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의 수수께끼

독일의 거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열정으로서의 사랑>(새물결, 2009)이 번역되었기에 관련기사를 검색해보다가 작년에 나온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푸른숲, 2008)에 뒤늦게 주목하게 됐다. 미처 몰랐는데, 저자가 루만의 <열정으로서의 사랑>에 영감을 얻어서 쓴 책이라고("비개인화된 사회에서 개인적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소통 코드로서 사랑을 규정한 니클라스 루만의 화두로부터 시작해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제 그 '소스'가 되는 책이 출간됐으니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 루만의 책에 대해서는 주말에나 리뷰기사가 올라올 듯싶고, 여기선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둔다.   

한겨레(08. 05. 14) 사랑은 움직인다, 21세기 실용 전술을 짜라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놀라운 것은, 우리는 사랑이 탈마법화됐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사랑 그 자체는 마법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정체가 발각됨으로써 사랑의 마법은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사랑의 본질을 좀더 상세히 파악하면 유일무이한 사랑의 모델을 끌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이를 통해 사랑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유일성을 체험할 수 있다.”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는 사랑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서다. 독일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지은이의 방법론은 니클라스 루만의 책 한 권에서 비롯했는데, 그것은 <열정으로서의 사랑>이다. 루만은 1982년에 펴낸 이 책에서 “근대적 사랑의 전형인 ‘낭만적 사랑’이 퇴조하면서 이해관계의 차가운 계산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은이는 루만과 달리, 사랑의 신화가 소멸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사랑이 인간의 가장 소중한 체험을 구성하고 있다고 본다. 비록 낭만적 사랑이 예전처럼 존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21세기 접어들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실용주의와 맞물려 ‘전대미문의 새로운 형식’으로 융합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해설을 쓴 김홍중(대구대 사회학 전임강사)씨는 지은이의 핵심 주장이라 할 ‘사랑의 새로운 결합’이 두 가지 현상의 중첩이라 말한다. 현대사회의 복잡성이 더해갈수록 개인은 자유로운 동시에 실존적 고독을 느끼게 된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비개인적이고 사무적인 환경 속에서 보내는 현대인은 친밀하고 열정적인, 다시 말해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 안에서만 진정한 소통을 이뤄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책의 원제가 시사하는바, 그것이 우리들 ‘심장의 코드’(Der Code des Herzens)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낭만적 사랑은 ‘자아의 희생’을 담보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 현대인이 과연 그와 같은 개체의 소멸을 견뎌낼 수 있는가 지은이는 묻는다. 때문에 낭만적인 사랑을 유지하되 그것을 위험하지 않은 정도에서 현실적 사랑의 가능성으로 창출할 필요가 생긴다. 이것이 지은이가 힘주어 말하는 사랑의 유형이다. “소통의 시대가 지나자 사랑은 실용적 단계로 진입하였고, 문제 지향성은 실천 지향성에 자리를 내주었다. 사랑은 묵은 허물을 벗고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실용적 사랑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감정과 실리, 낭만과 현실주의, 열정과 자유방임은 새로운 결합에 도달하였다.”

루만의 이론을 이정표 삼아 지은이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소통 코드’라는 결론을 향해 묵직한 성찰을 시도한다. 시대별로 사랑이 어떤 변모를 겪었는지 훑어보고,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믿는 열정을 사랑의 맹점이라고 말한다. 대중매체의 확산과 함께 사랑도 급격히 진화하면서 프로그래밍되는 현실을 분석하는가 하면 소비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현대인의 사랑 풍속도를 해부해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 지은이는 전통적 가족 구조가 해체되면서 벌어지는 ‘가족의 탄생’을 짚어내는데 그 대표적 예로 별거 동침과 패치워크 가정을 들었다. 별거 동침은 가까운 곳에 각자 집을 얻어 살되 필요할 때 만나는 경우이며, 패치워크 가정은 재혼한 부부가 이전 결혼생활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구성된 형태를 가리킨다.

사람의 삶에서 온갖 다사다난을 만들어내는 사랑. 그 간난신고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하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지은이의 충고. “아무리 투철한 전략도 사랑을 조종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사랑의 계산 불가능성을 ‘백미러’로 계속 관찰하며 대처해 나간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게 언제나 진행형이며 결코 완료형일 수 없다는 전제만 받아들인다면 눈을 쉬이 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전진식 기자)  

0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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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9-10-22 10:46   좋아요 0 | URL
권기돈 씨와 조형준 씨 외에도 먼젓번 루만의 <사회체계이론(한길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정성훈 씨가 참여하셨더군요. 제 짧은 식견 안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루만 전문가'이신 것 같은데 번역이 기대됩니다.

게슴츠레 2009-10-22 10:24   좋아요 0 | URL
책을 직접 읽어봐야 알겠지만 기사에 인용된 "근대적 사랑의 전형인 ‘낭만적 사랑’이 퇴조하면서 이해관계의 차가운 계산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루만의 비관적으로 보이는 입장이나, "낭만적인 사랑을 유지하되 그것을 위험하지 않은 정도에서 현실적 사랑의 가능성"을 말하는 슐트의 입장이나 그리 썩 시원하게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그보다 "전략적"인 사랑과 "낭만적"인 사랑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보완물의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케이블TV에서 나오는 소개팅 프로그램에서 외모, 직업, 종교 따질 것 다 따지면서도 '저는 운명적인 한 번의 사랑을 믿어요'라고 말하는 분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그 분이 '이 분이 운명같다'라며 택한 분은 앞서의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죠. 스스로의 현실주의적 기준을 낭만주의적 양념으로 아름다게 합리화시키는 구조. 그런 맥락에서 슐트의 제안은 도달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고, 루만의 예상은 이런 물신적인 구조까지는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시스템론을 통한 '사랑'에의 접근은 이런 논의를 시작하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물질적인 기초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얼마되지 않는 믿을만한 루만 번역서라는 데도 큰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로쟈 2009-10-22 11:31   좋아요 0 | URL
네, 오래 기다린 책인데, 기대를 갖게 합니다...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타 뮐러의 문학세계를 조명해주고 있는 기사를 대학신문에서 스크랩해놓는다. 필자는 서울대 독문과의 최윤영 교수이다. 올해 출간됐다는 장편소설 정도는 국내에도 바로 소개됨 직하다.   

대학신문(09. 10. 19) 헤르타 뮐러, 침묵과 말하기 사이에서  

헤르타 뮐러(사진)가 2009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탄과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루마니아에서 온 조그마한 독일 작가는 한국의 독어독문학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독일에서도 수상을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응축된 시적 언어와 뛰어난 작품성은 일찍 인정받았지만 특이한 출신배경과 반복되는 소설의 내용(루마니아 전체주의의 압제에 대한 고발), 그리고 지난 10년간 이미 2명의 독어권 작가(독일의 귄터 그라스 1999년, 오스트리아의 엘프리데 엘리넥 2004년)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상황에서 큰 기대를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헤르타 뮐러는 노벨문학상을 탄 12번째 여성작가이며 클라이스트상을 위시한 다수의 주요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올해 56세인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의 바나트-슈바벤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에 속한다. 이러한 출신배경과 가족사는 오랫동안 뮐러 작품의 주요 내용을 특징짓는다. 할아버지는 유복한 농부이자 상인이었는데 루마니아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재산을 몰수당했다.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소련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고 아버지는 전직 나치출신으로 트럭 운전사였다.뮐러는 시골 마을에서의 행복한 유년시절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작은 마을에서의 폐쇄적이며 억압적이고 두려움에 가득 차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뮐러는 루마니아의 한 대학에서 독문학과 루마니아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기계공장에서 통역 일을 했다. 1979년 스파이로 일하라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제의를 거부하면서 뮐러의 인생은 궤도에서 벗어난 험난한 길로 바뀌었다. 비밀경찰의 잦은 소환과 가택수색, 그리고 주변세계에서 받은 기생충 같은 인간이라는 모욕 속에서 뮐러는 독일어 개인교습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에 대한 반감을 키워가던 작가는 자기 확신을 얻기 위해 첫 작품집 『저지대(Nieder-ungen)』를 루마니아에서 출판했다. 이 작품은 작가 나름의 그때까지의 삶에 대한 정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제까지의 나의 삶을 철두철미하게 빗어 훑어 내렸다. 작은 마을에서의 유년 시절, 아버지의 나치 경력, 독일 소수민족의 나치 범죄에의 연루, 지금 내가 겪는 독재의 전횡을 말이다.”

1987년 뮐러는 작가인 남편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했고 이후 작가로 유럽 문단에서 주목받게 됐다. 작가에게 독일이라는 공간은 언제든지 소환돼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줬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태어난 바나트 지방의 독일어와는 완전히 다른 독일어를 사용하고 다른 세계관과 인생체험을 가지는 사람들의 땅으로 여전히 그를 이방인으로, 고향 없는 작가로 만들었다.  



작가의 경력을 볼 때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 치하에서의 자전적 삶의 기록을 많이 담은 장편소설 『마음 속의 동물(Herztier)』의 출간이었다. 이 작품은 대학으로 진학한 여주인공이 일상 삶에서 겪은 정치적 탄압을 묘사했다. 같은 기숙사 방의 친구인 롤라는 자신의 운명인 시골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남자를 만나다 체육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한다. 롤라의 기록을 읽은 주인공은 뜻이 맞는 대학생 그레고르, 쿠르트, 에드가와 이 사건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들은 모여 반정부 시를 짓고 자신들이 받는 일상의 정치 억압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결국 비밀경찰에게 이 일이 알려져 거의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헤르타 뮐러 글의 전체적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바로 완결되지 않은 단편적 구조, 에피소드식 이야기, 그리고 많은 신조어다. 폐쇄적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겪은 정치적 탄압과 두려움, 공포 속에서도 작가는 침묵하지 않고 용기를 내 발언하고 있지만 그의 언어는 노골적인 반정치 문학이나 구호문학이 되기보다는 일상 삶 안에서 냉철하고 조용하고 뚜렷한 이미지 언어로 전달된다. 『마음 속의 동물』은 “우리가 침묵하면 속이 편치 않고 우리가 말을 하면 우리는 조롱거리가 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작가의 위치를 잘 드러내 준다.  



올해 출간돼 많은 찬사를 받은 장편소설 『숨 그네(Atemschaukel)』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건, 즉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바로 나치의 후예로서 소련으로 압송된, 7만5천명의 루마니아-독일인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독일군에게 피해를 당한 소련을 복구한다는 명목으로 17세부터 45세까지의 루마니아 거주 독일인들이 끌려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은 오랫동안 터부시 돼왔다. 독일인이 가해자가 아니라 소수민족으로서 희생자로 산 삶을 주인공의 내부자 시각에서 그려낸 이 장편소설은 그 치밀한 묘사와 생생한 체험, 집중적인 시적 이미지, 그리고 거리를 두는 문체가 두드러지는데 작가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작가의 어머니가 실제로 겪은 사건이며 동시에 일찍 사망한 동료 시인 파스티오르의 고통스러운 회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소련으로 압송된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개개인의 인생사를 가지고 있지만 수용소를 지배하는 극심한 굶주림과 억압 하에서 힘에 겨운 강제노역을 하면서 한명 한명 동물이 돼간다. 개인들의 회상 속에서 역사를 녹여내는 뮐러의 작품들은 종종 유사한 경험을 담아낸 솔제니친, 임레 케르테스, 프리모 레비와 비교되기도 한다

작가는 유럽, 독일, 그리고 현대 물질세계의 안락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리가 잊고 있는, 같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기억을 초지일관 기술한다. 거추장스러운 수사 없이, 강한 시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산문 언어로 쓰인 그의 작품은 몰락해간 동유럽 소수민족의 역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너무 늦은 과거”와 “너무 이른 미래”에 사는, 아직도 다수로 존재하는 ‘벌거벗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최윤영_독어독문학과) 

09.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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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0-22 14:32   좋아요 0 | URL
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군요.

로쟈 2009-10-22 22:09   좋아요 0 | URL
네, 소설들이 있어서 다행이예요. 아무래도 시보다는 이해하기가 용이하니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박정희와 그의 유산 - 30년 후의 재검토'란 국제학술회의가 오늘 개최되었다고 한다. 미리 발표내용을 정리한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10. 19)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진보·보수 공동 학술대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내려온 진보·보수 학계가 다시 한 번 격돌한다. 그의 서거 30주기를 앞두고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19일 ‘박정희와 그의 유산’이란 주제로 여는 국제학술회의에서다.

보수 학자로는 함재봉 미국 랜드연구소 수석정치학자와 류석춘(연세대)·김형아(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교수가, 진보 쪽에서는 박명림(연세대)·임혁백(고려대)·김동노(연세대) 교수가 나서 박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유산 등에 대해 발표한다. 보수 학자들이 대체로 그의 통치 18년에 드리운 독재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 주력한다면, 진보 학자들은 박정희 숭배의 중핵을 구성하는 발전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함재봉 박사는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독재를 ‘역사적 보편’이란 차원에서 정당화하고자 한다. 통치방식이 정치적으로 바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논리다. 그는 박 정권의 성취로 효과적인 ‘국민(국가) 형성’을 꼽는데, 이런 정치질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법 같은 건 애초부터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근거로 함 박사는 마키아벨리나 홉스, 푸코 모두 근대 권력의 억압성을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든다.

한마디로 박정희의 독재는 “개인적인 도덕적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민 형성의 근본적인 역설과 아이러니의 반영”일 뿐이라는 얘기다. 억압통치의 불가피성을 후발국가의 한계로 특수화하기보다, ‘근대 권력의 근본적 억압성’이라는 보편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류석춘·왕혜숙 교수는 박정희 정부의 유산을 옹호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박정희식 ‘강한 국가’의 복원을 촉구한다. 이들이 볼 때 박정희 시대는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가 짝을 이루면서 전략과 실행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그에 따른 시너지를 극대화한 경우였다. 박정희 시대의 성취에는 국가의 능력뿐 아니라 국가의 전략을 수용하고 실행하면서도 일방적 독주는 견제했던 강한 사회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는 약해진 반면 사회는 여전히 강한 상태가 유지돼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강한 사회를 뒷받침할 강한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에 맞서는 진보 쪽의 박명림 교수는 박정희 옹호론의 핵심 근거인 경제적 성취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박 교수의 전략은 박정희 정부 시기의 경제적 성취를 비슷한 발전단계의 국가들, 그리고 한국의 다른 정부들, 나아가 서로 경쟁했던 북한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는 집권 기간의 경제성장률, 정권이양 시점의 외환보유고, 수출 증가율, 물가 상승률 등을 비교한 뒤 박정희 정부의 성취가 동시대 대만·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는 물론이고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도 결코 두드러진 것이 아니었다고 결론짓는다.

박 교수는 다만 박정희가 김일성과의 대결에서 이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승리에는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과 이후 체제 경쟁의 의도하지 않은 효과, 남한 내 민주세력의 도전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동노 교수는 박정희 장기집권의 사회적 동력을 비판적 시각에서 규명한다. 불법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는데도 장기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억압이나 경제적 성취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통제전략 덕분이란 것이다. 김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이념 조작과 새마을 운동을 통한 전통적 통제질서의 복원이다. 이념으로는 민족을, 일상적 통치기구로는 마을 공동체를 앞세워 개인이 국가의 억압성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권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봉쇄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20일까지 연세대에서 계속되는 이번 행사에는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한국학 연구자들도 참가해 ‘박정희 노선’과 한국식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외국 학계의 평가와 시각을 소개할 예정이다. 박정희 시대를 조명하는 학술행사는 다음달에도 이어져 11월9일에는 진보·개혁 성향 학술단체와 싱크탱크가 주최하는 박정희 토론회가 서울에서 열린다.(이세영 기자) 

   

경향신문(09. 10. 18) “박정희의 유산 대기업 우선 지원·노동계 경시 여전”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 직전까지 갔던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수혈을 받으며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을 약속했다. 박정희식 발전국가 모델을 버리고 앵글로-색슨 신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를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평가받아온 박정희 모델은 어느날 갑자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에서 발전국가 모델과 신자유주의는 그 시기상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반드시 상반되는가.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펴면서도, 박정희 모델의 핵심 유산인 토건국가 정책을 물려받았다는 점만 봐도 직관적인 의문이 든다. 이는 19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년을 맞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동아시아협력센터와 호주국립대 아시아·태평양대학 한국학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박정희와 그의 유산-30년 후의 재검토’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탓 옌 콩 박사(런던대 SOAS)는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대한민국 주식회사’(Korea Inc.)는 변했지만, 국가의 발전주의적 목표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발전국가 시기(60~80년대) 한국의 경제 관행이 이후 신자유주의 시기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 우선의 산업 지원, 노동계의 이해 경시 등은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여전한 박정희의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탓 옌 콩 박사에 따르면 발전국가 모델과 신자유주의를 분명히 구분하는 시각은 자본주의 발전국가를 국가의 주요 산업에 대한 신용우대 정책과 특정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 접근에의 특혜 부여 등 기업 주도의 성장과 동일시하는 좁은 이해에 근거한다. 발전국가는 그것이 가진 산업 발전과 후발주자로서 따라잡기 극대화에 대한 임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임혁백 교수(고려대)는 “60~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은 박정희의 현명하고 시의적절한 개발 정책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일제 식민지 유산, 냉전의 최전선에 대한 미국의 호의적 헤게모니, 농지개혁 이후 조성된 도시 위주 발전 여건 등 다양한 외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전국가론만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마틴 하트-랜즈버그 박사(루이스앤클라크 칼리지)는 발전국가 전략이 그 발전적 잠재력을 모두 소진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모델이 통했던 것은 우호적인 국제환경이 도왔기 때문이지만, 97년 외환위기로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이 그러한 방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 그는 발전국가라는 외피가 이제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중국이라는 국가의 크기를 고려할 때 발전국가 모델의 효용은 떨어질 것으로 보았다. 결국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의 통제를 위한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메커니즘에 의한 새로운 전략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임혁백 교수는 사회복지 국가 모델을 그 새로운 전략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서구의 사회복지 국가 모델이 어떻게 한국 상황에 뿌리내릴지에 대한 논의는 미미한 편이다. 분명한 것은 ‘국가가 잘 되면 행복해진다’는 신화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어로 ‘development’로 번역되는 ‘발전’ 또는 ‘개발’의 한국적 의미가 무엇인지 우선 논의되지 않고서는 30년 해묵은 박정희의 극복은 요원해 보인다.(손제민기자) 

09. 10. 19.  

P.S. 굳이 30주기가 아니더라도 박정희와 그의 유산에 대한 이해는 한국사회와 현재의 삶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전공학자도 아닌 이상 무얼 '연구'할 형편은 아니지만 몇 권의 평전은 참고해볼 수 있겠다. 최근에 나온 조우석의 <박정희 한국의 탄생>(살림, 2009)은 호의적으로,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인물과사상사, 2007)은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책이고, 전인권의 박사학위논문이기도 한 <박정희 평전>(이학사, 2006)은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초점을 맞춘 전기적 연구이다(지난달에 대출해놓고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 

    

박정희 체제에 관한 연구로는 어떤 책이 필독서인지 알지 못하겠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으로 기미야 다다시의 <박정희 정부의 선택>(후마니타스, 2008)과 김수행/박수호의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서울대출판부, 2007), 그리고 하용출의 <후발 산업화와 국가의 동학>(서울대출판부, 2006) 등이 내가 참고하픈 책이다. 거기다 요즘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감시와 함께 공부를 해야 하니 대한민국 국민 노릇도 어지간히 힘들다(이중국적자들은 속 편해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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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0-22 14:30   좋아요 0 | URL
김형아 교수는 '유신'과 '경제성장'을 '양날의 칼'이라고 하던데요. 박정희 개발 독재는 우리 국민성에 대한 우려(함석헌,장준하 등)의 소산인가 싶어요.

로쟈 2009-10-22 22:10   좋아요 0 | URL
저는 스탈린식 사회주의의 한국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Paparazzi 2009-10-30 09:48   좋아요 0 | URL
김형아 교수의 저작을 추천합니다.

로쟈 2009-10-30 22:37   좋아요 0 | URL
네, 목록에 넣어두었습니다...
 

하루에 네 편씩 포스팅을 하는 건 내 경우 '미친 짓'의 일종이지만(간혹 기분이 착잡하거나 우울할 때 그러는 수가 있다),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란 문구에 또 '필'을 받아서 두 권의 책소개를 스크랩해놓는다. 산골살이를 다룬 박원식의 <산촌 여행의 황홀>(창해, 2009)과 마당살이를 담은 서화숙의 <마당의 순례자>(웅진지식하우스, 2009)가 그 두 권의 책이다. 비록 산골살이를 해본 적이 없고(나는 내내 지방 소도시에 살다가 서울로 왔고, 서울 근교로 왔다), 마당 있는 집을 떠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왠지 황홀해지고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들은 쓰는 저자도 내내 행복할 듯싶다... 

세계일보(09. 10. 17) 자연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있는 휴식과 치유의 공간 

나는 지금 남해의 물미해안에서 이 책의 서평을 쓴다. 어느 날 문득 바쁘게 나를 몰아세웠던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잊기 위해 평소 좋아하던 K시인의 ‘문학기행’ 여정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남해의 물빛 영롱한 풍경을 마주하며 꾸미지 않은 어촌의 낯선 모습들이 내 눈을 더욱 푸른 에메랄드빛 파다 풍광에 젖어들게 한다. 설핏 산촌여행도 아니고 바닷가 여행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10월의 가을을 사랑하기엔 산이나 바다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낯설고 거칠지만 생명의 속살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산하의 숨결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지금 가을을 만끽하는 필자 눈에 비친 가을의 색감이다. 



‘산촌여행의 황홀-자연주의 에세이스트 박원식의 산골살이 더듬기’는 그렇게 낯설고 자연스러운 산촌으로 떠나고 싶고, 머물고 싶고, 느끼고 싶은 아주 오래된 고향 산촌에 관한 이야기이다. 박원식 작가가 찾아간 산촌은 우리 산하에 몇 안 되는 자연 그대로의 비린 속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깊은 산골에서 산과 더불어 산처럼 그윽하게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의 삶의 여운을 전하고 있다. 그곳은 여느 유명한 명산대천이 아니라 오지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강원도 영원군 하동면이며, 충북 청원군 문의면이며, 전남 곡성군 오산면 하는 국토에 점점이 박힌 순박하고 진솔한 우리네 산골들이다. 그곳을 찾아가서 작가는 적요하게 풍경으로 다가오는 산촌의 촌부와 촌로의 아프고 시린 모습들을 그냥 무심하게 날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지금 남해의 허름한 숙소에 앉아 여명이 밝아오는 비취빛 바닷물살을 굽어보며 독자들에게 이 글을 쓴다. 10월의 어느 날 우리가 떠나볼 만한 자연은 절경으로 유명한 등산로나 관광지가 아니라 낯설고 거칠지만 자연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있는 진정한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 책의 작가가 찾고자 하는 고향 산촌 같은 그런 곳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형형색색의 단풍 옷을 갈아입은 산촌의 오색풍광이 아름답게 빚어나는 10월의 눈부신 날들. 이렇게 아름다운 10월의 어느 날엔 ‘산촌여행의 황홀’을 한 권 들고 작가가 버무려놓은 어머니의 품 같은 우리 고향산골로 ‘마음을 내려놓는’ 호젓한 산촌여행을 떠나보자. 동네 뒷산 같은 그곳에선 고욤나무와 앵두나무가 자라고, 박새들이 나뭇가지에 음표처럼 매달려 지지구 재재구 즐거운 노래로 당신을 환영할 것이다. 그곳이 바로 당신과 나의 모태가 된 작가가 그리는 때 묻지 않은 산촌여행길이다.(맹한승 도서출판 창해 주간)   

한국일보(09. 10. 10) 마당에 다 있었네 자연도, 평온도, 행복도 

자연에서 자란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대도시 서울의 콘크리트 문화에 살면서도 늘 자연을 그리워했던 이 책의 저자는 마침내 종로구 부암동에 단독주택을 마련했다. 영화, 드라마의 무대로 자주 나오는 부암동은 광화문과 지척이면서도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으로 에워싸인 산골 동네이자 조선의 흔적을 품은 역사 동네이다. 이 책은 저자가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2006년 7월 부암동에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마련한 뒤 가진 넉넉한 삶의 기록이자 마당 있는 집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다. 



마당은 집에서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곳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순환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마당에서 산책하고 꽃을 가꾸며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텃밭을 만들고 채소를 기르고 과일을 수확한다. 가끔은 마당에서 밥도 먹고, 해를 받은 북한산 바위의 색깔 변화도 읽는다.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역시 집에 넉넉한 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산 지 3년 남짓, 그 사이 깨달은 것은 삶의 즐거움은 소박한 것이고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이자 동화작가인 저자는 막연한 미래에나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집에 온 뒤로는 바로 지금이 가장 충만한 시간, 행복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사람과 부대끼고 근심과 갈등에 휩싸일 때마다 마당에서 위로와 용기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단독주택을 고르는 법부터 마당을 일구고 꽃과 나무를 가꾸는 요령 등도 수록돼 좋은 정보도 된다.(박광희기자)  

0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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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0-19 00:03   좋아요 0 | URL
요즘 제가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를 외치고 있는 중인데,,,,이런 책 소개 보면 저도 기분이 착잡하거나 우울해 진다구요!!우짜튼둥 오늘도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참, 언제 로쟈님과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생각이,,,ㅎㅎ

로쟈 2009-10-19 19:40   좋아요 0 | URL
네, 언제 기회가 되면요.^^

2009-10-19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9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젝의 책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소극으로>(2009)를 알라딘에서 주문해놓고 검색해보다가 유익한 동영상을 보게 됐다. 'Democracy Now!'라는 뉴스 프로그램의 10월 15일 인터뷰인데, 육성과 함께 인터뷰 내용도 같이 나와 있어서 현 세계정세에 대한 '서구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철학자'(the most dangerous political philosopher in the West)의 생각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http://www.democracynow.org/2009/10/15/slovenian_philosopher_slavoj_zizek_on_the). 지젝은 DN!과는 작년에도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Slovenian Philosopher Slavoj Zizek on Capitalism, Healthcare, Latin American “Populism” and the “Farcical” Financial Crisis  

JUAN GONZALEZ We continue on the subject of the financial crisis with a man the National Review calls “the most dangerous political philosopher in the West.” The New York Times calls him “the Elvis of cultural theory.” Slovenian philosopher and public intellectual Slavoj Žižek has written over fifty books on philosophy, psychoanalysis, theology, history and political theory. His latest, just out from Verso, is called 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 It analyzes how the United States has moved from the tragedy of 9/11 to the farce of the financial meltdown.

Žižek’s latest offering, also excerpted in the October issue of Harper’s Magazine, opens with the words, quote, “The only truly surprising thing about the 2008 financial meltdown is how easily the idea was accepted that its happening was unpredictable.” He goes on to recall how the demonstrations against the IMF and the World Bank over the past decade all protested the ways in which banks were playing with money and warned of an impending crash. They were met with tear gas and mass arrests.

AMY GOODMAN: The message, he writes, was, quote, “loud and clear, and the police were used to literally stifle the truth.”

Well, Slavoj Žižek addressed a full house at Cooper Union here in New York City on Wednesday night and joins us now in our firehouse studio.

Welcome to Democracy Now! 



SLAVOJ ŽIŽEK: Thanks very much. It’s my pleasure.

AMY GOODMAN: It’s good to have you with us. Relate the protest to the—

SLAVOJ ŽIŽEK: You are even better than Fox News, which I usually watch. More amusing.

AMY GOODMAN: Relate the protests to the meltdown and why—how it was predictable.

SLAVOJ ŽIŽEK: No, what interests me is, for example, Paul—sorry, Paul Krugman said basically the same thing, which tells us a lot about how ideology works today. He said, what if we make a mental experiment, and all the leading bank people, managers and so on, were to know how it would end two years ago? He said, let’s not delude ourselves; there would have been no change. They would have acted in exactly the same way.

This brings me, as a psychoanalyst, into the play, because I think this makes us aware as to what extent our everyday dealing is controlled by what in psychoanalysis we call the mechanism of fetishist disavowal. “Je sais bien, mais quand même…” “I know very well, but…” You know, we can know very well the possible catastrophic consequences, but somehow you trust the market, you think things will somehow work out, and so on and so on. It’s absolutely crucial to analyze this, not only in economy, but generally. This is the focus of my work: how beliefs function today. What do we mean when we say that someone believes?

So that I don’t get lost, let me tell you a wonderful story, which is my favorite story. I quote it also in the book. You know Niels Bohr, Copenhagen, quantum physics guy. You know, once he was visited in his country house by a friend who saw above the entrance a horseshoe, you know, in Europe, the superstitious item allegedly preventing evil spirits to enter the house. And the friend, also a scientist, asked him, “But listen, do you really believe in this?” Niels Bohr said, “Of course not. I’m not an idiot. I’m a scientist.” Then the friend asked him, “But why do you have it there?” You know what Niels Borh answered? He said, “I don’t believe in it, but I have it there, horseshoe, because I was told that it works even if you don’t believe in it.”

That’s ideology today. We don’t believe in democracy—nobody. You make fun of it and so on, but somehow we act as if it works. It’s a very strange situation, because there are—some of us old enough still remember them, old days when the public face of power was dignity, belief. And privately you mocked it, you made fun, and so on, no? Now we are, I think, approaching a very strange state, where the public face of power is becoming more and more openly indecent, obscene. Look at Sarkozy in France. Look at Berlusconi in Italy, who is systematically undermining, for over five years now, the minimum of dignity of the state power. I mean, you are again and again surprised how is this possible. You know, after those sex scandals, two weeks ago, his lawyer, Berlusconi’s lawyer, made a public official statement, where he said that the claims that Berlusconi is impotent are lies and that Mr. Berlusconi is ready to prove this in court. Now, how? How—what did he mean? You know, there is a level of obscenity, but this shouldn’t deceive us. We really live in cynical times, not just in this cheap sense they don’t take themselves seriously, but in the sense that—how should I put it?—the ironic self-undermining, making fun of yourself, is in a strange way part of the game. It’s as if the system can function even if it makes fun of itself.

JUAN GONZALEZ Well, I’d like to ask you, you say you are also critical of the progressive or the left response here. You say in your article in Harper’s, “There is a real possibility that the primary victim of the ongoing crisis will not be capitalism but the left itself, insofar as its inability to offer a viable global alternative was again made visible to everyone.” Could you elaborate?

SLAVOJ ŽIŽEK: I am a radical leftist. I like to call myself, in a very conditional way, a communist even. But I think one should, as a leftist, really concede the amount of the defeat of the left in the last twenty years. That’s the sine qua non condition of a possible review. So, yes, apart from very sympathetic things suggested by people like Stiglitz, Krugman, which are basically a return to Keynesian welfare state, and apart from some interesting—but I don’t think they are the solution—economic ideas, like the basic income or so-called renta básica in Brazil, basic rent, which is a utopia of its own, I think, I sometimes, apart from this, have a strange paranoiac idea that maybe this crisis was manufactured so that people will see that even if there is a crisis, the left really doesn’t have a global answer.

I see—what worries me is two things about the left. First, it’s more and more legalistic moralization. You know, it’s kind of a pure form of protest against injustice. Then the only thing you can do is legal forums and so on. In this sense, many of the ex-leftists are getting depoliticized. They no longer ask the truly basic questions. Like even now, all the outcry was, “Oh, those bank profiteers,” and so on. I totally agree with what we just heard. But don’t you think that the truth is a little bit more complex, in the sense of—you know much more about this than me, but the way I see it is that one of the roots of the present crisis is not just greed. It’s that after the digital bubble at the beginning of our millennium, the idea was how to keep prosperity, how to keep economy alive. And it was, as far as I remember, even a little bit of a really bipartisan decision: let’s make it easier in real estate, and so on, to keep it moving. So, you know, there is a structural problem beneath all this psychological topic of the greedy bankers, which is, that’s how capitalism works, my God, which is why even concerning our beloved model—Bernard Madoff, no?—I didn’t like it how they focused on him. Wait a minute. He was just the radical version of where the system is pushing you. Now, I’m not saying—I’m not crazy—“which is why we need to nationalize all banks and introduce immediately socialist dictatorship" or what. What I’m just saying is, let’s not get rid of the problem by too easily making it into a psychological problem. You know, you can be an evil guy, but there must be very precise institutional, economic, and so on, coordinates, background, which allows you to do what you do.

The second thing, I also didn’t like the cry shared by left and right-wing populists of “help the Main Street, not the Wall Street.” Well, sorry, but those bank managers who emphasized, in capitalism there is no Main Street without Wall Street. In today’s industry, because of the competition and immense investment into new inventions and so on, without large accessibility, availability of credits, there is no prosperous Main Street. So this is a false choice. So, again, with all respect for the left and so on, I think we should avoid quick moralization, if we mean it seriously.

AMY GOODMAN: You write, “Is the bailout then really a ‘socialist’ measure? If it is, it takes a peculiar form: a ‘socialist’ measure whose primary aim is to help not the poor but the rich, not those who borrow but those who lend.”

SLAVOJ ŽIŽEK: Yeah. I mean, this is my whole thesis, that capitalism always was socialism for those who are on the top. This is the basic paradox of it, no?

AMY GOODMAN: What about healthcare?

SLAVOJ ŽIŽEK: Oh, now you touch my favorite topic. You know why? Because I think that here we see, when people—when I write on ideology, and people laugh at me—“Haha, didn’t you know this? We live in post-ideological era.” No, here you see ideology in its material force. We can—we should distinguish here two levels. On the one hand are those ridiculous right-wing paranoias, which, incidentally, I like to listen. They amuse me, you know, like that Sarah Palin idea of death panels. Some mysterious bureaucracy will decide, does your uncle live or not. That’s funny, I hope; at least for the time being, we can laugh at it. But then—

JUAN GONZALEZ Not in a big part of America, unfortunately.

SLAVOJ ŽIŽEK: Yeah, yeah, yeah. But then the real problem, where the Republican critique of healthcare plan really works is by appealing to this basic gut notion of freedom of choice. And I think this is a problem; we have to confront it. The first we should make it clear is that in order to exercise the freedom of choice—one has to repeat this again and again—an extremely—to really exercise this, an extremely complex network of social, legal regulations, even, I would say, ethical rules, which are somehow accepted, and so on, has to be—have to be here. In other words, often less choice, at least less public choice, at a certain level means more choice at a different level.

Let me return precisely to healthcare. My idea is that healthcare should be at a certain level, like water and electricity. You can also say that you usually don’t choose your water supplier, no? OK, now we can play the Republican game and say, “What a horrible terror! They are depriving us of the fundamental choice to choose the water supply.” But we somehow accept that there are some things where it is much more practical that you are able to count on them. Sorry, but I gladly refuse the big freedom to choose my water supplier, the same as for electricity, although there things can get more tricky. Why not add to this series health? Europe demonstrates it can be done effectively, not to diminish our freedom, but to leave you much more space of much more greater actual freedom, and so on.

So, you see, this is the danger of this ideology of choice, because, you know, this is, in one sense, a central category today. There is an old Marxist card, which is played again and again, of we are only offered false choices, not real choices, like Pepsi or Coke, whatever, instead of the real choices. OK, there is a truth in it. But there is also another problem of ideology of choice, that often we are bombarded by choices—you really are free to choose—without being given the proper background to make a reasonable choice. John Gray, the British cynical skeptic, whom I otherwise admire, wrote very nicely that we are today more and more forced to act as if we are free. And this causes a lot of anxiety and so on. You know, one should be very specific apropos of choices. I’m all for the freedom of choice. I would just like to see the small—those, you know, in the footnote, the small print, what are the precise conditions of choice, and so on and so on.

And so, again, although I have no illusions about what Obama can do and so on, I am still proud that already before elections I supported him, although this had no great impact here, of course. But in contrast to my very more radical leftist friends whose motto was “he’s just a nice human face on the same imperialism,” “he will even serve better the interest of capitalism,” or whatever, no, I think we see now, apropos the healthcare reform, that we are fighting the central battle here.

JUAN GONZALEZ I’d like to ask you, in terms of the somewhat pessimistic view you have of how the response to the crisis has been, there seems to be, continues to be, an entire continent that is heading in a somewhat different direction, South America and Latin America, in general.

SLAVOJ ŽIŽEK: Here comes my critical leftism.

JUAN GONZALEZ Well, I’d love hear it, in terms—because there does seem to be in many of these areas, while the rest of the world is—the gap is increasing, at least there are governments throughout Latin America that are trying to decrease the gap and take a different role.

SLAVOJ ŽIŽEK: They are trying. Are they really doing it? You know, I am—this is my skeptic. Some people already accuse me of being a covert neoconservative for what I will say now. Let’s not have any illusions. I claim that much of the attraction of the recent wave, Hugo Chavez and so on, of Latin American populism comes from this old desire of the left. Let’s be clear, many leftists today in the United States are relatively well-paid academics who fight all the dirty department career war, but they like to feel warm in their hearts. So it’s good to have as far away as possible another country where you can sympathize. “Oh, but things are really happening there.” You know, at some point in the ‘30s it was Soviet Union, Cuba, Chinese Cultural Revolution, Nicaragua. I’m afraid now that it is Venezuela a little bit. And I don’t buy the standard liberal critique, Chavez dictator and so on.

I just think Chavez started well. He did something of world historical importance. As far as I know, he was the first one of truly trying to mobilize people who were in favelas and so on, who were excluded from the public domain. He really tried to bring them into the political process. I claim if we don’t find a way to do this, we are slowly approaching a kind of a new apartheid society, where we will live in a kind of a permanent low-level civil war, where we will have some kind of irrational explosions like in France, the car burning in the Paris suburbs.

On the other hand, I’m a little bit more pessimistic as to what in the long term he will really achieve. I think he is now losing his way approaching this standard Latin American populism, where he, because of the oil wealth, is allowed to play the game of fiddle with oil, fiddle with money. I think, if you ask me, a much more interesting phenomenon is Bolivia. It’s much more authentic. They’re really being forced to invent something new. I always think that the genuinely utopian moments are not when you are doing OK and why not even better, are when you are in a deadlock. Then, in order even to survive normally, you are forced to invent something. But I thought you would say entire—so, no, I don’t see too much hope in Latin America.

But I see more hope at this moment with you in United States than with Europe. Europe is now, I think, in great decline. I had some hopes about Europe. Why? Because, to put it very simply, it still looks that we have two models now which are in competition, if I simplify the analysis very much: the Anglo-Saxon liberal market model and what we poetically call capitalism with Asian values, which means authoritarian capitalism. This is what every leftist, as I repeat it, should worry about, because let’s concede to the devil what belongs to the devil. Wasn’t it that, ’til recently—I’m sorry to tell you again, as a strange communist, you will say—there was one good argument for capitalism? After. It may have been that capitalism needed dictatorship for ten, twenty years—Chile, South Korea—but when things started to move, capitalism always engendered a push toward some kind of democracy. No longer. I claim that what is now emerging in the Far East started—it started in Singapore, this kind of so-called, again, authoritarian capitalism. I think something new is emerging: a capitalism even more dynamic—

AMY GOODMAN: Ten seconds.

SLAVOJ ŽIŽEK: —than our own, but which, even in long term, doesn’t need democracy.

AMY GOODMAN: Slavoj Žižek, Slovenian philosopher, psychoanalyst, cultural theorist. His latest book is 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

0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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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8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8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Dieyoung 2009-10-1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주장은 티베트에 관한 글과도 상통하는군요. 한국을 언급한 게 의미심장하군요. 아마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1~20년 안에 일어날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로쟈 2009-10-20 23:35   좋아요 0 | URL
책을 오늘 받았는데, 생각 같아선 한달음에 읽고 싶어지네요. 한국어본도 곧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9-10-20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0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10-2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단락에서,
싱가포르에서 시작되었다는 자본주의 형태가 '유교적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로쟈 2009-10-21 00:19   좋아요 0 | URL
네, 권위주의적 자본주의가 좋게 말해서 유교적 자본주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