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의 제3의 움직임

마이클 가자니가의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를 관심도서로 올려놓은 김에 인지과학의 전반적인 현황과 조망을 다룬 이정모 교수의 <인지과학>(성균관대출판부, 2009)에 대한 소개도 스크랩해놓는다. 저자와의 인터뷰 기사다. 책은 두툼한 '교재'이다.  

  

교수신문(09. 04. 06) “생각 교환할 수 있는 지적 흥분의 분위기 필요해요”

한국의 인지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가 얼마 전 『인지과학』(성균관대 출판부)을 펴냈다. 종합과학이자 융합학문으로서 인지과학의 성과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이 교수는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심성을 과학을 통해 해명하자는 야심찬 취지를 바탕으로 한다. <교수신문>은 이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과학기술시대 인간의 지위에 대해서 인지과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지를 알아봤다. 

이정모 교수 약력: 퀸즈대에서 심리학 박사 취득. 한국실험및인지심리학회 회장, 한국인지과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뇌학회 고문으로 있다. 

교수님의 『인지과학』을 보고 처음 드는 생각은 딱히 뭔가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없을 만큼 깔끔하고 모범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인지과학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하고 성실하게 종합을 한 책은 외국에서도 드물 것으로 사료가 됩니다. 특히 융합학문으로서 인지과학의 면면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계십니다. 처음부터 다양한 학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수행하신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문제에 관심을 연구하다보니 다양한 학문적 성과와 방법론에 호소를 하게 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후자의 경우 애초에 선생님을 사로잡은 학문적 문제의식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다양한 학문들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정한 한 문제에 대한 단순한 심리학적 물음에서 저의 인지과학 탐색의 길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사고에서 하나의 생각(개념)이 어떻게 해 다른 생각(개념)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심리적 과정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해, 생각과 생각을 이어주는 마음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가고, 그 마음이 기억과정 중심으로 작동된다는 것, 그리고 마음의 본질은 1930년대의 영국심리학자 바틀레 교수에 의하면 ‘의미에의 노력(effort after meaning)’의 과정임을 알게 되고, 그리고 기억에는 정보들이 일정한 원리에 따라 구조화돼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기억에는 생각들이 어떠한 지식구조를 이루어 저장되고 어떻게 되꺼내어 지는가하는 문제로 물음이 옮겨 갔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구조란 언어에 의존하니까 언어학의 언어와 의미에 대한 형식적 접근으로 관심이 번져갔고, 지식의 저장구조를 다루던 인공지능의 연구에,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습득, 구조화, 인출 과정들의 특성을 좌우하는 뇌의 신경적 활동에, 그리고 마음, 의미, 지식, 과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의 물음으로 관심이 연결된 것 같습니다. 하나를 더 잘 알려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여러 학문의 성과와 방법론에 의지하며 탐색했던 것 같습니다.

인지과학은 마음의 과학이다, 다양한 인접 학문의 연구 성과를 총괄해 발전하고 있다 ... 이 정도가 일반 식자들이 가진 생각일 것입니다. 종래의 심리철학이나 심리학과는 확실히 다른 관점에서, 다른 연구방법론을 통해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 일종의 과학 내 패러다임의 전환으로까지 볼 수 있을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저서에서도 언급을 하셨겠지만, 신문독자들을 위해) 현대의 인지과학이 지닌 혁명적이고, 독특한 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인지과학의 떠오름은 지적하신대로 하나의 과학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습니다. 1981년에 두뇌의 좌우반구 분할 연구로 1981년에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한 신경심리학자 로져 스페리 교수의 표현에 의하자면, 인지과학은 아래에서 위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전통적 과학적 (물리학의) 가정 대신에, 역방향적 하향적 결정론도 인정하는 것이며, 전통적 상향적 입장과 인지주의의 하향적 입장이 조합된 ‘이중 결정’ 모형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에너지 중심의 고전적 과학에 정보와 정보처리 관점, 컴퓨터 유추에 바탕한 마음 작동 원리의 탐구 및 형식화 접근을 제시함으로써 인류사회에 정보화 시대, 컴퓨터 시대, 디지털 시대가 출발할 수 있는 구체적 개념적, 이론적 바탕 틀을 제공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인간 이성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한 합리적이다 라는 전통적 사회과학의 통념을 실험적 증거에 의해 와해시켜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적 재구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더욱이 인간의 뇌와 마음의 연결을 탐색하는 분야를 과학의 개척지의 핵심 분야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전통적 과학 연구의 초점을 자연계의 일반 물질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마음에, 뇌에, 그리고 그 마음을 모사한 인공지능에 돌리게 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의 연결이 과학적 탐구에서 필연적이게 했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지과학에는 인문학적 성찰도 가미가 되고, 분명 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지신경과학의 등장 등은 아무래도 전통 인문학의 토대를 위협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른바 환원주의가 아니냐는 지적이 그러합니다. 인지과학의 성과가 마음과 윤리에 대한 발생학적이거나 진화론적 설명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지향성이나 도덕법칙, 정의의 문제 등을 과학의 언어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지과학은 그 본래적 특성상 과거의 학문 분류 틀인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과학입니다. 그러나 인지과학은 사실은 이러한 고식적 학문분류 그 자체가 21세기의 학문의 분류틀로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인지과학에서는 뇌와 인공지능도 다루지만, 인간의 마음이 (사회적으로)만들어내는 ‘의미’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의미란 주관적 측면이 개입된 것입니다.  

인지과학이 다른 과학과는 달리 지니는 커다란 부담 중의 하나는 과학에서 객관화하기 힘들다고 여겨져 온 인간의 주관적 체험을 과학적 울타리 안으로 어떻게 끌어 들여서 다루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향성이나 도덕법칙, 정의 등은 이러한 주관적이고 사회적인 바탕 위에서 비로소 그 의미가 주어지고 개념화되고 이해, 설명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러한 지향성, 도덕법칙, 정의 등이 구체적으로 몸을 지니고 사회적 환경에서 적응하는 인간 개체가 이루어내는 것임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도덕적 법칙, 윤리 등에 대해 이러한 후자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 설명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근에 현상학적 철학 등과 연결돼 인지과학의 제 3의 대안으로 서구에서 떠오르고 있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tition) 접근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리라 봅니다.

<교수신문>은 작년에 디지털 치매를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의 한 가능성으로 사고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사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도 책의 말미에서 “인간과 인공물의 구분이 무너지는 가능성이 무섭게 빨리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고 언급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미래의 도래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우려와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일종의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죠. 기계를 만지작거리면서 눈빛이 멍한 요즘 아이들에서 그러한 디스토피아의 징후를 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계에 대한 인간의 종속화, 무력화, 노예화라는 우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역사 이래 인간, 특히 인간 마음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언어나 행정체제와 같은 소프트 인공물, 돌도끼나 컴퓨터 등 하드인공물 포함)과 공진화해왔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체화된 인지’ 접근에 의하면 인간 마음과 인간이 만든 인공물(환경)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 있지요. 인터넷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건 내비게이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어른이건 이미 인공물은 인간의 마음의 한 부분 요소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밀접한 연결이 점증하는 것은 막기 어렵겠지요. 왜냐하면 그것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인간의 일상적 삶의 양태일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에 대해 디스토피아 같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언급만하는 것은 인간을 제대로 이해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요.  

인간은 무한한 창의적 인지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인간의 창의적 인지적 능력을 이러한 기계의 폐해를 예방하고 줄이는 데에 전력투구한다면(마치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인류의 온갖 지혜를 다 짜내듯이) 이러한 비관적 예측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막을 수도 있겠지요. 바로 이러한 과업을 달성하는 것이 응용 인지과학의 큰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만들어 낸 기계 등의 인공물의 폐해, 그리고 요즘 논의되는 각종 환경 파괴의 폐해의 원인이 실상은 그러한 인공물에 있다기보다는 그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인지 특성에 있음을 절실히 인식해 이를 극복하는 인간 인지기술을 창조하는 것이 인지과학의 응용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융합과학기술 개발의 목표가 신물질이나 기계의 창조가 아닌 세계 인간 기능(수행능력) 향상에 있음에 우리는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계와 공진화를 말해도 ‘사유’를 기계가 대신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에 대해선 심각한 심리철학적 논의가 전개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심리철학에서 논의되듯이 ‘무엇을 사유라고 규정하느냐’, ‘무엇을 기계라고 규정하는가’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여간, 인간처럼 유한한 생명을 지닌 생물학적 존재가 몸을 갖고 하는 일정한 인지 양식을 사유라고 한다면, 그런 것은 소위 ‘그러한 몸을 지닌 생명체가 아닌 기계가 할 수 있는 인지 양식과는 다소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 점은 인정하지만 어떠한 형태로건 형식화할(formalizable) 수 있는 사유는 소위 “기계” 가 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러한 기계를 구현하려면 장구한 세월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요.

조금 색다른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교수님은 이 책을 저술하신 동기로 인지과학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책이 없다는 이유를 들으셨습니다. 그만큼 지식의 축적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인지과학을 비롯해서 요즘의 융합학문은 연구자들에게 전문가적 깊이는 물론이고 다방면에 빼어난 백과사전 형 지식인을 요구하는데, 과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각 분야의 지식을 연구자들이 소화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결국 융합학문으로서 인지과학에 대한 총체적 조망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적하신 문제점을 날이 갈수록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잘 알아야 제대로 인지과학적 연결 틀을 세울 수 있는 인접 분야 주제들이 계속 출현합니다. 어떤 때는 인지과학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인간관련 공학의 상당부분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면서 그 자체의 특성을 상실해 가지 않는가 하는 염려도 들고, 과연 그러한 시점에서도 통합된 조망의 인지과학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듭니다. 다원적 메타포, 다원적 방법론, 다원적 수준의 설명, 그리고 심리학, 철학, 신경과학, 언어학, 인공지능, 인류학, 로보틱스, 물리학, 수학 ... 등  여러 학문의 수렴이 필요한 데, 이것은 어느 개인 한 사람이 이루어 내기 힘든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작은 주제부터 큰 주제까지 여러 분야 간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함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며 자연 발생적으로 전체적 유기적 조망을 창출하는 그러한 학술적 대화 마당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지적 부담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나누어 갖는 그러한 학술적 마당이 마련돼야 하겠지요.

융합은 요즘 곳곳에서 들을 수 있는 화두입니다. 그러나 융합이니 학제 간 연구니 하는 구호가 구호에만 머문 경우가 많습니다. 인지과학의 경우처럼 진정한 학문적 필요성에서 비롯했다기 보다는, 관변 단체나 언론의 주도로 일부러 ‘융합’을 표방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학제 간 연구가 내실과 진정성을 기하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융합과학기술을 세계적 관심사로 끌어 올린  틀을 제시한 미국 과학재단의 틀에서 강조한 것은 사실은 ‘융합’이라기 보다는 ‘수렴(Convergence)’이었습니다. 여러 연구 관심사 주제, 학문 분야, 학자들의 생각이 계속적이며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상위 개념이나 조망으로 수렴돼 가는 그러한 틀을 제시한 것입니다. 미국과학재단은 이 2002년도 보고서에서 융합(수렴)을 이루어 내기 위해 주의할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각 분야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 낸 후의 사후의 연결적 융합이 아니라, 작은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초기 단계부터 여러 학문 분야들이 밀접히 연결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수렴적 융합, 자연발생적 융합이 일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늘,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수렴적 관점에서 현상을 이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그러한 학문적 대화의 마당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예술이라는 기존의 학문 분류 틀이 무너지고,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 대학연구자, 기업연구자들이 계속해 생각을 일상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지적 흥분의 분위기가 형성돼야 합니다. 관변단체나 언론의 시도는 자극을 줄 수는 있지만 구체적 융합은 이루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대학이 본질적으로 탈바꿈하여야 합니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대학 및 국가 연구지원 체제, 대학 및 중고교 교육체제가 혁신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고서는 서구와 같이 기본 물음에 대한 진지한, 계속된 탐색과, 그리고 여러 학문과의 연결에 의한 융합을 창출해 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연구를 하시면서 겪었던 개인적 어려움들과 보람 그리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개인적 어려움의 하나는 과거에는 대학, 과기부, 교육부, 과학관련 공공기관의 종사자들, 그리고 이러한 기관의 자문위원 교수들, 매스컴 종사자들이 구시대적 개념인 물질, 기계 중심의 과학관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에 저희가 인지과학, 학제적 융합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황야에서 외롭게 외치는 소리에 그치고 말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최근에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오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람의 하나는 80년대 중반에 대우대단 지원 인지과학 공동연구를 하면서 15명의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격주로 모여 밤늦게 토론해 용어, 개념적 이해틀의 차이를 결국은 상당히 극복하고 한국인지과학회를 창립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인지과학 자료를 소개한 것을 접한 후에 유럽, 북미, 동남아, 중국, 만주 등, 그리고 한국 내에서 전혀 일면식도 없는 인지과학에 관심있는 분들이(주로 한국인) 연락을 해 온 경우들입니다.  

향후 계획의 하나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학생, 교수, 현장연구자 등이 함께 참여해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늘 열리며, 정말 수렴적인 학문간 대화가 활발한 그러한 다학문적 인지과학 세미나를 어떤 교육기관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진행, 참여하고 싶은 것입니다.(오주훈 기자)   

09. 04. 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에는 드물게도 국내서가 번역서보다 더 많이 눈에 띈다. 창비담론총서도 나오기 시작했고,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푸른숲, 2009)는 '이주의 경제서', 이종필의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글항아리, 2009)는 '이주의 과학서'이다. 김태형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역사의아침, 2009)까지 관련리뷰를 다 챙겨놓지는 못하지만 모두 화제가 될 만한 책들이다. 거기에 맞서는 번역서로는 자크 데리다 등의 <마르크스주의와 해체>(길, 2009), 사이토 준이치의 <민주적 공공성>(이음, 2009) 등이 내가 주목하는 책들이다. 개정 번역판으로는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난장, 2009)도 새로 나왔다. 거기에 한권을 더 보태자면, 저명한 인지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 관심을 끄는 저자이고 주제인지라 따로 리뷰를 스크랩놓는다. '신경윤리학'이란 분야를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래도 공부에 자극을 주는 '의외의 책'에 점수를 많이 주는 편이다. 인지주의 철학자인 마크 존슨의 <도덕적 상상력>(서광사, 2008)과 같이 읽어볼 수도 있겠다. 국내서로는 이정모 교수의 <인지과학>(성균관대출판부, 2009) 등이 '교과서'이다.  

 

한국일보(09. 04. 18)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 '나'인가 나의 '뇌'인가  

현대 뇌과학은 살인범과 정상인의 뇌가 구조부터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밝혀낸 상태다. 살인범들의 뇌는 대게 심리 억제 메커니즘 기능이 있는 전두엽이 손상됐고, 공격성을 좌우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과거엔 고민 없이 살인범을 단죄했다. 하지만 뇌의 구조라는 물리적 요인이 범죄의 중요한 동인일 수 있다면 범죄자에게 물을 수 있는 윤리적 책임의 한계는 어디일까. 



<윤리적 뇌>는 이처럼 현대 뇌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던지고 있는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뇌영상을 통해 마음의 행동 및 심리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인지신경과학' 분야를 개척한 세계적인 뇌과학자로, 뇌과학과 관련한 미국의 인문학적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몇몇 주장은 사회적 통념과 격렬히 마찰할 수 있다. 태아를 언제부터 인간으로 대우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반적으로는 수정체가 착상하고 세포분열을 끝낸 14일 된 '배반포'부터 생명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뇌과학에 따르면 태아의 뇌는 최소 23주는 돼야 생각하는 인간으로 발달한다. 저자는 이런 시각에 따라 배아나 태아를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 시한 같은 것도 조정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비친다. 

캐나다의 스프린터 벤 존슨이 썼던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처럼, 앞으로는 '뇌기능을 향상시키는 약'도 나올 것이다. 이 경우 어떤 윤리적 기준에 따라 이 약물을 사용할지도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뇌전극을 이용해 수험생의 뇌기능을 높이는 처치까지 가능하게 된다면 두뇌의 우열에 관한 사회적 통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밖에 이 책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나'의 의지인지, 나의 '뇌'의 의지인지 하는, 자유의지 유무에 관한 철학적 논의와 뇌 안에 각인된 사회의 보편적 윤리 메커니즘에 관한 논의 등도 아울러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류는 보편적 윤리감각에 따라 과학의 발전이 나쁜 길을 향해 가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할 뿐이다.(장인철 기자) 

09. 04. 18. 

 

P.S. 마이클 가자니가의 책으론 <인간의 마음과 행동>(시그마프레스, 2000)이 소개된 바 있다. <심리과학>과 <인지신경과학> 같은 교재형 타이틀은 저자가 이 분야의 '스탠더드'라는 걸 시사해주는 듯하다. 그의 최신간은 <인간>이다. 관심을 끄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뇌신경학자가 본 인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09 17:11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로 처음 소개된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신간이 출간됐다. <왜 인간인가?>(추수밭, 2009). 지난번 <윤리적 뇌>가 나왔을 때 검색해보고 궁금해한 책인데, 의외로 빨리 번역됐다. 부피는 좀 있지만, 요즘 뇌과학자들의 발언권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일독해볼 만하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연합뉴스(09. 11. 09) 인간은 동물과 어떻게 다른
 
 
hnine 2009-04-18 13:38   좋아요 0 | URL
어느 시기부터 태아를 생명체로 보느냐 하는 것도 아직 통일이 안되어 있는 상황이지요. 이런 제반 문제들이 과연 인간의 수준에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범죄인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용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범죄인들 특유의 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미리부터 어떤 '조치'가 취해지거나 '격리'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인간의 뇌에 관해 밝혀낸 빙산의 일각 같은 결과를 가지고 너무 큰 것에 적용시키려고 하는 경솔함이 가끔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뇌' 란 '나'와 별개가 아님에도 기자는 제목을 저렇게 붙여놓았군요.

로쟈 2009-04-19 11:57   좋아요 0 | URL
'나의 뇌'와 '나' 사이에는 그래도 '시차'가 있지요.^^
 

어젯밤에 한 교양강좌의 다음 학기 일정을 짜보았다(니체와 쿤데라 등을 읽을 예정이다). 대학강의 중에도 미리 일정이 예정돼 있는 것이 있다(20세기 러시아문학을 읽을 예정이다). 그런 '스케줄'을 짜다 보면, 한 학기와 1년이 얼마나 짧은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하기야 요즘 같은 세월은 몇 년 없는 걸로 쳐도 무방하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이상 전집 출간 소식을 접하고 먼저 든 생각은 또 내년 봄엔 이상 문학에 대한 강의도 집어놓어야겠다는 것(이상의 나이도 이제 100세가 된다!). 금방이라도 일년이 지나갈 것만 같다. 그렇게 한 4년쯤 어서 지나갔으면 싶다... 

경향신문(09. 04. 17) 권영민 교수의 새로운 해석, 다시 태어난 ‘이상’

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61·서울대 국문과)가 새로운 <이상 전집>(총4권·뿔)을 펴냈다. 이상의 문학과 습작 노트 등을 총망라하고 새로운 해석을 보탰다. 전집 출간과 이상의 기일(4월17일)을 기념하기 위해 문학평론가 이어령·김윤식, 시인 고은·이승훈·김승희, 안상수 홍익대 미대 교수, 김정동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등 16명이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 모였다. (사진) 

 

권영민 교수는 “이상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 물질문명의 발달 등 소위 ‘모더니티’의 문제를 가장 먼저 질문한 작가”라며 “ ‘모더니티’의 문제는 현재에도 계속 제기되는 만큼 이상 문학을 해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7년 이상 전집을 펴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는 “이상의 좋은 작품이 계속 연구돼 새롭게 해석되는 것은 한국 문학계의 경사”라고 했다. 90년대 초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전집을 펴냈던 이승훈 시인은 “이상은 내 창작의 뿌리”라며 “이상의 전위적 실험성, 아웃사이더적 성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상 시에 나타난 타이포그라피적 측면을 연구한 안상수 교수는 “이상은 한국 현대 타이포그라피의 첫 발자국을 찍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전집에서 모든 작품의 원전과 함께 현대 표기법에 맞는 한글본을 실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토록 했다. 또한 이상 작품의 난해성과 파격적 실험성 때문에 방치되었던 구절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는데, 특히 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해석된 몇몇 작품을 바로잡은 것이 눈길을 끈다. 시 ‘且8氏의 出發’(차8씨의 출발)의 경우, 그간 성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해석됐지만 절친했던 화가 구본웅과의 우정을 그린 시라고 풀이한다. 차(且) 아래 팔(八)을 붙여 쓰면 그것이 바로 구씨의 성인 구(具)자가 되고, 아라비아 숫자 8은 꼽추였던 구본웅의 기형적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상 탄생 100주년인 내년에는 이상과 주변 사람들의 작품과 그림 등을 모아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이영경기자) 

09. 04. 17. 

P.S. 예전에 나온 전집들의 이미지도 모아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4-17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7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7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7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한길사, 2009)이 번역돼 나왔는데, 마침 역자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버크의 책은 '보수주의의 바이블'로도 읽힌다고 하므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도 나름 제시해줄 듯하다(한국에서 설치는 '설치류' 보수 말고 '진짜' 보수 말이다).  

한겨레(09. 04. 16) 보수주의 바이블’ 220년 만에 한국어로 

인용과 전언으로만 떠돌던 ‘보수주의의 바이블’,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성찰>)이 마침내 번역돼 나왔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790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됐으니, 한국인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무려 219년을 기다려야 했던 셈이다. 번역자인 이태숙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버크의 역사관과 보수주의’로 석사학위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웨이크필드와 식민체계화운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영국 근대 정치사란 연구 주제와 씨름해 온 ‘영국통’이다.  

“한국에서 버크만큼 오해되고 있는 사상가도 드물어요. 그의 보수주의가 변화와 개혁을 무작정 거부하는 사상은 아니었다고 흔히들 얘기하는데, 아닙니다. <성찰>을 쓸 당시 버크는 영국의 사회제도를 최상의 것으로 보고 어떤 변화를 가하는 것도 용납치 않았어요. 그는 반혁명·반개혁적이었을 뿐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변화를 거부했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버크를 ‘개혁적 보수주의자’쯤으로 오해하는 것은 미국 혁명을 찬양하고 영국의 인도통치에 비판적이었던 휘그당(자유당의 전신) 시절의 견해를 <성찰>을 쓸 당시의 입장과 뒤섞어 바라보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라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미국 혁명을 찬양할 때 버크는 명백히 자유주의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보수주의로 돌아섭니다. 프랑스 혁명을 보면서 갖게 된 극도의 위기의식이 인간 본성과 역사를 재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이죠.” 프랑스 혁명에 대한 버크의 위기의식은 “나에게는 프랑스만의 사태가 아니라 전 유럽, 아마도 유럽 너머까지도 미치는 큰 위기 가운데 내가 처해 있는 듯 보인다”고 쓴 <성찰>의 서두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이제까지 세상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경악스러운 일”로 규정한 뒤 “경박함과 잔인함이 빚어내고, 모든 종류의 죄악이 모든 종류의 어리석은 짓과 뒤범벅이 된 괴상한 이 혼란 속에서는, 모든 것이 본성에서 벗어난 듯싶다”고 적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 초기 1년의 사태만으로 혁명의 파괴적 측면을 꿰뚫어 봤습니다. 기존 제도의 과격한 파괴가 개선된 새 질서로 이어지기는커녕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고, 결국 군사독재자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언했어요.” 버크의 이런 통찰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버크는 인간의 이성을 연약한 것으로 봤기 때문에 인간이 합리적 의지로 세상을 개조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이상을 불신한 반면,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돼 온 기존 제도와 관념을 수호해야 할 ‘지혜의 보고’로 떠받들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성찰>에 나타난 이런 보수주의의 근본이념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한국과 같은 현실에서는 보수주의를 선뜻 수용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현재의 번영과 위세를 가져다준 제도와 가치를 긍정하고 보존하려는 것이 보수주의입니다. 보수주의는 근본적으로 선진국 이데올로기예요. 긍정하고 지켜야 할 제도와 가치가 부재했던 신생국 대한민국에서 보수주의가 강세를 보여 온 것은 기이한 현상입니다. 전쟁의 경험과 북한이라는 외부 위협의 존재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보수주의에 대한 이 교수의 이런 규정은 한국 보수의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결국 북한의 위협을 계속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북한의 위협이 약해지거나 사라진다면, 1990년대 미국의 네오콘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위협세력을 만들어내야겠지요.” (이세영 기자) 

09. 04. 16.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람혼 2009-04-16 11:28   좋아요 0 | URL
"설치는 '설치류'"에서 빵 터졌습니다(아, 개그에 대한 이 취약함이란...^^). 설치류의 자칭 보수주의란 "긍정하고 지켜야 할 제도와 가치가 부재"함 그 자체에 대한 보수가 아닐까 하고, 그 보수주의만큼이나 "기이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로쟈 2009-04-16 12:31   좋아요 0 | URL
급수를 좀 올리세요.^^ 사실 한국 보수가 지키는 건 있지요. 호의호식하는 기득권, 권력, 재산...

2009-04-16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6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09-04-16 12:43   좋아요 0 | URL
'설치류'는 정말 압권이군요 ㅎㅎㅎ 설치류가 설쳐서인지 비밀 댓글이 늘어난 것이 왠지 '징후적'으로 읽히는 군요. 로쟈님이 이 기사를 옮겨 놓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군요^^ 저는 오전에 백낙청 선생의 한겨레통일문화상 기념강연과 이 기사를 비교해서 읽었고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로쟈 2009-04-17 10:23   좋아요 0 | URL
이신전심이었나 봅니다.^^

merci 2009-04-16 13:09   좋아요 0 | URL
쩝 드디어 이 책이 번역되었군요. 이제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보수주의 운운할 때 '버크도 번역 안 해놓고..'라고 할 수 없게 되서 살짝 아쉽(?)네요. 지금 버클리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저 분도 여기서 박사를 하셨다니 괜시리 반갑군요. ㅎㅎ

로쟈 2009-04-17 10:23   좋아요 0 | URL
버클리에서는 버크를 많이 읽으시나 보네요.^^

2009-04-16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7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리 셸리(1797-1851)의 <프랑켄슈타인>(1818/1831)을 강의에서 다루기 위해 읽는다. 셸리가 19세의 어린 나이의 발표한 '문제작'이다. 국내에는 이미 여러 종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고, 연구논문도 꽤 되는 편이다. 단행본으로는 장정희의 <프랑켄슈타인>(살림)과 젤 메네갈도가 편집한, 프랑스 학자들의 논문모음집 <프랑켄슈타인>(이룸) 등이 유용하다. 물론 100여 편이 넘게 제작되었다는 영화들도 참고자료가 된다. 이 중 널리 알려진 건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1931)과 케네스 브레너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994) 등이다. 관련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참고로,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해설도 옮겨놓는다. 스틸컷이 잘 알려진 작품인데, 내주에는 영화도 한번 봐야겠다.   

<프랑켄슈타인>은 <드라큘라>와 함께 공포영화의 원류로 평가받는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우리는 미치광이 과학자와 그가 만들어낸 이상한 생물을 만난다. 과학의 힘을 빌려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 손은 댄 과학자는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지 머뭇거리게 만드는 ‘존재’를 통해 새로운 위협을 받는 것이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야심적인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꼽추인 조수 프리츠와 함께 시체의 부위를 절단해 괴물 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계속한다. 한편, 프랑켄슈타인의 약혼녀인 엘리자베스는 약혼자가 시계탑 안에서 하고 있는 이상한 실험에 대해 알게 되고 불안해한다. 엘리자베스는 실험을 막기 위해 의대 교수인 발드만 박사와 함께 시계탑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했을 때, 번개를 맞은 존재가 생명을 얻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셀리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소설보다 독일 표현주의에 더 근접하고 있다. 전체적인 조명이 어두우며 인물의 행동이 과장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명암의 대조가 뚜렷하다는 것도 <프랑켄슈타인>이 표현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과학자가 만들어낸 기괴한 ‘존재’일 것이다. 아무렇게나 만든 인형처럼 몸이 군데군데 꿰매져 있으며 어설프게 보이는 걸음걸이 등은 죽음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손에 의해 부활하게 되었던 가엾은 존재에 대해 공포와 함께 연민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보리스 칼로프는 이후 많은 공포물과 SF영화 등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전문적 배우로 남기도 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줄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 과학자는 존재를 창조하지만 거꾸로 그것에 의해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창조자에서 살인을 꾀하는 자로 변신을 거듭한다. 반면, 영문을 모른 채 탄생한 괴물은 여전히 영문을 모른 채 사람에게 추적을 당하고 희생양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박사가 만들어낸 생물이 어린 소녀와 대화를 하고 어이없게도 아이를 물에 빠뜨리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인간적 정서를 잊은 이 낯선 존재가 동심의 세계와 현실의 아이러니 사이에서 동요하는 장면이 제임스 웨일 감독의 시각적 스타일로 잘 압축되어 있다. 제임스 웨일 감독은 이후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 등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의 이름을 다시 세상에 알린 것은 <갓 앤 몬스터>(1998)이다. 웨일 감독의 말년을 다룬 이 영화는 동성애자였으며 비밀에 싸인 채 죽음을 맞이한 어느 영화감독의 삶의 일부분을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자와 어느 생명체에 관한 영화였듯, <갓 앤 몬스터>는 영화감독과 그의 창작물에 관한 내밀한 기록으로서 기억되고 있다.(김의찬_영화평론가)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피귀르 미틱 총서 11
질 메네갈도 책임편집, 이영목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9년 04월 15일에 저장
품절
프랑켄슈타인- 개정판
메리 셸리 지음, 이미선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7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04월 15일에 저장
품절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9년 04월 15일에 저장
구판절판
프랑켄슈타인
장정희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04월 15일에 저장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09-04-16 08:16   좋아요 0 | URL
19살에!!

로쟈 2009-04-17 10:22   좋아요 0 | URL
좀 조숙하긴 했죠. 시인 셸리와 이미 동거중이기도 했고...

yoonakim 2009-04-17 21:47   좋아요 0 | URL
엄마는 메리 월스톤크라프트 였습니다^^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기록되는 그녀는 딸 메리를 낳다가 죽었죠. 그래서 늘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운명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연유로 어머니의 자궁을 거부하는 괴물을 창조한거겠죠.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 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골렘'같은 영화가 프랑켄슈타인 모티프를 지닌 작품들이구요. 넓게 보면 '메트로폴리스'의 로트방 박사와 마리아 로봇의 관계도 그 범주라 할수 있을 듯하네요. 미친과학자와 피조물을 다룬 프랑켄슈타인 모티프의 동화적 버전은 아마도 팀버튼의 '가위손'이라고 생각됩니다.ㅎ

로쟈 2009-04-17 22:17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여권의 옹호>가 작년에 나왔지요. 아, '가위손'도 그 범주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