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책을 주문하는 처지에서 보자면 이번주는 '책 가뭄'이다. 눈에 띄는 책이 많지 않아서 지난주에 나온 <아까운 책 2012>(부키, 2012) 가운데, 소장하고 있지 않은 책 몇 권을 골라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세보니 대략 60%의 책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론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아까운 책' 원고를 청탁받았지만 시간에 쪼들려 부응하지 못했다. 내년엔 '삼세번'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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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책 2012- 지난 한 해 우리가 놓친 숨은 명저 50권
정혜윤.김갑수.강양구 외 지음 / 부키 / 2012년 4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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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6%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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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미필적 고의- 잘사는 나라에서 당신은 왜 가난한가
정대영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6월
14,000원 → 14,000원(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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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민과학- 과학은 시민에게 복무하고 있는가
앨런 어윈 지음, 김명진.김병윤.김병수 옮김 / 당대 / 2011년 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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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97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마이클 샌델의 화제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 2012)을 서평거리로 골랐다. 지난주 대구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KTX 안에서 읽은 책이기도 하다.

 

 

 

주간경향(12. 05. 08) 시장지상주의를 극복하는 방법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덕분에 국내에선 가장 유명한 철학자 반열에 든 마이클 샌델의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출간됐다.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즉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반하여 샌델은 ‘과연 그래도 좋은가?’란 성찰적 물음을 제기한다. 물론 이 물음은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는 우리의 심정적 판단에 잘 부합한다. 샌델의 강점은 구체적 사례와 이성적 논변을 통해서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데 있다.


샌델은 먼저 시장과 시장 중심적 사고방식이 사회생활 전체를 잠식하게 된 것이 지난 30년간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변화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시장지상주의 시대’다. 샌델은 2008년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도 자본주의적 탐욕이 아니라 시장의 무차별적인 팽창에 있다고 본다. 영리를 추구하는 학교와 병원과 교도소가 늘어나고 전쟁을 민간군사기업에 위탁하는 현상이 그러한 팽창의 사례다. 물론 아직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은 현실도 있다. 가령 이마나 신체 일부를 임대하여 상업용 광고를 게재한다든가, 아프거나 나이 든 사람들이 생명보험 증권을 사서 피험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보험료를 불입하고 그들이 사망하게 되면 보험금을 수령하는 돈벌이 따위가 그렇다.


하지만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다지 먼 미래로만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하면, 건강과 교육, 공공안전, 국가보안, 사법체계와 환경보호, 스포츠와 여가활동,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적 재화에 시장논리가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은 곧 우리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현실을 가리키는 이름이 ‘시장사회’다. 시장이 생산활동을 조직하는 도구에 머무는 ‘시장경제’와 달리 시장사회에서 시장은 아예 생활방식 자체다. 과연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시장 유토피아’가 우리의 지향점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시장의 역할과 영향력은 분명 재고되어야 한다. 모든 것의 시장가치화, 무엇이 문제인가? 


샌델은 주로 두 가지 문제점을 비판의 근거로 든다. 하나는 불평등의 문제다. 모든 것을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당연하게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분이 더욱 확연해질 것이다. 단지 비행기 좌석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돈이 차등적인 대우를 가능하게 해준다면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나 모두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인식은 약화될 수밖에 없고 ‘공공선’ 또한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다른 문제점은 부패다.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샌델은 지적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교환되는 재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에게 돈을 주면서 책을 읽게 하는 경우 독서는 내적인 만족의 원천이 아니라 노동이 될 수 있으며, 기부금 입학을 허용할 경우 대학 재정은 확충될지 모르지만 대학입학의 가치는 훼손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 없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분별하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재화의 의미와 목적, 가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은 무엇이 좋은 삶인지 대한 숙고를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시장적 가치와 비시장적 가치에 대한 판단과 구분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다. 따라서 각자의 도덕적·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공개적으로 숙고·토론하는 것이 시장지상주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방책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그러한 숙고와 토론이 공공담론의 장에서 약화됐던 시대와 일치한다는 샌델의 지적은 음미해볼만하다. 우리가 판단하지 않으면 시장이 결정한다. 

 

12. 04. 30.

 

 

P.S. 관심저자의 책인지라 영어본도 같이 구해서 읽었는데, 내가 읽은 것과 다르게 번역된 대목들이 있어서 지적해놓는다. 서론에서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이유로 샌델은 정치권의 무능력과 함께 공적 담론의 위기를 지적하는데, 후자에 대해서 이렇게 적는다.

정치적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라디오 토크쇼에서 당파에 치우쳐 신랄한 비판을 주고받거나, 의회 바닥에서 이념적인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행위가 주를 이루는 시대에는, 이렇듯 논쟁의 여지가 있는 도덕적 질문을 놓고 논리에 근거한 공적 토론을 벌이는 것이 임신과 출산, 아동, 교육, 건강, 환경, 시민권, 그밖의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토론이 가능할 뿐 아니라 공적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으리라 믿는다.(32쪽)

일단 우리말로 어색하다. "공적 토론을 벌이는 것이 (...)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토론이 가능할 뿐 아니라 공적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으리라 믿는다"고 주장하는 셈이니까. 원문은 "it's hard to imagine a reasoned public debate about such controversial moral questions as the right way to value procreation, children, education, health, the environment, citizenship, and other goods."이다.

 

역자는 "to imagine a reasoned public debate about such controversial moral questions"이 가치를 평가하는(to value 이하) 올바른 방법(the right way)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었는데, 나로선 as 이하가 questions를 받는 걸로 읽힌다. 다시 옮기면, (이렇게 여차여저차한 시대에는) "임신과 출산, 아동, 교육, 건강, 환경, 시민권, 그밖의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와 같은 논쟁적인 도덕적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공적 논쟁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논쟁이 불가능한 건 아니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샌델의 주장이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공적인 논의/논쟁의 필요성은 책 전체를 통해서 샌델이 강조하는 바인데, 역시나 같은 서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시장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인지, 시장논리가 속할 수 없는 영역은 어디인지 판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한 좋은 삶에 관해 대립되는 개념들을 공공의 장에 받아들임으로써 정치에 활력을 줄 것이다.(33쪽)

'좋은 삶에 관해 대립되는 개념들'은 'competing notions of the good life'를 옮긴 것이다. '대립되는'이 오해를 유발하기 쉬운데, '경합하는' '경쟁하는'이란 의미로 옮기는 게 좋겠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두고 서로 경합하는 개념들'이란 뜻이다. 마지막 5장에서도 "Such deliberations touch, unavoidably, on competing conceptions of the good life"라고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이 또한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좋은 삶에 상충되는 개념에 관해 깊이 생각하기 마련이다."라고 부정확하게 옮겼다. "competing conceptions of the good life"이란 문구의 개념을 잘못 잡은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옮기면, "그러한 숙고는 필연적으로 무엇이 좋은 삶인지 경합하는 개념들을 건드리게 된다." 곧 무엇이 좋은 삶인가란 문제를 다루게 된다는 것. '좋은 삶'에 대한 숙고와 토론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샌델에게서 핵심적인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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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국제영화제가 한창 진행중인데, 영화사의 고전 가운데 새롭게 발굴/복원된 작품을 소개하는 2012 JIFF ‘되찾은 시간’ 코너의 '오프스크린' 행사 강연자로 참석하게 됐다. 내가 맡은 영화는 아르헨티나의 감독 우고 산티아고(Hugo Santiago)의 <인베이전>(1969)이다. 보르헤스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소개를 옮겨놓는다. 영화는 오늘 저녁에 상영된다(http://www.jiff.or.kr/g00_event/g10_special_0102.asp).  

 

 

혁명의 열기가 세계를 휩쓴 직후인 1969년, 아르헨티나는 기나긴 군사독재 중 유화 국면을 맞는다. 검열이 느슨해진 틈을 타, 우고 산티아고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및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와 함께 군사 쿠데타를 빗댄 <인베이전>의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과 연출을 도맡는다. 권총 한 자루만으로 무력 침공을 시도하는 잔악한 무리를 막으려 동분서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리어드’를 떠오르게 한다. 침공을 막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트럭과 송신 장치는 트로이의 목마와 닮았고, 용맹하고 정의로우나 시작부터 패퇴가 예정되어 있는 인물들의 운명은 트로이인들과 같다.

 

고다르의 <알파빌>처럼, B급 범죄물이면서 현실 풍경을 배경으로 한 저예산 SF의 외양을 지닌 영화는, 가상의 도시 아킬레아를 무대로 삼았으나 기실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담은 지정학적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또,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사를 극사실주의로 기술하는 역사물처럼 보이기도 한다(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또 한 번 일어날 쿠데타와 길고 엄혹한 저항의 시간을 예감하는 결말 시퀀스는, 1973년 칠레 산티아고 스타디움에서의 학살마저 미리 보여주는 듯해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편, 괴수나 새의 울음, 노이즈, 탱고 선율 등이 직조하는 초현실적 사운드스케이프, 흑백 필름이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를 마술처럼 활용하는 미장센과 외화면 구성의 아름다움은, 이 작품을 상투적인 정치 영화가 아니라 세계영화사의 숨은 보석으로 기억하게 한다.(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메인 카달로그 리뷰어. 신은실)

 

오프스크린 3 : <인베이전>

• 강연자 : 이현우 (인문학자, 인터넷 서평꾼 ‘로쟈’)
• 일시 : 4월 29일(일) 20:00
• 장소 : 전주시네마타운 5관

 

12. 04. 29.

 

P.S. 참고로 영화는 유튜브에서도 전편을 볼 수 있다(123분 분량). 자막이 없는 게 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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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이미 주초에 진화심리학 관련서 두 권, 더글러스 켄릭의 <인간은 야하다>(21세기북스, 2012)와 피터 글루크먼 & 마크 핸슨의 <문명이 낯선 인간>(공존, 2012)을 구입하고 주제는 정해놓은 터이다. '섹스, 살인, 삶의 의미'가 원제인 <인간은 야하다>의 부제는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인간 본성의 비밀'인데, 새로운 얘기가 있는 건지 약간 미심쩍긴 했지만 "그는 이 생동감 넘치는 책을 통해 마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에 마음이 움직였다. 피터 매컬리스터의 <남성 퇴화 보고서>(21세기북스, 2012)는 진화심리학적 남성론이며, 토머스 실리의 <꿀벌의 민주주의>(에코리브르, 2012)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꿀벌'에 대한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신작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김영사, 2012)은 가슴 뛸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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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야하다-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인간 본성의 비밀
더글러스 T. 켄릭 지음, 최인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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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낯선 인간- 풍요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빈곤한 유전자
피터 글루크먼 & 마크 핸슨 지음, 김명주 옮김 / 공존 / 2012년 5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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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퇴화 보고서- 진화를 멈춘 수컷의 비밀
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2년 04월 28일에 저장
품절
꿀벌의 민주주의
토머스 D. 실리 지음, 하임수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4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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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533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필립 카곰의 <나체의 역사>(학고재, 2012)를 서평거리로 삼았다. 잡지는 아직 받아보지 못해서 초고를 올려놓는다. 이 책의 흥미로운 서두는 이렇다. "이렇게 한번 해보라. 책을 덮고 당장 옷을 벗어라. 만약 지금 욕실에서 이 책을 읽으려 했다면 괜찮겠지만 하필 서점에 있거나 버스나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면 인생이 달라질지 모른다."

 

 

 

공간(12년 4월호) 나체의 역사

 

누드(nude)와 네이키드(naked)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누드는 옷을 입지 않고 고의로 시선을 끄는 것을 말하며 네이키드는 단순히 옷을 입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말한다.” 즉 누드는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네이키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누드의 공간이 주로 예술가의 작업실이라면 네이키드의 공간은 욕실이다. 하지만 이 두 단어가 언제나 확연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가령 대중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몸은 자기 자신을 위한 네이키드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누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립 카곰의 <나체의 역사>(원제 ‘A Brief History of Nakedness’)는 제목에 ‘네이키드’를 달고 있지만 누드와 구별되는 네이키드만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의미상의 논란을 막기 위해 두 단어를 구별 없이 사용하며 우리말로는 통칭 ‘나체’로 번역됐다. 이 나체가 어째서 관심거리인가?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나체는 왜 사람들을 그렇게 흥분시키는가? 왜 어떤 종교는 나체를 비난하고 또 어떤 종교는 권하는가? 나체 시위로 무언가 보람 있는 것을 이룰 수 있는가? 젖꼭지를 가린 재닛 잭슨의 가슴이 겨우 눈 깜짝할 동안 노출됐다는 이유로 CBS에 55만 달러의 벌금을 매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음경 연기자들이 자신의 생식기를 주무르는 공연을 할 수 있는가?” 등등. 이러한 관심에서 나체의 역사를 탐사해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떤 목차를 구상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예상할 수 있는 경로를 비껴가지 않는데, 그가 고른 주제는 ‘종교와 나체’ ‘정치와 나체’ ‘대중문화와 나체’, 세 가지이다.  

 

저자에 따르면 나체와 종교가 최초로 결합한 사례는 4,000여 년 전, 인더스강 유역에 나타난 현인들로 이들은 옷을 거부했다. 알렉산드로스대왕과 이들 나체 현인들과의 만남이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런 기원이 우연은 아닌지 인도의 종교에서는 나체 수행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자이나교도들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을 ‘공기를 입는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자신이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은 사람’이란 뜻도 전한다. 현재 나체 자이나교 승려들은 200명이 채 되지 않지만 힌두교 나체 성자들은 아직 수천 명이나 있다. 인도의 나체 수도승 전통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성적 편견과 나체 동기다. 남성만 옷을 벗을 수 있다는 게 나체의 역사 내내 발견되는 성적 편견이고, 자제와 금욕의 행위로 나체가 되려고 한다는 게 종교적 동기다. 나체 수도승들이 누군가를 유혹하려고 한다면 그 짝은 신이다.  

 

나체가 신에 더 가까이 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깨달음이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은밀하게만 전해졌다. 가장 유명한 나체 기독교도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였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나체를 네 종류로 구분했는데, 원죄로 타락하기 이전의 자연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자연적 나체’, 가난하거나 자발적인 거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인 ‘일시적 나체’, 자신의 순결함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나체’, 허영과 육욕이 지배하는 ‘죄악의 나체’ 등이다. 나체를 옹호하는 자연주의 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의 나체가 처음 세 종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에서 나체가 순수함, 수치를 모르는 상태, 더 나아가 육체를 거부를 뜻한다면 정치에서 나체는 강력한 힘과 권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취약성과 노예상태를 상징하기도 한다. 즉 나체에 대한 이중적이고 모순적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정치영역이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이라크 죄수들의 옷을 벗길 때 나체는 굴욕적이고 가학적인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정치적 시위를 목적으로 옷을 벗을 때 아무것도 숨길 게 없는 나체는 도발적이면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의 전달수단이 된다. 종교에서 남성의 나체가 특권적이었다면 여성의 나체는 정치 운동의 영역에서 주도적이다. 2005년 캘리포니아 멘도시노카운티에서 여성들은 가슴을 드러낸 채 일광욕을 하고 대중 앞에서 수유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브레스트 낫 밤(Breasts not Bombs)’ 운동을 펼쳤다. 이 활동가들이 외친 구호는 “가슴은 폭탄이 아니다. 유방은 탱크가 아니다. 젖꼭지는 네이팜탄이 아니다. 유방은 미사일이 아니다”였다. 인간은 나체일 때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시위하는 나체는 강하다. 이것이 나체의 역설적 본성이다. 때문에 나체는 정치적 주장뿐만 아니라 도덕적 분노를 표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나체 시위는 나도 과도하게 이용되어 진지한 캠페인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대중이 나체 시위에 싫증을 내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미국에서 나체 활동가들은 여전히 소수자일 뿐이고,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최근에 들어와서야 나체가 시위의 수단이 됐다. 게다가 한국에서 나체 시위는 여전히 ‘남의 나라’ 얘기인 만큼 나체의 정치성은 아직 고갈되지 않은 영역이다.

 

종교와 나체, 정치와 나체와 달리 우리에게 친숙한 건 대중문화와 나체라는 주제다. 나체는 언제나 관음증적 주목의 대상이 되기에 정치적 주장과 저항의 수단으로서도 유효하지만 그만큼 상품화의 수단으로도 유력하다. 1960년대에 나체 혁명을 일으킨 뮤지컬 <헤어>에서 나체 장면은 20초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많은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 등에서 나체가 등장하며 성적 자유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나체는 이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제약받지 않고 세상에 존재할 자유’를 표현하는 행위가 됐다. <나체의 역사>는 벌거벗은 몸의 역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통로라는 걸 알려준다.

 

12.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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