런 취지에서다. <테러시대의 철학>은 그렇게 시작된다, 시작되어야 한다...

08.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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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8-01-05 03:11   좋아요 0 | URL
또 하나의 통찰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8-01-05 09:34   좋아요 0 | URL
통찰은 철학자들의 몫이죠...
 

작년 세밑에 나온 책 중의 하나는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와 <독서일기>(생각의나무, 2006)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알베르토 망구엘의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산책자, 2007)이다. 찾아보니 작년초에는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웅진지식하우스, 2007)이란 책이 출간됐었다. "보르헤스에 대한 오마주이자, 날카롭고도 엉뚱한 유머를 구사하는 문학 미스터리"라는 후자와는 달리 영어본의 제목이 'With Borges'인 전자는 말 그대로 '보르헤스와 함께 한 날들'에 대한 기록이고 증언이다(책의 부제는 '열여섯 소년, 거장 보르헤스와 함께 책을 읽다'이다). 갖고 있던 보르헤스 전기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은 탓에 망구엘이 국립도서관장 보르헤스의 '책 읽어주는 남자'였던 건 알았지만 불과 16살의 서점직원이었다는 건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분량이 소략해서 약간 아쉬움을 남기는 책인데, 좀더 두툼한 보르헤스 전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한다. 김홍근의 <보르헤스 문학전기>(솔출판사, 2005)를 어디에 두었더라... 

한국일보(08. 01. 05) 보르헤스에게 책 읽어주던 소년 老 작가의 '도서관 낙원' 엿보다

1964년 어느날 초저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구미문학 전문서점 ‘피그말리온’에 단골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찾아왔다. 당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소설가이자, 국립도서관장이었던 보르헤스는 16세의 서점 직원인 알베르토 망구엘(1948~)에게 “저녁에 집에 와서 책을 읽어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전적으로 약한 시력을 타고난 보르헤스는 30세 무렵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다가 50년대 후반엔 실명한 상태였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소설가로 활약 중인 망구엘은 문호의 청을 받아들여 일주일에 서너 번씩 4년간 보르헤스가 노모와 함께 사는 작은 아파트를 드나들었다. 이 책은 망구엘이 책을 읽어주러, 구술 작품을 받아쓰러 다니며 보고 들은 보르헤스에 관한 기록이다. 100쪽 가량의 본문 분량(남은 60여 쪽엔 보스헤스의 생애ㆍ작품 해설, 연대기, 어록이 실렸다)이 말해주듯 세세하고 정치한 기록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스페인어 원서를 출간한 것이 2004년, 그 시절을 40년쯤 흘려보내고 난 뒤다. 망구엘도 “이건 기억이 아니다. 이건 기억의 기억의 기억”이며 “기억들을 일으킨 사건들은 몇 개의 잔상, 몇 개의 낱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고백한다.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책 1권을 독자 100명이 읽으면 100권의 책이 탄생한다는 것이 당시로선 선구적인 보르헤스의 지론이었다. 망구엘은 작가를 두 부류, “세계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는 작가”와 “그보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계가 한 권의 책이어서 본인과 다른 이들을 위해 그 책을 읽으려는 작가”로 나누고 보르헤스는 단연 후자라고 썼다.

보르헤스는 존재와 세계를 해석의 여지가 무한히 열린 텍스트로 본 것이고, 그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보르헤스적인 보르헤스에 관한 글쓰기다. 저자는 보르헤스의 독서를 공들여 서술한다. 그는 처음 보르헤스의 서재를 봤을 때 “낙원을 도서관의 형태로 상상한다는 사람의 서재치고는” 규모가 작아 실망했다고 말한다. 낡은 책꽂이는 키플링, 스티븐슨, 체스터턴,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마크 트웨인 등 영미 작가 작품과 쇼펜하우어, 슈펭글러, 기번, 리하르트 마이어 등의 철학ㆍ역사서로 소박했다. 하지만 곧 노작가에게 장서의 양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곧 깨닫는다. 스스로 ‘쓰레기 하치장’이라 부른 놀라운 기억력 덕분에 보르헤스는 언제든 필요한 구절을 읊어 인용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는 현실의 정수가 책에 있다고 믿는 텍스트주의자였다. 그는 책을 읽고 쓰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천 년 전에 시작돼서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 그에게 역사는 바로 책이었던 셈이다. 망구엘은 책등을 쓰다듬으며 그 제목과 저자를 정확히 알아내는 보르헤스를 묘사하며 “그와 책 사이에는 생리학의 법칙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고 찬탄한다.

망구엘은 공정한 저자다. 문자를 편애한 탓에 보르헤스가 음악, 그림 등 다른 장르엔 별다른 조예가 없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균형 잡힌 서술 덕에 이 책은 거장의 인간적 약점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르헤스는 자신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낭독하는 작가를 면전에서 모욕하는 심술을 부리거나, 이따금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반면 그는 좋아하는 사랑 노래를 듣고 싶어 여러 번이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러가자고 어린 조력꾼을 조르거나, 서부극이나 갱 영화를 보며 몰락한 영웅을 눈물로 애도하는 천진한 노인이기도 했다.

“꿈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시도는 해봤지. 그런데 성공한 적이 없는 것 같아”란 몽상가적 발언을 전하며 저자는 지난 세기를 풍미한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의 연원을 보여준다. 라틴문학의 또다른 거장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비오이 카사레스-실비나 오캄포 부부와의 유쾌한 잡담은 보르헤스가 어떤 일상에서 창작의 동력을 얻었는지를 알게 한다.(이훈성기자)

08. 01. 04.

P.S. 유튜브의 자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망구엘과 보르헤스에 관한 영상자료도 올라와 있는데(http://www.youtube.com/watch?v=QX0i5F7P2Dg) 스페인어인지라 고유명사밖에는 알아듣지 못하겠다. 'Manguel'에서 'u'가 묵음이기 때문에 '망겔'이라고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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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05 01:21   좋아요 0 | URL
'Manguel'의 경우 'u'가 묵음이라기보다는 '헤'로 발음되는 것(예를 들자면, 바로 '보르헤스(Borges)'^^)과 '게'로 발음되는 것을 구분하기 위한 'u'의 사용이 아닌가 합니다. 곧 'gu'가 모음 'e' 앞에 오면 [ge] 발음이 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또한 그래서 '멋진 오빠' Luis Miguel 또한 '미구엘'이 아니라 '미겔'인 것.^^)

로쟈 2008-01-05 01:55   좋아요 0 | URL
네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네요. 이게 불어도 그렇듯이 g나 q 다음에 'i'나 'e', 'a'가 올 때 그 음가를 보전하기 위해서 사이에 'u'가 들어간다고 고등학교 때(!) 배운 것 같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을 보니 Guattari를 '구아타리'라고 표기했던데(그게 맞다면서) 맞는 건가요?..

람혼 2008-01-06 03:34   좋아요 0 | URL
'e'나 'i' 앞에서는 [g] 발음의 음가를 위해 'g' 다음에 'u'가 붙는 것은 맞는데(예를 들어 'guerre'나 'guide'의 경우), 'a' 앞에서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ga'는 에스파냐어나 프랑스어에서 그대로 [ga]로 발음되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저 또한 실제로는 '관습적으로' Guattari를 '가타리'라고 발음하고 있긴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gua-'는 [gwa-]로 발음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곧 일관된 표기법과 발음법에 따르자면 정확히는 '과타리'나 '구아타리'가 맞는 것이겠죠(개인적으로는 '과타리'라는 표기를 더 선호하게 되네요).

로쟈 2008-01-06 09:12   좋아요 0 | URL
애초에 '과타리'란 표기도 쓰였었는데, 어떻게 '가타리'로 굳어진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 경우엔 관행을 존중해야 할지 발음을 존중해야 할지 헷갈립니다('구아타리'는 물론 오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